“맞아요. 도망자 신세인지 얼굴에 가면이나 쓰고 나타나서는!”“회사가 발전하려면 우리 방 부장님 말을 따라야죠!”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한지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한지훈을 본 방 부장이 싸늘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길 막지 말고 비켜.”방준우는 어딘가 낯이 익은 한지훈을 자세히 보더니 놀란 말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당신은… 한지훈?”한지훈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방준우를 바라보았다.예전 한정그룹에서 일반 사원에 지나지 않았던 방준우가 부장까지 승진했을 줄이야!조금 전 회의실에서는 존재감도 없던 인물이었다.과거 방준우는 능력이 출중한 직원은 아니었다. 그가 잘리지 않고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후계자였던 한지훈에게 열심히 아부한 결과였다.“오랜만이야.”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응대해 주었다.방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이런 우연이 있을 줄이야! 전대 회장님 아들을 여기서 만나다니! 참, 이제는 한정그룹이 아니라 고운그룹으로 개명했지? 당신도 이제 후계자가 아니고.”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조용히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하지만 방준우는 그를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예전에 개처럼 한지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아가 치밀었다.그때는 그런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한정그룹이 무너지면서 그는 아부 신공으로 쾌속 승진하여 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그래서인지 한지훈을 다시 만나자 알 수 없는 보복 욕구가 치밀었다.“잠깐, 이대로 간다고?”방준우는 자리를 떠나려는 한지훈의 어깨를 잡고 비웃음을 머금더니 동료들에게 그를 소개했다.“다들 초면이지? 이분이 바로 한때 유명했던 한정그룹 후계자였어. 전대 회장님의 아들이자 전임 이사님이셨지.”방준우의 부하직원들은 그 말을 듣자 다들 경악한 반응을 보였다.“저 사람이 그 한지훈?”“세상에! 저 사람이 여긴 왜 왔대? 회사 주인이 바뀌었다니까 면접이라도 보러 왔나?”“자존심도 없는 사
강렬한 수치심이 방준우의 가슴에 차올랐다.그의 부하직원들은 다급히 달려가서 그를 부축해 일으키고 한지훈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너 미쳤어? 감히 우리 방 부장님한테!”“백수 주제에 뭐가 그렇게 잘났어? 아직도 네가 재벌가 도련님인 줄 알아?”“당장 방 부장님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우리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말을 마친 직원들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당장이라도 한지훈에게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한지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너희 넷이서 내 몸에 상처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아?”그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에 겁을 집어먹은 직원들은 연신 뒤로 뒷걸음질 쳤다.어떻게 사람 눈빛이 저렇게 매서울 수 있지?그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 방준우는 직원들을 밀치고 나와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을 질렀다.“한지훈, 죽고 싶어? 여긴 이제 한정그룹이 아니라 고운그룹이라고! 너도 더 이상 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야! 내 이놈을 그냥 확!”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연기를 방준우의 얼굴에 뱉으며 말했다.“이 회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그 말을 들은 방준우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저 자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지훈, 너 미쳤어? 망상증이라도 걸린 거야? 아직도 회사가 네 것 같아?”“잘 들어. 지금 이 회사는 우리 회장님께서 거금을 주고 인수하고 고운그룹이라고 이름을 바꿨다고!”“한정그룹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이 되었어. 그것도 아주 치욕스러운 역사로.”방준우의 부하직원들도 팔짱을 끼고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한지훈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얘기를 하다가 생각난 건데 회사에 너희같이 밥이나 축내는 직원들이 너무 많네. 지금부터 방준우, 그리고 너희 네 명은 해고야.”그 말을 끝으로 주변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방준우 일행은 서로를 번갈아 보다가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저
한지훈이 회장?어떻게 이런 일이!나머지 네 직원들도 경악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무명 백수로 전락했던 한지훈이 어떻게 또 회사의 주인이 된 거지?그렇다면 아까 가면을 쓰고 나타났던 사람이 바로 한지훈?방준우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떠나는 한지훈의 뒤통수에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회장님, 제발 해고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 집에 먹여 살려야 할 마누라와 자식이 있단 말입니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해고 명령은 철회해 주세요!”말을 마친 그는 바닥에 쿵쿵 머리를 찧었다.한지훈은 담담하게 한 마디만을 남기고 홀연히 자리를 떠나버렸다.“넌 언제든 회사를 배신할 놈이라 너 같은 놈을 남겨둘 이유가 없어.”용일은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방준우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다 네가 자초한 거야. 오늘부터 너희는 해고야. 다른 회사에도 공문을 보낼 거니까 앞으로 최소 3년 안에는 재취직이 어려울 거다!”“아, 그리고 오늘 본 거, 들은 거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회장님 신분이 알려지면 너희를 찾아갈 거니까 알아서 해!”말을 마친 그는 재빨리 앞서가는 한지훈을 뒤쫓아갔다.잠시 후, 방준우 일행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났다.한편, 한지훈은 차에서 리스트를 꼼꼼히 훑어보았다.그가 가장 먼저 만나볼 사람은 고일우였다.“아저씨는 잘 지내실까?”한지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고일우는 아버지의 가장 충실한 오른팔이자 친구였다.그는 한지훈이 자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했다.어린 한지훈도 고일우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무척 따랐다.한정그룹이 무너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자존심 다 버리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한 사람이 고일우였다.하지만 혼자 힘으로 강력한 4대 가문의 음모를 막을 수는 없었다.나중에 그 일로 그는 자본 세력의 미움을 사 사업판을 떠나 작은 과일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빨리 가자!”한지훈이 말했다.용일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서랑 거리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양아치 청년들이 과일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신선한 과일들이 쏟아져 바닥을 나뒹굴었다.고일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애원했다.“제발 그만하세요. 이건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란 말입니다….”말을 마친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과일가게마저 없어지면 유일한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그에게는 아직 학교를 다니는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그러니까 돈 갚으면 이런 일 없을 거 아니야?”도형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서 고일우의 가슴팍을 걷어찼다.“돈 드릴게요. 제발… 우리 남편 때리지 말아 주세요!”고일우의 아내는 방으로 달려가서 꽁꽁 숨겨두었던 쌈짓돈을 꺼내 도형에게 가져다 바치며 애원했다.도형은 낚아채듯 돈을 가져갔다.그 모습을 본 고일우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그 돈은 안 돼요. 그건 우리 딸 재료비로 모아둔 건데… 제발 이틀만 시간을 주세요. 이틀 안에 돈 돌려드릴게요!”짝!도형은 다가가서 고일우의 귀뺨을 때리고는 호통쳤다.“돈 없으면 나가서 일이나 할 것이지 학교는 무슨!”그리고 이때, 고일우의 장녀인 고월영이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왔다.소녀는 몰려온 빚쟁이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부모님의 앞을 가로막고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돈 챙겼으면 당장 꺼져!”도형은 그런 소녀를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돈이 좀 부족해서 말이지. 아니면 네가 오빠랑 갈래? 우리 형님 클럽에서 일하면 하룻밤에 20만 원은 쉽게 벌어. 네가 좀 더 열심히 하면 한 달에 천만 원도 문제없어. 그럼 네 아빠가 빚진 돈도 빨리 갚을 수 있고 얼마나 좋아?”말을 마친 도형은 소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그는 청순한 외모에 볼륨감 있는 몸매를 가진 고월영을 탐낸지 오래되었다.‘나이도 어린데 발육은 아주 잘됐단 말이지!’고월영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도형의 손을 쳐내며 소리쳤다.“더러운 손 안 치워? 꺼지라고!”도형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
한지훈은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고는 용일에게 말했다.“깔끔하게 처리해!”“네!”대답을 마친 용일은 폭발적인 살기를 내뿜으며 도형 일행에게 달려들었다.용일의 무자비한 공격에 도형 일행은 반격 한번 못해보고 길바닥에 쓰러졌다.피가 사방으로 튕기고 비명소리가 난무했다.고일우와 고월영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한지훈은 다가가서 고일우를 부축해서 일으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아저씨…”남자의 얼굴을 한참 뜯어보던 고일우의 얼굴이 충격과 기쁨의 감정으로 벅차올랐다.중년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하듯 그에게 물었다.“지훈… 이니?”“저예요, 아저씨. 저 돌아왔어요.”한지훈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이 세상에 강우연과 고운이를 제외하면 고일우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비록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그를 아껴준 사람이었다.“지훈이 너구나. 너였어! 역시 살아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고일우는 눈물을 쏟으며 거친 손으로 한지훈의 손을 잡았다.도형 일행을 해결한 용일은 묵묵히 가게 밖을 지켰다.한지훈은 고일우를 부축해서 의자에 앉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마실 게 물밖에 없네.”고일우의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넸다.한지훈은 웃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감사해요, 아줌마.”고일우는 눈물을 닦고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물었다.“이제 돌아왔으니 앞으로 뭘 할 생각이냐?”한지훈이 아무 목적도 없이 돌아왔을 리 없다는 건 고일우도 눈치채고 있었다.입구를 지키고 있는 남자는 딱 봐도 일반인은 아니었다.이런 사람을 부하로 부린다는 건 한지훈도 이미 대단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한지훈은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았다.“아저씨, 저는 아저씨가 다시 한정그룹으로 돌아가서 저를 도와 회사를 관리해 주셨으면 해요.”“뭐라고? 나한테 회사를 맡겨? 하지만 한정그룹은 파산하고 다른 회사가 인수해 갔잖아?”고일우가 의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한지훈에게 시선이 갔다.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 남자였다.“우영은 이 구역의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신이 사라진 5년 동안 우리 가족들은 당신 때문에 수많은 모욕과 괴롭힘을 감당해야 했어요.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우영의 심복을 건드렸으니 당신이 가버리면 우영은 또 우리를 찾아올 거예요.”고월영은 저도 모르게 원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토해냈다.행복했던 가정이 한지훈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는 이 상황에 불만이 있는 건 당연했다.고월영은 아버지가 왜 빚까지 져가면서 한지훈을 찾아다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월영아, 오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너 어릴 때 지훈 오빠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고일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딸을 나무랐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아저씨, 월영이 말이 맞아요. 저와 우리 가문이 아니었으면 아저씨가 지금 이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겠죠.”“그걸 알면 됐어요.”고월영은 입을 삐죽이며 한마디 하고는 가게를 나가버렸다.“월영아!”고일우가 뒤에서 불렀지만 고월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한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화가 많이 나 보이는데 괜찮을까요?”고일우는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아마 근처 술집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거야.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가족들한테 못할 짓을 많이 했지. 내가 아니면 월영이도 마음 편히 학교를 다녔을 텐데….”말을 마친 고일우는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다.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멀어지는 고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고집이 강한 아가씨네!’그는 고일우와 몇 마디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차로 돌아온 한지훈은 용일에게 말했다.“정도현한테 연락해서 우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봐.”“네.”지시를 받은 용일은 곧장 정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호텔에서 지하세력 두목들과 식사 중이던 정도현은 용일의 번호를 보자마자 즉각 자리에서 일어서서 룸을 나가 전화를 받았다.“용일 선생, 이 시간에
그 뒤로 많은 인물들이 서랑 지역을 주목하게 되었다.일부 세력들이 장우연과 접선을 시도했지만 매번 거절당하고 쫓겨났다고 한다.그래서 지하세력 중에서 장우영의 평판은 좋을 수 없었다.하지만 서랑 일대에 완벽히 녹아들고 여러 재벌 세력들과 얽혀 있었기에 시내에 있는 지하세력들이 서랑 지역에 침투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그래서 그들은 잠시 장우영을 무시하기로 했다.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서 장우영이 한지훈의 심기를 건드렸을 줄이야.정도현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용일 선생, 제가 지금 그리로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 선생을 건드렸으면 죽어야죠.”“빨리 좀 부탁드립니다.”용일은 담담하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정도현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룸으로 들어갔다.“자, 나한테 좋은 소식이 있어.”S시의 지하세력을 장관하는 핵심 인물들은 일제히 정도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정 회장님, 무슨 일인데 이렇게 흥분하셨나요?”“정 회장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정도현이 웃으며 말했다.“자네들도 서랑 지역을 눈독들인지 오래됐잖아.”“서랑 지역이요? 장우영이 관리하는 그 일대 말씀이십니까?”한 두목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장우영 이놈은 그냥 미친놈이에요.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 협력을 제안했지만 그놈은 우리 애들을 두들겨 패서 쫓아냈어요. 몇 년 전이었으면 당장 애들 데리고 놈의 목을 따러 쳐들어갔겠지만 현재의 서랑 지역은 요새와도 같습니다. 섣불리 건드리기 어려운 곳인데 위에서 무슨 소식이라도 내려온 겁니까?”“장우영 그놈 여러 재벌들과 친분이 있어서 건드리기 쉽지 않아요.”정도현이 웃으며 말했다.“자네들은 겁이 너무 많아. 지금 장우영이 아주 대단한 인물의 심기를 건드렸거든? 그분이 지금 서랑구에서 놈의 목을 따겠다고 준비하고 계셔. 우리한테는 기회라는 소리지. 숟가락이라도 얹고 싶으면 당장 나를 따라와!”사람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취했다.“회장님, 그게 사실인가요? 거짓
온몸에 문신을 두른 조폭들이 동시에 용일에게 달려들었다.용일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을 머금으며 달려오는 놈의 팔을 꺾어버렸다.십여 명의 조폭들은 제대로 된 반격 한번 못해보고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악! 내 팔!”“내… 내 다리… 다리가 부러졌어!”“저건 악마야….”십여 명의 문신 조폭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앞에 선 용일을 바라보았다.그에게서 강력한 살기가 느껴졌다.한지훈은 여유 넘치는 보폭으로 안으로 들어와서는 바닥에 쓰러진 조폭들을 둘러보며 싸늘하게 물었다.“장우영 어디 있어?”그 말을 들은 조폭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었다.“몰라. 형님은 여기 없어.”한지훈은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가까운 곳에 있는 문신남의 무릎을 짓밟았다.순식간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신남이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악! 내 무릎… 그만해요. 말할게요. 말하면 되잖아요. 형님은 위층에 있어요.”문신남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한지훈은 곧장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혼란을 틈타 조폭 중 한 명이 계단 입구로 도망쳤다. 놈은 곧장 맨 위층으로 향했다.그 시각, 위층 장우영의 사무실.안에는 비키니를 입은 업소녀들이 장우영의 주변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상석에 앉은 장우영은 윗옷을 벗어 던지고 여자들과 노느라 여념이 없었다.그의 앞에는 팔에 석고를 두른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직전에 한지훈에게 맞아 팔이 부러진 도형이었다.도형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형님, 이번 일은 형님이 꼭 나서주셔야 합니다. 그 자식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요. 우리 애들도 대부분 놈의 손에 다쳤어요. 제가 보기에는 고일우가 불러온 용병 같아요.”장우영은 훌쩍이는 도형을 보자 짜증이 치밀었다.“사내 녀석이 울긴 왜 울어? 당장 일어서지 못해?”도형은 눈물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형님, 그 자식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시내의 조폭 세력 중에 누가 보낸 놈 같은데 우리 실력을 염탐하러 왔을
“짝!”한지훈의 손이 번개처럼 임천덕의 뺨을 강타했다.임천덕은 그 자리에서 바닥을 뒹굴며 마당으로 나가떨어졌고, 그의 광대뼈까지 함몰되었다.얼굴이 시뻘겋게 부어오른 임천덕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들어와라!”한지훈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호통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운 태도로 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이때가 돼서야 도청전인은 사태의 전말을 눈치챌 수 있었다.그는 한지훈의 손에 들린 약환 세 알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한지훈의 의도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임천덕은 손으로 함몰된 얼굴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기어 다시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한지훈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말해라. 이 약은 대체 무슨 약이지? 그리고 네 몸에 해독제는 있는 거냐?!”한지훈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이... 이 약은 ‘백일단장단’이라 불리는 약입니다. 이걸 먹으면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아무리 경지가 높은 강자라도 창자가 썩어 죽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임천덕은 말을 하며 몰래 한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한지훈의 살기가 서린 시선을 마주친 순간, 그는 몸을 움츠리며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그러더니 서둘러 몸에서 파란색 작은 병을 꺼내 들고는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하, 한지훈 선생님! 이… 이게 해독제입니다!”한지훈이 병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자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왔고, 확실히 해독제임이 틀림없었다. 한지훈은 다시 임천덕에게 차갑게 물었다.“이 약을 더 가지고 있나?”임천덕은 고개를 들어 한지훈의 손끝을 보았고,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백일단장단이었다.임천덕은 서둘러 남은 다섯 알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한지훈 선생님, 이 약은 총 여덟 알뿐입니다. 이것은 제 스승님께서 임종 전에 물려주신 것입니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 약을 조제할 줄 모릅니다!”한지훈은 약환을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천덕은 품에서 검붉은 약환 세 알을 꺼내 한지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 약은 현재 다섯 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세 알이면 한지훈 선생님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예를 갖추며 약환 세 알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한지훈에게 내밀었다.한지훈은 약환 한 알을 집어 들고 코밑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고, 순간 지독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사람을 살리는 약이라면, 그 향기가 반드시 은은하게 퍼지기 마련이다.그러나 이처럼 비린내가 나는 약은 독약임이 분명했다.초보적인 의학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알아챌 수 있는 이런 속임수는 한지훈 앞에서 더더욱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오호, 약이 꽤 좋아 보이는군요.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백생단입니까?”한지훈은 약환을 손에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척하더니, 다시 내려놓았다.임천덕은 순간 당황했다. 이건 명백한 만성 독약인데, 백생단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귀의문의 역대 종사들은 독약을 연구하는 데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전혀 열의가 없었다.한지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천덕은 대답을 망설이다 결국 떠듬거리며 말했다.“그, 그것이... 이 약을 복용하면 부패한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살이 돋아나며, 오장을 보양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어서 백생단이라 부릅니다!”“임 문주, 이렇게 좋은 약이라면 문주께서도 하나 드셔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한지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약환을 들고 임천덕을 바라보았다.“아, 아뇨!”임천덕은 두 손을 흔들며 급히 말했다.“이 약은 너무나 귀해서 제가 먹으면 낭비일 뿐입니다! 필요한 분께 써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갑자기 임천덕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으며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임천덕, 정말 내가 의술에 대해 모를 줄 알았나? 이 약의 냄새가 이토록 비릿한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독성이 섞인 것이지?”“아, 아뇨! 한지훈 선생님, 오해십니다! 저희
한지훈은 손을 가볍게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에이, 사람이 이렇게 선의로 다가오는데, 우리가 너무 차갑게 대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임 문주?”임천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염려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진료하겠습니다!”그는 한지훈의 맞은편에 앉아 손을 뻗어 맥을 짚기 시작했다.약 오 분 정도 지나, 임천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제 진단에 따르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상처가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오장육부에 손상이 갔습니다. 만약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한지훈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오? 제 상처가 그렇게 심각합니까? 얼마나 심한 상태란 말이죠? 치료를 미루면 어떻게 됩니까?”“그게... 치료를 미루면 오장이 손상되어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임천덕은 신중한 척하며 답했다.하지만 그의 말은 전부 허풍이었고, 그는 한지훈이 의술에 무지하리라 믿고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알지 못했다.한지훈 앞에서 그의 의술은 고사하고 황약사조차도 한 수 접어야 할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말이다! 천생서문에는 만 가지 학문이 담겨 있었으며, 의술은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게다가 한지훈은 본래 의술에 관심이 많아, 용국군에서도 ‘신의’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었다.천생서문의 여러 학문 중에서도 한지훈이 가장 정통한 분야는 바로 의학이었다.“아이고, 이렇게 위험할 줄이야! 임 문주께서 제때 와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직도 무지한 채로 있을 뻔했군요. 오늘 아침만 해도 며칠 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한지훈이 이런 말을 하자, 도청전인은 다급해지며 황급히 손을 저었다.“한지훈 선생님, 이런 자의 말만 믿어선 안 됩니다. 비록 제가 부족하지만, 의학에 조금 식견이 있으니, 제가 직접 진맥을 해보겠습니다!”하지만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선생님, 저희
문에 들어서자마자, 임천덕은 한마디 말도 없이 두 제자의 뺨을 연달아 갈기고는 한지훈의 발치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아직도 뭐 하고 있느냐! 어서 한지훈 선생님께 무릎 꿇고 사죄드려라!”그러자 한지훈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됐습니다. 저도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니, 그냥 그들을 내버려두십시오.”“어서 한지훈 선생님의 너그러운 은혜에 감사드려라!”임천덕이 제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한지훈 선생님의 관대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두 제자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 물러났다. 두 사람이 떠난 뒤, 임천덕은 한지훈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평소 문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제자들이 감히 한지훈 선생님을 모독하는 불경을 저질렀습니다!”“괜찮습니다, 임 문주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한지훈은 손을 휘저으며 미소를 띠고 물었다.임천덕은 도청전인을 힐끔 쳐다보더니 잠시 머뭇거렸고, 다시 한지훈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한지훈 선생님, 사실 요 몇 년간 특히 젊은 세대 가운데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이는 다름 아닌 한지훈 선생님이십니다!”“무엇보다 한지훈 선생님께서 친히 파용군을 이끄시어 오국 연합군을 격파한 그 업적은, 용국의 국경을 수호하신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위대한 공로입니다!”한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임천덕을 바라보았다.이 늙은이는 말만 열었다 하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군, 이런 자일수록 더욱 경계해야 하는 법!“며칠 전, 제가 강중 지역을 지나던 중 라이언 킹 찰리가 한지훈 선생님께 도전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필 얼마 전, 한지훈 선생님께서 청봉문에서 부상을 입지 않으셨습니까!”“제가 알기로 이 찰리라는 자는 내력이 대단하며, 아시란치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래서 한지훈 선생님의 상태를 염려하여 이렇게 진료를 도와드리려 온 것입니다. 제 의술은 변변찮습니다만, 그래도 귀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지훈 선생님께 조금이
한지훈은 그들을 다시 볼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며, 천검종의 두 제자에게 담담히 말했다.“앞으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쫓아내라. 나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다.”말을 마친 그는 다시 별장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임천덕의 두 제자는 풀이 죽은 모습을 하고 돌아와 임천덕에게 울며 하소연을 했다.그러자 노 씨 어르신은 반쯤 감긴 눈으로 둘을 훑어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쓸모없는 놈들! 이런 네놈들의 태도에 한지훈이 어찌 고분고분 따를 거란 말이냐!"노 씨 어르신이 화를 내자 임천덕이 앞으로 나와 다급히 말했다. “노 씨 어르신, 진정하십시오. 제가 직접 가서 반드시 한지훈이 고분고분 따르게 만들겠습니다!”그렇게 말하며 그는 두 제자를 흘겨보고 소리쳤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당장 따라와라!”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임천덕의 뒤를 따라 한지훈의 별장 앞에 다시 도착했다.별장 입구에 있던 천검종의 제자 두 명은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자 눈썹을 치켜세우며 칼자루를 움켜쥐고 차갑게 말했다. “보아하니 아까 준 교훈이 부족했나 보군!”“아뇨, 아닙니다! 두 분은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저는 임덕천이라고 하고, 특별히 한지훈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임천덕은 상냥하고 공손한 태도로 두 천검종 제자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지 못하는 법.게다가 임천덕은 어쨌든 귀의문 문주로서 나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천검종 제자들도 함부로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의 두 제자와는 다르게 임천덕은 상황 판단이 빨랐으며 처음부터 태도에서 격식과 진지함이 느껴졌다.“너희 둘, 당장 이리 와라!”임천덕이 뒤에 있던 두 제자를 향해 소리치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은 얼굴로 다가갔다. “두 분께 사과드려라!”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며 임천덕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하지만 그들이 주저하는 사이, 임천덕이 그들의 뺨을 갈겼다. “귀가 먹었느냐?!”임천덕이 또다시 호통을 치자,
필경 상대방의 신분을 알지는 못했기에, 제자들은 냅다 경솔하게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키 큰 남자는 여전히 실눈을 뜨고는 고개까지 쳐든 채 얄미운 표정으로 그들을 도발하였다. “얼른 나와서 우리를 맞이하라고 해! 우린 귀의 임천덕 문주의 제자들이거든!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한지훈 사령관이 곧 용국 무종의 체면이 걸린 찰리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기에 특별히 직접 나서서 상처를 치료해 주겠다고 하셨거든!”“사실 우리 사부님은 이렇게 쉽게 주동적으로 나서서 은혜를 베풀지는 않으셔! 이번에는 오직 무종을 위해서 나서신 거지. 무려 우리 사부님의 치료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해!”키 큰 남자는 거만한 표정을 한 채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천검종의 제자 두 명은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암만 생각해도 그들이 감히 사사로이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아 이내 급히 별장으로 달려가 한지훈에게 보고하였다. “한 선생님, 별장 앞에 두 중년 남자가 찾아왔는데 귀의 임천덕의 문하생들이라고 합니다.” “귀의 임천덕이 직접 하산하여 한 선생님의 상처를 치료하러 왔다고, 선생님더러 얼른 나와서 자신들을 맞이하라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임천덕은 무종의 체면을 위해서 이번에 특별히 나서려고 한답니다!”‘뭐? 임천덕?’ 한지훈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지만, 도청 전인에게는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실 임천덕은 오래전부터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을 구한다면 기본적으로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긴 했지만, 반면 누군가 독극물을 먹고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열 건 중 아홉 건을 흔히 임천덕의 짓으로 의심하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달려와서 한지훈의 상처를 치료한다니. “주상, 이 사람은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맹의 편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차라리...”도청 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이미 예상이 갔다. 그는 노 씨 어르신이 보낸 살인자라는
그 말을 들은 임천덕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 ‘목숨을 살리는 게 아니라 끊으라고?’ “그건... 어렵진 않긴 한데, 어르신께서 그렇게까지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여전히 어리둥절했던 임천덕은, 노 씨 어르신이 자신을 강중으로 부른 목적을 알지 못했다. 임천덕은 사람을 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확실히 황약사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죽이는 건 아예 다른 일이었다. “사실...”이내 노 씨 어르신은 한지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고, 또 라이언 킹 찰리와 한지훈의 결전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었다. 자초지종을 듣게 된 임천덕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한동안 깊이 생각에 잠긴 후에야, 고개를 들어 말했다. “어르신, 그럼 저더러 독을 넣으라는 것입니까?”그러자 노 씨 어르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임천덕을 노려보았다. “뭔 소리 하는 거야! 난 엄연히 무맹 장로인데, 어떻게 그렇게나 일을 추잡하게 진행할 수가 있어?” “게다가 라이언 킹 찰리는 이방인이야. 이방인이 우리 용국 공신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미는데 내가 어찌 용국 공신에게 독을 먹일 수가 있냐고! 너 날 대체 뭐로 보는 거야?”쉿! 노 씨 어르신으로부터 제대로 혼쭐이 난 임천덕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르신, 그... 그럼 대체 어떻게 진행하실 심산인 겁니까?”노 씨 어르신은 침착한 표정으로 임천덕을 힐끗 보며 말했다. “전에 낙구영과 한번 대결을 치르는 과정에 한지훈이 부상을 입게 됐어. 아마 결전 전에는 어떻게든 반드시 상처를 치료하려 할 거야. 하지만... 상처라고 모두 다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내 말 알겠지?”눈을 깜박거리던 임천덕은 한참을 궁리하고 나서야 노 씨 어르신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젠장... 그 말은 즉 한지훈한테 독을 내려라는 거 아니야?’ “하지만 결전 당일 전까지 한지훈은 죽으면 안 돼, 알겠어?”노 씨 어르신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즉 노 씨 어르신
노 씨 어르신은 음흉한 표정을 한 채 이를 갈며 말했다. “안됩니다, 선생님! 찰리님의 뜻을 오해하지는 마세요. 결투하기 전까지, 절대 한지훈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혹여 죽게 되더라도 찰리님의 손에 죽어야 합니다!”로말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 이유는 이번 결투는 찰리의 미래 인생이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한지훈이 찰리의 손에서 죽지 않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노 씨 어르신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다면 찰리 선생한테 이 말을 꼭 전해줘. 그가 원하는 대로, 결투 그날 반드시 한지훈을 죽여달라고!”그제야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이내 서로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뒤이어 로말은 자리를 떠났고, 노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방 안을 몇 바퀴씩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그는 갑자기 약왕파 황약사를 떠올렸다. 그러나 거듭된 고민 끝에 그는 생각을 접었다. 만약 황약사가 한지훈을 상대할 수 있었다면, 한지훈은 진작에 그의 손에 죽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황약사 또한 무맹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강자는 아니었다. 필경 무적천과는 동급의 강자였으니까. 노 씨 어르신은 어쩔 수 없이 생각을 접고는 성내의 다른 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문득, 귀의 임천덕이 떠올랐다. 귀의문은 무종 중에서도 무도 패륜이라고 불리는 작은 문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귀의문 역시 만만치 않은 강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나 그들은 독극물을 잘 이용하고 의술도 능통했다. 게다가 약왕파 다음으로, 의도로 문파를 세운 종문이었다. 이내 노 씨 어르신은 급히 휴대폰을 꺼내 귀의문의 문주인 임천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평소에 명성이 극히 나쁘기로 유명했던 임천덕이, 무려 노 씨 어르신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 건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격이었다. 무맹은 단지 민간 조직일 뿐이긴 하지만, 그 지위는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노 씨 어르신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귀의문의 미래도
한편 그 시각 강중의 한 스위트 룸에서는, 금발을 한 한 30대의 남자가 어린 모델 두 명을 껴안고는 입에는 담배를 문 채, 옆에 있는 백인 남자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뭐? 그 한지훈이라는 놈이 무맹 사람들한테까지 미움을 샀단 말이야?”이 금발의 남자가 바로 라이언 킹 찰리였다. 그가 이번에 강중으로 온 것은 바로 한지훈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일단 한지훈에게 손을 대지 않고 먼저 다른 몇 명의 용국 종문 장교나 문주들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모두 한지훈에게 덮어씌울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지훈은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될 테고, 무종도 한지훈을 놓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뜻밖에도 한지훈이 이미 무맹의 미움을 사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다 된 밥상에 누군가가 숟가락을 얹어준 셈이었다. “찰리, 저희 이번 기회를 아주 잘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무맹 쪽과 연락할 방법을 찾아보려고요!”백인 남자는 라이언 킹 찰리의 곁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당장 무맹에 연락해서 내가 곧 3일 후에 한지훈과 결투를 하게 될 거라고 전달해! 만약 그가 감히 도망치려 한다면, 무종 전체는 전멸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거야!”이내 찰리는 손에 든 물컵을 깨뜨리며 환호하였다. “네!”백인 남자는 짧은 대답과 함께 돌아서서는 스위트 룸을 나섰다. 아시란치 가문의 자손으로서 라이언 킹 찰리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격을 차리는 걸 중시했었다. 전에 서효양을 암살하러 갈 때도 그는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였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 기회에 한지훈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그야말로 최고의 업적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 명예를 안고 유럽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온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그에게 있어 권력과 명예는, 아시란치 가문의 명예보다도 훨씬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절했던 건, 한지훈의 몸에 있는 하나의 용심이었다. 용심만 되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