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우리와 계약한다고? 확실해?”강준상이 눈을 크게 뜨며 재차 확인했다.이 시점에 강운에 손을 내미는 기업이 있다고?이는 대놓고 길정우 중장에게 반기를 드는 것과 다름없었다.다른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 눈치만 살폈다.하지만 이건 기회가 틀림없었다.사람들은 기업 대표들을 움직인 배후가 궁금했다.“설마 우리 강운에 숨겨둔 귀인이 있었던 겁니까? 길 중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우리랑 계약하려는 회사가 나타나다니요!”“귀인이 나타난 게 틀림없네요! 길조가 들었나 봅니다!”“빨리 나가서 만나봅시다!”사람들은 다급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강준상도 강문복의 부축을 받으며 로비로 나왔다.열 명이 넘는 기업 대표들이 긴장한 얼굴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육 대표, 왕 대표, 이게 무슨….”강준상은 아는 얼굴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전부 S시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업의 대표들이었다.평소에 강준상이 만나서 차 한잔 하자고 그렇게 초대를 보내도 거절하던 사람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회사로 찾아와서 계약을 제안한 상황!강준상은 흥분을 금치 못하며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주 대표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강준상에게 말했다.“강 회장님은 참 복도 많아요. 이한승 회장님과 이렇게 두터운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는 이한승 회장님의 지시를 받고 강운에 거래를 제안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여기 계약서와 투자계획이 든 서류가 있으니 검토해 보시고 문제없으면 사인하시죠.”뭐라고?이안그룹 이한승?사람들을 그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모두가 궁금했던 귀인이 S시 재계 1위 이한승 회장이었다니! 망해가는 회사를 되살리고 4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전설의 인물이었다.강준상은 흥분을 금치 못하며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사인까지 마쳤다.지금 이 순간 강준상은 모든 게 꿈만 같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강문복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한승 회장님께서 왜 갑자기 우리 회사를 돕
말을 마친 주 대표 일행은 뒤돌아서 자리를 떴다.이게 전부 한지훈 덕분이라고?직장도 없이 백수 생활을 하는 그 녀석이?믿기지 않았다.강준상은 다급히 주 대표를 쫓아가서 물었다.“주 대표님, 그게 사실입니까? 이한승 회장님께서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한지훈 그 버러지를 위해 우리를 돕는다고요?”주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영감님, 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한승 회장님은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는 한지훈 씨와 이 회장님 둘만 아는 비밀이 있겠죠. 그럼 저는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주 대표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로비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한지훈? 그 인간이 이한승 회장과 무슨 사이지?”강희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강문복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계획했던 일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그는 서둘러 강준상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아버지, 아직은 안심하기 이릅니다. 상대는 길정우 중장이에요. 3일 뒤면 군단장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이 회장이 아무리 힘이 있어도 군인 장교와 비교할 수는 없죠! 게다가 이한승과 한지훈이 정확히 무슨 사이인지 밝혀지지도 않았잖아요. 이건 확실히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요.”강준상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일단 선물 좀 준비해서 나랑 병원에 좀 다녀오자꾸나.”“할아버지! 안 돼요! 할아버지는 우리 가문 가주이신데 어찌 어린 강우연의 병문안을 가시려고 그래요? 이런 일은 저와 아버지한테 맡기세요.”강희연이 다급히 말했다.강준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너희끼리 다녀와. 한지훈이 이 회장이랑 무슨 관계인지 자세히 알아내. 이 녀석 우리한테 뭔가 숨기는 게 많아.”강희연과 강문복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재빨리 회사를 떠나 대충 선물을 고른 뒤, 병원으로 향했다.그 시각, 한지훈은 고운이를 병실에 데려간 뒤, 과일을 사러 밖으로 나
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이 거물들이 다 지훈 씨 때문에 온 거라고요?'게다가 이한승이라면, S시의 갑부가 아니던가. 이런 대단한 사람이 한지훈 때문에 강씨 집안을 돕는다니. 이건 대놓고 길정우네 집안과 맞서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거나 다름없었다.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한지훈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대체 한지훈은 뭘 숨기고 있는 걸까?한민학과 친구라고 했을 때는 같은 직군이라 특별 대우를 했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이한승과도 인연이 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강우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강문복을 바라보았다."큰아버지, 사실은 저도 잘 몰라요. 지훈 씨가 말해주지 않았거든요."그 말을 들은 강문복이 웃으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오면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자꾸나."강학주와 서경희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도 퍽 의심스러운 눈치였다.강학주가 물었다."형님, 이한승 회장이 친히 사람을 보내 우리 강운그룹과의 협력 의사를 전했다는 게 정말입니까? 게다가 그게 한지훈 때문이라고요?"강문복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니까. 그래서 확인차 어르신이 우리를 보낸 거 아니겠어. 만약 한지훈이 정말 그분과 특별한 사이라면, 이 소중한 기회를 잘 이용해야지, 안 그래?"그러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서경희가 중얼거렸다."권력도 힘도 다 잃은 무능한 녀석에게 그런 재주가 있을 리 없잖아.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지."비록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으나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인형을 갖고 놀던 한고운이 사람들한테 다가왔다. 조막만 한 머리를 갸웃거린 아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엉첨나게 큰 건물도 샀고 나쁜 사람들도 쫓아냈어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그러자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눈살을 찌푸린 서경희가 비아냥거렸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이 되바
"그것참 아쉽게 됐군. 우리도 어르신이 잘 알아보라고 하셔서 온 거야. 볼일 끝났으니 우린 이만 가봐야겠어."곧바로 태세를 전환한 강문복은 바로 강희연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났다. 불과 2분 사이에 그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강학주가 그들을 배웅하려 했으나 서경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제지했다."당신이 가서 뭐 하게? 배웅이라도 해주려고? 저 사람들 표정 안 보여? 그냥 여기 있어!"서경희가 한지훈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비웃었다."능력은 변변찮으나 이번 일은 잘 해결했다. 더는 이 일로 따지지 않으마. 하지만 3일 뒤면 길정우 중장의 진급 축하 연회가 열린다는 걸 잊지 말거라. 길씨 가문과의 문제는 해결했어? 우리한테 피해를 주면 가만있지 않겠어!""맞아, 아직 제일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고. 한지훈, 해결 못 할 거 같으면 고분고분 사죄드리러 가는 게 어때?"강신도 맞장구를 쳤다.한지훈이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마음 놓으세요. 잘 해결될 겁니다."짧게 코웃음 친 서경희가 몸을 돌렸다.강우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학주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어 강학주도 서경희를 따라 병실을 벗어났다.이제 병실에 남은 사람이라곤 한지훈과 강우연, 그리고 옆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는 한고운뿐이었다.강우연이 다시 한번 물었다."정말 이한승 회장님과 아무 사이 아니에요?"강우연을 자리에 앉힌 한지훈이 대답했다."특별할 거 없는 사이야. 자꾸 이상한 상상 하지 말고, 이리 와서 내가 깎아주는 사과나 먹어.""아빠, 나도 사과 먹고 싶어."장난감을 품에 안은 아이가 한지훈의 품에 덥석 안겼다.부드럽게 미소 지은 한지훈이 아이의 코를 아프지 않게 쥐었다."그래, 우리 딸한테도 깎아줘야지."늦은 저녁 용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용일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총사령관님,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직접 오셔서 확인하시겠습니까?"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강우연을 흘끔거린 한지운이 대답했다."알았어. 곧 가지
사람들이 불안과 의혹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용일은 성큼성큼 회의실로 들어섰다. 몸에 두른 살기가 회의실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눌렀다.그는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자신의 살기를 거침없이 내뿜었다. 덕분에 방 안의 사람들은 몸을 벌벌 떨며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있어야 했다.이윽고 사람들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날카로운 분위기만으로도 그가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용일이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도 착석하는 대신 정도현의 반대편에 섰다."용일이라고 합니다. 절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알면 그만이니까요."그러자 용일에게 바싹 다가간 정도현이 사람들의 정보가 적힌 파일을 공손하게 건넸다.무표정하게 자료들을 훑어본 용일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당신들을 이 자리에 부른 건, 길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헛숨을 들이켰다.어떤 이들은 화를 내며 책상을 내려쳤다. 그 중 한 사람이 정도현에게 손가락질했다."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우리를 부른 게 저런 이유 때문이라고? 정체도 불분명한 자의 말 한마디에 길 씨길 씨 집안과의 협력을 끊으라니. 당신 미쳤어? 3일 뒤면 길정우가 군단장이 되는 것도 몰라?"한 사람이 반박하자 모두 맞장구를 쳤다."오늘 일은 절대 좌시하지 않겠어. 따로 해명하지 않는다면 당장 길정우 중장에게 보고할 테니 당신이 알아서 책임져!""뭐 이런 개판이 다 있나. 모두 이만 물러가자고."방금 항의했던 중년 남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가 문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 굉음과 함께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남성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그의 미간에 총이 겨눠진 것이다.문밖에는 이미 중무장한 군인 수십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의 총구가 그 남성에게 향했다.제 이마에 총을 겨눈 자의 차림새를 슬쩍 곁눈질한 남성이 다시 한번 경악했다. 그 군인의 직급은 다름 아닌 중
용일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좋은 질문이군요. 그렇지만 그 집안이 제게 실수를 한 건 아닙니다."자신들이 오해했겠거니 싶었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했다."길씨 가문은 제 형님, 즉 저희 보스의 눈 밖에 난 겁니다."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은 이들은 또다시 놀란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다. 그들의 얼굴은 아예 공포로 물들었다.용일은 좌중에 폭탄을 던진 거나 다름없었다.'길씨 가문에서 이 집단의 보스를 건드렸다고?'현재 중장이 문밖에서 경호하고 있었으니,회의실에 있는 용일은 대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의 형님이라는 자의 직급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길씨 가문이 그런 보스의 눈 밖에 나다니.사람들은 호흡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용일이 언급한 보스라는 사람은 대단한 권력을 손에 거머쥔 높으신 분이 틀림없었다. 그런 사람의 미움을 사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선생님, 혹 직책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겨우 용기를 낸 누군가가 물었다.그러자 용일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용국 북양구 장군, 용일입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회의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나름 이 지방에서 알아주는 거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용일에게 무릎을 꿇었다.사람들은 바닥에 머리를 파묻을 기세로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떨어야 했다.북양구 출신이었다니! 용국 북양구의 장군이라니!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보스는 현재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용국 북양구 최연소 총사령관일 터였다.드디어 보스의 정체를 알아낸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북양구 총사령관이 이곳 오군에 납시셨다니.당연하게도 길 씨 집안은 북양구 총사령관의 미움을 산 것이다. 자그마치 삼십만 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사람이었다...이 지방의 거물들도 그에게는 한낱 개미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평소라면 한껏 거들먹거리며 존재감을 뽐냈을 이들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총사령관을 향해 바닥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슬쩍 고개까지 들어가며 총사령관의 얼굴을 확인하려 애썼다.그러나 캐주얼 차림으로 태연하게 상석에 자리한 남자를 마주한 그들은 벙찔 수밖에 없었다.이 사람이... 소문으로만 듣던 북양구 총사령관이라고?이렇게 평범한 차림으로 나타나도 되는 건가?적어도 화려한 청색 무늬 전포쯤은 입어줘야 하지 않나?그런데 이 사람, 어딘가 낯익었다."한지훈? 한씨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한지훈?"무릎을 꿇고 있던 이들 중, 한지훈의 정체를 눈치챈 자가 그를 가리키며 경악했다.상석에 앉은 한지훈이 팔짱을 끼며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바로 그 순간, 허리춤에서 총을 뽑아 든 용일이 그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탕,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그 사람이 피 웅덩이 속에 털썩 쓰러졌다."총사령관님께 불경한 죄,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차갑게 일갈한 용일이 다시 총을 거뒀다.혼비백산한 사람들은 바닥에서 몸을 덜덜 떨어댔다.그들은 현재 패닉상태에 빠졌다. 한지훈이 정말 북양구 총사령관이라고?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그렇다면 길씨 가문의 운명은 어찌 된단 말인가?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상석에 앉은 한지훈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무감하게 쳐다보았다. 이어 싸늘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내 요구는 하나다. 3일 뒤, 길씨 가문 길정우의 진급 연회에서 그 집안과 일체 협력을 중단할 것을 선포하도록. 할 수 있겠나?"다들 머리를 조아리느라 정신이 없었으니,한지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을 리 없었다.그들은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예예, 잘 알겠습니다. 반드시 총사령관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그제야 한지훈이 살벌한 기운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여러분들의 도움은 절대 잊지 않겠다. 이 일이 끝나면 이한승이 협력을 제안할 거다."말을 마친 한지훈은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용일이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정도현은 마침내 제대로 숨을
말을 마친 강우연이 떠날 준비를 했다. 한지훈은 그녀를 회사에 데려다줄 수밖에 없었다.집에 돌아온 그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기로 마음먹었다.요 며칠 아이가 놀이공원을 부르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한 한지훈은 아이를 데리고 오군에서 규모가 가장 큰 놀이공원으로 향했다.화려한 놀이공원을 쭉 훑어본 아이는 좋아서 방방 뛰었다. 행복한 미소를 지은 아이가 한지훈의 볼에 뽀뽀했다."아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아이의 오뚝한 코를 툭 건드린 한지훈이 말했다."가자, 아빠랑 신나게 놀아야지!""와아-"한고운이 잔뜩 신나서 작은 손을 파닥거렸다.두 사람은 곧 인파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한 시간 뒤, 두 사람은 휴식 구역에 들어섰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한지훈이 말했다."고운아,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야 해?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 올게."아이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귀여운 토끼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옅게 미소 지은 한지훈은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에게 잠시 아이를 지켜봐 달라고 부탁한 뒤 편의점에 들어갔다.바로 이때, 손에 문신을 새긴 젊은 남성 두 명이 두리번거리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다짜고짜 아이를 번쩍 안아 든 두 사람은 재빨리 도망쳤다.기겁한 한고운은 힘껏 소리치며 반항했다."아빠! 아빠!"지켜보던 아주머니도 혼비백산하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아이가... 아이가 유괴됐어요!"그 소리를 들은 한지훈은 아이스크림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아주머니가 절박하게 외쳤다."검은 옷을 입고 선캡을 쓴 남자 두 명이 당신의 아이를 데려갔어요! 손에는 문신도 있었고요..."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한지훈이 씨근덕거렸다. 남자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사람들이 하도 많아 작은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이를 유괴한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람들 틈에 숨어들 수 있었다.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한지훈이 용일에게 전화를 걸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명령했다."당장 도시를 봉쇄하라고 한민학에게 전달해. 누군가
곧이어 한 노인이 안에서 걸어 나와 정원 문을 활짝 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하고 나서야 낙 선생을 정원 안으로 모셨다. “지금 당장 날 정로한테로 모셔!”낙 선생은 다급한 어조로 본론을 꺼냈다. “네, 저를 따라오시죠. 정로께서는 마당 뒤편에서 차를 마시고 계십니다!”이내 노인은 낙 선생을 데리고 뒤뜰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한 백발의 노인이 정자 앞에서 한가롭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고서 한 권을 든 채 차를 마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로님! 큰일 났어요!”낙 선생은 자신이 그토록 찾던 노인을 만나자마자 황급히 앞으로 달려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왜 너답지 않게 이렇게까지 당황한 건데? 설마 신군이 뭔가 눈치라도 챈 거야?”정로는 침착한 표정으로 낙 선생을 쳐다보았다. “아니요, 신군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그저께, 저는 정로님의 뜻에 따라 강만용을 제거하자고 국왕을 설득해 봤습니다. 그런데 국왕이 약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는, 저더러 강만용의 고택으로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정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어. 어찌 됐든 강만용은 용각의 각인이었기에 네가 단 한두 마디로 그들을 단번에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건 아니야!”“하지만 그렇게까지 당황할 필요는 없어. 계획한 대로만 천천히 실행하면 돼. 어차피 그 늙은이들, 오래 살지도 못할 거야!”하지만 낙 선생은 여전히 난감한 안색을 보였다. “정로님, 사실 그게 아니라... 제가 만일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허연생과 장문로를 파견하여, 만약 한지훈이 나타나게 되면 한지훈도 처단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그런데...”“그런데 뭐?”정로는 허연생의 이름을 듣고는 순간 얼굴색이 변했다. “그런데... 허연생은 한지훈의 손에 죽게 되었고, 게다가 장문로의 시체는 지금 찾을 수도 없습니다!”큰 자책감이 든 낙 선생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예상치 못한 소식에
이내 한지훈은 손을 흔들며 남은 집행 대원들더러 이젠 자리를 떠나도 된다고 하였다. 그제야 집행 대원들은 죽음의 절벽에서 돌아온 것 마냥 급히 일어나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들은 장문로의 시체를 수습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집법 대원들이 멀리 떠나고 나서야 한지훈은 강만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강로 님, 더 이상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신로님과 함께 저를 따라 강중으로 돌아가시죠!”‘강중으로 돌아가자고?’ 강만용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국왕의 명령을 받들고 온 장문로가 이곳에서 죽게 된 이상, 언젠가 다시금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이 상황에 집을 옮기면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면, 나중에 잡혔다가는 오히려 더 큰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한지훈, 걱정해 준 건 고마워. 하지만 만약 나와 신로 모두 온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가게 된다면, 국왕은 오히려 더욱 의심을 품게 될 거야... 장문로가 이렇게 죽게 된 이상, 내가 보기에 국왕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난 너를 따라 강중으로 돌아갈 수 없어!”“하지만, 나의 이 어린 손자는 네가 대신 잘 돌봐줬으면 좋겠어!”강만용은 이내 그 일곱 살 난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강만용의 허벅지를 꼭 안은 채 무슨 말을 해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자현아, 말 들어!”강만용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지훈은 평소 강만용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가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 이상, 그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강자현을 데리고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신 씨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신한국은 강만용과 같은 태도를 보였고, 자신의 손자 두 명을 한지훈에게 맡기고는 본인은 계속하여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렇게 한지훈은 어쩔 수 없이 세 아이를 데리고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또한 용운에게,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안배하여 시시각각 강 씨 집
일곱 살짜리 아이를 고문하고는 아이의 피부까지 벗겨낼 생각을 하는 놈을, 어딜 봐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장문로, 차라리 자결해. 아니면 넌 앞으로 죽는 것보다도 못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거야!”한지훈은 차갑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장문로를 절대 살아 돌려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강 씨 집안과 신 씨 집안의 원수에게 제대로 복수하고 싶었다. “한지훈!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강만용과 신 한국을 조사하러 온 거라고! 하지만 넌... 더 이상 북양 왕도 아니잖아!”장문로는 여전히 한지훈을 노려보며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한지훈, 됐어. 그냥 보내줘. 괜히 죽였다가 국왕이 알기라도 하면...”“강로 님, 만약 정말 국왕이 따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제가 혼자서 다 책임을 질 겁니다! 오늘 전, 반드시 이 놈을 죽일 거예요!”이내 한지훈은 머리를 돌려 용운을 불렀다. “용운!”“네!”잔뜩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용운은, 당장이라도 장문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로 이때, 장문로가 몸을 돌려 도망가려 하였다. 하지만 그는 어찌 됐든 그저 일반인이었기에, 제 아무리 빨리 도망가도 용운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채 두 걸음 내딛기도 전에, 그는 용운에게 덥석 잡히게 됐다. “장문로, 너 방금 그랬지? 이 아이 피부를 벗겨버릴 거라고. 그럼 너부터 한번 벗겨볼까?”곧이어 용운은 비수를 뽑아 들고는 장문로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너 뭐 하는 짓이야? 난 엄연히 국왕의 명령대로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뿐이야! 당장이 거 놔! 젠장, 만약 감히 네가 나를 건드리게 된다면 너희들 모두 몰살당하게 될 거야!”장문로는 목이 쉴 정도로 마지막 힘을 짜내가며 고함을 질렀지만, 이내 그의 고함소리는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소리로 변하게 됐다. 용운은 방금 말한 대로, 정말 단번에 장문로의 피부를 벗겨냈다. 엄청난 고통에 장문로는 기절
한지훈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음양존의 공격에, 순간 눈앞이 깜깜 해나면서 끝없는 환각을 느끼게 된 그 순간을. 만약 진작에 적룡심을 융합하지 않았다면, 그날 한지훈은 필연코 음양존의 손에 죽을게 뻔했다. 빛, 불, 그림자! 바로 이 세 가지 자연의 힘은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환상으로 진화될 수 있었다. 한지훈은 이미 금룡심을 융합하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진법을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이내 생각에 잠긴 한지훈은 갑자기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지훈, 더 이상 건방지게 굴지 마! 네가...”허연생이 다시금 손을 들어 한지훈을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그는 자신의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동시에 눈앞에 있던 강만용의 고택은 물론, 주위의 집법 대원들 그리고 장문로도 사라지게 됐다. 심지어 한지훈도 모습을 감추었다. 어안이 벙벙 해난 허연생은 손바닥을 높이 든 채 그저 멀뚱멀뚱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의 다섯 손가락도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 갇혀있게 됐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환상은 그 자신만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연생이 빠른 걸음으로 한지훈을 향해 돌진하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모습뿐이었다. 그들의 보기에는, 손바닥을 든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허연생의 행동이 매우 괴이해 보였다. “허 선생님, 뭐 하세요?”장문로는 마치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손바닥을 들고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허연생의 모습에 갑자기 조급 해났다. 그러나 허연생은 장문로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이때, 한지훈은 허연생의 뒤로 성큼성큼 다가와 손바닥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그러자 순간 허연생의 눈앞에 펼쳐진 환상은 사라지게 됐고, 그는 마치 끊어진 연처럼 몸이 저 멀리 날아가게 됐다. 이로서 한지훈은 처음으로 금룡심의 진법을 경험하게 됐다. 그러나 이 진법은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에너지 소
만약 이 없었더라면 한용은 지난 20년간, 무적천과 어깨를 겨누며 4성 천급 천신의 경지까지 쉽게 오를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모색하고 깨달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무적천과는 달리, 한 씨 집안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까지 손에 넣게 됐으니, 그 무엇보다도 탄탄한 백전백승의 체계를 보유하게 됐다. 능력이 진화하는 속도든, 각종 역량에 대한 장악 정도든 그들은 그 어느 하나 무적천에 뒤쳐지는 게 없었다. “너... 분명히 뭔가 숨기는 게 있어!”눈치 빠른 허연생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한지훈은 몸을 돌려 차갑게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방금 말한 대로, 난 오늘 반드시 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거야!”곧이어 한지훈은 쏜살같이 앞으로 한걸음 뛰어나와 한 주먹으로 허연생의 급소를 쳤다. 허연생은 비록 한지훈에 비해 얻은 깨달음도 적고 게다가 실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한 세대를 장악했던 강자였기에 역시나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가슴을 노리는 한지훈의 주먹을 보아낸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는 도리여 한지훈의 아랫배를 강하게 내리쳤다. “후!” 순간 한 줄기의 강한 바람과 기운이 한지훈의 급소를 공격하게 됐다. 분명 같은 주먹임에도 불구하고, 허연생이 뻗은 이 주먹은 비록 보기에는 그렇게 큰 기세는 아니었지만 힘이 매우 강했다. 그는 모든 힘을 한 주먹에 집중하여 최대한 기운을 폭발시킬 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역공격에 당황한 한지훈은 더욱 정신을 다잡고는 급히 주먹을 휘두르며 방어하였다. “팍!”그렇게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게 되었고,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그 충돌 소리는 매우 컸다. 두 강자가 뿜어낸 엄청난 기운에, 마당에 있던 바위마저도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죽어!”허연생은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다. 그러자 푸하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의 독기가 그의
‘허연생? 이 사람은 이미 30년 전에 무종에서 물러난 사람 아니야?’ 사실 허연생에게는 휘황찬란한 과거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무종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수십 개 종문의 장교 문주들을 무너뜨리고는 무신종과도 대결을 겨룬 강자였다. 당시 무적천은 매우 의기양양하게 바로 허연생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2성 현급 천왕계 밖에 다다르지 못한 무적천과는 달리, 허연생은 당시 이미 4성 천급 천왕에 다다르게 됐다. 그러나 허연생은 무적천에 의해 패배하게 되었고, 심지어 중상까지 입어 하마터면 무신종에서 참사할 뻔하기도 했다. 만약 당시 무적천이 조금이라도 힘을 주체하지 못했더라면, 허연생은 진작에 그곳에 무덤으로 남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무적천에게 패한 후로부터 허연생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줄곧 무종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동안 그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자살하여 죽었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수치심을 느끼고 자취를 감췄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오늘 예상치 못한 허연생의 출현은 한지훈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실 그는 허연생을 꺼리는 것보다도, 낙 선생의 배후에 있는 세력들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잡히지가 않아 답답했다. 그동안 3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춰온 사람을 이렇게 손쉽게 드러내는 낙 선생의 절대적인 힘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말없이 조용히 있는 한지훈의 모습에 허연생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봐, 청년. 내 명성을 듣게 된 이상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는 없겠지? 당장 무릎 꿇어!”“한지훈, 어서 비켜.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강만용은 급히 앞으로 나가 한지훈을 타일렀다. 그 또한 허연생의 명성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허연생은 그야말로 모든 경계를 막론하고도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강로 님은 그동안 용국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각로라는 칭호에 절대 부
순간 어안이 벙벙 해난 집행 대원은 떨어진 손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손목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됐다. “아악! 내 손!”이내 집행 대원이 손을 뻗어 상처를 부여잡자, 피가 미친 듯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누구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장문로도 깜짝 놀랐다. “나야!”바로 그때, 한지훈이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손으로 그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이를 풀어주면 네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줄게. 그렇지 않으면 넌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될 거야.”한지훈의 얼굴을 똑똑히 보아낸 장문로는 순간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한지훈이 더 이상 북양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장문로는 얼굴에 흉악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아, 역시나 너희 사이에 뭔가 결탁이 있긴 하나 보네! 차라리 잘 됐어. 굳이 강중까지 찾아가서 사람 잡을 일은 덜게 됐네!”“여봐라, 당장 한지훈을 치워내!” 곧이어 10여 명의 집법 대원들이 동시에 권총을 꺼내 들어 총구를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겨누었다. 필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양 왕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한지훈을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십여 자루의 권총을 마주하고도 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을 뿐, 그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크흠!”바로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검복을 입은 한 노인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지훈, 낙 선생은 진작에 네가 이렇게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어!” 노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훑어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한지훈 또한 그 노인을 훑어보았는데, 노인은 뜻밖에도 삼성 천왕계의 고수였다. 보아하니 낙 선생이 이번에 제대로 벼른 듯했다. “난 바로 낙 선생의 명령을 받들고 너를 잡으러 온 거야!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너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 좀 거칠어질 수도 있거든.” 삼성 지급 천왕계는 역시나
험상궂은 얼굴의 중년 남자는 큰 손으로 어린 남자아이의 머리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이를 악물고는 절대 울지를 않았다. “장문로! 당시 넌 용국의 여자 아이를 추행했잖아. 그때 그 아이, 겨우 16살이었어. 하지만 넌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능욕했었지!”“용국의 전관으로서 그런 짓을 벌이면 천벌을 받을 거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그런데 만약 그 당시 내가 너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다들 불공평할 거라고 생각할게 뻔하잖아?”강만용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노호하였다. 그러자 장문로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내 남자아이를 다른 한 집법 대원에게로 밀치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걸친 중산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만용, 너 지금 혹시 나를 질투하는 거야?”“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쨌든 현명하신 낙 선생이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난 지금 이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잖아. 반면 너는 비참한 미래를 앞두고 있고!”“너희들 정말 한통속이었구나! 언젠가는 고통스럽게 벌 받게 될 거야!”잔뜩 화가 난 강만용은 씩씩대며 눈을 부릅 떴지만, 장문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흥!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해. 당장 네 죄나 인정하라고!”이내 장문로는 이미 완벽하게 작성된 진술서 한 장을 강만용에게 던졌다. 위에 적힌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바로 그들 용각 삼로가 한지훈과 함께 군비를 횡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 진술서를 확인한 강만용은 크게 웃었다. “왕년에 천 평이 넘는 땅을 국가에 순순히 바친 나인데, 내가 굳이 이 몇 조원의 군비를 횡령할 이유가 있을까?” “아휴...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네. 이렇게나 간사한 놈이 용권의 정권을 잡게 놔두시다니. 정말 보는 눈도 없으시네!” 강만용이 진술서를 찢으려 하자 장문로는 바로 날카로운 칼을 꺼내 들어 단칼에 남자아이의 옷을 찢어버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만용, 너 잘 생각해. 내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중년 남자는 더 이상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얼핏 봐도 방금 전, 지독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지훈! 내...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강만용은 한지훈과 용운 두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금치 못하고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용경에서 온 한 무리의 문관들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무고하게 산채로 맞아 죽게 되는 상황에서도 강만용은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신한국의 아들인 신국호 또한 몽둥이로 수차례 얻어맞아 두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고, 심지어 피까지 많이 흘리게 되어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야말로 두 집안이 하룻밤 사이에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다. “누구예요! 대체 누굽니까? 어느 개자식이 감히 이렇게 잔인한 수를...”잔인하게 놈들의 수단에, 용운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당장이라도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에휴, 됐어. 아마도 이 늙은이가 그동안 사는 동안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느님이 날 벌하려나보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힘들었겠는데 일단 방에 가서 앉아있어!”신한국은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한지훈과 용운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강로님, 국왕께서는 대체 왜 이러시는 거랍니까? 낙 선생은 대체 또 어떤 구실로 강로 님의 가족을 건들게 된 건가요?”한지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강만용은 결국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물려받은 천 평 넘는 가택이 있는데, 낙 선생은 내가 군비를 횡령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국왕이 직접 장문로까지 파견하여 조사하게 한 거고.”“조사요?”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찬 용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조사라는 거지? 사람이 죽게 됐잖아!’ “용운아!”한지훈이 낮은 소리로 호통을 치자 용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놈들은 어젯밤, 강로 님을 끌고 가기라도 했나요?”한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