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너무 무서워. 나 이대로 죽는 거 아니지? 아빠... 아빠 보고 싶어. 나 진짜 아빠 있는 거 맞지? 나 이렇게 아프면... 아빠가 나 보러 와줄 거지? 흑흑...”눈물범벅인 얼굴의 강우연이 온통 피로 물든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꼭 부여잡았다.“그럼. 아빠 분명 오실 거야. 그러니까 우리 고운이 조금만 더 힘내자, 응?”아이를 겨우 달랜 강우연이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5년 동안 단 한 번도 걸지 않았던 그 번호를 눌렀다.“한지훈, 나... 강우연이야. 고운이가... 고운이가... 우리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어. 우리 고운이... 정말 잘못 되면 어떡하지? 지훈아, 제발... 제발 우리 고운이 보러 와주면 안 돼? 네가 너무 보고 싶대. 내가 이렇게 빌 테니까 제발 돌아와줘. 너 지금 도대체 어디 있는 건데.... 흑흑흑...”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털썩 주저앉은 강우연의 가냘픈 등이 슬픔으로 파르르 떨렸다.한편, 수화기 저편. 봉장대(封將台) 위에 서 있던 한지훈의 손이 살짝 떨렸다.눈앞에 모인 십만 병사들의 얼굴이 순간 흐릿해졌다.오늘은 10년에 한 번씩 거행되는 용국(龍國)의 봉장대전, 단 30만 명의 파용군을 이끌고 8국 연합 100만 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한지훈을 5대 구역 중 하나인 북양구 장군으로 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그 어느 때보다도 기뻐야 할 순간이지만 5년 만에 걸려온 전화를 듣는 순간, 한지훈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다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들리는 건 차가운 연결음뿐...‘안 돼...’그리고 영광스러운 순간을 바로 앞둔 그 시각, 한지훈은 수많은 대신들과 장군들이 지켜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태산을 달리고 또 달렸다.그 모습에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봉장대전, 가문의 명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광스럽고 빛나는 자리, 그 자리를 제쳐두고 어딜 가는 걸까? 그것도 저렇게 굳은 표정으로...쿠궁!가파른 산길을 빠르게 내달린 한지훈이 산발치에 세워둔
한편, K대 대학병원.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갑자기 병실에 들이닥치더니 한고운에게 응급처치를 취하고 있는 의료진들을 전부 내쫓아버렸다.다급한 마음에 강우연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당신들 뭐야! 저 사람들을 왜 내쫓아! 이러다 내 딸 진짜 죽는다고!”또각또각.저승사자의 목소리 같은 남자의 구두굽 소리가 찰나의 정적을 꿰뚫었다.곧이어 보디가드들이 홍해 갈라지 듯 양쪽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분명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입가에 걸린 서늘한 미소가 수상한 남자였다.“강우연, 어떻게? 내가 말한 조건은 좀 생각해 봤어? 이번 사고는 그냥 경고일 뿐이야. 내 말대로 그냥 나랑 몇 번만 만나. 네 딸 지금 바로 구해 줄 거니까.”남자의 말을 듣던 강우연이 고개를 홱 돌렸다.혐오와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던 강우연이 남자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부여잡았다.“김태우! 우리 고운이 사고, 네가 낸 거야? 왜! 왜 그랬어 왜! 차라리 나한테 그러지. 왜 애꿎은 애한테 그러냐고! 우리 고운이 이제 겨우 네 살이란 말이야...”가슴 터져라 소리치던 강우연이 결국 오열하며 작은 주먹으로 남자의 가슴을 내리쳤다.“이게 어디에 손을 대!”짝!거침없이 강우연의 뺨을 날린 김태우가 그녀의 가는 팔목을 꽉 부여잡았다.“강우연, 왜 이래?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내가 그 동안 들인 돈이 얼만데. 튕기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딸이 있어서 나한테 관심을 안 주는 건가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사고 냈어. 커다란 트럭이 저 조그만 애랑 부딪히는데... 어우, 내가 시킨 거지만 좀 잔인하긴 하더라.”“으아아악! 김태우, 이 악마만도 못한 자식! 이 사이코패스, 변태 자식아! 내가 너 경찰에 신고할 거야!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강우연은 있는 힘을 다해 악을 쓰며 김태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거센 따귀뿐이었다.그리고 강우연의 머리채를 꽉 부여잡은 김태우가 눈물로 범벅진 얼굴을 흥미롭다는
같은 시각, S시 공항은 완벽하게 봉쇄된 상태, 세계를 놀라게 만든 3대 신의가 동시에 도착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이에 S시 시장 소지성과 재계 1위 이안그룹 대표 이한승을 비롯한 각계 유명 인사들이 공항 VIP 휴게실에 모였다.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하여 신의 손, 화타의 환생이라고도 불리는 3대 신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 재벌그룹 회장들은 줄을 섰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의 진료비용에 몇 년 뒤로 밀려있는 웨이팅 때문에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든 인물!그런 그들이 S시를 방문했다니 어떻게든 연이 닿지 않을까 싶어 모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가장 앞에 선 소지성과 이한승이 감격에 찬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손강수 신의님, 하시윤 신의님, 이나희 신의님. 저희 S시를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지만 소지성의 인사 따위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세 사람은 초조한 얼굴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우우웅!그리고 그 순간, 군용 지프차 세 대가 총알처럼 달려오더니 군복 차림의 용육, 용칠, 용팔이 각기 차에서 내렸다.시장이니 재계 1위 그룹 회장이니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모습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시장님,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신의님들이 이렇게 떠나시다뇨. 방금 전 그 군인들은 뭡니까?”시의원 송호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소지성 시장 역시 잔뜩 굳은 표정이다.군 장교 출신인 그는 방금 전 세 군인의 차림새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북양구 파용군 소속이 왜 여기에.’“어서 사람들을 보내 저들의 움직임을 주시하세요. 단, 저들이 하는 짓을 막아선 안 됩니다. 그저 상황 보고만 하시면 되는 거예요.”소지성이 송호문에게 말했다.고개를 끄덕인 송호문이 부랴부랴 자리를 뜨려는 소지성에게 물었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딜 이렇게 급하게 가시는 거예요?”“장군님한테 가봐야겠습니다.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아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소지성은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한편, 파용군 비밀 임무 수행
“사령관님, 이제 저흰 어떡하죠? 파용군이 S시에 나타나면 상황이 복잡해질지도 모릅니다. 기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요.”홍진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한편,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침묵하던 서효양이 말했다.“어서 원로님들에게 이 사실을 아려. 그리고 참모장 자네는 직접 S시로 가봐. 최대한 빨리!”스크린을 통해 파용군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 서효양이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S시 시장 연결해. 앞으로 30분마다 S시의 상황을 보고한다. 한민학 군단장더러 직접 움직이라고 해. 이번 일 제대로 못해내면 다들 옷 벗을 각오해야 할 거야!”퍽!분노에 찬 서효양의 펀치와 함께 의자가 산산조각 났다.한편,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S시는 거센 폭풍을 앞둔 바다처럼 기이한 고요함을 풍기고 있다.S시 교외의 한 별장.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기댄 한지훈의 얼굴이 보인다.극도의 흥분과 분노로 인해 과거 전투에서 입은 내상이 다시 도져 피까지 토하며 쓰러진 한지훈이었지만 3대 신의인 손강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사령관님, 더 이렇게 흥분하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제가 아니라 정말 화타님께서 환생하신다 해도 사령관님을 구할 수 없을 겁니다.”이미 환갑을 넘긴 손강수가 금색 침을 집어넣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고맙습니다.”아직 무리를 하면 안 된다는 손강수의 말에도 한지훈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제 딸... 우리 고운이는 어떻습니까?”“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두 분께서 치료를 하고 계시니 아가씨께서도 무사히 깨어나실 겁니다.”손강수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의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듯 한지훈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섰다.터벅터벅.한고운이 누워있는 방 앞에 도착한 한지훈은 혹시나 아이가 깨어날까 훨씬 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곱게 잠든 한고운을 보니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물었다.“우리 고운이 괜찮은 거
송호문의 분노에 조명한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병원에서 신고를 받고 밤새 CCTV까지 뒤져가며 용의자들 위치를 파악했다.사망자가 워낙 많은 큰 사건이다 보니 이번 일만 깔끔하게 해결하면 특진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그런데... 칭찬은커녕 불호령이라니.‘게다가 왜... 오히려 저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눈치지?’“청장님, 저희 용의자 체포하러 온 겁니다. 전체 철수라뇨. 그게 지금 말이됩니까? 저 자식들 7명이나 죽인 흉악범들입니다!”송호문의 말에 반박하며 조명한은 한지훈 일행을 힐끗 바라보았다.‘방금 전, 내가 느꼈던 건 분명히 살기였어. 청장님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으셨다면 정말 총격전이 벌어졌을지도 몰라!’“조명한, 너 미쳤어? 네가 뭔데 나대! 너만 경찰이야? 너만 경찰이냐고! 좋게 말할 때 당장 철수해, 알겠어?”송호문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시장님 특별 지시란 말이다, 이 자식아! 너나, 나나 자리 보전하고 싶으면 제발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고!’비록 송호문 본인도 한지훈의 진짜 정체는 물론, S시까지 온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소지성 시장을 그렇게까지 벌벌 떨게 만들 사람이라면 결코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죄송합니다.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군요. 정의감에 심취한 경찰이 일으킨 해프닝 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송호문은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애를 썼지만 한지훈의 차가운 얼굴에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려오기 시작했다.정말 강제 진압이 진행되기 전에 달려왔으니 망정이지 단 몇 초라도 늦었더라면 조명한을 비롯한 경찰특공대 팀 전체가 전멸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며 두려움은 점점 더 몸집을 키워나갔다.이때 한지훈 대신 용일이 앞으로 한발 나서며 비아냥거렸다.“하, 일개 경찰특공대가 이런 짓을 벌여요? 정말 미치신 겁니까?”분명 존댓말이지만 단어 하나하나 사이에 박혀있는
바로 전화를 끊은 한지훈의 주위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긴 다리를 번쩍 들어 지프차에 탄 한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난 북양 총사령관 자리를 포기한다. 앞으로 난 군과 그 어떤 관련도 없는 민간인이야. 그리고 신룡전 애들한테 전해. 최대한 빨리 S시로 이동한다. 그리고 용오, 용육, 용칠, 용팔. 너희들은 산장에 남는다.”“사령관님, 정말 전역하실 겁니까?”용일이 다급하게 물었다. 북양왕, 현 시대의 가장 뛰어난 명장, 용국의 상징이자 8대 용장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 이대로 모든 걸 버린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앞섰다.“그래. 이미 결정한 일이니 더 이상 토달지 마. 타워 팰리스로 출발한다.”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한 한지훈이 거세게 엑셀을 밟았다.‘우연아, 조금만 참아. 내가 곧 갈게. 이제부터 넌 내가 지킬 거야.’이에 용일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 용일, 죽을 때까지 사령관님을 따르기로 맹세한 몸, 저도 파용군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신룡전 소속으로서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용이 역시 죽을 때까지 사령관님을 따르기로 맹세한 몸, 저도 파용군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신룡전 소속으로서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뒤이어 용일부터 용팔까지 모든 8대 용장이 파용군의 직책을 내려놓고 오로지 신룡전의 8대 용장으로서 한지훈을 보좌하기로 선포한다.신룡전, 비록 파용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간 비밀 조직일 뿐, 공식적으로 군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곳, 국가가 아닌 오직 한지훈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모인 곳이기도 했다.힘들 결정일 텐데 기꺼이 그의 뜻에 따라준 8대 용장을 바라보던 한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용국의 가장 신비로운 곳, 용각.경계가 삼엄한 내각 대청의 원탁에 네 명의 중년 남자가 앉아있다.전화기를 내려놓은 신한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휴, 어쩜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 게 없니. 여전히 고집불통이군.”“왜요. 저쪽에서 먼저 끊은 겁니까?”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 금테
눈물 범벅이던 강우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저 강인한 인상의 남자가... 정말 환각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맞는 건지 의심스럽기마저 했다.가장 절망스러운 순간, 5년 동안 수없이 그리워했던 그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마음과 달리 몸은 이미 이 상황을 인지한 듯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드디어... 드디어 왔네요. 드디어...”한지훈은 품에 안긴 가냘픈 그녀의 등을 내려다 보았다.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확연히 마른 몸이 그 동안의 고생을 말해 주는 듯했다.강우연의 눈물과 핏방울을 닦아주던 한지훈의 눈동자는 그녀의 총상을 발견하고 다시 차갑게 식어버렸다.심장과 단 몇 센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정말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살의가 치솟았다.“으악, 으흑흑...”한편, 김태우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양예나의 등을 다시 꾹 밟았다.비록 등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양예나는 감동의 미소와 함께 한지훈과 강우연을 바라보았다.방금 전 몇 미터나 되는 곳에서 훌쩍 뛰어내려 강우연을 구하던 그 모습, 마치 영화속 멋진 남자주인공, 동화속 왕자님처럼 비현실적이었다.그와 동시에 양예나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설마... 저 남자가 고운이 아빠?’“우연아, 드디어... 드디어 만났구나. 축하해. 이제 저 사람이랑 행복하게 살아. 다시는 이런 데 오지 말고... 영원히 행복하게...”속삭이듯 이 말을 내뱉은 양예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스르륵 눈을 감았다.“탕!”김태우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이 양예나의 두 다리를 관통했다.“꺄아악!”양예나의 비참한 비명소리가 건물을 가득 채웠다.하지만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김태우는 저 멀리 서로를 안고 있는 한지훈과 강우연을 바라보며 악을 썼다.“당장 잡아! 저 자식들 당장 내 앞으로 끌고 오라고!”저벅저벅.발걸음 소리가 건물을 가득 채우고 김
도검과 곤봉을 든 수백 명의 장정들이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그들의 기세에 강우연은 그 자리에서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도 강우연은 어깨가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며 연약한 몸으로 한지훈의 앞을 막아서 그를 보호하려 했다. 그녀는 손에 중절모를 들고 파이프를 피는 중년 남자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제 잘못이에요. 이 사람은 풀어주세요! 제가 다 책임질게요... 제발요..."다리 힘이 풀려 스르륵 쓰러지는 그녀의 어깨를 따뜻한 손이 감싸주었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가 난 얼굴을 한 한지훈을 보면서 말했다."뭐 하는 짓이에요! 김씨 가문의 김정학 어르신이에요. 어르신의 수하만 몇천 명이에요, s 시의 탑4 재력가중의 한 명이세요. 당신이 상대할 사람은 아니니 먼저 고은이를 데리고 이 자리를 떠나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한지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다정한 눈빛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리해 주면서 말했다. "자기는 내 사람이야, 내 여자가 누구 앞에 무릎 꿇고 비는 걸 볼 수 없어.""아! 삼촌... 삼촌... 살려줘요! 제발요..."피투성이가 된 김태우가 김정학을 향해 울부짖었다. 김정학은 그런 김태우를 쓸쓸한 눈빛으로 보았다. 너무나 비참한 모습을 한 조카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몸에 치솟았다."감히! 내 조카를 건드려? 죽는 게 두렵지 않나 보군?"한지훈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우연을 자기 쪽으로 끌어안으면서 말했다."당신이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이놈!"김정학의 분노한 소리에 뒤에 있던 수백 명의 수하들이 도검과 곤봉을 꽉 쥐어 올렸다. 김정학의 한마디면 한지훈과 강우연을 흔적도 없이 썰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앞에서 두 눈 똑바로 이런 말을 하는 녀석은 처음이군. 너에게 두가지 선택지를 주겠다. 하나는 무릎 꿇고 빌게 된다면 사지를 못 쓰게 만드는 거로 끝내겠어. 다른 하나는 너와 이 여자 둘 다 죽는 거야."김정학의 말을 들은
곧이어 차는 노먼 시내를 벗어나, 한 오래된 장원 앞에 도착하였다. 입구에는 수백 명의 하인과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공손히 서 있었다. 얼핏 보아 노인의 나이는 칠순은 넘어 보였지만 여전히 늠름한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나 두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을 발하기도 했다. 노인을 한 번 쓱 훑은 한지훈은, 그가 적어도 5성 용급 천왕계 강자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한 선생님, 내리시죠!”마르스는 빠른 걸음으로 차 문 앞에 다가가 한지훈을 도와 차 문을 열어주었다. 이내 한지훈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한지훈을 향해 허리 굽혀 절을 하고는 인사하였다. “한 선생님, 안녕하세요!”뒤이어 에밀리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한지훈의 팔을 잡고는 노인에게 다가가 간단한 소개를 해주었다. “한 선생님, 이분이 바로 저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러고는 노인에게도 소개해 주었다. “할아버지, 이 분이 바로 제가 방금 얘기한 한 선생님입니다!”그러자 노인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몸을 굽혀 인사를 했다. “한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것만 해도 저희 가문에게 있어 매우 영광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노인은 직접 한지훈을 데리고 장원으로 들어섰다. 곧이어 거실에 도착한 한지훈은, 주위의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보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대가문다웠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노인은 한지훈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한 선생님, 저는 하이얼 로드라고 합니다. 사실 전부터 한 선생님의 명성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매우 영광입니다!”그 말에 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전 방금 용국에서 오게 됐는데 어르신께서는 누구로부터 저의 얘기를 듣게 된 거죠?” 노인은 대답했다. “공해 사건 당시 에밀리도 그 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녀는 단지 평범한 인물일 뿐이라 한 선생님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그 말에 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슈욱!”이내 또 하나의 석궁이 한지훈에게로 날려왔고, 한지훈은 바로 손을 들어 석궁을 잡아냈다. 이내 석궁을 들고는 골목 안으로 걸어갔다. “누구야!”그러자 검은 옷의 한 남자가 머리를 돌려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매우 무거운 살기가 어려 있었다. 한지훈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석궁을 휘두르며 차갑게 웃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너희들이 알 바 아니야. 중요한 건 너희들이 날린 석궁이 하마터면 나를 다치게 할 뻔했다는 거야. 최소한 사과는 해야 하지 않겠어?”뭐라고? 그의 말에,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흉악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살기 어린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눈치 없는 놈아, 당장 꺼져! 우리 일을 방해하지나 말고. 괜히 건드렸다가는 너도 죽게 될 거야.”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는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푸! 곧바로 그 검은 옷의 남자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충격적인 장면에, 남은 사람들은 크게 놀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설마 놈들의 지원병이 벌써 도착한 건가? 그나저나... 그나저나 이 지원병의 실력은 너무나도 강한데? 한 방에 2성 현급 천왕계 강자를 짓밟아버리다니. “너 대체 누구야!”검은 옷의 무리는, 즉시 두 남녀와의 교전을 멈추고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 경각심을 가진 채 한지훈을 주시하였다. 한지훈이 그들에게 준 위협감은, 확실히 두 남녀보다는 훨씬 강했다. 그러나 한지훈은 단호하게 손을 흔들 뿐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누군지 알 필요가 없다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너희들이나 당장 꺼져!”하나같이 칼날을 잡고 있던 검은 옷의 무리는, 단호한 한지훈의 말에 달갑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방금 눈앞에서 당한 자신들의 동료를 생각하노라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게 됐다. 그렇게 검은 옷 무리가 멀리 도망갈 때까지, 남은 두 남녀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지훈은 그런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
절망적인 표정의 엘칸트는, 고개를 들어 한지훈을 바라보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이내 그는 또 고개를 돌려 필칸트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 때문에 지금 칸트 가문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이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필칸트를 다져버려 진흙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화가 가득했다. 바로 그때, 한지훈이 엘칸트를 흘겨보며 물었다. “왜, 주기 싫은 거야?!”“드릴 겁니다!”엘칸트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는 맥없이 땅에서 일어나 넋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저벅저벅 호텔을 나섰다. 그렇게 칸트 가문은 한지훈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고, 뒤이어 오늘의 생일 주인공은 자리를 떠났고 안드레는 급히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한 선생님, 이젠 일이 다 해결됐으니... 제가 모셔다드릴까요?”그러자 한지훈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마영리는 고작 흑병대의 일개 소속원일 뿐인데, 대체 그놈이 어떻게 칸트 가문과 얽히게 된 거야?”“대체 누가 그 중개자인지, 반드시 밝혀내야 해! 설령 광명파와 연관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나한테 보고하고, 용국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야 해!”그 말에 안드레는 골치가 아파놓았다. 한지훈은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사실 이번 일에 얽히게 된 가문에 대해서 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고, 게다가 유럽에서도 매우 유명한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 가문의 정체에 대해서 밝히게 되면 그 결과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안드레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필칸트가 서둘러 말했다. “한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저희 칸트 가문은 반드시 깔끔하게 이번 일을 해결할 것입니다!”한지훈은 그런 필칸트를 힐끗 훑어보았다. 사람의 태도가 정말 무서운 속도로 빨리 변하게 됐다. 얼마든지 쉽게 굴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놈들이 보증을 한 이상 한지훈은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배웅할 필요는 없어. 3일 내에 나한테 명확한 대답을 내놔!”곧이어 한지훈과 진
여인은 순간 주위의 모든 것과 단절된 듯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귀띔을 하고 나서야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황급히 따라 무릎을 꿇었다. 지금 이 순간, 유장군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났다. 마치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유럽에서 지내면서 특사라고 불리긴 했지만, 유럽은 줄곧 용국과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결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동안 그가 아부하며 모신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한지훈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줄이야. 그제야 그는 자신의 특사 신분이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지훈은 멍하니 서 있는 유장군을 힐끗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유 특사, 내가 전에 말했지. 칸트 가문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들은 반드시 순순히 우리에게 사람을 넘겨줄 것이라고.”그 말에 유장군은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칸트 가문이든 유럽 천재든, 한지훈 앞에서는 전부 무릎을 꿇어야 했다. “내가 찾는 사람은?”이내 한지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시선을 엘칸트에게로 돌렸다. 그러자 엘칸트는 급히 일어서서 말했다. “한... 한 선생님, 그분은 지금 저희 가문 장원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죠. 제가 직접 부하들과 함께 그분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죠!” 엘칸트는 고개조치 들지 못할 정도로 겸손하게 몸을 굽혔다. 그러나 한지훈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굳이 내 앞에 데려다줄 필요 없어. 그냥 사람을 보내서 바로 용국으로 돌려보내. 만약 이틀 안에 용국 흑병대가 사람을 받지 못한다면, 그 후로 유럽에는 더 이상 칸트 가문이 존재하지 않을 거야!”그 말을 들은 엘칸트의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러한 도발을 했다면, 엘칸트는 분명히 비웃었을 것이다. 필경 칸트 가문은 유럽에서 6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오래된 가문이다. 그만큼 바탕과
안드레는 단단히 화가 났다. 자신조차도 한지훈의 적수가 될 수 없는데, 그렇게나 많은 가문과 연합한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체로 죽게 될 운명뿐이다. 천신에게 있어 그 이하 강자들은 하나같이 땅강아지 같은 존재이기에,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오성 용급 천왕계이든, 진천왕이든 천신계 강자의 눈에는 그저 한 손바닥으로 끝날 일이었다. 게다가 손바닥 하나만으로도 상대에게 제대로 큰 타격을 날릴 수 있었다. “안드레... 님… 저희 유럽 귀족들이 대체 왜 용인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나요!”필칸트는 피를 토하며 달갑지 않은 듯 소리쳤다. 화가 난 안드레는 얼굴마저 검푸르게 질린 채, 필칸트의 옷깃을 잡아들고는 그의 얼굴에 바짝 붙어 큰 소리로 외쳤다. “왜 고개를 숙여야 하냐고?” “좋아, 그럼 내가 그 이유를 말해줄게. 왜냐면, 난 그들의 적수가 아니기 때문이야. 알겠어?”그 발언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모두 크게 놀란 나머지 멍해졌다. 천신계 강자인 안드레가, 눈앞의 이 용국 젊은이의 적수가 되지도 못한다니. 이는 그야말로 그들 모두의 인식을 깨뜨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몽유병에 걸린 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었다. 안드레는 줄곧 유럽의 정신적 지주이자, 더욱이는 유럽 강자들의 상징과도 같았다. 근 몇 년간 유럽이 줄곧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됐고, 심지어 이국의 일부 중대한 결책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천신계 강자가 존재한 이유 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징과도 같은 거물이 무릎을 꿇게 됐다니? 그의 말에, 필칸트 역시 자신의 정신적 지주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게 됐다. 안드레는 줄곧 그의 마음속에서 유일한 우상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제2의 안드레가 되겠다고 소원을 품고 있었다. 충격적인 이 상황에 필칸트는 미친 듯이 노호하며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다 거짓말이야!”“안드레 님, 저를 속이고 있는 거라고 제발 말씀해 주세요
황금 1000톤? 기가 막힌 요구에 필칸트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결국 고개를 들어 반박하려는 순간, 안드레로부터 따귀를 맞게 됐다. “팍!”거세게 내리친 따귀는, 필칸트의 얼굴을 찌그러뜨릴 지경이었다. 한지훈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서, 안드레는 감히 한 마디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는 결코 한지훈을 건드리고 싶지 않고, 유럽에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면 필칸트는? 뭣도 모르고 감히 남을 비웃으려 하다니? 한지훈의 말에 반박하려 하다니? 필칸트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안드레는 다시 한번 힘차게 따귀를 내려쳤다. “쾅!”결국 필칸트의 몸은 7~8미터 밖까지 날아가 돌기둥에 세게 부딪혀 아예 갈라 뜨렸다. 그렇게 그는 힘없이 땅에 쓰러지게 됐다. 연속하여 따귀를 맞게 된 필칸트는, 어느새 머리가 윙윙 울리는 듯했다. 눈앞은 별빛이 번쩍이기만 할 뿐, 더 이상 일어나지도 못했다. “네가 뭔데? 칸트 가문의 미래 샛별? 유럽의 어린 천재?” “사실이든 아니든, 난 반드시 너를 죽일 거야!”안드레는 눈을 부릅뜬 채 필칸트를 노려보았다. 한지훈의 뒤에 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진개국은, 숙연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대체 진우가 보낸 이 특파원, 정체가 뭐지? 어떤 사람이길래 안드레마저 도와서 나서냐고? 게다가 칸트 가문으로부터 미움을 살 위험을 무릅쓰고 필칸트를 반쯤 죽여놨어. 안드레는 누구나 알다시피, 명실상부한 천신계 강자잖아. 무려 세계 대전을 평정한 인물. 그런데 그런 그가, 한지훈 앞에서는 종과 같은 존재가 됐다니. 지금 이 순간, 가장 후회하는 사람은 유장군이었다. 분명 그는 한지훈을 따라 이곳에 오긴 했지만, 중도에 칸트 가문 쪽으로 이미 넘어가있었다. 심지어 칸트 가문의 편을 들기 위해 한지훈에게 무례하게 굴기까지 했다. 근데 지금은? 자신이 비위를 맞춰줬던 필칸트는 안드레에게 두드려 맞아 일어나지
유럽의 유일한 천신계 강자인 안드레도, 칸트 가문의 생일 파티에 왔다니? 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공손히 선 채 안드레에게 몸을 굽혀 절을 했다. 필칸트 또한 몸을 곧게 펴고는 안드레에게 곁눈질도 하지 않고 바로 목례를 했다. 유장군은 안드레를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유럽에서 지내면서, 안드레의 뒷모습을 멀리서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에 순간에 안드레를 직접 만나게 되자, 유장군은 흥분되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다. “한군림! 너 이젠 죽게 됐어. 설령 진우가 직접 와서 말리게 되더라도 넌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될 운명이야! 안드레 님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해?”유장군의 한 마디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지훈에게 쏠렸다. 그러나 한지훈은 뒷짐을 짊어진 채 머리를 쳐들고 오만한 표정으로 안드레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는 노예를 보는 듯한 일종의 경멸하는 눈빛이었다. 설마 진짜 죽고 싶어 환장한 건가? 사람들은 내심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편 안드레의 안색은 한껏 어두워졌다. 사실 그는 용국에서 유럽으로 향한 후, 노먼에 머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칸트 가문 족장인 윌칸트가 그를 거듭 초대한 것이다. 그렇게 안드레는 칸트의 체면을 봐서라도, 겸사겸사 칸트 가문의 생일 파티에 참가한 것이다. 그런데 방금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방금 그가 한창 커피를 마시고 있을 무렵 귓바퀴에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소리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심지어 그가 2층 방을 뛰쳐나와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에도, 하마터면 두 다리가 나른해져 무릎을 꿇을 뻔했다. 젠장! 지금으로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한지훈이었다. 그에게 있어 한지훈은 악몽 같은 존재이다. 그나저나 칸트 가문 사람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미움을 사더라도 하필 이런 거물을 건드리게 된 거야! “지금 이게 웃겨?”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필칸트를 바라
그 말에 필칸트는 멍해졌다. 눈앞의 한지훈은, 얼핏 봐도 자신의 또래로 보일 뿐인데 과연 용국에서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기나 할까? 필칸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이내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나한테 장난해? 용국이 고작 네 말만 믿고 1천 톤의 황금씩이나 꺼내 들어 사람 한명과 바꾸려 할 거라고?” 한지훈은 덤덤한 표정으로 필칸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해한 것 같네. 내 말은 칸트 가문이 용국의 반역자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받아들였으니 국제관례에 따라 우리 용국에 발생한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는 거야!”“이 천 톤의 황금이 바로, 당신들 칸트 가문이 프랑스를 대표하여 용국에 배상해야 할 손해 비용이야! 그리고 칸트 가문은 직접 용국에 사죄하고 앞으로 영원히 이런 비슷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게끔 할 거라고 보장해야 해!”그 말에 유장군의 안색은 파랗게 질렸고, 진개국조차도 깜짝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칸트 가문 사람들더러 용국에 황금 1천 톤을 배상하게끔 요구하고, 게다가 용국을 상대로 보증서까지 써야 한다고? 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멍한 표정으로 한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꼴깍!”유장군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한군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한군림은 한지훈이 유럽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에게 직접 지어준 가명이다. 그동안 한지훈은 모든 증명 서류에 이 가명을 사용하였다. “무슨 말이긴, 똑같이 사람이 한 말이잖아. 필칸트, 설마 내 말 못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한지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콜록… 바로 이때, 홀에서는 한바탕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필칸트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그가 이를 꽈악 물다 못해 울린 소리였다. 노먼의 수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날 모욕해? 역시 못되기 그지없는 용인들이야. 내가 방금 그 일성 준천신계 용인을 죽인 것도 똑똑히 봤겠는데? 그 순간, 필칸트의 온몸에서는 4
이 충격적인 장면에 깜짝 놀란 유장군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준 천왕계 강자를 상대로, 필칸트가 이렇게 손쉽게 죽일 수 있다고? 게다가 중요한 사실은 상대는 엄연히 무도 학원의 선생이라는 것이다. 이는 평범한 일성 준 천왕계 강자를 죽이는 것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내 유장군은 빠른 걸음으로 필칸트에게 다가가 더없이 열정적으로 인사를 했다. “필칸트 씨,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 허리 굽히고 고개를 숙인 유장군의 모습에 진개국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한지훈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장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선생님, 이게 대체...”그러자 한지훈은 진개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일단 따라가죠!”이내 한지훈은 홀 중앙으로 발걸음을 내디뎠고 진개국도 급히 따라갔다. 유장군은 한지훈과 진개국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허리를 굽힌 채 필칸트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갑작스레 손을 내밀자 필칸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나?” 필칸트의 표정에서는 하찮은 기색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는 엄연히 칸트 가문의 떠오르는 샛별이자, 유럽에서는 줄곧 어린 천재라는 존칭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만큼 그에게 아부하려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유장군 같은 사람은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전 용국에서 프랑스에 파견한 특사 유장군이라고 합니다!”유장군은 이를 악문 채 웃음을 보였다. 필칸트의 무시와 경멸을 마주하고도, 그는 조금도 난감해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필칸트는 뒷짐을 진 채, 유장군이 내민 악수를 받지도 않았다. 유장군은 손을 비비며 머쓱한 웃음을 드러냈다. “아무 일도 아니고요, 사실 제가 데려온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니, 동포라고 할 수 있죠. 멀지 않은 용국에서 온 사람인데...”“용건이 뭔데?” 필칸트는 유장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필칸트 선생님, 사실 그분은 명령을 받고 칸트 가문과 협상하여 마영리를 되찾기 위해 이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