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연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강우연을 포함한 직원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아니나 다를까,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서더니 그 뒤로 흰색 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고 금색 안경을 쓴 남자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그는 숨막히는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했다.그가 바로 4대천왕 중 한 명인 교구연이었다.교구연의 등장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인사했다.“형님!”유독 한지훈만 태연히 자리에 앉아 상대를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강우연과 그녀의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손에 땀이 났다.“지훈 씨, 지훈 씨, 빨리 일어나요!”강우연은 다급히 한지훈을 재촉하며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옆에 있던 직원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흘겨보았다.“젠장! 이제 끝장이야! 한지훈 저 자식은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하지? 교 사장이 왔는데 아직도 한가히 밥이나 먹고 있다니!”“이제 어떡하죠? 우리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니에요?”“다 한지훈 저놈 때문이야! 교 사장이 왔으니 이제 아무도 도망 못 가겠네….”당황한 직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교 사장님, 우린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다 한지훈 저 인간이 했어요! 저 인간이 왕호 형님에게 주먹을 휘둘렀어요. 보복을 하려면 저 인간한테만 하세요. 우린 아무 잘못 없어요!”“그래요, 교 사장님. 우린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니까요?”사람들의 질타에도 한지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교구연 일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발끈한 왕호가 다가가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야! 우리 구연 형님이 오셨는데 지금 여기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당장 일어나서 인사 올리지 않고 뭐 해!”말을 마친 그는 테이블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거대한 진동에 테이블에 있던 반찬이 바닥에 쏟아졌다.한지훈은 인상을 쓰며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
S시 지하세력의 4대천왕으로 불리는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부하의 다리를 절단한 상대가 멀쩡히 살아서 시내를 돌아다니면 그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없었다!순식간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무리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한지훈을 압박해 왔다.겁에 질린 강우연과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한지훈은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현장을 둘러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뭐야? 고작 이거야? 이거 너무 시시한데.”분노한 교구연이 소리쳤다.“같이 덤벼! 당장 저 놈의 간사한 혀를 뽑아버리라고!”조폭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그런데 이때, 분노한 고함소리가 룸을 찢어버릴 듯이 크게 울렸다.“한 선생 몸에 손대는 자는 내가 죽여버릴 거야!”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입구를 바라보니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파이프를 들고 안으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그 뒤로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정도현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입장했다.“교 사장, 안 본새에 많이 컸네. 감히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워? 이 정도현이가 그렇게 만만해?”안으로 들어선 정도현은 한지훈과 시선을 교환한 뒤, 교구연을 향해 싸늘하게 경고했다.정도현이 누군가.S시의 최강 세력의 정점에 선 사람이 아닌가!현장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강우연의 직원들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교구연 한 명으로도 벅찬데 정도현 회장까지 나타날 줄이야!이제 끝장이야!그들은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아버리고 말았다.교구연이 음침한 표정으로 정도현을 바라보며 따지듯 물었다.“정 회장,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저 녀석을 감싸겠다는 거야?”정도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내가 저분을 위해 친히 걸음했는데 할 말 있어?”정도현은 기세로 교구연을 압도했다.교구연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정 회장, 잘 생각해! 저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놈 때문에 나를 적으로 돌리려는 거야?”정도현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교 사
위풍당당하게 부하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온 송호문은 곧장 교구연을 지목했다.그 시각, 스타이 타운 바깥에는 이미 수십 대의 경찰차가 물샐 틈 없이 현장을 포위했고 무장을 한 특수부대원들이 신속히 안으로 침투했다.“1팀 제압 완료!”“2팀 제압 완료!”“3팀 제압 완료!”잠깐 사이에 경찰들이 스카이 타운 전체를 장악했다.위기 상황을 감지한 교구연은 음침한 표정으로 정도현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정도현 이 비겁한 자식이! 감히 나를 음해하려고 들어?”정도현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 난 아무것도 안 했어.”말을 마친 정도현은 송호문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송 청장님, 야밤에 수고 많으십니다.”송호문은 고개를 끄덕인 뒤, 한지훈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교구연에게 물었다.“교구연, 조금 전에 누굴 죽이려고 했다던데, 그게 누구야?”교구연은 분노에 치를 떨다가 결국 고개를 떨어뜨리며 대답했다.“송 청장님, 오해십니다. 그냥 장난 좀 쳐본 거였어요.”송호문이 싸늘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장난이었다고?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서로 가서 얘기하지.”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경찰들이 다가가서 교구연 일당의 손에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갔다. 교구연은 끌려 나가면서도 정도현과 한지훈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나 이대로 넘어갈 생각 없어! 비겁하게 감히 날 모함해? 두고 봐!”송호문은 정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정 회장님도 같이 가시죠.”정도현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죠.”강우연과 직원들은 갑자기 정리된 상황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교구연과 정도현은 경찰에 잡혀갔으니 이제 무사한 건가?송호문이 다가와서 강우연 일행에게 물었다.“다들 괜찮으세요? 다친 데는 없어요?”강우연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괜찮아요. 형사님들이 제때에 나타나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송호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게 저희 일이잖아요.
“한지훈,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와?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상황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어! 너 보고 밥맛 떨어졌으니 썩 꺼져!”사람들의 비난에도 강우연은 그저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모임은 기분 안 좋게 끝이 났다.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강우연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한지훈은 따뜻한 꿀물을 타서 그녀에게 가져다주며 말했다.“아까 술을 좀 마셨으니까 이거 마셔.”“고마워요.”강우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내민 컵을 받아 꿀물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여전히 걱정되는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지훈 씨, 길씨 가문을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해 봤어요? 정말 문제없겠어요?”한지훈은 그녀의 옆에 앉아 느긋한 태도로 답했다.“응,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할게.”강우연은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지훈은 일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피로가 몰려와 잠에 들었다.한 시간 뒤, 서류를 다 검토한 강우연은 소파에서 잠든 한지훈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 자세로 턱을 괴고 잠시 그의 얼굴을 관찰했다.선 굵은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눈썹, 그리고 오똑한 콧날….보면 볼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런데 이때, 한지훈이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새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무심하게 물었다.“얼굴이 왜 그래?”강우연은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쉬러 가요.”말을 마친 그녀는 서류를 품에 안고 도망치듯 침실로 돌아갔다. 침실에 들어온 그녀는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아… 창피해. 강우연, 이건 너무 바보 같잖아….”그 시각 한지훈은 소파에서 얼굴을 어루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는 방으로 가서 이불을 하나 챙긴 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강우연이 다 씻고
강준상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상황이 어떤지 뻔히 알면서 내게 도움을 청하는 의도가 뭐야? 가문까지 끌어안고 지옥으로 떨어지겠다는 소리야? 사고는 한지훈이 쳤으니 책임도 걔가 져야지.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잖아? 그 방법이 안 먹히니까 널 나한테 보낸 거야?”강우연은 울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여기 온 거 지훈 씨는 몰라요. 그래도 고운이 아빠잖아요. 그 사람을 이렇게 잃을 수는 없어요.”“허!”강준상은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며 강우연에게서 등을 돌렸다.“녀석은 가문에서도 버림받은 무능한 놈이야! 우리 가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5년 전 그 사고가 없었으면 우리 강운그룹도 일류 그룹으로 자리매김했을 거야! 그 인간이 없었으면 네가 지금 이 지경이 됐겠어? 내가 그렇게 예뻐하던 손녀가 왜 이렇게까지 바보가 됐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놈을 위해 무릎까지 꿇다니! 나가! 다시는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강우연은 구슬피 울며 애원했다.“할아버지, 제발요. 지훈 씨 좀 도와주세요. 저와 고운이는 그 사람이 필요해요….”쾅!그런데 이때,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강희연이 거들먹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강우연, 너 사람 말 못 알아들어? 할아버지가 꺼지라잖아? 너 무슨 염치로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구걸하는 거야?”“언니가 날 싫어하는 거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제발 나 좀 도와줘. 지훈 씨를 도와주기만 한다면 민학그룹과의 프로젝트는 언니한테 전권을 넘길게.”강우연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 말에 강희연은 구미가 동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강준상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이번만 좀 도와줄까요? 그래도 우리 가문 사위인데 물론 우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한지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비웃지 않겠어요?”강준상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아무 소용없어. 길씨 가문은 나도 안중
말을 마친 오관우는 전화를 끊었다.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길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뒤,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관우? 우리 오빠한테는 어쩐 일로 연락했어?”“응? 시아구나. 정우 돌아왔다고 해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연락했지.”오관우가 웃으며 답했다.“인삿치레는 그만 둬. 내가 오빠를 몰라? 솔직히 말해. 우리 오빠한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전화했어?”길시아가 싸늘하게 물었다.오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강희연의 계획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얘기를 다 들은 길시아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새침하게 말했다.“강우연? 그럼 그렇게 하겠다고 해. 저녁에 내가 그리로 나갈게.”전화를 끊은 길시아의 눈빛이 음산하게 빛났다.강우연!몇 년을 안 보고 살았더니 이렇게까지 타락한 건가?한지훈을 위해 자존심 다 버리고 우리 오빠한테 사정한다고?그럼 그 바람, 철저히 부숴주지!“누가 전화왔어?”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길정우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물었다.길시아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스팸 전화.”길정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씻으러 들어갔다.한편, 강희연과 강우연은 오관우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오관우에게서 연락이 왔다.강희연이 다급히 물었다.“어때? 약속은 잡았어?”오관우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약속은 잡았는데 길정우가 아니라 시아가 나오기로 했어.”“누구?”강희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강우연의 눈치를 살피고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걔가 왜 나와?”오관우가 말했다.“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길정우 전화를 길시아가 대신 받은 거야. 그런데 상관없지 않을까? 길시아는 길정우가 아끼는 동생이잖아. 길정우는 여동생이라면 껌뻑 죽는다던데, 길시아가 나서주면 오히려 잘된 일 아니야?”강희연은 굳은 표정으로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알았어. 자기가 장소 정하고 문자 줘. 강우연은 내가 데리고 갈게.”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강
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감동을 금치 못하며 강희연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고마워, 언니. 고마워….”강희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요염한 걸음걸이로 자리를 떴다.강우연은 저녁 약속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한지훈에게 문자를 보내 저녁에 약속 있으니 먼저 먹으라고 전했다.집에서 고운이와 놀아주던 한지훈은 문자를 받고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약속 장소가 어디야? 끝나면 데리러 갈게.]강우연은 아무 의심없이 강희연이 알려준 술집 주소를 그에게 보내주었다.퇴근할 시간이 되자 강우연은 강희연의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이곳은 S시에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술집이었는데 안주가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하지만 워낙 비싼 곳이라 일반인 출입은 제한되고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오관우는 이곳 VIP 회원이라 호기롭게 룸을 예약했다.약속 장소에 도착한 강우연은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골드가 메인 색상인 건물 외부에는 하늘을 나는 봉황 조각상이 높게 솟아 있었다.주차장에는 비싼 외제차가 빼곡이 들어서 있었는데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거나 미팅 장소로 사용했다.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던 오관우는 강희연이 보이자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다.“드디어 왔네.”강희연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왜? 그쪽에서 먼저 도착했어?”오관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아직. 30분 정도 걸릴 거래. 먼저 들어가자.”강희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오관우의 팔짱을 끼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강우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들어갈지 말지 망설였다.강희연이 고개를 돌리더니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들어가기 싫어? 그럼 그냥 집에 가. 어쩔 수 없지 뭐.”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그녀는 이 결정이 어떤 지옥을 불러올지 아직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룸에 도착하자 강우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언니, 길정우 씨는 언제 도착해?”강희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강우연을 바라
길시아는 싸늘한 시선으로 술집 사장을 힐끗 보고는 거만하게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친구랑 약속 있어서 왔거든요. 388호 룸으로 안내 좀 부탁해요.”“네. 이쪽으로 오시죠.”사장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한 태도로 길시아를 3층까지 안내했다.문앞에 도착하자 길시아는 뒤를 따르는 군인들에게 말했다.“아무도 못 들어오게 여기 철저히 지키고 있어!”“네, 아가씨!”두 군인이 칼같이 대답했다.길시아는 턱을 잔뜩 치켜들고 안으로 들어갔다.기다리던 길정우가 소식이 없자 강우연은 돌아갈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미안해, 언니. 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조급해진 강희연이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해? 네가 도와달라고 해서 만든 자리잖아! 너 지금 가면 내가 뭐가 돼? 길정우 중장이 도착했는데 부탁한 사람이 안 보이면 화를 낼 텐데 그럼 우린 어쩌라고?”오관우도 옆에서 거들었다.“그래요, 우연 씨. 길정우는 곧 군단장이 될 귀한 몸이란 말이에요. 이대로 약속을 어기고 가버리면 군단장을 무시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강우연이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길시아가 들어왔다.그녀를 본 강희연은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5년의 서러움과 분노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희연을 바라보았다.“언니, 길정우 중장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쟤가 여기 왜 있어?”강희연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길정우 중장이 좀 바쁜가 보지. 하지만 괜찮아. 길시아 씨가 이번 일의 장본인이기도 하니까.”오관우는 반가운 얼굴로 달려가서 길시아를 맞아주었다.“시아 왔구나. 어서 이쪽으로 와서 앉아.”길시아는 오관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강우연에게로 다가왔다.그리고 들려온 마찰음.길시아는 손을 들어 강우연의 뺨을 후려치고는 욕설을 퍼부었다.“비천한 것이 어디 우리 오빠한테 수작질이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오빠를 만나?”현장에 있던 강희연과 오관우마저 당황했다.강우연은
곧이어 한 노인이 안에서 걸어 나와 정원 문을 활짝 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하고 나서야 낙 선생을 정원 안으로 모셨다. “지금 당장 날 정로한테로 모셔!”낙 선생은 다급한 어조로 본론을 꺼냈다. “네, 저를 따라오시죠. 정로께서는 마당 뒤편에서 차를 마시고 계십니다!”이내 노인은 낙 선생을 데리고 뒤뜰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한 백발의 노인이 정자 앞에서 한가롭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고서 한 권을 든 채 차를 마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로님! 큰일 났어요!”낙 선생은 자신이 그토록 찾던 노인을 만나자마자 황급히 앞으로 달려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왜 너답지 않게 이렇게까지 당황한 건데? 설마 신군이 뭔가 눈치라도 챈 거야?”정로는 침착한 표정으로 낙 선생을 쳐다보았다. “아니요, 신군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그저께, 저는 정로님의 뜻에 따라 강만용을 제거하자고 국왕을 설득해 봤습니다. 그런데 국왕이 약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는, 저더러 강만용의 고택으로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정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어. 어찌 됐든 강만용은 용각의 각인이었기에 네가 단 한두 마디로 그들을 단번에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건 아니야!”“하지만 그렇게까지 당황할 필요는 없어. 계획한 대로만 천천히 실행하면 돼. 어차피 그 늙은이들, 오래 살지도 못할 거야!”하지만 낙 선생은 여전히 난감한 안색을 보였다. “정로님, 사실 그게 아니라... 제가 만일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허연생과 장문로를 파견하여, 만약 한지훈이 나타나게 되면 한지훈도 처단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그런데...”“그런데 뭐?”정로는 허연생의 이름을 듣고는 순간 얼굴색이 변했다. “그런데... 허연생은 한지훈의 손에 죽게 되었고, 게다가 장문로의 시체는 지금 찾을 수도 없습니다!”큰 자책감이 든 낙 선생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예상치 못한 소식에
이내 한지훈은 손을 흔들며 남은 집행 대원들더러 이젠 자리를 떠나도 된다고 하였다. 그제야 집행 대원들은 죽음의 절벽에서 돌아온 것 마냥 급히 일어나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들은 장문로의 시체를 수습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집법 대원들이 멀리 떠나고 나서야 한지훈은 강만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강로 님, 더 이상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신로님과 함께 저를 따라 강중으로 돌아가시죠!”‘강중으로 돌아가자고?’ 강만용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국왕의 명령을 받들고 온 장문로가 이곳에서 죽게 된 이상, 언젠가 다시금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이 상황에 집을 옮기면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면, 나중에 잡혔다가는 오히려 더 큰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한지훈, 걱정해 준 건 고마워. 하지만 만약 나와 신로 모두 온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가게 된다면, 국왕은 오히려 더욱 의심을 품게 될 거야... 장문로가 이렇게 죽게 된 이상, 내가 보기에 국왕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난 너를 따라 강중으로 돌아갈 수 없어!”“하지만, 나의 이 어린 손자는 네가 대신 잘 돌봐줬으면 좋겠어!”강만용은 이내 그 일곱 살 난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강만용의 허벅지를 꼭 안은 채 무슨 말을 해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자현아, 말 들어!”강만용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지훈은 평소 강만용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가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 이상, 그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강자현을 데리고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신 씨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신한국은 강만용과 같은 태도를 보였고, 자신의 손자 두 명을 한지훈에게 맡기고는 본인은 계속하여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렇게 한지훈은 어쩔 수 없이 세 아이를 데리고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또한 용운에게,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안배하여 시시각각 강 씨 집
일곱 살짜리 아이를 고문하고는 아이의 피부까지 벗겨낼 생각을 하는 놈을, 어딜 봐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장문로, 차라리 자결해. 아니면 넌 앞으로 죽는 것보다도 못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거야!”한지훈은 차갑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장문로를 절대 살아 돌려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강 씨 집안과 신 씨 집안의 원수에게 제대로 복수하고 싶었다. “한지훈!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강만용과 신 한국을 조사하러 온 거라고! 하지만 넌... 더 이상 북양 왕도 아니잖아!”장문로는 여전히 한지훈을 노려보며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한지훈, 됐어. 그냥 보내줘. 괜히 죽였다가 국왕이 알기라도 하면...”“강로 님, 만약 정말 국왕이 따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제가 혼자서 다 책임을 질 겁니다! 오늘 전, 반드시 이 놈을 죽일 거예요!”이내 한지훈은 머리를 돌려 용운을 불렀다. “용운!”“네!”잔뜩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용운은, 당장이라도 장문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로 이때, 장문로가 몸을 돌려 도망가려 하였다. 하지만 그는 어찌 됐든 그저 일반인이었기에, 제 아무리 빨리 도망가도 용운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채 두 걸음 내딛기도 전에, 그는 용운에게 덥석 잡히게 됐다. “장문로, 너 방금 그랬지? 이 아이 피부를 벗겨버릴 거라고. 그럼 너부터 한번 벗겨볼까?”곧이어 용운은 비수를 뽑아 들고는 장문로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너 뭐 하는 짓이야? 난 엄연히 국왕의 명령대로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뿐이야! 당장이 거 놔! 젠장, 만약 감히 네가 나를 건드리게 된다면 너희들 모두 몰살당하게 될 거야!”장문로는 목이 쉴 정도로 마지막 힘을 짜내가며 고함을 질렀지만, 이내 그의 고함소리는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소리로 변하게 됐다. 용운은 방금 말한 대로, 정말 단번에 장문로의 피부를 벗겨냈다. 엄청난 고통에 장문로는 기절
한지훈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음양존의 공격에, 순간 눈앞이 깜깜 해나면서 끝없는 환각을 느끼게 된 그 순간을. 만약 진작에 적룡심을 융합하지 않았다면, 그날 한지훈은 필연코 음양존의 손에 죽을게 뻔했다. 빛, 불, 그림자! 바로 이 세 가지 자연의 힘은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환상으로 진화될 수 있었다. 한지훈은 이미 금룡심을 융합하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진법을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이내 생각에 잠긴 한지훈은 갑자기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지훈, 더 이상 건방지게 굴지 마! 네가...”허연생이 다시금 손을 들어 한지훈을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그는 자신의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동시에 눈앞에 있던 강만용의 고택은 물론, 주위의 집법 대원들 그리고 장문로도 사라지게 됐다. 심지어 한지훈도 모습을 감추었다. 어안이 벙벙 해난 허연생은 손바닥을 높이 든 채 그저 멀뚱멀뚱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의 다섯 손가락도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 갇혀있게 됐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환상은 그 자신만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연생이 빠른 걸음으로 한지훈을 향해 돌진하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모습뿐이었다. 그들의 보기에는, 손바닥을 든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허연생의 행동이 매우 괴이해 보였다. “허 선생님, 뭐 하세요?”장문로는 마치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손바닥을 들고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허연생의 모습에 갑자기 조급 해났다. 그러나 허연생은 장문로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이때, 한지훈은 허연생의 뒤로 성큼성큼 다가와 손바닥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그러자 순간 허연생의 눈앞에 펼쳐진 환상은 사라지게 됐고, 그는 마치 끊어진 연처럼 몸이 저 멀리 날아가게 됐다. 이로서 한지훈은 처음으로 금룡심의 진법을 경험하게 됐다. 그러나 이 진법은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에너지 소
만약 이 없었더라면 한용은 지난 20년간, 무적천과 어깨를 겨누며 4성 천급 천신의 경지까지 쉽게 오를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모색하고 깨달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무적천과는 달리, 한 씨 집안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까지 손에 넣게 됐으니, 그 무엇보다도 탄탄한 백전백승의 체계를 보유하게 됐다. 능력이 진화하는 속도든, 각종 역량에 대한 장악 정도든 그들은 그 어느 하나 무적천에 뒤쳐지는 게 없었다. “너... 분명히 뭔가 숨기는 게 있어!”눈치 빠른 허연생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한지훈은 몸을 돌려 차갑게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방금 말한 대로, 난 오늘 반드시 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거야!”곧이어 한지훈은 쏜살같이 앞으로 한걸음 뛰어나와 한 주먹으로 허연생의 급소를 쳤다. 허연생은 비록 한지훈에 비해 얻은 깨달음도 적고 게다가 실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한 세대를 장악했던 강자였기에 역시나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가슴을 노리는 한지훈의 주먹을 보아낸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는 도리여 한지훈의 아랫배를 강하게 내리쳤다. “후!” 순간 한 줄기의 강한 바람과 기운이 한지훈의 급소를 공격하게 됐다. 분명 같은 주먹임에도 불구하고, 허연생이 뻗은 이 주먹은 비록 보기에는 그렇게 큰 기세는 아니었지만 힘이 매우 강했다. 그는 모든 힘을 한 주먹에 집중하여 최대한 기운을 폭발시킬 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역공격에 당황한 한지훈은 더욱 정신을 다잡고는 급히 주먹을 휘두르며 방어하였다. “팍!”그렇게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게 되었고,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그 충돌 소리는 매우 컸다. 두 강자가 뿜어낸 엄청난 기운에, 마당에 있던 바위마저도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죽어!”허연생은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다. 그러자 푸하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의 독기가 그의
‘허연생? 이 사람은 이미 30년 전에 무종에서 물러난 사람 아니야?’ 사실 허연생에게는 휘황찬란한 과거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무종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수십 개 종문의 장교 문주들을 무너뜨리고는 무신종과도 대결을 겨룬 강자였다. 당시 무적천은 매우 의기양양하게 바로 허연생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2성 현급 천왕계 밖에 다다르지 못한 무적천과는 달리, 허연생은 당시 이미 4성 천급 천왕에 다다르게 됐다. 그러나 허연생은 무적천에 의해 패배하게 되었고, 심지어 중상까지 입어 하마터면 무신종에서 참사할 뻔하기도 했다. 만약 당시 무적천이 조금이라도 힘을 주체하지 못했더라면, 허연생은 진작에 그곳에 무덤으로 남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무적천에게 패한 후로부터 허연생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줄곧 무종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동안 그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자살하여 죽었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수치심을 느끼고 자취를 감췄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오늘 예상치 못한 허연생의 출현은 한지훈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실 그는 허연생을 꺼리는 것보다도, 낙 선생의 배후에 있는 세력들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잡히지가 않아 답답했다. 그동안 3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춰온 사람을 이렇게 손쉽게 드러내는 낙 선생의 절대적인 힘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말없이 조용히 있는 한지훈의 모습에 허연생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봐, 청년. 내 명성을 듣게 된 이상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는 없겠지? 당장 무릎 꿇어!”“한지훈, 어서 비켜.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강만용은 급히 앞으로 나가 한지훈을 타일렀다. 그 또한 허연생의 명성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허연생은 그야말로 모든 경계를 막론하고도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강로 님은 그동안 용국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각로라는 칭호에 절대 부
순간 어안이 벙벙 해난 집행 대원은 떨어진 손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손목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됐다. “아악! 내 손!”이내 집행 대원이 손을 뻗어 상처를 부여잡자, 피가 미친 듯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누구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장문로도 깜짝 놀랐다. “나야!”바로 그때, 한지훈이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손으로 그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이를 풀어주면 네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줄게. 그렇지 않으면 넌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될 거야.”한지훈의 얼굴을 똑똑히 보아낸 장문로는 순간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한지훈이 더 이상 북양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장문로는 얼굴에 흉악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아, 역시나 너희 사이에 뭔가 결탁이 있긴 하나 보네! 차라리 잘 됐어. 굳이 강중까지 찾아가서 사람 잡을 일은 덜게 됐네!”“여봐라, 당장 한지훈을 치워내!” 곧이어 10여 명의 집법 대원들이 동시에 권총을 꺼내 들어 총구를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겨누었다. 필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양 왕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한지훈을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십여 자루의 권총을 마주하고도 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을 뿐, 그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크흠!”바로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검복을 입은 한 노인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지훈, 낙 선생은 진작에 네가 이렇게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어!” 노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훑어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한지훈 또한 그 노인을 훑어보았는데, 노인은 뜻밖에도 삼성 천왕계의 고수였다. 보아하니 낙 선생이 이번에 제대로 벼른 듯했다. “난 바로 낙 선생의 명령을 받들고 너를 잡으러 온 거야!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너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 좀 거칠어질 수도 있거든.” 삼성 지급 천왕계는 역시나
험상궂은 얼굴의 중년 남자는 큰 손으로 어린 남자아이의 머리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이를 악물고는 절대 울지를 않았다. “장문로! 당시 넌 용국의 여자 아이를 추행했잖아. 그때 그 아이, 겨우 16살이었어. 하지만 넌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능욕했었지!”“용국의 전관으로서 그런 짓을 벌이면 천벌을 받을 거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그런데 만약 그 당시 내가 너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다들 불공평할 거라고 생각할게 뻔하잖아?”강만용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노호하였다. 그러자 장문로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내 남자아이를 다른 한 집법 대원에게로 밀치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걸친 중산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만용, 너 지금 혹시 나를 질투하는 거야?”“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쨌든 현명하신 낙 선생이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난 지금 이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잖아. 반면 너는 비참한 미래를 앞두고 있고!”“너희들 정말 한통속이었구나! 언젠가는 고통스럽게 벌 받게 될 거야!”잔뜩 화가 난 강만용은 씩씩대며 눈을 부릅 떴지만, 장문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흥!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해. 당장 네 죄나 인정하라고!”이내 장문로는 이미 완벽하게 작성된 진술서 한 장을 강만용에게 던졌다. 위에 적힌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바로 그들 용각 삼로가 한지훈과 함께 군비를 횡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 진술서를 확인한 강만용은 크게 웃었다. “왕년에 천 평이 넘는 땅을 국가에 순순히 바친 나인데, 내가 굳이 이 몇 조원의 군비를 횡령할 이유가 있을까?” “아휴...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네. 이렇게나 간사한 놈이 용권의 정권을 잡게 놔두시다니. 정말 보는 눈도 없으시네!” 강만용이 진술서를 찢으려 하자 장문로는 바로 날카로운 칼을 꺼내 들어 단칼에 남자아이의 옷을 찢어버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만용, 너 잘 생각해. 내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중년 남자는 더 이상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얼핏 봐도 방금 전, 지독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지훈! 내...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강만용은 한지훈과 용운 두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금치 못하고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용경에서 온 한 무리의 문관들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무고하게 산채로 맞아 죽게 되는 상황에서도 강만용은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신한국의 아들인 신국호 또한 몽둥이로 수차례 얻어맞아 두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고, 심지어 피까지 많이 흘리게 되어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야말로 두 집안이 하룻밤 사이에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다. “누구예요! 대체 누굽니까? 어느 개자식이 감히 이렇게 잔인한 수를...”잔인하게 놈들의 수단에, 용운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당장이라도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에휴, 됐어. 아마도 이 늙은이가 그동안 사는 동안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느님이 날 벌하려나보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힘들었겠는데 일단 방에 가서 앉아있어!”신한국은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한지훈과 용운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강로님, 국왕께서는 대체 왜 이러시는 거랍니까? 낙 선생은 대체 또 어떤 구실로 강로 님의 가족을 건들게 된 건가요?”한지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강만용은 결국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물려받은 천 평 넘는 가택이 있는데, 낙 선생은 내가 군비를 횡령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국왕이 직접 장문로까지 파견하여 조사하게 한 거고.”“조사요?”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찬 용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조사라는 거지? 사람이 죽게 됐잖아!’ “용운아!”한지훈이 낮은 소리로 호통을 치자 용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놈들은 어젯밤, 강로 님을 끌고 가기라도 했나요?”한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