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사실을 왜곡한 적 없습니다. 제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만약 거짓이 하나라도 있다면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백성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더 보충할 건 없어?”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사실 성호가 얘기하지 않은 게 있어요. 놈들은 우리 애들을 총살한 뒤에 국제 언론에 대놓고 저희를 모함했어요. 저희 용국의 군대가 그들의 기술을 빼돌리려고 잠입했다가 폭탄을 맞고 사망했다고요.”“놈들은 사망한 병사들이 저녁에 그들의 설계도를 훔치기 위해 군영으로 잠입했다고 사실을 왜곡해서 보도했어요.”한 장관이 손을 번쩍 들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그럼 반격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한지훈이 물었다.“당연히 했었죠. 하지만 나라의 이미지에 먹칠할 수도 있다는 말에 지금까지 참았어요.”백성호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억울한듯 말했다.그가 이러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생사를 함께하던 형제가 죽었는데 살인자라는 놈들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형제들을 모함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화가 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사망 인원은 총 몇 명이야?”한지훈은 속으로 가장 묻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했다.“여섯 명이요.”백성호가 말했다.“나를 사망자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 줘.”한지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씁쓸하게 말했다.“사령관님….”한지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사망자는 흰 천에 덮인 채, 사치실에 누워 있었다. 핏자국이 얼룩진 것으로 보아 그들의 죽음이 얼마나 장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한지훈은 사망자들 앞에서 묵묵히 모자를 벗고 묵례했다.“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다. 북양 대군은 지시를 받들라. 내일 이들을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네!”장관들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다음 날.싸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아침이었다.한지훈은 직접 병사들의 유골을 관에 넣고 북양군의 군기를 덮은 뒤에 그들의 관에 정성스럽게 ‘구국영웅’이라는 글자를 새겼다.“어찌 전쟁
현장에 있던 30만 북양 병사들은 격앙된 심정으로 그들의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런 사람이 자신의 상관이라서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사령관님, 그럼 위쪽에는 뭐라고 하실 겁니까?”용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한지훈의 직속 부하 중 한 명으로써 그의 안위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책임진다. 그리고 난 무사할 거고 용국도 헛된 희생을 하지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마.”한지훈이 말했다.“예, 알겠습니다.”용일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도 희생한 병사들을 위한 복수가 절실했다.“사령관님, 공국 놈들이 또 국제 뉴스에 대고 헛소리를 지껄이네요. 한번 보실래요?”백성호가 물었다.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았다.“공국의 일선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용국의 북양대군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국경선 100km 떨어진 지점까지 군사를 물렸다고 합니다. 이는 용국 측이 자신들의 부당행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기자는 전했습니다.”“이로써 알 수 있는 바, 용국의 군대는 실력이 공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공국은 군사 영역에서 또 하나의 업적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국이 현재 공국의 실력을 따라오려면 적어도 30년은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군사 기밀을 훔치려다가 폭탄에 맞아 사망한 용국 병사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 생에는 그들이 비겁한 용국의 군대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그것을 제외하고도 공국은 대놓고 용국을 비하하고 자신들을 치켜세우고 있었다.“작전에 지장이 있을까 봐 일단 철수하라고 한 건데 놈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한지훈이 차갑게 말했다.그날 밤, 북양의 영토에는 차가운 모래바람이 불었다.평소라면 초소를 지키는 보초병 외에 다들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오늘 저녁 북양의 군영에는 잠든 병사가 한 명도 없었다.5만 명의 북양 정예군이 공터에 집결했다.공국 쪽에서
“그런 것 같아.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은데. 저놈들 미쳤나?”마크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괜찮아. 비록 숫자가 좀 많기는 하지만 우리 대군이 전투에 참여하면 바로 쓸어버릴 수 있어.”잭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거야 그렇지.”마크는 침착하게 경보기를 울렸다.아찔한 경보음이 군영에 울려퍼졌다. 만약 용국 군영이었다면 경보음이 울리고 1분 안에 집합을 마무리해야 했다.하지만 3분이 지난 뒤에야 공국 병사들은 느릿느릿 군영에서 나오고 있었다.다들 잠이 덜 깬 모습이었는데 일부는 군복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북양군의 탱크 부대는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순식간에 불길이 치솟고 대지가 진동했다.공국의 군영은 모두 한곳에 몰려 있었기에 북양군의 장갑차는 힘들이지 않고 한 방향으로 폭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폭탄이 옆에서 터지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갈 때에야 공국 병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시작했다.그들은 소총을 챙겨 사방에서 조여오는 적군을 향해 겨누었다.“와봐, 용국의 쓰레기들. 너희들은 곧 위대한 공국 군대들에 의해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될 거다!”“멍청한 용국 군대, 오늘 세계 최강 군대의 실력을 보여주지!”“빨리 놈들을 쓸어버리고 돌아가서 잠이나 자자고!”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믿었던 무기는 북양군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한지훈은 장갑차를 맨 앞에 세웠다. 탄약은 장갑차 외부에 약한 기스만 냈을 뿐이었다.“어떻게 된 거야? 놈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장갑차를 가지고 있어? 총탄이 아예 안 박히잖아!”“우리 공국에도 십여 대밖에 없는 장갑차인데… 게다가 다 다른 곳에 있잖아. 놈들은 어떻게 수백 대의 장갑차를 소유한 거지?”“세상에! 이건 분명 꿈일 거야. 설마 다른 나라에서 용국에 장비를 지원한 걸까?”공국의 군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화력이 너무도 거셌고 그들의 공격은 거의 먹히지 않았다.“공격을 중지한다!”장갑차 위에 선 한지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포격을 멈춘 장갑차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방어 공사는 북양의 장갑차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병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들은 북양군의 거센 기세에 완전히 짓눌려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강대한 실력 앞에 그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한지훈은 여기 오기 전까지 수많은 공격 방식을 고민했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힘으로 짓누르는 방식이야 말로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다.공국의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무너져내리는 자신들의 방어선을 바라보며 용기마저 잃어버렸다.적지 않은 병사들이 도망치듯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휘부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곳에 마지막 방어선이 있기 때문이었다.상대가 반격을 포기하면서 북양의 진군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공국의 지휘부에 앉아 있는 장관들은 여전히 북양에서 쳐들어오면 그들을 박살낼 자신이 있다고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그런데 cctv로 북양의 장갑차가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그런 자신감은 처참히 부서졌다.공국의 장관이라는 자들은 방으로 숨어들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젠장! 전에는 용국 군대가 나약하기 짝이 없다며? 아무리 도발해도 가만히 있더니 오늘은 대체 뭘 잘못 먹은 거야?”“망할!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도발하지 않는 건데!”공국의 지휘관들이 재산을 챙겨 도망을 준비할 때, 병사 한 명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사령관님, 북양군이 코앞까지 왔습니다. 저희는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병사의 눈은 온통 공포로 질려 있었다.“뭘 어떡해? 싸워서 막아야지! 절대 놈들을 이쪽으로 들여보내서는 안 돼! 당장 총 들고 나가!”사령관이라는 자가 포효하며 말했다.“안 돼요, 사령관님. 상대의 장비가 너무 좋아요. 저희의 화력으로는 제압이 불가능합니다. 많은 병사들이 뒤로 후퇴하고 있어요.”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 여기로 오면 어떡해? 당장 나가서 적과 맞서 싸우지 않고! 후퇴하는 자는 내 손에 죽는다!”돌아온 건 사령관의 분노한 포효뿐이었다.만약 장관이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 못 봤다면 그
“저희는 일부러 국경선 근처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어요. 북양군을 도발하기 위해서요. 폭탄도 저희가 일부러 투척한 거예요.”“그리고 우리는 북양에서 사절을 파견하여 사과하러 온 것처럼 위장했죠. 하지만 이미 그들을 죽인 뒤였어요.”공국의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마지막 질문. 이 모든 것을 사주한 자가 누구냐? 사절을 총살하라고 시킨 자 말이야.”“사령관이요. 모든 건 그 사람이 지시했고 총도 그 사람이 쏜 거예요.”병사가 말했다.“너희의 사령관은 어디 있지?”한지훈이 물었다.병사는 고개를 돌렸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병사들도 서로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했다.“제가 사령관께 보고를 올리러 갔을 때 그 사람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조금 전에 지휘실에 보고하러 갔던 병사가 말했다.한지훈은 차갑게 코웃음치고는 몸을 날려 지휘부의 가장 높은 곳으로 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아니나 다를까, 공국의 군영과 2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전속력으로 도망치고 있는 SUV 한 대가 보였다.한지훈은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2분 뒤, 그는 검은 그림자를 질질 끌고 돌아왔다.“일반 병사는 목숨을 살려줄 수 있지만 총살의 주모자는 살려둘 수 없다.”한지훈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공국 병사들은 지휘관의 시체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일부는 모든 게 이 지휘관 때문이라고 탓하는 사람도 있었다.“우리의 형제를 총살한 놈이 여기 있다. 시체를 변방의 성벽에 걸어 모두에게 전시할 것이다.”“형제들의 복수는 했으니 이미 반항을 포기한 병사들은 건드리지 말도록.”지시를 내린 뒤, 한지훈은 대군과 함께 북양 지휘부로 돌아갔다.“백성호, 네가 기록한 영상을 국제 언론에 보내서 보도하게 해. 이제 외부에 진실을 알릴 때야.”다음 날, 국제 신문에는 영상 하나가 게시되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숙연해졌다.아무도 북양군의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공국이 그렇게 당한 데는 모두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적지
황학용과의 약속 날까지는 일주일 정도 남았다.왜 시간을 질질 끄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지훈은 그가 뭔가를 준비한다고 직감했다.그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약왕파에게 선택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만약 황학용이 여전히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기꺼이 그 목숨을 거둬줄 생각이었다.별장으로 돌아온 한지훈은 고운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그는 아이가 어릴 때 최대한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강우연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무슨 일 있어? 안색이 별로 안 좋네.”한지훈은 강우연에게로 다가가서 어깨를 마사지하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강우연은 눈을 감고 탄식하듯 말했다.“회사에 일이 너무 많아요. 신제품 출시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충분한 판매 경로가 확보되지 않았어요.”“내가 판매 경로 좀 알아봐 줄까?”한지훈이 물었다.강우연은 몸을 일으키더니 정색해서 말했다.“여보, 나도 성인이라고요. 계속 당신의 보호 아래서만 살 수는 없어요. 회사의 대표는 나고, 난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요. 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난 당신 등 뒤에 선 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신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전쟁부의 일은 나도 아는 게 없고 도움이 못 되지만 회사나 생활 방면에서 나도 당신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요.”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와이프 말은 들어야지. 난 개입하지 않을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당신이 먼저 나한테 말해줘.”강우연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요, 여보.”그 뒤로 그녀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한지훈은 구석에 숨어 입을 틀어막고 웃고 있는 고운이를 보고는 짐짓 인상을 쓰며 다가갔다.“고운이 잡으러 가자!”다음 날.강우연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 인상을 썼다.“조
강우연은 한참을 고민을 했지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이미 신약을 위해 여러 곳을 뛰어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미미했다.핸드폰을 펼친 강우연은 SNS에서 놀랄만한 기사를 발견했다.“서경의 홍영그룹에서 강중에 제약회사를 오픈할 예정이라고?”강우연은 뭔가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왔다.홍영그룹이 설립한 지사는 이미 강중에서 사업 파트너를 확보한 상태라고 했다. 대체 어떤 운 좋은 회사가 그들의 눈에 띄었는지 궁금했다.서경의 홍영그룹이라고 하면 용국의 서부 지역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거물이었다.의약, 과학기술, 보건사업, 부동산, 엔터테인먼트까지 그들의 세력이 닿지 않은 산업이 손에 꼽을 정도고, 우연그룹의 1년 매출을 다 합쳐도 그들의 하루 매출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다행히 본사를 강중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지사만 설립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강중의 각 기업은 분명히 영향을 받을 것이다.강우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들어와.”“대표님 찾는 전화인데요?”비서인 서은정이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네, 전화 바꿨습니다.”강우연은 서은정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고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이신가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수화기 너머로 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강우연은 낯선 목소리에 약간 긴장하며 물었다.“홍철복이라고 합니다. 서경 홍영그룹에서 강중에 지사를 설립하기로 하였는데 제가 지사 관리를 맡았지요. 강중에 있는 회사들 리스트를 읽어봤는데 저희의 요구에 부합되는 기업은 우연그룹뿐이더군요.”홍철복이 말했다.강우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경계를 세웠다. 홍영그룹 같은 대기업에서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뭔가 좀 이상했다.“홍 대표님이셨군요. 그런데 저희 회사의 뭐가 마음에 들어서 저희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냥 홍영 측의 수요를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드리는 얘기니까요.”강
그 시각, 강중의 번화가의 어느 한 별장.꽤 호화롭게 지어진 별장이었다. 정원에 엄청나게 넓은 꽃밭이 펼쳐져 있고 분수와 조경이 조화를 이루어 무척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이곳은 홍철복이 며칠 전에 구매한 별장으로, 그가 생활하는 공간이었다.“홍 대표님, 강우연이 차에 탔습니다.”비서로 보이는 사내가 홍철복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알았으니까 나가봐.”흔들 의자에 배가 불룩 나온 한 중년 사내가 누워 있었다. 의자마저도 그의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삐걱대고 있었다.그가 바로 홍영그룹 강중 지사의 대표, 홍철복이자 홍영그룹의 고위임원 중 하나였다.그의 맞은편에는 30대 중반의 사내가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그는 강중 지사의 2인자인 홍안복이었다.“그 여자는 이미 오고 있는 중이래. 혼자.”홍철복이 말했다.“사실 우리 실력으로 강중 의학계를 삼키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굳이 필요 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여야 할까요?”홍안복이 물었다.“넌 몰라. 약왕파의 황학용 소종주의 부탁이니 뭔가는 해야 할 게 아니야. 게다가 북양왕은 상대하기 만만한 놈이 아니야. 앞으로 우리가 강중을 먹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라고. 북양왕만 멀리 보내버리면 다른 상회들은 알아서 우리의 말을 따르게 돼있어.”말을 마친 홍철복은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북양왕이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우리 홍영그룹은 강대한 실력을 갖추지 않았습니까. 굳이 이런 비겁한 짓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이 일이 공개되면 윗분들에게 해명하기 힘들어집니다.”홍안복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가문은 우리가 최단 시간 내에 강중과 각 상회를 합병하라고만 했지 그 과정은 전혀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거든.”“어차피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야. 과정이 어떻든 고민할 필요가 없어. 안복아, 이게 왜 가문에서 날 이곳의 총 담당으로 보내고 넌 아직도 2인자인 이유야.”홍철복은 진한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황학용이 먼저 우리를 찾았는데 우리가 약왕파의 힘을
사실 장월동 그조차도, 천산 장 씨 집안을 떠난 후 현재의 절진이 뜻밖에도 이렇게나 큰 위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과거 그가 천산에 있을 당시, 역시나 천절진을 사용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위력은 매우 약했었다. 그러나 눈부신 전광과 굉음과 함께 한지훈을 덮치기 시작하는 토네이도의 모습에, 장월동은 이미 한지훈의 죽음을 확신했다. “쏴!”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하늘의 별들이 빛을 번쩍이더니 한지훈이 오릉군 가시를 던지자 한줄기 유광이 토네이도의 중심으로 날려갔다. “찢어!”이내 한지훈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한 줄기 유광이 오릉군 가시로 몰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오릉군 가시는 순식간에 토네이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쾅!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를 뒤흔드는 큰 소리와 함께 토네이도 속에서는 잇달아 비명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토네이도는 육안으로 보아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약화되었다. 장월동은 눈앞의 이 장면이 믿기지가 않았고, 그가 멍하고 있는 틈을 타 오릉군 가시는 날카롭게 곧장 그를 향해 날려갔다. 쿵! 이번만큼은 장월동의 몸 앞을 가로막고 있던 푸른 광막은 쉽게 뚫리게 됐고, 오릉군 가시는 바로 그의 왼쪽 어깨를 뚫었다. “푸!”이내 한 줄기 핏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장월동의 몸은 다시 한번 거꾸로 날아갔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장월동은 땅에 힘없이 떨어지게 됐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는 거의 질식할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온 그는 한 번도 이렇게 큰 부상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왼쪽 어깨 전체가 거의 부서진 상황이었다. 장월동이 땅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손으로 그의 또 다른 어깨를 꽉 잡았다. “철컥!” 무서운 소리와 함께, 장월동의 또 다른 한쪽 어깨도 깨져버렸다. “아악!”너무 아픈 나머지 장월동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쇼크 할 뻔하여, 몸을 끊임없이 벌벌 떨기도 했다. “한... 한지훈, 살려줘! 나... 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한지훈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암만 봐도 장 씨 집안은 확실히 탄탄한 바탕이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장월동은, 고층 건물 18층의 높이에서 지면으로 떨어지게 됐다. 그 광경을 목격한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한바탕 비명을 질렀다. “아악! 누군가 위층에서 떨어졌어!”“다들 비켜요!”“얼른 앰뷸런스 불러요!”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때, 장월동은 힘껏 허리를 비틀어 겨우 발을 땅에 착지하였다. 하마터면 뒷걸음질 쳐 넘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그의 뒤에 있던 검은색 승용차를 한 손으로 짚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바로 그때, 한지훈도 몸을 훌쩍 날려 18층 고층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필경 장월동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에 설령 10여 층의 고층 건물에 아무런 반항 없이 떨어지게 되더라도 그에게 타격을 입힐 수는 없었다. 그 누구든지 일단 천왕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육체는 금강석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단단해지니까. 넘어지기는커녕, 포격으로 공격한다고 해도 쉽게 다칠 일은 없게 된다. 그리하여 한지훈이 끝까지 쫓아온 것이었다. 장월동은 다시 또 다가오는 한지훈의 모습에,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지훈! 설마 너 정말 나랑 죽기 살기로 해보자는 거야!”그제야 장월동은 단단히 화가 폭발했다. 한지훈을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반격을 당하게 됐으니, 장 씨 집안은 이미 체면을 구기게 됐다. 게다가 지금의 한지훈은 더 이상 용서하지도 않고 기어코 그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니 장월동의 내심 두려웠다. 지금으로선 한지훈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남은 천절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아직 펼쳐보지 못한 남은 천절진의 진법을 시전 하게 되면, 어쩌면 예상치 못한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 두 손은 이미 피로 가득 물들었잖아. 그러니 넌 오늘, 반드시 죽어야 해!”이내 한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그는 부자 상인들을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그
보라색 번개가 거침없이 창문으로 돌진하는 모습에, 한지훈은 두 눈을 살짝 감고는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안정시키기로 했다. 사실 한지훈은 동방 오우와 맞붙을 때도 비슷한 진법을 쓰긴 했지만, 장월동이 펼친 이러한 진법은 한지훈도 아직 파악해내진 못한 상황이었다. 오직 감각에 의해서만 발휘해 내는 진법은, 물론 동방 오우와 장월동에게 있어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지훈에게 남겨진 시간은 점점 짧아지기만 했다. 일단 보라색 번개를 맞게 되면, 설령 5성 용급 천왕계인 한지훈이라 할지라도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필경 천위는 인간이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뒤이어 보라색 번개가 룸을 덮치는 순간, 앞쪽에서 무릎 꿇고 있던 10여 명의 재계 거물들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 장면만으로도 보라색 번개의 위력을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무자비하게 천지를 파괴하는 위력에 한지훈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다시금 공명감이 엄습하게 되자, 한지훈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내 한줄기 금빛이 한지훈의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만연한 금빛에 한지훈은 갑자기 홀가분함을 느끼게 됐다. 곧이어 한지훈의 몸에서는 한 줄기 광막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동방 오우가 펼쳐 보였던 진법이었다. 비록 한지훈은 그중 일부만 배워냈을 뿐이었지만, 장월동의 진법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쾅!”바로 그때, 흰색의 기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지훈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던 담효운만이 금빛 광막 속에서 다행히 목숨을 건지게 됐다. 그에 반면 무릎 꿇고 있던 나머지 부자 상인들은 거의 모두 피투성이가 되었다. “우르르!”“쾅쾅!” 연이은 번개가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몰려들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번개는 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게 됐다. “아니...”방금까지만 해도 득의양양하던 장월동은, 뜻밖의 모습에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천절진의 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위력은 천산 산기슭에 있는 수십
안타깝게도 천생 서문에는 삼절진에 관한 내용은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록은 매우 상세히 돼 있었다. 삼절진은 조룡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왔지만, 조룡 이후로는 더 이상 삼절진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자고로 삼절이란 바로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천절전이 가장 포악했고, 지절전이 가장 오묘했으며, 인절진이 가장 잔인했다. 장월동은 삼절진 중에서도 오직 천절진만을 수련해 왔었고, 그가 선보인 이 남색의 광막이 바로 천절진의 기운이었다. 이 기운은 심지어 천둥과 번개와도 같은 엄청난 위력과 효과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 기운에 타격을 입게 되면, 그 어떤 만물이든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외에도 천절진은, 당시 금용왕이 펼친 진법과도 비슷한 점이 꽤나 많았다. “훗! 그래, 네가 영리한 건 인정할게. 하지만 애석하게도, 넌 젊은 나이에 일찍 죽게 됐네!”장월동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하늘에서는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자고로 인간 세상에서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천위였다. 그 어느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은 천위는 얼마든지 하늘과 땅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불길한 생각에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먼 허공에는 어두운 구름만 은은하게 모였다. 검은 먹구름들은 하늘과 해를 가렸고, 구름층 속에는 짙은 남색의 전광이 누비며 노닐고 있었다. “어?”“아니... 도련님, 저희 모두 결백합니다!”“도련님,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모두 도련님을 맞이하러 이곳까지 온 겁니다!”어느새 수십 명의 부자 상인들은 그의 기운에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깜짝 놀란 낙소종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먹구름이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게 된 이상, 룸에 있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살아나갈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한 선생님!”이내 담효운도 고개를 들어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지훈은 이미 온몸이
장월동은 자신의 진법이 정말 효과를 거두고, 게다가 한지훈의 오릉군 가시까지 쉽게 튕겨낸 걸 보고는 갑자기 신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동안 집안의 어른들이 줄곧 이 진법을 열심히 연습해라고 충고를 한 이유를 그제야 깨닫게 됐다. 사실 장 씨 집안이 세속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존경을 받게 된 것은 단지 수천 년간 줄곧 조룡 묘지를 수호해 온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 씨 집안은, 조룡부터 시작하여 모든 오묘한 진법들을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룡이 남긴 진법은 그 위력을 가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5대 명산도 쉽게 등한시할 수가 없었다. “하하하!”그제야 장월동은 득의양양하게 크게 웃기 시작했다. 5성 룡급 천왕계와의 맞대결이 뜻밖에도 이렇게나 쉬울 줄은 몰랐다. 그동안 자신이 한지훈을 정말 과대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 다시 한지훈의 손아귀로 돌아온 오릉군 가시는, 알 수 없는 강한 위력과 함께 다시 돌아오게 됐다. 예상치 못한 기운에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서고 나서야 비로소 몸을 굳힐 수 있었다. “한지훈, 지금 기분이 어때?”장월동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의 당황함은 전혀 없고, 오히려 여유롭게 한지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한 선생님, 괜찮으세요?”겨우 한 라운드밖에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밀려나게 된 한지훈의 모습에, 담효운은 다소 걱정되는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록 현재로선 불리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제 겨우 대결이 시작되었기에 아직 승패를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천산 장 씨 집안, 역시 내 예상 밖 실력이었어!”한지훈도 결코 이 강한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장월동 또한 동방 오우만큼 5성 용급 천왕계 경지까지 도달했다면, 오늘 정녕 누가 죽게 될지는 정말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장월동의 실력은 동방 오우에 비해 하늘땅만큼의 차이가 났다. 어쩐지 천생 서문의 기록에 따르면, 천산 장 씨 집안
“너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한지훈이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하자, 이내 한 그림자가 급히 달려와 한지훈의 팔을 꽉 잡았다. “한 선생님! 제발 화를 푸세요. 오늘 이 일은 오해일 수도 있잖아요. 괜히 손댔다가는 상상치도 못할 후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깜짝 놀란 여시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말대로 장월동과 한지훈 두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건드리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강릉에서 둘 중 한 명이라도 사고가 나게 되면 그 후과는 여시수가 책임져야 했다. “오해?”한지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장월동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이름을 사칭하고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돈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젠 아무런 죄 없는 여자까지 창녀로 몰아넣으려 하잖아. 그런데 이것도 오해라고 할 수 있어?”이내 한지훈의 몸에서 기운이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하더니, 5성 용급 천왕계의 기세가 순식간에 전부 열리게 됐다. 한지훈의 팔을 잡고 있던 여시수의 몸은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여시수는 더 이상 한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만 지킬 수 있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생각에 잠긴 여시수는 이내 두말없이 땅에서 일어나 방을 벗어났다. 곧 전쟁터가 될 이곳에서 그는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구경하고 있던 한 무리의 부자 상인들도 잇달아 입구로 피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가지는 않고 복도나 룸 입구에 선 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다들 과연 장 씨 집안 후계자가 더 대단한지, 아니면 한지훈이 한 수 위인지 보고 싶었다. 한편 한지훈의 몸에서 폭발한 5성 용급 천왕계의 기운을 느끼게 된 장월동은, 어느새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때는 4성 천급 천왕계였던 한지훈이 어느새 5성 용급 천왕계의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그 말은 즉, 천신의 경지까지 단 한 발자국 남았다는 것이다. 든든한 믿는 구석 덕분에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장월동의 모습과 달리, 그의 실력은 사실 그리
이내 한지훈과 담효운이 한걸음 한걸음 룸 안으로 들어섰고, 사람들은 일제히 머리를 돌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응?”영문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저 멍해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앞에 똑같게 생긴 한지훈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효운 또한 마찬가지로 멍해졌다. 여태 한 번도 마주 선 적 없었던 두 사람은 그동안 단지 서로에게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정작 마주한 순간, 그들은 비로소 서로의 깊은 유사성과 차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기운 그리고 기세조차도 매우 닮아있다는 것을. 그러나 장월동의 몸에 있는 기세는 더욱 도도하고 위엄감이 있는 반면, 한지훈은 다소 평화로워 보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여시수는 손에 술잔을 든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지훈을 마주한 장월동 또한 깜짝 놀랐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흥! 한지훈!”진짜 한지훈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이상, 장월동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술잔을 들고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는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지훈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일 테지만, 장월동은 결코 평범한 명문가 도련님이 아니었다. 필경 그는 천산 장 씨 집안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약하다 하더라도 그의 실력은 평균 이상일게 뻔했다. 게다가 장월동은 장 씨 집안의 서열 2위의 후계자로서, 가문에서 중점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장월동 역시 심상치 않은 저력을 품고 있었다. “너 대체 누구야? 뭔데 나로 위장하고 다니는 건데!”한지훈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장월동은 담담하게 웃기만 하다가 이내 술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드디어 가면을 벗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월동은 그렇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헉!”장월동의 진짜 얼굴을 똑똑히 보아낸 여시수는 깊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이 얼굴, 그는 결코 낯설지 않았다. 천산 장 씨 집안은 비
한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스... 스카이 호텔에 있어. 하지만 네 마음은 잘 알겠는데, 이렇게 네가 허무하게 죽게 놔둘 수는 없어!”담창운은 머리를 돌리고는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옆에 서있던 담효령도 간곡히 권고했다. “우연이나 지금 한창 임신 중인데 너한테 절대 사고가 나서는 안되지. 괜히 무슨 일이 생겼다가는 내가 대체 무슨 체면으로 우연이 얼굴을 봐!”“내가 말했지. 나 한지훈이라고!”그러자 한지훈이 정색하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그동안 그들이 만난 한지훈은 가짜라고 강조했다. 사실 담씨 집안사람들은 거의 모두 장월동을 한 번씩 본 적이 있다. 장월동의 기세, 그리고 각 방면의 기품으로 보아도 그는 한지훈과 같은 차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눈앞의 이 젊은이가 바로 명성이 자자한 북양 왕 한지훈이라는 것은 감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효령아, 나도 데리고 가!” 한지훈은 병상에 누운 담효운이 더 이상 아무런 큰 문제가 없고 안정까지 되찾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돌려 담효령에게 말했다. “그게...”담효령이 한창 난처해하고 있을 무렵, 담효운이 병상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너를 데리고 갈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랑 같이 죽으면 되지!”“효운아!”담효령은 당장이라도 말리고 싶었지만, 담효운은 이미 한지훈과 함께 아래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담창운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막으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령 막는다고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뒤이어 담효령이 아래층까지 쫓아갔을 무렵, 한지훈은 이미 담효운을 데리고 스카이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담효령은 급한 나머지 발까지 동동 굴렀고, 이내 급히 비서를 소환하여 차를 타고 다짜고짜 쫓아갔다. 한편 그 시각, 스카이 호텔 천자 1호의 대통령 스위트룸에서는 강릉의 고위 간부들이 차례대로 장월동에게
그 말을 들은 집사는 급히 몇 사람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2층으로 뛰어올랐다. “둘째 아가씨! 아가씨 얼른 문 열어요!” 곧이어 위층에서는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둘째 아가씨 방문이 열리지 않는데요!”집사는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뛰어 내려와 초조하게 말했다. “그럼 뭘 기다려, 얼른 문을 부수고 열어야지!”담창운은 급해난 나머지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비할 데 없이 후회하며 가슴을 치게 됐다. 사실 담효령이든 담효운이든 그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손녀들이었다. 다만 애정 표현에 서툴렀던 그였기에 그동안 항상 투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손녀가 정말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담창운은 크게 후회됐다. 한지훈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가, 담씨 집안 하인 몇 명을 한꺼번에 밀치고는 방문을 걷어찼다. 방안은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담효운의 목에는 천이 묶인 채 몸은 공중에 높이 걸려있었다. “어? 둘째 아가씨...”집사가 막 나서려 하자, 한지훈이 먼저 방으로 뛰여 들어 손을 들어 담효운을 풀어주었다. 어느새 담효운의 몸은 좀 차가워졌다. 한지훈은 급히 손을 뻗어 담효운의 맥박을 살폈다. 담효운의 맥상은 이미 매우 미약하게 뛰고 있어 10분만 늦었더라도 저승길을 갈 뻔했다. “아가씨! 둘째 아가씨!”이내 하녀 몇 명이 급히 달려와 담효운을 침대에 눕혔지만, 그들이 어떻게 불러도 담효운은 여전히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곧이어 담창운과 두 중년 남자도 방문에 다가섰다. 그중 한 중년 남자는 쏜살같이 담효운의 침대 앞에 달려들어 초조하게 소리쳤다. “효운아! 담효운! 너 이렇게 죽으면 안 돼! 나한테 딸은 너 한 명뿐인데!”“효운아!”담창운은 눈물을 훔치며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와, 침대에 누워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담효운을 보면서 통곡하고 말았다. “만약 이대로 정말 죽게 된다면, 당신들 모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한지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