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설은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엄진우가 바지를 벗는 순간, 그녀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조연설은 당황하며 말했다. “일부러든 아니든 넌 날 자극했어.” 짧은 대답을 끝으로 엄진우는 다시 늑대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조연설은 그의 눈에 자신은 단지 순진한 양처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엄진우는 그제야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일이다... 우림이가 걱정할 텐데... “연설아, 나 돌아가야 해.” 엄진우는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연설은 사라지고 베개 위에는 한 장의 쪽지만 남겨져 있었다. “어젯밤 일은 미안해. 예우림 씨와의 관계에 영향받지 않길 바랄게. 먼저 갈 테니까 나중에 봐.” 엄진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날 나쁜 자식이라고 하더니 이 여자가 더 나쁘네. 이렇게 날 버리고 떠나? 어디 가는 지도 안 알려주고.”대신 번거로움은 많이 줄어들었다. 엄진우는 서둘러 예우림과 함께 사는 임대 아파트로 돌아갔다. 이른 시간이라 엄진우는 예우림이 당연히 자고 있을 거로 생각하며 조용히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는 순간, 싸늘하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얼굴에는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먹구름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엄진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일찍 일어났네?” “나 밤 샜어.” 예우림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집에 안 들어왔으니까.” “미안해, 우림아. 금 회장님 쪽에 급한 일이 있어서 도와주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엄진우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예우림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근데 나 이미 금 회장한테 전화해 봤어. 널 본 적 없다던데?” 엄진우는 헛기침을 하며 변명했다. “켁켁! 사실 회사 업무를 성안에 확장하려고 바빴어...” “잠깐!” 예우림은 그의 변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왜? 지쳐서 더는 못 하겠어?” 예우림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진우는 적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너무 방심했던 탓에 진퇴양난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예우림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나 이미 눈치챘어. 역시 남자들은 믿을 수 없어. 매일 즐길 줄만 알았지... 난 너 기다리느라고 밤새 잠도 못 잤단 말야. 그런데 넌 밖에서 여자를 만났어. 나가! 너랑 말하기 싫어!” 예우림은 엄진우를 쫓아내며 말했다. 그녀의 차가운 얼굴에 엄진우는 덜컥 겁이 났다. 역시 빙산녀다. 게다가 그의 직속 상사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쓸쓸히 물러났다. 하지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예 대표.” “뭐야? 또 변명하게? 듣기 싫어.” 예우림은 그의 변명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났어. 당신 생일날 선물을 잊었더라고.” 엄진우는 재빨리 방에서 나가 옷장을 뒤적거리더니 1분도 안 돼서 방긋 웃으며 예우림의 방으로 돌아왔다. “예 대표, 잠깐 나랑 같이 나갈까? 깜짝선물을 준비했어.” 예우림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런 유치한 수작은 그만둬. 내가 그깟 선물 따위에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 난 절대 어린애처럼 그런 거에 넘어가지 않아. 내가 정말 그렇게 유치한 사람이었다면 네 상사가 되지 못했겠지.” 그러자 엄진우는 괜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나 갈게. 선물은 그냥 버려야겠다.” 엄진우가 돌아서려 하자 예우림은 급히 그를 불렸다. “잠깐! 수작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선물을 버리라고 한 건 아니야.” “그렇다면 내 선물이 궁금하다는 거네?” 엄진우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히쭉 웃었다. 그러자 예우림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두 눈을 부릅뜨며 그를 노려보았지만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응...” 엄진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공주님, 나와 주세요.” 예우림은 싸늘하게 웃으며 그를 따라 방을 나섰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건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것이 예우림이 여태 성안에 머무른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는 예흥찬을 무너뜨리기 어렵지만 성안에 외부 지원을 얻을 수 있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그분이 널 도와줄 거라고 확신해?” 엄진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예우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확신은 없어. 하지만 희망이 있는 한 난 시도해 볼 거야. 시도하지 않으면 완전히 불가능하니까.” 그 말에 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예우림이 말했다. “그럼 차로 움직이자.” 그러자 엄진우는 다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 “우림아, 오늘은 지하철로 가는 건 어때?” 현재 성부와 9대 수진 가문, 그리고 드래곤 크루까지 모두 그의 행적을 쫓고 있는 중이다. 차로 이동하면 너무 눈에 띄기에 혹시라도 무도라곤 하나도 모르는 예우림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 예우림은 잠시 망설이더니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너 또 무슨 사고라도 쳤어?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잔뜩 겁먹은 표정이네. 뭐 그래도 홍의회를 혼자서 처리한 유명 인사니까, 지하철은 사람이 많아서 말만 조심하면 안전하긴 할 거야.” 예우림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이내 집을 나섰다. 비록 황덕진은 엄진우를 극도로 원망했지만 그렇다고 공공 자원을 모두 동원해 그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성안에서 가장 큰 인물은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은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 엄진우와 예우림은 간신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갑자기 예우림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엄진우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뒤에 있는 노인 말이야. 자꾸 나한테 몸을 기대려고 해. 나 엉덩이에 자꾸 징그러운 것이 닿이는 것 같아.” 엄진우는 깜짝 놀랐다. 키가 크고 몸매가 좋은 예우림이 미니스커트까지 입고 있으니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몰래 쳐다보기만 할 뿐 감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굳어졌다. 노인에 대한 배려심으로 겨우 화를 억누르고 따지지 않은 건데 오히려 한발 물러서니 더 대담하게 다가와 예우림의 옆에 앉으려고 하다니? 날 뭐로 보고. “젊은 총각, 내 말 안 들리나?” 그러자 상대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난 올해 예순이 넘어서 몸도 아프지 않은 구석이 없다네. 그런데 젊은 총각이 날 이렇게 서 있게 할 건가? 어른을 공경하라고 부모님이 안 가르쳤나?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싹퉁머리가 없어!” 노인의 말에 주변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젊고 건강한 사람이 왜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있어? 노인한테 양보해야지.” “어르신이 정중하게 부탁하셨는데도 저리 앉아만 있다니, 정말 예의가 없군.” “요즘 세상 참 좋아졌어. 젊은것들은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 사람들의 부정적인 목소리에 예우림의 얼굴은 점점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엄진우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자리 양보하고 우리 그냥 서서 가자. 괜히 시끄러운 일 만들어서 뭐 해.” 하지만 엄진우는 미동도 하지 않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는 노인만 앉으라는 규정이 없어. 그리고 어른을 공경하는 건 미덕이지만 강제로 요구하는 건 성질이 달라. 이 자리는 내가 앉았으니 내가 내리기 전까진 내 자리야. 내가 앉고 싶으면 앉고, 양보하고 싶으면 양보하는 거지. 양보하면 호의고, 안 하면 내 권리야. 그러니 아무도 나한테 양보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어.” 게다가 상대는 일반 노인이 아니다. 엄진우의 여자를 추행하려는 더러운 노인이다. 내 여자를 추행하려고 나한테 자리를 양보하라고? 웃기는 소리. 다음 생에나 가능할 거야. 아니, 다음 생에도 절대 안 되지. 엄진우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인은 바로 소리를 치며 말했다. “다들 보시게! 여기 이 키가 180센티는 훌쩍 넘는 젊은이가 예순이 넘는 날 무시하고 욕까지 한다네. 아니, 어찌 노인에게 이런단 말인가!
사람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두 명의 직원은 바로 안색을 찌푸리며 태도를 바꿨다. “아니, 퍼런 대낮에 노인을 괴롭힌다고요? 이게 지금 무슨 짓이죠?” “젊은 사람이 왜 노인과 자리를 다퉈요?” 그러자 엄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여긴 내 자리니까요.” “됐어! 완전 또라이네. 요즘 어린 것들은 정말 질서가 없어.” 두 직원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노인 어디 계시죠?” 시선을 따라가던 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변했다. “어르신!” 이게 어디 평범한 노인인가? 이 사람은 성안 지하철 회사 부사장, 여 사장의 아버지다. 지하철 회사는 엄연한 국유기업으로 부사장이라는 직위는 아주 높은 자리였다. 두 사람은 바로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연세도 많으신데 왜 집에 좋은 차는 안 타고 지하철을 타신 거죠?” “흠흠.” 정체가 드러난 노인은 가식적으로 대답했다. “난 그냥 북적한 것이 좋아. 특히 지하철은 사람 냄새가 나서 좋지. 집에 차가 많다고 내가 지하철을 못 이용하나?” 사실 지하철에는 스타킹을 신은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건 여씨 어르신의 취미 생활이다. 특히 여름이 되면 여자들은 땀을 흘려 얇은 속옷이 종종 비치기도 했는데 여씨 어르신은 그 모습을 보려고 종종 지하철을 이용했다. 섹시함은 여씨 어르신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아니요, 당연히 그 말이 아니죠. 어르신은 퇴직 공무원이시니 지하철 공짜로 탈 수도 있으시잖아요.” 두 직원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상황이죠?” 여씨 어르신은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눈을 반쯤 감으며 엄진우를 바라봤다. “내가 저 자리에 앉고 싶다고 했는데 저놈은 나에게 모욕을 줬어.” “아니, 그럴 리가요!” 두 직원은 버럭 화를 내며 엄진우를 향해 호통을 쳤다. “어른을 공경하라고 못 배웠어? 키도 큰 사람이 어르신과 자리를 다투다니, 그러다 당신 천벌 받아!” “명령이야. 당장 자리 비워!” 그러자 엄진우는 고개를 쳐들고
하지만 사람들의 예우림의 말을 그저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두 여자는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고 웃었다. “흥. 그래도 남자 친구라고 편은 드네.” “예쁘고 섹시하다고 모든 남자가 당신 주위를 맴돈다고 생각해?” “노인에게 그런 모욕을 주는 건 도가 지나친 거야. 이분 연세를 봐! 그런데 흥미가 있겠어?” “저 남자 갑부야? 역시 겉모습만 봐서는 몰라. 저 여자 보아하니 깨끗한 여자는 아닌 것 같아.” 두 여자는 악의 가득한 표정으로 예우림을 조롱하며 웃었다. 워낙 그녀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상대가 성안 지하철 회사 부사장의 아버지라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 기회에 여씨 어르신에게 눈도장을 찍는다면 그녀들도 신분이 상승할 테지? 예우림은 쌀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창해시 지성그룹 대표 예우림이에요. 인터넷 검색하면 내 이름 바로 나와요. 그런데 내가 돈 많은 남자를 가릴 더러운 여자로 보인다고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죠?” 예우림의 말에 두 여자는 바로 안색이 굳어지더니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사실이다! 해외파 박사, 상장 회사의 대표, 그리고 상업계의 미녀. 거의 모든 평범한 여자들이 꿈꾸는 타이틀을 그녀는 전부 소유하고 있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모든 것을 이뤘다니. 하지만 두 여자는 그저 평범한 중졸 학력에 겨우 200만 원의 월급으로 생활하는 볼품없는 여자들이었다. 두 여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거렸는데 말투도 180도 변해버렸다. “우... 우린 그저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말한 거예요. 보기 안쓰럽잖아요!” 그러고는 곧바로 화살을 엄진우에게 돌렸다. “찌질한 남자네! 잘생긴 얼굴 하나 믿고 부자 여친을 사귄다고 잘난 척하는 거야?”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이 당신 같은 인간이야.” “먹고 사는 것만 아는 기생충 같은 놈. 쓸모도 없고 인간성도 없어! 당신 그러다 부자 여친한테 언젠가는 차여!” 두 여자는 엄진우를 향해 화풀이를 했
엄진우의 말에 지하철 내부는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예우림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엄진우를 멍하니 바라봤다. “거짓말이라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워낙 소심해서 자리를 양보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거짓말했어요.” 여씨 어르신도 잠시 멍해졌다. 예우림이 신분을 밝히고 여씨 어르신은 자기 명성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진우가 이렇게 말해주니 금세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여씨 어르신은 엄진우가 지하철 회사 부사장이라는 아들을 가진 자기 신분에 겁을 먹고 물러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대단한 회사 대표라고 해도 성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에게 잘 보여야 한다. 성안은 호랑이라도 잠자코 있어야 하는 곳이다. 게다가 엄진우 같은 회사 대표는 널리고 널렸다. 예우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진우, 당신 왜 그래?” 엄진우의 말 한마디에 예우림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엄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표님, 제가 잘못한 게 맞으니 굳이 변명할 필요 없어요. 이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 맞아요.” 그 말에 주변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뭔 반전이 이렇게 빨라? 영화도 이 정도는 아니겠네.” “자산 20억의 젊은 대표고 7년 동안 북강을 지킨 군인이라더니, 수준 떨어지네.” “오늘 진짜 재밌는 구경거리를 만났어. 저 상장 회사의 대표라는 여자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니, 결국 다 거짓말이네?” 사람들은 침을 튀겨가며 말하기 시작했고 엄진우와 예우림은 모든 비난의 중심이 되었다. 두 여자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까 당했던 설움을 되갚으려고 했다. “당당하게 말하더니 결국 노인과 자리를 다투는 싹퉁머리였잖아!” “예의와 교양은 지위나 재력, 그리고 학력과는 상관없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네. 이런 건 타고나는 거지.” 화가 난 예우림은 일그러진 안색으로 엄진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뭐 잘못 먹었어? 왜 거짓말해? 너 분명 봤잖아
“엄진우!” 그 말에 제대로 화가 난 예우림은 손을 들어 엄진우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엄진우의 얼굴에 그녀의 손바닥이 고스란히 닿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너 미쳤어?” 예우림은 더는 그를 상대하기 싫어서 다시 자리에 앉아 엄진우에게 등을 돌렸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두 여자는 입을 가리고 비웃었다. “여자 친구도 더는 못 봐주겠나 봐. 저 남자 진짜 구제 불능이야.” 하지만 엄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씨 어르신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신경 쓰지 마세요. 여자는 워낙 감성적인 동물이라 이따가 제가 잘 달래면 돼요.” 여씨 어르신은 여전히 예우림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음흉한 눈빛을 보냈다. “참으로 경국지색의 요물이로군. 젊은 총각 운도 좋아. 나였다면 하루에 열 번이라도 죽는 게 아깝지 않았을 거네.” 엄진우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어르신의 양아들이 되면 저 여자는 어르신의 며느리가 되는 거죠.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위해 애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러자 여씨 어르신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게 사실인가?” “물론이죠.” 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댁으로 데리고 갈게요. 며느리로서 가끔 시아버지도 모셔야죠.” “생각지도 못했는데, 자네 아주 속도 깊군.” 여씨 어르신은 크게 기뻐하며 엄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다면 빨리 무릎 꿇고 절부터 올리게. 걱정 마, 내가 자네를 양아들로 삼으면 좋은 일이 끊기지 않을 거야. 내 아들이 자네의 일을 많이 도울 테니 자네는 앞으로 꽃길만 걸으면 돼.” 엄진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 양아들 바로 큰절 올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엄진우는 바로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두 직원은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처음엔 우릴 뭐라고 하더니 결국 제일 개처럼 보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