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바로 우아한 폭군이야! 이런 형용사만이 엄진우라는 우아하면서도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남자를 설명할 수 있다. 지하 세력을 황덕진 입에 보내 그 가족을 ‘보호’하게 하다니, 이런 일은 엄진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최근 급부상한 강남성의 지하 황제 독고준을 엄진우가 마음껏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강남성 전체를 쑤시고 다니며 무법자처럼 행동하는 독고준이 엄진우 앞에서는 마치 키우는 강아지처럼 순종적이다. 황덕진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예강호 당장 풀어줄 테니 우리 가족은 풀어줘!”그러자 조연설은 기쁨에 겨워 말했다. “잘됐다. 우리 빨리 가자.” 하지만 엄진우는 조연설을 제지하고 여유작작하게 말했다. “나 지금 하나도 안 급해. 일단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조연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몇 가지 문제?” 그러자 엄진우가 평온하게 대답했다. “500억은 더는 줄 필요가 없어.” 황덕진은 눈앞까지 굴러왔던 먹잇감을 놓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고통스럽게 말했다. “좋아.” 엄진우가 계속해서 말했다. “예강호 일에 대해 절대 드래곤 크루와 9대 수진 가문에 말해선 안 돼. 그냥 탈옥한 거로 해.” 황덕진의 입가에는 경련이 일어났다. 이건 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쓰라는 말이다. 상관없다. 그는 성총리니까. 나중에 대체양을 하나 찾으면 되니까. 결국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연설은 엄진우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본인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승기를 잡는 그의 모습에 경외심이 들었다. 그의 차분하고 위엄있는 태도에 조연설은 엄진우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하네? 평사원 출신의 일반인에게 어떻게 저런 아우라가?” 엄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 한 가지... 신발 벗고, 눈 감아.” “그건 왜?” 두 가지 요구는 비록 치명적이었지만 예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세 번째 요구는 황당 그 자체이다
“먹어.” 엄진우는 황덕진의 머리를 더 세게 밟았는데 조금도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황덕진이 조연설에게 했던 과도한 행동을 이제 그는 열 배로 되갚아줄 생각이다. “먹을게! 먹을게!” 황덕진은 머리가 흐트러진 채 성총리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잃고 손으로 남은 음식들을 쓸어 모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식물 속에는 유리 조각들도 섞여 있었다. 그 모습에 조연설은 헛구역질을 해댔다. 대단한 강남성의 총리가 머리를 밟힌 채 바닥에 널브러진 음식물을 강제로 먹게 되다니, 정말 충격 그 자체이다. “엄진우, 이건 말도 안 돼...” 조연설은 혼자 중얼거렸다. 엄진우가 짠 판은 한 치의 빈틈도 없어 조연설은 냄새조차 맡지 못했다. 그제야 엄진우는 천천히 발을 떼며 말했다. “길 안내해!” 황덕진은 심하게 기침을 하며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섰는데 더러운 꼴은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벌레처럼 역겨웠다. 그의 얼굴은 온통 기름과 피로 뒤범벅이 되었다. 황덕진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엄진우, 네 가족들까지 내가 전부 죽여버린다.” 그러자 엄진우는 황덕진의 머리통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 “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그럼 계속 먹어.” “그만! 그만!” 그러자 황덕진은 완전히 굴복하며 말했다. “준비할 시간을 줘. 이 상태로는 밖에 못 나가!” “3분.” 엄진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 시작이다...” 황덕진은 어쩔 수 없이 대충 정리를 한 뒤 엄진우와 조연설을 데리고 성부의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여기는 중화력과 인공지능 기술로 엄중히 경비 되는 최고 등급의 감옥이다.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로 불리는 강남 제일 폭도인 예강호는 지금 이곳에 감금된 채 철저한 경비 속에서 철통같이 감시당하고 있었다. 감옥은 천자호, 지자호, 인자호로 나뉘는데 인자호에는 위험한 범죄자들이, 지자호에는 사형수와 초강력 범죄자들이, 천자호에는 정치범이 수감되어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총리님!” 황덕진을 발견한 두 명의 간수는 순간 사색이 되어 다리를 벌벌 떨었다. 그들은 손에 들린 형구를 던져버리더니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총리님, 이 더러운 곳까진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린 아무런 연락도 받은 적 없는데...” 그러자 황덕진은 싸늘하게 말했다. “지금 알려주면 돼? 아니면 사무실로 가서 서명이라도 할까?” “아닙니다. 그 말이 아닙니다. 성부에서 가장 높으신 분인데 서명이라뇨.” 두 사람은 겁에 질린 채 머리를 조아렸다. 이때 조연설이 큰 소리로 말했다. “데리고 나갈 테니까 당장 풀어!” “네? 예강호를 데리고 풀어주라고요? 성부에서 직접 지명 수배한 악명 높은 범죄자를 어떻게 함부로 풀어줍니까?” 두 사람은 잔뜩 겁에 질려 말했다. “풀어줘. 내가 허락했다.” 황덕진이 가볍게 기침하며 명령했지만 두 간수는 서로 눈치를 보며 망설였다. “총리님, 위험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뭐야?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야?” 망설이는 그들의 모습에 황덕진은 분노가 솟구쳤다. “우리가 어찌 감히...” 두 사람은 다급히 일어나 예강호를 풀어줬다. 엄진우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자 조연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진우! 넌 양심도 없어? 예강호 네 형님이라며? 이 자식들이 예강호를 학대하고 있는데 왜 한마디도 안 해? 냉혈동물도 너보다는 낫겠다!”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형님은 지존종사야. 고작 두 간수가 이렇게 만들 수는 없어. 이상해.” 말라죽은 낙타도 말보다 큰 법이다. 시천민에게 당해 폐인이 됐더라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연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 형님이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맞았는데도 넌 지금 진짜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거야?” 조연설은 이제야 풀려난 예강호를 급히 일으키며 말했다. “예강호 씨, 고생 많았어요. 엄진우와 함께 당신을 데리러 왔으니 함께 강남을 떠나요. 여긴 위험해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상대 머리를 덮은 검
“뭐라고?” 엄진우는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황덕진의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면, 황덕진은 분명 그에게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이다. 황덕진의 구역에 있는 지금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할 것이다. “엄진우, 뭐야? 무슨 일이야? 우리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엄진우의 표정에 황덕진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엄진우는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부하들이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야. 당신 가족, 안전해.” “다행이군.” 황덕진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한시름 놓았다. 가족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그는 어떤 수모도 다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이때, 그의 전화기가 울리고 사진 몇 장이 전송되었는데 그것은 황덕진의 가족이 참혹하게 죽은 모습이었다. “이건...” 황덕진은 충격에 휩싸여 순간 기절해 버렸다. “총리님!” 두 간수는 사색이 되어 급히 외쳤다. “사람 살려! 총리님이 심장마비로 쓰러지셨어. 빨리 구급차 불러!” 순간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조연설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뭘 본 거지? 멀쩡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쓰러진 거야? 심폐소생술과 인공 호흡을 배웠으니까 일단 응급조치부터 해봐야겠어.” 하지만 엄진우는 단호하게 그녀를 제지하더니 그녀를 끌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엄진우, 왜 그래?” 조연설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우린 함정에 빠졌어. 이건 함정이야.” 이내 황덕진은 간수들의 응급조치 덕분에 다시 의식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의식을 찾은 황덕진은 혈안이 된 채 주변을 살피며 소리를 질렀다. “엄진우와 조연설 어디 갔어?” “방금 떠났습니다.” 한 부하 직원이 말했다. “누가 보내라고 했어?” 황덕진은 미친 듯이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것들이 내 가족을 죽였어! 난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아! 당장 사람을 소집해서 두 사람 죽여버려!” 쿵쾅쿵쾅! 두 사람
상황은 최악으로 번졌다. 드래곤 크루, 성부와 9대 수진 가문의 세력이 한데 모였다. 이건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준비된 덫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던 조연설은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 엄청난 공포와 압박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멀리서 보이는 수백 명의 무도종사들만으로도 그녀를 백 번은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사방에서 적군이 몰려와 그들을 포위하려고 했다. “연설아.” 엄진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 “나 믿을 수 있겠어?” “뭐?” 조연설은 겁에 질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 감아.” 엄진우의 마른 얼굴에 순간 차가운 살기가 드리워졌다. 조연설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엄진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두 손을 엄진우의 손목에 얹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엄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겠어.” “죽지 마! 약속해, 죽으면 안 돼.” 조연설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늘 강인하던 여자의 눈물에 엄진우는 놀랍기도 우습기도 했다. “장난이야. 내가 정말 죽을 거라고 생각해? 조 청장, 난 안 죽어. 난 꼭 살아서 네 엉덩이 때릴 거야.” 평소 같았으면 조연설은 엄진우를 발로 걷어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울고 싶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엄진우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난 내가 이렇게 나약한 게 너무 싫어. 너한테 아무런 도움도 못 되잖아.” 그녀는 이제야 자기가 이 남자를 진심으로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그와 생사를 같이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엄진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니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도움이야. 원래 내 일이었어. 오늘 넌 날 위해 많은 걸 견뎌줬어. 오늘 은혜는 난 절대 잊지 않아. 네가 나에게 별 하나를 따줬으니 난 너에게 별이 가득한 하늘을 선물할 거야.” 조연설을 달랜 후 엄진우
“엄진우,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엄진우가 보이지 않자 조연설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갔다. 아무리 시체 더미를 뒤져도 그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수천 구의 시체 중 심지어 몇몇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러니 설령 찾더라도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기진맥진한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쁜 자식... 죽지 않는다고 약속했잖아. 왜, 왜 날 속여? 너 강하잖아... 혼자서도 도망칠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나 때문에 굳이 싸운 거야...” “콜록콜록.” 이때 조연설의 뒤에서 익숙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엄진우?” 머리를 돌리자 새 옷으로 갈아입은 엄진우가 멀쩡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너... 안 죽었어?” “네가 아니었다면 난 내 매력이 이렇게 강한 줄 몰랐어.” 엄진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내가 어떻게 죽어.” 쿵! 조연설은 엄진우의 가슴을 힘껏 내리치더니 빨개진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 “나 놀렸어? 안 죽었잖아!” 엄진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 “피가 너무 많이 묻어서 냄새날까 봐 저기 사거리 옷 가게로 가서 급히 하나 샀어.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그 말에 조연설은 울음을 터뜨리며 엄진우의 품에 파고들었다. “나쁜 자식, 흑흑흑! 죽은 줄 알았잖아!” 늘 강인한 여자가 지금은 마치 길을 잃은 사슴처럼 연약하게 느껴졌다. 엄진우는 미소를 지은 채 애정 어린 손길로 그녀의 코를 꼬집었다. “이야~ 우리 공평무사한 조 청장이 알고 보니 울보였네. 코가 빨개질 정도로 울다니.” 조연설은 서러운 듯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나쁜 자식아!” 엄진우는 입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뭐? 나쁜 자식? 내가 왜 나쁜 자식이 된 거지? 조연설은 그제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다. 근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황덕진은 화가 나서 온몸을 떨며 말했다. “우리 집에 들어가서 내 가족을 납치한 건 네 사람들이야. 그런데 네가 한 짓이 아니라면 누가 했겠어? 시치미 뗄 생각하지 마!” 엄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평소 음모만 연구하는 성총리라는 사람이 이런 계략도 못 알아보다니. 내가 당신 가족을 죽일 이유가 뭐겠어? 내 동기가 뭐지? 만약 당신을 통제하려고 했다면 난 당신 가족을 납치하는 거로 충분했어.” 엄진우가 조리 있게 말했다. “만약 당신을 상대하려고 했다면 바로 당신을 죽이면 가장 쉬웠을 텐데 왜 굳이 멀리 있는 당신의 가족을 죽였을까?” 엄진우의 일리 있는 말에 황덕진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엄진우가 조연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됐다. 당신이 알아서 판단해. 눈앞의 허상에 빠져 진실을 놓치지 마.” 그는 조연설을 데리고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천민은 드래곤 크루의 멤버들과 함께 그 뒤를 바싹 따랐다. 두 사람은 비록 모두 무도종사지만 조연설은 수련 정도가 낮아서 엄진우는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양측의 간격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시천민이 거의 따라잡을 때쯤, 조연설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말했다. “엄진우, 난 너에게 짐밖에 안 돼. 내가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 너 혼자라도 빨리 도망가.” 그 말에 엄진우는 자리에 멈춰서서 진지하게 말했다. “가도 같이 가고, 아니면 남아서 같이 싸우는 거야.” 그 말에 조연설은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쁜 자식! 너 왜 자꾸 날 울려!” 오늘 그녀가 흘린 눈물은 평생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러자 엄진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내가 너 지켜준다고. 드래곤 크루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내 여자를 해치려 한다면 내가 가만 안 둬.”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이미 가까이 다가온 시천민을 노려보았고 시천민 역시 그의 시선을 느끼고 바로 응시했다. 두 사람의 시선에는 불꽃이 튀기 시작했고 불꽃은 이내 큰 불로 번졌다. “이
“더 늦으면 안 됩니다!” 독고준은 다급히 말했다.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조연설의 발걸음을 따라 달려갔다. 아무리 시천민이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해도 독고준 등 사람들이 몇 분이라도 지체해 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모든 것이 오윤하가 말한 그대로였다. 골목에는 비밀 통로가 있었고 그 비밀 통로는 교외의 한 호텔로 이어졌다. 게다가 방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 엄진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윤하는 마치 뛰어난 군사 전문가처럼 모든 것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여자다...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걸까? 호텔에 도착한 후,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조연설은 신발을 벗고 침대에 몸을 던지더니 머리끈을 풀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긴 머리는 허리까지 흘러내려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나가! 나 조용히 쉬고 싶어.”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엄진우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다. “조연설, 방이 하나뿐인데 나한테 나가라고 하면 난 어디서 자?” “상관없어. 그러니까 나 귀찮게 하지 마!” 조연설은 분노에 차서 말했다.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복도로 나갔고 방을 나서자마자 문이 쾅 하고 닫히더니 곧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엄진우는 입을 삐죽였다. 이 여자 뭐지? 얼굴이 너무 쉽게 바뀌잖아.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 그녀가 없으면 신경 쓸 일이 줄어든다. 그는 다른 방으로 곧장 걸어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이내 전화기 너머로 요염하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지금이 몇 신데 전화질이야?” 전화기 너머로 상대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격렬하게 들려왔다.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나야.” 최담비는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진우? 엄... 엄진우 님? 분부할 일이라도 있으세요?” “주소 찍어줄 테니까 반드시 20분 안에 내 앞에 나타나야 해.” 엄진우가 명령조로 말했다. “그리고 이건 너 혼자 알아야 해. 만약 비밀을 지킬 수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