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상대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모골이 송연해졌다. 강남성 수십 명의 지하 거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게다가 하나같이 남자가 말했던 그 형이라는 사람보다 더욱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이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남자의 형은 고작 지렁이 정도라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수십 명의 지하 거물들이 엄진우의 뒤에 서서 허리를 굽힌 채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대체 정체가 뭐지? 남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무기력하게 말했다. “예우림은 예정아한테 팔렸어요.” 그 말에 엄진우는 화가 솟구쳤다. “팔렸다고? 뭘 팔렸는데? 똑똑히 말해!” “제가 운영하는 이 클럽은 술장사 외에도 각종 불법 사업을 포함하고 있어요. 마약도 판매하고요, 인신매매도 해요. 예정아는 나와 상의 끝에 예우림을 인신매매 조직에 팔았어요. 하지만 그 인신매매 조직은 꽤 신비스러워서 내막은 오직 예정아만 알고 있죠.” 엄진우는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예정아 지금 어딨어?” “클럽 제일 안쪽의 제 방에서 쉬고 있어요...” 상대는 겁에 질려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이놈은 지금 예정아의 유혹에 푹 빠져있다. 엄진우가 물었다. “예우림을 팔고 넌 얼마를 받았지?” “얼마 안 돼요. 1억 주고 팔았는데 그중 2천만 원은 예정아에게 주고 나머지는 제가 챙겼어요.” 남자는 겁에 질린 채 말했다. 엄진우가 계속 물었다. “너 그 여자 다쳤어?” “다치고 싶었는데 반항이 너무 심한 데다 절 다치게 했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예우림 몸에 상처라도 생길까 봐 멈췄어요...”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 엄진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남자는 감히 거짓말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 엄진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독고 회장, 이놈은 독고 회장이 알아서 처리해.” “저기요, 전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는데, 제발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다급히 말했
엄진우의 사나운 모습에 예정아는 제대로 겁에 질려 악을 쓰며 발버둥을 쳤다. “밖에 누구 없어? 사람 살려! 당장 이 새끼 죽여버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사람은 피로 물든 독고진이었다. 독고진이 말했다. “엄진우 님, 클럽 사장은 방금 자결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정아는 제대로 충격을 받았다. “죽었다고? 그럴 리가! 빗소리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데, 경호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이 죽어?” 그러자 독고진이 맞받아쳤다. “경호원들은 전부 죽었어. 그리고 클럽 사장이 말하는 지하 거물도 방금 우리에게 죽임을 당했지.” 예정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죽었어? 전부 죽었다고? 순간 그녀는 마치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큰 소리로 외쳐댔다. “나 예씨 가문 아가씨야. 날 건드리면 예씨 가문을 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당신들이 감히 예씨 가문을 건드릴 수 있겠어?” 예흥찬은 그녀에게 예우림만 처리하면 예씨 가문의 상속자 자리를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즉 예정아는 지금 예씨 가문의 아가씨라는 얘기다. 하지만 엄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예씨 가문 아가씨? 좋아. 예흥찬에게 널 인정하는 지 한 번 물어보지, 뭐.” 엄진우는 스피커 폰을 켠 채 바로 예흥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 영감. 당신 손녀 예정아 말인데, 지금 내 손에 있어요. 예정아가 당신 손녀 예우림을 해치고 예씨 가문 아가씨라고 우기던데, 맞아요?” “예씨 가문 아가씨는 개뿔! 천박한 년이 감히 어딜 노리고!” 예흥찬은 가차 없이 부정했다. “엄진우, 예정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나와는, 그리고 우리 가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그러니 네가 알아서 처리해!” 예흥찬의 말에 예정아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예흥찬! 예우림만 처리하면 분명 나 인정하고 상속자 자리를 넘기겠다고 했잖아!!” “미친년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엄진우, 너 설마 그깟 몸 파는 여자의 말을 믿
“홍의회? 권세 있는 재벌가 도련님들이 즐기기 위해 만든 조직 아니야?”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독고 회장, 사람을 데리고 성안으로 가서 그놈들 작살내버려.” 그 말에 독고준은 온몸을 벌벌 떨며 무릎을 털썩 꿇더니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엄진우 님, 홍의회와 맞짱 뜨면 우리는 한순간에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같이 어두운 세계에서 살아온 놈들은 보통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 괜찮지만 홍의회와는 전혀 승산이 없습니다.” 그러자 예정아는 크게 웃어댔다. “하하하하! 예우림은 홍의회에 들어갔고 거물들의 노리개가 되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완전히 끝장이라고!” 화가 난 엄진우는 예정아를 향해 발을 휘둘렀고 예정아는 당장에 배가 찢겨진 채 장이 흘러나오고 머리가 깨져서 죽어버렸다. 살벌한 장면에 옆에 있던 몇몇 부하들은 저도 몰래 허리를 굽힌 채 구역질을 해댔다. “그래, 정 그렇다면 내가 직접 방법을 생각하지.” 화가 난 엄진우는 바로 뒤돌아 떠나버렸고 독고진 등 사람들은 뒤에서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벌벌 떨었다. 엄진우는 먼저 조연설을 찾아갔다. 홍의회라는 이름에 엄진우는 깜짝 놀라더니 몸을 비틀거렸다. 집행청은 물로, 성총리가 나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엄진우는 청용을 불렀고 청용도 미간을 찌푸렸다. “명왕님, 홍의회는 돈 많은 또라이들의 조직으로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그들 주변에는 강남성 최강의 전투력이 모여있습니다. 전 비록 군사를 소집해 홍의회에 쳐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강남성이 대혼란에 빠질까 걱정 됩니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뷔젠트가 기회라도 노리고 숨어 들어온다면...” 청용의 말을 들은 엄진우도 걱정을 금치 못했다. “나 역시 뷔젠트가 이 기회를 노릴까 봐 망설이고 있는 거야. 내가 명왕의 신분으로 나선다면 뷔젠트 조직에게 내 정체를 알리는 것과 같아. 그러면 놈들은 급한 마음에 더 미친 짓을 할 수도 있어.” 지난번 뷔젠트 조직에서 4호 화합
“조건?” 엄진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말해.” “당신의 두 여자, 예우림과 소지안을 죽여요.” 오윤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엄진우는 깜짝 놀랐다. 오윤하는 어느새 엄진우의 사생활까지 전부 캐버렸다. 예우림과 소지안의 존재까지 다 알고 있었다니. 엄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그러자 오윤하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와 결혼해요.” 엄진우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조건을 말해. 이게 다 뭐야?” 그러자 오윤하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뭐야? 명왕님도 당황하는 날이 있네요?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명왕님은 북강에서 폭군이라고 불리는 존재라고 하셨어요. 하룻밤 사이에 10만 적군의 머리를 베어 북강에서 가장 큰 강을 피로 물들였다고 하던데.” 엄진우는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다 과거일 뿐이야. 지금의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 오윤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엄진우를 바라봤다. 평범한 사람? 웃겨. 당신은 명왕이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 어딜 가도 만인의 주목을 받는 존재, 내 약혼자라고. 내 남자가 평범한 사람이 되길 꿈꾼다고? 오윤하는 엄진우의 다리에 앉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엄진우의 손등을 살살 간질렀다. “역시 피바다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 몸이 아주 좋네요. 꼭 먹어보고 싶어요.” 엄진우는 입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오윤하, 장난하지 마.” 오윤하의 행동은 엄진우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려는 행동이다. 하지만 지금 엄진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예우림의 안전뿐이라 전혀 욕망이 생기지 않았다. 이때 오윤하는 갑자기 엄진우의 귓가에 입김을 불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의회는 데리고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이유는 알려줘야겠죠?” “놈들은 강남에서 횡포를 부리는데 남녀 구분 없이 모두 그들의 표적이 되었지. 난 민중을 위해 그들을 처단하고 싶어.” 엄진우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그 말 사실이에요
그래, 바로 그거야. 안 하고 미칠 것 같지? 그녀의 유혹적인 모습은 어떤 남자가 보더라도 야수 본능이 깨어났을 것이다. 오윤하도 자기의 풍만하고 섹시한 몸매를 자랑하며 남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왕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아무리 더러운 수단을 써도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때, 엄진우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놀 만큼 놀았지?” 오윤하는 흠칫하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아무렇지 않은 거죠?” “하하! 경성환락?” 엄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빈정댔다. “내가 북강을 지키며 당신 같은 여자는 많이 봤고 어떤 수단도 다 겪어봤지. 그래서 난 이미 백독불침의 체질이야. 이 정도 양의 최음제는 최대 30초면 난 완전히 정화할 수 있어.” 엄진우에게 이 정도 수단은 세 살짜리 아이의 소꿉놀이와 같았다. 엄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 꽤 오윤하 당신 체면 세워줬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적당히 해.” 엄진우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자 그제야 오윤하는 마지못해 옷을 대충 정리하고 중얼거렸다. “나쁜 자식, 내 열정을 이렇게 짓밟다니.” 하지만 욕설은 욕설이고 본론은 말해야 한다. “나랑 성안에 가요. 홍의회의 본거지는 바로 성안에 있어요. 오씨 가문 고위 안보 고문이라는 직함을 줄 테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성도에서 활동하다가 기회를 찾아 홍의회에 쳐들어가요.” 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당신 말대로 하지.” 마침 뷔젠트도 성안에서 일을 벌이고 있으니 이 기회에 그들을 제대로 상대해야겠다. “그래요, 준비하고 내일 나랑 같이 가요.” 오윤하는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엄진우는 다급히 말했다. “아니! 오늘 오후에 출발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그렇게 빨리요? 뭐가 그리 급해요?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닌가요?” 오윤하가 의심의 눈길을 보내자 엄진우는 심장이 철렁했다. 설마 의심을 품은 건가? 절대 예우림 일을 들켜서는 안 돼.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싸늘한 표정으
비행기에서 내리니 오씨 가문 사람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몇 명의 본토 명문가 사람의 얼굴도 보였는데 익숙한 인물도 있었다. 바로 그날 크루즈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아가씨, 부마. 성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예의 바르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크루즈에서 만났을 때는 엄진우를 조롱하고 무례하게 굴었는데 이젠 마치 개처럼 그의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댔다. 엄진우는 싸늘하게 웃었다. “부마는 개뿔, 난 오윤하 아가씨의 안전을 책임진 오씨 가문의 평범한 경호원이니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네, 부마.” 엄진우의 빈정거림에도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겸손하게 대답했다. 엄진우는 할 말을 잃었다. 여우 같은 것들. 그들은 그 어떤 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잘난 척할 땐 잘난척하고, 사람이 되어야 할 때는 바로 고개를 숙인다. 이것이 바로 권력이 가져다주는 혜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신분으로 저것들 상대할 필요 없어요. 따라와요.” 오윤하는 도도하게 턱을 치켜올리고 말했다. 한참 뒤 차에 오른 후 엄진우가 물었다. “우리 지금 바로 홍의회로 가는 거야?” “아니요. 우선 성안에서 열리는 명문가 자제들의 파티에 참석할 거예요.” 오윤하의 옅은 메이크업은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엄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오윤하, 난 지금 중요한 일 때문에 온 거지 놀러 온 거 아니야.” 엄진우의 투덜거림에 오윤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성안은 피비린내 나는 북강과 달라요. 홍의회를 처단하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줄 알았어요? 적어도 먼저 그들 무리에 들어가야 해요. 아니면 홍의회에 들어갈 자격도 주어지지 않아요.” 그 말에 엄진우는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래.” 약 30분 뒤, 그들은 럭셔리한 7성급 호텔에 도착했는데 오늘 호텔은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 외에는 일체 출입 금지였다. 여기서 파티를 열려면 적어도 십억 단위의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엄
모용준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엄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오윤하 씨 부탁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죠. 하지만 홍의회는 들어가기 쉬운 곳이 아니에요. 이 자식 배경이라도 있어요?” 그러자 오윤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창해시 4대 고대 무가인 엄씨 가문 아들이야.” “엄진우?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창해시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고대 무가네요.” 모용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좀 딸리긴 하지만 오윤하 씨가 추천한 사람이니 내가 잘 해볼게요. 엄진우 씨, 내일 홍의회의 비밀 파티가 있으니 나랑 같이 가요. 홍의회는 시간을 어기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니까 절대 늦으면 안 돼요.” 상대는 어깨를 으쓱하며 엄진우를 향해 씩 웃더니 뒷짐을 쥐고 떠나갔다. 엄진우는 입을 열려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오윤하가 갑자기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모용준이 나쁜 놈인 건 알지만 홍의회에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으니 조금만 참아요.” “저 자식이 홍의회 멤버라고?”엄진우는 깜짝 놀랐다. “맞아요. 홍의회의 최신 멤버죠. 저 자식 모씨 가문의 소주인데 성안 명문가의 일원이에요.” 오윤하가 진지하게 말했다. “워낙 모씨 가문은 단지 평범한 명문가일 뿐이라 홍의회에 들어갈 자격은 없었어요. 그런데 모씨 가문 핵심 멤버 중 한 명이 제경으로 가서 원로원의 지존에게 접대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모씨 가문의 지위는 바로 한층 상승했죠. 그래서 홍의회의 주목을 받게 되고 결국 파격적으로 멤버로 들였다고 해요. 모용준 저 자식 보기엔 아주 세속적이나 실제로는 굉장히 교활하고 예리한 놈이에요. 여태 홍의회의 누구와도 갈등을 일으킨 적 없어요. 그래서 난 저놈을 선택했죠.” 엄진우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홍의회에 데리고 들어가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상관없다. “그래.” 오윤하는 갑자기 볼이 빨개지더니 일부러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내일에라야 홍의회에 갈 수 있는데 이따가 뭐 할 생각이죠?
“명왕의 옆을 지키면서 일찍이 명왕의 열여덟 가지의 무예를 익혔다고 하니 용국 최연소 전신 청용마저도 그녀 앞에선 패배를 인정할 정도라네.” “나이가 고작 스물일곱이라고 하던데, 10년이 지나면 두 번째 명왕이 될 수도 있겠어.” “나 진짜 침 나와. 저런 여자와 결혼한다면...” “꿈 깨! 눈만 마주쳐도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데 결혼이라니?” “하하, 농담이지. 진지하게 듣지 마.” 사방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이보향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신념으로 마음속에 천하를 품고 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자기의 모토이자 신과 같은 남자의 뒤를 바싹 따르는 것이다. “봉황전신님, 오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성총리가 다급히 다가와 굽신거리며 말했다. “오늘 기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몰려와서 그러는데 촬영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요. 그러니 조금만 더 단상에 서주세요.” 하지만 이보향은 눈길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15분만 서 있겠다고 약속했으니 1초도 더 지나선 안 됩니다.” 그 말에 성총리 뒤에 있던 고위 관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하의 성총리가 군인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다니. “봉황전신, 말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당신의 전적에 비해 강남성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상당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성무조정실 부비서장은 불쾌하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다. “가격을 제시한 8개 지역 중, 강남성이 가장 큰 금액을 제시했습니다. 봉황전신을 모시는 비용만 해도 일 년에 수천억이 들어간다고요. 용국 보통 전신은 일 년에 고작 200억 좌우밖에 안 듭니다!” “입 다물어! 봉황전신이 우리 강남성으로 오신 건 강남성의 영광이야! 그걸 어찌 돈으로 계산해?”성총리는 큰소리로 호통쳤지만 말투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다. 부비서장의 말은 사실 성총리가 시켜서 한 말인데 그 목적은 봉황전신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에게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으니 당신은 우리에게 깍듯하게 대하세요.’하지만 이보향은 그들의 생생한 연기에 전혀 관심이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