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이가 서재로 들어왔다. ‘오늘 강지수가 분명 하연이를 무용 학원에 보낸다고 했는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이모, 뭐 하세요?” “응, 인터넷으로 자료 좀 찾고 있어.” 이때 동영상 복사가 끝났고 재빨리 USB를 뽑았다. “하연아, 지금 일은 못 본 걸로 해줄래? 하연이와 이모 사이에 비밀로 말이야.” 하연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하연이가 건강한 것은 모두 내 아이 덕분이었다. 하지만 하연이는 그 사실을 몰랐고 그래서 난 이 아이에게 별다른 원한을 품지 않았다. “예, 이모.” “저도 이모에게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고 싶어요.” 하연이가 나를 보고 말했다. “삼촌이 이모 아이를 던져서 죽게 하는 걸 직접 봤어요.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어요.” 충격으로 내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하연아 무서워할 거 없어. 그런 하연이가 이모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 ...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내가 이미 서재를 다 정리한 후였다. 어젯밤에 나 때문에 많이 놀란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 안색이 좋지 않았다. 강지수가 재빨리 남편에게 음식을 집어 주었다. “현성 씨, 왜 그래? 안색이 왜 이리 안 좋지?” 남편은 그녀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여보, 예전에 풍수를 배우지 않았어? 이 집에 수맥이라도 흐르는지 한번 봐줘.” 난 남편이 이렇게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 배워 놓은 게 이럴 때 다 도움이 되네.’ “알았어. 한번 살펴볼게”난 방을 차례로 살펴보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 방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수맥이 흐르는 것 같아. 차라리 이참에 이사할까?” 강지수가 듣더니 말했다. “그래 이사하자. 되도록 빨리, 그래야 하연이게도 좋으니까.” 남편이 조금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집을 새로 사는 건 어때?” “마침내 친구가 적당한 집을 내놨거든.” 그 집에는 비밀 통로가 있어서 내가 계속 남편을 놀라게 하
“난 아니야.” 울먹이는 눈으로 남편을 보며 말했다. “난 당신 컴퓨터 비밀번호도 모르잖아.” 그때 하연이는 한쪽에 앉아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형님이 급히 나를 도왔다. “내가 봤는데? 안돼? 회사는 우리 둘이 관리하는 것으로 했으니 나도 자료 정도는 볼 수 있잖아?” 이 말을 듣고 남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치 형님이 컴퓨터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을 잊은 듯 놀란 얼굴이었다. “무슨 자료를 봤는데?” “그냥 월간 보고서만 잠깐 봤어.” 형님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의 긴장된 표정이 그제야 좀 가라앉았다.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이 떠난 후 남편은 가장 먼저 서재로 향했다. 컴퓨터 비밀번호를 변경하려고 그런 것 같았다. 저녁에 남편은 나를 안고 잠을 잤다. 남편과 함께 자고 싶지 않지만 남편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남편은 내 귓가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 아이 좀 더 낳을까?” “내가 요즘 계속 꿈을 꾸는데, 죽은 아이들이 나를 찾아오는 꿈을 꾸거든.” ‘흥, 알고 보니 이것 때문이었군.’ 난 이 기회에 남편이 내 아이들을 묻은 곳을 알아내고 싶었다. 처음부터 남편이 아이들을 모두 묻었고 그 장소는 내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몸이 안 좋아. 의사 선생님이 내가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아 몸이 많이 상했데.” “그리고 나도 요즘 아이들 꿈을 꿔. 현성 씨가 나 좀 아이들 무덤에 데려다 줄래?” 순간 당황한 남편의 몸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내일 데려다줄게.” 다음날 남편은 나를 데리고 아이들의 묘지로 갔다.네 명의 아이를 한 곳에 묻었는데 이름도 미처 짓지 못하고 죽어서 묘비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난 입을 가린 채 통곡했다. 태어난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분명히 남아있었다. ‘모두 아주 귀엽고 건강했었어.’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차가운 땅속에 누워있다니.’ 남편은 묘비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나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돌아가는
무대에 오른 남편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오늘 저희 회사가 상장하는 날입니다. 전 이 일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준비를 했고 마친 내 오늘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럼, 준비한 PPT로 그간의 노력들을 잠시 보여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 있는 대형 스크린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죽어버려.” 영상에서 남편은 음흉한 표정으로 품에 안긴 아이를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또 다음 영상이 재생되었다. 같은 화면이었다. 하지만 손 안의 아이가 달랐다. 총 4개의 동영상이 재생되었는데 모두 남편이 내 아이들을 죽였다는 증거였다. 장내가 한바탕 떠들썩해지며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난 입을 가리고 통곡했다. “내 아이들 모두 당신이 죽였어.” 기자들은 순식간에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즉시 남편을 둘러싸고 물었다. “진 대표님, 동영상에 나왔던 아이가 모두 대표님 아이 맞나요?” “왜 던져서 죽였나요?” “이건 불법 영상입니다.” 남편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모르는 사실입니다. 전 모르는 일이에요.” “김 비서, 김 비서 어딨어? 빨리 이 사람들 막지 않고 뭐 해?” 무대 뒤에 있던 김 비서는 형님에게 붙잡혀 있었다. 난 그대로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남편의 뺨을 세게 때렸다. “이 짐승 같은 놈, 내 아이들 살려내.” 남편은 재빨리 나를 안았다. “여보,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일부러 그랬어요.” 하연이가 갑자기 무대 아래에서 나타났다. “삼촌이 그 아이들을 던지는 걸 직접 봤어요.” “그러면서 나와 골수가 맞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도 했어요.” “너... 이 배은망덕한 년이.” 남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난 하연이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전에 하연이에게 했던 말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때 난 하
다음날 인터넷에 진현성의 일이 퍼졌다. 모두들 그를 욕했다. [이야, 진짜 악마 같은 놈이네. 자기 자식까지 죽이다니.] [정말 냉혈한이에요. 그런 사람은 아주 지옥에나 떨어져야 해.] [저놈은 첫사랑의 딸을 위해서 일부러 자기 아내에게 아이를 낳게 한 거 같아요.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은 그는 진씨 집안의 명예에 심각한 흠집을 남기게 되었다. 결국 시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그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고 딸에게 자신의 주식을 양도하겠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진현성은 이제 버린 자식이나 마찬가지라 형님에게 주식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 진현성은 계속 조사를 받았고 그동안 형님이 회사를 관리했다. 그리고 나는 진현성과의 이혼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난 예전에 찍어 논 증거와 친자 확인서를 변호사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진현성을 빈털터리로 내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진현성은 경찰서에서 이 소식을 듣고 자포자기하게 변했다고 했다. 난 너무 기가 막혔다. ‘설마 그놈이 날 정말로 사랑한 거야?’ ‘나를 사랑했다면 왜 나를 배신하고 내 아이들을 죽였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난 그를 위해 내 몸 상태도 생각하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임신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항상 나를 이용했던 것이다. 곧 법원에서 재판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진현성은 경찰에 의해 법원으로 압송되었다. 못 본 사이에 그는 한때 광기가 넘치던 한 회사의 대표님에서 얼굴이 많이 상한 늙은 남자로 변했다. 그는 법정에 서서 나와 이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첫 번째 재판은 일반적으로 당사자간의 합의를 위해 판결을 유보한다. 이번에 그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다음 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이혼에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법원을 나올 때 진현성이 나를 불렀다. “여보, 꼭 이혼을 해야겠어? 난 사형선고 판결을 거부할 거야. 그럼 그때 우리에게도 기
‘풀썩’소리와 함께 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강지수는 내 모습을 보며 크게 웃었다. “정희선, 현성 씨를 감옥에 집어넣고 네년이 잘 살 거라고 생각했어? 꿈 깨시지.” “좀 있으면 현성 씨랑 다 잘 될 수 있었어. 현성 씨가 나와 함께 하겠다고 했는데, 너 때문에 다 망쳤다고.” “지수 씨, 진정해요. 현성 씨가 잘못한 일은 응당 벌을 받아야 해요.” “그놈은 제 아이 넷을 죽였어요.” “모두 내가 원한 거야.”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내게 다가오며 음침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현성 씨에게 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어. 그런데 이제 아무 소용없게 됐어.” “짝!”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일어나 그녀의 뺨을 한 대 때렸다. “그게... 너라고?” 난 화가 나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강지수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난 네년이 잘 사는 꼴을 절대 볼 수 없어. 그래서 이제 네 유일한 저 아이도 죽일 거야.” 그녀가 돌아서 호민에게로 가려하자 나는 급히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 바닥에 세게 넘어뜨렸다. 그리고서 그녀의 손에 있던 불을 덥석 빼앗았다. 난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때 하연이도 뛰어와서 강지수를 함께 붙잡았다. 강지수는 당황해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배은망덕한 년, 네 아버지를 망치더니 이제 엄마인 나까지 망치려고 그래?” 하연이는 울었다. “미안해요, 엄마. 난 더 이상 못 보겠어요. 아빠랑 엄마가 너무 많이 잘못했잖아요. 제가 이미 경찰에 신고했어요.” 곧이어 경찰이 들어와 강지수에게 수갑을 채웠다. 난 급히 뛰어가 호민이를 안아 올렸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다. 강지수는 아직도 분노해 욕을 퍼부었다. “내가 이 배은망덕한 년을 살리지 말걸 그랬어.”하연이가 울컥하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날 살리려는 걸 알았다면 난 그냥 죽었을 거야.” 이후 강지수 역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녀의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져 진현성과 함께 할 수
난 아침 일찍 영양 만점의 도시락을 만들어 남편에게 가져갔다. 하지만 사무실 문을 열기 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순간 멈칫했다. “하연이의 수술은 잘 됐어?” 김 비서가 공손히 대답했다. “예, 진 대표님. 아주 성공적이에요. 이번에 사모님께서 낳은 아이와 하연 아가씨의 조직이 딱 맞았습니다.” 남편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호민이의 골수가 하연이에게 적합했나 보군.”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그 아이도 던져 죽이려고 했는데 말이야.” 난 충격을 받아 순간 온몸이 뻣뻣해졌는데 마치 내 몸 안의 피가 모두 굳어 버린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내 귀가 정상이 맞아?’ ‘그러니까 내 앞에서 죽어간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아빠라는 놈이 죽였단 말이야?’ ‘그리고서 지금껏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와 아이를 낳으려는 것도 모두 강지수의 딸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아주기 위해서였고?’ 난 입을 가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때 남편의 비서가 문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급히 화장실로 가서 숨었다. 슬픔에 온몸이 떨려왔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태어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아들인 호민이가 떠올랐다. 아침에 남편은 호민이를 데리고 백신 접종하러 간다고 하며 나에게는 집에서 푹 쉬라고 했었다. ‘오늘 백신을 맞으러 간 게 아니라 골수를 기증하러 병원에 간 거였어.’ 난 병원에 가기 위해 급히 뛰어나갔다. 그런데 김 비서가 호민이를 안고 남편의 사무실로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흐르던 눈물을 닦고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후 사무실 문을 열었다. 남편이 호민이를 안고 달래고 있었는데 난 바로 달려가 호민이를 빼앗아 안았다. 갓 태어날 때처럼 웃고 있는 호민이에게서 다행히 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여보, 여긴 어쩐 일이야?” 남편은 부드럽게 말하며 나를 안았다. “아직 산후조리 기간이라 조심해야 해.” 이 사람이 진현성, 나와 결혼한 지 6년 된 남편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너무 피곤하다고 말하고는 호민이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천천히 정리하고 싶었다. ‘남편은 왜 나와 아이를 낳아 강지수의 딸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으려 한 거지?’ ‘상식적으로 이런 방법은 성공할 확률이 아주 낮은데 말이야.’ 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강지수의 딸이 남편의 친딸인 거야. 그래서 남편과 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하연이의 골수 조직과 일치할 확률이 높은 것이고.’ 내 앞 벽에 걸려있는 네 아이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얘들아, 걱정하지 마. 이 엄마가 너희들 복수 꼭 해줄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 보니 그건 사실인 것 같았다. 이후 먼저 몸을 잘 추스른 난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호민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겼다. 산후조리가 끝난 후 내 첫 번째 일은 강지수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강지수는 남편의 첫사랑이다. 두 사람은 일찍이 4년 동안 함께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도중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헤어졌고 남편은 바로 나와 선을 보고 결혼했다. 보아하니 남편이 나와 결혼한 첫 번째 목적이 골수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강지수는 아직 병원에 있었다. 전에 남편이 혜성병원에 있다고 한 게 기억나서 비교적 빨리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하연이를 안고 키스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연아, 이제 넌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어.” 하지만 하연이가 찾은 정상적인 삶은 내가 다섯 번 임신해서 네 아이를 떠나보내고 얻은 것이었다. 자식은 모든 엄마에게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이다. 난 서른도 안 돼서 그런 네 명의 아이를 잃었다.주먹을 불끈 쥔 나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선물을 들고 병실로 들어갔다. 강지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긴 어쩐 일이죠?” “하연이가 적합한 골수를 찾았다고 들었어요. 수술이 잘됐다고 해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