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햇살은 연예계에서 퇴출하라!”“이보세요, 조햇살은 연예계 데뷔도 안 했어요. 연예계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퇴출이에요!”“그러면 틱톡 계정을 아예 없애버려야 해요! 아무나 인터넷 가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사람이 기본은 갖춰야죠! 행동이 올바르지 못한 것들은 아예 매장해 버려야 한다니까요!”...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는 누리꾼들을 본 배현수는 댓글 창을 나왔다.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욕하든 상관없었다. 인생에서 자주 스치는 사람들조차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데 하물며 일면식도 없는 네티즌들의 말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다만 그들이 7년 전 조유진이 위증한 일을 또 들춰내 기사화하면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까 봐 그게 조금 걱정될 뿐이었다.이 사회는 결국 남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사회이다.여자가 잘못한 것은 남자들이 잘못한 것보다 대중들에게 용서받기 훨씬 더 어렵다.당사자인 배현수가 일찌감치 조유진을 용서했다 하더라도 전혀 일면식이 없는 대중들은 다시 조유진을 도마 위에 올려 재미를 보려 할 것이다. 이때 육지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영상을 보니 피가 많이 난 것 같네? 다음에 과일 바구니와 영양제 좀 챙겨서 환자 보러 갈게. 솔직히 정설혜가 뭘 좀 모르네. 칼을 바로 너의 가슴을 찔렀어야지. 그래서 네가 한 열흘쯤 혼수상태에 빠지면 혹시 알아? 조유진이 감동해서 너와 결혼하겠다고 할지.」그의 문자에 배현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답장했다.「내가 그렇게 죽기를 바라면 직접 한 번 찔러보시지 그래?」「내가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 너를 찔렀다가는 변호사 자격증도 다시 반납해야 할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야.」그 말에 배현수는 일부러 육지율의 약을 올렸다.「몸으로 칼을 대신 맞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어떤 사람은 당장 죽는다고 해도 아마 아무도 보러오지 않을걸?」「너... 너 지금 누구 얘기하는 거야?」그의 물음에 배현수는 두 글자만 보냈다.「짐승.」육지율은 기가 막혀 더 이상 답장을
“이제 10월이 다 돼 가고 날씨도 별로 덥지도 않아서 운동만 안 하면 보름 동안 샤워 안 해도 되지 않아요? 몸만 좀 닦고 하면 별로 더러울 거 없을 것 같은데.”조유진은 그저 생각하는 대로 객관적인 사실을 그에게 말했다.하지만 배현수는 전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상처에 물이 묻을지언정 보름 동안 샤워하지 않는 것은 절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름은 고사하고 이틀 동안 목욕하지 않아도 배현수는 견디지 못했다.그는 단단히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해, 샤워 못 하는 건 안 돼.”“좀 참아요...”“못 참아.”조유진은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병원을 나선 배현수는 서정호에게 다른 차를 몰고 오라고 했다.배현수는 정장 바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서정호에게 던지며 말했다.“저 차 좀 서비스 센터에 몰고 가서 세차 좀 해줘”차 열쇠를 건네받은 서정호는 미처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되레 그에게 한마디 했다.“배 대표님, 저 차 그저께 금방 세차했어요.”“차 안이 더러워졌어. 차 시트에 피가 묻었어.”순간 서정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배 대표님, 조유진 씨와 같이 있을 때 조심 좀 하시죠.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내면 건강에 좋지 않아요...”배현수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내 팔에 난 상처 때문에 피가 나서 시트에 묻은 거라고!”“아! 죄송해요! 제가 착각했네요!”서정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차 키를 들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빨리 가지 않으면 배현수의 성격상 바로 가까이 걸어와서 발로 찰 것이 분명했다. 옆에 있던 조유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서정호 씨가 이렇게 점잖지 못한 사람이었어요?”그녀의 기억 속에 서정호는 명문대를 졸업한 젠틀하고 공손한 사람으로 조금 전과 같은 말들을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배현수는 새 차 열쇠를 들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차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이상해? 남자들 원래
알림음은 차 안에서 끊임없이 계속 울렸다. 조수석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운이 안 좋을 때는 경찰 아저씨에게 잡혀 한바탕 교육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조유진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배현수에게 안전벨트를 매 주기 위해 몸을 숙였다.그녀는 배현수처럼 다리와 손이 길지 않아 안전벨트까지 손이 닿는 데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이제 막 손이 안전벨트에 거의 다다르려 할 때 배현수는 갑자기 한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그녀의 가녀린 몸을 조수석으로 끌어당겼다. 순간 그의 품에 안긴 조유진은 미처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입술이 그에게 막혀버렸다.맞닿은 코 사이로 그의 시원한 남자 향수 냄새가 은은한 담배 냄새와 섞여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역겹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약간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손목 마디가 뚜렷한 배현수의 큰 손이 그녀의 허리춤에서 점점 올라오더니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며 그녀의 뒤통수를 감싼 채 마구잡이로 키스를 퍼부었다.조유진의 두 팔은 그의 다리에 강제로 눌려 있었다. 그녀의 하반신은 아직 운전석에 있었지만 상반신은 이미 배현수에게 이끌려 조수석까지 왔다. 그녀는 매우 불편한 자세로 배현수에게 이끌려 키스하고 있었다. 배현수도 그걸 느꼈는지 왼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쳐 살짝 안은 뒤 한 손으로 그녀를 안아 통째로 조수석으로 옮겼다.그의 품에 안긴 조유진은 그를 밀쳐내고 싶었다. 이 남자는 분명 한쪽 팔을 못 쓰고 있었음에도, 조금 전만 해도 안전벨트조차 스스로 채우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뒤통수를 꽉 잡고 있어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외출하기 전 파록세틴 알약 두 알을 미리 삼킨 그녀는 이 순간 너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이런 친근한 스킨십을 절대 감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혀까지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의 키스에 조유진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배현수는 사실 차 안에서 그녀와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은 없었다. 앞 유리
조유진이 하는 것과 배현수가 하는 것, 차이가 있긴 할까? 순간 조유진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방금 의사가 한 말이 계속 생각났다.“조금 전 남편이요. 성격이 좀 오만하고 고집이 있어 보여서 뭐라 말은 못 했지만 팔에 난 상처를 아내분도 보셨을 거예요. 너무 깊게 난 상처라 어쩌면 나중에 작은 장애가 생길 수도 있어요. 농담 아닙니다. 절대 허투루 들으시면 안 돼요. 상처가 회복되더라도 1년 안에 무거운 물건은 안 드는 게 좋아요. 팔의 근육과 뼈가 좀 많이 다쳐서 오랫동안 치료해야 합니다.”배현수처럼 오만한 사람은 돈 한 푼 없을 때도 그는 몸뚱어리 하나로 버텨냈고 아무도 그를 쉽게 넘어뜨릴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단단한 강철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오른팔에 앞으로 진짜 장애가 있게 되면 행동이 서툴어질 수도 있다...여기까지 생각한 조유진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목을 껴안았고 눈시울은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조금 전 그가 듣기 싫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배현수는 왼쪽 손가락으로 그녀의 살짝 붉어진 눈가를 쓰다듬으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왜 울어? 싫으면 뽀뽀 안 하고 잠깐 안고 있어도 돼. 응?”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유진은 그의 목을 껴안고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다친 오른팔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목을 껴안았던 그녀의 두 팔은 점점 위로 올라가 그의 얼굴을 감쌌다.조유진이 위에 배현수가 아래에 있었고 그의 흩어진 긴 머리카락은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아래로 축 흘러내렸다. 큰 웨이브 펌을 한 그녀의 머릿결은 매우 부드러웠다.배현수는 손을 뻗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의 손바닥에 닿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비단결같이 느껴졌다.조유진은 어색한지 키스하다가도 가끔 그의 입술에 이를 부딪쳤다.그는 입술이 조금 아팠지만 이 작은 통증은 그녀와 더 깊은 키스를 나누고 싶다는 생
강이진은 안승호를 보며 말했다.“저 위스키는 네가 계산해!”“저 쩨쩨한 꼴 좀 보게나!”“만약 우리 오빠가 진짜로 원주에서 그 여자를 데려온다면 내 생활도 힘들어질 거야. 오늘 밤의 드래곤 세트는 내 마지막 즐거움이야.”안승호는 동정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순간, 주머니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아니, 내 지갑 못 봤어?”강이진은 다리를 흔들며 물었다.“네 지갑이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정말 못 찾겠으면 CCTV를 확인해 보던가!”“아오, 정말 짜증 나. 신분증과 신용카드가 다 그 안에 있는데. 내가 일단 여기 매니저 찾아서 CCTV 확인하고 올게.”안승호는 매니저를 찾으러 돌아다니며 혼자 중얼거렸다.“CCTV가 있으니 다행이지 안 그러면 삼일이 아니라 삼 년이 지나도 못 찾겠네.”강이진은 그런 안승호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더니 금빛 칵테일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순간 그녀는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CCTV...”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천장에 있는 카메라를 찾았다.이런 CCTV는 정말 사각지대가 없이 사람을 완전히 다 찍을 수 있을까?1년 전, 그 낡고 작은 요양원에서... 그녀는 자기가 찍혔는지 아닌지 잘 몰랐다.하지만 이 일은 이미 1년이나 지났고 현수 오빠가 그녀를 찾아와 따지지 않은 걸 보면 분명 발견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만약 찍히기라도 했다면... 이런 공공장소의 CCTV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을까?순간 강이진은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고 등 뒤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얼굴을 힘껏 문지르며 마음속으로 되새겼다.교외에 있는 그 요양원은 낡고 낡아서 카메라가 몇 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안정희와 다투고 있었던 그곳은 작은 숲이라 그렇게 구석진 곳까지 절대 카메라가 있을 리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잠시 후 지갑을 찾은 안승호
강이진은 댄스 플로어에서 비틀거리며 테이블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들고 검색어를 클릭했다.그녀는 오늘 오후 누리꾼들이 조유진에게 쌍욕을 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때마침 심심하던 찰나에 재미를 볼 겸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조유진의 기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이진은 자신이 술에 취해 눈이 침침해진 줄 알고 눈을 부릅뜨고 한참 동안 찾았지만 ‘조햇살', ‘조유진', ‘쇼핑몰'이라는 키워드를 아무리 검색해도 ‘좋아요’가 십여 만개가 넘는 원본 영상을 찾을 수 없었다.조유진의 의붓어머니가 쇼핑몰에서 칼부림을 해 피까지 봤다. 이런 사회 이슈들이 어떻게 단 몇 시간 만에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순간 강이진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검색어를 내린 게 틀림없다!하지만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일부 누리꾼들은 개인 계정으로 여전히 그 영상을 계속 게시하고 있었다.하지만 게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피비린내 나는 과격한 영상이라는 이유로 다시 인터넷 관리자에게 삭제되었다. 하지만 반항적 성향이 강한 현대 네티즌들은 그들의 입을 가리려 할수록 뒤에서 더욱 치열하게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요, 그 조 무슨 그 여자는 어떤 여자예요? 어떻게 인터넷 내용 자체를 다 가리려 할 수 있을까요...”“진짜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뒤에 스폰서가 있다는 말! 스폰서가 말로는 엄청 대단한 사람이래요.”“설마 그런 관계는 아니겠죠? 어떻게 인터넷 전체 기사를 아예 다 막을 수 있죠? 완전 대박이네요!”“그런 관계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 스폰서는 분명 대단한 인물이에요!”“조용히 한마디만 하자면 저 영상 속의 잘생긴 남자는 SY 그룹 대표인 것 같아요!”“대박!”“SY 그룹 대표면 그 성이 배 씨인 그 대표 맞아요?”“네네네네, 바로 그 사람이에요! 검색해 보면 얼굴이 나온 인터뷰 영상도 있어요. 그 사람이 확실해요!”“대박! 스캔들 기사에 조햇살이 스폰서 상대에게 아들을 낳아줄 거라 했는데 그게 진
별장에 들어간 후, 조유진은 그의 휴대전화를 쥐고 잠금을 풀려고 했다.하지만 배현수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모르는 그녀는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선유에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배달을 시키자고 말하려 했다.그때 옆에 있던 배현수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비밀번호, 네 생일이야. 19980606.”순간 조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녀의 생일날은 결코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닙니다.7년 전 6월 6일, 배현수는 그녀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생일을 보냈지만 그녀는 그가 그날 밤에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라고 모함했다.그의 비밀번호를 들은 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잡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진작에 그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었다. 7년 전 법정에서 증언하는 순간부터 자격은 이미 박탈되었다.조유진이 멍하니 서 있자 선유가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엄마, 밀크티 주문할래!”조유진은 그제야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배달 앱을 켜 밀크티를 검색했다.“어떤 거 마실 거야?”“이거, 푸딩 밀크티. 코코넛과 펄 넣어줘!”선유는 밀크티 안에 이것저것 많이 넣는 것을 좋아했다.조유진이 주문을 하고 보니 밀크티 가게가 근처가 아니어서 배달 범위를 한참 벗어났다. 퀵 서비스를 불러 갖고 와야 하는데 퀵 서비스 비용이 밀크티보다 더 비쌌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주문을 마친 조유진은 배현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비밀번호를 입력해 비용을 내라고 했다.그러자 배현수는 휴대전화를 건네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비밀번호를 불렀다.“980606.”순간 조유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제 비밀번호까지 그녀의 생일로?심지어 비밀번호를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알려준다고? 그러다가 그녀가 거액을 챙겨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려고...밀크티를 주문한 뒤 조유진은 배현수를 보며 한마디 했다.“현수 씨... 결제 비밀번호 변경해요.”“왜?”“내가 비밀번호를 이미 알았고 그러다가 누가 현수 씨 돈을 훔쳐 가기라도 하면 내가 제일 먼저 의심받을 거 아니에요.
귓가에 전해지는 뜨거운 숨결에 조유진은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손에 있는 약병을 더 꽉 움켜쥐었다. 배현수는 처음에 무슨 약인지 못 알아챈 듯했으나 왼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은 그는 그녀의 손에 작은 약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약병에 시선을 돌리는 대신 그녀의 귀에 키스하며 물었다. “무슨 약이야?”“그런 약...”순간 배현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응?”조유진은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돌아서서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껴안고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깊은 밤, 산성 별장 거실에는 무드등 하나만 남아 있었다.장은숙은 이미 메이드룸에서 쉬고 있었고 장 셰프도 저녁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갔다.선유도 이미 방에서 자고 있었다.커다란 별장 거실에는 배현수와 조유진 그리고 우리에서 자고 있는 예삐만 있었다. 부쩍 대담해진 조유진은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내고 마는 성격이었다.달빛만 비치는 어두운 거실에서 그녀는 배현수의 까만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성.욕.촉.진.제.”사실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파록세틴은 지금의 그녀에게는 어느 정도 ‘성욕촉진제'인 셈이다. 먹지 않으면 어쨌든 바로 흥을 깨기 마련이니까...이 다섯 글자를 들은 배현수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언제 이렇게 안 좋은 것까지 다 배웠어?”조유진은 속으로 흠칫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현수는 왼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쉰 목소리에 농담 섞인 웃음을 띠며 말했다.“약을 먹어야만 나와 관계를 가지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그의 웃음은 기쁜 내색이 아니라 오히려 실망한 듯 차가움이 감돌고 있었다.배현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남자들은 원래 이런 여러 가지 작업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낮에 배현수도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남자들이 야한 생각을 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그 또한 정상적인 남자라고. 그런데 지금은 왜... 다시 금욕이라도 시작한 걸까?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을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