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2시, 인천시 무의도에는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왔다.조유진은 바닷가 별장 3번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촬영에 임한 지 이미 일주일이 지난 오늘, 시즌2 촬영이 시작되었다.촬영하기 전부터 아무한테도 선택받지 못하는 캐릭터로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세 남자 출연자 분한테 선택을 받지 못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하지만 권 여사는 선택받지 못한 여자 출연자는 다이빙이라는 벌칙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9월은 이미 가을 날씨라 섬 온도는 육지보다도 더 낮았다.더군다나 요 며칠 무의도 쪽은 태풍의 영향으로 날씨가 흐려 겉옷을 입어도 추웠다.출연료 2억 원을 위해 조유진은 이를 꽉 깨물고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뼈가 시릴 정도로 찬 수영장에서 나오자마자 연신 재채기를 하더니 어지러운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한밤중에 고열이 39도까지 달했다.그녀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워있었다.이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온몸에 힘이 빠진 조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누구세요?”“2번 방 로다에요. 감기 걸리신 것 같은데 약 가지고 왔어요.”조유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힘겹게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로다는 감기약을 건네주면서 사시나무 떨듯 떠는 조유진을 관심해주었다.“병원에 가보실래요? 많이 심하신 것 같은데.”조유진은 코막힌 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 약 먹고 한숨 자면 괜찮아질 거에요. 병원에 가려면 배 타야 되잖아요.”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까지 불어 섬에는 배가 운행 중단되었다.감기 걸린 조유진의 나약한 모습은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로다는 원래 조유진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방송 효과로 대본에 따라 그녀를 선택하지 못한 것이다.지금 조유진을 보고 있자니 보호 본능이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저도 벌칙순서가 있는지 몰랐어요. 알았다면 대본을 어기고 햇살 씨를 선택했을 거예요. 죄송해요, 다음에는 꼭 햇살 씨를 선택할게요.”조유진은
조유진은 고열로 자신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환상을 본 줄만 알았다.‘배현수가 왜 이곳에 있어? 이 늦은 시간에 배도 끊겼겠는데...’그녀는 무력하고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 설마 몽유하고 있는 거야? 현수 씨가 나한테 몽유 버릇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네.”그 순간 조유진은 눈을 감은 채 힘이 쭉 빠져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배현수는 팔을 뻗어 조유진과 이불을 함께 들어 안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조유진은 고열로 의식마저 잃은 상태였다.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만졌을 때 거의 끓고 있었다.배현수는 섬에 들어가기 전 특별히 약국에서 해열제를 사 들고 들어왔다.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미지근한 온도를 맞춰서야 침대 옆으로 다가가 조유진을 일으켰다.“유진아, 일어나 약 먹고 자.”이불을 뒤집어쓴 조유진은 배현수의 품에 안겼다.배현수는 온밤 인천까지 달려와 우산도 없이 배를 타고 오느라 온몸이 젖은 상태였다.조유진은 등이 그의 젖은 셔츠에 닿아 추워서 흠칫하고 말았다.“추워, 만지지 마...”배현수는 그녀를 챙기느라 젖은 옷을 벗는다는 것을 잊었다.“옷 벗으면 되는 거지?”조유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셔츠 단추를 풀어 젖은 옷을 모조리 벗어 던졌다.하지만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차가운 몸으로 그녀를 더 춥게 만들까 봐 욕실에 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기로 했다.10분 정도 샤워를 마치고 몸이 후끈해진 후에야 이불속에 들어가 조유진을 끌어안았다.그러고는 그녀의 이마에 뽀뽀하더니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그래도 추워?”조유진은 속박된 느낌과 등 뒤가 따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본능적으로 더 가까이하고 싶었지만 일말의 이성이 자신한테 되물었다.‘내 침대에 어떻게 남자가 있을 수 있지?’“로다 씨?”“뭐?”배현수는 그녀의 말을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조유진은 희미하게 저녁에 2번 방 로다가 자신한테 약을 가져다준 것이 생각났다.‘아니, 약을 주면 줬지 왜 내 침대에 있는 거지? 이것도 제작진 벌칙인가? 돈
조유진은 해열제를 뱉어내더니 손으로 입술을 닦았다.“역겨워.”‘로다 씨 평소에는 점잖아 보이더니 이런 사람일 줄 몰랐네.’감기에 걸려 밀어낼 힘은 없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제작진 어디 갔어? 이런 일도 그냥 내버려 두는 건가? 너무하네.’조유진은 화가 나서 울고 싶었다.배현수는 태양혈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오기 전에 미리 조병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목을 비틀 충동까지 생겼을 것이다.그는 또 해열제 하나를 꺼내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의 턱을 잡아 억지로 먹였다.조유진은 힘껏 발버둥 쳤다.“로다 씨, 이거 놔요...”조유진은 병이 나으면 로다를 고소하기로 마음먹었다.‘정말 저질이군... 촬영 중에 대놓고 이런 짓을 하다니.’그녀는 억울한 나머지 화나서 울음을 터뜨렸다.배현수는 붉어진 그녀의 두 눈을 보고 마음이 찢기는 것만 같아 그녀를 와락 안더니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다시 잘 봐봐. 내가 누군지. 유진아, 7일 동안 안 본 사이 나를 잊었어?”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조유진은 그래도 못 믿겠는지 훌쩍이면서 말했다.“현수 씨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분명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거야.”‘무의도는 태풍으로 배편이 끊겨 들어오지도 못해. 분명 고열 때문에 이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 거야. 현수 씨 새 여자친구도 생겼는데 나를 찾아올 리가...’“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배현수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잘 못 부른 죄로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조유진은 아파서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또 조유진의 작은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갖다 대더니 말했다.“여기 상처 있는 거 느껴져?”칼 흉터뿐만 아니라 “Y”자로 새겨진 문신도 있었다.조유진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그의 왼쪽 가슴을 보면서 멍을 때렸다.배현수는 그녀의 이마에 뽀뽀하더니 말했다.“착한 어린이, 그만하고 약 먹자. 응?”그녀의 이마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글쎄 나
조유진은 그의 따뜻한 품에 기대어 목젖을 깨물었다.예전에 함께 있을 때도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목젖에 키스 자국을 남기곤 했었다.배현수는 그녀의 머리를 잡더니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있었다.하지만 이로써 고삐가 풀리고 말았다...늘 욕망을 잘 참고 있었지만 한번 터지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호텔에 함께 있었던 그 날 이후, 배현수는 1년 동안 잠자리를 가지지 못했다. 조유진이 산성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가끔 샤워를 마치고 잠옷 차림으로 앞에 나타나면 어쩔 수 없이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조유진이 무의도에서 촬영하는 일주일 동안 보지도, 안지도 못해 결국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다. 잘 자지 못할수록 그는 더욱 거칠어졌고 그야말로 악성 순환이었다.이대로 계속 참았다간 잘 못될 수도 있었다.그는 조유진의 입가에 키스하더니 마성 있는 목소리로 진지하게 물었다.“계속하고 싶어?”조유진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배현수의 품속에 파고들더니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그렇게 그녀가 받아들이는 줄로만 알고 있었을 때...품에 안겨있던 조유진이 갑자기 이불을 끌어 올려 얼굴까지 뒤집어쓰더니 말했다.“자고 싶어요. 나머진 다음 꿈속에서 계속해요.”오늘 저녁은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꿈을 꿀 기회는 많으니 굳이 오늘 내로 끝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이대로 끝?’조유진은 배현수의 품에 안겨 그의 체온을 느끼면서 곧바로 깊숙한 잠에 빠져들었다.인간 난로 취급하는 듯했다.배현수는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목젖을 깨물면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더니 이렇게 매정하게 잠들어버린다고? 정말 꿈인 줄 알고 하고 싶은 대로 하나 본데?’그는 조유진을 살짝 흔들어보았다.“유진아?”“...”이미 깊이 잠든 후였다.냉수마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조유진이 너무 꽉 끌어안고 있었다. 생리현상이 일어나 온몸이 뜨거워졌기 때문에 조유진이 더욱 찰싹 붙었다.그녀는 심지어 손으로 제일 뜨거운 곳을 만지면서... 그의 온기를
그녀는 이 남성용 팬티를 보고 변태를 만난 기분이었다.어제 점심 배달을 시켰을 때 따라온 일회용 장갑을 낀 채 일그러진 표정으로 팬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선 한참이나 손을 씻었다.로다가 가져다준 아침마저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로다 씨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고 착해 보이는데... 좋은 사람인 척한 건가 아니면 내가 오해를 한 건가? 만약 오해라면 이 팬티는 어디서 생겨난 거지?’...오전 10시, 조유진은 다른 여자 출연자와 함께 1호 방으로 갔다.프로그램에는 총 6명의 출연자가 참여했고 남자 출연자 3명, 여자 출연자 3명이었다.그렇게 여섯 명이 바쁘게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조유진이 스테이크를 굽고 있을 때, 로다가 앞치마 하나를 가져왔다.하지만 고기 핏물을 빼고 있는 더러운 손으로 앞치마를 할 수가 없었다.“여기 놔두세요. 이따 할게요.”로다가 좋은 마음에 말했다.“제가 해드릴게요. 지금 안 하면 흰 셔츠에 묻을 수도 있어요. 핏물은 씻어내기 어렵거든요.”어제, 로다는 여자 출연자 2호인 채빈을 선택했었다.어젯밤 이후로 360도 바뀐 로다의 태도에 다른 출연자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이때 채빈이 물었다.“햇살 씨 어제 열났다면서요, 지금은 나았어요? 밥은 저희가 할 테니 가서 쉬시겠어요?”조유진은 그러고 싶었지만, 밥이 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괜찮아요. 스테이크만 구우면 돼요. 굽기는 어느 정도로 해드릴까요?”로다는 안색이 안 좋은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가서 쉬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로다는 조유진의 팔을 당기면서 가서 쉬라고 말했다.이때 어떤 훤칠한 남자가 갑자기 하트 룸에 들어왔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남자 출연자 3호가 물었다.“누구세요?”여자 출연자 1호는 눈이 확 밝아지는 느낌에 제일 먼저 반응하더니 물었다.“시찰단이시군요! 어제 제작진께서 오늘 하트 룸에 오실 거라고 하셨어요!”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반응했고 남자 출연자
첫 만남에 이렇게 가까워 보이는 행동을 하는 건 선을 넘어선 것 같아 보이지만 조유진은 전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출연자들은 새로 온 이 시찰단 때문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배현수는 하트 룸에 들어선 후부터 손님이 아니라 출연자보다도 더 출연자 같아 보였다.이때 로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현수 형님, 햇살 씨랑 서로 아는 사이에요?”배현수는 스테이크를 구우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네. 오래된 친구예요.”등 뒤에 몽고점이 있다는 것과 가슴에 연갈색 점이 있다는 것도 알 정도로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조유진이 보고있어도 배현수는 차분하고 태연하기만 했다.‘촬영 이대로 계속해도 되나? 나중에 이 부분을 편집하겠지?’이 순간 조유진은 조마조마하기만 했다.다른 출연자들은 배현수가 조유진과 친구라는 말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조유진은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왔어요?”배현수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너는 올 수 있고 나는 오면 안 돼?”“...”‘나는 돈 벌러 왔지만, 현수 씨는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신분이 일 텐데... 사람들이 현수 씨가 SY 그룹 대표님이라는 거 알게 되면... 발칵 뒤집힐 텐데. 어느 회사 대표가 예능에 출연해. 그것도 연애 프로그램에...’배현수는 조유진의 웰던 스테이크를 접시에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가져가.”조유진은 고개를 쳐들었을 때 배현수의 목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스 자국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피부가 너무 하얀 나머지 그 키스 자국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새 여자친구랑 이미 거기까지 간 거야?’인천에 오기 전부터 이미 그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목에 있는 키스 자국을 보니 마음이 저릿저릿했다.이성적으로는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적으로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는 장담하지 못했다.아무리 그래도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이라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정
“!!!”“뭐라고요? 현수 형님이었다고요?”테이블에 둘러앉아 점심 먹던 출연자들은 전부 놀라고 말았다...놀라서 어쩔줄 몰라하는 출연자들과 달리 배현수는 유난히 차분했고 심지어 또 한 번 강조했다.“새벽 4시에 문 두드린 거 저였다고요.”“...”조유진은 굳어버리고 말았다.‘어젯밤에 온 거라고?’남자 출연자 1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현수 형님 어젯밤 어디서 주무셨어요?”“3번 방이요.”“햇살 씨 방이요?”배현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네.”조유진은 물을 마시다 뿜을 뻔했다.“켁켁켁...”“!!!”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도 된다고? 장난하는 건가? 장난이겠지!’조유진이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배현수는 기침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장난이에요.”‘그럼 그렇지... 농담도 참.’조유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여자 출연자 1호는 배현수와 조유진 사이의 관계가 어딘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고 왠지 모르게 달달한 커플이라는 느낌도 받았다.여자 출연자 1호가 호기심에 물었다.“현수 씨, 목에 있는 거 혹시 키스 자국이에요?”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이런 것도 물어도 돼?’한 남자 출연자가 어색하게 웃더니 말했다.“갑자기 저희 프로그램 관람 연령대가 높아진 느낌이네요.”배현수가 얼렁뚱땅 넘어갈 줄 알았지만, 스스럼없이 말했다.“네. 여자친구가 그랬어요.”조유진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여자 출연자 2호는 옆에 있던 촬영감독에 물었다.“이거 방송에 나가도 돼요?”촬영 감독은 허허 웃더니 말했다.“현수 형님이 가능하다면 가능한 거죠.”‘저분은 장해원 사장님이 직접 연락 와서 꽂아준 시찰단인데 신분이 심상치 않을 거야. 아마도 부자일지도 몰라!’배현수가 온 뒤로 제작진이 짜둔 각본은 그대로 사라졌다.오후, 비가 멈추고 먹구름마저 사라졌다.날씨가 살짝 풀리면서 시원하기만 했다.자유 활동시간...자기 방으로 돌아간 조유진은 잠깐 자려고
조유진은 열도 나고 폐기종 증상도 있어 이 섬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다간 아무도 책임질 수가 없었다.이 섬은 병원도 없이 의료시설이 부족했다.만약 고열에 산소 부족 현상까지 나타난다면 그 후과는 아무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조유진도 일주일간 사람을 너무 시달리게 하는 조작 프로그램 때문에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참이었다.하지만...“중도에 하차하면 출연료도 주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위약금을 물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배현수가 자신을 대신해 위약금을 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평생 그한테 빚진 돈을 갚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조유진은 이를 꽉 깨물더니 그래도 참아보기로 했다.‘왜 예전에는 유진이가 돈을 좋아한다는 거 몰랐지?’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내일 출연료 받을 수 있게 해줄게. 나랑 집에 가자. 응?”“...”‘진짜?’“선유가 너를 보고 싶어 해.”조유진은 중도에 하차해도 출연료를 받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렇게 대답에 응하려고 했을 때 그의 목젖에 있는 키스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여자친구도 있는데 이렇게 안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조유진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됐어요. 이만 돌아가요.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거예요. 며칠만 지나면 촬영도 끝날 거고 조금만 참으면 돼요.”“유진아.”배현수는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목소리마저 차가워졌다.“남은 시간 동안 잘 지내보자고 말한 건 너잖아.”“네. 제가 말했죠.”“그럼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도 나 언짢게 하고 싶어?”조유진은 입을 움찔거렸다.“...”‘내가 뭐 미쳤다고 일부러 언짢게 했나?’배현수는 문에 기댄 채 그녀를 바라보면서 슬슬 인내심을 잃어갔다.“조유진, 너의 계약 정신은?”‘채권자를 즐겁게 할 거라며, 난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2800억 원으로도 유진이 웃음을 살 수 없는 건가?’요 며칠 배현수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조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