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뺨 때리는 소리가 룸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뺨을 맞은 윤서린은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녀의 얼굴에도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젠장, 저 미친년이 감히 나를 때려?"유성호가 바닥으로 침을 뱉으며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여자들은 혹시라도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봐 몸을 떨며 서로를 껴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허유나도 쿵쾅대는 심장을 안고 유성호가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윤서린은 뺨을 맞고 나니 술이 많이 깨는 것 같았다.그녀는 얼얼한 뺨을 잡고 사나운 얼굴을 한 유성호를 바라봤다. 흐리멍덩했던 두 눈이 순간 놀란 기색으로 바뀌었다."성호… 성호 어르신?"윤서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이년이 이제 날 알아보네. 네년이 방금 술병으로 내 머리를 쳤다고,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유성호가 분노 가득한 눈으로 윤서린을 쏘아보며 물었다."네?"윤서린은 그제야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 생각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반항할 힘이 없어 본능적으로 테이블 위의 물건을 들어 던진 것까지 어렴풋이 생각났다.그런데 그 상대가 유성호였다니."죄, 죄송합니다. 성호 어르신, 제가 방금 술에 취해서 그런 겁니다. 제가 치료비용 배상해 드릴게요."윤서린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유성호에게 사과를 전했다.유성호는 청룡파 보스였고 청룡파는 S시에서 가장 큰 폭력배조직이었다.윤서린은 유씨 집안의 미움을 살 수 없었다."치료비를 배상하겠다고?"윤서린의 말을 들은 유성호가 웃었다. 그리곤 다시 살벌한 표정으로 윤서린에게 물었다."내가 그까짓 돈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여?""아, 아닙니다…"윤서린은 놀라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른 설명했다."방금 제가 취해서 어르신을 다치게 한 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과드릴게요.""사과?"윤서린의 말을 들은 유성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곤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을 보며 다시 말했다."정말 사과하고 싶으면 기회를 줄 순 있지.""정말
"왜, 무슨 일이야?"임유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전화 받는 태도가 그게 뭐야? 됐고, 나 지금 너랑 말씨름할 시간 없어. 지금 서린이가 청룡파 유성호 어르신을 다치게 했거든, 그래서 어르신께서 서린이를 데리고 가려고 하니까 너 정말 남자면 얼른 와서 도와줘. 지금 퀸즈 206호에 있어."허유나가 말했다."서린이가 유성호를 다치게 했다고?"그 말을 들은 임유환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10분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곤 전화를 끊었다.휴대폰 충전할 시간이 없었던 임유환은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곤 노래방에 도착했을 때, 허유나나 윤서린을 연락하기 위해 전원을 꺼버렸다.한편, 허유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유성호와 눈빛을 교환했다.두 사람은 곧 서로의 뜻을 알아차렸다.유성호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몇 분 더 기다린다고 다 된 밥이 사라지지는 않았다."서린아, 임유환이 십 분만 기다려달래, 자기가 와서 너 구해주겠다고 했어."전화를 끊은 허유나가 옆에 있던 윤서린을 보며 말했다."유나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그 말을 들은 윤서린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임유환에게 오지 말라고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임유환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휴대폰이 꺼졌다는 차가운 알림만 들려오는 휴대폰을 든 윤서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갑자기 윤서린의 안색을 확인한 허유나가 의아하게 물었다."서린아, 왜 그래?""휴대폰이 꺼져 있대."윤서린이 멈칫하다 대답했다."하, 겁쟁이 새끼."허유나가 그 말을 듣자마자 콧방귀를 뀌었다.방금 전, 허유나가 전화했을 때만 해도 임유환은 정말 올 것처럼 말해 허유나는 놀랐었다.그런데 모두 거짓말이었다니.얼마나 무서웠으면 휴대폰까지 꺼버린 걸까?역시, 겁쟁이는 바뀔 수 없었다."예쁜 아가씨, 친구가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네."유성호가 윤서린을 비웃었다."내 뜻을 따르겠다고 하면 내 이름을 걸고 앞으로 S시에서 그 누구도 절대 예쁜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보장할게."하지만 윤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바로 임유환이었다.허유나는 놀란 눈으로 문 앞에 서 있는 임유환을 바라봤다.겁쟁이가 정말 여기에 왔다니."당신이 이 예쁜이 남자 친구야?"유성호가 미간을 찌푸리곤 룸 안으로 쳐들어온 임유환을 바라봤다."서린이 얼굴 네가 저렇게 만든 거야?"임유환은 유성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래, 내가 했어."유성호가 당당하게 대답했다.그는 임유환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임유환은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무릎 꿇고 사과해."임유환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다만 새까만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살의가 그의 기분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담담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하지만 룸 안의 불빛이 어두웠던 덕분에 유성호는 그 살의를 보아내지 못했다.유성호가 그 눈빛을 확인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S시에서 그 누구도 유성호에게 반기를 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하!"임유환의 말을 들은 유성호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쟤 뭐래냐?"유성호의 뒤에 서 있던 부하들도 그를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그 중의 노란색 머리를 한 남자는 사나운 표정으로 임유환에게 말했다."형님, 저놈 머리가 좀 잘못된 것 같으니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제가 교육 좀 시켜주겠습니다. 자기가 지금 누구랑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유성호는 남자를 막았다. 그리곤 재밌다는 듯 임유환을 바라봤다."야, 너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냐?""마지막으로 말할게, 무릎 꿇고 서린이한테 사과해."임유환이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유성호를 바라보는 눈빛도 더욱 차가워졌다."이놈 여자 앞에서 잘난 척하기 참 좋아하네."유성호는 여전히 임유환의 무서운 눈빛을 확인하지 못한 채 턱을 만지며 그를 바라봤다.허유나도 그런 임유환을 보며 고소하다는 듯 웃었다.‘바보 같은 놈, 평소 잘난 척하는 데 익숙해져서 정말 너를 혼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룸 안에 울려 퍼졌다.사람들은 유성호를 무너뜨린 임유환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윤서린이 먼저 반응하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임유환을 바라봤다."형님, 괜찮으세요?"유성호의 부하들도 그제야 유성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이 멍청한 것들이, 내가 지금 괜찮아 보여?"유성호가 머리를 잡고 화가 나 소리쳤다."다 달려들어, 저놈 죽여버리라고!""네, 형님!""젠장, 감히 우리 형님한테 손을 대?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대머리 남자가 바닥으로 침을 뱉더니 열 명이 넘는 부하들을 데리고 살벌한 표정으로 임유환에게 달려들었다."유환 씨, 저는 상관하지 말고 얼른 가요."그 모습을 본 윤서린이 다급하게 임유환에게 소리쳤다."가려고?"유성호의 부하들이 그 말을 듣곤 테이블 위의 맥주병을 집어 들고 임유환을 룸 안에 가두었다.윤서린은 두 손을 잡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임유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때, 임유환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에 있던 유성호에게 다시 말했다."마지막 기회야, 무릎 꿇고 사과해.""무슨 개소리야, 저놈 오늘 죽여!"유성호가 소리치자 그의 부하들이 맥주병을 들고 임유환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치려했다.그 모습을 본 임유환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먹을 들었다.곧이어 남자들의 신음소리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유리병 소리가 들려왔다.유성호의 부하들이 전부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아이고, 아이고…"소파 구석에 움츠려있던 여자들이 놀란 눈으로 괴물을 보듯 임유환을 바라봤다."유환 씨, 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요?"윤서린이 떨리는 심장을 잡고 임유환을 보며 말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허유나는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눈앞의 임유환은 그녀가 알던 그 겁쟁이 임유환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싸움 실력이 언제 이렇게 제고된 건지?"아이고…"유성호의 부하들이 바닥을 구르며 신음을 내뱉었지만 임유환은 그들을 무시하곤 차가운 얼굴로 유성호 앞
룸 안의 분위기는 무척 숨 막혔다.임유환이 다시 유성호의 다른 손을 힘껏 밟으려고 했다."저 자식이 감히! 너 우리 형님이 누군지 알아?"유성호가 당황한 얼굴로 임유환을 향해 소리쳤다."누군데?"임유환이 멈칫하더니 물었다."조재용!"임유환이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몸을 움츠리며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조재용은 HL 그룹의 회장님으로서 J시의 지하 세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그의 말 한마디에 도시 전체가 들썩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랬기에 한낱 S시는 그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만약 이 일로 조재용을 건드리게 된다면 사태는 수습할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갈 게 분명했다."조재용?"이름만으로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조재용을 들먹이는 유성호를 보고도 임유환은 그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그 미꾸라지를 말하는 거야?"그리곤 말을 마치자마자 유성호의 손을 콱 짓밟았다."아!"미꾸라지라는 단어를 들은 유성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뼈가 부러지는 고통이 그를 덮쳐 그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에는 핏줄이 가득했다.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다들 큰일 났다고 생각하는 듯했다.허유나는 상황이 여의치 않게 흘러가자 유성호에게 다가가 상황을 살폈다."어, 어르신, 괜찮으세요?""이 미친년이 감히 이것들이랑 손을 잡고 나를 놀려?!"유성호는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지금 이 순간, 그는 허유나와 장문호가 손을 잡고 그를 계략에 빠뜨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상대방이 겁쟁이라는 소리도, 미녀를 그에게 선물해 주겠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다."어르신, 정말 어르신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허유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설명은 무슨! 내가 뭐 바보인 줄 아는 거야?"두 사람의 말을 들은 임유환의 눈빛이 순식간에 예리해졌다.그는 그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지금 이거 네가 꾸민 짓이야?"임유환이 차가운 눈빛으로 허유나를 보며 말했다."나
허유나는 그런 윤서린의 기분을 봐 줄 생각이 없었다.지금 그녀는 그저 유성호에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연루되지 않게 할 생각뿐이었다."어르신, 어르신도 다 보셨잖아요. 저 정말 어르신 속인 적 없어요. 저 겁쟁이가 싸움을 이렇게 잘할 줄 저도 몰랐다고요."허유나는 필사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애썼다."입 다물어! 오늘 누구도 여기에서 나갈 생각하지 마."유성호가 사나운 얼굴로 소리쳤다."어르신…"곧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구는 유성호를 본 허유나가 몸을 흠칫 떨었다.다른 이들도 그 말을 듣곤 놀라 안색이 창백해졌다.임유환만이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유성호를 바라봤다."방금 맞은 걸로는 부족한가 봐."임유환의 그 말에 유성호가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그때, 허유나가 두려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임유환, 얼른 입 다물어. 죽을 거면 혼자 죽으라고.""네가 죽든 말든 나랑 원래 상관없어. 나는 서린이 찾으러 온 거야, 그리고 너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네 친구들까지 데리고 나갈 거고."임유환이 담담한 얼굴로 허유나를 바라봤다."나 때문이라고? 우리를 이런 상황에 놓이게 만든 사람은 너야!"허유나가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하지만 임유환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가자."임유환이 윤서린을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윤서린은 그런 임유환을 보니 심장이 쿵쾅거렸다."감히 어딜 가겠다는 거야? 오늘 여기에서 나가기만 해봐."유성호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그리고 너 윤씨 집안 그 아가씨지? 오늘 여기에서 나갔다간 너희 집안 S시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줄 거야."유성호가 윤서린을 협박했다.오늘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두 손까지 다쳤다.임유환이 이렇게 윤서린을 데리고 가게 한다면 그는 앞으로 S시에서 더 이상 왕 노릇을 할 수 없을 것이다.그 말을 들
임유환의 말을 들은 유성호가 웃었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조재용을 이렇게 부르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재용에게 보고를 하라니?"야, 네가 뭐라고 우리 형님이 너한테 보고를 하라는 거야?"유성호가 살벌한 얼굴로 임유환을 바라봤다. 그는 힘이 좀 세다고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듯한 임유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서린아, 저 사람이 네 남자 친구야?"허유나의 다른 친구들도 임유환이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다."네 남자 친구 머리 잘못된 거 아니지? 조재용한테 자기한테 보고를 하라니, 우리까지 죽게 만들고 싶은 거야?""그러니까, 죽고 싶으면 그냥 말하던가, 왜 우리까지 끌어들이고 그래.""능력도 없으면서 잘난 척하는 것들이 제일 역겨워.""서린아, 네 남자 친구한테 얼른 어르신한테 사과하고 이 일 끝내자. 어르신이랑 같이 자야 한다고 해도 다 네 탓이니까 우리는 제발 끌어들이지 마.""인주랑 민아 너희들…"윤서린은 그런 말을 내뱉는 여자들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 말도 나오지 않았다.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인 건지, 임유환은 분명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임유환의 잘못이 된 건지."내가 당신들을 연루했다고?"임유환도 그 말이 웃겼다. 임유환이 방금 전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유성호가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걸까?그리고 이 일을 계획한 것은 허유나였다."아니라는 거야?"하지만 임유환의 한마디는 더 많은 불만을 불러일으켰다."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우리를 해치고 있는 거잖아.""인부 주제에 뭐 잘난 척하는 거야?""서린아, 너 남자 보는 눈 언제 이렇게 변했니?" 저렴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임유환은 그들의 눈에 인부와 다름없었다."손인주랑 조민아 그만해."윤서린도 듣고 있자니 화가 나 임유환을 대신해 말했다."윤서린, 지금 무슨 태도야?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겠어?"여자들은 너도나도 윤서린을 탓하기 시작했다.그들은 윤서린과 임유환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고
“이 자식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어? 우리 큰 형님이 벌써 이쪽으로 오고 있어!”룸에서 유성호는 우쭐한 얼굴로 임유환을 바라보았다.머리에 생긴 상처는 이미 얼음찜질로 지혈되었지만 피가 낭자한 얼굴은 여전히 흉측하게 보였다.“그럼 시간 질질 끌지 말고 얼른 오라고 해!”임유환은 여전히 눈을 질끈 감은 채 무덤덤하게 말했다.“그래, 그래! 아주 좋아! 이따 우리 형님을 만나고도 이런 말이 나오는지 두고 보자!”유성호는 화난 나머지 실성했다.그의 눈에 비친 임유환은 세상 물정 모르고 힘만 넘치는 촌뜨기에 불과했다.큰형님 조재용이란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다니…P 시 국장이 오더라도 모두 그의 형님에게 허리를 굽혀 90도 인사를 해야 했다.이 촌뜨기는 대체 뭐야? 허유나는 모순이 옮겨지는 것을 보고 이때다 싶어 애교스러운 얼굴로 유성호에게 쪼르르 달려가 연민을 호소했다.“어르신도 저놈의 태도를 보셨죠?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우리 성호 어르신께서 얼마나 지혜롭고 용맹하신데요, 일단 우리부터 좀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너희들을 보내달라고?”유성호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로 섬뜩하게 웃었다.“오늘 너희들 한 사람도 여기를 빠져나갈 생각 말아라. 그런데…”“그런데 뭐요?”허유나는 실낱 같은 희망을 보는 듯했다.“너희들이 나와 이 형제들을 잘 섬긴다면 너희를 풀어줄 수도 있겠구나.”유성호의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번지면서 두 눈을 가늘게 떴다.“헤헤, 형님 말이 맞아요.”그의 똘마니들도 몸의 통증을 까마득하게 잊은 듯이 맞장구를 쳤다.이 계집들도 꽤나 미모가 좋았다.“어르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허유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이해했다. 유성호의 의도를….“나랑 흥정하는 거?”유성호는 순식간에 미간을 찌푸리며 험악한 표정을 드러냈다.허유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쩔 수없이 장문호를 끌어냈다.“어르신, 실은 제 남자친구가 장문호예요. 어르신과도 사이가 좋은 걸로 아는데 그 사람 얼굴을 봐서라도 우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