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뒤, 지환은 이상언의 전화를 받았다.[방금 회의 중이었어?]이상언은 트림했다.[방금 하은철이 나한테까지 전화를 걸어왔더라. 무슨 신장 공여자를 찾겠다나? 일전에 찾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왜 또 갑자기 바뀌었어?]지환은 화가 채 가시지 않아,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찾고 안 찾고는 네 일이지.”[뭔 말이야?]이상언은 다급하게 얘기했다.[지난번에 말했잖아. 그 여자 병력이 좀 이상해. 네가 찾지 말라고 해서 손 놓고 있었지. 찾으려면 또 병력을 뒤져야 해. 야, 지금 나에게 확실하게 말해 줘. 찾아, 말아?]지환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상언은 이해했다. 찾지 말라는 뜻이다.5분도 안 되어 하은철의 전화가 또 울렸다.이상언은 병력에서 적합한 구실을 찾아 하은철을 거절하려고 윤수정의 병력을 들추어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장의 데이터 수치에 눈길이 끌렸다.지난 1년 간 윤수정의 혈압 데이터인데, 처음 몇 달은 저혈압 상태였다가, 중간에 며칠 동안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가 며칠 뒤 다시 저혈압으로 바뀌었다.촘촘하게 적힌 데이터 수치들이라, 꼼꼼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신부전증의 증상 중 하나가 저혈압인데, 통상적인 경우 혈압 수치가 갑자기 정상으로 될 수 없다.그는 하은철의 전화를 받지 않고, 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병원장님, 혹시 윤수정 환자 입원 후의 모든 데이터를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최근 자료들까지도요…….”병원장은 곧 데이터를 보내왔다.이상언은 특별히 혈압이 정상 수치일 때의 기타 검사 수치를 확인해 봤는데 모두 정상적인 범위 내에 있었다.그게 이상했다.……드디어 새 디자인 시안을 마친 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직접 조직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하였다.모두 끝내자 왠지 모르게 공허함마저 느껴졌다.요 며칠 동안 줄곧 시안 작업으로 바빠, 하지환과 민예지의 일을 생각할 시간도,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오히려 순식간에 지나갔다. 막상 한가해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
“왜 우리가 나가요?!” 임하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내가 사장이야. 손님 받고 말고는 내가 정해요…….”사장이 귀찮은 듯 손사래 치며 말했다.“자, 나가, 나가요, 민예지 양이 싫어하는 사람은 우리 식당에서도 환영하지 않아요.”임하나가 더 따지려고 나서자, 이서가 그녀를 붙잡았다.“하나야, 됐어. 해피한 주말을 꼭 이런 곳에서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근처에 많은 게 음식점이다.“꼭 그렇지는 않지요.”갑자기 농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놀러 나왔는데 당연히 기분 좋게 놀아야죠.”말소리 나는 방향을 따라 보았더니 뜻밖에도 이상언이었다.여기서 그를 다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상언이 다가와 이서와 임하나랑 인사를 하고 또 사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부드럽고 온화하며 모난 곳 없이 무던했다.“이 두 분은 제 친구입니다.”말 속의 뜻은 이미 분명했다.이서와 임하나를 쫓는 것은 바로 그를 쫓는 것이다.눈앞 이 남자의 신분을, 식당 사장은 몰라도, 민예지는 단번에 알아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 이상언 님!”‘국제적으로 유명한 천재 의사!’‘하지환의 절친이라고 했다.’민예지의 심장이 또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환도 근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의 검지가 갑자기 아파오기 시작했다“그…… 할 일이 더 있다는 걸 깜빡했어요……. 저 먼저 갈게요…….”식당 사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민예지를 쫓아갔다.“민예지 양…….”임하나는 민예지가 이렇게 허겁지겁 줄행랑을 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호기심에 이상언을 쳐다보고는 몰래 이서에게 물었다.“이분은 어디에서 뭐 하시는 분이신가? 민예지는 왜 이 사람을 이렇게 두려워하는 거야?”이서도 민예지가 왜 겁이 잔뜩 들어 도망갔는지 모른다.의사인 이상언이 사람 잡아먹을 일은 없을 테고.“윤이서 씨, 이분은…….”이상언의 시선은 임하나에게 떨어졌다.임하나는 솔직하고 대범하게 손을 내밀었다.“임하나입니다.”“이상언입니다.”두 사람은 손가락이 마주치자마자
지환은 눈을 치켜뜨고 연기 속에서 이서를 보았다.네 눈이 마주쳤지만, 말없이 상대방만 바라보았다.이상언은 얼른 이서를 지환의 곁으로 밀었다.“타이밍 죽이지?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이서 씨를 만났어.”지환 옆에 앉은 이서는 그에게서 나는 옅은 박하 냄새 때문에 심금이 혼란스러워졌다.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혀 모르는 임하나는, 하지환이 이상언과 아는 사이라는 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둘이…… 친구예요?”‘오우, 하지환 괜찮은데? 국제적으로 유명한 천재 의사도 알고…….’“병원에 있을 때 알게 되었어요.”이상언은 임하나의 곁에 자리를 잡고 태블릿 메뉴판을 각각 이서와 임하나에게 건네주었다.“임하나 씨, 저희는 이미 주문했어요. 드시고 싶은 거 더 주문하세요.”앉아서 안절부절못하는 이서는 다리를 들어 몰래 임하나를 발로 찼다. 그녀에게 함께 스리슬쩍 빠져나가자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임하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진지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그녀는 몰래 테이블 밑을 보았다.그제야 지환의 긴 다리가 이쪽으로 뻗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그녀의 발길질은 지환의 다리를 정확하게 맞았다.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지환이 마침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 있었다.이서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주문하는 척했다.“자기야, 절대 가재 요리 주문하면 안 돼. 알지?”임하나가 귀띔해 주었다.이서가 응, 하고 대답했다.“어, 윤이서 씨도 가재 먹으면 안 돼요?” 이상언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네, 이서는 가재 알레르기 있어서 먹으면 큰일 나요. 먹자마자 온몸이 팅팅 부어요.”“그래요?” 이상언은 흥이 났다.“신기하네, 지환도 그러한데! 한번은 가재를 잘못 먹고, 세상에, 얼굴이 부어서……. 하하하하, 그때 사진 안 찍어 둔 게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라요!”지환은 이상언을 째려보았지만, 이상언은 모르는 척 계속 임하나에게 물었다.“그럼 이서 씨는 가재 말고 또 못 먹는 거 있어요?”“있지요, 이서는 고수와
임하나는 피식 웃었다.“지환 씨에 대해 아무 느낌이 없다면서, 벌써 그 사람 쪽으로 팔이 굽는 거야?”“하나야…….”이서의 얼굴이 붉어졌다.임하나는 정색하며 말했다.“그래, 알았어, 내가 널 봐서 그냥 놔둔다. 휴우, 잘생긴 남자를 잃었으니, 뭐로 날 보상해 줄 거야?”이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원하는 게 뭐야? 말만 해. 네가 원하는 건 내가 다 해줄게.”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룸으로 돌아왔다.이서가 들어가자 지환의 시선이 이서에게 쏠렸다.이상언은 상황을 보고 일어섰다.“시간도 아직 이른데 영화나 보러 갈까요?”“아니요.”임하나는 이상언과 얽히고 싶지 않아 태도를 분명하게 했다.“나와 이서는 쇼핑하러 갈 거에요. 오늘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이상언의 눈동자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그럼 우리도 같이 가요. 쇼핑하면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말을 마치자, 그는 후회했다.지환이 언제 여자들의 가방 들었다고?하지만, 뜻밖에도 지환은 별말없이 순순히 양복을 들고 일어났다.그리하여 이날, 이상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하지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양손 가득 쇼핑백만 들려 있지 않았더라면, 이상언은 필히 지금 이 모습의 하지환을 찍어 SNS에 업로드했을 것이다.아마도 폭발적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이다.저녁이 되자, 이서와 임하나는 발바닥이 아플 정도까지 쇼핑을 하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이상언은 임하나를 책임지고 데려다주고, 이서는 못 이기는 척 지환의 차에 올라탔다.차가 달리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만 흘렀다.별장에 도착하자, 이서는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쇼핑백을 꺼내려고 했다.하지환이 한발 앞서 쇼핑백을 들었다.“가요.”이서는 두 벌만 샀다. 나머지는 전부 임하나의 전리품이었다.이서는 쇼핑백을 한 번 보고는 지환의 뒤에서 걸었다.달빛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는 마치 목을 감고 뒤엉켜 있는 사람 보였다.그림자를 살펴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좀 더 천천히 걸었다
해산물 집에서 도망가듯 빠져나온 민예지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지환 씨 보고 싶어도 만나러 가지도 못했는데, 이서 이년은 언제 또 지환 씨 절친과 붙어먹은 거야?’‘세상에, 어찌 이럴 수가 있어?’‘안돼.’‘이렇게 잠자코 기다릴 수만은 없어.’민예지는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최현우 씨?”[민예지 씨, 안녕하세요.]“이서 남편이 누군지 알아봐 줘!”그녀는 이서가 도처에서 남자를 꼬시고 다닌다는 증거를 이서 남편에게 보내서 자기 아내를 잘 단속하라고 할 속셈이었다.[아가씨!] 최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지난번에 하씨 집안에서도 사람들을 총출동시켜서 며칠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알아봤는데, 다 헛물켰어요. 이서의 남편이 누군지 아무도 찾지 못했어요. 저한테 알아봐 달라고요? 정녕 알아낸다고 해도, 당신에게 알려줄 때까지 목숨이 붙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민예지는 옷깃을 모으며 물었다.“그런 일이 있었어?”[아이고, 아가씨, 단골이니까 알려드리는 거예요.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아는 사람들도 모두 입을 꼭 닫고 있으니……. 만약 이 얘기가 새어 나간다면 하씨 집안의 체면은 완전히 구기는 셈이지요.]“그럴 리가? 이서가, 자기 남편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는데…….”최현우는 이런 것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사설 정보업체 탐정이었다.[아가씨, 저는 능력이 안 되니 다른 능력자를 찾아보시죠. 하지만 아가씨가 나를 여러 번 챙겨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무료로 정보 하나 알려 드릴게요.]“뭔 데?”[윤씨네 두 자매가 최근에 어떤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 콘테스트에 공모 중이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말을 마친, 최현우는 화를 자초할까 두려워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민예지는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갑자기 한 달 전에 국내의 몇몇 대형 브랜드 사가 연합하여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한다는 뉴스를 봤던 게 기억났다.지금껏 없었던 일이었다.그때 소위 경제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이
며칠 동안 답답했는데, 디자인 콘테스트 주최 측의, 공모전 결과가 곧 발표된다는 연락을 받고, 이서는 그제야 기분이 다소 좋아졌다.몇몇 대형 브랜드가 연합하여 개최한 패키지 디자인 콘테스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공모전 결과를 발표하는 연회장도 고급스럽고 웅장한 것이, 마치 연말 시상식 파티를 방불케 했다.임하나는 테이블 위에 준비된 정갈한 음식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역시 대형 브랜드가 주최하는 행사는 다르구나. 저 디저트들 좀 봐. 모두 유명 브랜드야.”이서는 그녀를 흘깃 쳐다보았다.“네가 언제부터 음식에 관심이 생겼니?”임하나는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듯 말을 대충 얼버무렸다.“요 며칠간 매일 나가서 음식 먹었더니, 음식에 일가견이 생겨버렸네.”이서는 별다른 의심 없이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오늘 초대된 사람은 공모전 입상 100위 안에 든 디자이너들이었고, 주최 측은 1인당 두 명의 친인척과 입장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이서는 원래 하지환도 함께 하길 바랬는데, 연회 시간이 다 때까지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부득이하게 하나랑 둘이 참석하게 되었다.임하나는 이서 곁에 자리를 잡았다.“이번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게 된다면 두둑한 상금 외에 또 하나의 특별 부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뭐야?”이서는 입상하는 것보다는 공모전 참가 경력을 더욱 중요시하기 때문에 시상내역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난 일자리였으면 좋겠다.”가망이 없는 줄 알기에, 그냥 희망 사항을 말했을 뿐이었다.주최 측이 그녀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임하나는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이서야, 너 지금 소녀가장 되려는 거 아니지?”이서의 귀밑이 슬그머니 빨개졌다.“무슨 가장이야, 난 이제 윤씨 집안과는 인연을 끊었으니, 내 코나 잘 닦으면 되지.”임하나는 히죽거리며 웃었다.“그나저나 얼굴은 왜 빨개져?”이서는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조용히 해. 곧 발표한다. 나 지금 긴장한 거 안 보여?”“긴장할 게 뭐 있어?”임
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난 임하나를 달래기 바빠 더 이상 깊이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곧 사회자가 무대에 오르며 연회장은 조용해졌다.사회자는 인사말과 개회사를 간단히 하고, 바로 수상자 발표를 진행했다.“다음은, 지안 브랜드의 CEO께서 공모전 격려상을 수상하신 디자이너에게 시상하시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대머리의 40대 남자가 무대에 올라, 수상자를 발표하기 시작했다.“격려상 수상자는…… 진루안 님, 축하드립니다.”단상 아래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임하나는 이서의 귀에 대고 말했다.“정말 시상식 같다.”이서는 입을 앙다물고 무대 위를 보고 있었다. 아까는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지금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이번 공모전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은상 수상자도 발표됐다.이서의 목구멍이 바싹바싹 타는 것 같았다.“이제 대상과 금상만 남았어.” 임하나는 이서의 손을 잡았다.“자기야, 나는 네가 반드시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말이 막 떨어지자 무대 아래에서 더본 브랜드 CEO의 우렁차고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금상 수상자는…… 윤이서 님!”이서는 깜짝 놀랐다.처음으로 선보인 디자인 작품이 금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녀의 작품에 대한 크나큰 긍정이었다.무대 아래에서 무대 위까지 이서는 가장 길고도 짧은 여정을 걸었다.무대에 올라 더본 CEO로부터 트로피를 건네받았을 때까지도, 이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네, 이제 마지막으로 대망의 대상만 남았습니다.”사회자의 목소리는 더없이 우렁찼다.“고연의 CEO인 이명인 여사님께서 대상 수상자를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장내에 가장 열렬한 박수가 울려 퍼졌다.이서는 느릿느릿 걸어오는 이 여사를 보았다.이 여사는 시상대 앞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작은 카드를 펼쳤다.“제1회 ‘뷰티 페이스’ 패키지 디자인 콘테스트의 대상 수상자는…….”“윤수정 님입니다!”“
무대 아래의 임하나는 이서를 위해 손에 땀을 쥐었다.하지만 이서는 마치 함정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가볍고 진솔한 말투로 답했다.“진정한 재능과 뛰어난 실기로, 받은 대상이니 당연히 축하해야죠!”윤수정 얼굴의 웃음기가 순간 굳어졌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이 대상을 어떻게 거머쥐었는지 잘 알고 있다. 속이 찔린 셈이다.무대 아래 사람들은 이서의 말을 듣고 박수를 쳤다.이서의 당당한 발언은, 윤수정의 소인배적 심보와 대조되어 더욱 정정당당해 보였다. 이에 사람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시상이 끝난 뒤, 상위 5위와 각 브랜드 CEO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었다.윤수정은 일부러 이서의 곁에서 손에 든 트로피를 흔들었다.이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보았다.카메라가 찰칵 소리를 내며, 사진사가 연달아 여러 장을 찍었다.촬영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물러났고, 윤수정은 내려가려는 이서를 불러 세웠다.이서가 뒤를 돌아보았다.윤수정은 휠체어를 조정해서 이서 앞에 가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내가 말했지, 마지막까지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고…… 너, 졌어.”이서는 그녀의 품에 든 트로피를 보고는, 허리를 굽혀 그녀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윤수정, 네 수준이 어떤지 내가 잘 알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내 눈은 못 속여.”어렸을 때부터, 수정의 그림 숙제는 매번 이서가 대신해 주었다.수정은 어렸을 때부터 늘 이서가 자기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투덜거렸다.그러나 수정도, 이서가 하은철의 합격된 아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잘 모르고 있다.피아노 연습을 하면서도, 손톱이 몇 번이나 빠졌다.노력 없이 높은 곳에 서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얼굴이 창백하고 가슴이 벌렁벌렁하던 윤수정은 한참이 지나서야 마침내 냉소를 지었다.“네가 아무리 인정 안 해도 대회 조직위원회는 내 수준을 높이 평가했어. 언니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원철 오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