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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이상언은 눈을 부릅뜨곤 한참이나 뒷말을 기다렸지만, 이서는 아무런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마침 종업원이 식사를 내오기 시작했다.

“자, 식사합시다. 드세요.”

식사를 마치고, 이상언과 이서는 갈라섰다.

소녀의 뒷모습을 보고 이상언은 휴대전화를 꺼내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회사.”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기 위해 지환은 북성 동쪽의 작은 상권에 사무실을 얻었다.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하은철에게 하씨 빌딩 88층을 치우고 개인 헬스장을 만들어 두라고 했다.

그가 회사라고 말하자 이상언은 북성 동쪽에 위치한 사무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 오늘 누구 만났게? ……이서 씨 만났어.”

고개도 들지 않던 지환은 손에 쥔 펜을 멈추고, 냉엄한 표정을 지었다.

“밥도 한 끼 먹었지.”

“이상언!”

지환은 혀끝이 입천장에 닿았다.

이상언은 헤헤 웃었다.

“우연히 만난 거야. 노트북을 수리하려고 한다길래 너를 적극 추천했어. 어때, 충분히 재미있지? 네가 이서 씨 도와 노트북을 고치기만 하면 그녀는 틀림없이 니가 멋지다고 생각할 거야. 네가 달리 보일 거라고. 그럼 너희 두 사람의 관계도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

검지로 이마를 누르고 있는 지환의 얼굴선이 팽팽해졌다.

머릿속에 또 어젯밤의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이서의 적극적인 행동은 그의 욕정에 불을 지폈지만, 그녀의 눈물은 열정의 불씨를 무참히 꺼버렸다.

‘마음에서 우러난 게 아니었어.’

“왜 말이 없어?”

전화 너머에서 느껴지는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는 이상언을 긴장하게 했다.

지환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우리 사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하은철을 8년 동안 사랑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이상언은 속으로 부정했다.

‘뭐가 그리 복잡해?’

하지만 입으로는 별일 아닌 듯 물었다.

“정말 이서 씨 일에 관여하지 않을 거야?”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지환은 눈동자를 치켜들었다.

“들어와.”

들어온 사람은 비서 이천이었다. 지환이 통화 중인 걸 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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