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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화

이서는 목욕 타올을 두르고 망설이며 욕실을 나섰다.

상의를 탈의한 채 갈아입을 옷을 찾던 지환은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이서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지환의 몸매는 정말 예술이었다. 떡 벌어진 넓은 어깨와 잘록한 치골, 운동으로 잘 다져진 탄탄한 가슴 근육과 복근, 생각해 보면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다.

이서는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 지환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게요.”

눈썹을 치켜세운 지환은 움츠린 이서의 분홍색 발가락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잠긴 목소리는 답했다.

“그래요.”

그는 말하면서 갈아입을 옷을 이서에게 건넸다.

고개를 숙인 이서는 지환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한 그녀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이서 손에 들린 옷은 지환의 팔을 가볍게 지나, 어깨 쪽에 다다랐다. 지환의 키에 비해 아담한 이서는 발끝을 세워야만 옷을 입힐 수 있었다.

지환이 눈치채고 매너 있게 고개를 숙이자, 이서의 붉은 입술이 지환의 턱에 닿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머릿속도 백지장이 되었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것 같더니 이내 침대로 내던져졌다.

곧이어 숨 막히는 키스가 쏟아졌다.

의식은 점차 주체를 잃고, 육체와 분리되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울어요?”

지환의 목소리에 의식이 돌아온 이서는, 볼을 쓰다듬고 나서야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방금 전까지 눈에 서려 있던 흥분과 격정은 사라지고 지환은 무덤덤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

“싫은가요?”

이서는 버벅거리며 붉은 입술을 벌렸다.

싫은 게 아니라, 민예지가 지환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짜증나고 슬펐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계약서에서는 상대방의 사생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지환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잘 자요.”

이서가 정신 차리고, 일어났을 때 문은 이미 닫혔다.

그녀는 무릎을 안고 침대에 우두커니 앉았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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