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너무 신기할 정도로 딱 맞는 부분이 없지 않다.’‘집에 가면 지환에게 확실히 물어봐야겠다.’가는 길에 아무말 없던 이서는 어느덧 하관식장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임하나가 보였다.그녀는 걸어갔다. “하나야.”이서의 초췌한 모습을 본 하나는 마음이 아팠다.“하은철 그 자식이 너 잠도 못 자게 모든 일 다 너에게 떠넘겼지?”이서는 웃었다.“아니야, 요 며칠 지켜보니 오히려 이전과 많이 달라졌던데.”“어, 어떻게?”하나는 말하면서 불현듯 하은철에게 시선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이서의 주위를 맴도는 걸 발견한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이제 후회되는가 봐. 진작에 그럴 것이지.”이서는 어리둥절하여 말했다.“뭘 후회한다는 거야?”“꽃처럼 아름답고 사리에 밝으며 부드럽고 현명한 좋은 아내를 놓친 것을 후회하는 거지.”임하나는 말하면서 일부러 이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으쓱거리며 하은철 앞을 지나갔다.이서는 하나가 이끄는 대로 하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하은철은 아직 밖이었다.상황을 지켜본 주경모는 얼른 한마디 보탰다.“도련님, 들어가세요.”하은철은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아저씨 혹시 진작부터 알고 있었죠?”주경모는 순간 당황했다.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는데 바로 하은철의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할아버지도 알고 계셨어요?”이 정도로 말을 꺼냈을 때는 아닌 척하는 것도 별의미가 없어 보였다.주경모는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단지 추측했을 뿐입니다. 방금 아가씨 표정을 살피니 아직도 남편이 큰집 도련님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주경모는 눈살을 찌푸렸다.“물론 두 번째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두 사람이 동명이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H국에도 동명이인은 사람이 많으니까요.”“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의심하셨어요?”“그건…….”주경모는 약간 읊조렸다.“이서정 씨와 큰집 도련님이 위장 결혼이라는 걸 알았을 때일 겁니다.”“
“이서야, 너 왜 그래?” 임하나는 이서의 팔을 밀었다.이서는 정신이 흐리멍덩한 채 고개를 숙이고 관 속의 하경철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는 편안하게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제서야 방금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서야?” 임하나는 다시 작은 소리로 물었다.“너 괜찮아? 왜 이렇게 얼굴이 창백해?”이서는 고개를 저었다.‘요 며칠 잠을 설쳐서 그런가 봐.’“우리 가자.”다음 헌화하는 손님이 이미 단상에 올라왔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임하나를 따라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헌화를 마치고 바로 하도훈의 조사와 추모사가 이어졌다.임하나는 이 기회를 틈타 낮은 소리로 이서에게 물었다.“왜 하은철 둘째 삼촌은 보이지 않는 거지? 안 왔나?”이서도 좌우를 살폈다.“오늘 행사에 참석한다고 연락 왔다고 집사 아저씨가 얘기하더라.”“그런데 아직 안 보이는데?”오늘 하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권세가들이나 재벌가들이라 임하나도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낯선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딱 봐도 하은철 삼촌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그는 북미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었으니.이서도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했다.“해외에서 오니까 시간이 더 걸리나 봐.”두 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임하나가 팔꿈치로 이서를 툭 쳤다.“저기 저 여자, 심동 여자친구 아니야? 자꾸 너를 힐끔힐끔 보고 있던데, 혹시 그녀랑 무슨 껄끄러운 일이라도 있니?”임하나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정말로 장희령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경멸과 적개심이 가득했고 좋은 구경거리 두고 보자는 눈빛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자기 말에 토 달았다고 내게 원한 품은 거 같아.”“어? 그럼 설마 심동에게 자기 대신 복수해달라고 하지 않을까? 나도 들었는데, 심동이 장희령을 꽤나 좋아하나 봐. 그녀의 부탁이라면 별 따는 흉내라도 낸다던데. 까놓고 얘기하면 따리꾼이지.”“설마? 그냥 몇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하도훈은 비로소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소개했다.“이분이 바로 제 큰아버지 아들…….”어떤 사람이 앞다투어 물었다.“설마 큰댁 도련님이요? 둘째 삼촌이 이렇게 젊고 멋있을 줄이야!”“훈남이 따로 없네. 지적이고 분위기도 있어, 그나저나 결혼은 했는지 몰라?”“흑흑흑,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사람도 있다니?”“…….”주위에 의논이 분분했다.이서는 이를 앙다물고 있는 임하나를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나야, 너 지금 질투하는 거야?”“질투라니, 내가 뭘 질투해?”임하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자신의 감정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임하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내가 화난 이유는 하은철 둘째 삼촌이 아닌 그 사람이 등장했기 때문이야.”“나도 몰라.”이때 다른 사람들도 하은철의 입에서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YS 그룹 회장이 아닌 그의친구라는 걸 알게 되었다.“여러분, 오해하게 해서 죄송합니다.”이상언은 웃으며 말했다. 시선은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지나 임하나에게 떨어졌다.“오늘 저는 제 친구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큰 행사에 하 회장님 참석하지 안 한 건 아니, 못한 건 지금 네팔 쪽에 발이 묶여 출국 못하고 있습니다. 저더러 미안함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말하면서 이상언은 하도훈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하도훈은 이상언이 한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의상 상황은 받아넘겨야 했다.“아이고, 천만에요, 하 회장도 하관식에 오고 싶은 마음 잘 압니다. 하지만 천재지변 앞에서 어쩔 수 없으니까요.”“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상언은 또 하도훈과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고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지환에게 지정된 자리에 이렀다.하관식은 이상언의 도착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사람들이 하관식장에서 나와 호텔로 향했다.길에서 임하나는 이상언을 가로막았다.“어떻게 당신이……?”
그러나 심동은 다가와 이서에게 악담을 퍼붓기는커녕 오히려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이서 씨, 오랜만이야, 요즘 어떻게 지냈어? 윤씨 CEO가 됐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축하해.”이서는 망설이며 임하나를 바라보았다. 임하나도 심동의 태도에 다소 놀랐다.그러나 두 사람은 방심하지 않았다. 뒤에는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장희령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임하나는 비록 장희령과 정면으로 충돌한적이 없지만, 그녀는 이미 상류층에서의 이름이 자자한 인물이었다.그녀에게 밉보였다간 뼈도 못 추스렸다.그러나……장희령은 이서 앞에서 이전의 오만방자한 자세를 접고 미소를 지으며 이서에게 말을 건넸다.“이서 씨.”심동은 일부러 두 사람을 이리저리 번갈아 보며 둘러보았다.“둘이 아는 사이였어?”장희령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그런 셈이지. 이전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는데……. 우린 싸움 끝에 정이 붙은 셈이지.”심동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둘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고? 뭔데?”이서와 하나도 눈치 빠른 거 빼면 시체였다. 두 사람이 맞장구 치며 놀고 있다는 걸 벌써부터 눈치챘다.두 사람은 연기를 끊을 생각 않고 조용히 그들의 연극을 보았다.장희령은 역시 여우주연상 수상자 답게 그날 발생한 일을 감정을 넣어 실감나게 심동에게 전했다.그러나 그녀는 모든 잘못을 비서에게 떠넘겼고, 자신은 무고하게 연루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한쪽에서 듣고 있던 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이서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장희령이 뭐라고 떠들어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장희령이 말을 마치자 심동은 잠시 뒤 중얼거렸다.“그러고 보니 자기 그 수행 비서가 정말 안 되겠네.”“응, 나중에 나도 오해한 걸 알고 그녀를 잘랐어. 여러 해 동안 나랑 함께한 아이라 정도 많이 들었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심동은 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서 씨, 이러한 처리 결과에 만족해?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서 씨 뜻에 따라 처리할게.”이서는 웃으며 답했다.“이미 오래 전 일이에요
“지환 씨 없으니까 내가 감히 거리낌 없이 행동하지. 몰랐어? 지환 씨 있을 때 내가 너를 가까이하면 그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어우 무셔라.”이서는 웃으며 화제를 돌려놓았다.“방금 질투 난다고? 뭐가 질투나?”임하나는 정색하고 일어섰다.“뭐긴 뭐야, 이서 네가 하이먼 스웨이 님의 수양딸이라는 게 질투나지. 흑흑흑, 만약 내가 그분의 수양딸이라면 나는 벌써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거야.”이서는 웃었다.“질투할 것도 많다. 친 딸도 아닌데.”임하나는 듣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슬퍼하기 시작했다.“그래, 친자식은 아니지. 지난번에 하이먼 스웨이 님이 말씀했잖아. 딸 소식 있다고. 딸 찾으시면 곧다시 Y 국으로 돌아가겠지?”‘그렇게 되면 이서는 또 혼자가 된다.’‘그래도 지금 지환 씨가 옆에 있어서 천만다행이다.’임하나의 얼굴에 근심이 곧 말끔하게 사라졌다.하지만 아쉬운 것 어쩔 수 없었다.“하이먼 스웨이 님이 정말 네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그분은 정말 좋은 엄마셔. 하지만 부모자식은 천륜이니 어떻게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자나.”“그러니까.”임하나는 턱을 괴고 있었다.“오늘 저녁에 집에 가지?”“음.”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빨리 돌아가고 싶은 거 보니 보고 싶은 사람이 있구나?”이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또 나 놀리는 거지?”“하하,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친구야, 말해봐. 이틀동안 남편과 떨어져 있었는데 어떤 느낌이야?”“속이 텅 비어 있는 게 빈 껍데기가 된 거 같아.”“정말? 그 정도야?” 임하나는 장난기 가득하게 이서의 코를 가볍게 스쳤다.“끝났군, 끝났어.”이서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나 이제 정말 그 사람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하나야, 이러다 나 정말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되지 않을까?”임하나는 확고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럴리가.”“왜? 내 의지가 확고해서?”“아니.” 임하나는 정색했다.“지환 씨가 너 많이 사랑하잖아. 절대 바람 피울 위인은
다음 순간, 차 문이 열리고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이서는 힘겹게 머리를 들었다. 윤수정의 일그러진 얼굴이 어렴풋이 보았다.“쌍년, 얼른 나와!”날카로운 목소리를 듣자, 이서는 상대방은 윤수정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두피가 찢어질 듯한 통증에 이서의 의식은 더 뚜렷해졌다. 고통스러운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윤수정을 바라보았다.이서의 강렬한 눈빛에 윤수정은 제 발 저린 듯 심장이 움찔했다. 하지만 곧 험악하게 웃었다.“뭘 봐, 여긴 평소에 지나다니는 차량도 없어. 즉 너를 구하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지. 그러니까 기대 같은 건 하지 마. 이 쌍년아, 감히 할아버지의 죽음을 이용해서 은철 오빠에게 접근해? 정말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구나.”이서는 윤수정에 의해 강제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서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윤수정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윤수정, 너 정말 못났다.”“뭐라고?” 윤수정은 화가 날 대로 났다.“내 말이 틀렸어? 넌 계속 하은철과 결혼 못 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잖아. 나 유부녀야. 그 하은철 “유부녀인 나를 원해도 너는 싫다는 거야. 너 자신의 문제인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반성 좀 해.” 네가 나를 죽여도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나겠지. 너는 영원히 하은철의 사랑을 받지 못할 거거든.”이 말은 단번에 윤수정의 가슴속을 찔렀다. 그녀는 손을 들어 이서를 뺨을 갈겼다.이서는 그녀가 손을 놓는 틈을 타서 온 힘을 다해 윤수정을 매섭게 들이받았다.너무 갑작스러운 액션에 윤수정도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하지만 곧 손을 들어 이서의 머리를 내리눌렀다.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서는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머리가 터질 듯 어지럽더니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바로 이때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누군가 오는 것을 본 윤수정은 아쉽지만 이서를 버리고 서둘러 도망갔다.이서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곧 바닥에 쓰러지겠거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쓰러져가는 그녀를 잡아주었
심동의 말에 장희령은 드디어 얼굴에 웃음을 되찾았다.“역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니까.”“그럼, 우리 지금…”“싫어!”두 사람은 치근덕거리며 차에 올라탔다. 차가 멀리 떠난 지 한참 뒤에야 윤수정은 옆의 숲에서 걸어 나왔다.‘이상하네.’‘이쪽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외딴 길인데? 게다가 심동의 거처도 이쪽 방향이 아닌데 왜 갑자기 여기에 나타났을까?’‘에라, 모르겠다!’윤수정은 지금 이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녀는 윤재하를 찾아갈 예정이다. 그를 꼬드겨 이서의 출생에 관한 비밀에 대해 폭로하게 할 생각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녀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그녀는 곧 길가에서 택시 한 대를 불렀다.그러고는 곧 윤재하의 별장으로 향했다.별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거실에 앉아 차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윤씨 부부에게 말했다.“더는 못 참겠어요. 이서가 두분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발표합시다!”성지영과 윤재하는 서로 쳐다보며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갑자기 무슨 일이야? 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차피 두 분도 윤씨 그룹을 빨리 되찾고 싶잖아요. 내가 봤을 때 지금이 최적의 시기에요.”더 미뤘다간 하은철과 이서가 결혼하게 될 거라는 얘기를 차마 할 수 없었다.성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하려는 찰나에 윤재하가 막아섰다.“수정아, 우리 한배를 탄 사이 아니니? 네가 우리에게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도 협조하기 어렵다.”“별다른 이유는 없어요.”윤수정은 남의 일인 듯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척했다.“저도 두 분을 위해서예요. 지난번에 작은엄마가 하마터면 실언할 뻔했잖아요.”윤재하도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물었다.“수정아, 민씨 그룹 지금 매각 들어간 거 아니?”윤수정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네.”“내 생각에는 말이다, 윤씨 그룹 하나만 돌려받는 것 보다… 이러는 건 어떨까? 네가 민씨 그룹을 인수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시
이서는 상처 처리를 마치고 병원 밖의 의자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그 순간 지환이 왜 싸우고 집에 안 갔는지 이해하게 되었다.지금 심경이 지환의 그때와 똑같을 테니까.상대방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정말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바보와 바보, 천생연분이니 평생 헤어지지 않겠지?’고개를 숙이자, 저도 모르게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쓰윽 훔쳤다. 마침 옆에 놓여 있던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힐끗 봤더니 지환이 걸어온 것이었다.이서는 얼른 눈물을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전화가 연결되자 저쪽에서 지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서는 참지 못하고 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여보, 아직 일 안 끝났어?]이서는 침을 삼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다 끝났어요.”지환은 이서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다.[오늘 길이야?]“아니요.” 이서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녀를 배신할까 봐 걱정되었다.“오늘 저녁에는 못 돌아갈 것 같아요.”그녀는 사고의 흔적을 처리할 곳을 찾아야 했다.[엉? 왜? 오늘이 장례식 마지막 날이잖아?]“아, 네, 근데…”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거짓말하는 게 죽는 것보다 싫지만 그래도 말을 둘러댔다.“엄마가 일이 있다고 잠깐 보자네요. 다녀와야 할 거 같아요. 이미 늦은 시간이니 도착하면 오늘 집에 들어가기 힘들 거 같아요.”지환은 잠시 침묵하다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 그럼 일찍 쉬어.]“응.”이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도 잘 자요.”지환이 전화를 끊자 이서는 곧 하이먼 스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지환이 전화를 걸어 확인할까 봐서였다.하이먼 스웨이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서에게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캐어물었다.이서는 부득이하게 솔직하게 말했다.“작은 교통사고 났어요. 하지만 많이 다치지 않았어요. 걱정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