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나나는 윤이서의 질문에 어리둥절했다.그녀의 대답은 매니저인 여은아의 대답과 비슷했다.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고, 나는 이미 익숙해졌다고.“사실 예전에는 더 심한 사람도 만났어요.”나나는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다.“그 당시 여주인공이 저를 심하게 괴롭혔던 기억이 나네요. 제작진 중 누군가가 제가 여주인공보다 예쁘다고 몰래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촬영을 하면서 그 여주인공은 절 정말 고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다행히 스태프들이 달려와서 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이 얼굴로 못살았을 거예요.”웃으며 담담히 말하는 나나의 모습을 본 이서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넌? 그때도 지금처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당하는 것뿐이었어요…….”나나는 고기를 한 점 집어 들고 말했다.“됐어요, 이서 언니,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이제 저도 고생을 전부 보상받는 걸요.”이서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었다.“나나야, 난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꿈을 좇기 위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이런 고난이면 안 돼, 이건 다른 사람이 고의로 너에게 굴욕을 주는 거라고. 넌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해.”나나는 이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서는 말을 마친 후에야 이를 깨달았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물었다.“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아니요…….”나나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그냥……, 제 생각엔…….”“응?”“언니 화 내지 말고 들어요.”긴장한 나나는 불안한 눈으로 이서를 쳐다봤다.“난 그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야.”이서는 웃으며 대답했다.나나는 주먹을 꽉 쥐고 슬그머니 이서를 바라봤다.“전에 언니에 대해 들은 게 있어요…….”이서는 더욱 밝게 미소를 지었다.“예전에 내가 왜 하은철한테 끈질기게 매달렸는지 물어보고 싶은 거지?”나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화가 나 피를 토할 것 같았다.나나를 끌어당
서나나는 윤이서의 기분이 안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머리를 긁적였다.“이서 언니, 제가 실수한 건가요?”이서는 고개를 들어 나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나야, 너도 몇 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별 희한한 대본을 다 봤겠지,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물론이죠, 이서 언니.”나나가 대답했다.“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대본을 읽어 본 적 있어?”놀란 두 얼굴을 마주한 이서는 자신이 마치 병이 난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았다.다행히 나나는 대화에만 집중했기에 별 생각 없이 이서의 말을 듣고 머리를 굴려 이런 막장 스토리가 있었는지 생각해 봤다.한참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이런 부분에 지식이 빠삭했던 여은아는 바로 떠올렸다.“사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드물지만, 과거, 특히 19세기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어요.”은아는 이어 말했다.“당시는 민족주의 시대여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자유를 옹호했지만 기성세대는 집안 수준을 따지기에 지금은 비판 받을 수 있어도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어요. 집사람이 있지만 또 장가를 가는 형태는 하나는 조건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대상이었을 거예요.”이서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반짝거렸다.‘설마…….’‘하지환이랑 그런 상황이었던 거야?’하지만 그런 거였다면, 그녀가 지환의 집에 갔을 때, 그의 아버지가 좋아하면 좋아했지, 불만족스러운 눈으로 이서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이서는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머릿속의 모든 안개를 걷어내고 사태의 본질을 분명히 보고 싶어했다.샤브샤브 집에서 나온 이서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이서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누군가가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았다.가끔 위층을 올려다보기도 했다.이서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고, 그녀의 집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말할 필요도 없이 집에 있는 사람은 지환이었다.그녀는 정말 지환을
“올라가서 얘기해요.”“좋아요, 아, 아니……, 됐어요.”이천은 입을 뻐끔거렸다.“전……, 지금은…… 안 올라 갈 거예요.”이서는 밝은 집의 불빛을 바라보며 깨닫았다.“지환 씨를 만나러 오셨죠?”“네, 아, 아니요.”이천은 정신 나간 미치광이처럼 횡설수설했다.“찾아온 것이 아니에요…….”이서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천을 바라봤다.“지환 씨가 평소에 어떻게 대했길래지금 이천 씨가 이러시는 거예요?”“아니에요.”이천은 허허 웃었다.그의 뇌는 이미 초토화 상태였다. 이천은 며칠 동안 줄리와 의문의 사람에 대한 정보를 강도 높게 찾아보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정보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입은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 나오곤 했다.“대표님께서 줄리와 의문의 사람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셨거든요. 줄리는 배우고 의문의 사람은 사모님이 ML국에 있을 때 연락을 한 적 있습니다.”이서는 이천이 호칭을 바꿨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녀의 신경은 온통 이천이 줄리와 의문의 사람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데에 쏠렸다.이전에 지환이 조사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이서는 그가 얼버무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압박당하는 이천을 보자 그녀는 마음이 복잡했다.그녀는 집을 올려다보았고, 지환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혼인관계증명서에 기혼이라 적힌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한, 이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설령 서나나의 매니저가 말한 상황처럼 부모의 말에 따라 정략결혼을 한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서는 정신을 차리고 여전히 비틀거리는 이천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알아낸 게 있나요?”“아니요.”이천이 대답했다.“그래서 저는 대표님을 만나서 북극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어요. 펭귄들에게 먹이를 줘야 하거든요.”이서는 그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지환 씨가 그랬어요? 찾아내지 못하면 펭귄 먹이를 주러 북극으로 보낸다고?”이천은 천천
하지환의 눈빛은 다소 차가웠다.다른 이유는 없었다.윤이서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지켜주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지켜줄 이유가 없었다.“봐 봐요.”이서는 강아지를 훈육시키 듯, 두 손을 허리춤에 두고 숨을 내쉬고 있었다.“이천 씨가 얼마나 똑똑했는데, 이것 봐요, 정신을 못 차리잖아요. 과도한 업무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몰라요? 만약 이천 씨 가족이 지환 씨를 직원들의 노동을 착취한다고 고소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1초 전가지만 해도 눈물 날 만큼 감동받았던 이천은 당혹스러웠다.“예?”‘아, 사모님께서 이렇게 걱정하시는 게 내가 대표님을 고소할까 봐 두려운 거였어?’지환은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웃어요? 웃음이 나와요?”이서는 그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직원을 협박하고 펭귄에게 먹이를 주라며 북극으로 보낸다는 그런 가스라이팅은 고소감이라고요. 그리고 제발 상식공부 좀 하세요, 북극에는 펭귄이 없어요!”이천은 입을 열어 이서에게 북극에 실제로 펭귄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건 YS그룹에서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으며 아직 발표되지 않았기에 말을 아꼈다.하지만 그는 지금 이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사모님이 눈앞에서 대표님을 손주 혼내듯이 혼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지환이 이를 빌미로 자신을 북극에 보낼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하나님, 혹시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하지만.“지금 날 걱정하는 거야?”지환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짓고 물었다.마치 얼음과 눈이 녹고, 이른 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이천은 깜짝 놀랐다.‘뭐야……, 대표님께서 전혀 화가 나지 않으셨잖아?’‘손자처럼 야단맞고 기뻐하다니?’‘원래 그런 취향이셨나?’이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지환이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그의 눈웃음은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서 마치 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뺨을 어루어 만지는 느낌을 주었다. 이에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하지환의 말에서 어찌 그토록 소심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그러나 윤이서는 불합리한 사람이 아니었다.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그렇게 작은 정보로는 정말 알아내기가 어려웠다.이서는 그를 쫓아내고 싶었지만,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됐어.’‘내일 다시 이야기하자.’이서는 식탁으로 걸어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식탁을 보고 조용했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식사를 마친 이서는 지환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는 걸 완전히 잊었다.그녀가 다음날 일어나서 회사에 도착해서야 생각이 났다.임현태에게 차를 돌려달라고 하기엔 너무 미안했다.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한편, 도시의 반대편.이서정은 이하영과 함께 집에서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곧 이하영의 55번째 생일인데, 민호일은 이하영의 생일을 빌미로 하은철의 둘째 삼촌과 콜라보에 대해 이야기할 계획이었다.이 일은 외부에도 이미 오랫동안 오르내리고 있었다.하지만 공식 발표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천지 차이였다.공식 발표는 마치 혼인신고서처럼 하나의 보증이었다.또한 민호일은 지환을 따라다니면서 실제로 많은 돈을 벌었고, 하루빨리 4대 가문 중 2인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그래서 민호일은 올해 이하영의 생일이 아닌, 큰 행사를 계획하고 있었다.서정과 이하영은 두 시간이 넘게 동행했다.피곤해하는 이하영을 본 서정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언니, 잠시 앉았다가 가요.”“그러자.”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인이 과일차를 가져왔다.“오늘은 한가한가 봐? 나랑 같이 옷도 고르고 말이야.”“말도 마요.”서정이 말했다.“지금 모든 제작진들이 여자주인공한테 잘 보이려고 쩔쩔매고 있다니까요?”“여자주인공?”“네, 서나나라는 여자애에요, 아시죠?”“요즘 인기 많던데, 윤이서 사람이라면서?”서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뭐야, 윤이서가 또 널 건드렸어?”이하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서정은 이
십이지신을 주제로한 옷은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고, 윤이서는 이미 2차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는 이미 2차 의상에 대한 홍보 및 유통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이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바빴다.이서는 그녀의 부하직원들이 무능하지는 않지만 이서가 조만간 파산할 거라는 마음에 대체적으로 일을 엉터리로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지금은 180도로 바뀌었다.성공을 맛본 직원들은 하나같이 의욕이 넘쳤다.예전에는 이서가 해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직원들 선에서 해결되었다.그래서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전혀 없었다.하루하루가 확인란에 사인하는 일뿐이었다.대표의 자리는 전혀 바쁠 일이 없었다. 모두가 대표가 되고 싶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서는 지금 긴장을 풀고 싶지 않았다. 긴장을 풀게 되면 어떤 엉뚱한 생각을 할지 모를 일이었다.그녀는 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걔집애는 도대체 뭐하고 지내는 거야? 얼굴도 안 비추고 최근 축하 파티에도 안 왔잖아.’전화를 걸자마자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이서야.]하나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고, 덩달아 이서의 기분까지 좋아졌다.“무슨 좋은 일 있어?”[그럼.]하나는 전혀 숨기지 않았다.“상언 씨랑 화해한 거야?”하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아니.]이서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그럼 복권이라도 당첨된 거야?”[하하, 아니야.]하나가 대답했다.[나 새로운 남자친구 생겼어, 오늘 밤에 소개시켜 줄게.]“뭐? 남자친구?”이서는 너무 놀라 혀를 깨물 뻔했다.[응.]하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키보드를 두드렸다.“오늘 보여준다고?”“그동안 새 남자친구 찾느라 그렇게 바빴던 거야?”[응.]하나는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사람은 사람으로 잊어야 한다고 말했잖아. 너랑 안 만날 때 난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있었어.]이서가 대답했다.“하지만 너가 옛 사랑을 잊기 위해 굳이 새로운 사랑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잖아.”전화기 너머에 있는 하나
“얼른 들어가자.”윤이서는 사진이 찍힐까 봐 걱정이 되어 서둘러 서나나와 임하나를 룸으로 밀어 넣었다.룸에 들어온 후에도 하나는 한참을 혼란스러워했다.그녀는 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정말 서나나예요?!”그 후 하나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나나 씨가 찍은 작품들 중에 진짜 좋아하는 작품이 있는데, 하, 그게 뭐더라…….”“천해요?”“맞아요, 맞아, 천해. 거기에 나오는 격투씬은 정말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했어요!”하나는 밝은 얼굴로 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서야, 너도 천해 봤지?”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무언가 깨달은 듯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내 정신도 참, 이서가 그 드라마 때문에 나나 씨가 뜰 거라고 예상했단 걸 잊고 있었네.”이에 대해 하나는 미안해하며 이서를 끌어당겼다.“이서야, 미안해. 요즘 새 애인을 찾느라 너한테 축하한다는 말도 못했네.”이서가 답했다.“괜찮아, 네가 다시 행복해진 게 나한테 가장 큰 축하 선물이야.”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미닫이 문이 열리고 키가 큰 남자가 들어왔다.그는 기모노를 입고 있었고 외모는 준수했지만, 이서의 시선은 기모노에 붙어있는 그의 머리카락에 쏠렸다.“내 남자친구, 지강현이야.”하나는 그의 남자친구를 정식적으로 소개했다.강현의 시선이 이서에게 떨어졌다.“하나 절친이시죠?”“네.”“정말 아름다우시네요.”이서는 미간을 찌푸렸다.하나가 그녀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 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행동은 하나 앞에서 자제해야 하는 행동이었다.하지만 강현은 시선을 거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는 직접적이고 대담하게 이서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는 갑자기 이서와 하나의 옆에 있는 서나나를 향해 악수를 청했다.“서나나?! 천해에 나왔던 서나나 맞아요? 정말 예쁘시네요. 저만의 여신은 모두 일본 여배우였는데 당신을 본 이후로 서나나 씨가 제 유일한 여신이에요.”나나는 열광적인 팬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터라 강현과 악수를 한 뒤
이상언은 눈에 불이 붙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이 사람이 새 남자친구입니까?”“네.”임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어때요, 당신보다 더 잘생겼죠?”상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둡고 매서운 눈으로 지강현을 바라봤다.강현은 아름다움에 매료된 욕망이 절로 사라졌다. 그저 가능한 한 빨리 하나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하지만 하나는 계속해서 강현을 꽉 잡고 있었고, 당당한 눈으로 상언을 바라보고 있었다.하나는 강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별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현의 눈을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상언이 떠오르곤 했다.하나는 도대체 왜 계속 상언이 떠오르는지 몰랐지만, 그를 몇 번 만난 후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아냈다.강현의 눈은 상언과 매우 닮아 있었다.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지만, 눈동자는 따뜻한 회색 빛을 띄고 있었다.이를 깨닫자마자 하나는 강현에게 고백했다.그녀는 강현이 나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지만, 그저 그 눈을 보고 싶었다.지금 그녀가 상언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기분이 나빠진 하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다시 말했다.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여유로웠다.“상언 씨, 식사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상언은 곧바로 손을 뻗어 하나를 잡아당겼다.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했고 그대로 상언의 품에 안겼다.하나는 몸부림쳤다.“이거 놔요!”하지만 상언은 냉담한 표정으로 하나를 끌고 문밖으로 향했다.곧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서나나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서의 귀에 속삭였다.“이서 언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서는 멍하니 서 있는 강현을 힐끔 쳐다봤다.“남자친구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말려야 할 이유가 있겠어?”이서는 여전히 상언을 믿고 있었다. ‘상언 씨라면 하나에게 상처주는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지강현이라는 이 사람은 정말…….’그는 여자친구가 저렇게 끌려가는 데 잡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서가 하나의 친구가 아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