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태가 돌아서 윤이서를 깨우려던 순간, 차 문 밖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른 코트를 들고 있는 하지환을 보았다.현태는 곧바로 이해하고 조심스레 뒷좌석 문을 열었다.지환은 차 문을 열고 혹여나 빛으로 그녀가 깰까 손에 든 코트를 이서의 얼굴에 부드럽게 덮어주었다.그러고는 몸을 굽혀 이서를 안아 올렸다.이 모든 일을 마친 후, 현태는 차에서 내려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고개를 들어보니 지환이 이서를 안고 있었고, 현태는 팔짱을 끼고 차 문에 기대어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우리 대표님을 저렇게 좋아하면서, 왜 아직 다투고 있는 거야.’‘얼른 화해를 해야 할 텐데…….’현태는 잠시 지켜보다가 차를 타고 아파트를 떠났다.지환의 품에 안겨 있던 이서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심지어 그녀는 꿈도 꿨다.꿈 속의 이서는 윤씨 그룹의 CEO로 임명되던 날로 다시 돌아갔다.지환은 그녀와 함께 축하 자리에 참석했다.그곳은 정말 활기가 넘쳤다.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임하나와 이상언도 있었다.그러나 꿈속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축하해 주지 않았다.이서는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너무나도 쓸쓸했다.꿈속에 빠진 그녀는 몸을 구부렸다.지환이 고개를 숙여 침을 꿀꺽 삼키며 품에 안겨 있는 불안한 모습의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이 꼬일 것처럼 요동쳤다.일이 일어난 이후, 그는 오랫동안 이서를 만질 수 없었다.조금씩 접촉하는 지금은 그에게 죽은 나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하지만 이서는 아직…….’지환은 이를 악물고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그러나 품에 안겨 있는 이서는 점점 더 불안해져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꼭 껴안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이서의 온도가 옷을 뚫고 그의 살갗에 전해지자 그는 소름이 돋기도 했다.다행히 엘리베이터는 금방 도착했다.지환은 현관문을 열어 이서를 침대에 눕혔다.여전히 꿈속인 이서는 자신이 집에 도착했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술에 취해 있는 붉은 입술이 장미에 물든 듯 섬세하고 아
많은 시련 끝에 서나나의 웹드라마는 더욱 히트를 쳤을 뿐만 아니라, 현재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배우가 되었다.서나나의 배후의 추동자로 주목된 윤이서는 연예계 거물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인물이 되었다.비록 이서는 정말 그렇진 않았지만 이서는 처음부터 서나나의 숨은 재능을 발견했고, 이렇게 이미지에 심각한 위기가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주장해왔다.심지어 그녀는 이 기회를 통해 서나나의 인기를 더 높이 끌어올렸다.설사 이 일을 연예계 거물들에게 맡긴다고 해도, 그들은 감히 가슴을 두드리며 무명의 18위 스타를 단기간에 지금의 높이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이서라는 새로운 신분이 더욱 주목을 끌게 되었다.이서는 오히려 그녀에 대한 관심에 신경 쓰지 않았다.지난 이틀 동안 그녀는 투자에 대한 이야기만 꺼낼 뿐이었다.12지신을 주제로 한 옷이 시장에서 흥행한 이후 투자자들이 속속 몰려들어 윤씨 그룹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하지만 이서는 그 투자자들을 하나같이 거절했다.이전에 투자 권유를 거절한 이들에게 고의로 복수한 것이 아니었다.이서는 정말 투자가 필요하지 않았다.임현태는 이미 그녀에게 자금 방면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다.그런 상황에 왜 굳이 다른 사람을 들여보내 이익을 나누겠는가?게다가 이 투자자들은 그녀의 다음 사업에도 충분히 투자할 수 있었다.예를 들어 그녀는 이전에 하지환의 조씨 그룹과 약속했었다.조씨 그룹을 생각하면 이서는 과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지환에게 조씨 그룹을 주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때는 진심이었지만 지금은…….’이서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사실…… 조씨 그룹을 지환에게 넘겨주고 싶었다.무슨 약이라도 먹은 걸까?이서는 휴대폰을 꺼내 루나의 채팅창을 열었다.새로 온 메시지는 없었다.조사가 어느정도 진행됐는지조차 그녀는 알 수 없었다.이서가 아는 루나는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이미 문자를 보내고도 남았
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전화를 끊은 이서는 촬영장 근처에 있는 샤브샤브집으로 골랐다.오후 4시쯤 이서는 촬영장으로 출발했다.촬영장이었던 스튜디오에 도착한 이서는 먼저 서나나에게 인사를 했고, 서나나는 자신의 매니저인 여은아에게 그녀를 챙겨달라고 부탁했다.두 사람은 촬영장으로 이동했고, 은아는 이서에게 좋은 말을 쏟아부었다.“윤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나나는 지금까지도 무명의 18위인 존재감이 없는 배우였을 거예요.”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저랑 나나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이예요. 게다가 나나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전 혼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거예요.”은아는 머리를 긁적였다.“그래도…….”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촬영장에서 짝 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린 이서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볼이 퉁퉁 부어오른 서나나를 발견했다.그녀를 때린 사람은 이서정이었다.뺨을 때린 이서정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감독님, 죄송해요. 방금 감정이 별로였죠? 다시 해볼게요.”촬영장에 있던 모든 스텝들은 서정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을 눈치챘다.그런데 감독이 눈치채지 못했을까?“그래, 하지만 이 배우, 이건 연기야.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에 풀어도 괜찮잖아.”하지만 서정은 하은철의 둘째 삼촌의 아내였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정말 방금은 별로였던 것 같아서 그래요.”서정은 사람을 때린 뒤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무슨 일이에요?”이서는 미간을 찌푸렸다.은아는 이런 장면을 많이 봐 온 듯 무덤덤했다.“이번 일로 이서정 씨가 나나를 안 좋게 보고 있어요. 괜히 연기를 핑계로 개인 감정을 드러내는 거죠.”이서는 턱을 치켜들고 감독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말리지 않으세요?”“하 도련님의 둘째 숙모인데 제가 감히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은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서를 달랬다.“나나는 아직 어떤 경험도
하지만 이서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국 윤이서는 멋지게 복귀를 이루었다!서정은 한참을 애꿎은 아랫입술만 깨물더니 참지 못하고 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소매를 걷고 씩씩대며 탈의실로 걸어갔다.감독은 이 상황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촬영을 이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감독은 서나나에게 말했다.“오늘 촬영은 그만두고 내일 다시 촬영하자.”나나는 이서의 응원에 힘입어 감독과 스태프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직원들도 수고했다는 말에 각자 장비를 옮겨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이서는 인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겸손한 나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서정처럼 대표 작품도 없고 연기력도 부족한 사람이 아직 연예계를 활보하고 있는 건, 서정이 하은철의 둘째 숙모라는 이유 하나뿐이었다.‘그런데 나나의 연기 실력이 출중하다고 백스테이지에서 이런 곤욕을 치르고 있었던 거야?’이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갑자기 이서가 나나에게 말을 걸었다.“나나야, A급 톱스타가 되고 싶니?”나나는 뜬금없는 이서의 말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이서 언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대답해 봐, A급 톱스타가 되고 싶어?”나나는 이서의 정열적인 눈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열정이 자신에게도 닿는 것 같았다.“당연하죠.”‘연예인이 유명해지고 싶으면 준비한 연기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닐까?’“좋아, 난 반드시 널 A급 톱스타로 만들 거야.”나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말에 큰 신뢰를 느낄 수 있었고, 멈춰 있던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무슨 말을 하려다 꾹 참으며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어 세 사람은 근처 샤브샤브 집으로 향했다.나나는 현재 정상급 인기를 누리고 있기에 외출할 때는 얼굴을 꽁꽁 싸매야 했다.팬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이서와 나나는 서로 시간간격을 두고 샤브샤브 집으로 들어갔다.이서가 먼저 샤브샤브 집에 들어간 후, 매니저인 여은아는 기회를
서나나는 윤이서의 질문에 어리둥절했다.그녀의 대답은 매니저인 여은아의 대답과 비슷했다.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고, 나는 이미 익숙해졌다고.“사실 예전에는 더 심한 사람도 만났어요.”나나는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다.“그 당시 여주인공이 저를 심하게 괴롭혔던 기억이 나네요. 제작진 중 누군가가 제가 여주인공보다 예쁘다고 몰래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촬영을 하면서 그 여주인공은 절 정말 고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다행히 스태프들이 달려와서 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이 얼굴로 못살았을 거예요.”웃으며 담담히 말하는 나나의 모습을 본 이서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넌? 그때도 지금처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당하는 것뿐이었어요…….”나나는 고기를 한 점 집어 들고 말했다.“됐어요, 이서 언니,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이제 저도 고생을 전부 보상받는 걸요.”이서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었다.“나나야, 난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꿈을 좇기 위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이런 고난이면 안 돼, 이건 다른 사람이 고의로 너에게 굴욕을 주는 거라고. 넌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해.”나나는 이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서는 말을 마친 후에야 이를 깨달았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물었다.“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아니요…….”나나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그냥……, 제 생각엔…….”“응?”“언니 화 내지 말고 들어요.”긴장한 나나는 불안한 눈으로 이서를 쳐다봤다.“난 그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야.”이서는 웃으며 대답했다.나나는 주먹을 꽉 쥐고 슬그머니 이서를 바라봤다.“전에 언니에 대해 들은 게 있어요…….”이서는 더욱 밝게 미소를 지었다.“예전에 내가 왜 하은철한테 끈질기게 매달렸는지 물어보고 싶은 거지?”나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화가 나 피를 토할 것 같았다.나나를 끌어당
서나나는 윤이서의 기분이 안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머리를 긁적였다.“이서 언니, 제가 실수한 건가요?”이서는 고개를 들어 나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나야, 너도 몇 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별 희한한 대본을 다 봤겠지,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물론이죠, 이서 언니.”나나가 대답했다.“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대본을 읽어 본 적 있어?”놀란 두 얼굴을 마주한 이서는 자신이 마치 병이 난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았다.다행히 나나는 대화에만 집중했기에 별 생각 없이 이서의 말을 듣고 머리를 굴려 이런 막장 스토리가 있었는지 생각해 봤다.한참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이런 부분에 지식이 빠삭했던 여은아는 바로 떠올렸다.“사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드물지만, 과거, 특히 19세기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어요.”은아는 이어 말했다.“당시는 민족주의 시대여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자유를 옹호했지만 기성세대는 집안 수준을 따지기에 지금은 비판 받을 수 있어도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어요. 집사람이 있지만 또 장가를 가는 형태는 하나는 조건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대상이었을 거예요.”이서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반짝거렸다.‘설마…….’‘하지환이랑 그런 상황이었던 거야?’하지만 그런 거였다면, 그녀가 지환의 집에 갔을 때, 그의 아버지가 좋아하면 좋아했지, 불만족스러운 눈으로 이서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이서는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머릿속의 모든 안개를 걷어내고 사태의 본질을 분명히 보고 싶어했다.샤브샤브 집에서 나온 이서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이서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누군가가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았다.가끔 위층을 올려다보기도 했다.이서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고, 그녀의 집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말할 필요도 없이 집에 있는 사람은 지환이었다.그녀는 정말 지환을
“올라가서 얘기해요.”“좋아요, 아, 아니……, 됐어요.”이천은 입을 뻐끔거렸다.“전……, 지금은…… 안 올라 갈 거예요.”이서는 밝은 집의 불빛을 바라보며 깨닫았다.“지환 씨를 만나러 오셨죠?”“네, 아, 아니요.”이천은 정신 나간 미치광이처럼 횡설수설했다.“찾아온 것이 아니에요…….”이서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천을 바라봤다.“지환 씨가 평소에 어떻게 대했길래지금 이천 씨가 이러시는 거예요?”“아니에요.”이천은 허허 웃었다.그의 뇌는 이미 초토화 상태였다. 이천은 며칠 동안 줄리와 의문의 사람에 대한 정보를 강도 높게 찾아보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정보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입은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 나오곤 했다.“대표님께서 줄리와 의문의 사람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셨거든요. 줄리는 배우고 의문의 사람은 사모님이 ML국에 있을 때 연락을 한 적 있습니다.”이서는 이천이 호칭을 바꿨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녀의 신경은 온통 이천이 줄리와 의문의 사람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데에 쏠렸다.이전에 지환이 조사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이서는 그가 얼버무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압박당하는 이천을 보자 그녀는 마음이 복잡했다.그녀는 집을 올려다보았고, 지환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혼인관계증명서에 기혼이라 적힌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한, 이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설령 서나나의 매니저가 말한 상황처럼 부모의 말에 따라 정략결혼을 한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서는 정신을 차리고 여전히 비틀거리는 이천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알아낸 게 있나요?”“아니요.”이천이 대답했다.“그래서 저는 대표님을 만나서 북극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어요. 펭귄들에게 먹이를 줘야 하거든요.”이서는 그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지환 씨가 그랬어요? 찾아내지 못하면 펭귄 먹이를 주러 북극으로 보낸다고?”이천은 천천
하지환의 눈빛은 다소 차가웠다.다른 이유는 없었다.윤이서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지켜주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지켜줄 이유가 없었다.“봐 봐요.”이서는 강아지를 훈육시키 듯, 두 손을 허리춤에 두고 숨을 내쉬고 있었다.“이천 씨가 얼마나 똑똑했는데, 이것 봐요, 정신을 못 차리잖아요. 과도한 업무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몰라요? 만약 이천 씨 가족이 지환 씨를 직원들의 노동을 착취한다고 고소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1초 전가지만 해도 눈물 날 만큼 감동받았던 이천은 당혹스러웠다.“예?”‘아, 사모님께서 이렇게 걱정하시는 게 내가 대표님을 고소할까 봐 두려운 거였어?’지환은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웃어요? 웃음이 나와요?”이서는 그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직원을 협박하고 펭귄에게 먹이를 주라며 북극으로 보낸다는 그런 가스라이팅은 고소감이라고요. 그리고 제발 상식공부 좀 하세요, 북극에는 펭귄이 없어요!”이천은 입을 열어 이서에게 북극에 실제로 펭귄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건 YS그룹에서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으며 아직 발표되지 않았기에 말을 아꼈다.하지만 그는 지금 이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사모님이 눈앞에서 대표님을 손주 혼내듯이 혼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지환이 이를 빌미로 자신을 북극에 보낼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하나님, 혹시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하지만.“지금 날 걱정하는 거야?”지환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짓고 물었다.마치 얼음과 눈이 녹고, 이른 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이천은 깜짝 놀랐다.‘뭐야……, 대표님께서 전혀 화가 나지 않으셨잖아?’‘손자처럼 야단맞고 기뻐하다니?’‘원래 그런 취향이셨나?’이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지환이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그의 눈웃음은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서 마치 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뺨을 어루어 만지는 느낌을 주었다. 이에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제가 오늘 밤에 상대할 사람이 하 대표님이었군요!”그 사람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천이 지환의 앞에 서서 말했다.“괴력왕, 당신이 어떻게 하은철 아버지의 조수가 된 거죠?”눈앞의 괴력왕은 힘으로 대동맥을 끊을 수 있는 괴물이었다.타고난 힘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천은 물론이며 지금까지 괴력왕과 맞붙은 적 없는 어둠의 세력 조직원까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괴력왕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랐다.“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입니다만, 기꺼이 말씀드리죠.”키가 큰 괴력왕은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지환을 볼 수 있었다.“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제 딸이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그걸 알게 된 하은철 사장의 아버지께서 훌륭한 의사를 찾아 제 딸을 치료해 주신 거죠.”“그래서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약속했습니다.”“다만, 첫 번째 임무가 하 대표님을 상대하는 건 줄은 몰랐죠.”지환의 명성은 외국에서도 대단했다.괴력왕처럼 은둔하는 사람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어쩐지, 상대할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더라니.’‘상대를 알면 후회할까 봐 걱정된 모양이지?’지환은 괴력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괴력왕과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게다가 지환은 의리 있는 괴력왕의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그래서 어둠의 세력 조직원으로 괴력왕을 끌어들이려 했었다.하지만 싸우기 싫어하는 괴력왕의 성격 때문에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고, 지환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가 전쟁이 될 줄은 몰랐다. “각자의 보스나 신경 쓰도록 하죠. 시작합시다!” 지환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괴력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 대표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저쪽에 있던 하도훈은 이미 입구까지 걸어갔다.그의 곁에는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들의 머리에는 흰색 천 조각이 씌워져 있었다. 지환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그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지환은 꿈쩍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형님, 오랜만입니다!”하도훈의 얼굴에서는 커다란 슬픔이 묻어났다. “왔구나!”지환이 말했다.“은철이 시신을 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경직된 몸을 심하게 떨었다.“지환아, 너 정말 독하구나. 한 여자를 위해서 조카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 아이를 해칠 때, 네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니?” “예전에 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어. 하지만 은철이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았고, 너라는 작은 아버지를 꽤 친근하게 대했다지.”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향의 특산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런 조카를 이런 식으로 대한 거냐?”“너는 처음엔 여자를, 이제는 목숨을 앗아간 거야.”“은철이 녀석이 본인의 이런 말로를 알았더라면, 애초에 너를 가까이 한 걸 후회했을지도 모르겠구나.”하도훈이 말했다.지환이 차갑게 하도훈을 바라보았다.“맞습니다. 우린 가족이고, 확실히 아주 가까웠죠.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은철이가 이서를 어떻게 대했었죠?” “이서는 은철이의 작은어머니였습니다. 그때 은철이는 이서가 본인의 가족, 즉 친척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하도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그래, 보아하니 너는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지환아, 너희가 목숨을 건 계약을 했다는 거, 설령 네가 내 아들을 죽였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네가 오늘 은철이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내 허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형님이 허락하면 어떻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내 이천이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님, 모두 안배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그래.”전화를 끊은 지환은 외투를 들고 문을 나왔는데, 맞은편 방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는 넋을 잃은 채 그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이천이 한 말이 맴돌았다.‘덫일 수도 있다고...?’‘가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이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떠나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바로 이때, 문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환이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문 뒤에 서 있는 이서를 묵묵히 바라보았고, 그녀도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에 외투를 든 것을 본 이서가 물었다.“어디 나가요?”지환은 이서의 눈을 쳐다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응.”“오, 그럼 어서 가보세요. 나는 샤워하고 잘게요.”이서의 반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이는 지환을 크게 안도시켰다. 그가 두 걸음 정도 내디뎠을 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이서의 ‘조심해서 다녀와요’라는 한 마디가 복도에 메아리쳤다.고개를 돌린 지환은 텅 빈 복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차갑고 의연한 기색만이 감돌 뿐이었다. 급히 아래층에 도착하자, 이천은 이미 어둠의 세력 조직원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즉시 똑바로 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지환은 마지막으로 호텔을 힐끗 보고는 출발했다. 병원 입구.이곳의 분위기는 아주 고요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평소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입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오히려 입구는 활짝 열려 있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천이 물었다.“대표님,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환은 냉정하게 반문했다.“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이미 철통같이 포위된 듯했고, 어디로 들어가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문으로
소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부하고 싶을 정도로 강해져야만, 그들이 소희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저녁에 식사하던 이서는 지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롭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더 강해진다는 건 하씨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건 내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에요.” 맞은편에 앉은 지환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이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따뜻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 얼굴의 부드러운 곡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얼굴의 미세한 동작까지도 끄집어냈다.“불가능한 일은 없어. 어쩌면 네가 하씨 가문을 넘어설지도 모르지.” “또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거죠? 하씨 가문은 백 년의 기반을 가진 가문이예요. 내가 하씨 가문처럼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꿈속에서 하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와 하씨 가문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 말이다. 바로 이때, 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이천에게서 온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지환이 핸드폰을 든 채 이서를 한 번 보았다. 이서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지환이 그녀가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 “이제 배불러요. 나는 먼저 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볼게요.” 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 지환이 수화기 너머의 이천에게 물었다.“확실해?”[확실합니다. 하은철은 확실히 죽었어요. 하지만 하씨 가문의 고택 앞에서 죽었죠.] [하은철은 치타와 마찬가지로 차가 부딪쳐 날아가는 순간에 차에서 뛰어내렸을 겁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하은철을 도왔기 때문에 하씨 가문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던 거겠죠.][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씨 가문 고택
소희가 꽤 충격을 받은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이서 언니, 농담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이득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우리가 시비를 걸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할 일이지.” 이서가 빙그레 웃었다.“이제 내 말을 믿겠어?” 소희가 말했다.“이서 언니, 언니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제 동생을 잘 모르잖아요. 걔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골탕 먹이던 애예요. 한 번도 남한테 당한 적이 없는 애죠.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어제 이미 계획을 세워뒀어. 소희 씨가 내 말 대로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소희 씨, 설마 그 이상한 양부모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생각을 안 해본 거야?” 소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확실히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단지 생각에 불과했어.’ ‘양엄마가 얼마나 끈질기게 집착하는 사람인지 잘 아니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야...’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철저히 말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범법행위이지 않은가.소희는 이서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이서 언니,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음에 또 심태윤이 찾아오면,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언니는 걔한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걔는 언니한테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이서가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까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서야 알았어. 소희 씨가 심씨 가문에서 겪는 일이 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걸.” “소희 씨, 소희 씨는 날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는 심씨 가문에 있는 소희 씨의 처지를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아직 심 대표님 내외에게 정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소희 씨의 부모님이잖아. 세 사람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으니, 언젠가는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나를 몰래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소희는 이서의 말에 고개를
같은 시각.차에서 칭찬받은 소희는 쑥스러워했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하지만 이지숙의 눈에는 소희가 혀로 수많은 유생과 싸운 제갈량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소희가 이지숙이 계속해서 말을 잇기 전에 말했다.“물건을 좀 사러 가고 싶어요. 이따가 이 근처에서 저 좀 내려주세요.” “나도 같이 갈게.”이지숙이 열정적으로 자청했다. 소희는 그런 그녀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저 혼자 가고 싶어요.”이지숙은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쇼핑을 원치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많은 일을 겪은 소희가 혼자 걷고 싶은 것이라 여겼다. “이해해, 다음 길목에서 내려줄게.”“소희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가 반드시 너를 보호할 테니까.” “...”소희는 정말이지 걱정이 많았다.‘심씨 가문 사람들의 뇌 회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 “소희야.” 심근영 또한 이지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너를 구할 거야.” 소희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는 진심만이 가득했다. 소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심근영 부부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떠나자마자, 소희는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윤씨 그룹으로 갈게요.” 운전기사는 대답한 후, 곧장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후, 회사에 있던 이서는 소희가 왔다는 것을 듣고는 다소 놀랐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예.”김하늘은 곧장 대표실로 소희를 데려왔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자, 소희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이서 언니...” 문이 닫히고, 밀려오는 억울함을 느낀 그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소희
소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6명의 어르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어르신들,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여섯 명의 어르신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에 앉은 그 어르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그래.” “감사합니다.”“여러분, 여러분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남과 동시에 하씨 가문과의 협력이 중단되었으니, 저만 내쫓으신다면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진정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럼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심유인이 비꼬듯이 대답했는데, 어조에서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소희가 심유인을 보며 말했다.“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기만 하면, 하씨 가문은 자연히 심씨 가문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려 할 테니까요!” ‘소희가 주동적으로 심씨 가문을 떠나겠다고 할 줄이야!’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희야!”이지숙은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 엄마가 부족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소희는 역시 눈시울을 붉히던 심근영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심이에요. 제가 쫓겨나는 걸로 하 사장님의 기분이 풀린다면... 그렇게 할게요.”그러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조롱으로 들렸다.심근영이 중간에 앉은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어르신, 소희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하 사장의 기분을 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 사장일까요?” “윤 대표는 하 사장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씨 가문을 건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면, 더욱 궁지에 몰릴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정말이지 심씨 가문의 고택에 있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은 왜 내
어르신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입을 열도록 내버려두었다.“확실히 경솔한 일이긴 해. 허나, 우리가 하씨 가문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으니, 모든 걸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는 너희가 밖에서 하는 일을 전부 알고 있었어.”“즉, 이 일은 우리 심씨 가문의 잘못이기도 하단 뜻이지.”“하씨 가문과 협력하기로 약조해 놓고 번복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중간에 앉은 어르신이 말했다.심근영은 이서의 배후에 지환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소희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을 생각하며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간단한 문제였습니다. 하씨 가문과의 협력에서, 심씨 가문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는 가문이니, 이익이 없으면 협력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헛소리!”심상규가 말했다.“이번 협력은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거였어. 윤씨 그룹이 몰락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씨 가문과 윤씨 그룹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고! 그렇게 되었다면, 심씨 가문은 소씨 가문을 제치고 H국의 2대 가문이 될 수 있었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네 딸이 돌아오는 것과 맞바꾼 거라고!”여기까지 말한 심상규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네 딸은 아주 배은망덕한 사람이야!”“윤씨 그룹을 위해서 제 가족들을 협박하다니.” “허, 어릴 때부터 가문 밖에서 자란 사람, 게다가 시골에서 자란 말괄량이가 무슨 식견이 있을까!” “그만하시죠, 작은아버지. 우리가 하씨 가문과의 협력을 중단한 이유는 소희 때문이 아니라...”심근영이 주먹을 꽉 쥐고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심근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고,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이서 언니는 아직 형부의 신분을 몰라. 이 시점에서 그 이유를 폭로해버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밖으로 퍼뜨리고 말 거야.’ ‘만약 이렇게 해서 이서 언니가 피해를 본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할
“아주머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에요. 만약 그 어르신들께서 제가 심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억지로 심씨 가문에 머물 생각이 없어요.” 사실 소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기에 당장이라도 심씨 가문을 떠나고 싶었다. 비록 그녀와 심근영 부부가 혈연관계이긴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떨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근영 부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심씨 가문은 우호적인 곳이 아니지 않은가. 환영 파티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다니, 계속해서 심씨 가문에 머문다면 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소희야,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절대로 네가 심씨 가문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만약 어르신들께서 정말 너를 쫓아내려 하신다면, 이 엄마도 너와 함께 떠날 거야.” 이렇게 말한 이지숙이 다시 심근영을 바라보았다.“여보, 나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그분들이 하은철 한 사람 때문에 무리하게 내 딸을 쫓아내려고 한다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이지숙의 어투에는 확신이 가득하여 농담 같지 않았다. 심근영이 윙윙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소희는 이제 막 돌아왔어. 그런데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야? 소희야, 너도 걱정할 거 없다. 네가 이미 돌아온 이상, 다시 떠나게 하지는 않을 테니.” 소희는 그들을 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렸을 때, 그녀가 동생과 함께 넘어지면, 양부모의 눈에는 언제나 심태윤뿐이었다. 그들은 늘 남동생을 먼저 일으켜 세우며 달래 주었고, 한쪽에 방치된 그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설령 소희를 신경 쓴다고 해도, 그저...“혼자 일어날 줄도 모르니?”그 누구도 그녀에게 ‘걱정 마, 우리한테 맡겨’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소희는 또 한 번 그들을 보았고, 그제야 자신의 눈이 이지숙의 눈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달 모양의 둥근 눈, 그것은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매우 곧고, 하늘을 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