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정의 이미지는 하룻밤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또한, 하윤 컴퍼니는 디자인과 모델 제작에 모든 자금을 투자했기에 옷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었다.그 결과 온라인 상에 옷의 품질이 좋지 않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했다.그로 이해 주문 후 아직 상품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반품 문의가 쏟아졌다.이 사건은 곧 앰버서더인 이서정에게도 영향을 미쳤다.[자기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면서 제품도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은 거예요?][돈이라면 어떤 협찬이라도 다 받고 보는 구나 ㅋㅋ.][ㅋㅋㅋ, 진짜 들으면 들을수록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생방송에서 가족이라 하길래 돈 거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네요.][관상은 과학이다. 이서정은 원래 무명 BJ였잖아요, 만약 허씨 집안 둘째 형수라는 이미지만 없었으면 누가 알아주기나 했겠어요?]“…….”서정은 현재 여진 시에 있었다.휴가를 위해 그곳으로 갔지만, 모든 행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윤이서, 윤이서, 또 윤이서야!”서정은 화를 내며 태블릿을 들고 손톱을 물어 뜯었다.“쓰레기 같은 유수정, 하은철이 그렇게 많은 지원을 하면 뭐해, 전부 망치는데!”매니저는 그녀를 위로했다.“서정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홍보 부서에 연락해 놨습니다. 홍보부에서 지금 당장 입장문을 발표하는 게 최선이라고 하더군요. 친척이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일을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함정에 빠진 거라고, 이번 사건을 경험 삼아 다시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자격을 갖춘 모델로서 제품을 신중하게 선택할 거라고 명확하게 표시해야 합니다.”서정이 대답했다.“그렇게 적으면 윤수정을 배신하는 거잖아.”매니저가 말했다.“저도 그렇게 말했는데 홍보부에서 전부 하은철이 시킨 거라 합니다.”그러자 서정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도련님 말씀에 따라야지.”이런 경우라면 그녀는 이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그리고 그녀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도 아닌데 왜 마다하겠는가?서정의 입장문이 나오자 이
“우리가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행히 우린 모두 오랫동안 폐션계에 종사해 온 베테랑입니다. 비록 신인보다 못하지만요.”다른 사람들도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정확했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윤이서는 그들보다 더 빨리,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역시 오만은 모든 것의 걸림돌이었다.그들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오래전에 문제를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계속 질 수 없다며 중얼거리는 윤수정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말하던 직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직서를 꺼냈다.“대표님, 지금 이 시점에서 회사를 그만두는 건 매우 무례하지만, 저는 더 이상 회사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그가 사직서를 제출한 후 다른 사람들도 속속 사직서를 제출했다. 수정은 그들이 하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 멍하니 책상 위를 바라보며 질 수 없다 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사무실 로비에 있던 직원들은 고위직들이 나오자마자 짐을 챙기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모두가 서로를 바라봤다.그들은 너도나도 집을 싸서 떠나기 시작했다.마침내 수정은 의자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사무실을 나섰다.텅 비어 있었다.사람들로 가득 찼던 회사는 바람 소리만 휑하니 들릴 뿐이었다.그녀는 처음에 건물 전체를 매수해버리겠다며 비아냥거렸었다.“하하, 하하하…….”수정은 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었고,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윤이서! 윤이서! 도대체 왜 안 죽는 거야!”그녀는 화가 나 책을 바닥에 내던지며 분노를 터뜨렸다.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치고 난리를 부려도 전화벨은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마치 끝이 없는 애가처럼 들렸다.한편, 아래층.이서와 심소희가 회사에 들어서자 회사는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으아아, 대표님! 성공적인 복귀를 축하드립니다!”“대표님! 정말 존경해요!”“대표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직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알랑방귀를 뀌었다.그리고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에요, 행복을 제대로 즐기자고요!”심소희가 야유 섞인 말을 건넸다.다른 직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윤이서는 무기력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맞아요,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여러분들을 보니 오늘은 일 할 기분이 아니겠네요, 이렇게 합시다. 소희야, 가서 호텔을 예약해 놔.”“네.”소희는 곧바로 호텔 예약을 마쳤다.많은 사람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호텔로 걸어갔다.1츠에 도착했을 때, 마침 윤수정을 찾아온 양전호와 마주쳤다.전호도 그들을 발견하고 숨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우기광은 밝은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양 대표, 여기서 다 만나네요!”전호가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바로 이서와 기광이었다.그들의 모습을 보자 그는 후회로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그는 정말 보는 눈이 없었다.만약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 미리 알았다면 그도 이서를 따라갔을 것이다.그랬다면 지금처럼 발가벗겨진 기분도 느끼지 않아도 됐었다.“하하, 네, 정말 우연이네요, 우 대표님. 식사하러 가는 길인 것 같은데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아니에요!”기광은 웃으며 전호를 끌어당겼다.“양 대표님, 괜찮으시면 우리랑 같이 식사를 하시지 그래요? 결국 양 대표님도 윤 대표의 전 주주셨잖아요.”기광의 말을 들은 이서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그의 말은 배려가 담긴 말로 들렸지만, 실은 아주 교활한 생각이 가득했다.전호에게 같이 식사를 하자고 말하는 것은 살인 행위가 아닌가?다른 직원들도 합세했다.“맞아요, 같이 드세요.”전호는 끌려가다시피 호텔로 갔다.그리고 이번 식사는 윤씨 그룹이 하윤 회사를 대상으로 승리하고 시장점유율을 차지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그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한참 동안 기회를 엿보다가 간신히 방에서 빠져나간 전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러나 방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그의 마음은 말이 아니었다.‘하…….’‘보는 눈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윤수정
임현태가 돌아서 윤이서를 깨우려던 순간, 차 문 밖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른 코트를 들고 있는 하지환을 보았다.현태는 곧바로 이해하고 조심스레 뒷좌석 문을 열었다.지환은 차 문을 열고 혹여나 빛으로 그녀가 깰까 손에 든 코트를 이서의 얼굴에 부드럽게 덮어주었다.그러고는 몸을 굽혀 이서를 안아 올렸다.이 모든 일을 마친 후, 현태는 차에서 내려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고개를 들어보니 지환이 이서를 안고 있었고, 현태는 팔짱을 끼고 차 문에 기대어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우리 대표님을 저렇게 좋아하면서, 왜 아직 다투고 있는 거야.’‘얼른 화해를 해야 할 텐데…….’현태는 잠시 지켜보다가 차를 타고 아파트를 떠났다.지환의 품에 안겨 있던 이서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심지어 그녀는 꿈도 꿨다.꿈 속의 이서는 윤씨 그룹의 CEO로 임명되던 날로 다시 돌아갔다.지환은 그녀와 함께 축하 자리에 참석했다.그곳은 정말 활기가 넘쳤다.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임하나와 이상언도 있었다.그러나 꿈속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축하해 주지 않았다.이서는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너무나도 쓸쓸했다.꿈속에 빠진 그녀는 몸을 구부렸다.지환이 고개를 숙여 침을 꿀꺽 삼키며 품에 안겨 있는 불안한 모습의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이 꼬일 것처럼 요동쳤다.일이 일어난 이후, 그는 오랫동안 이서를 만질 수 없었다.조금씩 접촉하는 지금은 그에게 죽은 나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하지만 이서는 아직…….’지환은 이를 악물고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그러나 품에 안겨 있는 이서는 점점 더 불안해져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꼭 껴안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이서의 온도가 옷을 뚫고 그의 살갗에 전해지자 그는 소름이 돋기도 했다.다행히 엘리베이터는 금방 도착했다.지환은 현관문을 열어 이서를 침대에 눕혔다.여전히 꿈속인 이서는 자신이 집에 도착했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술에 취해 있는 붉은 입술이 장미에 물든 듯 섬세하고 아
많은 시련 끝에 서나나의 웹드라마는 더욱 히트를 쳤을 뿐만 아니라, 현재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배우가 되었다.서나나의 배후의 추동자로 주목된 윤이서는 연예계 거물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인물이 되었다.비록 이서는 정말 그렇진 않았지만 이서는 처음부터 서나나의 숨은 재능을 발견했고, 이렇게 이미지에 심각한 위기가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주장해왔다.심지어 그녀는 이 기회를 통해 서나나의 인기를 더 높이 끌어올렸다.설사 이 일을 연예계 거물들에게 맡긴다고 해도, 그들은 감히 가슴을 두드리며 무명의 18위 스타를 단기간에 지금의 높이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이서라는 새로운 신분이 더욱 주목을 끌게 되었다.이서는 오히려 그녀에 대한 관심에 신경 쓰지 않았다.지난 이틀 동안 그녀는 투자에 대한 이야기만 꺼낼 뿐이었다.12지신을 주제로 한 옷이 시장에서 흥행한 이후 투자자들이 속속 몰려들어 윤씨 그룹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하지만 이서는 그 투자자들을 하나같이 거절했다.이전에 투자 권유를 거절한 이들에게 고의로 복수한 것이 아니었다.이서는 정말 투자가 필요하지 않았다.임현태는 이미 그녀에게 자금 방면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다.그런 상황에 왜 굳이 다른 사람을 들여보내 이익을 나누겠는가?게다가 이 투자자들은 그녀의 다음 사업에도 충분히 투자할 수 있었다.예를 들어 그녀는 이전에 하지환의 조씨 그룹과 약속했었다.조씨 그룹을 생각하면 이서는 과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지환에게 조씨 그룹을 주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때는 진심이었지만 지금은…….’이서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사실…… 조씨 그룹을 지환에게 넘겨주고 싶었다.무슨 약이라도 먹은 걸까?이서는 휴대폰을 꺼내 루나의 채팅창을 열었다.새로 온 메시지는 없었다.조사가 어느정도 진행됐는지조차 그녀는 알 수 없었다.이서가 아는 루나는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이미 문자를 보내고도 남았
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전화를 끊은 이서는 촬영장 근처에 있는 샤브샤브집으로 골랐다.오후 4시쯤 이서는 촬영장으로 출발했다.촬영장이었던 스튜디오에 도착한 이서는 먼저 서나나에게 인사를 했고, 서나나는 자신의 매니저인 여은아에게 그녀를 챙겨달라고 부탁했다.두 사람은 촬영장으로 이동했고, 은아는 이서에게 좋은 말을 쏟아부었다.“윤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나나는 지금까지도 무명의 18위인 존재감이 없는 배우였을 거예요.”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저랑 나나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이예요. 게다가 나나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전 혼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거예요.”은아는 머리를 긁적였다.“그래도…….”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촬영장에서 짝 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린 이서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볼이 퉁퉁 부어오른 서나나를 발견했다.그녀를 때린 사람은 이서정이었다.뺨을 때린 이서정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감독님, 죄송해요. 방금 감정이 별로였죠? 다시 해볼게요.”촬영장에 있던 모든 스텝들은 서정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을 눈치챘다.그런데 감독이 눈치채지 못했을까?“그래, 하지만 이 배우, 이건 연기야.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에 풀어도 괜찮잖아.”하지만 서정은 하은철의 둘째 삼촌의 아내였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정말 방금은 별로였던 것 같아서 그래요.”서정은 사람을 때린 뒤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무슨 일이에요?”이서는 미간을 찌푸렸다.은아는 이런 장면을 많이 봐 온 듯 무덤덤했다.“이번 일로 이서정 씨가 나나를 안 좋게 보고 있어요. 괜히 연기를 핑계로 개인 감정을 드러내는 거죠.”이서는 턱을 치켜들고 감독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말리지 않으세요?”“하 도련님의 둘째 숙모인데 제가 감히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은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서를 달랬다.“나나는 아직 어떤 경험도
하지만 이서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국 윤이서는 멋지게 복귀를 이루었다!서정은 한참을 애꿎은 아랫입술만 깨물더니 참지 못하고 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소매를 걷고 씩씩대며 탈의실로 걸어갔다.감독은 이 상황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촬영을 이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감독은 서나나에게 말했다.“오늘 촬영은 그만두고 내일 다시 촬영하자.”나나는 이서의 응원에 힘입어 감독과 스태프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직원들도 수고했다는 말에 각자 장비를 옮겨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이서는 인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겸손한 나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서정처럼 대표 작품도 없고 연기력도 부족한 사람이 아직 연예계를 활보하고 있는 건, 서정이 하은철의 둘째 숙모라는 이유 하나뿐이었다.‘그런데 나나의 연기 실력이 출중하다고 백스테이지에서 이런 곤욕을 치르고 있었던 거야?’이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갑자기 이서가 나나에게 말을 걸었다.“나나야, A급 톱스타가 되고 싶니?”나나는 뜬금없는 이서의 말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이서 언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대답해 봐, A급 톱스타가 되고 싶어?”나나는 이서의 정열적인 눈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열정이 자신에게도 닿는 것 같았다.“당연하죠.”‘연예인이 유명해지고 싶으면 준비한 연기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닐까?’“좋아, 난 반드시 널 A급 톱스타로 만들 거야.”나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말에 큰 신뢰를 느낄 수 있었고, 멈춰 있던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무슨 말을 하려다 꾹 참으며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어 세 사람은 근처 샤브샤브 집으로 향했다.나나는 현재 정상급 인기를 누리고 있기에 외출할 때는 얼굴을 꽁꽁 싸매야 했다.팬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이서와 나나는 서로 시간간격을 두고 샤브샤브 집으로 들어갔다.이서가 먼저 샤브샤브 집에 들어간 후, 매니저인 여은아는 기회를
서나나는 윤이서의 질문에 어리둥절했다.그녀의 대답은 매니저인 여은아의 대답과 비슷했다.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고, 나는 이미 익숙해졌다고.“사실 예전에는 더 심한 사람도 만났어요.”나나는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다.“그 당시 여주인공이 저를 심하게 괴롭혔던 기억이 나네요. 제작진 중 누군가가 제가 여주인공보다 예쁘다고 몰래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촬영을 하면서 그 여주인공은 절 정말 고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다행히 스태프들이 달려와서 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이 얼굴로 못살았을 거예요.”웃으며 담담히 말하는 나나의 모습을 본 이서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넌? 그때도 지금처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당하는 것뿐이었어요…….”나나는 고기를 한 점 집어 들고 말했다.“됐어요, 이서 언니,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이제 저도 고생을 전부 보상받는 걸요.”이서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었다.“나나야, 난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꿈을 좇기 위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이런 고난이면 안 돼, 이건 다른 사람이 고의로 너에게 굴욕을 주는 거라고. 넌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해.”나나는 이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서는 말을 마친 후에야 이를 깨달았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물었다.“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아니요…….”나나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그냥……, 제 생각엔…….”“응?”“언니 화 내지 말고 들어요.”긴장한 나나는 불안한 눈으로 이서를 쳐다봤다.“난 그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야.”이서는 웃으며 대답했다.나나는 주먹을 꽉 쥐고 슬그머니 이서를 바라봤다.“전에 언니에 대해 들은 게 있어요…….”이서는 더욱 밝게 미소를 지었다.“예전에 내가 왜 하은철한테 끈질기게 매달렸는지 물어보고 싶은 거지?”나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화가 나 피를 토할 것 같았다.나나를 끌어당
현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심유인은 즐거워했다.“와, 가난하긴 해도 염치는 있으신가 보네요. 하지만 그게 유일한 장점이겠죠?” 선물은 현태가 스스로 준비한 것이기에, 소희도 현태가 무슨 선물을 샀는지 몰랐다.그래서 현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소희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오빠, 무슨 선물을 샀는데요?”‘소민찬보다 못한 선물이면 큰일인데.’ 소희는 선물로 심유인과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쨌든 현태가 부모님을 보러 오는 날이니, 선물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현태가 심씨 가문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소희는 현태가 심씨 가문의 권세나 재물 탓에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현태가 웃으며 말했다.“우선 들어가자. 곧 알게 될 거야.”이지숙도 계속 밖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했다.“그래요, 무슨 얘기든 들어가서 하자고요.”고개를 끄덕인 소희가 현태의 선물을 들어주려 하자, 현태가 말했다.“괜찮아, 내가 들게.”이 세심한 배려는 곧장 이지숙의 눈에 띄었는데, 여자는 본래 본능적인 행동을 가장 신경 쓰기 마련이지 않은가?현태의 행동을 본 이지숙은 소희가 거짓말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겉으로 보기에는 덩치도 크고 투박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세심한 면이 있네?’이렇게 생각한 이지숙은 현태를 다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하지만 현태는 이지숙의 반응이 조금 변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거실로 들어서자, 이지숙은 고용인에게 심근영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사실, 심근영은 일찍 깨어났기에,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근영이 시간을 질질 끌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2층에서 현태를 관찰했기 때문이었다.고용인의 동정을 들은 심근영이 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곧 나가도록 하지.” 심근영은 고용인이 떠난 후에야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제야 현태의 생김새를 똑똑히 보았다. 현태는 키가 크
‘게다가 한동안 운전기사로 일한 적도 있지만, 월급은 적지 않았어. 한 달에 2천만원으로 시작했고, 윤 대표님께 일이 생기면 월급도 더 올라갔으니까.’“저분은...”현태는 상대의 신분을 확실히 알아본 후, 어떤 태도로 대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소희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현태를 바라보았다.“정말 몰라서 그래요?”현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알아야 해?” 소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한테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미친 듯이 날뛰던 사람이잖아요!’ ‘대체 왜 심유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내 사촌... 언니예요.”소희는 심유인과 가족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언니도 오늘 남자 친구를 데려왔더군요.” “사촌 언니? 소희 씨의 친언니가 아니고?” 소희가 낮게 불평을 내뱉었다.“아니에요, 우리 언니일 리가 없잖아요!”“그럼 왜 남자 친구를 데리고 소희 씨 집에 온 거야?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런 거야?” 이 말을 들은 소희는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 특히 현태의 그 어리숙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은 일부러 그런 것처럼 보이게 했다. 심유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말이면 다인 줄 알아요?!” “제 남자 친구가 틀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소희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일반적인 경우에는 남자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하잖아요. 언니처럼 남의 집으로 달려오는 게 아니고요.”“잘 모르는 사람들은 언니한테 부모가 없어서 남의 부모에게 허락받는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유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결국 이지숙이 나선 후에야 유인의 난처함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어서 들어가자꾸나, 아버지께서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계셔.”“네, 엄마.” 소희는 현태의 팔짱을 끼고 심씨 가문의 저택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걸음도 안 걸었는데, 금세 정신을 차린 심유인이 또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잠깐만, 소희야,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오늘은 네 남자 친구가 삼촌과 숙모를 처
심유인은 한참이 흘러도 소희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갑자기 따분해졌다. “소희야, 네 남자 친구는 언제 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안 오는 게 좀 이상하네. 설마 별장에 처음 오는 거라서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 “이렇게 작은 곳에서 길을 잃으면 운전기사를 할 수 있겠어요?”심유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 자랑스러운 표정은 뭐야?’‘운전기사인 남자 친구를 두고도 창피하지 않다 이거야?’‘허! 심소희, 순진하긴.’유인이 막 입을 떼려던 찰나, 밖에서 고용인의 성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사, 사모님, 아가씨의 남자 친구분께서 오셨습니다!” ‘드디어 주인공이 나타나는구나!’심유인은 당사자인 소희보다 더 초조해하며 먼저 달려 나갔다.‘운전기사라더니, 몰고 온 차가 고용주 명의인 건 아니겠지?’ 밖으로 나간 유인은 마침내 차에서 내린 현태를 마주했다.그의 옷차림을 본 순간, 유인은 웃음을 터뜨렸다.‘풉, 그냥 티셔츠에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온 거야?’‘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러 오면서도 저런 옷을 입고 오다니, 비웃음을 당하려고 작정한 건가?’ 하지만 눈살을 찌푸린 건 소희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현태의 체면이 깎일까 봐 걱정한 것이 아니라, 현태가 자기 부모님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까 봐 걱정한 것이었다. 소희는 빠르게 현태의 곁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그저께 양복도 사줬는데, 왜 양복이 아닌 캐주얼복을 입고 온 거예요?” 현태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나도 양복을 입고 오려고 했지. 그런데 그 옷은 오래 입으면 불편하더라고. 소희 씨의 부모님을 뵈면서도 온 마음을 옷에 쏟을까 봐 걱정돼서 이렇게 입었어.” “사소한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잖아?”소희가 대답했다.“그래요? 양복을 입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나 봐요. 하지만...”소희가 이지숙을 흘긋 바라보았다. 과연 이지숙의 낯빛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물론 최선을 다해서 숨기는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현태가 불안해하며 물었다.“어머님
심유인이 그중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숙모, 민찬 씨가 특별히 준비한 팔찌예요. 마음에 드세요?” 이지숙은 흘긋 보더니 눈가에 약간의 웃음기를 띠었다.그 팔찌는 아주 훌륭한 자태를 뽐내는 것으로, 수천만원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유인이의 친엄마도 아니고, 소민찬 씨는 우리 집에 처음 오는 건데도 아주 통 크게 행동하는구나.’하지만 이지숙은 잠시 후에 소희의 남자 친구가 올 것을 떠올리자 약간 걱정이 되었다. 사실, 며칠간 이어진 심근영의 설득에 이지숙은 소희의 상대가 운전기사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그래, 어차피 우리 심씨 가문은 많은 자원과 돈이 있잖아. 그 사람이 성실하기만 하면, 우리 가문의 사위라는 이름으로 상류층은 아니어도 소소한 부자는 될 수 있을 거야.’하지만 지금 소민찬의 씀씀이를 보자, 이지숙은 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상류사회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서로 비교하는 것이었다. 가방이나 옷 같은 큰 것들뿐만 아니라, 가끔은 화장품조차도 비교해야 하니 말이다. 이지숙은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으나, 상류 사회의 분위기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밀리면, 매번 모임 때마다 얘깃거리가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이지숙이 소희의 상대가 운전기사라는 것에 반감을 가지 이유였다.엄마로서, 자기 딸이 잘못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을 터. “숙모, 이건 삼촌께 드리는 거예요.” 심유인이 꺼내든 두 번째 선물은 시계였다. “롤렉스 시계예요. 최신 모델인데, 삼촌도 분명히 좋아하시겠죠?”이지숙은 심유인이 손에 든 시계를 보자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듯했다. ‘저 시계는... 적어도 1억은 넘을 거야.’ ‘물론 유인이한테는 작은 성의일 뿐이겠지만...’ 이지숙이 불안한 표정으로 소희를 흘긋 보았다. 하지만 소희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심유인의 선물 공세가 고의로 현태를 깎아내리려는 의도인 것을 알아차렸다.‘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소희는 심유인이 오늘도 트집을 잡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렇지 않고서야 아침 일찍 자신의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올 리가 없지 않은가.소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심유인이 멍청한 건 알겠는데, 남자 친구라는 사람도 멍청한 건가?’‘여기까지 따라와서 같이 소란을 피우다니.’잠시 후, 소희는 소민찬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뭐?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고? 하하, 심씨 가문 아가씨의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니!”“참, 윤 대표와도 사이가 아주 좋으시다면서요?” “역시 끼리끼리군요. 남자 친구마저 똑같은 가난뱅이니까요.”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소희가 다시 심유인을 바라보았다.“이서 언니의 남편이 YS그룹의 전 대표인 하지환 씨라고 얘기하진 않은 모양이네요.” 순간, 심유인의 표정이 어색하게 구겨졌다.하지만 소민찬은 이 말을 듣자마자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하하’ 큰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웃겨 죽겠네요. 윤 대표의 남편이 하지환 대표님이라고요?” “유인아, 사촌 동생이라는 분이 허영에 가득 찬 분이신가 봐?” 유인은 다급하게 소민찬의 소매를 여러 번 당겼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윤 대표의 남편이 하 대표님이라면, 저는 물구나무서서 똥을 먹겠어요!” “누가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에 와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 거죠?” 뒤에서부터 이지숙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돼지 멱따는 소리’라는 말에 소희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사석에서는 저런 면이 있으시구나.’ 소민찬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비록 소씨 가문의 일원이라 해도, 이지숙 앞에서는 힘을 쓸 방도가 없을 것이다.“안녕하십니까.” “소민찬 씨군요. 우리 집에는 어쩐 일로 온 거죠?” 유인이 민찬의 손을 잡고 말했다.“숙모, 민찬 씨는 제 남자 친구잖아요. 숙모께서 제 남자 친구를 한번 살펴봐 주셨으면 해서 데리고 왔어요.” 이지숙이 말했다.“네 남자 친구는 네 어머니께 보여 드려야지. 내가 허락한다고 한들, 소용없지 않겠니?
“그럼 그렇게 할게.”지환은 말을 마치자마자 이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서는 사무실에 들어가 고이서에 관한 모든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몇 가지 시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안 맞아.’‘하지만 내가 대체품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즉, 지환이나 구태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기다림의 시간은 항상 힘겹지만,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월요일은 피할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소희는 초조함 속에서 깨어났다. 고용인들이 그런 소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곧 남자 친구분이 대표님 내외분을 만나실 텐데, 어째 긴장하는 모습이 아가씨가 그분의 부모님을 만나 뵙는 것 같네요?” 놀림당한 소희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조용히 고용인에게 다가가 물었다.“아주머니, 심씨 가문에 몇 년 동안 계셨어요?”고용인이 말했다.“4, 5년은 된 것 같은데, 왜 그러세요?”“그럼 아주머니께서는 저희 부모님께서 제 남자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으세요? 심동, 그러니까 저희 오빠가 장희령을 데려왔을 때 많이 혼났다고 들었어요. 그게 사실인가요?” 고용인은 좌우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가십 매체가 그런 것도 알고 있던가요?”소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망했어.’‘그 매체에서 했던 말이 다 사실이라는 거잖아!’‘우리 부모님은 자녀의 짝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셔.’‘어쩌면 오늘 현태 오빠를 부른 것도, 혼내기 위한 걸 수도 있어.’ 소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고용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내외분께서 도련님을 혼내신 이유는, 장희령 씨의 출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게다가 그 아가씨는 인품마저 좋지 않았잖아요. 아가씨를 겨냥하지만 않았어도 심씨 가문에 시집올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죠.”고용인의 위로에도 소희는 여전히 걱정이 되었고, 심지어 현태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
“네, 소희 씨는 그 여자가 성지영의 딸이라고 했어요.”“제 기억이 맞다면, 그 여자는 나랑 동갑이에요. 즉, 그 여자가 정말 성지영의 딸이라면 두 가지 상황이 아니면 말이 안 돼요.” “나한테 쌍둥이 자매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내가 확실히 윤재하의 딸이 아니라는 거죠.”“아마 내 본래 이름도 ‘윤이서’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 이름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을 거고,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겠죠.”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아주 간단해요. 고이서의 경력을 봤는데, 5살 때 화재를 당해서 피부이식수술과 성형수술을 감행했다고 했거든요.” “만약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면...”“그 여자가 피부 이식 수술과 성형수술을 받은 게 사실이라면, 그 두 가지 수술은 일정한 위험이 따를 뿐만 아니라, 회복 시간도 꽤 많이 필요했을 거예요.”“진정한 윤이서는 하은철과 약혼했는데, 수술 도중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게 알려지면 약혼이 취소되었을 거고, 하씨 가문도 다시는 윤씨 가문을 돕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의 윤씨 가문은 존재할 수 없었겠죠.” “그러니까... 윤재하가 하씨 가문과의 약혼을 지키기 위해 가짜 윤이서, 즉 너를 끌어들였다는 거야?” “네, 나를 외국에 보내서 공부하게 한 것도, 윤씨 가문 사람들이 내가 예전의 윤이서가 아니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거예요.” “게다가 나는 대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어요.”“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거예요.” “네 추측이 정확한지 알고 싶어?”지환이 물었다.“그야 당연하죠.” “이천한테 알아보라고 할게.”“아니요, 이미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순간 동작을 멈춘 지환이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소지엽한테?” “아니요, 구태우 씨한테요.” “그 사람은 소지엽의 친구잖아.” “그래서요?” 이서가 지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환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손을 하염없이 떨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그래.”“우리 내기 하나 하자, 어때?
이서는 고이서의 신분을 알아내는 데 급급하여 더는 지체하지 않고 백화점 입구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소희가 말했다.“그 여자가 누구라고 생각해요?”현태가 웃으며 말했다.“머리 쓰는 일은 나한테 묻지 마. 사모님께서 곧 결과를 알려주시겠지.”“아무래도 내 머리는 월요일에 쓰는 게 좋겠어.” 현태의 눈빛이 다소 부끄러워졌다.“월요일에 소희 씨 부모님께 순조롭게 인정받아서 우리가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고개를 숙인 소희의 뺨도 붉게 달아올랐다.“그렇게 낯간지러운 말은 누가 가르쳐준 거예요?”“가르쳐 주긴, 솔직한... 내 속마음이야.” “청산유수네요.”소희가 현태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만 가요, 옷 사야죠!”“그래.”현태는 흐뭇하게 대답한 후, 소희가 자신을 끌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한편, 백화점 입구에 도착한 이서와 지환은 순조롭게 택시를 잡았다.두 사람이 차에 오른 후, 지환이 다소 풀어진 표정으로 물었다.“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말해줄 수 있어?”이서가 입술을 오므리며 중얼거렸다.“하지환 씨한테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잖아요.”“뭐가 적절하지 않아?” “우리는 곧 이혼할 거예요. 이런 시점에서 나한테 생긴 일을 하지환 씨한테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환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앞줄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는 열정적인 노인이었는데,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은 채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그 말은 틀린 것 같네요.”“두 사람은 이혼한다고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속담도 있잖아요?” “결혼한 이상, 두 사람은 인연인 거예요.”“나중에는 이혼하고 각자의 갈 길을 간다고 해도, 아직은 이혼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혼하지 않았다면, 그건 두 사람의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인연이 끝나지 않은 거라면, 일이 있을 때 서로 상의하고 도울 수도 있는 거죠.” “나를 보세요, 마누라와의 관계가 다 끝나는 바람에 때로는
화장실을 나선 소희는 급히 매장으로 돌아왔고, 현태에게 물었다.“이서 언니는 어디 있어요?”“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급해 보여?” “어서요, 이서 언니부터 찾아야 해요.”소희는 현태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현태는 우왕좌왕하는 그녀의 모습에 급히 이서를 찾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은 매장 입구에 있는 지환을 보았으나, 이서를 찾지는 못했다. 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서 물었다.“대표님, 사모님은 어디 계세요?”굳은 표정의 지환은 여전히 이서가 떠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소희가 현태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여기서 형부랑 있어 주세요. 나는 다른 곳에 가서 이서 언니를 찾아볼게요.” 하지만 이 말이 끝나자마자 돌아오는 이서의 모습이 보였다.소희가 급히 다가가 이서의 팔을 붙잡았다.“이서 언니...” 이서가 맥없이 짧게 대답했다.“응.” “언니, 왜 그래요?”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던 지환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다가와 긴장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성지영을 만났는데...” “언니도 성지영을 봤어요?”소희가 놀라며 물었다.“그럼 성지영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봤겠네요?” 이서의 눈이 반짝거렸다.“성지영 옆에 있는 사람을 봤어?”“아니요, 보지는 못했는데 화장실에서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그 여자, 성지영의 딸인 것 같았어요. 언니, 외동딸인 거 아니었어요? 성지영한테 언제 딸이 하나 더 생긴 걸까요?” “딸?”이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렇다니까요.”“아! 두 사람의 말투를 들어보니, 언니가 두 사람을 보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어요.”소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언니, 언니한테 또 다른 자매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던 거예요?” 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않아도 그 사람이 아주 낯익다고 느끼던 참이었어. 잘 생각해 봐, 두 사람이 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소희는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입을 열었다.“그 사람이 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