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희의 그림자가 2층 끝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이지숙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저 아이의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플까요?” “소희가 윤씨 그룹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이지숙이 말했다.소희는 심근영이 심씨 가문의 가주로서 대소사를 결정하지만, 가문의 큰일에 있어서는 가문의 어르신들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즉, 심상규가 정말 모든 일은 가문의 어르신들에게 알린다면,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가문의 이익일 것이었다. 그들은 소희의 혈연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하물며 소희는 여자이지 않은가.심근영이 이지숙을 가볍게 껴안았다.“걱정하지 말게. 나는 소희가 다시 우리의 곁을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이지숙은 흐느껴 울었다.2층에 다다른 소희는 여전히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같은 시각. 차에 오른 이서는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지환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지만, 두 사람은 줄곧 말하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자, 이서는 지환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5분이라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이서가 입을 열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주면 안 돼요?” 이서의 손을 잡은 지환은 손에 불거진 핏줄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럼 지금 당장 말할 필요는 없겠네요.”이서가 지환의 말을 가볍게 끊었다.“기억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지환 씨가 무슨 일을 하든,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지환은 이서의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그럼 일이 완전히 정리되면, 그때 이야기 해줄게.”이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지환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지환 씨, 우리의 관계가 이대로만 지속되면 좋겠어요.” 지환은 미소를 지은 채 앞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저 두 사람이 나아갈 길이 눈앞에 놓인 길처럼 어두울지라도, 가로등이 그들의
지환은 이천이 전화를 끊고 나서야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먼 곳의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하은철의 시체를 봐야지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어두운 밤하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튿날.잠에서 깬 이서는 지환과 함께 아침을 먹은 후 회사에 출근했다. 하은철이라는 방해꾼이 사라지자, 이서는 하루하루 기분이 상쾌해졌고, 자신이 직장 생활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회의할 때,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윙윙거리는 것을 듣던 이서는 이 일을 지환에게 맡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지환 씨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어쨌든 전에 말한 것처럼 간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 문제를 생각하자, 이서의 이마가 서서히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관자놀이를 꽉 눌렀는데,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피부를 통해 혈관을 파고드는 듯했다. “윤 대표님.”새로 부임한 비서가 들어오자마자 이서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긴장한 듯 물었다.“괜찮으세요? 제가 의사를 불러올까요?” 이서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김하늘에게 집중하려 애썼다. 그러자 고통이 점점 감내되는 듯했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김하늘을 바라보았다.“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낀 김하늘이 이서의 얼굴을 살폈다.그녀의 얼굴을 무서울 만큼 창백했으며, 백지장보다 더 하얗게 변해 있었다.“윤 대표님, 병원에 모셔다 드릴까요?” “아니에요.”이서가 손을 흔들었다.“곧 괜찮아질 거예요.” ‘지환 씨의 신분이 뭔지 생각하지만 않으면, 곧 괜찮아질 거야.’이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김하늘은 그녀가 생기를 되찾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말했다.“윤 대표님, 밖에 어떤 분이 오셨는데, 스스로를 심소희 씨의 동생이라고 했습니다. 대표님을 만나 뵐 일이 있다는데, 한 번 나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서가 눈을 감았다.“심태윤인 모양이네요.” “네, 심태윤 씨라고 했습니다.” 잠시 머
이서가 심태윤을 흘겨봤다.‘심태윤은 정인화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구나.’ 그는 대학생이었기에 평생을 시골에서 보낸 정인화보다 견문이 넓었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맹렬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으면 좋은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올바른 길을 걸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소희 씨에게 줬던 자원을 똑같이 제공해 줬을 텐데.’“우리 누나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누나도 그쪽을 위해서 심씨 가문으로 들어간다는 조건을 받아들인 거겠죠.” “바보 같은 우리 누나에 관해서는 제가 아주 잘 알거든요.”“누나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사람이에요.”“그리고 돈에 대해서는 아무런 욕심이 없죠.” “그래서 본인이 심씨 가문의 큰 아가씨라는 걸 알았을 때도, 돌아가지 않으려 했을 겁니다. 우리 누나는 사람 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이거든요.” “소희 씨를 깊이 이해하고 계신 모양이네요. 그래서 소희 씨가 심태윤 씨를 위해 목숨을 걸었나 봅니다.” 순간, 심태윤의 얼굴색이 변했지만,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허, 그건 다 지난 이야기잖아요? 현재에 관한 이야기만 하시죠.”“저는 심태윤 씨와 할 이야기 없습니다.”“물론 심태윤 씨도 마찬가지겠지요.”심태윤은 이서의 응대를 기다리지 않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누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잖아요? 그쪽이 하는 말이라면, 우리 누나는 그게 뭐든 들을 테고요.” 이서가 말했다.“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협력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이서의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넘쳐흘렀다.“협력이요? 허, 우리가 협력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심씨 가문과 하씨 가문이 협력해서 일부러 이 회사를 겨냥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쪽은 큰 손실을 보았고요.” “만약 저한테 그 손실을 보상받을 방법이 있다면
윤이서는 결혼했다.그러나 결혼 상대는 그녀가 8년 넘게 사랑을 했던 약혼자인 하은철이 아닌 만난 지 5분도 안 된, 기본적인 정보만 대충 아는 남자였다.“후회되시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사무소 대기실에서 남자는 조금 귀찮다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흘겨보았다.윤이서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은 하은철의 차갑고 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3일전, 줄곧 윤이서를 피했던 하은철이 직접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순간 지난 8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성껏 꾸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은철뿐만이 아니라 그와 손을 깍지를 낀 채 휠체어에 앉아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수정도 함께 있었다.--그녀의 사촌 여동생!그녀가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때, 하은철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네 신장을 수정이에게 주면 너와 결혼할게.”윤이서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몸이 굳어지며 믿을 수 없단 듯이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남자의 눈빛은 시종 차갑고 증오로 가득 찼다. 마치 자신을 8년 동안 정성껏 뒷바라지 한 약혼녀가 아닌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그녀는 마치 갈 곳을 잃어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 같았다.하은철과 어릴 때 약혼한 사이였고, 16살 되던 해 귀국한 후, 하은철을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었다.이 8년 동안 그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그녀는 빨래와 밥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에게 걸맞는 아내가 되기 위해 피아노, 그림 등을 배웠으며 심지어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오직 그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해주기 꿈꾸며.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매몰찼다. 하은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심지어 그의 애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무슨 문제 있나요?” 하지환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윤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벌리고 있다가 또 하지환이 오해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니요, 가요.”어차피 언젠가 마주해야 할 문제였다.도중에 윤이서는 하은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스크린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윤이서는 마치 지난 8년 동안 비굴했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전에는 모두 그녀가 먼저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며 그의 관심을 끌려했다.그러나 하은철은 단 한 번도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지 않았다.설령 그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 마디 관심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윤수정을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정말 컸다.“안 받아요?”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하지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윤이서는 남자의 완벽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입을 열기도 전에 맞은편 하은철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당장 병원으로 오지 못해! 지금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너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수정이는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너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나는 이미 너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넌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윤이서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비록 하은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하은철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잖아?” 윤이서의 눈빛은 차가워졌다.“난 너의 사랑을 원하는데, 너는 줄 수 있어?”“뻔뻔한 년!”하은철은 그녀를 비꼬았다.“나는 절대로 너 같은 여자 사랑하지 않을 거야! 윤이서, 너 지금 오면 아직 하씨 집안 아
윤이서의 가슴은 놀라움에 줄곧 두근거렸다.마치 바다에서 떠 있다 마침내 부목을 잡은 것 같았다.고개를 들자 그녀는 마침 하지환의 눈빛과 부딪쳤다.그의 눈빛은 더 이상 장난기가 없었고, 오히려 무척 다정했다. 그 순간, 윤이서마저 하마터면 그에게 속아 넘어갈 뻔했다.그녀는 황급히 윤재하와 성지영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놀라서 소파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윤재하는 먼저 반응하여 고개를 들어 윤이서에게 물었다.“이서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윤이서는 막 입을 열려고 했지만 하지환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감쌌다.이런 전 없었던,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는 느낌은 그녀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고 이때 귓가에서 하지환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렸다.“오늘 금방 혼인 신고를 했는데, 정말 너무 바빠서 두 분께 미처 알리지 못했네요.”윤재하는 화를 참으며 이성을 유지했다.“이서야!”윤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네, 저 사람 말이 모두 사실이에요. 난 결혼했고, 그 이유는 바로 하은철과 결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지영이 달려와 윤이서의 두 어깨를 쥐고 말했다.“이서야, 너 왜 그래? 너 줄곧 은철을 좋아했잖아, 지금 은철이 마침내 너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너 어떻게…….”그녀는 갑자기 경계하며 하지환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너 솔직히 말해봐, 누가 널 협박한 거 아니야?”성지영이 하지환을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윤이서는 얼른 설명했다.“엄마, 아무도 나를 협박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날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그녀는 지쳤다.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성지영의 손톱은 윤이서의 살에 깊이 파고들었다.“이서야, 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 네가 은철과 혼약을 맺었을 때부터 우리는 널 그의 미래의 아내로 키웠고, 네가 시집가는 것은 윤씨 가문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지, 그 따위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야!”윤이서는 통증에
하지환은 어두운 얼굴로 사람을 조수석에 앉힌 다음 운전석으로 올라왔고 문을 쾅 닫았다.윤이서는 놀라서 몸을 움츠렸고 하지환의 보기 흉한 안색을 슬쩍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화낼 사람은 분명히 그녀인데, 왜 하지환이 그녀보다 더 화가 난 것 같지?다음 순간, 하지환은 갑자기 차에 시동을 걸었고, 차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윤이서는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꽉 잡았고, 목소리는 바람에 의해 다르게 변했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하지환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고, 검은 눈동자는 마치 어두운 밤의 야수처럼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순간, 평범한 아우디 A6는 철장에서 벗어난 맹수처럼 조용한 거리를 거침없이 질주했다.윤이서는 창백한 얼굴로 온 힘을 다해 안전벨트를 잡았고, 큰 소리로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대한 바람소리는 마치 블랙홀처럼 그녀의 소리를 삼켰다.그렇게 윤이서는 차츰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광풍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불도록 내버려 두며 하지환이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가도록 내버려 두었다.3일 전, 그녀는 이미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자살은 너무 아파서 그녀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그리고 그때, 그녀는 부모님이 아무리 자신을 하씨 집안으로 시집가게 만들고 싶어도 하은철의 황당한 요구만 들으면 반드시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것 또한 그녀가 하지환을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그러나 부모님의 눈에는 윤씨 집안을 다시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행복보다 훨씬 중요했다.20여 년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은 지금 산산조각이 났다.바람은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향해 불었고, 그녀는 이미 눈물이 다 말랐다.마음은…… 죽었으니까.차 속도는 어느새 느려졌고 윤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차는 해변에 도착했고, 노을에 물든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마치 작은 검은 점처럼 움
윤이서는 임하나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너 말이야,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그냥 상담소에서 찾은 사람이야. 하씨 집안과 관계가 없고, 유일하게 엮인 것은 그가 HS 그룹에서 일한다는 거야.”“아.”임하나는 크게 실망했다.“그러니까, 그는 심지어 하은철의 부하다 이거야? 그럼 앞으로 하은철이 너를 괴롭히려고 하면 더욱 쉬운 거 아니야?”윤이서는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아마…… 아닐 거야, 하씨 집안 어르신을 봐서라도 말이야. 게다가 난 이미 결혼했으니 하은철은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임하나는 약간 안심했다. 그러나 하은철이 한 짓을 생각하면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절친을 위해 불평을 품었다.“그때 내가 제대로 손봐줬어야 했는데. 설마 네가 얼마나 지랑 결혼하고 싶어 했는지 모르는 거야?”윤이서는 작은 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하나야,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앞으로 나와 하은철은 각자의 삶을 사는 서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그럼 그 혼약은…….” 임하나가 물었다.“어르신 쪽은 아직 모르지? 어르신께서 아시면 틀림없이 상심할 거야.”윤이서는 방금 전까지 내려놓은 근심을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하은철의 할아버지에 대해 윤이서의 마음속에는 양심의 가책만 남았다.그녀와 하은철의 혼약은 어르신이 직접 정한 것이었다. 윤씨네 집안이 몰락한 후, 모두들 어르신이 그 약속을 회수하며 그녀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그러나 어르신은 혼약을 취소하기는커녕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그녀만 손자며느리로 인정한다고 밝혔다.심지어 그녀 때문에 어르신은 손자인 하은철과 자주 다투곤 했다.지금 일이 이렇게 되자, 윤이서는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이 바로 어르신이었다.“그냥…… 오늘 밤에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어.”윤이서가 말했다.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 것보다 차라리 그녀가 직접 어르신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다.임하나는 걱정을 금치 못했다.“내가 같이 가줄까?”“아니야.” 윤이서는 웃었다.“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