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무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성연아, 우리 오늘 밖에서 저녁 먹을까?”일이 바빠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다 보니 혼자 집에 있는 성연이 갑갑해할까 무진은 걱정이 되었다.그래서 가끔이지만 외식이라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무진.그리고 성연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무진의 제안에 성연이 대답했다.“네, 알았어요. 이따가 무진 씨를 위한 서프라이즈가 있어요. 기대해도 좋아요.”무진이 웃으며 물었다.“무슨 서프라이즈?”무진에게야 매일 성연의 음성을 듣고 또 성연의 입에서 나오는 말 모두가 좋은 소식들이다.성연은 매번 생각지 못한 서프라이즈를 선물한다. 무진은 그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이따가 알게 될 거예요. 식사하면서 알려 줄게요.” 무진의 말에 성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지금 내 입으로 말하면 그게 무슨 서프라이즈야?’“알았어.” 성연이 지금 자신에게 알려 주고 싶어하지 않으니 무진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무진은 식사할 곳을 먼저 예약한 후에 그 위치를 보냈다. 그리고 시간 여유가 얼마 없으니 성연에게 서둘러 준비하게 했다. 알았다고 대답한 후에 전화를 끊은 성연은 실력이 뛰어난 또 다른 수하에게 연락했다. ‘전갈’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현태.성연과 서한기, 곽연철 등과도 관계가 매우 좋다.다만 장기간 해외 임무를 수행 중이라 성연도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하지만 외국에서도 일을 처리하는 실력이 아주 뛰어났다.성연이 김현태에게 전화를 건 후에 물었다.“유럽에 가서 적당한 회사를 하나 찾아서 대량의 자금을 투입해. 그런 다음 능력 있는 사장 하나 만들어서 국내로 보내. 그리고 WS그룹 강무진 대표와 합작 사업을 추진하게 해.”성연의 지시에 김현태가 즉시 대답했다.그들 아수라문에서 뛰어난 인재야 말로 부족함이 없었다.사장을 세우는 것은 아주 가벼운 일에 속한다.김현태는 성연이 지시한 일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자신의 보스 성연이 지시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합당하기 때문이다.김현태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맛있는 음식으로 포만감을 느낄 즈음 종업원이 테이블 옆에 다가와 예쁜 디저트들을 세팅했다.성연의 마음에 무척 흡족한 만찬이었다. 서두름 없이 한 입 한 입 디저트를 맛보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이다.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무진은 성연이 직접 만든 것들만 한 두 입 먹을 뿐이다.집 밖의 식사 자리에 나오는 디저트는 먹지 않는다.무진이 차로 입가심을 하며 물었다.“아까 말한 서프라이즈는 뭔데?”성연이 문득 생각난 척하며 호들갑을 떨었다.“아이고, 무진 씨가 말하지 않았으면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네요.”“빨리 말해 봐.” 무진이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며 성연을 재촉했다.성연이 말한 서프라이즈가 뭔지 궁금증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성연은 뜸 들이지 않고 곧장 말했다.“집에서 심심함을 달래려고 무진 씨 회사 제품들 정보를 SNS상에 공유했거던요. 그런데 유럽의 한 업체 대표가 보고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그래서 곧 여기로 와서 WS그룹과 계약하고 싶대요.”“우리 회사 제품 정보?” 무진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성연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이여,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네, 좋은 제품들이 있다 싶어서 공유했어요. 집에서 달리 할 일도 없어서 무진 씨를 도와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올렸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가볍게 어깨를 들어올려 보인 성연은 믿기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했다.이 일에 대해 자신도 매우 놀랐다는 듯이.의아한 마음이 사그라진 후 무진은 바로 기쁨을 느꼈다.어쨌든 성연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 행동한 게 분명했다.회사 내 자신의 입지가 공고해지기를 바래서.최근 회사에 약간의 삐걱거림은 있었지만 자신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였다.하지만 이때 유럽의 업체와 합작을 한다면 회사의 늙은이들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그 늙은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게 바로 자신들의 이익이다.무진이 대답했다.“네가 소개한 고객이니 절대 소홀함 없이 접대하도록 할게. 내일 시간이 있으면 직접 공항에 나가서
마침 출근하지 않고 있던 할머니 안금여가 성연이 요즘 집에서 한가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엠파이어 하우스로 성연을 찾아왔다.학교에서 발생했던 일을 안금여가 알게 되었지만, 성연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고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구나 싶어 안심했다.안금여는 고택의 주방장이 새로 개발 제작한 케익을 성연에게 갖다 주었다.산뜻한 맛의 케익은 느끼함이 없는 단맛으로 성연의 입맛에 잘 맞았다.그래서 안금여가 특별히 가지고 온 것이다.할머니가 오신다는 기별에 성연은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다.대문을 지나 현관 앞에 세운 차에서 안금여가 내렸다. 팔에 찬합을 들고 있는 안금여를 보며 성연이 말했다.“할머니, 그냥 오시지 뭘 또 이렇게 가져오세요?”안금여가 웃으며 말했다.“별거 아니야. 틀림없이 네가 좋아하지 싶어 가져왔다.”성연이 안금여의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할머니가 가져오셨는데, 좋아할 게 당연하죠.”안금여가 성연의 코끝을 콕 찍으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면 됐어. 네가 안 좋아할까 걱정했다.”집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소파에 앉자 집사가 바로 차를 준비해 왔다.안금여가 가볍게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러자 은은한 차향이 금세 입 안에 퍼졌다.안금여가 성연에게 말했다.“성연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들었다. 기왕에 네가 우리 강씨 집안의 손자며느리라는 사실이 밖에 알려졌으니, 이 참에 너와 무진의 결혼식을 앞당기자. 너도 이 할머니의 건강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건 잘 알고 있지 않니? 내 건강이 받쳐줄 때 너와 무진의 아이를 보고 싶구나. 하루라도 빨리 증손주를 볼 수 있도록 너희 둘이 힘을 내 다오.”처음 성연이 무진에게 시집왔을 때, 안금여는 성연의 결정을 존중하고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겠다고 했었다.그러나 지금 날이 갈수록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보니, 안금여의 마음이 조급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서로에 대한 두 사람의 감정이 깊은 것을 확인한 안금여는 두 손 놓고만 있을 수 없어 증손주를 재촉하는 것이다.
안금여의 뒤를 이어 강운경이 도착했다.안금여가 화원에 꽃을 보러 간 틈을 타 강운경이 성연을 구석진 곳으로 이끌었다.강운경의 동작에 이상한 기분을 느낀 성연이 의아한 음성으로 물었다.“고모님?”강운경이 고개를 돌리며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 말했다.“이번에 너희 학교에서 있었던 소문이 꽤나 멀리까지 났어. 나중에 수습을 하긴 했다만은 그래도 문제가 좀 생겼어.”성연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러세요?”잠시 생각을 가다음은 강운경이 성연에게 말했다.“지금 급히 귀국하려는 여자가 하나 있는데, 이 여자, 너 조심해야 해.”‘여자?’강운경의 입에서 처음으로 내게 어떤 사람을 주의하라는 말이 나왔다.강운경의 말을 들으니, 간단한 인물이 아닌 여자 같았다.그러나 강씨 집안에 와서 알게 되는 사람이 잘못할 리가 있을까?그런데 고모 강운경은 왜 굳이 자신에게 주의하라고 하는 거지?성연은 다소 이해할 수가 없는 성연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누군데요?”강운경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강운경이 자신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다니, 성연은 어딘가 말이 안되는 느낌이었다.강운경이 깊숙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아버지, 즉 무진이 할아버지가 예전에 무진이 혼사를 약속하셨는데, 이후에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파혼이 되었어. 하지만 정혼했던 그 여자애는 계속 무진을 좋아해왔어. 그런데 이번에 네가 무진과 약혼했다는 소문을 듣고 돌아온다는 거야. 이름이 방미정인데 방씨 집안 고명딸이야. 어릴 때부터 워낙 귀하게 자라 좀 제멋대인데다 뒤를 생각 안 해. 성연아, 너 진짜 조심해야 한다.”현재 성연과 무진의 관계는 아주 탄탄하다.강운경 자신도 성연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방해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그리고 박미정에게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성숙하지도 진중하지도 못한 그 애는 성연의 반만큼도 안된다는 생각이다.만약 무진이 방미정과 결혼한다면 기껏해야 집안에 약간의
성연은 나중에 방미정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무진에게 물었다.무진은 사실대로 성연에게 대답했다. 당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강씨 집안이 커지면서 방씨 집안이 해외로 옮겨갔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혼약이 파기되었다.앞으로 서로를 마음에 둔 두 사람이 과거의 지나간 혼약에 매이지 않기를 바랬다.무진은 방미정에 대해 어렸을 때 같이 놀던 친구라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정혼에 관해서는 자세한 사정을 몰랐었다가 후에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다. 무진도 달리 의견을 말하지 않았었다.당시 여자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무진은 누구든 괜찮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나중에 이렇게 성연을 만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혼약이 깨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무진은 속으로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그렇지 않았다면 앞으로 귀찮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성연은 당연히 무진을 믿었고 방미정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방미정은 귀국하는 날 무진에게 전화해서 식사 약속을 했다.어찌 되었든 서로 친분이 있는 두 사람이다. 과거 서로의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집안끼리 사이가 좋았다.이번 한 번만큼은 무진이 나가 만나야 했다.하지만 무진은 혼자 나가지 않고 성연을 데리고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다.약속한 식당에 도착했다.방미정은 의자에 앉아서 사람을 재는 시선으로 성연을 위에서 아래로 쭉 훑었다.무난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성연은 꽤 괜찮은 마스크였지만, 방미정이 보기엔 그저 젖비린내 나는 어린 계집애에 불과했다.턱을 들어 올린 방미정의 눈에 경멸의 빛이 담겼다.성연은 방미정의 눈빛을 보고서도 못 본 체하며 무진을 따라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성연과 무진 두 사람이 서로 손깍지를 끼는 장면을 본 방미정은 이를 악물었다. 얼굴에 억지로 짓고 있는 미소가 하마터면 무너질 뻔했다.“무진 씨, 몇 년 만에 만나는구나.” 무진을 향한 방미정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무진을 향한 그녀의 시선은 마치 무진을
바늘 끝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을 보며 무진의 눈이 깊어겼다.기왕 온 이상 무진 역시 방미정의 체면을 떨어뜨리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일단 주문부터 먼저 하지. 아까부터 종업원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말하면서 무진이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그래요. 일단 주문부터 하죠.” 방미정은 체면을 세워주는 줄 생각하고 메뉴판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물론 습관적이었다.평상시엔 누구나 다 자기중심적이다.그런데 무진은 메뉴판을 바로 옆에 있던 성연에게 건넸다.방미정의 손이 허공 가운데 멈추었다. 하지만 무진이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난처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무엇보다 연적 앞이 아닌가. 방미정은 더 이상 체면을 잃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손을 거두는 척하며 귀 뒤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굴었다.예전에 자신과 강무진이 함께 했던 날들이 무척 그리웠다. 그땐 뭐든지 다 자신에게 양보하던 강무진이었다.늘 자신이 중심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모든 게 완전히 변했다. 지금 강무진이 진지하게 대하는 상대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원래 강무진의 모든 관심과 배려는 자신의 것이었다.그런데 갑자기 튀어나온 송성연이 모든 걸 깨뜨려버렸다.성연을 바라보는 방미정의 눈이 증오심으로 일렁였다.성연은 그런 방미정의 눈빛을 못 본 척 넘겼다.손가락으로 메뉴판의 요리 몇 개를 가리키며 무진이 물었다.“이 식당은 이 요리들은 제일 괜찮아. 마침 네 입맛에도 맞을 것 같은데, 한번 먹어 볼래?”예전에 이 식당에 왔을 때에 다음에 성연을 데리고 올 생각에 미리 공부를 좀 했었다.성연은 무진이 수시로 자신의 감정을 배려하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방미정 앞에서.성연은 지금까지 방미정을 라이벌로 의식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무진이 얼마나 성연을 사랑하고 있는지 성연을 느낄 수 있었다.무진이 가리킨 메뉴를 보던 성연은 확실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임을 알았다.성연은 좀 매운 맛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예전의 무진은 담
방미정은 옆에서 닭살이 오름을 느꼈다.꽉 주먹을 쥔 손바닥에 손톱이 박힐 것 같았다.‘송성연,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물건이야? 강무진은 오로지 내 것이라고.’‘나 한 사람 차지란 말이야.’성연이 다 고른 후에야 무진이 마침내 메뉴파늘 방미정 쪽으로 건넸다.그리고 물었다. “더 주문할 거 있어?”방미정은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요염한 눈빛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가 결정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내 입맛은 변하지 않았어. 무진 씨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지?”방미정의 저 말은 무척 대담하면서도 직설적이다.무진에 대한 고백을 자신의 권리처럼 선포했다.그러나 강무진에게 약혼녀가 있는 상황에서 방미정은 여전하게 굴었다.설령 방씨 가문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성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 하나? 성품이 영 별로야.’성연은 방미정이라는 사람이 너무 도도하게 여겨졌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자신이 강무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해 한스러운 듯했다.게다가 이처럼 안하무인이라니 정말 얄밉기 짝이 없다.물 한 모금 마신 후 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미정이 무진 앞에서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무진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성연은 이 점을 똑똑히 알고 있는 까닭에 마치 웃긴 얘기로 치부했다.자신이 신경을 썼다면, 방미정이 저처럼 제마음대로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무진이 끝까지 메뉴판을 방미정에 건네며 말했다.“지금 여기서 주문한 것은 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들이야. 네 입맛은 이미 다 잊었어. 못 먹는 게 있으면 따로 주문해도 돼.”무진의 말은 완전히 방미정의 자존심을 때렸다.방미정과의 모든 관계를 간접적으로 거절한 셈이다.강무진은 어쨌든 자신과 방미정의 일은 이미 과거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무진은 방미정에게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걸 피하기 위해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게 좋다.방미정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강무진이 자신의 입장은 전혀
식사를 하던 중에 무진이 화장실을 갔다.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성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귓가에 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금방 돌아올 거야.”성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진이 자신과 방미정과 단둘이 있으며 긴장할까 봐 걱정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성연은 방미정의 체면을 세워줄 거였다. 방미정이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한 두 사람 사이엔 별일 없을 것이다.무진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방미정이 오만한 눈빛으로 성연을 훑어보았다.“송성연 씨, 당신은 자신이 어떤 지도 생각지 않아요? 무진 씨에게 어울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젖 비린내 나는 계집애가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면서 고작 배운 게 다른 사람의 남자를 가로채기나 하는 거니? 너 무진 씨와 같이 있으면 앞으로 아무 걱정 없이 살 거라고 생각해? 사실대로 말해봐, 너 돈 때문에 무진 씨 옆에 있는 거 아냐?”“그래.” 성연은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인정해 버렸다.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봐도 소용이 없었다.게다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해도 방미정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굳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성연이 단번에 그렇다고 할 줄은 몰랐던 방미정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대충 넘겨버리는 성연의 태도에 방미정은 오히려 자신이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무진의 마음을 꽉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겠는가?방미정은 가볍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너랑 무진 씨는 지금 겨우 약혼했을 뿐이야.”약혼과 약속은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더군다나 송성연은 무엇하나 자신보다 못하다. 자신과 비교할 만한 게 뭐 하나 있단 말인가?결국 마지막에 가면 누가 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인지 무진이 알게 될 거라고 믿었다.‘지금은 송성연에 대해 잠시 신선한 감정에 느끼고 즐기는 것에 불과해.’송성연이 정말이지 자신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괜찮아. 무진 씨의 마지막이 나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