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이 돌아오자 음식이 나왔다.세 사람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방미정은 처음에는 매우 조용했다. 그러다 무진 앞에 있는 음식을 집으려고 했다.분명히 일어서면 될 것을 일부러 멀어서 집지 못하는 척했다.방미정이 무진에게 야살스럽게 말했다.“무진 씨, 무진 씨 앞에 있는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데, 집을 수가 없어요. 나에게 좀 집어 줄래요?”무진은 무의식적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이로써 방미정의 이런 행동을 무진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보고 있던 성연이 직접 방미정이 원하던 음식을 앞으로 갖다 주었다. 그리고 입가에 옅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방미정 씨, 자, 이제는 어쨌든 집을 수 있겠지요?”방미정은 손에 힘을 주고 젓가락을 세게 쥐었다. 정말 화가 났다.송성연, 이건 바로 시위 그 자체였다.하필 무진은 처음부터 줄곧 자신을 거드는 말을 하지 않았다.‘설마 무진 씨가 진짜 이 계집애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겠지?’‘근데 송성연 저 딴 애 어디가 좋은 거지?’모든 게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그럴 리가 없어. 어쨌든 자신은 반드시 무진 씨를 되찾아 올 거야.’방미정의 분에 찬 모습을 보니 성연은 후련함을 느꼈다.성연이 일부러 말했다.“방미정 씨, 또 먹고 싶은 음식을 집어먹을 수 없다면, 잊지 말고 나에게 꼭 알려주세요. 내가 도와 줄게요.”방미정은 이를 악문 채 웃는 듯 마는 듯 성연을 노려보았다.“그럼 정말이지 고맙겠네요!”성연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천만에요.”방미정은 송성연의 예리함에 자신은 적수가 못되는 것 같았다. 송성연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조용히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먹는 도중에 방미정은 또 다시 무진에게 몇 가지 문제를 던졌다.무진의 대답은 모두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성연에게 음식들을 집어주는데 얼마나 세심한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그 장면을 보던고 방미정은 더 기분이 나빴다.식사를 하는 내내 무진의 태도를 바꾸지 못하자 저 밑에서부터 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량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무진이 농담하듯이 성연에게 물었다.“저녁 먹으며 화 났어?”무진은 어젯밤의 질문으로 성연이 방미정의 존재에 신경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성연의 마음속에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점을 설명한다.그래서 오늘 성연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방미정을 일절 상대하지 않았다. 역시 성연이 자신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결과적으로 괜찮았다. 앞으로 방미정은 절대 자신을 쉽게 초대하지 못할 것이다.무진의 말을 들은 성연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내가 그럴 줄 알았어요?”생각하면 할수록 성연은 화가 났다. 어떤 상황인 줄 알면서도.무진은 반드시 방미정을 만나러 갔어야 한다. 안 갔다면 좋지 않았을 것이다.자신이 무진 때문에 질투하는 것을 보고 무진 매우 기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설마 무진 씨가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겠지?’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성연이 무진을 날카롭게 째려보았다.무진은 순간 갑자기 터진 성연의 귀여움에 충격을 받고 얼어 버렸다.이 아이는 감정이 밖으로 드러날 때가 극히 드물다.성연이 신경 쓰기 시작했음을 말하고 있었다.불현듯 무진은 마음속의 충동을 아무리 해도 참을 수 없었다.무진이 바로 성연을 끌어안고 입술에 키스했다.앞에 운전기사가 있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친밀한 행동을 한다는 생각에 성연은 몹시 불편한 마음이 들어 무진을 밀어내려고 했다.무진이 어찌나 세게 꽉 안았는지, 성연은 근본적으로 무진의 팔을 풀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무진의 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앞에서 운전하는 사람은 바로 비서 손건호였다.‘왜 갑자기 뒤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백미러를 통해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본 손건호의 얼굴은 바로 불이 붙은 듯했다.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무엇보다 싱글에겐 치명타였다.손건호는 조용히 운전석과 뒷자석 사이의 칸막이를 올렸다.‘됐어, 눈에 안 띄면 돼. 그냥 안 본 걸로 하지 뭐.’성연
무진이 미소를 지으며 성연을 끌어안고 말했다.“방미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넌 정말 대학에 갈 생각이야?”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것도 내 소원이에요.”대학에 일찍 들어가 졸업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성연은 자신이 아직 어려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자란 후에는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어떤 일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 신분에 부합된다.그리고 조금 전 방미정이 한 말이 성연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날 어린애 취급하다니.’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 중 많은 것들을 방미정은 할 수 없다.성연은 자신이 여전히 방미정에게 신경을 쓰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찌 되었든 방미정은 자신의 연적이었다.‘보고도 못 본 척할 수는 없잖아.’다만 성연은 많은 일들을 마음속에 감추는 것을 좋아하고,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무진이 입술 끝을 올리며 성연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할머니가 좀 성급하셨어. 하지만 괜찮아. 난 기다릴 수 있어.”자신이 성연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한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성연이 아이를 가질 건지 여부는 성연 자신에게 달려 있다.무진 또한 원한다. 하지만 그가 더욱 신경 쓰는 것은 성연의 마음이다.아직 생기지 않은 아이보다 지금 성연과 함께 하는 1분 1초가 더 소중하다.두 사람은 지금 아주 좋았다. 아마 아이가 생기면 성연의 관심이 아이에게 빼앗겨 자신은 찬밥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성연이 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아이를 가져도 늦지 않을 터.할머니가 자신에게도 여러 번 재촉하셨지만, 매번 여러 가지 핑계로 할머니의 입을 막았다.그러나 성연의 마음을 생각하면 할머니도 너무 강하게 재촉하지 못할 것이다.성연이 자신에게 시집오는 게 단지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한다.성연은 속으로 매우 기뻤지만, 약간의 근심도 있었다.자신은 신의의 후계자로서 아직 이행해야 할 많은 책임이 있었다.아이는 비록 급하지 않다 하지만 무진이 이렇게 잘해 주
WS그룹은 성연을 통해 소개받은 L기업과 대형 합작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그 사업 총 자금이 200 억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양측은 이번 거대 합작 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성대한 테이프 커팅식을 거행할 계획이다.무진은 이 일을 성연에게 말했다.“이 사람은 네가 소개했으니 너도 나와 같이 현장에 가자.”이번에 성연 덕분에 이 대형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모두 성연의 공이다. 그래서 무진은 성연도 함께 참석하기를 바랬다.자기 혼자 그곳에 가면 심심하다.만약 성연이 함께 간다면 다를 것이다.원래 성연이 집에 별일도 없다고 생각하면 아마 승낙할 것이다.무진이 제안을 하자 성연이 완곡하게 거절했다.“이것은 회사 일이에요. 내가 경솔하게 나서면 아마 또 둘째, 셋째 일가 쪽에서 불쾌감을 드러낼 거예요. 지금 두 당숙들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구요. 그분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는 없어요.”성연의 내심은 현장에 갔다가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그래서 당연히 이번에 갈 수가 없다.저쪽은 모두 자신의 사람들이다. 일거수일투족 함께 했던 이들이라 어떤 습관은 아마 고치지 못할 터.성연은 무진이 알아차릴까 걱정이 되었다.그러니 안 가는 게 더 안전하다.무진은 성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대신 성연에게 몇 마디 권하기만 했다.“둘째, 셋째 할아버지 쪽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것은 네가 연결해 준 회사야. 설마 너 어떤 모습일지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싶지 않아?”“그때 생중계할 거잖아요. 나도 보면 좋죠. 하지만 내가 가도 할 수 잇는 게 없는 걸요.”성연은 그저 웃었다.이번 테이프 커팅은 절대 갈 수 없다.얼마 전까지 언론 매체 앞에 모습이 드러났다 가까스로 잠시 조용한 날을 보낼 수 있었다. 성연은 더 이상 신상 털리고 싶지 않았다.키보드 워리어는 이성이 없었다.“그래, 얌전히 집에 있어.” 무진이 성연의 뺨을 쓰다듬었다. 성연은 원하지 않는데 자신이 강요할 수는 없었다.그리고 둘
성연은 역시 원하던 대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무진은 합작 파트너 앞에서 연신 성연을 칭찬했다.서로 교제를 나누어야 회사에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을 테니.무진은 두 사람이 당연히 아는 사이일 거라 생각했다.그래서 무시로 합작 파트너 앞에서 성연의 칭찬을 한 것이다.성연은 이번에 정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내부의 일부 경솔한 주주들은 분명 어느 줄을 잡아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볼 것이다.강일헌의 선동에 대해 저들도 다시 잘 생각해 볼 테고.어찌 되었든 지금 강일헌은 이미 회사에서 쫓겨난 상태지만, 저 무리에 속한 주주들은 아직 회사에 남아있다.도대체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그들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합작 파트너인 L기업의 대표는 김현태의 수하 중에서 특별히 고른 이였다.물론 성연의 수하이기도 하다.지금 무진이 자기 보스를 칭찬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합작 파트너의 심정이 좀 복잡했다.그러나 자신도 따라서 아부했다.“미스 송은 확실히 드문 인재입니다. 애초에 내가 찾았을 때 미스 송이 적극 추천한 덕분에 우리 사이의 합작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잘 알고 있습니다.” 무진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들 제품은 아주 심플함을 추구했다. 단지 제품만 본다고 이렇게 큰 회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중 성연이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게 틀림없다.무진은 좀 후회가 되었다. 진짜 성연을 오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그러면 성연이 어떤 큰일을 해냈는지 볼 수 있을 텐데.“오늘 미스 송은 왜 안 왔습니까? 나는 미스 송과 계속 교류하고 싶습니다.” 합작 파트너는 성연이 오지 않는 이유를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안 그러면 자신들이 짜고 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몸이 좀 좋질 않습니다.”무진은 결국 성연이 오지 않은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소용이 없어서 성연을 당당히 이 자리에 세우지 못한 것이다.“몸이 안 좋으시군요. 그래요. 미스 송에게 건강 조심하라고
집에 있던 성연은 연경훈의 전화를 받았다.한동안 통화한 적이 없던 연경훈의 전화번호를 본 성연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당부를 떠올리고 곧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먼저 가볍게 기침을 하며 살짝 가라앉은 음성을 가다듬은 후에 입을 열었다.“연경훈 씨.”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호칭에 저도 모르게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연경훈이 불만이라는 듯이 말했다.“고 선생님, 지난번에 그냥 이름만 부르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런데 왜 또 성까지 붙이는 거예요.”생각할수록 좀 서운한 연경훈이다.연경훈의 말에서 성연은 자신을 향한 섭섭한 마음을 읽었다.하지만 아무런 흔들림 없이 담백하게 대답했다.“연경훈 씨, 각자의 위치가 있는 만큼 예의를 갖추어 호칭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연경훈이 바로 용건을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또 발작을 일으키셨는데, 까닭을 모르겠어요. 지금 누워 계시는데 고 선생님이 다시 와 주시면 안 되겠어요?”연수호 어르신의 병증에 대해서는 북성의 날고 긴다 하는 의사들 모두 속수무책이었다.지난 번 성연이 연씨 저택을 찾아 치료한 후에야 간신히 차도를 보였다.그러니 연씨 가족들은 성연 이외의 다른 의사에게 보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안의 최고 어르신인 연수호의 건강이 가장 중요했기에 결국 염치없지만 성연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연경훈의 말을 들은 성연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우선 가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다만 성연 자신을 향한 연경훈의 마음이 꽤 저돌적인 터라,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연경훈이 할아버지 연수호 어르신을 구실로 삼은 게 아닌가 잠시 걱정이 되었을 뿐이다.그러나 연씨 집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연경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비록 다소 건들건들하는 연경훈이지만 할아버지 연수호의 건강을 가지고 농담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래서 성연은 일단 가보기로 결정했다.연수호 어르신의 건강이 정말 심각해진다면 자신은 사부님을 볼 면목이 없게 될 터이다.성연은 본 모습
성연은 연수호 어르신에게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침을 놓았다.혈을 찾아 정확하게 침을 놓은 후 어르신 옆을 지키는 동안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안타까운 눈빛의 연경훈도 고 선생 즉 성연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 옆을 함께 지켰다. 고 선생에게 자신을 상대해 줄 마음이 없어 보여 그저 그 옆에서 지킬 수밖에 없었다.시간이 되어 침을 뽑고 난 후, 연수호는 몸이 훨씬 가뿐해졌음을 느꼈다.아플 정도로 명치를 꽉 짓누르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러자 연수호의 안색 또한 아주 좋아졌다.일어나 앉은 연수호는 성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선생, 정말 고맙습니다. 고 선생은 당신 사부님과 똑같군요.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침술 한 번에 바로 효과를 봤습니다.”성연이 와서 치료할 때마다 자신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몸이 안 좋을 때면 그저 고 선생이 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이제 고 선생이 눈 앞에 있으니 다른 의사는 청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과찬이세요. 어르신만 괜찮으시면 돼요.” 성연이 빙그레 웃었다.연수호 어르신에 대해 성연은 무척 강직하고 호쾌한 분이라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게다가 사부님의 친우이기도 하니 성연은 연수호를 집안 어르신 마냥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다.“고 선생이 왔으니. 이제 괜찮을 겁니다.” 연수호는 턱을 쓸어내리며 성연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성연은 그저 미소만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그런데 연수호가 불쑥 말을 던졌다.“고 선생, 우리 집 경훈이는 어떻습니까?”성연에 대한 손자 연경훈의 마음은 진심이었다.성연에 대한 마음을 가족들에게 드러낸 이후 손자는 하릴없이 밖으로 놀러 다니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연수호가 보기에 만약 고 선생이 손자 경훈의 짝이 된다면, 앞으로 손자 경훈을 바른 길로 잘 인도할 게 분명했다.그러면 더 이상 연경훈에 대해 가족들이 근심할 필요도 없을 터.손자 연경훈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천둥벌거숭이 같던 녀석이었다.그러던 녀석이 고 선생과 있을 때는 다
성연은 연수호 어르신과 두세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갈 차비를 했다.그때 줄곧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경훈이 돌아가려는 성연을 만류했다.“고 선생님, 식사하시고 가세요. 특별히 주방에 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다과도 준비하게 했어요.”오늘도 할아버지 때문에 겨우 연락해서 온 고 선생이다. 지금 가면 또 언제 오게 될 지 알 수가 없다.연경훈은 차마 고 선생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연경훈의 의도를 이미 짐작한 터라 더는 연씨 저택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던 성연이 재차 거절했다.“실험실에 처리할 일이 남아 있어서 가 봐야 해요.”고 선생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의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할 수 없이 연경훈은 고 선생을 저택 입구까지 배웅한 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낙담한 마음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손자를 보자 연수호 역시 마음이 아팠다.비록 평소 가족들을 다소 걱정시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꽤 다정한 손자였다.지금 같은 손자의 모습은 거의 처음 보는 듯하다.연수호가 손자 옆에서 충고의 말을 건넸다.“경훈아, 만약 고 선생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만두어라. 고 선생은 다른 여자들과 달라. 돈이나 성의로 쉽게 마음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야. 고 선생이 품은 뜻이 원대한만큼 너도 열심히 정진해야 해.”그래도 연경훈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동안 놀기도 많이 놀았던 그였지만 진심이었던 적은 지금이 처음이었다.이 세상에 자신을 이처럼 설레게 만드는 여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 선생을 만난 후에야 깨달았다.연경훈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하는 거침이 없는 사람이다. 고 선생에 대한 마음도 지금까지 숨긴 적이 없었다.고백하고 차인 직후에는 낙담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지금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연경훈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다른 여자들은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고 선생은 달라요.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모든 걸 기꺼이 던지고 싶었어요.”연수호가 한숨을 내쉬며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