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연수호 어르신에게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침을 놓았다.혈을 찾아 정확하게 침을 놓은 후 어르신 옆을 지키는 동안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안타까운 눈빛의 연경훈도 고 선생 즉 성연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 옆을 함께 지켰다. 고 선생에게 자신을 상대해 줄 마음이 없어 보여 그저 그 옆에서 지킬 수밖에 없었다.시간이 되어 침을 뽑고 난 후, 연수호는 몸이 훨씬 가뿐해졌음을 느꼈다.아플 정도로 명치를 꽉 짓누르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러자 연수호의 안색 또한 아주 좋아졌다.일어나 앉은 연수호는 성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선생, 정말 고맙습니다. 고 선생은 당신 사부님과 똑같군요.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침술 한 번에 바로 효과를 봤습니다.”성연이 와서 치료할 때마다 자신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몸이 안 좋을 때면 그저 고 선생이 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이제 고 선생이 눈 앞에 있으니 다른 의사는 청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과찬이세요. 어르신만 괜찮으시면 돼요.” 성연이 빙그레 웃었다.연수호 어르신에 대해 성연은 무척 강직하고 호쾌한 분이라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게다가 사부님의 친우이기도 하니 성연은 연수호를 집안 어르신 마냥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다.“고 선생이 왔으니. 이제 괜찮을 겁니다.” 연수호는 턱을 쓸어내리며 성연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성연은 그저 미소만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그런데 연수호가 불쑥 말을 던졌다.“고 선생, 우리 집 경훈이는 어떻습니까?”성연에 대한 손자 연경훈의 마음은 진심이었다.성연에 대한 마음을 가족들에게 드러낸 이후 손자는 하릴없이 밖으로 놀러 다니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연수호가 보기에 만약 고 선생이 손자 경훈의 짝이 된다면, 앞으로 손자 경훈을 바른 길로 잘 인도할 게 분명했다.그러면 더 이상 연경훈에 대해 가족들이 근심할 필요도 없을 터.손자 연경훈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천둥벌거숭이 같던 녀석이었다.그러던 녀석이 고 선생과 있을 때는 다
성연은 연수호 어르신과 두세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갈 차비를 했다.그때 줄곧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경훈이 돌아가려는 성연을 만류했다.“고 선생님, 식사하시고 가세요. 특별히 주방에 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다과도 준비하게 했어요.”오늘도 할아버지 때문에 겨우 연락해서 온 고 선생이다. 지금 가면 또 언제 오게 될 지 알 수가 없다.연경훈은 차마 고 선생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연경훈의 의도를 이미 짐작한 터라 더는 연씨 저택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던 성연이 재차 거절했다.“실험실에 처리할 일이 남아 있어서 가 봐야 해요.”고 선생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의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할 수 없이 연경훈은 고 선생을 저택 입구까지 배웅한 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낙담한 마음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손자를 보자 연수호 역시 마음이 아팠다.비록 평소 가족들을 다소 걱정시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꽤 다정한 손자였다.지금 같은 손자의 모습은 거의 처음 보는 듯하다.연수호가 손자 옆에서 충고의 말을 건넸다.“경훈아, 만약 고 선생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만두어라. 고 선생은 다른 여자들과 달라. 돈이나 성의로 쉽게 마음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야. 고 선생이 품은 뜻이 원대한만큼 너도 열심히 정진해야 해.”그래도 연경훈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동안 놀기도 많이 놀았던 그였지만 진심이었던 적은 지금이 처음이었다.이 세상에 자신을 이처럼 설레게 만드는 여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 선생을 만난 후에야 깨달았다.연경훈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하는 거침이 없는 사람이다. 고 선생에 대한 마음도 지금까지 숨긴 적이 없었다.고백하고 차인 직후에는 낙담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지금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연경훈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다른 여자들은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고 선생은 달라요.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모든 걸 기꺼이 던지고 싶었어요.”연수호가 한숨을 내쉬며
기분이 좋지 않았던 연경훈은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무진에게 연락했다.연경훈과 아는 형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무진이 술 약속을 받아들였다.평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연경훈이다 보니 무진을 귀찮게 할 일이 거의 없었다.그래서 무진은 연경훈이 오늘 진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자신을 찾나 보다 짐작했다.무진은 오늘 저녁에 일이 있어 늦게 귀가한다는 메시지를 성연에게 보낸 후에 연경훈이 주소를 보낸 바를 찾아갔다.무진이 룸에 들어갔을 때, 연경훈은 혼자서 이미 두 병을 마시고 이 발그스레한 상태였다.연경훈의 옆에 앉으며 무진이 물었다.“무슨 일이야?”“무진 형, 고 선생님, 기억해요?” 연경훈이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습기를 머금고 촉촉한 두 눈이 꽤나 불쌍해 보였다.연경훈이 고 선생을 언급하자 순간 손을 움찔한 무진이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전 정말 고 선생님이 좋아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진 형, 형은 고 선생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어요? 좀 도와줘요.”연경훈의 목소리가 비애로 가득 차 있었다.슬픔에 푹 젖은 음성을 듣는 순간, 무진은 연경훈이 진짜 사랑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친한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그런데 하필 그녀는...고개를 숙이고 있던 연경훈은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굳어진 무진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실 연경훈의 입에서 나오는 고 선생이 바로 성연이라는 사실을 무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전부터 계속 의심스러웠는데 나중에 몇 가지 증거들로 해서 고 선생이 성연이 맞다는 걸 알아냈다.그런데 지금 친동생 같은 연경훈이 성연을 좋아한다고 한다.자신의 약혼녀를.눈빛이 깊어진 무진이 입을 열었다.“세상에 미인은 많아. 어쩌면 지금 고 선생에게 느끼는 감정은 한 순간의 신선함 때문일 수도 있어. 익숙해지면 차츰 아무렇지 않아질 거야.”“아니야,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나 정말
이튿날, 성연이 집에 있는데 연경훈이 또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화면에 뜬 연경훈의 번호를 보고 받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연경훈을 친구로 받아들인 성연.결국 잠시 고민한 끝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핸드폰 건너편에서 연경훈의 음성이 들렸다. 어째 좀 조급함이 느껴지는 말투다.“고 선생님, 몸에 갑자기 종기가 생겼어요. 와서 좀 치료해 주면 좋겠어요.”연경훈의 음성을 들으니 거짓말 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그런데 멀쩡하던 연경훈의 몸에 갑자기 종기가 왜 생겼을까?어떤 병들은 예사롭게 생각하고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된다.연경훈이 사부님 친우의 손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연경훈은 자신에게 고백한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즉 사람 자체는 괜찮았다.성연이 증세에 대해 캐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 지금 또 다른 증세는 없어요?”연경훈이 대답했다.“복부 쪽을 누르면 좀 아파요.”잠시 생각하던 성연은 결국 가서 진찰해 보기로 결정했다.이미 자신 앞에 놓인 일이다.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건 연수호 어르신고 연씨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그래서 성연은 가겠다고 약속했다.“알았어요. 시간이 날 때 가서 볼게요.”연경훈은 성연의 약속을 받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연경훈이 전화해서 성연을 찾은 것은 무진의 의견이었다.무진이 왜 이런 요구를 했는지는 의아스러웠다.그러나 늘 믿고 의지하던 친형 같은 무진의 말에 연경훈은 두말없이 바로 따랐다.이 전화가 걸려왔을 때.사실 성연의 옆에 무진이 함께 있었다.욕실에 들어가 전화를 받고 나온 성연이 어딘가 다급한 기색을 보였다.사실 무진은 성연이 무슨 일로 그러는지 알고 있다.그런데도 일부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성연은 자신이 너무 드러나게 행동해서 무진이 알아차린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그냥 몸이 좀 불편해서 올라가서 좀 쉬어야겠어요.”그렇게 둘러댄 뒤에 성연은 침실
성연이 차를 몰고 나가자 무진이 바로 뒤를 쫓기 시작했다.성연은 진즉 외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땄었지만 국내와 교통 관련 법규가 다르다 보니 성년이 되어서야 운전을 했다.최근 성연은 자신이 직접 운전해서 다니는 것이 비교적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엠파이어 하우스에는 운전기사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외출할 때마다 기사를 불러야 했다.또 기사를 기다리는 시간도 꽤 길게 느껴졌다.그래서 성연은 운전을 배우는 척하면서 직접 운전을 했다.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마침 국내 운전면허를 땄다.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무진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성적이 좋은 성연이 운전에 있어서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성연을 쫓아간 무진은 성연이 교외에 있는 한 건물의 지하에 차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곧이어 옷을 갈아입은 성연이 나와 연씨 저택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세웠다.이곳은 아주 외진 곳이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성연이 숨어서 신분을 위장하기에 아주 적당했다.성연은 그 전처럼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성연이 방금 탄 택시를 무진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택시가 막 출발하려던 순간 무진이 차 문을 세우고 올라탔다.성연은 이미 용모를 바꾸고 변장한 상태였다.완전히 고 선생의 모습이다.성연은 속으로 엄청 놀랐지만 침착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계신가요? 차는 왜 세우셨어요?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빨리 가야 하니까, 대표님도 차를 타셔야 한다면 따로 택시를 부르도록 하세요.”성연은 어차피 무진이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그다지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다.무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아직도 계속 변장해야 해?”성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저는 강 대표님이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강 대표님, 설마 저를 미행하신 건 아니겠지요?”이곳은 자신이 오랫동안 찾았던 곳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자신의 정체를 온전히
“내가 손을 쓰지 않았으면 우리 집 꼬맹이가 이렇게 대단한 지 어떻게 알았을까?” 무진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성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다.자신에게 들킨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연은 숨기려 발버둥쳤다.“내가 얼굴을 바꾼 건 맞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사부님과의 관계 때문에 연수호 어르신을 돕는 거예요.”성연은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번거로운 일이 생길 테니까.얼굴을 바꾸었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내지 못했다.그래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명의의 제자라는 신분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자신이 북성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고치기 힘든 병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게 분명하다.그렇게 되면 성연이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성연의 말을 다 들은 무진은 화가 났다가 이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너는 내가 질투로 눈이 멀게 만들었어.”연경훈이 자신을 불러 나갔을 때마다 연경훈이 성연을 포기하게끔 구슬렸다.연경훈이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질투로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 하필 성연이 신분을 속이고 있는 바람에 그 역시 속으로 삼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속으로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도 못할 정도였다.그런데 연경훈의 이번 고백은 정말 무진을 엄청나게 자극했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무진은 결국 성연의 정체를 밝혔다.자신의 정체를 아예 속 시원히 다 드러낸 성연이 나른한 음성으로 물었다.“연경훈 씨 쪽은요? 설마 무진 씨가 연경훈 씨에게 말했어요?”무진의 오늘의 행동을 봤을 때, 무진이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숨기고 말을 안 했을 뿐이야.’지금 또 연경훈이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질투했다는데 결국 연경훈 밖에 없다.무진이 고개를 저은 후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너는 정말이지 말썽 피우는 데 재주가 있어.”“이건 제 본의가 아니었어요.”단지 연수호 어르신을 치료를 한 후에 사부님께 인
다음날, 집에서 무료함을 느끼던 성연은 고택에 가서 할머니 안금여를 방문했다.성연이 거실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방미정이 와 있었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과 같이 있는 모습이 무척 다정해 보였다.자신이 가져온 선물로 안금여와 강운경의 환심을 산 방미정은 성연이 거실에 들어오자 성연에게 도발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송성연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강씨 집안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난 처음부터 유리한 조건이야. 도대체 누구를 선택할지 바보라도 모두 알겠지?’제일 먼저 성연을 발견한 안금여가 자신의 옆 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성연이 왔구나. 여기 앉아.”강운경도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성연을 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한 가족을 대하는 듯했다.그런데 방미정을 대할 때는 그저 잘 아는 아래 사람을 대하는 듯, 손님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 모습이었다.성연 역시 사양하지 않고 안금여 옆에 바로 앉았다.안금여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방미정이 성연을 보더니 잠시 눈을 흘겼다.‘아무런 능력도 없이 온종일 이렇게 사람들의 환심 사는 일만 할 줄 아는 주제에.’예전에는 자신이 없어서 송성연에게 기회가 돌아갔을 뿐이다.이제 더는 송성연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방미정은 일부러 안금여 앞에서 말했다.“할머니, 저와 무진 씨의 혼약을 기억하고 계실 지 모르겠네요. 저희 두 사람 살짝 어긋났을 뿐인데, 너무 아쉬워요. 만약 저와 무진 씨의 혼약이 계속 이어졌다면, 아마 지금 할머니는 손자를 안고 계실 텐데 말이죠.”노인들은 자손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방미정은 바로 이 점을 공략하며 안금여의 마음 속에 파고들 작정이었다.성연은 무진의 진정한 약혼녀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방미정이 지금 자신이 보는 앞에서 어른들에게 저런 말을 하고 있는데, 그냥 두어서야 되겠는가?방미정은 쳐다도 보고 싶지 않아 아예 못 들은 척했다.방미정 같은 사람은 상대하면 할수록 더 신이 나는 사람이다.안금여와 강운경 역시 방미정이 대담하
생각지도 않게 성연이 건물을 나오자 방미진이 쫓아 나왔다.방미정이 업신여기는 듯한 눈길로 성연을 조롱하며 말했다.“송성연 씨, 스스로 생각해 봐요.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강씨 집안은 또 어떤 가문인지, 당신이 무진 씨 같은 훌륭한 남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무진 씨는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어서 당신과 약혼한 거예요. 결혼하지 않으면 당신과 무진 씨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에요.” 방미정의 말은 성연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이었다.설사 성연에 대한 외부의 평판이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방미정은 성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돈도 권세도 없는 송성연은 무진의 곁에 설 자격이 전혀 없었다.돈과 권세가 진리였다.돈이 있는데 아무것도 살 수 없다?자신이 보기에 강무진이 송성연을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어쨌든 강무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모두들 머리를 쥐어짜내 강씨 집안에 들어가려고 한다.그러나 다들 강씨 집안의 돈을 위해서일 뿐이다.오직 자신의 집안 정도만이 강씨 집ㄴ안과 맞먹을 정도다. 강무진에게 누가 되지 않을뿐더러 강무진의 조력자가 될 수도 있을 정도였다.요즘 강씨 집안 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 때문에 강무진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이 대목에서 자신이 강무진에게 줄 수 있는 장점들을 생각하면 강무진이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는 그야말로 자명하다.성연은 방미정의 말을 들으면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방미정 씨, 저를 좀 존중해 주세요.”방미정의 행동은 바로 남을 궁지에 몰려는 비겁한 짓이 아닌가?도대체 체면은 생각도 안 하는 지 성연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방미정은 뒷걸음치며 오히려 성연에게 다가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마지막에 무진 씨의 아내는 결국 내가 될 거예요. 알아서 물러나라고 충고하고 싶군요. 내 앞에서 수작 부리지 말아요. 안 그러면 내가 본 때를 보여 줄 테니 조심해.”처음부터 끝까지 방미정은 성연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녀의 눈에 성연은 얼굴만 좀 예쁘장할 뿐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