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던 성연은 연경훈의 전화를 받았다.한동안 통화한 적이 없던 연경훈의 전화번호를 본 성연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당부를 떠올리고 곧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먼저 가볍게 기침을 하며 살짝 가라앉은 음성을 가다듬은 후에 입을 열었다.“연경훈 씨.”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호칭에 저도 모르게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연경훈이 불만이라는 듯이 말했다.“고 선생님, 지난번에 그냥 이름만 부르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런데 왜 또 성까지 붙이는 거예요.”생각할수록 좀 서운한 연경훈이다.연경훈의 말에서 성연은 자신을 향한 섭섭한 마음을 읽었다.하지만 아무런 흔들림 없이 담백하게 대답했다.“연경훈 씨, 각자의 위치가 있는 만큼 예의를 갖추어 호칭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연경훈이 바로 용건을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또 발작을 일으키셨는데, 까닭을 모르겠어요. 지금 누워 계시는데 고 선생님이 다시 와 주시면 안 되겠어요?”연수호 어르신의 병증에 대해서는 북성의 날고 긴다 하는 의사들 모두 속수무책이었다.지난 번 성연이 연씨 저택을 찾아 치료한 후에야 간신히 차도를 보였다.그러니 연씨 가족들은 성연 이외의 다른 의사에게 보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집안의 최고 어르신인 연수호의 건강이 가장 중요했기에 결국 염치없지만 성연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연경훈의 말을 들은 성연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우선 가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다만 성연 자신을 향한 연경훈의 마음이 꽤 저돌적인 터라,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연경훈이 할아버지 연수호 어르신을 구실로 삼은 게 아닌가 잠시 걱정이 되었을 뿐이다.그러나 연씨 집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연경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비록 다소 건들건들하는 연경훈이지만 할아버지 연수호의 건강을 가지고 농담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래서 성연은 일단 가보기로 결정했다.연수호 어르신의 건강이 정말 심각해진다면 자신은 사부님을 볼 면목이 없게 될 터이다.성연은 본 모습
성연은 연수호 어르신에게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침을 놓았다.혈을 찾아 정확하게 침을 놓은 후 어르신 옆을 지키는 동안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안타까운 눈빛의 연경훈도 고 선생 즉 성연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 옆을 함께 지켰다. 고 선생에게 자신을 상대해 줄 마음이 없어 보여 그저 그 옆에서 지킬 수밖에 없었다.시간이 되어 침을 뽑고 난 후, 연수호는 몸이 훨씬 가뿐해졌음을 느꼈다.아플 정도로 명치를 꽉 짓누르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러자 연수호의 안색 또한 아주 좋아졌다.일어나 앉은 연수호는 성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선생, 정말 고맙습니다. 고 선생은 당신 사부님과 똑같군요.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침술 한 번에 바로 효과를 봤습니다.”성연이 와서 치료할 때마다 자신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몸이 안 좋을 때면 그저 고 선생이 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이제 고 선생이 눈 앞에 있으니 다른 의사는 청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과찬이세요. 어르신만 괜찮으시면 돼요.” 성연이 빙그레 웃었다.연수호 어르신에 대해 성연은 무척 강직하고 호쾌한 분이라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게다가 사부님의 친우이기도 하니 성연은 연수호를 집안 어르신 마냥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다.“고 선생이 왔으니. 이제 괜찮을 겁니다.” 연수호는 턱을 쓸어내리며 성연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성연은 그저 미소만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그런데 연수호가 불쑥 말을 던졌다.“고 선생, 우리 집 경훈이는 어떻습니까?”성연에 대한 손자 연경훈의 마음은 진심이었다.성연에 대한 마음을 가족들에게 드러낸 이후 손자는 하릴없이 밖으로 놀러 다니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연수호가 보기에 만약 고 선생이 손자 경훈의 짝이 된다면, 앞으로 손자 경훈을 바른 길로 잘 인도할 게 분명했다.그러면 더 이상 연경훈에 대해 가족들이 근심할 필요도 없을 터.손자 연경훈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천둥벌거숭이 같던 녀석이었다.그러던 녀석이 고 선생과 있을 때는 다
성연은 연수호 어르신과 두세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갈 차비를 했다.그때 줄곧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경훈이 돌아가려는 성연을 만류했다.“고 선생님, 식사하시고 가세요. 특별히 주방에 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다과도 준비하게 했어요.”오늘도 할아버지 때문에 겨우 연락해서 온 고 선생이다. 지금 가면 또 언제 오게 될 지 알 수가 없다.연경훈은 차마 고 선생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연경훈의 의도를 이미 짐작한 터라 더는 연씨 저택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던 성연이 재차 거절했다.“실험실에 처리할 일이 남아 있어서 가 봐야 해요.”고 선생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의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할 수 없이 연경훈은 고 선생을 저택 입구까지 배웅한 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낙담한 마음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손자를 보자 연수호 역시 마음이 아팠다.비록 평소 가족들을 다소 걱정시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꽤 다정한 손자였다.지금 같은 손자의 모습은 거의 처음 보는 듯하다.연수호가 손자 옆에서 충고의 말을 건넸다.“경훈아, 만약 고 선생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만두어라. 고 선생은 다른 여자들과 달라. 돈이나 성의로 쉽게 마음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야. 고 선생이 품은 뜻이 원대한만큼 너도 열심히 정진해야 해.”그래도 연경훈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동안 놀기도 많이 놀았던 그였지만 진심이었던 적은 지금이 처음이었다.이 세상에 자신을 이처럼 설레게 만드는 여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 선생을 만난 후에야 깨달았다.연경훈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하는 거침이 없는 사람이다. 고 선생에 대한 마음도 지금까지 숨긴 적이 없었다.고백하고 차인 직후에는 낙담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지금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연경훈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다른 여자들은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고 선생은 달라요.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모든 걸 기꺼이 던지고 싶었어요.”연수호가 한숨을 내쉬며
기분이 좋지 않았던 연경훈은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무진에게 연락했다.연경훈과 아는 형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무진이 술 약속을 받아들였다.평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연경훈이다 보니 무진을 귀찮게 할 일이 거의 없었다.그래서 무진은 연경훈이 오늘 진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자신을 찾나 보다 짐작했다.무진은 오늘 저녁에 일이 있어 늦게 귀가한다는 메시지를 성연에게 보낸 후에 연경훈이 주소를 보낸 바를 찾아갔다.무진이 룸에 들어갔을 때, 연경훈은 혼자서 이미 두 병을 마시고 이 발그스레한 상태였다.연경훈의 옆에 앉으며 무진이 물었다.“무슨 일이야?”“무진 형, 고 선생님, 기억해요?” 연경훈이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습기를 머금고 촉촉한 두 눈이 꽤나 불쌍해 보였다.연경훈이 고 선생을 언급하자 순간 손을 움찔한 무진이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전 정말 고 선생님이 좋아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진 형, 형은 고 선생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어요? 좀 도와줘요.”연경훈의 목소리가 비애로 가득 차 있었다.슬픔에 푹 젖은 음성을 듣는 순간, 무진은 연경훈이 진짜 사랑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친한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그런데 하필 그녀는...고개를 숙이고 있던 연경훈은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굳어진 무진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실 연경훈의 입에서 나오는 고 선생이 바로 성연이라는 사실을 무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전부터 계속 의심스러웠는데 나중에 몇 가지 증거들로 해서 고 선생이 성연이 맞다는 걸 알아냈다.그런데 지금 친동생 같은 연경훈이 성연을 좋아한다고 한다.자신의 약혼녀를.눈빛이 깊어진 무진이 입을 열었다.“세상에 미인은 많아. 어쩌면 지금 고 선생에게 느끼는 감정은 한 순간의 신선함 때문일 수도 있어. 익숙해지면 차츰 아무렇지 않아질 거야.”“아니야,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나 정말
이튿날, 성연이 집에 있는데 연경훈이 또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화면에 뜬 연경훈의 번호를 보고 받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연경훈을 친구로 받아들인 성연.결국 잠시 고민한 끝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핸드폰 건너편에서 연경훈의 음성이 들렸다. 어째 좀 조급함이 느껴지는 말투다.“고 선생님, 몸에 갑자기 종기가 생겼어요. 와서 좀 치료해 주면 좋겠어요.”연경훈의 음성을 들으니 거짓말 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그런데 멀쩡하던 연경훈의 몸에 갑자기 종기가 왜 생겼을까?어떤 병들은 예사롭게 생각하고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된다.연경훈이 사부님 친우의 손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연경훈은 자신에게 고백한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즉 사람 자체는 괜찮았다.성연이 증세에 대해 캐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 지금 또 다른 증세는 없어요?”연경훈이 대답했다.“복부 쪽을 누르면 좀 아파요.”잠시 생각하던 성연은 결국 가서 진찰해 보기로 결정했다.이미 자신 앞에 놓인 일이다.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건 연수호 어르신고 연씨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그래서 성연은 가겠다고 약속했다.“알았어요. 시간이 날 때 가서 볼게요.”연경훈은 성연의 약속을 받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연경훈이 전화해서 성연을 찾은 것은 무진의 의견이었다.무진이 왜 이런 요구를 했는지는 의아스러웠다.그러나 늘 믿고 의지하던 친형 같은 무진의 말에 연경훈은 두말없이 바로 따랐다.이 전화가 걸려왔을 때.사실 성연의 옆에 무진이 함께 있었다.욕실에 들어가 전화를 받고 나온 성연이 어딘가 다급한 기색을 보였다.사실 무진은 성연이 무슨 일로 그러는지 알고 있다.그런데도 일부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성연은 자신이 너무 드러나게 행동해서 무진이 알아차린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그냥 몸이 좀 불편해서 올라가서 좀 쉬어야겠어요.”그렇게 둘러댄 뒤에 성연은 침실
성연이 차를 몰고 나가자 무진이 바로 뒤를 쫓기 시작했다.성연은 진즉 외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땄었지만 국내와 교통 관련 법규가 다르다 보니 성년이 되어서야 운전을 했다.최근 성연은 자신이 직접 운전해서 다니는 것이 비교적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엠파이어 하우스에는 운전기사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외출할 때마다 기사를 불러야 했다.또 기사를 기다리는 시간도 꽤 길게 느껴졌다.그래서 성연은 운전을 배우는 척하면서 직접 운전을 했다.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마침 국내 운전면허를 땄다.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무진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성적이 좋은 성연이 운전에 있어서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성연을 쫓아간 무진은 성연이 교외에 있는 한 건물의 지하에 차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곧이어 옷을 갈아입은 성연이 나와 연씨 저택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세웠다.이곳은 아주 외진 곳이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성연이 숨어서 신분을 위장하기에 아주 적당했다.성연은 그 전처럼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성연이 방금 탄 택시를 무진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택시가 막 출발하려던 순간 무진이 차 문을 세우고 올라탔다.성연은 이미 용모를 바꾸고 변장한 상태였다.완전히 고 선생의 모습이다.성연은 속으로 엄청 놀랐지만 침착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계신가요? 차는 왜 세우셨어요?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빨리 가야 하니까, 대표님도 차를 타셔야 한다면 따로 택시를 부르도록 하세요.”성연은 어차피 무진이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그다지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다.무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아직도 계속 변장해야 해?”성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저는 강 대표님이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강 대표님, 설마 저를 미행하신 건 아니겠지요?”이곳은 자신이 오랫동안 찾았던 곳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자신의 정체를 온전히
“내가 손을 쓰지 않았으면 우리 집 꼬맹이가 이렇게 대단한 지 어떻게 알았을까?” 무진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성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다.자신에게 들킨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연은 숨기려 발버둥쳤다.“내가 얼굴을 바꾼 건 맞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사부님과의 관계 때문에 연수호 어르신을 돕는 거예요.”성연은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번거로운 일이 생길 테니까.얼굴을 바꾸었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내지 못했다.그래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명의의 제자라는 신분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자신이 북성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고치기 힘든 병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게 분명하다.그렇게 되면 성연이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성연의 말을 다 들은 무진은 화가 났다가 이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너는 내가 질투로 눈이 멀게 만들었어.”연경훈이 자신을 불러 나갔을 때마다 연경훈이 성연을 포기하게끔 구슬렸다.연경훈이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질투로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 하필 성연이 신분을 속이고 있는 바람에 그 역시 속으로 삼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속으로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도 못할 정도였다.그런데 연경훈의 이번 고백은 정말 무진을 엄청나게 자극했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무진은 결국 성연의 정체를 밝혔다.자신의 정체를 아예 속 시원히 다 드러낸 성연이 나른한 음성으로 물었다.“연경훈 씨 쪽은요? 설마 무진 씨가 연경훈 씨에게 말했어요?”무진의 오늘의 행동을 봤을 때, 무진이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숨기고 말을 안 했을 뿐이야.’지금 또 연경훈이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질투했다는데 결국 연경훈 밖에 없다.무진이 고개를 저은 후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너는 정말이지 말썽 피우는 데 재주가 있어.”“이건 제 본의가 아니었어요.”단지 연수호 어르신을 치료를 한 후에 사부님께 인
다음날, 집에서 무료함을 느끼던 성연은 고택에 가서 할머니 안금여를 방문했다.성연이 거실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방미정이 와 있었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과 같이 있는 모습이 무척 다정해 보였다.자신이 가져온 선물로 안금여와 강운경의 환심을 산 방미정은 성연이 거실에 들어오자 성연에게 도발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송성연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강씨 집안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난 처음부터 유리한 조건이야. 도대체 누구를 선택할지 바보라도 모두 알겠지?’제일 먼저 성연을 발견한 안금여가 자신의 옆 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성연이 왔구나. 여기 앉아.”강운경도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성연을 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한 가족을 대하는 듯했다.그런데 방미정을 대할 때는 그저 잘 아는 아래 사람을 대하는 듯, 손님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 모습이었다.성연 역시 사양하지 않고 안금여 옆에 바로 앉았다.안금여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방미정이 성연을 보더니 잠시 눈을 흘겼다.‘아무런 능력도 없이 온종일 이렇게 사람들의 환심 사는 일만 할 줄 아는 주제에.’예전에는 자신이 없어서 송성연에게 기회가 돌아갔을 뿐이다.이제 더는 송성연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방미정은 일부러 안금여 앞에서 말했다.“할머니, 저와 무진 씨의 혼약을 기억하고 계실 지 모르겠네요. 저희 두 사람 살짝 어긋났을 뿐인데, 너무 아쉬워요. 만약 저와 무진 씨의 혼약이 계속 이어졌다면, 아마 지금 할머니는 손자를 안고 계실 텐데 말이죠.”노인들은 자손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방미정은 바로 이 점을 공략하며 안금여의 마음 속에 파고들 작정이었다.성연은 무진의 진정한 약혼녀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방미정이 지금 자신이 보는 앞에서 어른들에게 저런 말을 하고 있는데, 그냥 두어서야 되겠는가?방미정은 쳐다도 보고 싶지 않아 아예 못 들은 척했다.방미정 같은 사람은 상대하면 할수록 더 신이 나는 사람이다.안금여와 강운경 역시 방미정이 대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