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 질문 자체는 좋았지만, 강일헌 스스로 이미 대답을 준비해 두었던 부분들이었다.그러다 갑자기 무진이 말했다.“최근에 네가 맡고 있는 계열사의 회계장부를 다시 살펴보았더니, 40억이 비어.”무진의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강일헌이 당황하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그러나 강일헌의 곁에 앉은 강명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그저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계산이 틀린 거 아니냐? 만약 진짜 결손 부분이 있다면 내 돈으로 메꿔 넣으면 되지, 무슨 문제라고.”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강명재가 무진의 말을 받았다.40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대단히 무성의한 반응에 무진이 눈썹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회사 전체 재무에까지 관련되는 문제입니다.”크고 작은 계열사들로 이루어진 WS그룹.계열사에서 처리하는 모든 일이 WS그룹 본사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만약 무슨 부정이라도 저지른다면 바로 WS그룹에 영향을 주게 될 게 자명하다.그래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무진은 아주 엄하게 관리하고 있었다.하지만 별 대수롭지 않은 듯한 강명재의 태도는 무진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자신이 직접 방문해서 언급한 문제에 대해 한마디 말로 대충 끝내 버리려 하다니.‘설마 이 횡령 건에 강명재도 관여했나? 그래서 자기 돈으로 메꿔 넣어서 일을 축소시키려는 의도인 건가?’강명재는 계속해서 대수롭지 않은 듯한 어조로 말했다.“그게 뭐 대수라고, 돈 메꿔 넣으면 되잖아? 그렇게 크게 부풀릴 필요가 뭐 있어?”강명재는 자연히 강일헌보다 머리가 좋았다. 이 일이 커져 봤자 자신들에게 하나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대충 덮으려 하는 것이다.만일 무진이 이 기회에 또 다시 회사 경영권을 회수해 간다면. 40억 손실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이 계열사의 경영권은 40억에 그치지 않는다.무진이 강명재의 생각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강명재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무진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규정에 따르면, 이 일은 반드시 경찰에 넘겨야겠지요.”40억 공금 유
무진은 저들에게 대놓고 싫은 내색을 했다. 오촌 당숙인 강명재의 체면도 일절 세워주지 않았다.무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강일헌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인 분노가 저 밑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만약 강무진, 진짜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 절대 나 혼자 죽지 않아. 반드시 네 놈도 죽여버릴 테다!”강무진이 WS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 참고 또 참았다.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강무진은 자신의 양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지금 또 다시 우리 둘째, 셋째 일가 모두를 기어코 감옥에 보내야 만족할 테지!’‘강무진, 그 놈은 진짜 자신을 뭘로 생각하는 거야?’만약 진짜 자신을 감옥에 보내려 한다면, 그 전에 그 놈부터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내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물귀신처럼 그 놈을 꽉 붙잡고 놔주지 않을 테다!’아버지 강명재가 옆에서 만류했다.“경거망동하지 마. 내가 큰어머니 안금여를 찾아가 무진에게 말하도록 압력을 넣을 테니까.”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무진의 태도를 생각하던 강명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지금 강무진 그 놈은 점점 더 미쳐 날뛰고 있어. 우리 같은 집안 어른들도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거지?’언젠가는 강무진 그 놈에게 알려줄 것이다. 필경 강씨 집안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다.“아버지, 보셨죠? 저 놈, 아버지한테도 이럴 정도인데. 저희가 집에서 어떻게 지냈겠습니까? 강무진 그 놈이 WS그룹 경영을 맡은 이후로 제가 마치 절대군주라도 되는 양 눈 앞의 모든 사람을 공기처럼 취급합니다.”화가 나서 죽을 것 같은 강일헌이 제 아버지 강명재에게 하소연했다.두 할아버지 강상철, 강상규를 감옥에 보내 버린 강무진이 지금 자신을 타겟으로 삼았다.이 분노를 참기만 한다면 남자도 아니다.강무진은 이 강씨 집안에서 진짜 자기 혼자만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네가 참 뻔뻔스럽게도 말하는구나.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배워서 실력을 쌓으라고 너를 집에 두고 갔었건만,
성연은 오늘 기혈을 보충해 주는 약재들을 잔뜩 넣고 탕을 끓였다.할머니 안금여를 위해 자신이 끓인 탕을 가지고 고택에 들렸던 성연은 입구에서 강명재와 맞닥뜨렸다.예의상 성연은 ‘당숙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했다.하지만 강명재는 성연을 한 차례 흘깃하더니 없는 사람마냥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성연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저 오촌 당숙의 무시하는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앞으로 깊게 왕래할 사이도 아니니까.둘째, 셋째 일가에서는 성연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별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성연 자신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전부 쓰레기 같은 작자들뿐이다.강명재가 고택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지금 고택에는 할머니 안금여 밖에 없음을 가리 늦게 깨닫고 부리나케 뛰어 들어갔다.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강명재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할머니 안금여를 향해 분노에 찬 말들을 사정없이 쏟아내고 있었다,“큰어머님, 제발 당신 손자 좀 잘 관리하셔야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세요!”만약 큰집이 자신의 말을 듣는다면, 강명재는 큰집 사람들에게 며칠 더 유예를 줄 용의가 있었다.그러나 큰집에서는 끝까지 아무도 자신들을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저들 마음대로였다.만약 큰집을 눌러 자신의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강명재 자신이 이번에 돌아온 의미가 없는 것이다.성질이 그에 못지 않게 만만치 않은 안금여가 강명재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무슨 생각이냐?”안금여는 강명재가 지금 왜 여기에 와서 미쳐 날뛰는지 까닭을 알지 못했다.다만 분명 무진이 먼저 행동에 나섰고, 그래서 강명재가 여기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라 짐작만 할 뿐.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든 강명재 저놈들의 자업자득이 아니겠는가?그런데도 강명재 저 놈은 감히 이곳에 와서 깽판을 부린다. 저놈들한테는 양심이나 도리라는 게 전혀 없다.어찌 저리 뻔뻔스럽게도 여기를 찾아와서 이 나이 많은 어른에게
다시 강명재에게 시선을 돌린 안금여가 차가운 음성으로 비웃었다.“도대체 누가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해서 내 손자를 화나게 한 거야?”‘만약 강명재 저 놈들 쪽에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 무진이가 저들에게 눈길을 주었을 리가 없지.’‘제 놈들 잘못이 분명한데도 어찌 저리 당당하게 말하는지, 참.’안금여가 생각하기에, 저 둘째, 셋째 일가 쪽 사람들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지금도 자신들이 피해자인 척 허세를 부리는 게 분명했다.그룹 내 실적? 저들이 무언가를 제대로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그에 반해 남을 모해 하는 일에 있어서는 수단도 가지가지다.강명재는 안금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큰어머님, 저랑 명기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우리 같은 집안 어른이 눈에 거슬려도 무진이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요.”강명재는 슬그머니 딴 데로 말을 돌리며 요점을 흐리려 했다.입만 열었다 하면 사실을 부풀리거나 엉터리로 말하는 강명재이기에, 안금여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안금여가 입을 다물고 있자 강명재는 기가 더 살아서 신중함은 완전히 내던진 채 안금여 앞에서 마구 떠들어댔다.“그 정도 돈은 저한테 있어서 별 거 아닙니다. 제가 그룹에 환납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그래도 계속 그 일을 파고 들겠다면 제가 안면몰수하고 끝장을 본다고 탓하지 마세요.”강명재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시무시한 위협이었다.한 마디로 돈을 줄 테니 더 이상 따지지 말라는 뜻.그러나 만약 무진이 경찰에 고발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미이다.아직은 서로 완전히 끝장을 본 상태는 아니니 당연히 서로 좋게 좋게 넘어갈 있을 터.그러나 일단 서로를 향해 칼을 들이댄다면 간단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아저씨,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무진 씨에게 가서 말씀하시는 게 좋겠어요. 아시겠지만, 할머니께서 회사 일에 관여하지 않으신 지도 오래되신 터라 여기서 말씀하셔도 소용이
당황한 안금여가 뒤로 물러섰고, 강명재는 흡사 이성을 잃은 사람 같았다.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순간, 성연 역시 당황했다. 성연은 소매자락을 더듬어 숨겨두었던 은침 하나를 빼냈다. 동시에 할머니 안금여의 앞을 막아선 채 강명재의 오른쪽 허벅지 혈자리에 침을 찔러 넣었다. 순간 다리에 마비 증세가 온 강명재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눈을 휘둥그레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성연을 쳐다보았다.여태 성연을 얕잡아 보았었는데, 놀랍게도 이런 수완을 지니고 있었다.‘은침을 사용할 줄이야.’조그마한 은침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순식간에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은침을 사용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혈자리를 찾는 것이다. 강명재는 요 몇 년간 해외에서 적지 않게 보았다.성연은 이렇게 한 번 찌르는 것으로 정확하게 자신의 혈자리를 찾아 내었다. 여간한 공력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을 터.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강무진의 약혼녀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니.자신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할 정도였다.강명재가 성연을 쳐다보며 입을 벌렸지만 한마디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이런 돌발 상황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안금여는 처음에는 성연이 자신을 보호하다 다칠까 걱정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이 바로 강명재를 쓰러뜨린 것이다.깜짝 놀란 안금여가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이 뒤를 돌아보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걸 봤으니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테지만, 성연은 후회하지 않았다. 무척이나 긴박했던 상황이었다. 강명재가 할머니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할머니 안금여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분명 더 후회할 테니까.은침을 놓는 의술이야,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오늘 할머니가 다치셨다면 쉽게 낫기는 힘드셨을 것이다.양쪽 상황을 저울질했을 때,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이 그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할머니를
성연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온 강운경과 조승호가 안금여와 성연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보호했다.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강운경은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강운경이 바닥에 누워 있는 강명재를 향해 소리를 쳤다.“오라버니, 나이가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하세요? 창피하지도 않아요?”땅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할 수 없어 강운경과의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던 강명재는 그저 강운경이 자신을 욕하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강운경이 잠시간 강명재를 비난하는 동안에 다리 감각을 회복한 강명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쳤다.“소란 떨고 싶으면 어디 한 번 제대로 떨어보던가!”겨우 한 마디 뱉은 강명재는 난처한 모습으로 부리나케 고택을 떠났다.강명재가 떠난 후에야 엄마 안금여를 돌아본 강운경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엄마, 괜찮아요? 강명재가 엄마랑 성연이한테 어떻게 한 거예요?”강명재는 미친 놈 같았다. 내내 집안에 분란만 일으키고 있다.그리고 엄마 안금여 혼자 집에 있을 때를 노렸다. 노인인 엄마가 자신에게 반격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안금여에게 이처럼 대한 것이다.만약 성연이가 오늘 여기에 없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다.“나는 괜찮아. 그저 생각지도 못했을 뿐이야. 강명재 저 놈이 이리 나올 줄은 정말 몰랐구나.” 안금여는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쿵쿵거렸다.방금 강명재가 달려드는 순간에도 무슨 나쁜 짓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어쨌든 자신에게 무척 불리했을 것은 분명했다.성연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꼴이 되었을지 정말 모르는 일이다.“이게 바로 저들 둘째 일가들의 품성이야. 엄마, 앞으로 혼자 집에 있게 되면 절대 저 미친 놈들에게 문 열어주지 마세요. 아니면 전화해서 우리 불러요. 알았죠?” 내내 안금여 생각인 강운경은 옆에서 걱정하며 재차 당부했다.“누가 생각이나 했겠니? 대낮에, 여기 고택에서, 저 놈이 저렇게 날뛸 줄! 조심하는 기색을 전혀
엄마 안금여가 무사한 것을 살짝 확인한 강운경과 조승호가 돌아갔다.두 사람은 아직 일이 많이 남은 상태여서 할머니를 잘 돌봐 달라고 성연에게 당부한 후에 떠났다.서재에 들어가며 문을 꼭 닫은 안금여가 성연에게 말했다.“성연아, 조금 전에 강명재 무릎이 꺽어지게 했던 물건을 보여다오.”성연은 할머니 안금여가 자신을 몰래 불러서 뭘 하시려나 하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은침을 보시려고 한 거였다.이 일을 숨길 수 없음을 이미 직감한 성연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할머니의 요구는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은침 일부를 손목에 붙여 놓고 있어서 그 순간 재빨리 꺼낼 수 있었다.성연은 손목에 둘러싸고 있던 은침을 꺼내어 할머니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할머니, 제가 침구술에 관해 좀 배웠어요. 전문가까지는 아니지만요. 여기 보세요.”너무 많이 노출시키지는 않은 채 적당히 숨기면 되리라 싶었다.안금여도 이 방면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성연이 속이려 마음먹는다면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성연의 손목에 싸인 은침을 본 안금여는 아주 신기하게 여겼다.그러다 갑자기 다시 고개를 들어 성연에게 물었다.“그날 밤 네가 침술로 날 구한 거지?”그때 성연에게 물었지만, 이 아이는 인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안금여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어찌 되었던 이 아이는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았고, 매사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가.‘말하고 싶지 않다면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게지.’그래서 안금여는 강요하지 않았다. 만약 끝까지 추궁한다면, 성연이 이 침으로 자신을 두 번이나 구했다는 사실 외에 또 무슨 추궁할 것이 있겠는가?이번에는 성연도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할머니, 그때는 저도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할머니에게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눈 딱 감고 한 번 해봤어요. 그런데 할머니, 이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성연의 꼬인 말투에 불안한 기색이 다소 묻어났다.무진은 안금여 만큼 속이기가 쉽
마침 회사 내에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던 무진이 일을 마무리 짓자마자 바로 달려왔다.고택에 도착한 다음에야 무진은 강명재가 한 짓을 들었다.강명재가 전혀 조심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미쳐 날뛰었다는 사실에 무진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당숙이 이런 짓까지 하다니요. 설마 둘째, 셋째 일가에서는 지금까지 받은 경고로도 아직 부족하다는 말인가요?”강상철, 강상규 두 할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것만 해도 무진이 만만치 않음을 강명재가 깨닫게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만약 저들이 더 이상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무진은 정말 자신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애초에 저들의 수작에 놀라 심신이 약해진 할머니 안금여가 입원을 하게 되자, 무진이 강일헌의 일에 손을 대었다.비록 강명재가 그럴 듯하게 연기한다 해도 이 일에 대해 모두 아주 잘 알고 있다.감히 고택에 와서 소란을 피울 정도로 간이 클 줄은 몰랐다.‘하, 이러면 안되지.’둘째, 셋째 일가가 계속 제멋대로 굴게 둔다면 할머니 안금여가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이다.무진이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안금여가 옆에서 충고했다.“무진아, 이번에 진짜 시끄러워지면 분명 강씨 집안이 꽤나 큰 격랑이 일 게다. 강명재가 그 돈을 배상하겠다고 하니,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여기서 그만두자꾸나.”안금여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모두 회사를 위해서이다.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해 흔들리게 해서는 안된다.회사를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던 무진이다.조금만 부주의해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반대로 무진은 이것저것 꺼리는 게 그렇게 많지 않았다.무진은 지금 고요한 강씨 집안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이다.할머니 안금여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무진이 입술을 오므린 채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놓아줄 수는 없어요.”할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만약 강명재가 이곳에 와서 행패를 부렸는데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