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금여가 무사한 것을 살짝 확인한 강운경과 조승호가 돌아갔다.두 사람은 아직 일이 많이 남은 상태여서 할머니를 잘 돌봐 달라고 성연에게 당부한 후에 떠났다.서재에 들어가며 문을 꼭 닫은 안금여가 성연에게 말했다.“성연아, 조금 전에 강명재 무릎이 꺽어지게 했던 물건을 보여다오.”성연은 할머니 안금여가 자신을 몰래 불러서 뭘 하시려나 하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은침을 보시려고 한 거였다.이 일을 숨길 수 없음을 이미 직감한 성연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할머니의 요구는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은침 일부를 손목에 붙여 놓고 있어서 그 순간 재빨리 꺼낼 수 있었다.성연은 손목에 둘러싸고 있던 은침을 꺼내어 할머니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할머니, 제가 침구술에 관해 좀 배웠어요. 전문가까지는 아니지만요. 여기 보세요.”너무 많이 노출시키지는 않은 채 적당히 숨기면 되리라 싶었다.안금여도 이 방면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성연이 속이려 마음먹는다면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성연의 손목에 싸인 은침을 본 안금여는 아주 신기하게 여겼다.그러다 갑자기 다시 고개를 들어 성연에게 물었다.“그날 밤 네가 침술로 날 구한 거지?”그때 성연에게 물었지만, 이 아이는 인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안금여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어찌 되었던 이 아이는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았고, 매사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가.‘말하고 싶지 않다면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게지.’그래서 안금여는 강요하지 않았다. 만약 끝까지 추궁한다면, 성연이 이 침으로 자신을 두 번이나 구했다는 사실 외에 또 무슨 추궁할 것이 있겠는가?이번에는 성연도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할머니, 그때는 저도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할머니에게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눈 딱 감고 한 번 해봤어요. 그런데 할머니, 이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성연의 꼬인 말투에 불안한 기색이 다소 묻어났다.무진은 안금여 만큼 속이기가 쉽
마침 회사 내에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던 무진이 일을 마무리 짓자마자 바로 달려왔다.고택에 도착한 다음에야 무진은 강명재가 한 짓을 들었다.강명재가 전혀 조심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미쳐 날뛰었다는 사실에 무진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당숙이 이런 짓까지 하다니요. 설마 둘째, 셋째 일가에서는 지금까지 받은 경고로도 아직 부족하다는 말인가요?”강상철, 강상규 두 할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것만 해도 무진이 만만치 않음을 강명재가 깨닫게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만약 저들이 더 이상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무진은 정말 자신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애초에 저들의 수작에 놀라 심신이 약해진 할머니 안금여가 입원을 하게 되자, 무진이 강일헌의 일에 손을 대었다.비록 강명재가 그럴 듯하게 연기한다 해도 이 일에 대해 모두 아주 잘 알고 있다.감히 고택에 와서 소란을 피울 정도로 간이 클 줄은 몰랐다.‘하, 이러면 안되지.’둘째, 셋째 일가가 계속 제멋대로 굴게 둔다면 할머니 안금여가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이다.무진이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안금여가 옆에서 충고했다.“무진아, 이번에 진짜 시끄러워지면 분명 강씨 집안이 꽤나 큰 격랑이 일 게다. 강명재가 그 돈을 배상하겠다고 하니,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여기서 그만두자꾸나.”안금여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모두 회사를 위해서이다.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해 흔들리게 해서는 안된다.회사를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던 무진이다.조금만 부주의해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반대로 무진은 이것저것 꺼리는 게 그렇게 많지 않았다.무진은 지금 고요한 강씨 집안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이다.할머니 안금여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무진이 입술을 오므린 채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놓아줄 수는 없어요.”할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만약 강명재가 이곳에 와서 행패를 부렸는데
성연도 옆에서 안금여를 따라 무진을 설득했다.“이왕에 손을 쓸 타이밍이 아니라면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때요?”성연은 안금여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지금 둘째, 셋째 일가에서는 큰집의 허점이 노출되기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저들에게 약점을 잡혀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기어코 그걸 빌미로 해서 시끄럽게 할 것이다.이런 가족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없었지만, 이런 암투들은 숱하게 겪었던 성연이다.이런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진은 우선 참고 견디는 것이 좋을 터이다.결국 고집을 꺽을 생각이 없던 무진은 절충안을 제시했다.“이렇게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돈이야 들어오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겁니다. 오늘 이후로 강씨 집안의 어떤 사업도 맡을 수 없을 테니까.”무진이 생각하기에, 경찰에 고발하지 않고 경찰이 이 일에 직접 개입하도록 한 것은 강일헌에 대한 자비였다.누가 앞에서 지나치게 날뛰라 했는가? 무진도 더 이상 그들의 사정을 봐 줄 생각이 없었다.만약 성연과 할머니 안금여가 지금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 강일헌은 구치서에 구금되었을 터였다.무진의 해결 방식이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경찰에 고발하는 것보다 나은 편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 앞으로 저희가 없으면 집사를 불러 곁에서 할머니를 돌보게 하세요. 다른 사람이 조그만 틈도 타게 해서는 안 돼요.” 마음을 놓지 못한 무진이 연거푸 당부했다.그들 모두 각자의 일이 있어서 언제나 안금여의 곁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기에 경호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었다.둘째, 셋째 일가 쪽은 하나 같이 삐뚤어진 마음에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다.걸핏하면 역겨운 일을 저질렀다.그로서도 둘째, 셋째 일가의 두꺼운 낯짝은 정말 막을래야 막을 수가 없었다.“아까 네 고모도 여기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앞으로 둘째, 셋째 일가에서 왔을 때, 너희들이 없으면 절대 문 열어 주지 말라고 말이다.” 강명재의
강일헌이 해고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비즈니스계에 쫙 퍼졌다.앞으로 비즈니스계에서는 강일헌의 영향력이 없어졌다고 할 것이다.강일헌 스스로 독립해서 또 성과를 내지 않는 한 발을 붙이기는 힘들게 되었다.그러나 강씨 집안의 비호 없이 제대로 사업을 할 수나 있을까?지금 강일헌은 빈털털이 신세이지만 강무진은 강씨 집안의 실권자이다.WS 그룹의 명맥을 무진이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그러니 지금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면 정말 멍청한 것이다.무진의 눈치를 보느라 강일헌과 같이 합작할 엄두를 내는 회사는 없을 터였다.비록 스스로의 힘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한들 WS 그룹에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이 소식은 업계에서 숱한 의론을 불러일으켰다.“강무진이 이번에 독하게 손을 쓴 거겠지? 강씨 집안 둘째, 셋째 일가의 두 어른에, 두 당숙에 이어서 다음은 누구일까?”“찌라시에 따르면, 지난번에 강씨 집안 안 회장이 입원한 게 바로 둘째, 셋째 일가에서 벌인 귀신 소동 때문이라는군. 강무진이 이걸 참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아니 연로한 집안 어른에게 손을 쓰다니, 둘째, 셋째 일가가 확실히 좀 지나쳤구만. 내가 보기에, 강일헌은 그래도 싸.”“강일헌이 회사에 남아 있었어도 아무런 실적을 내지 못했을 걸. 해고된 게 정상 아니야? 손에 물 한 방울 묻혀 본 적 없을 재벌 도련님이 서민의 고통을 체험하게 됐군.”단톡방에서 이런 글을 접한 강일헌은 하마터면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이 인간들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분명 강무진이 집안 어른의 만류를 듣지 않고 사정없이 칼을 휘두른 게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이를 악문 채 화면의 글자들을 주시하던 강일헌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막 아래층으로 내려오다 그 모습을 목격한 강명재도 자연히 소식을 들었다.하지만 강무진의 의기양양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강명재는 아들 강일헌을 달랬다.“넌 아직
등교할 시간이 되자, 그동안 강명재와 강명기의 기이한 행동들을 떠올리던 무진은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성연의 등하교를 직접 챙겼다.예쁜 외모와 뛰어난 실력 때문에 성연은 학교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게시판에는 온통 성연을 찬양하는 글로 도배된 성연의 팬 까페도 있었다.성연이 어젯밤에 우연히 이 게시판을 보게 된 것뿐 아니라 무진 역시 보게 되었다.그 사실이 신경 쓰인 이 남자는 계속 성연을 주시하며 교문까지 따라올 기세다.학교 입구까지 따라온 무진이 성연의 옷 주름을 잡아서 펴주며 신신당부하였다.“저녁에 내가 너를 데리러 올 테니까 학교에서 얌전히 기다려.”성연이 실실 웃으며 괜히 약 올리듯이 물었다.“질투해요?”무진이 덤덤한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뭐 그 정도까지는.”이제 막 사춘기에 이른 남자애들쯤이야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무진은 성연이 자신을 의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성연이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건 자신이 절반은 이겼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굳이 이제 갓 성년이 된 남자애들을 신경 쓸 필요까지야.성연은 무진의 말을 믿지 않았다.어젯밤 게시판을 본 무진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지금 곧 죽어도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의지?누구는 질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질투의 화신 그 자체인 남자는 매번 한참이나 자신이 달래야 할 정도다.성연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괜한 소리 하지 마요. 내가 무진 씨 질투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무진은 즉각 성연의 말에 순종하며 눈에 애정을 가득 담고 말했다.“질투나, 질투가 난다고. 그러니 얌전히 내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성연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무진 성연의 이마에 뽀뽀할 생각이었으나, 학교 앞인 점을 고려해서 간신히 자제했다.성연은 차에 올라탄 무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후에야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성연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해 왔다.자신의 실력을 드러낸 이후 학교에서 성연의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슈퍼카에 탄 남자의 옆모습이 찍혔다.사진을 찍은 여시화는 즉시 사람을 시켜 무진의 신분을 조사했다.옆모습만 찍혔지만 돈만 좀 주면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여시화는 바로 무진의 진짜 신분을 알 수 있었다.조사한 보고서를 보던 여시화는 자신의 눈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의심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오늘 아침 송성연과 함께 있던 사람이 뜻밖에도 현재 강씨 집안의 실권자, 강무진이었다.여시화는 자기 집 정도만 해도 돈이 아주 많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강씨 집안과 비교하자면 구우일모에 불과할 뿐이다.강씨 가문은 북성에서 최정상에 위치한 존재였다.그런 사람이 송성연과 관계를 맺다니.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사진은 송성연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강무진과 함께 했다는 증명서였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송성연 같이 시골에서 올라온 시골뜨기가 어떻게 강무진과 같이 있을 수 있겠는가?한 사람은 거대 기업의 대표이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여학생이다. 이 두 신분을 집어 던지고 보면 충분히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할 수 있다. 자신이 설명을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말이다.보고서를 보니 자신이 찍은 사진도 있었다. 여시화의 머리속에서는 이미 이 소식을 공개한 후에 펼쳐질 장면을 상상하기 바빴다.여시화가 입술 양가를 당기며 웃기 시작했다.그때 여시화의 절친이 곁에 다가와 그녀의 웃음을 보더니 조롱하듯이 물었다.“에, 오늘 무슨 일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설마, 진우진이 네가 보낸 과자 선물을 받았어?”여시화는 평소 무슨 일이든 금세 끓어올랐다 금세 식어버리는 작심삼일 유형이었다. 유독 진우진을 좋아하는 일만큼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그러나 진우진은 여태껏 여시화에게 거짓으로라도 웃어준 적이 없었다.자신은 왜 하필 그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아니.” 여시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진천우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송성연을 좋아했다.이번에 자신의 손에 들어온 증거라
여시화는 계획을 세운 후에 지체없이 송성연이 강씨 성의 대표이사와 이미 약혼했다는 소식을 게시판에 올렸다.또 일부러 성연이 여러차례 수상했던 일을 꺼내며 배후에 강무진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암암리에 헐뜯었다.어쨌든 모두가 알다시피 WS그룹을 소유한 강씨 집안은 북성 최고 명문가일 뿐 아니라 돈도 엄청나게 많다.상 두 개 사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다.그리고 평소 봤을 때, 송성연은 강무진과 관계가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어쨌든 강씨 집안의 실력이 거기까지 닿았다면 강씨 집안에 잘 보이려 아부하며 나서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텐데, 언제 송성연한테 기회가 온 것일까?애초에 성연이 그 많은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뒤로 가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게시판의 중상모략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지금, 누군가에 의해 진상이 밝혀진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 성연을 질투했던 아이들이 모두 게시판으로 몰려들었다.이 일에 대해 분개하는 아이들도 많이 생겼다.정말 돈으로 상을 샀다면 이건 엄청나게 불공평한 일이고 부정 행위다.이 일이 전해지자마자 사람들이 몰려 게시판이 다운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이 소식을 접한 많은 학생들이 잇달아 댓글을 올렸다.[이거야 말로 정말 악랄하고 타락한 행위야. 우리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애가 나온 거지?][SxL을 보니 좋은 게 아니야.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데 결국은 눈이 높은 거군. 자신이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과연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나 봐. 엄청 큰일을 하는 사람인데 말이지.][강씨 성의 대표이사라니, 그런 운이 왜 나에게 오지 않은 거야. 송성연이 도대체 어떻게 하늘보다 더 높은 강씨 대표이사와 연결된 건지 정말 의심스러워.][위 댓글들 관심사가 빗나간 거 아냐? 지금 우리는 송성연이 받았던 상들이 돈으로 산 건지 그 문제를 토론해야 해. 만약 돈으로 산 거라면 앞으로 시합에 참가할 필요가 없어. 그냥 집에 돈 있는 애들에게 상을 양보하는 거야.][산
게시판에 글이 올라온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모두가 알게 되었다.복도를 걸어 가던 성연은 누군가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손가락질을 한 후에는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저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다.성연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짙은 혐오감이 가득 차 있는 게 느껴졌다.최근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생각해보니, 저런 혐오의 시선을 받은 건 성연이 처음 이 학교에 와서 송아연에게 모함을 당했을 때였다.성연은 일이 좀 이상하게 됐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그렇게 망연한 표정을 한 채 교실로 돌아왔다.교실 안에서도 성연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당연히 모두 혐오스럽다는 눈빛들이다.성연이 자리에 앉자마자 화가 나서 눈이 빨개진 채 이를 갈며 휴대폰 화면에다 무언가를 맹렬히 두드리고 있는 주연정의 모습이 보였다.옆 자리의 기척에 고개를 든 주연정의 눈에 마침 성연이 보였다.주연정이 성연의 팔을 잡아 끌며 말했다.“성연아, 얘네들 좀 봐, 너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어! 한 마디로 개소리들이야.”성연은 주연정이 말하는 일이 방금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던 일과 관계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무슨 일이야?”주연정이 게시판의 글들을 성연에게 보여주었다.“이것 좀 봐!”게시판의 글을 보고서야 성연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났음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무진과의 약혼 소식도 사람들에게 퍼졌다.성연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올린 건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주연정이 이를 갈며 말했다.“사람들이 정말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네 뛰어난 성적을 보면 부정행위를 할 필요가 아예 없다는 걸 몰라? 평소 네가 쟤네들을 얼마나 도와줬는데, 양심은 모두 팔아먹었는지 저딴 소리나 하고 있어.”함께 성연을 욕하는 아이들 중에 평소 같이 공부하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