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철은 이제 막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그 기사가 나간 후로 사람들 모두 자신을 보면서 이상한 시선을 쳐다보았다.그러니 강상철은 속이 탈 지경이었다.그러나 자신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 게 분명했기에 뭐라 할 말도 없다.하지만 강상철 스스로는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그럼 애가 있는데 버리는 게 정상이야? 아무리 그래도 내 자식인데 내가 키워야지.’잘못이라면 지금 WS그룹의 실권을 큰 집이 잡고 있다는 것.만약 자신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면 아무도 찍 소리 못했을 터.이 일이 있고 나서 권력에 대한 강상철의 갈망이 더 커졌다.집에 돌아오면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고용인이 알리길 마누라가 뛰쳐나가 강씨 집안 고택으로 갔단다.강상철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최근 마누라를 나쁘게 대하지 않았지 않는가? 먹여줘, 입혀줘 또 뭘 어쩌라고?’‘평소에는 보기만 해도 설설 기더니, 지금 감히 큰집 형수 안금여를 찾아갈 생각을 해?’게다가 우리와 큰 집이 어떤 관계인지 몰라? 그런데도 큰 집으로 쫓아가서 안금여에게 말해? 이거 일부러 날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거 아냐?’화가 나는 게 먼저인지 창피한 게 먼저인지도 모르겠다.아내를 데려올 생각에 강상철은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강상철이 고택 입구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안금여가 자신의 자식을 족보에 넣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이 들렸다.강상철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그러나 사실 그랬다. 만약 형수 안금여가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어린 아들은 평생 조상들 앞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얼굴을 떠올린 강상철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안금여의 동조를 구하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형수님, 어찌 되었든 그 아이도 우리 강씨 집안의 혈육입니다. 만약 보고 싶지 않다면, 제가 밖에서 키우면 됩니다. 그러나 이름은 제 성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강상철은 원래 이 사실을 좀 더 오래 숨겨 둘 생각이었다.아이가 좀
아래층에서의 해프닝이 끝난 후에야 운경과 무진이 위층에서 내려왔다.두 사람은 계속 위층에 있었다.다만 강상철의 처가 왔다는 말에 안금여는 두 사람을 위층으로 올라가 기다리게 했다. 동서의 감정이 격해져 있을까 걱정한 까닭이다.사실 아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두 사람도 이미 훤히 알고 있다.운경이 소파에 앉으며 냉소를 지었다.“어린 사생아를 데리고 들어와서는 제 권리 챙기려고 들 거 아니야?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듣고 있던 무진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이건 아마도 흔치 않은 기회일 것이다.‘사람을 시켜 둘째 할아버지가 숨겨 둔 그 여자를 좀 부추기면 어떨까? 그리고 일을 더 키우게 하는 거지.’‘강상철이 약점을 노출시킨 이 드문 기회를 최대한 잘 이용해야겠지?’요즘 둘째, 셋째 작은 할아버지 쪽에서 하는 일들이 갈수록 말이 아니다.주주들도 할아버지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이 기회를 이용해서 큰 판을 하나 벌여 주는 게 맞겠지?’무진은 자신의 계획을 운경과 안금여에게 알렸다.든든하게 일을 처리하는 무진으로 인해 운경과 안금여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처리해. 지금 강상철은 궁지에 몰린 토끼야.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어.” 이 일은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강상철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만약 무진이 알았다면 진즉에 이 일을 폭로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고.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더 커지도록 무진이 저들 배후에서 바람 넣는 일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강상철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알았어요.” 자신을 걱정하는 운경의 마음을 잘 안다는 뜻으로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진아, 네가 무척 신중하니 이 할머니는 마음 놓고 있으마. 하지만, 너도 조심해. 절대 강상철 같이 그런 허튼 짓을 해서는 안돼. 만약 성연이에게 미안한 짓을 한다면 성연이가 아니라 내가 널 가만 안 둘 거야.”안금여가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머니 안금
강상철의 내연녀 이름은 조미홍이었다.이름도 촌스럽고 출신도 별로인데, 얼굴은 예쁘게 생겼다.그렇지 않았으면 강상철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말이다.최근 몇 년 동안 외부에 숨겨진 존재로 지내는 게 조미홍은 무척 억울했다.그러던 차에 자신의 존재가 드러났으니 당연히 강상철에게 자신의 지위를 요구하고 나섰다.저녁에 강상철이 왔을 때, 아이는 벌써 조미홍이 재운 상태였다.아이 이름을 족보에 올리는 것에 대해 강씨 집안에서 반대한다는 사실을 강상철이 조미홍에게 말했다.조미홍을 무척 아끼는 강상철은 저들 모자가 거주할 곳으로 고급스러운 곳을 마련해 주었다.그러나 모름지기 사람이란 만족할 줄을 모르는 법.‘내 남자가 분명한데, 뭐 때문에 내가 떳떳하게 나설 수 없다는 말이야?’조미홍은 강씨 집안에서 반대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울며불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몇 년이나 아무런 명분도 없이 당신 곁에 있는 건 그렇다 쳐요. 하지만 우리 아이는요? 어려서부터 당당하게 제 아버지 이름도 못 밝히고,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신 아들에 대해 뭐라고 하는 지 알아요? 당신 아들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 호래자식이래요. 그런데도 참을 수 있어요?”조미홍은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자랑했다.그런 그녀의 우는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기 충분했다.바로 마음이 아파온 강상철이 조미홍을 품에 안으며 위로했다.“지금 우리 세 가족이 함께 잘 지내고 있잖아? 괜찮아.”“나는 괜찮아요. 당신의 위치도 잘 알아요. 또 부인이 있다는 것도요. 나는 이 모든 것들 다 감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까지 조상들 앞에 못 서게 하다니. 우리 모자 이렇게 살아서 뭐해요? 이건 나더러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조미홍이 강상철의 품에서 몸부림쳤다.그녀는 강상철의 심리를 잘 알았다.그렇지 않으면 강상철 곁에서 이토록 오래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이 남자를 어떻게 주물러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그래서 매번 강상철은 그녀에게 꽉 잡혔다.강상
무진은 성연에게 강상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성연은 방금 알게 된 척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무진은 또 성연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었다.성연은 무진이 걱정 없이 대담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사실 이 일은 서한기를 시켜 한 것이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 성연이 제일 잘 알 밖에.하지만 무진이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그렇지 않으면, 배후에 연루된 일이 정말 많아지게 된다.그러나 성연도 마찬가지로 좀 걱정스러 자신의 추측을 입 밖으로 말했다.“둘째 작은 할아버지처럼 악랄한 사람이 속아 넘어가겠어요?”둘째 할머니의 일은 성연도 좀 들었다.자신의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강상철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는데 애정은 없다 해도 정은 남아 있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하지만 강상철은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의 사생아를 족보에 넣으려 했다.이것도 강상철이 이용할 속셈인지, 아니면 또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그러나 자신의 조강지처에게 이처럼 모질게 대하는 사람이 누가 또 있을까?무진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로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그 사생아가 늦둥이라, 둘째 할아버지가 무척 애지중지하는 모양이야. 그동안 둘째 할아버지가 그 모자 두 사람을 위해 꽤나 돈을 썼어. 이 일이 커지면 주식도 받아낼 수 있을 지 몰라. 그때 다시 핑계를 대서 둘째 할아버지를 몰아붙일 거야. 반박할 이유를 못 찾게 말이지.”무진은 남들 모르게 강상철에 관한 스캔들의 내막을 철저히 분석했다.강상철의 내연녀가 상당히 수완이 좋다고 하지만 무진이 보기엔 꼭 그렇지도 않았다.그래도 둘째 할아버지 강상철의 성격을 좀 안다고 할 수 있다.강상철은 사람들과의 사이에 아주 높은 담을 쌓는 사람이다. 만약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에게서 이득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 점으로 볼 때, 이 두 모자에 대해 강상철의 태도는 아주 각별한 것이다.조사 중에 손건호가 또 하나 재미있는 일을 알아냈다.예전에
최근 시험이 많아져 성연은 하루하루 바빠지기 시작했다.매일 늦은 시간까지 복습해야 했고, 또 짝지 주연정을 위해 학습자료를 정리했다.시험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니 성연으로서 쉽지 않았다.그러나 연정에게 약속했던 일을 성연은 조금도 빠뜨리지 않았다.성연은 쉽게 약속하지 않지만 일단 약속했으면 반드시 지켰다.지금 각 과목 자료들 절반쯤 정리한 상태다.연정의 실력에 맞추어 만든 것이다.이 자료들이 있으면 연정의 성적도 많이 오를 것이다.성연은 사실 친구가 많은 편이다.친구 사이의 의리를 중시하는 성연은 친구로 인정한 사람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 도운다.성연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개성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안다.교실에 들어온 성연이 공책을 연정에게 건넸다.“이건 자료 일부인데, 다른 부분은 아직 정리 중이야. 이거 먼저 봐. 그럼 시험에 맞출 수 있을 거야.”연정이 성연에게 다가가서 꼭 껴안았다.“성연아, 너 정말 고마워. 흑흑흑, 나 정말 너한테 어떻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연정의 접근을 거부하지 않은 성연이 연정의 코를 꼬집으며 말했다.“진짜 나한테 고마우면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 봐. 내 성의를 절대 저버리지 말고.”자료를 끌어안은 연정은 마치 보물을 안고 있는 모양새다.“열심히 할게, 성연아.”“노력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행동으로 하는 거야.” 성연이 연정의 이마를 가볍게 톡 두드렸다.연정이 입술을 꽉 깨물며 다짐했다.“오늘부터 드라마, 소설 더 이상 안 볼 거야. 덕질도 끊고 열심히 공부만 할 거야.”사생결단하는 듯한 연정의 모습에 성연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하지만 1년가량 남았으니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가면 누리게 되는 것들이 달라질 거야. 꼭 힘내!”성연은 반 학우들보다 조숙한데다 사회도 한 발 더 일찍 발을 들였다.지금 이 학생들의 단순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성연은 잘 알았다.어떤 아이들은 부잣집에서 자라 부모의 지나친 애정에 둘러 쌓여 있다.회사도
그런데 막 몸을 돌리는 성연의 눈에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폭이 넓은 옷을 걸친 진미선의 아랫배가 살짝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성연이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자신이 본 게 틀림없었다.‘임신했네.’성연의 눈빛을 알아차린 진미선은 매우 불편한 듯 보였다.두 손으로 아랫배를 가린 채 눈도 살짝 피했다.성연이 물었다.“임신했어요?”잠시 망설이던 진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된 이상 성연을 속일 방법이 없었다.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성연이 눈에 조롱의 빛을 띄며 말했다. “어쩐지 결혼할 때 그렇게 급하더라니. 배를 보니 한 4개월은 되었겠네요?”의술을 아는 성연이 대략 시간을 계산해 보니 틀림없을 것이다.애초에 외할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다급히 서두르던 진미선의 모습을 생각하니 진짜 가소로웠다.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진미선은 좀 난감함을 느꼈다.그러나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성연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알았다.그러므로 이 일을 꼭 성연에게 말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성연은 절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니까.진미선이 이를 악문 채 사건의 경위를 말했다.“애초에 속였어. 태아 성별을 검사했는데 검사 결과, 여자아이야. 그런데 왕씨 집안에서 찬밥 신세야. 내가 이번에 너를 찾아온 건 네가 나를 위해 방법을 찾아 주길 바래서야. 강씨 집안이 왕대관과 합작할 수 있도록 해 줘, 성연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라도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여동생을 봐서. 그렇지 않으면 네 여동생은 태어나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울 거야.”말하는 동안 진미선은 성연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눈물도 흘렸다.왕대관의 모친,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남존여비 사상의 유형으로 심각할 정도였다.시어머니는 딸은 밑지는 장사라고 생각했으며 아들만 최고였다.검사가 나온 날, 시어머니는 하루 종일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그녀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딸을 낳는 건 밑지는 장
말할 때마다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는 것을 본 성연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성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진미선 여사님, 나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은 안 해봤어요?”부모의 보살핌 없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성연의 생활이 좋을 수나 있었겠나?그 당시 진미선은 혼자 자유롭게 즐기며 생활했다.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생각이나 했는 지 모르겠다.물론 어찌 되었든 자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모든 것에 대해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진미선이나 송종철 등과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그런데, 저들은 항상 자신만 싫어한다.분명히 똑같은 자식인데 왜 그렇게 차별을 하는 거지?성연의 말에 진미선은 순간 목이 막혔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진미선을 보던 성연은 저도 모르게 친부 송종철이 떠올랐다.지금 두 사람 모두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아 보였다.그리고 자신은 두 사람의 잘못된 감정으로 인해 생겨난 쓸모없는 존재일 뿐.‘애초에 버렸으면서? 굳이 다시 또 이용한다고?’‘그리고 엄마라면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몰라.’‘설마, 나에게 일말의 부채감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야?’할 말이 없는 진미선을 쳐다보다 성연이 바로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다른 쪽으로 걸어가던 성연의 맹렬했던 기세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그저 망연자실한 느낌만 남았다.별안간 성연의 가슴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솟구쳐올랐다.진미선의 행동에 마음이 상한 게 분명했다.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지친인데 성연이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사실 여태까지도 성연은 진미선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다.적어도 송종철 같이 지나치지는 않았으니까.외할머니가 자신을 키우도록 생활비를 주기도 했으니까.방법이 없었든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든 강씨 집안에 보낸 것에 대해서도 따지지 않고, 속으로는 진미선의 좋았던 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한바탕 코미디 같이 느껴질 뿐이다. 아무도 자
성연은 멍하니 넋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평소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의 성연이 이렇게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은 아주 보기 드물었다.집사가 다가와서 관심을 주며 물었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세요?”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대답한 성연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몸을 이불 속 깊숙이 파묻었다. 안색이 여전히 창백해 보였다.마음속의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이런 불필요한 감정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때로는 이런 자신이 너무 싫었다.‘저 두 사람의 본 모습, 이미 다 알고 있었잖아? 세상이 냉정하다는 것도 알았잖아?’‘그런데 왜 아직도 저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거야?’성연은 마음이 극도로 힘들었다.진미선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이런 말은 언제나 자신을 일깨운다.자신은 쓸데없는 존재라는 사실을.비록 지금은 잘 살고 있다 하더라도 저 두 사람이 자신에게 준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좌절감을 느끼며 생각해 보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방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뒤적거렸다.주방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집사가 바로 달려왔다.눈 앞의 장면에 집사가 옆에서 말했다.“사모님, 뭐든 찾는 게 있으면 나에게 알려주세요.”“혹시 집에 술 있어요?” 성연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평소 무진이 술을 자주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술을 찾을 수가 없었다.냉장고에는 평소 성연이 즐겨 마시던 우유와 탄산수 몇 병이 다였다.성연은 지금 자신의 신경을 마비시킬 만한 무언가 시급했다.‘당연히 술 최고지.’정신을 잃으면 아마 이 고통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성연의 말을 들은 집사의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사모님, 술을 드시기에는 아직 이르니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다시 이야기해요.”집사는 성연에게 함부로 술을 마시게 할 수 없었다.만약 성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분명 자신이 책임져야 할 터.그런 위험은 자신이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다.“날 ‘사모님’
곽연철은 엠파이어 하우스에 와서 성연을 찾았다.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성연과 예전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곽연철을 본 성연도 많이 놀랐다.“왜 나한테 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여기 있을 것 같아서 바로 왔어요.” 곽연철과 성연의 관계도 마치 친구 같았다.성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집사가 차와 과일을 가져왔다.곽연철은 성연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갑자기 곽연철이 말했다.“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결혼식이 며칠 뒤 유럽에서 거행될 거예요. 보스하고 강 대표가 갈 때 저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곽연철과 목현수도 좋은 친구다.예전에는 같이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이 끊어졌다.하지만 목현수가 청첩장을 보냈다.어쨌든 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이니 곽연철은 반드시 가야 했다.성연이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알았어, 같이 갈 거야.”곽연철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목현수가 그런 성격이라서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결혼하네요.”성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야. 하지만 미스 샤넬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현수 사형과 함께 있으면 아주 잘 어울려.”‘아마도 나중에 결국 내 마음을 알게 된 사형이 미스 샤넬과 결혼을 선택했을 거야.’‘이전에 사형이 내게 결혼은 그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당연히 좋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목현수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곽연철도 웃으며 대답했다.성연은 문득 고개를 들고 곽연철을 보았다.성현이 빤히 쳐다보자 곽연철은 좀 불편했다.“보스, 왜 그래요?”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지금 현수 사형도 이미 배우자를 찾았는데, 이쪽도 좀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이 말을 들은 곽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결혼은 인연이 있어야 하죠. 결혼하고 싶다고 바로 결혼할 수 있어요?”“내가 보기에는 무슨 인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럴 마음이 없을 뿐이야. 그리고 다음에 서한기를 만나면 잊지 말고 반드시 재촉해.”
조수경도 소지연을 쳐다보았다.소지연의 낭패한 모습을 본 조수경은 비웃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보다 소지연의 처지가 더 비참한 건 분명해.’‘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더 초라해졌지.’‘나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기에 괜찮아. 앞으로 계획이 성공한다면, 나는 더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있어.’‘이번 생에는 소지연의 처지는 바뀌지 않아.’소파에 앉은 이상효가 연계진을 향해 말했다.“성함은 말해 주셔야지요!”‘우리 이씨 가문은 이름 없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듣보잡 졸개라면 만날 필요 없어.’그 말을 듣자, 연계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연씨 가문은 들어보셨지요? 강씨 가문 때문에 20년 전 망했던 연씨 가문요!”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연계진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이상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표정이 종잡을 수 없게 변해서, 연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연씨 가문의 연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상효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예나 지금이나 연씨 집안은 강씨 가문의 원수지.’‘지금 연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고 강씨 가문은 떠오르는 해와 같아. 바보라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당연히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으니까 당신을 찾아온 거지요.” 연계진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잠시 멈칫하던 이상효가 웃으면서 말했다.“저와 연 선생님 사이에는 얘기할 게 별로 없을 텐데요.”이런 대답을 들었지만, 연계진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우선 조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 형님이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겠지요. 강씨 가문이 지금 대단하다는 건 맞지만. 강무진이 당신을 도울까요?”이상효는 좀 쑥스러워하면서 소지연과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이씨 가문에 그야말로 치명적인 재난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연계진이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