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무진이 회의를 소집했다.회사 내 모든 임원과 주주들이 모였다.회의실에 도착한 무진은 강상철과 강상규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전히 안하무인의 모습이었다.냉소를 흘린 무진이 주주들이 보는 앞에서 회계장부를 강상규 앞에다 떨어뜨렸다.“강상규 이사님, 이 장부에서 몇 군데 이해가 안 되는 곳이 있더군요. 강 이사님께서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왜 장부의 앞쪽과 뒤쪽의 숫자가 맞지 안 맞는지.”“회계가 잘못되었나 보군.”강상규는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책임을 깨끗이 내팽개쳤다.“이렇게 많은 손해를 끼쳤으니 이곳 지사는 존재할 필요가 없겠군요.”무진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무진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강상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원래 이번 일을 얼렁뚱땅 넘길 생각이었다. 또 설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무진이 자신을 몰아붙일까 하면서.그러나 강무진 이 녀석은 전혀 자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강상규는 모호하게 대답했다.“회계, 재무가 잘못되었으면 회계재무 팀만 소집하면 돼지, 무슨 이유로 사람들을 이리 다 불러놓고 일을 크게 벌이는 거냐?”무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이 건에 대한 진상은 강 이사님께서 아주 잘 아시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거짓됨이 있다면, 더 이상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무진은 일부러 강상규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이 참에 강상철을 함께 쳐서 더 이상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경고할 생각으로.모든 정황이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아주 명확하게 알아차릴 정도로.저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무진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무진의 말을 들은 강상규의 입에서 멋쩍은 듯한 허음, 소리만 흘러나왔다.많은 주주들 앞에서 어린 손자로부터 질책을 받은 강상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게다가 진짜 진상을 조사한다면 드러날 증거가 산더미다.얼마 전까지 본가에는 회사를 맡아 경영할 이가 안금여 하나뿐이라고, 그러니 조만간 회사가 자신들에게 넘어올 것이라고 여겼다.그래서 일을
“이렇게 앉아서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지.” 강상철은 요즘 너무 기세 좋게 날뛰는 강무진에게 교훈을 좀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안 그러면 자제할 줄을 모를 것이다.또 이 두 늙은이는 이미 쓸모 없는 줄로만 생각할 테니.“그런데 형님, 무진이 놈 지금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강상규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진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지난번에 자기 쪽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잃고 보니 강상규도 두려워졌다.잘못 건드렸다가는 어쩌면 오히려 저 바닥으로 떨어질 지도 모른다.강무진을 건드리는 건 확실히 어느 정도 위험이 있을 터였다.“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강무진 그 놈을 못 건드리면 그 계집애에게 손을 써서 그 놈에게 경고를 줘야지. 강무진이 가장 아끼는 게 그 계집애라고 하지 않았어?” 강상철이 콧방귀를 뀌었다.‘강무진 그 놈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그 놈 대신 송성연 그 계집애에게 칼을 빼면 돼지.’‘강무진이 그 계집애를 아낀다고? 그럼 아끼는 사람이 다치는 걸 두 눈 멀쩡히 뜨고서 지켜만 봐야하는 경험을 하게 해 주지.’ “맞습니다. 형님 방법이 정말 좋은 것 같군요.” 강상규가 강상철의 생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쩔 수 없다면 강무진 그 놈에게 쓴맛을 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강무진 그 놈이 두 번 다시 자신들에게 이런 짓 하지 못하도록.“너는 믿을 만한 놈들 몇 놈 찾아봐. 이 일을 하는데 절대 착오가 있어서는 안돼.” 강상철이 소리 내어 당부했다.강무진 그 놈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지금 무슨 일이든 매사 조심하고 신중해야 했다.“형님, 걱정 마십시오. 계집아이 하나 처리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강상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무진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보고 싶어 이미 기다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옛말에 생강은 늙을 수록 맵다는 말이 있다.강무진 같은 어린 놈들은 한평생 자신들
누군가 뒤에서 강제로 차에 실린 성연의 입과 코를 막았다.코를 찌르는 냄새가 확 풍겼다.성연은 속으로 이 사람들 꽤나 신중하다는 생각을 했다.여고생 한 명을 상대하는 데도 이렇게 무지막지한 수단을 쓰다니.수건의 냄새에서 미약 성분이 맡아졌다.하지만 체질적인데다 사부님의 훈련 덕에 어떤 약물도 성연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성연은 경거망동하지 않은 채 미약에 취한 척했다. 이 남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지 볼 생각에.그 시각, 학교 앞 골목에서는 운전기사가 성연을 기다리고 있었다.하교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무런 연락 없이 성연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사리가 분명한 성연은 평소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미리 전화를 걸어 알려주며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어쩌면 무슨 사정이 생겨 좀 지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기사는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렸다.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결국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운전기사는 먼저 학교 경비실로 달려갔다.학교에 방과 후 행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경비원이 말했다.“요즘 무슨 행사가 있어요? 학생들도 벌써 다 돌아갔는데. 무슨 일입니까?”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운전기사가 성연의 이름을 말하며 경비원에게 보았는지 물었다.말을 듣고 있던 경비원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상 많이 받은 그 여학생 말하는 겁니까?”지금 성연은 북성남고의 유명인사였다.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직 경비원조차도 다 아는 것을.지금도 학교 입구의 벽에는 성연의 사진이 걸려 있을 정도다.경비원도 당연히 성연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지금 운전기사는 성연을 기다리느라 걱정이 되어 죽을 지경이다.여기서 경비원과 친한 척 말 나누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하지만 경비원의 말을 들으니 성연에 대해 꽤 잘 아는 듯해 보였다.경비원에게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희망을 가지며 운전기사가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네, 우리 아가씨가 맞습니다. 보셨습니까?”골똘히 기억을 더듬던 경비원이 말
이 일로 운전기사를 탓할 수는 없었다.무진은 사람들에게 좀 더 물어볼 것을 운전기사에게 지시했다.전화를 끊은 무진의 얼굴은 얼음으로 뒤덮인 듯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손건호는 무진에게서 이처럼 차가운 표정을 보기는 처음이었다.조심스럽게 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보스, 무슨 일이십니까?”“성연이 사라졌어. 학교 근처의 CCTV를 찾아서 누구 짓인지 알아봐. 간도 크게 감히 내 사람을 데려가?”무진의 어조가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드러내고 화를 내지 않는 편인 무진이지만 그의 이 표정은 보기만 해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손건호가 몸을 떨며 대답했다.“네.”무진은 내심 성연이 절대 이유없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성연은 틀림없이 미리 전화를 걸어 알렸을 것이다.‘절대 말 한 마디 없이 떠났을 리가 없어.’그렇다면 남은 유일한 해석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것인데.무진이 계속해서 성연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잠시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안내 멘트만 들릴 뿐이다.꽉 움켜쥔 그의 손에 마치 핸드폰이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마치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무진의 심장을 꽉 쥐어짜는 듯했다.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아파왔다.아직 떠나지 않았던 손건호가 무진진의 표정을 보고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건넸다.“작은 사모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지 잘 아시잖습니까? 별일 없으실 겁니다.”눈을 들어 손건호를 쳐다보는 무진의 표정이 좀 힘들어 보였다.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빨리 가봐.”“네.”손건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즉시 사람을 보내 조사하게 했다.그 결과 성연이 납치된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번호판을 가린 검은색 승용차였다. 납치범들이 똑똑하게도 아주 일반적인 차를 골랐다.대도시 북성에서 이런 차들은 비일비재했다. 군중 속에 묻히면 흔적도 찾기 힘든 그런 차종.그러나 그 승용차의 창문에 구멍이 난 듯 보였다.
성연은 버려진 폐공장으로 끌려갔다.곳곳에 보이는 폐자재와 먼지들을 보면 버려진 지 한참 된 것 같아 보인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성연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방금 들리는 소리로 봐서는 또 다른 차에 사람이 있는 듯했다. 분명 옆에 벽으로 구분된 다른 공간이 있을 것이다.인원이 꽤 많은 듯했다.하지만 그녀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단 두 명.성연이 그리 탄탄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연약해 보이는 여자애로 생각해서인지 말을 조심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귓가에 거친 음성들이 들려왔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 분을 건드려서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게 만든 거죠? 어린 계집애 하나 때문에 우리 애들 거의 다 풀면서까지 이럴 필요 있어요?”한 사내가 의문을 드러내었다.그러면서 또 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말라비틀어진 듯한 모습을 보니 이렇게 많은 인원을 움직이게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뭘 그리 많은 걸 신경 써? 돈 받으려면 시키는 대로 해.” 다른 사내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높은 자리에 있는 양반들이야 언제나 손이 큰 것을.그 양반들의 한 번이면 자신들이 여러 번에 해당할 정도이니.기꺼이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이유 같은 것 따지고 할 만큼 그는 심심하지 않았다.‘돈만 손에 넣으면 되는 걸 뭘 그렇게 많은 것을 따져?’“그나저나 그 분은 이 계집애를 어떻게 할 생각인 거지?”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고 여기에다 납치해 놓고는 끝이라고?’이때 다른 한 사내가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성연을 쳐다보았다.“어떻게 해도 좋아. 목숨만 남겨 두면 돼.”그 사내는 아직도 망설였다.“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시킬 정도면 이 계집애 신분도 대단하다는 말 아닙니까? 만일 우리한테 불똥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라고요?”그들은 평소 닥치는 대로 먹을 뿐이다.진짜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찍혀서는 안되었다.다른 한 사내가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내가 말했지? 좀 발전성이 있어보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윗 대가리들 머리 위에
두 눈에 망연자실한 빛을 띈 성연은 공포에 질린 듯한 모습 그대로였다.두 명의 남자를 보자마자 놀란 듯 성연이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뭐 하려는 거예요?”성연의 손에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한 두 사내는 성연의 몸짓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계속 다가가 성연에게 손을 대었다.두 눈에 가득 찬 탐욕과 욕망이 그대로 드러났다.계속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나는 성연은 겁에 질린 듯해 보였다.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당신들 도대체 누가 보낸 거예요?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당신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야.”두 사내는 직설적으로 말했다.“네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면 말해 줄게.”말을 한 두 두 남자는 마치 성연의 무지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큭큭 웃었다.성연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손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면 당연히 쓰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온 목적은 누가 그녀를 납치하라고 시켰는지 알고 싶어서이니까.아니면 이 잔챙이들 몇 명의 실력으로 그녀를 어찌할 수나 있었을까.성연은 입술을 꽉 다문 채 다시 한번 노력했다.어쩌면 이 두 사람이 말을 할지도 모르지.성연이 코를 훌쩍이며 무척 슬픈 척 연기했다.“난 여태까지 다른 사람에게 원한 산 적도 없어요. 말해 줘요. 누가 시켰는지. 상황은 바로 알고 죽을 수 있도록요.”성연이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눈물을 닦는 척했다.서로 눈을 마주친 두 사내는 성연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여자를 조심스럽게 대할 마음일랑 이들에게 전혀 없었다.어차피 지금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으니.자신들 마음대로 어떻게 하든 상관없었다.의외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성연에게 알려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거구의 사내가 누런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예쁜아, 이 오라버니가 말하지 않았니? 네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면 가르쳐 준다고.”이마를 찡그린 성연의 눈에 혐오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성연이 계속 애원했다.“두 분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알아요. 말해 주세요. 속이나 시원하게요.”“아
성연의 경호원인 두 사람은 평소 밀착 상태로 늘 그녀와 함께 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연을 보호하기 위한 사부님의 안배였다.사부님이 직접 훈련시킨 두 사람은 성연 턱밑까지 따라오는 실력을 가졌다.서한기의 실력보다 뛰어나지만 평상시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성연에게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그렇게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게 했다.하지만 성연은 저들이 자신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저 둘의 사명이니까.두 경호원이 성연을 보고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성연도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세 사람이 모이자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바로 움직였다.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시정잡배 수준의 십여 명은 성연 같은 전문가 앞에서 정말 목불인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에게 제압당한 사내들이 모두 몇 명씩 한 꾸러미로 묶였다.경호원 중 하나가 어디선가 걸상 하나를 가져와 성연이 앉게 했다.성연도 사양하지 않고 걸상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눈앞에 무릎 꿇고 있는 사내들을 보면서 자백을 강요하기 시작했다.“말해봐, 나를 납치하라고 너희들을 사주한 사람.”자신의 납치를 사주할 만한 사람에 대해 성연은 정말 아무런 짐작도 되지 않았다.‘날 납치하게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라는 말이야?’단서가 없었다.고문을 해야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놈이 말했다. “그냥 네가 예쁘고 돈도 있어 보여서 너를 납치한 거다. 다른 사람의 사주는 없어.”저들이 한 이 말을 그녀가 믿을 리가.북성남고에는 예쁘고 돈 많은 학생들이 널렸다.죽기 살기로 자신을 노렸다는 게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그리고 학교 앞에서 자신을 납치할 때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건 저들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반증이다.분명히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저들이 지금 배후의 인물을 자백하지 않는다는 건 아마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일 터.성연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으니까.“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말 안 해? 너
그 자리에 있던 사내들 모두 그 분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만약 실토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더 끔찍할 것이다.‘이런 채찍쯤은 모두 겨우 견딜 수 있어.’이를 악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눈앞에는 결국 어린 계집애일 뿐이다. 자신들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저들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 듯, 성연은 쉽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손의 동작에 힘을 좀 더 주자 채찍이 사내들의 몸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그리고 성연이 큰 소리로 위협했다.“너희들 잘 생각해. 만약 입을 안 열고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성연의 채찍에 맞으면 정말이지 너무 아팠다.뒤로 가자 진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람이 나왔다.바로 입을 열었다.“말, 말할 게요.”사내들 사이에서 하나의 음성이 흘러나왔다.성연이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좋아, 말해.”그녀의 채찍 아래에서 꽤나 오래 버틴 셈이다.이 놈들의 지구력이 그런 대로 괜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때 누군가 저지하려 소리쳤다.“너 미쳤어? 말하지 마.”그 분의 성격으로 봐서는 입을 여는 순간 돈을 못 받는 건 둘째 치고 뼈도 못 추릴 터였다.“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어요.”호소하는 사내의 음성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이런 아픔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못난 놈.”말리던 사내가 퉤, 하고 사납게 침을 뱉었다.성연이 냉소를 지으며 저들의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너희들 말하려면 빨리 말해. 너희들과 같이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하, 저렇게 졸렬한 연기라니.’성연이 말을 하는 동시에 저들의 몸에 채찍을 휘두르는 걸 잊지 않았다.의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부위가 가장 아플지 당연히 잘 알고 있는 성연이었다.‘저 사람들 곧 참을 수 없을 걸.’저들이 즉시 일어나며 말했다.“아가씨, 이야기 좀 해요. 제발 그만 휘둘러요.”성연이 턱을 치켜든 채 동작을 멈추었다.“좋아, 말해봐.”“네, 강상규 사장님이 당신을 납치하라고 우리를 고용했습니다.”사내가 바로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