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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겨우 헛방에서 지내라고

성연은 트렁크를 들고 송아연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아름답게 차려 입은 송아연은 걷는 것도 작은 보폭의 잰 걸음이었다. 낡은 교복의 성연은 한가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마치 구경 온 듯 조금도 궁색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성연의 모습을 힐끗 곁눈질하던 송아연은 속으로 비웃었다.

‘예쁘면 뭐해? 품격이라는 건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쓰레기는 쓰레기인 채 진흙탕에 있어야지. 이런 대도시는 그녀가 올 곳이 아니지.’

가슴을 꼿꼿이 세운 송아연은 좀 더 반듯한 자세로 걸으며 성연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스스로 창피하게 여겨 더 이상 여기 있을 낯이 없게 말이다.

하나하나 모두 화려하게 장식된 방들을 지나 마침내 송아연은 성연을 데리고 복도 끝에 가서 멈추었다.

송아연은 위에서 아래로 성연을 훑어본 뒤, 손을 뻗어 문을 힘껏 열었다.

헛방 안의 잡동사니들은 미처 정리할 시간이 없어 방 한쪽에 쌓여 있었고, 다른 한쪽 구석에 작은 침대 하나가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방이 밝은 편이라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부옇게 보였다.

바닥에 세워 놓은 트렁크 옆에 반쯤 기댄 성연은 헛방의 환경을 보고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팔짱을 낀 느긋한 자세로 송아연을 쳐다보았다.

가진 수를 다 꺼내 보이는, 이런 어린애 장난하는 듯한 얕은 생각은 그녀의 눈에 볼품없었다.

방안으로 머리를 내밀고 한 번 둘러본 송아연은 다시 성연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째 그녀가 기대했던 효과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송성연은 왜 저리 잘난 척을 하는 거야? 일부러 신경 안 쓰는 척하는 걸까?’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듯한 성연의 태도에 송아연은 화가 나 가슴이 답답해졌다.

“언니, 집이 꽉 차서 지낼 곳이 없네요. 섭섭하겠지만 아쉬운 대로 여기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겠어요.”

“집에 객실도 있지 않아?”

나른한 음성으로 묻는 성연은 송아연의 몸을 한 바퀴 휘돌던 시선을 아무런 기색 없이 다시 거두어들였다.

뒷짐을 진 송아연이 미간에 여자들 특유의 애교스러운 표정을 띄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썩 듣기 좋지 않았다.

“객실은 귀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곳이라, 아무나 사용할 수 없어요. 게다가 시골에서 온 언니에게 무슨 나쁜 생활 습관이라도 있어서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 아버지 체면이 깎일 거라고요.”

그녀는 이제 막 도시로 돌아온 성연이 송씨 저택 말고는 갈 곳이 없다고 단정했다.

그래서 헛방을 내준다 해도 성연이 꼬리를 흔들며 감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꼿꼿한 성질만 지녔을 뿐, 이렇게 넓은 북성에서 돈도 힘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주제에 말이야.’

‘게다가 쓰레기는 쓰레기 더미에 있어야지, 그런데 객실에 묵고 싶어?’

송성연도 자신이 어떤 물건인지 볼 생각도 안하고 말이야. 제가 어울리기는 해?

송아연은 턱을 치켜세우고 성연이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어…….”

음절을 길게 끌며 크게 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예상밖으로 트렁크를 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층, 송종철과 임수정 앞에 테이블에는 과일이 놓여 있었다. 하나같이 알이 굵은 앵두는 매우 비싸 보였다.

슬쩍 눈으로 한 번 훑은 성연은 바로 시선을 거두며 송종철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아연이 말이, 집에 내가 지낼 곳이 없어 헛방뿐이라고 하네요. 우리 엄마는 내가 도시에서 아빠랑 잘 지낼 거라고 했는데, 이게 소위 잘 지내는 거라고요? 그렇다면 저는 여기에서 지낼 수가 없겠네요.”

말을 하며 트렁크를 들고 현관 쪽으로 향하는 모양새가 전혀 농담 같지 않았다.

송종철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이 계집애가 자신에게 쓸모가 있지 않았다면, 이 집 어디에 저를 묵게 하겠는가?’

‘아직은 얼굴을 바꿀 때가 아니야. 성연이 강씨 집안에 시집가면…….’

“성연아, 아연이가 철이 없었구나. 네가 언니이니까 아연이랑 다투지 말거라. 아빠가 다시 방을 준비해 주도록 하마.”

송종철이 얼른 성연 앞을 막아섰다.

임수정도 옆에서 가면을 쓴 채 중재에 나섰다.

“아연이가 어릴 때부터 너무 예쁨만 받아 좀 과하게 행동할 때가 있어. 모처럼 언니가 생기니 장난을 치고 싶었나 보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렴.”

이 시골뜨기 계집애가 헛방을 비워낼 수 있다면 좋겠다. 돈 때문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쫓아냈을 임수정이었다.

두 사람의 능청스러운 태도를 보면서도 성연은 못 본 척했다.

“아연이 직접 와서 나를 부탁하지 않는 한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성연은 트렁크를 끌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송씨 저택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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