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인지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서 쫓겨나도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다 자란 지금은 다르다.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성연의 말을 들은 송종철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너…… 너는 정말 싹수가 없구나!”

성연은 그 말에도 아랑곳없이 몸을 돌려 자신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트렁크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제 방은 어디예요? 피곤해서 좀 쉬고 싶네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송종철은 이 큰딸이 더 싫어졌다.

그런데도 데려왔다. 그리고…… 지금 송씨 집안은 성연을 이용해 위기를 넘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마스크 팩을 쓴 채 피부관리를 하고 있는 계모 임수정과 피아노를 치고 있는 의붓 여동생 송아연이 눈에 들어왔다.

이 두 모녀는 예쁘장한 외모가 무척 닮았다.

특히 송아연은 상큼한 얼굴에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덕택에 고상한 분위기를 지녔다.

작은딸을 보는 송종철의 눈에 자랑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성연을 돌아보니, 낡아빠진 교복을 입고 온몸에 말로 표현 안되는 거친 기운이 넘실거렸다. 건들건들 책가방을 들고 저쪽에 서 있는 폼이 아주 비딱해 보였다.

둘을 비교해 보려던 송종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앞에 걸어가던 성연의 뒤에서 송종철이 소리쳤다.

“나 왔어.”

“아빠, 오셨어요?”

건반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춘 송아연이 먼저 반가운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임수정 역시 돌아보며 말했다.

“어떻게 이제 왔어요? 나는 당신이 또 진미선 그 여자를 못 잊어서 못 오나 했는데…….”

말을 막 끝내며 돌아보던 그녀의 눈에 뒤편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성연이 보였다. 순간 표정이 돌변한 임수정이 손으로 마스크 팩을 뜯어내며 노발대발했다.

“송종철, 당신 무슨 짓이야? 내가 말했지? 데려오면 안 된다고. 당신 뭐 때문에 얠 데려온 거야? 우리집에 얘가 들어와도 된다고 생각해?”

눈살을 찌푸린 송아연도 일어서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래요, 아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집 위신이 있는데. 쟤, 저 촌스러운 모습 좀 보세요…… 이게 알려지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두 모녀가 이렇게 나올 줄 진작 예상하고 있던 송종철은 조급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두 모녀를 한쪽으로 끌고 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쟤 데려오고 싶지 않았어. 그렇지만 진미선, 당신도 알다시피 그 미친 여자가 나를 협박했다고. 일을 크게 키우겠다고 말이야. 만약 내가 친딸을 양육하지 않는다는 소문이라도 나 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쟤를 내 딸처럼 대하라고? 난 그렇게 못해!”

화가 채 가시지 않은 임수정은 음성을 낮추지도 않았다.

성연은 모든 이야기를 똑똑히 들었음에도 여전히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다만 살짝 내려 뜬 눈에 언뜻 경멸의 빛이 스치고 지나가는 게 보였을 뿐.

송아연은 성연의 이런 모습이 왠지 너무 싫었다.

특히 송성연의 저 완벽한 얼굴을 보면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송성연이 자신보다 예쁘다는 것을. 그래도 자라면 이 시골뜨기보다 자신이 더 예뻐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선 송성연은 촌스러운 교복 차림에도 여전히 어찌할 수 없는 매력을 뿜고 있었다.

오목조목 예쁜 이목구비는 모두 놀라 되돌아볼 정도다!

도저히 송성연을 받아들일 수 없는 송아연이 화를 냈다.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제가 인정하지 않아도 아빠 딸이잖아요. 하지만 만약 집에 들이신다면 내가 나갈 거예요. 난 저 애와 한 집에서 같이 살 수 없어요.”

당연히 아연의 말 대로 할 생각이 없는 송종철이 목소리를 낮추어 달랬다.

“아연아,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다 이유가 있어 이런 결정을 내린 거야. 지금 우리 SG그룹이 자금 부족으로 위기 상황이야.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당장 막대한 자금을 끌어와야 해. 그래서 성연일 강씨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기로 했어. 그래서 데려온 거야!”

“얼마 전에 강씨 집안에서 아예 선포를 했어. 어느 집안이든 딸을 자기 집안의 그 미치광이에게 시집보내면, 예물로 엄청난 현금을 주겠다고 말이다. 네가 강씨 집안에 시집가서 고생하는 걸 내가 어찌 보겠니? 그러니 성연을 보내는 거지!”

송종철의 말을 들은 임수정과 송아연은 정신이 멍했다.

강씨 집안의 미치광이는 두 다리 불구에 조광증도 앓고 있어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고 물건을 부순다고 한다.

‘사람만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조차 근심할 정도라는데!’

이름 있는 명문가에서는 어느 집도 딸을 시집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종철에게는 그런 심리적 부담감이 없었다.

임수정과 송아연은 당연히 성연이 불행해지기를 바랄 테니까.

송아연은 바로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아빠, 역시 아빠는 모든 걸 생각하고 계셨네요. 제가 철이 없었어요. 역시 아빠는 나를 제일 사랑해!”

임수정은 얄팍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강씨 집안에 시집갈 수 있다면 저도 이득이지, 뭐야. 어쨌든 명문 권세 가문이 아니야? 설령 맞아 죽는다 해도 영광으로 알아야지.”

찬성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아연은 속으로 악랄한 생각을 했다.

‘진짜 맞아 죽었으면……!’

두 모녀를 잘 달랜 송종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사에게 지시했다.

“먼저 데리고 올라가 쉬게 하세요. 필요한 게 있으면 원하는 대로 가져다주고.”

집사가 막 대답하려고 할 때, 송아연이 자진해서 말했다.

“아빠, 제가 언니를 데리고 갈게요. 막 시골에서 올라와서 이렇게 좋은 집은 본 적 없을 거예요. 제가 데리고 구경시켜 줄게요.”

그 말을 들은 송종철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곧 송아연이 성연의 앞으로 다가와 냉랭하게 말했다.

“가요, 언니.”

그리고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

앞뒤가 다른 그녀의 변화를 보면서 성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조금 전 송종철이 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지만, 놀라운 청력을 가진 그녀의 귀에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다 들렸다.

그녀의 잘난 아버지는 정말, 주판알도 참 야무지게 굴린다.

이때 송아연도 입꼬리조차 올리지 않은 채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 이복 여동생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한 번 봐 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