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호가 앞에서 차를 몰고 고택으로 갔다.안금여는 함께 돌아가서 밥을 먹으라고 말했다.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손건호의 입가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어쩔 수 없이 날마다 닭털을 날리는 저들에게 이미 습관이 되었다.그들이 거실에 도착했을 때 음식은 이미 다 준비되었다.무진과 성연은 안금여, 강운경과 함께 식사를 했다.매번 안여의는 습관적으로 성연의 그릇에 많은 음식을 덜어주었다. 마치 성연이 배불리 먹지 못할까 걱정하는 듯이.성연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여러 번 거절하면 오히려 자신이 호의를 모르는 것처럼 느껴질 터.성연은 느릿느릿 먹을 수밖에 없었고 무진과도 일종의 호흡을 이뤘다.그녀의 눈빛 하나면, 무진도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자신이 남긴 음식을 다 먹어라.’안금여와 강운경이 눈치 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들 젊은 커플의 사이만 좋다면.저녁 식사 후.무진과 운경 앞에 장부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성연은 턱을 괴고 궁금해하며 물었다.“이게 다 뭐에요?”“장부.” 무진이 대답하며 간단하게 그녀에게 설명했다.원래 WS그룹 연간 재무보고서란다. 이건 일부분에 불과하고.이어서 강씨 집안의 크고 작은 방계들은 WS그룹에 속하는 실적이라면 모두 이 장부들에 포함되어 보고될 터이다.물론 늙은 여우들과 지혜와 용기를 겨룰 때도 되었고.무진에게는 셀 수 없는 부채들이지만.모두들 모든 장부가 한데 쌓여 있으면 아마 무진이 표본검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자세히 보지는 않은 채.많은 사람들이 그런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WS그룹은 아주 큰 기업으로 여러 무수한 계열사로 나누어져 있다.그 중에는 배후에서 몰래 이루어지는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이전에는 악성 부채를 찾아내면 명목상으로는 안금여가 관리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알아낸다고 해도 무진은 뒤에서 천천히 처리하고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올해 무진은 전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매번 발생하는 부채들을 똑똑히 조사해 두어야 했다.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운경과 무진은 성연이 가리키는 그곳을 살펴보았다.확실히 숫자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았다.운경이 바로 물었다.“성연아, 너 어떻게 알았니?”성연은 거의 한눈에 알아차렸다.‘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만약 성연이 의술 따위를 할 줄 아는 거야 시골에서 재야 명의를 만났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이런 장부를 보는 기술은 보통 사람들이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배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성연은 시골 출신이나 더 불가능할 테고.운경의 눈빛이 다소 가라앉았다.성연은 운경이 이미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다.그래서 억지로 변명했다.“제가 숫자에 좀 민감해요. 이 세트의 데이터가 앞의 배열과 약간 차이가 있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성연은 속으로 끊임없이 후회를 했다.‘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이제 됐죠?’원만한 변명이 되었기를 바라며.운경은 그래도 여전히 약간 의심스러워했다.“회계 어디 부분에서 한눈에 문제를 짚어낼 수 있었어?”이런 성연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자신들이 조사한 것과 전혀 달랐다.성연은 입술을 오므렸다. 진즉 강운경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마음이 좀 어수선하다.이렇게 많은 익숙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다니.그녀는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한쪽에서 그녀의 반응을 보던 무진의 눈동자가 좀 더 짙은 색을 띠며 가라앉았다. 손에 있는 장부 한 권을 성연에게 건네주었다.“이것 봐, 이 안에 뭐가 잘못되었어?”과연 그가 알고 있는 성연은 참 보기 드문 인재였다.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성연은 지금 마음속으로 뺨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하고 있다.‘자신의 입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걸 폭로해?’그래서 성연은 무진에게서 장부를 받아 보고 많은 허점을 발견했다.그러나 성연은 일부러 얼마 안된다고 말했다.만약 그녀가 지금도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야말로 의심스
성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들 너무 마음 놓고 있는 거 아니에요? 어찌 되었든 외부인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 이처럼 중요한 장부를 보여주다니요.’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하지만 고모님이 좀 배워보라고 하는데 자신이 자꾸 거절하면 그것도 좀 경우가 아니겠지?’그래서 결국 성연도 같이 장부를 보기로 했다. “네, 한 번 볼게요.”대답한 성연이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성연의 표정에서 불편함을 읽어낸 무진이 부드럽게 성연의 머리를 쓸었다.성연이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고모 운경과 할머니 안금여가 있는 자리에서 무진이 이런 다정한 동작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평소 할머니와 고모 앞에서는 늘 점잖게 행동하던 무진이었으니.무진의 동작에 성연은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그저 눈빛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물으려 했으나정작 당황스런 동작을 한 당사자는 바로 시선을 돌려버렸다.기가 찬 성연이 콧방귀를 뀌며 한 차례 째려본 후 고개를 돌렸다.무진과 온 가족이 회계장부를 검사했다. 성연도 곧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같이 보기 시작했다.장부를 보는 중간 중간 성연이 안금여에게 기본적인 문제들을 물어보았다.그러면 안금여는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정말 무진의 가족들은 성연 앞에서 하나 거리낌없었다.성연 앞에서는 방비할 필요도 못 느끼는 것 같다,설명을 들은 성연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의 진지한 모습은 본 안금여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성연이 무엇이든 좀 배워 무진을 돕는다면 무진도 많이 힘들지 않을 테지.’부부 사이에 서로 의지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터.같이 일을 하다 보면 서로의 수고를 이해할 수도 있을 테고.거진 질문을 끝낸 성연이 본격적으로 장부를 보기 시작했다.훑어보던 중, 확실히 장부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일부 해외 지사의 것은 그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구멍 난 정도가 한두 푼이 아니었다.사라진 돈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야 말하지 않아도 뻔했
그날 저녁, 성연은 그들과 함께 아주 늦은 시각까지 장부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거진 다 훑어봤을 때쯤 성연은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장부를 보는 속도가 정말 많이 빨라졌다.장부 뒷부분을 보던 성연이 연신 하품을 했다.평소 일과가 무척 규칙적이었던 성연은 별일 없으면 늘 일찍 잤다. 그러니 지금 장부를 한참 들여다보던 중에 쏟아지는 잠을 견딜 수 없던 참이다.그녀 옆에 앉아있던 무진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물었다.“졸려? 먼저 올라가서 자.”성연은 무진의 말에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좀 더 볼게요.”‘할머님과 고모님, 두 어른도 여기서 버티고 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잠을 자러 가?’무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잠시 더 버티던 성연은 점점 내려오는 눈꺼풀에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장부를 보다 잠시 고개를 든 안금여의 눈에 새끼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잠든 성연이 보였다.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을 지은 안금여가침실에 가서 자게 하려고 성연의 어깨를 두드려 깨우려했다.그러나 무진이 손을 저으며 제지했다.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놓은 무진이 몸을 숙여 성연을 안아 든 채 직접 위층으로 올라갔다.이 모습을 보던 안금여와 강운경의 눈에 거의 경악에 가까운 빛이 어렸다.저 두 사람의 사이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안금여가 실소하며 말했다.“우리 무진이가 점점 더 인간미가 넘치는구나. 이전에는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해서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줄줄 모르더니.”무진의 결혼 때문에 적지 않은 걱정을 했던 안금여였다.무진에게 적당한 아가씨를 소개하기도 여러 번이었다.하지만 무진이 하나같이 흥미 없어하는 걸 알고는 안금여도 점차 마음을 비웠었다.그런데 무진이 이렇게 마음을 주는 사람을 찾게 될 줄이야.역시, 이 ‘연분’이라는 건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운경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이가 무진이 마음에 드나봐요.”“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살 줄 아는 성연이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무진이 회의를 소집했다.회사 내 모든 임원과 주주들이 모였다.회의실에 도착한 무진은 강상철과 강상규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전히 안하무인의 모습이었다.냉소를 흘린 무진이 주주들이 보는 앞에서 회계장부를 강상규 앞에다 떨어뜨렸다.“강상규 이사님, 이 장부에서 몇 군데 이해가 안 되는 곳이 있더군요. 강 이사님께서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왜 장부의 앞쪽과 뒤쪽의 숫자가 맞지 안 맞는지.”“회계가 잘못되었나 보군.”강상규는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책임을 깨끗이 내팽개쳤다.“이렇게 많은 손해를 끼쳤으니 이곳 지사는 존재할 필요가 없겠군요.”무진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무진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강상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원래 이번 일을 얼렁뚱땅 넘길 생각이었다. 또 설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무진이 자신을 몰아붙일까 하면서.그러나 강무진 이 녀석은 전혀 자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강상규는 모호하게 대답했다.“회계, 재무가 잘못되었으면 회계재무 팀만 소집하면 돼지, 무슨 이유로 사람들을 이리 다 불러놓고 일을 크게 벌이는 거냐?”무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이 건에 대한 진상은 강 이사님께서 아주 잘 아시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거짓됨이 있다면, 더 이상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무진은 일부러 강상규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이 참에 강상철을 함께 쳐서 더 이상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경고할 생각으로.모든 정황이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아주 명확하게 알아차릴 정도로.저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무진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무진의 말을 들은 강상규의 입에서 멋쩍은 듯한 허음, 소리만 흘러나왔다.많은 주주들 앞에서 어린 손자로부터 질책을 받은 강상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게다가 진짜 진상을 조사한다면 드러날 증거가 산더미다.얼마 전까지 본가에는 회사를 맡아 경영할 이가 안금여 하나뿐이라고, 그러니 조만간 회사가 자신들에게 넘어올 것이라고 여겼다.그래서 일을
“이렇게 앉아서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지.” 강상철은 요즘 너무 기세 좋게 날뛰는 강무진에게 교훈을 좀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안 그러면 자제할 줄을 모를 것이다.또 이 두 늙은이는 이미 쓸모 없는 줄로만 생각할 테니.“그런데 형님, 무진이 놈 지금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강상규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진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지난번에 자기 쪽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잃고 보니 강상규도 두려워졌다.잘못 건드렸다가는 어쩌면 오히려 저 바닥으로 떨어질 지도 모른다.강무진을 건드리는 건 확실히 어느 정도 위험이 있을 터였다.“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강무진 그 놈을 못 건드리면 그 계집애에게 손을 써서 그 놈에게 경고를 줘야지. 강무진이 가장 아끼는 게 그 계집애라고 하지 않았어?” 강상철이 콧방귀를 뀌었다.‘강무진 그 놈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그 놈 대신 송성연 그 계집애에게 칼을 빼면 돼지.’‘강무진이 그 계집애를 아낀다고? 그럼 아끼는 사람이 다치는 걸 두 눈 멀쩡히 뜨고서 지켜만 봐야하는 경험을 하게 해 주지.’ “맞습니다. 형님 방법이 정말 좋은 것 같군요.” 강상규가 강상철의 생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쩔 수 없다면 강무진 그 놈에게 쓴맛을 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강무진 그 놈이 두 번 다시 자신들에게 이런 짓 하지 못하도록.“너는 믿을 만한 놈들 몇 놈 찾아봐. 이 일을 하는데 절대 착오가 있어서는 안돼.” 강상철이 소리 내어 당부했다.강무진 그 놈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지금 무슨 일이든 매사 조심하고 신중해야 했다.“형님, 걱정 마십시오. 계집아이 하나 처리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강상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무진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보고 싶어 이미 기다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옛말에 생강은 늙을 수록 맵다는 말이 있다.강무진 같은 어린 놈들은 한평생 자신들
누군가 뒤에서 강제로 차에 실린 성연의 입과 코를 막았다.코를 찌르는 냄새가 확 풍겼다.성연은 속으로 이 사람들 꽤나 신중하다는 생각을 했다.여고생 한 명을 상대하는 데도 이렇게 무지막지한 수단을 쓰다니.수건의 냄새에서 미약 성분이 맡아졌다.하지만 체질적인데다 사부님의 훈련 덕에 어떤 약물도 성연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성연은 경거망동하지 않은 채 미약에 취한 척했다. 이 남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지 볼 생각에.그 시각, 학교 앞 골목에서는 운전기사가 성연을 기다리고 있었다.하교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무런 연락 없이 성연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사리가 분명한 성연은 평소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미리 전화를 걸어 알려주며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어쩌면 무슨 사정이 생겨 좀 지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기사는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렸다.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다 결국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운전기사는 먼저 학교 경비실로 달려갔다.학교에 방과 후 행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경비원이 말했다.“요즘 무슨 행사가 있어요? 학생들도 벌써 다 돌아갔는데. 무슨 일입니까?”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운전기사가 성연의 이름을 말하며 경비원에게 보았는지 물었다.말을 듣고 있던 경비원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상 많이 받은 그 여학생 말하는 겁니까?”지금 성연은 북성남고의 유명인사였다.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직 경비원조차도 다 아는 것을.지금도 학교 입구의 벽에는 성연의 사진이 걸려 있을 정도다.경비원도 당연히 성연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지금 운전기사는 성연을 기다리느라 걱정이 되어 죽을 지경이다.여기서 경비원과 친한 척 말 나누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하지만 경비원의 말을 들으니 성연에 대해 꽤 잘 아는 듯해 보였다.경비원에게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희망을 가지며 운전기사가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네, 우리 아가씨가 맞습니다. 보셨습니까?”골똘히 기억을 더듬던 경비원이 말
이 일로 운전기사를 탓할 수는 없었다.무진은 사람들에게 좀 더 물어볼 것을 운전기사에게 지시했다.전화를 끊은 무진의 얼굴은 얼음으로 뒤덮인 듯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손건호는 무진에게서 이처럼 차가운 표정을 보기는 처음이었다.조심스럽게 무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보스, 무슨 일이십니까?”“성연이 사라졌어. 학교 근처의 CCTV를 찾아서 누구 짓인지 알아봐. 간도 크게 감히 내 사람을 데려가?”무진의 어조가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드러내고 화를 내지 않는 편인 무진이지만 그의 이 표정은 보기만 해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손건호가 몸을 떨며 대답했다.“네.”무진은 내심 성연이 절대 이유없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성연은 틀림없이 미리 전화를 걸어 알렸을 것이다.‘절대 말 한 마디 없이 떠났을 리가 없어.’그렇다면 남은 유일한 해석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것인데.무진이 계속해서 성연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잠시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안내 멘트만 들릴 뿐이다.꽉 움켜쥔 그의 손에 마치 핸드폰이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마치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무진의 심장을 꽉 쥐어짜는 듯했다.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아파왔다.아직 떠나지 않았던 손건호가 무진진의 표정을 보고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건넸다.“작은 사모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지 잘 아시잖습니까? 별일 없으실 겁니다.”눈을 들어 손건호를 쳐다보는 무진의 표정이 좀 힘들어 보였다.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빨리 가봐.”“네.”손건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즉시 사람을 보내 조사하게 했다.그 결과 성연이 납치된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번호판을 가린 검은색 승용차였다. 납치범들이 똑똑하게도 아주 일반적인 차를 골랐다.대도시 북성에서 이런 차들은 비일비재했다. 군중 속에 묻히면 흔적도 찾기 힘든 그런 차종.그러나 그 승용차의 창문에 구멍이 난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