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세은은 얼굴을 가린 채 냉소를 지으며 왕영화를 바라보았다.“네가 기분 나빠서 때리려면 때려. 대신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랑 안다고 하지 마.”“넌 내가 너처럼 겉과 속이 다른 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왕영화는 이를 악물고 떠났다.곽세은에게 처음 다가간 것은 곽세은의 집안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함께 지낸 후, 그녀는 진심으로 곽세은을 친구로 생각했다.그녀는 곽세은 같이 좋은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외면당하는 게 안타까웠다.그래서 어떻게든 돕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러나 마지막에 곽세은이 자신을 물어뜯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사무실에서 곽세은이라고 자백할 걸 그랬다.자신은 그렇게 열심히 곽세은을 생각해 줬는데, 일이 터지자 곽세은은 학우들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했다.결과는?왕영화는 냉소를 지었다. 곽세은이 사람들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게 정상인 것 같았다.곽세은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곧 한 여학생이 달려왔다.“세은아, 왕영화가 너를 찾아 뭐라고 해?”곽세은은 정신을 차리고 눈시울을 붉혔다.여학생은 비로소 곽세은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왜 그래?”곽세은이 코를 훌쩍거렸다.“왕영화가 나에게 학교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는데 내가 어쩔 수 없다고 했더니, 영화가…….”여학생은 듣자마자 화가 나서 말했다.“정말이지 너무 못됐다. 걔는 정말 그래도 싸. 앞으로 걔 상대하지 마.”“사실 영화는 아주 착한 애야.”곽세은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네가 그렇게 착하니 걔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보건실에 가서 얼음찜질 좀 해 줄게.” 그러자 여학생이 곽세은을 부축하며 자리를 떴다.“고마워.” 곽세은이 작은 소리로 감사를 표했다.곁눈으로 왕영화 쪽 방향을 한 번 보며 입술 끝을 당겨 올렸다.그녀는 왕영화와의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왕영화는 그녀가 이용한 바둑돌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우석은 자신에게 전혀 마음이 있지 않았다.그는 정
소지한의 말을 들으며 성연은 원래 음울했던 마음이 많이 옅어졌다. 그녀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니며 말했다.“그래, 계속 그렇게 해. 그녀가 틈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도록.”소지한은 알았다고 대답했다.저녁 무렵에 학교가 끝나자 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성연이 청소할 차례였는데, 선생님은 원래 청소를 면제시켜 주려 하였다.그러나 성연은 이것이 다른 학생들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거절했다.빗자루를 놓고 나오자 성연은 아직 입구에 서있는 이윤하를 보았다.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선생님’하고 불렀다.“청소 다 했어?” 성연에게 말하는 이윤하의 음성이 많이 부드러워졌다.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좀 작은 일이긴 한데. 네 현재 성적은 아주 좋아. 선생님은 네가 가능한 한 현재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래. 내년에 졸업하면 학교마다 수시 정원이 있어. 그때 괜찮다면 네가 그 명단 중에 들 수 있어.”이 일에 대해 이윤하는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성연에게 한마디 하기로 결정했다.성연은 성적이 좋아 수시모집을 하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그러나 학교에서 직접 보증하면 많은 일들을 생략할 수 있었다.성연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고.이 정원은 원래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그러나 성연의 성적이 너무 좋았다.그러니 이 정원은 당연히 성연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이윤하는 말하면서 손에 든 연습문제를 꺼내 성연에게 건네주었다.“이것은 선생님이 네 실력에 맞춰서 그리고 감점 옵션에 따라 널 위해 선별한 연습 문제야. 가능한 한 빠진 부분을 찾아서 보충해. 감점해서는 안 되는 부분에서 감점을 받지 않게 하고. 돌아가서 시간이 있을 때 연습해도 돼. 해보면 나쁘지 않을 거야.”성연에게 이 연습문제를 줄 때 이윤하는 사실 마음이 좀 불안했다.어쨌든 이전에 성연과의 갈등이 있었으니까.성연과 자신이 격의 없이 지낼 수 있을
손건호가 앞에서 차를 몰고 고택으로 갔다.안금여는 함께 돌아가서 밥을 먹으라고 말했다.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손건호의 입가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어쩔 수 없이 날마다 닭털을 날리는 저들에게 이미 습관이 되었다.그들이 거실에 도착했을 때 음식은 이미 다 준비되었다.무진과 성연은 안금여, 강운경과 함께 식사를 했다.매번 안여의는 습관적으로 성연의 그릇에 많은 음식을 덜어주었다. 마치 성연이 배불리 먹지 못할까 걱정하는 듯이.성연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여러 번 거절하면 오히려 자신이 호의를 모르는 것처럼 느껴질 터.성연은 느릿느릿 먹을 수밖에 없었고 무진과도 일종의 호흡을 이뤘다.그녀의 눈빛 하나면, 무진도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자신이 남긴 음식을 다 먹어라.’안금여와 강운경이 눈치 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들 젊은 커플의 사이만 좋다면.저녁 식사 후.무진과 운경 앞에 장부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성연은 턱을 괴고 궁금해하며 물었다.“이게 다 뭐에요?”“장부.” 무진이 대답하며 간단하게 그녀에게 설명했다.원래 WS그룹 연간 재무보고서란다. 이건 일부분에 불과하고.이어서 강씨 집안의 크고 작은 방계들은 WS그룹에 속하는 실적이라면 모두 이 장부들에 포함되어 보고될 터이다.물론 늙은 여우들과 지혜와 용기를 겨룰 때도 되었고.무진에게는 셀 수 없는 부채들이지만.모두들 모든 장부가 한데 쌓여 있으면 아마 무진이 표본검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자세히 보지는 않은 채.많은 사람들이 그런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WS그룹은 아주 큰 기업으로 여러 무수한 계열사로 나누어져 있다.그 중에는 배후에서 몰래 이루어지는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이전에는 악성 부채를 찾아내면 명목상으로는 안금여가 관리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알아낸다고 해도 무진은 뒤에서 천천히 처리하고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올해 무진은 전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매번 발생하는 부채들을 똑똑히 조사해 두어야 했다.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운경과 무진은 성연이 가리키는 그곳을 살펴보았다.확실히 숫자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았다.운경이 바로 물었다.“성연아, 너 어떻게 알았니?”성연은 거의 한눈에 알아차렸다.‘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만약 성연이 의술 따위를 할 줄 아는 거야 시골에서 재야 명의를 만났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이런 장부를 보는 기술은 보통 사람들이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배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성연은 시골 출신이나 더 불가능할 테고.운경의 눈빛이 다소 가라앉았다.성연은 운경이 이미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다.그래서 억지로 변명했다.“제가 숫자에 좀 민감해요. 이 세트의 데이터가 앞의 배열과 약간 차이가 있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성연은 속으로 끊임없이 후회를 했다.‘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이제 됐죠?’원만한 변명이 되었기를 바라며.운경은 그래도 여전히 약간 의심스러워했다.“회계 어디 부분에서 한눈에 문제를 짚어낼 수 있었어?”이런 성연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자신들이 조사한 것과 전혀 달랐다.성연은 입술을 오므렸다. 진즉 강운경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마음이 좀 어수선하다.이렇게 많은 익숙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다니.그녀는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한쪽에서 그녀의 반응을 보던 무진의 눈동자가 좀 더 짙은 색을 띠며 가라앉았다. 손에 있는 장부 한 권을 성연에게 건네주었다.“이것 봐, 이 안에 뭐가 잘못되었어?”과연 그가 알고 있는 성연은 참 보기 드문 인재였다.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성연은 지금 마음속으로 뺨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하고 있다.‘자신의 입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걸 폭로해?’그래서 성연은 무진에게서 장부를 받아 보고 많은 허점을 발견했다.그러나 성연은 일부러 얼마 안된다고 말했다.만약 그녀가 지금도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야말로 의심스
성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들 너무 마음 놓고 있는 거 아니에요? 어찌 되었든 외부인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 이처럼 중요한 장부를 보여주다니요.’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하지만 고모님이 좀 배워보라고 하는데 자신이 자꾸 거절하면 그것도 좀 경우가 아니겠지?’그래서 결국 성연도 같이 장부를 보기로 했다. “네, 한 번 볼게요.”대답한 성연이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성연의 표정에서 불편함을 읽어낸 무진이 부드럽게 성연의 머리를 쓸었다.성연이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고모 운경과 할머니 안금여가 있는 자리에서 무진이 이런 다정한 동작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평소 할머니와 고모 앞에서는 늘 점잖게 행동하던 무진이었으니.무진의 동작에 성연은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그저 눈빛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물으려 했으나정작 당황스런 동작을 한 당사자는 바로 시선을 돌려버렸다.기가 찬 성연이 콧방귀를 뀌며 한 차례 째려본 후 고개를 돌렸다.무진과 온 가족이 회계장부를 검사했다. 성연도 곧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같이 보기 시작했다.장부를 보는 중간 중간 성연이 안금여에게 기본적인 문제들을 물어보았다.그러면 안금여는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정말 무진의 가족들은 성연 앞에서 하나 거리낌없었다.성연 앞에서는 방비할 필요도 못 느끼는 것 같다,설명을 들은 성연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의 진지한 모습은 본 안금여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성연이 무엇이든 좀 배워 무진을 돕는다면 무진도 많이 힘들지 않을 테지.’부부 사이에 서로 의지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터.같이 일을 하다 보면 서로의 수고를 이해할 수도 있을 테고.거진 질문을 끝낸 성연이 본격적으로 장부를 보기 시작했다.훑어보던 중, 확실히 장부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일부 해외 지사의 것은 그야말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구멍 난 정도가 한두 푼이 아니었다.사라진 돈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야 말하지 않아도 뻔했
그날 저녁, 성연은 그들과 함께 아주 늦은 시각까지 장부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거진 다 훑어봤을 때쯤 성연은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장부를 보는 속도가 정말 많이 빨라졌다.장부 뒷부분을 보던 성연이 연신 하품을 했다.평소 일과가 무척 규칙적이었던 성연은 별일 없으면 늘 일찍 잤다. 그러니 지금 장부를 한참 들여다보던 중에 쏟아지는 잠을 견딜 수 없던 참이다.그녀 옆에 앉아있던 무진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물었다.“졸려? 먼저 올라가서 자.”성연은 무진의 말에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좀 더 볼게요.”‘할머님과 고모님, 두 어른도 여기서 버티고 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잠을 자러 가?’무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잠시 더 버티던 성연은 점점 내려오는 눈꺼풀에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장부를 보다 잠시 고개를 든 안금여의 눈에 새끼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잠든 성연이 보였다.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을 지은 안금여가침실에 가서 자게 하려고 성연의 어깨를 두드려 깨우려했다.그러나 무진이 손을 저으며 제지했다.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놓은 무진이 몸을 숙여 성연을 안아 든 채 직접 위층으로 올라갔다.이 모습을 보던 안금여와 강운경의 눈에 거의 경악에 가까운 빛이 어렸다.저 두 사람의 사이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안금여가 실소하며 말했다.“우리 무진이가 점점 더 인간미가 넘치는구나. 이전에는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해서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줄줄 모르더니.”무진의 결혼 때문에 적지 않은 걱정을 했던 안금여였다.무진에게 적당한 아가씨를 소개하기도 여러 번이었다.하지만 무진이 하나같이 흥미 없어하는 걸 알고는 안금여도 점차 마음을 비웠었다.그런데 무진이 이렇게 마음을 주는 사람을 찾게 될 줄이야.역시, 이 ‘연분’이라는 건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운경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이가 무진이 마음에 드나봐요.”“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살 줄 아는 성연이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무진이 회의를 소집했다.회사 내 모든 임원과 주주들이 모였다.회의실에 도착한 무진은 강상철과 강상규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전히 안하무인의 모습이었다.냉소를 흘린 무진이 주주들이 보는 앞에서 회계장부를 강상규 앞에다 떨어뜨렸다.“강상규 이사님, 이 장부에서 몇 군데 이해가 안 되는 곳이 있더군요. 강 이사님께서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왜 장부의 앞쪽과 뒤쪽의 숫자가 맞지 안 맞는지.”“회계가 잘못되었나 보군.”강상규는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책임을 깨끗이 내팽개쳤다.“이렇게 많은 손해를 끼쳤으니 이곳 지사는 존재할 필요가 없겠군요.”무진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무진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강상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원래 이번 일을 얼렁뚱땅 넘길 생각이었다. 또 설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무진이 자신을 몰아붙일까 하면서.그러나 강무진 이 녀석은 전혀 자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강상규는 모호하게 대답했다.“회계, 재무가 잘못되었으면 회계재무 팀만 소집하면 돼지, 무슨 이유로 사람들을 이리 다 불러놓고 일을 크게 벌이는 거냐?”무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이 건에 대한 진상은 강 이사님께서 아주 잘 아시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거짓됨이 있다면, 더 이상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무진은 일부러 강상규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이 참에 강상철을 함께 쳐서 더 이상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경고할 생각으로.모든 정황이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아주 명확하게 알아차릴 정도로.저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무진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무진의 말을 들은 강상규의 입에서 멋쩍은 듯한 허음, 소리만 흘러나왔다.많은 주주들 앞에서 어린 손자로부터 질책을 받은 강상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게다가 진짜 진상을 조사한다면 드러날 증거가 산더미다.얼마 전까지 본가에는 회사를 맡아 경영할 이가 안금여 하나뿐이라고, 그러니 조만간 회사가 자신들에게 넘어올 것이라고 여겼다.그래서 일을
“이렇게 앉아서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지.” 강상철은 요즘 너무 기세 좋게 날뛰는 강무진에게 교훈을 좀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안 그러면 자제할 줄을 모를 것이다.또 이 두 늙은이는 이미 쓸모 없는 줄로만 생각할 테니.“그런데 형님, 무진이 놈 지금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강상규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진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지난번에 자기 쪽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잃고 보니 강상규도 두려워졌다.잘못 건드렸다가는 어쩌면 오히려 저 바닥으로 떨어질 지도 모른다.강무진을 건드리는 건 확실히 어느 정도 위험이 있을 터였다.“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강무진 그 놈을 못 건드리면 그 계집애에게 손을 써서 그 놈에게 경고를 줘야지. 강무진이 가장 아끼는 게 그 계집애라고 하지 않았어?” 강상철이 콧방귀를 뀌었다.‘강무진 그 놈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그 놈 대신 송성연 그 계집애에게 칼을 빼면 돼지.’‘강무진이 그 계집애를 아낀다고? 그럼 아끼는 사람이 다치는 걸 두 눈 멀쩡히 뜨고서 지켜만 봐야하는 경험을 하게 해 주지.’ “맞습니다. 형님 방법이 정말 좋은 것 같군요.” 강상규가 강상철의 생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쩔 수 없다면 강무진 그 놈에게 쓴맛을 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강무진 그 놈이 두 번 다시 자신들에게 이런 짓 하지 못하도록.“너는 믿을 만한 놈들 몇 놈 찾아봐. 이 일을 하는데 절대 착오가 있어서는 안돼.” 강상철이 소리 내어 당부했다.강무진 그 놈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지금 무슨 일이든 매사 조심하고 신중해야 했다.“형님, 걱정 마십시오. 계집아이 하나 처리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강상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무진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보고 싶어 이미 기다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옛말에 생강은 늙을 수록 맵다는 말이 있다.강무진 같은 어린 놈들은 한평생 자신들
손민철의 안배로 조수경의 미모를 이용해서 돈 많은 사장들을 꼬셔냈다.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아주 빠르게 올라갔다.지난 번의 거의 두 배에 가깝게.이런 놀라운 업무 실적 상승에 사람들은 조수경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이전에 조수경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이번 성과를 본 후에는 완전히 승복했다.사람들은 그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수경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라고만 생각했다.앞으로 조수경은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에서 조수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대표실 안.비서 손건호가 서류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바로 조수경의 업무 보고서가 들어 있는 파일이다.“보스, 좀 보시죠.”두텁게 쌓인 서류는 상당히 무게가 있어 보인다.무진이 눈을 들어 손건호를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숙여 눈앞의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몇 분 동안 집중해서 문서를 모두 살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진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보고서를 다 확인한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렇게 많지?”손건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는 조수경 쪽을 직접 주시하지 않고 따로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었다.그러나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조수경의 이 업무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았다.손건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지금 조수경 씨의 이 업무 실적이라면 이론상 팀장의 위치까지 승진해야 합니다.”무진은 어렴풋이 조수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을 알아챘다.지금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조수경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썼을 테고...“묵살해!”손건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담당 부서의 책임자가 제출한 겁니다. 묵살할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묵살해 버린다면, 회사 내의 많은 직원들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어쨌든 조수경의 업무 실적이 여기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 이상, 누구
조수경의 표정이 좀 어정쩡했다.사실 마음속은 성연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고택에 찾아갔더니, 안금여와 강운경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강무진도 자신에게 어찌나 냉담한지.조수경은 성연이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라고 생각했다.물론 강씨 집안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겠지만, 외부인이 송성연에게 이런 명품들을 선물한 적은 없을 것이다.송성연 쪽에서부터 손을 쓰기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성연은 자신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강골이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조수경의 얼굴에는 거꾸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이 가득 차 있었다.“성연 씨, 당신 생각을 이해해요. 앞으로 꼭 무진 오빠와 거리를 둘 게요. 다만...”조수경은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나는 할머님과 고모님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고모님과 할머님은 지금 나를 전혀 만나시려고 하질 않으세요.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어 성연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성연 씨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두 분도 나를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믿어요.”조수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찾아왔는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조수경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택에 찾아가면, 무슨 일을 하든 훨씬 편리할 테니까.“할머니랑 고모가 어떻다고요? 그 분들 뜻이에요.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나도 두 분 어른의 뜻은 못 꺽어요. 나를 핑계로 해서 그 분들을 설득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에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성연이 딱 잘라 말했다.자신의 마음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을 본 조수경은 얼굴의 미소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그냥 우리 두 사람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때는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어요. 송성연 씨, 정말 미안해요. 나는 정말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조수경 씨가 무진 씨와 거리를 두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생길 리가 없겠죠.”성연이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쳐다보았다.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