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진의 상태는 정말이지 낙관할 수 없었다.무진의 조광증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성연은 자연히 이런 상태도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성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전에도 많은 난치병들을 치료했었다.증상이 드러나야만 그 증상에 맞는 약을 쓸 수 있다.늦은 시간이었지만 안금여, 강운경 그리고 조승우까지 모두 달려왔다.모두 잔뜩 걱정스런 얼굴들이다.고모 운경이 먼저 물었다.“성연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멀쩡하던 무진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니?”이때 침대에 누워있던 무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불긋불긋한 얼굴이 보기조차 안스러웠다. “그러게. 성연아, 무진이 평소 꽤 건강했잖니?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이리 몸이 펄펄 끓는 거야?”옆에 있던 안금여도 질문을 했다.성연은 무진의 발작이 시작된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조금 전 자신이 진단했던 무진의 상태를 강운경과 안금여에게는 아직 말할 수가 없었다.강씨 집안 사람들의 눈에 자신은 그저 의술을 조금 알고 있는 정도이지 전문 의료인이 아니었으니까. “에효, 간신히 좀 좋아지나 했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구나.” 안금여가 휴 한숨을 내쉬었다.모두들 성연이 온 후로는 무진이 더 이상 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니 이번 발작이 그전보다 더 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예전에는 발작이 지나가면 무진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이번 같은 고열은 없었다.하느님이 무진을 불쌍하게 여기길 빌 밖에. 부디 양친 부모를 잃은 무진이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해주길 빌었다.“장모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 볼게요.”고모부 조승우가 장모 안금여를 위로하며 말했다. 의료 상자에서 청진기를 꺼내 무진을 진찰했다.진찰을 마친 조승우의 안색이 어두웠다. “어때요?” 강운경은 초조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지만 무진을 자극할까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별로 안 좋아. 무진이 열이 심한데다 몸이
철이 든 성연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건 잘 알았다.하지만 안금여는 성연의 마음을 거절했다. 성연의 손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무진을 돌보는 일은 집사와 고용인들에게 맡기면 된다. 너는 내일 학교에 가야지. 학습을 우선을 해야 하는 게 옳아.”비록 성연이 이미 자신들 강씨 집안의 사람이 되었지만, 제대로 공부를 해 둬야 앞으로 사회에 나갔을 때 좀 더 쉽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런 일로 성연이 공부를 방해해서는 안되지.’ “학교 수업은 제가 충분히 따라갈 수 있어요, 할머니. 제가 여기서 무진 씨를 돌보게 해주세요. 안그러면 제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성연은 기어코 학교에 가려 하지 않았다.안금여와 다른 사람들은 성연의 학업 성적을 잘 모르기에 자연히 일반학생처럼 생각했다.북성남고를 다니는 건 단지 학창 생활을 체험하기 위한 것일 뿐, 고등학교 졸업장에 준하는 증서를 이미 손에 넣은 성연이다.더 중요한 것은 무진의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만일의 하나 안 좋을 수도 있었다.어쨌든 자신이 무진에게 침을 놓은 것이니까.늘 이렇듯 철이 든 성연은 윗 어른들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강운경과 안금여를 너무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말려도 또 말렸지만 결국 성연은 무진 곁에 남았다. 기왕 성연이 남은 이상 안금여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무진의 약혼녀인 성연이 남아서 돌보는 것도 당연했다.지금이 저들 젊은 부부의 감정이 발전하기 좋을 때이기도 하고.그리하여 그날 저녁, 집사는 안금여가 묵을 방을 준비해 주었고 몇 사람도 엠파이어 하우스에 남아서 쉬었다.운경은 잠도 자지 않고 무진의 방에 남아 성연을 도왔다.그동안 성연은 거의 30분 간격으로 무진의 체온을 쟀다.밤새 왔다갔다하며 수건을 물에 적셔 무진의 이마에 올리고 또 손과 몸을 닦아주며 체온을 낮추려 애썼다. 마치 뱅글뱅글 끊임없이 도는 팽이처럼 멈추지 않았다.성연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옆에 있던 운경은 더
성연이 하는 모든 동작들을 운경이 눈에 담았다.이렇듯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자 운경은 속으로 성연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 성연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점차 내려놓았다.무진은 성연의 정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성연의 보살핌으로 무진의 열이 서서히 내렸다.무진의 체온을 마지막으로 재니 날이 밝아왔다.체온계에서 이미 내려온 온도를 확인한 성연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날 뻔했다.드디어 열이 내렸다.밤새 정신없이 간병했던 성연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어지간히 피곤한 게 아니었다. 무진의 열이 내리며 성연의 큰 돌덩어리가 내려앉은 듯했던 마음도 자연히 좀 가벼워졌다.침대 옆에 엎드려 정신없이 잠들었다.성연이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진이 깨어났다.눈을 뜨니 침대 옆에 엎드려 잠든 성연이 보였다.마침내 깨어난 무진을 본 운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진 곁에 다가가 춥거나 덥지는 않은지 살폈다.“무진아, 지금 좀 어때? 어디 힘든 데는 없니?”무진은 여전히 기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발작을 하고 또 고열을 앓았으니 몸 안의 거의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낸 상태.무진의 안색이 창백했다.그러나 말없이 고개만 돌린 무진의 시선이 성연이에게로 향했다.성연을 보는 운경의 표정도 많이 부드러워졌다.“성연이 얘, 어제 밤새도록 너를 간병했어. 네 체온을 재고, 물을 먹이고, 얼마나 세심하게 돌보던지.”애초 처음 만났을 때의 성연에 대해서는 그저 어린 여자아이라는 인상만 받았다.나이도 어려서 무진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진이 돌봐야 할 것 같았다.그러나 어젯밤 정성껏 무진을 돌보던 성연을 보며 자신은 성연만큼 잘 돌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성연의 몸에는 젊은 애들 같은 경박스러움이 전혀 없었다.생각해 보니 성연이 강씨 집안에 온 지도 꽤 되었지만 성연에 대해 일반적인 대우 밖에 해준 게 없었다. 하지만 무진은 오늘 같은 간병으로 성연을 귀찮게 하고 있으니, 운경은 속으로 무척 미안하고
운경이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성연이가 진짜 고생했어. 네가 회복되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지. 가서 네 고모부 보내서 네 상태를 좀 살펴보라고 해야겠다.”말하면서 운경이 밖으로 나갔다.무진이 고모를 만류했다.“고모님, 그만 두세요. 온몸에 기운이 좀 없는 것 외에는 큰 문제 없어요. 그냥 배가 좀 고프네요.”운경은 즉시 주방에 연락해서 먹을 것을 가져오게 했다.무진의 상태 때문에 엠파이어 하우스의 모든 고용인들이 항시 대기 중이었다.무진에 깨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이미 죽을 쑤어 놓은 상태였다.죽을 가져왔을 때는 이미 먹기 좋은 온도로 맞춰져 있었다.운경은 무진에게 떠먹여 주려 하자 무진은 실소를 터트렸다.“고모,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안 그러셔도 돼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조금 전 성연을 안아 눕힐 정도의 기력이 있었던 걸 생각하니, 자신의 동작은 확실히 좀 과한 듯도 했다.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한쪽에 앉아서 무진 죽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 고모부가 보지 않아도 되겠니?”여전히 걱정이 걱정스러운지 운경의 미간이 접혀 있다. “괜찮아요, 고모. 저 정말 괜찮아요.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무리하지 않을 게요.”무진이 운경을 달랬다.운경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무진이 죽 한 그릇을 비우자 운경이 빈 그릇을 받으며 물었다.“더 먹을래?” “배불러요, 고모. 그만 먹을래요.”무진이 좀 기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고모 운경은 그를 마치 어린아이 돌보듯 살폈다.하긴 무진이 부모를 잃을 때부터 줄곧 운경이 자기 아들처럼 보살폈으니.자식에 대한 여타 부모들의 애정 못지 않게 무진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았다. “그까짓 죽 조금 먹어서야 되겠니? 너 몸이 많이 약해져서 좀 더 보충해야 돼. 안 그러면 어디 기운을 차리겠니? 널 좀 봐, 항상 성연이더러 너를 돌보게 해서야 웃음거리가 아니고 뭐겠니?”운경이 무진을 나무라듯이 흘겼다.결국 운경의 설득을 못 이긴 무진이 죽 한 그릇을 더 비
성연이 일어났을 때 무진도 잠에서 깼다.무진이 성연의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뭐 하러 갈려고?”성연은 무진이 이렇게 빨리 깰 줄 몰랐다.“씻고 올게요.”무진이 성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다시 힘껏 잡아당기자 성연이 그의 품 안에 떨어졌다.성연을 끌어안은 무진의 눈에 만족의 빛이 차올랐다.“좀 더 자, 어젯밤에 별로 못 잤잖아.”성연은 발버둥을 쳐서 간신히 무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안돼요. 수업하러 학교 가야 돼요.”잠은 학교에 가서 보충할 수 있었다.무진이 좋아졌으니 그녀가 옆에 있을 필요도 없고.그러나 성연을 껴안고 놓지 않던 무진이 그 틈에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두 손이 잡힌 성연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그리고 점점 무진의 키스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심리적으로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성연은 자신이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이 사람, 어젯밤 발작하던 그 남자 맞아?’이 남자, 일부러 자신의 병을 이용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뭐가 이렇게 뻔뻔해?’성연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세게 자신의 입술을 빡빡 문질렀다.얼굴이 맞닿아 있는 남자를 향해 화를 내며 말했다.“강무진, 일부러 그런 거죠?”‘진짜 내가 자기 속셈을 못 알아차릴 아나?’‘남자들은 역시 다 똑같아!’“뭐? 일부러 그랬다고?” 무진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성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에 무진 씨가 어땠는지 잊었어요? 지금 기운 차리자마자 이런 짓이나 하고, 보니까 병도 심각하지 않네, 뭐.”무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네가 내 옆에 있어야 잘 회복할 수 있지. 네가 가면 내가 잠을 잘 수 없어.”애초부터 확실히 무진은 성연을 자신의 치료제로 여겼다.성연이 있어야 제대로 잘 수 있다는 사실은 가까운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성연에게 자신과 같은 방에서 자자고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
무진의 말에 성연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자신이 계속 강무진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무진의 말을 듣고서야 성연은 이해가 되었다.업무를 보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다른 사람은 피곤하면 쉽게 잠이 들지만, 무진은 피곤하면 오히려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장시간 자연스러운 생리 순환에 위배되는 반대의 생활을 해왔다. 그러면서 결국 기를 상하게 되었을 터.그리고 성연의 짐작에, 무진은 잠이 들어도 꿈을 많이 꾸며 숙면을 취하진 못했을 것이다.생각을 거듭하면서 성연은 무진의 건강을 제대로 관리할 필요를 느꼈다.‘이 병이 이렇게 좋아진 것도 그야말로 기적인 셈이다.’무진은 품에 안은 성연의 습윤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이 틈에 또 다시 입술을 훔친 무진은 기분이 좋은 듯 물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무진의 품에 갇힌 성연은 이제 더 이상 실랑이하지도 않은 채 무진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성연이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어떻게 그런 기괴한 병을 앓게 됐는지 생각하고 있었어요.”“오래 전부터 앓았어. 그때 이미 치료하기 시작했지만 소용이 없었지. 너를 만날 때까지 말이야.”무진이 성연의 이마에 턱을 올렸다. 그만큼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꼭 내가 무진 씨 잠들게 하는 도가 같은 느낌이야.” 성연이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무진이 어떤 대답을 할지 듣고 싶었다.“아니, 여러 가지 의미에서.” 무진이 그윽한 눈동자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도 무진의 이 말 이면에 깔린 소리를 알아들었다.‘여러 가지 의미에서 당신을 만난 뒤…….’성연은 아주 약간, 감동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강무진은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무진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때보다 훨씬 더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성연은 이마부터 볼까지 온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주체할 수가 없다.‘강무진,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운 거야?’‘아, 진짜 사람 잡겠네.’
성연은 정말 깜짝 놀랐다. 깨어나서 보니 사람들에게 포위된 자신을 발견했으니.그리고 모두 집안 어른들이었다.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난처했다.얼른 일어나 앞에 있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뒤 고개를 숙인 채 한쪽에 섰다.무진과 함께 잠든 건 정말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정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안금여가 웃으며 말했다.“예전에는 무진이 이렇게 사람을 껴안지 않았는데, 역시 성연일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야.”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아 보이니 어른들로서는 기꺼운 마음이었다.무진이 나이가 차니 집안에서 맞선을 종용하기도 여러 차례였다.비록 병을 앓는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뭐라 해도 무진은 강씨 집안 적장자였다.그러니 딸을 내미는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그러나 무진은 누구에게도 이처럼 가깝게 대하지 않았다.그전엔 여자를 보면 항상 무슨 병균을 대하듯이 피해 다니지 못해 안달이었다.지금 성연과는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안금여의 말을 듣고 있는 성연은 그저 난감할 뿐이다.하지만 성연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무진은 자신을 좀 더 특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대답하지 않고 무진을 바라보던 성연이 물었다.“무진 씨가 왜 아직도 안 일어날까요?”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곤란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혹 무진에게 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자신이 아주 깊이 잠들긴 했지만 죽어 있었던 것도 아니니 설마 기척이 있었는데도 못 들은 건 아니겠지?’운경은 옆에서 말해줬다.“무진이 깼었어. 밥도 먹고 약도 먹었어. 약에 수면 효과가 있어서 깊이 잠들었을 뿐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그제야 마음이 놓인 성연은 더 이상 무진의 잠을 방해하지 않았다. ‘무진 씨는 잠을 많이 자는 게 좋아. 몸도 좀 보양하고.’깨어 있을 때보다 수면 상태에서 더 쉽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게다가 무진이 상한 것은 정신이다. 오래동안 힘들었던 사람이니 이
오후, 성연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무진을 간병했다. 안금여와 운경과 함께 대화도 나누면서.성연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이왕 늦은 이상 아예 가지 않은 것이다.가서 해명하는 시간도 아까웠고.그런데 하필 자신의 반 담임은 여전히 이윤하였다. 만약 이윤하가 자신이 결석계를 내고 또 집에 가는 것을 본다면 또 어떤 문장을 쓸지.‘차라리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아.’무진은 출근하지 않고 강운경 혼자만 출근했다.본가에서 지금 회사에 나와 있는 사람은 강운경 혼자였다.강상철의 사무실.사무실에 들어서는 강일헌의 눈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할아버지, 저쪽의 정보에 따르면 그 분이 또 병으로 쓰러졌답니다. 꽤 심각한 모양이랍니다.”강일헌의 입에서 나온 그 분이 누구인지는 그들 모두 잘 알고 있다.강상철이 바로 냉소를 지었다.“그러게 내가 말했지 않느냐? 그 병자가 어떻게 회사를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있다는 건지, 원. 아마 조만간 일 날 거라고 했지?”강무진은 확실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그러나 그 죽어가는 몸이 문제였다.요 몇 년 동안 계속 명의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이런 놈이 자신들과 싸워서 회사의 지배권을 빼앗으려고 해?’‘큰집 장손이면 다야?’그 놈이 죽으면 결국 회사에 남는 것은 우리 둘째, 셋째 일가뿐 아닌가?’그는 강무진의 의기양양한 기세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맞습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회사를 운영한다고요. 곧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숨을 질질 끌며 살아남아서 맞서다니.” 강일헌은 무진 얘기가 나오자마자 화가 치밀었다.강무진이 회사 실권을 쥐며 그가 맡은 계열사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모두 잘려 나갔다.수익도 예전보다 못했다.그가 강무진을 미워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강무진 그 놈은 미친 놈에 불구일 뿐인데, 무슨 자격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단 말인가.자신의 어디가 강무진보다 못하다는 건지.‘강무진만 끌어내릴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은 바로 나야!’“너, 성질
무진과 성연이 멀어지자, 연계진의 앞으로 지프가 천천히 다가왔다.연계진이 지프에 타자, 조수경도 얼른 따라서 차에 탔다.그러나 연계진과 얘기를 나눌 때도 줄곧 연계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남자가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가슴이 떨릴 정도로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야.’‘하지만 그러면 또 어때?’‘연계진만이 내 계략을 실현할 수 있어.’‘손민철 같은 쓸모없는 놈보다 훨씬 낫지.’조수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게 고집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다.조수경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연계진은 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차는 천천히 이씨 가문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거실 안. 소지연은 지금 임신 중이다.엊그제 검사에서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이제 이상효의 모친도 소지연에게 힘든 일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혹시라도 자신의 귀염둥이 손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소지연은 이씨 가문에서 그래도 모처럼 좋은 대우를 받는 셈이다.그러나 소지연에게 온갖 영양제와 보약들을 먹게 했다.하루 세 끼 모두 이런 느끼한 음식을 먹어야 했기에, 소지연은 곧 먹는 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느낄 정도였다.아무리 심하게 토해도 이상효의 모친은 여전히 보약을 소지연에게 건네주었다.“얼른 좀 더 마셔. 너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그러면 우리 보물 같은 손자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겠어? 빨리 마셔.”“정말 못 마시겠어요.” 소지연은 손사래를 쳤다. 이씨 가문에서 소지연은 단지 출산의 도구일 뿐이다.‘나를 전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만약 이 아이가 없다면, 나는 지금도 매일 하인처럼 일을 하고 있겠지.’이상효의 모친이 소지연을 노려보았지만, 소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서 확실히 별로 좋지 않아 보이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차에서 내린 연계진은 초인종을 누른 뒤, 집사에게 상효를 찾으려 왔다고 알렸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석양이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이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무진과 성연은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했다.두 사람은 서로 바싹 붙어 있은 채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멀지 않은 곳의 큰 나무 뒤에서는 조수경이 이를 갈며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나는 그렇게 궁지에 빠졌는데, 송성연과 강무진은 왜 저렇게 잘 지내는 거야?’‘정말 달갑지 않아!’애초에 무진은 조수경을 철저하게 없애 버리려 했다.강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될까 봐 조씨 가문에서는 조수경 일가를 가문에서 축출했다.원래 조수경은 손민철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손민철 이 병신이 뜻밖에도 사람이 변할 줄 몰랐어.’‘예전에는 내 지시만 따랐는데, 지금은 날 피하면서 보려고 하지 않아.’‘게다가 손씨 가문은, 영원히 조씨 가문을 돕지 않을 거라고 했지!’조수경은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모욕했던 사람들을 절대로 편안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생각할 뿐이!‘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성연 때문이야. 송성연을 어떻게 행복하게 내버려 둘 수 있어?’그런데 지금 조수경의 뒤에는 청초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의 작은 새우눈은 붉은 기운마저 띄고 있어서 사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조수경이 분노해 마지않는 모습을 보자 남자는 조수경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봤지? 지금 강무진과 송성연은 행복할 수밖에 없어.”이 말을 들은 조수경은 뒤돌아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연계진 씨, 내가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어요.”냉소하는 연계진의 모습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어. 강무진은 우리 연씨 가문과도 피맺힌 원한이 너무나 많으니까!”예전의 일을 생각하자, 연계진의 눈은 가늘어지면서 온몸에는 싸늘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조수경은 연계진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조수경은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한 사람을 찾았는데, 무진과
모혜정은 바로 안진검의 회사에 와서 안진검을 찾았다.직원들은 모두 모혜정이 안진검의 약혼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오늘 저녁 같이 식사해. 좋은 식당을 찾았어.” 모혜정은 당당하게 말했다.‘어차피 안진검은 내 약혼자인데, 내가 부리지 않으면 누구를 부리겠어?’“바빠, 시간 없어!”안진검은 머리도 들지 않고 바로 모혜정의 제안을 거절했다.모혜정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웃었다.“진검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명실상부한 약혼녀라는 걸 알아야 해! 매번 같은 핑계를 쓰는데, 나한테 변명하며 얼버무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거야?”“당신도 알겠지만 우리 혼약은 부모님이 정하신 거야. 나는 당신에게 감정이 없어.” 안진검은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모혜정과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모혜정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모혜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진검 씨, 송성연이 마음에 든 거지. 말해!”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연의 미모는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진검이 또 성연에게 밥을 사 준다면 이건 정말 문제야!’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안진검은 모혜정이 그야말로 억지를 부린다고 느꼈다.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빨리 대답해. 당신, 송성연이 마음에 들었지? 걔가 마음에 들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모혜정의 목소리는 톤이 아주 높아서 귀가 아플 정도였다.안진검은 여전히 편안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했다.“진검 씨, 솔직히 말해. 그 여자한테 빠져서 내가 약혼자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야!”안진검이 대답하지 않자, 모혜정이 달려가서 안진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진검은 정말 귀찮았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어.’‘모혜정도 옆에서 쉬지 않고 따지고 있지.’안진검은 정말 모혜정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검 씨,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빨리 말을 해!” 모혜정은 손을 뻗어 안진검의 팔을
그리고 반대쪽. 부하들의 보고를 듣던 안진검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성연이 고향으로 내려가 있던 동안.안진검은 수하들에게 성연의 단서를 찾아내라고 했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그래서 안진검은 화가 나 있었다. ‘원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빨리 송성연과 친구가 되려고 했는데.’‘결국 계획이 중단되었어.’‘송성연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강무진 쪽의 소식도 늦어진다는 걸 의미해.’‘송성연의 주선이 없다면, 강무진은 나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을 거야. 또 단서를 잡고 내 신분을 똑똑히 조사할 수 있을 거야.’‘이 모든 것은 송성연을 통해서만 할 수 있어.’그러나 지금 결과가 없으니, 안진검이 어떻게 이 화를 참을 수 있겠는가!안진검의 안색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안진검의 앞에 선 수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안진검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마음속으로는 불만스러웠지만 그래도 말투를 가다듬었다.“의부님.”안진검이 부하에게 손짓하자, 부하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나갔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바로 MS 가문의 대장로였다.안진검의 목소리를 들은 대장로가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애초에 떠날 때 이미 계획을 다 세워놓지 않았어? 지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거야?”“의부님, 죄송합니다. 잠시 사고가 생겨서 진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안진검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장로에게 사과했다.“내게 사과해도 소용없어. 지금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주시하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더 이상 성과가 없다면 가문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이 나면, 네가 위로 올라갈 기회는 없어!”대장로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까스로 이 기회를 잡은 안진검이 어떻게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서둘러 대장로에게 애원했다.“의부님,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제 계획이 곧 성과가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