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 말에 성연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자신이 계속 강무진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무진의 말을 듣고서야 성연은 이해가 되었다.업무를 보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다른 사람은 피곤하면 쉽게 잠이 들지만, 무진은 피곤하면 오히려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장시간 자연스러운 생리 순환에 위배되는 반대의 생활을 해왔다. 그러면서 결국 기를 상하게 되었을 터.그리고 성연의 짐작에, 무진은 잠이 들어도 꿈을 많이 꾸며 숙면을 취하진 못했을 것이다.생각을 거듭하면서 성연은 무진의 건강을 제대로 관리할 필요를 느꼈다.‘이 병이 이렇게 좋아진 것도 그야말로 기적인 셈이다.’무진은 품에 안은 성연의 습윤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이 틈에 또 다시 입술을 훔친 무진은 기분이 좋은 듯 물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무진의 품에 갇힌 성연은 이제 더 이상 실랑이하지도 않은 채 무진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성연이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어떻게 그런 기괴한 병을 앓게 됐는지 생각하고 있었어요.”“오래 전부터 앓았어. 그때 이미 치료하기 시작했지만 소용이 없었지. 너를 만날 때까지 말이야.”무진이 성연의 이마에 턱을 올렸다. 그만큼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꼭 내가 무진 씨 잠들게 하는 도가 같은 느낌이야.” 성연이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무진이 어떤 대답을 할지 듣고 싶었다.“아니, 여러 가지 의미에서.” 무진이 그윽한 눈동자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도 무진의 이 말 이면에 깔린 소리를 알아들었다.‘여러 가지 의미에서 당신을 만난 뒤…….’성연은 아주 약간, 감동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강무진은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무진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때보다 훨씬 더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성연은 이마부터 볼까지 온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주체할 수가 없다.‘강무진,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운 거야?’‘아, 진짜 사람 잡겠네.’
성연은 정말 깜짝 놀랐다. 깨어나서 보니 사람들에게 포위된 자신을 발견했으니.그리고 모두 집안 어른들이었다.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난처했다.얼른 일어나 앞에 있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뒤 고개를 숙인 채 한쪽에 섰다.무진과 함께 잠든 건 정말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정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안금여가 웃으며 말했다.“예전에는 무진이 이렇게 사람을 껴안지 않았는데, 역시 성연일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야.”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아 보이니 어른들로서는 기꺼운 마음이었다.무진이 나이가 차니 집안에서 맞선을 종용하기도 여러 차례였다.비록 병을 앓는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뭐라 해도 무진은 강씨 집안 적장자였다.그러니 딸을 내미는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그러나 무진은 누구에게도 이처럼 가깝게 대하지 않았다.그전엔 여자를 보면 항상 무슨 병균을 대하듯이 피해 다니지 못해 안달이었다.지금 성연과는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안금여의 말을 듣고 있는 성연은 그저 난감할 뿐이다.하지만 성연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무진은 자신을 좀 더 특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대답하지 않고 무진을 바라보던 성연이 물었다.“무진 씨가 왜 아직도 안 일어날까요?”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곤란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혹 무진에게 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자신이 아주 깊이 잠들긴 했지만 죽어 있었던 것도 아니니 설마 기척이 있었는데도 못 들은 건 아니겠지?’운경은 옆에서 말해줬다.“무진이 깼었어. 밥도 먹고 약도 먹었어. 약에 수면 효과가 있어서 깊이 잠들었을 뿐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그제야 마음이 놓인 성연은 더 이상 무진의 잠을 방해하지 않았다. ‘무진 씨는 잠을 많이 자는 게 좋아. 몸도 좀 보양하고.’깨어 있을 때보다 수면 상태에서 더 쉽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게다가 무진이 상한 것은 정신이다. 오래동안 힘들었던 사람이니 이
오후, 성연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무진을 간병했다. 안금여와 운경과 함께 대화도 나누면서.성연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이왕 늦은 이상 아예 가지 않은 것이다.가서 해명하는 시간도 아까웠고.그런데 하필 자신의 반 담임은 여전히 이윤하였다. 만약 이윤하가 자신이 결석계를 내고 또 집에 가는 것을 본다면 또 어떤 문장을 쓸지.‘차라리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아.’무진은 출근하지 않고 강운경 혼자만 출근했다.본가에서 지금 회사에 나와 있는 사람은 강운경 혼자였다.강상철의 사무실.사무실에 들어서는 강일헌의 눈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할아버지, 저쪽의 정보에 따르면 그 분이 또 병으로 쓰러졌답니다. 꽤 심각한 모양이랍니다.”강일헌의 입에서 나온 그 분이 누구인지는 그들 모두 잘 알고 있다.강상철이 바로 냉소를 지었다.“그러게 내가 말했지 않느냐? 그 병자가 어떻게 회사를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있다는 건지, 원. 아마 조만간 일 날 거라고 했지?”강무진은 확실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그러나 그 죽어가는 몸이 문제였다.요 몇 년 동안 계속 명의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이런 놈이 자신들과 싸워서 회사의 지배권을 빼앗으려고 해?’‘큰집 장손이면 다야?’그 놈이 죽으면 결국 회사에 남는 것은 우리 둘째, 셋째 일가뿐 아닌가?’그는 강무진의 의기양양한 기세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맞습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회사를 운영한다고요. 곧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숨을 질질 끌며 살아남아서 맞서다니.” 강일헌은 무진 얘기가 나오자마자 화가 치밀었다.강무진이 회사 실권을 쥐며 그가 맡은 계열사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모두 잘려 나갔다.수익도 예전보다 못했다.그가 강무진을 미워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강무진 그 놈은 미친 놈에 불구일 뿐인데, 무슨 자격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단 말인가.자신의 어디가 강무진보다 못하다는 건지.‘강무진만 끌어내릴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은 바로 나야!’“너, 성질
강상철 쪽이 가히 열심히 주판알을 굴렸지만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게 있었다. 무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또 잘 회복되었다는 것.저녁식사 시간에 성연이 적극적으로 무진에게 국을 떠 주었다.“많이 먹어요.”성연의 호의를 무진이 거절할 리가 없다.연거푸 두 그릇이나 먹었다.‘그래도 이 국 맛이 괜찮네. 뒷맛이 깔끔한 게 맛있네.’“국 맛이 꽤 괜찮네.” 무진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칭찬했다.“괜찮으면 많이 먹어요.” 칭찬을 들은 성연은 꽤 보람을 느꼈다.이 국은 성연이 주방에 가서 직접 강무진을 위해 끓인 것이다.당연히 무진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성연도 그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고.성연은 국에다 아주 귀한 약재를 좀 가미했다.신경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약재들이다.사람들은 대부분 이 약재들을 조합하면 이런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른다.성연이 스스로 연구해 낸 독점 비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강씨 집안 창고에는 많은 약재가 저장되어 있어 성연이 마음대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이미 점차 회복되고 있던 무진은 더 이상 그렇게 무기력한 느낌이 없었다.이전에 발작이 일어났을 때는 적어도 며칠은 걸려야 회복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번에는 회복이 아주 빨랐다.저녁을 다 먹은 후, 기운이 더 넘친 무진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심지어 평소보다 혈색이 더 좋았다.성연은 게임 조종기를 꺼내 소파에 앉아 게임을 했다.그 옆에 앉은 무진은 성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젯밤에 나를 돌보느라 힘들었잖아? 가서 쉬지 않을 거야?”그의 기억에, 오후에도 성연은 계속해서 고모, 할머니와 함께 있으며 쉴 시간이 전혀 없었다.“아니, 난 괜찮아요.” 성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너무 일찍 자면 한밤중에 깨서 오히려 귀찮다.“게임 나랑 같이 해.” 무진이 게임 조종기 하나를 더 꺼내 손에 쥐었다.성연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무진 씨는 이 시간에 쉬러 가는 게 더 낫겠어요. 무슨 게임을 하려고 해요?”“나 지금
화원을 거닐며 산책하던 성연과 무진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거실로 돌아왔다.“보스, 사모님.” 거실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본 손건호가 공손하게 불렀다.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손건호를 본 무진은 뭔가 일이 생겼음을 알아차렸다.무진이 고개를 돌려 성연에게 말했다.“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는 것 같군. 먼저 방으로 돌아가 쉬고 있어.”성연은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게임을 할 때는 못 느꼈지만, 지금 화원을 한 바퀴 돌고 오니 성연 자신도 꽤나 노곤했다.어제 밤을 새며 생긴 후유증이리라.느릿한 걸음으로 걷던 성연이 돌연 계단 입구에서 몸을 돌려 잊지 않고 신신당부했다.“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아요. 일찍 자야 하는 거 잊지 마요.”“그래.”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은 무진이 대답했다.성연이 위층으로 올라간 후, 무진과 손건호는 함께 서재로 갔다.의자에 앉은 무진의 기운이 매섭게 가라앉았다.“무슨 일이야?” 성연을 대하던 온화한 기운이 일시에 사라지며 무진의 온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뻗어 나왔다.급격한 변화에 손건호가 입을 비쭉거렸다.‘이게 바로 소위 ‘차별대우’ 라는 거야.’뭐 그렇다고 항의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어서 곧 보고할 내용을 생각하던 손건호의 안색이 진지해졌다.“보스, 둘째, 셋째 작은 할아버님들 쪽에서 다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 있던 우리 화물이 X국 보안검사 과정에서 세관에 의해 압수되었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화물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모두 가격이 높은 화물들이었다.화물의 가격도 높고.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알 수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들 강상철, 강상규 쪽에서 무진의 발작을 틈타서 꾸민 작품이라는 걸.그 두 늙은 여우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지 않고 있었다.하긴 다른 움직임이 없다면 더 이상할 터.“당장 급하지는 않으니 우선 저들이 또 무엇을 하려는 지 좀 기다려 보지. 이 참에 내 병이 심각하다는 정보를 흘리는 게 좋겠
성연은 이것에 대해 일절 몰랐다.무진이 회복된 후, 성연은 다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연극을 공연한 이후 크게 화제가 된 터라 학교에서 성연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성연은 이미 ‘북성남고의 퀸’으로 불렸다.하루 학교를 빠지고 이틀만에 나온 성연은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자신에 대한 뉴스가 또 게시판에 올라온 거라고 생각한 성연이 핸드폰을 켜서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관심을 끊었다.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성연은 반 학우들의 관심이 쏟아졌다.“송성연, 몸이 안 좋아서 하루 결석계 냈다고 들었어. 지금은 좀 어때? 아직 아픈 데는 없어?”“아직 안 좋은 거라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그냥 한 이틀 더 쉬고 와. 어차피 수업 안 들어도 다 알잖아.”“맞아. 건강이 더 중요해.”아이들 모두 한 마디씩 쏟아내는 관심의 말들에 성연은 얼떨떨한 마음이 들었다.성연 또한 좋고 나쁨을 가릴 줄 알았다.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을 대한다면 자신 또한 마찬가지로 좋은 태도로 대할 것이다.성연이 웃으며 학우들의 말에 화답했다.“모두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이제 많이 좋아졌어.”성연의 대답을 들은 아이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여자아이들 몇 명이 성연의 책상 옆에 서서 재잘거렸다. 주로 성연이 예쁘고 사람도 좋다는 말들에 성연이 겸손하게 대답해 주었다.수업 시작 벨이 울리고서야 모두 아쉬워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모두 성연과 친구로 지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점심 시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온 성연은 보건실에 가서 잠을 잤다.오늘 하루 내내 성연은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보건실로 들어온 성연을 본 서한기가 얼른 문을 닫은 후 말했다.“보스, 큰일 났어요.”“무슨 일이야?” 침대 가까이 다가간 성연이 눈을 휙 치켜 뜨며 서한기를 바라보았다.서한기는 보기 드물게 긴장한 표정이었다.“최근 해외에 블랙문이라는 조직이 있는데 죽기
성연이 집에 돌아가니 강운경과 안금여가 거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리고 무진이 두 사람과 함께 뭔가 의논 중인 것 같았다.먼저 두 사람에게 안부를 물은 성연은 무진의 옆에 앉아 세 사람이 의논하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이야기를 듣던 성연이 눈치를 챘다.WS그룹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무진이 직접 처리하러 출장을 가야 할 모양이다.그런데 공교롭게도 출장지가 바로 X국이었다.성연의 눈동자에 반짝 이채가 돌았다.서한기가 상황을 보고하는 동안, 성연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어쨌든 지금 자신은 강씨 집안에 매여 있는데다 해외로 나갔다 오는 기간도 짧지 않다.자신의 출국을 강씨 집안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동의하지 않을 터.그래서 한창 고민 중이던 차였다.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자신이 염려하던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보였다.그러나 안금여와 강운경은 무진의 건강을 걱정하며 가지 말라고 계속 무진을 설득하고 있었다.“무진아, 업무는 천천히 해도 돼. 네 곁에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무슨 일이든 네가 직접 하려고 하니?” 할머니와 고모는 회사보다 무진을 더 걱정했다.“할머니, 고모, 이 일은 작은 할아버지들과 관련된 거라, 다른 사람은 제대로 처리하기 힘들 겁니다. 제가 직접 갈 수밖에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몸은 이미 문제없을 정도로 회복했어요.”사실 이미 모든 일을 안배해 둔 터라 무진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할머님, 고모님, 아니면 제가 무진 씨랑 같이 가게 해 주세요. 거기서 무진 씨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 돌볼 수 있게요.” 듣고 있던 성연이 끼어들며 의견을 냈다.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녀가 반드시 잡아야 하는.X국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여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아니, 이 애가…….”꾸짖는 듯한 눈길로 안금여가 성연을 돌아보았다.자신들은 무진이 직접 간다는 생각에 반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성연이 함께 가겠다고 나서며 무진의 출장행에 더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준 셈
그리하여 성연과 무진이 함께 출국하는 일이 이렇게 확정되었다.학교 쪽은 성연이 한동안 결석계를 내야 한다고 무진이 이미 교장에게 말해 놓았다. 교장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성연의 결석계를 받아주었다.출국하기 전날 밤, 성연은 방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중이다.X국의 날씨를 검색해 보니, 날씨가 비교적 더운 편이었다. 기후는 북성 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편이고.그래서 성연은 비교적 얇고 가벼운 옷들로 준비했다.선크림이나 스킨케어 같은 제품들도 챙겼다.대신 거기 가서 살 수 있는 것들은 준비하지 않았다.트렁크 하나에 여행에 필요한 성연의 모든 짐들이 담겼다.트렁크를 다 정리한 성연은 무진이 아직 짐을 다 싸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서재로 달려간 성연이 서류를 보고 있는 무진에게 물었다.“무진 씨, 여행 가방 안 싸요? 이미 늦었어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잖아요?”“내일 가는 거 맞아. 서류 다 보고 나서 내가 정리할게.” 무진은 손건호가 건네준 X국 세관에 관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비교적 중요한 보고 내용이라 무진이 보고 머릿속에 기억해 둘 필요가 있었다.“그럼…… 내가 대신 짐을 챙겨줄까요?” 예전부터 임무를 수행할 때면 자주 비행기를 타고 다녔던 성연인지라,여행가방 싸는 데에 꽤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너 짐 챙길 줄 알아?” 무진은 좀 놀랐다. 성연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짐을 대신 싸겠다고 할 줄도 알고, 이제 진짜 약혼녀 신분에 걸맞는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 그거 무슨 뜻이에요? 지금 사람 무시하는 거예요?”무진이 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성연은 알 수 없는 불쾌함이 올라왔다.“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너를 무시하려던 뜻은 없었어. 옷장 안의 옷, 아무거나 몇 벌 가져가면 돼.” 무진이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몇 마디 더 한다면 성연이 아마 폭발할지도 모른다.흥, 코웃음을 친 성연이 서재에서 방으로 돌아온 뒤, 무진을 대신해 가져 갈 옷들을 챙겼다.여행가방을 완전히 채우지 않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
눈썰미가 좋은 미스 샤넬은 불쑥 걸음을 멈추었다.같이 손을 잡고 가던 성연도 덩달아 멈춰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물었다. “왜 그래?”미스 샤넬이 사실대로 말했다.“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안진검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미스 샤넬을 보았다.미스 샤넬이 자신을 알아봤음을 눈치 챈 안진검은 서둘러 선글라스를 끼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계속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지만 그래도 좀 낭패스러웠다.속으로는 정말 놀랐다.샤넬 가문의 장녀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빌어먹을?’‘그녀가 나를 말했을 지도 몰라.’‘미스 샤넬이 정말 내 이름을 말한다면, 내 신분 배경이 드러나면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줄지도 몰라.’안진검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앞으로 계속 동정을 살피면서 들켰는지 어떤지 지켜보는 수밖에.’‘만약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계획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어.’간신히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안진검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어렴풋이 이상하다고 느낀 성연도 바로 물었다.“누군데요?”미스 샤넬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죠.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이곳 북성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목현수가 옆에서 바로 말했다.“잘못 본 게 분명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맞아요, 나는 여전히 성연 씨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스 샤넬은 다시 성연의 손을 잡았다.그들이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손건호가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을 관광지로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무진에 대해서는 목현수도 자료를 좀 조사한 적이 있었다.손건호가 무진의 오른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이번에 손건호가 성연을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모양이군.’그러나 강무진이 직접 자신을 예의 감시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놓았음을 의미했다.목
이튿날 출근하던 무진은 푹 안심한 마음으로 성연에게 목현수를 방문하라고 했다.미스 샤넬이 있는 목현수가 자신의 여자에게 다른 시도를 할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성연은 차를 몰고 호텔로 가서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찾았다.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했던 그녀는 목현수와 미스 샤넬이 북성에 오자 마침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똑똑똑.” 성연이 객실 문을 두드렸다.한참 기다렸지만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핸드폰을 꺼내 목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목현수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야 목현수가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즉시 말했다.“사형, 미스 샤넬하고 어디 나갔어요?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예요? 나는 바로 룸 앞에 와 있는데.”“방 앞에 있다고?” 그제야 잠에서 깬 목현수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2분가량 지나서 핸드폰 건너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바로 문을 열어 줄게.”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성연이 목현수의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미스 샤넬은?”“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목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어제 유럽에서 왔으니, 시차 때문에 피곤한 건 아주 정상이죠 뭐.”목현수가 곧장 침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성연은 소파에서 기다렸다.10분 뒤에 미스 샤넬이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성연을 보자 눈을 살짝 떴다.“성연 씨, 왔네요.”성연은 미스 샤넬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데리고 관광을 나갈 생각이에요.”“곧 나올게요.” 다시 방에 들어간 미스 샤넬은 화장을 마치고 나왔다.그런데 미스 샤넬의 옷 사이로 옅은 붉은 색 흔적들이 성연의 눈에 들어왔다.경험한 적이 없지만 본 건 있는 성연.그 흔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사형과 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