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아직 어렸던 보스가 부모님이 외출하시지 못하게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대표님과 사모님은 집을 나서셨지요. 그 후, 비가 오는 밤은 보스의 발작을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다만, 사모님이 오신 이후로 한동안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오늘 밤 다시 발작이 시작…….”손건호의 안색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무진은 부모님의 비행기 사고 과정에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비가 오는 밤이면 늘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부모님의 사고 소식이 그에게 준 타격은 두말할 것 없이 치명적이었다.요 몇 년 동안 줄곧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아왔지만 끝내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줄곧 힘들게 버티며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성연이가 온 이후 무진은 힘들게 고통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성연으로 인한 효과가 예상치 못하게 효력을 잃은 듯했다.손건호의 설명을 들은 성연의 안색도 그리 좋지 않았다. 손건호를 돌아본 성연이 물었다.“심리 상태가 안 좋은 걸 알면서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비상 키 가져오세요.”성연도 어떤 때는 심리적인 고통이 신체적인 상처에 의해 더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무진은 지금,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아마 그는 부모님의 비행기 사고가 발생했던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을 것이다.부모님이 자신 앞에서 죽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게, 가히 짐작되었다.성연의 말을 들은 집사가 대답했다.“작은 사모님, 우리에겐 예비용 키가 없습니다. 이 서재는 도련님만 열쇠가 가지고 계십니다. 이 자물쇠도 특수 제작된 것이라 부수기 어렵습니다.”무진은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스스로 이런 환경을 만들었다.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까 봐 방에 자신을 가두는 선택을 한 것이다.발작이 끝나면 무진은 거의 죽다 살아난 상태였다. 서재도 완전히 아
옆에서 무진의 반응을 관찰한 성연은 확실히 무진이 발작한 것이 맞았다.눈동자가 탁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평소의 깊고 까맣던 눈동자에 붉은 핏발이 가득 맺혀 있었다.무엇보다 체격이 큰 무진은 흡사 미쳐 날뛰는 야수처럼 무서워 보였다.누군가 들어온 것을 눈치챈 듯 했으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무진의 감각 기관이 모두 닫힌 듯하다. “저리 가, 나가, 꺼져!”목이 쉬도록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부모형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이다.성연이 천천히 다가갔다.맥을 짚어 봐야지 무진이 어떤 상태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터.성연이 이곳 엠파이어 하우스에 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무진의 발작은 처음 보았다.그런데 예상치 않게 무진이 비수 같이 날아들어 성연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한순간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던 성연을 무진이 온몸으로 압박했다. 무진의 힘이 너무 세서 성연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다행히도 그때 성연을 혼자 내려 보낸 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손건호가 따라 내려왔다.이 장면을 보는 순간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만약 자신이 성연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무진이 나중에 알게 된다면 자책감으로 괴로워할 것이 분명했다.손건호는 지체없이 달려가 무진을 성연에게서 떼어놓았다.그러자 다시 숨을 쉬게 된 성연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성연은 즉시 과감하게 무진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손건호가 물었다.“사모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손 비서님. 어서 무진 씨를 데려다 침대에 눕히죠.”후들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일어난 성연이 호흡을 가다듭었다.계속 걱정이 된 손건호는 무진을 부축해서 문을 열면서 의사에게 무진을 보이려 했다.무진의 발작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의사에게 연락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의사가 앞으로 나와 무진의 상태를 보려고 했다.그러나 성연이 가로막았다.“가까이 오지 마세요.”의사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돌려 손건호를 보았다.손건
그날 밤, 엠파이어 하우스의 모든 이들이 밤을 꼬박 새웠다.성연 또한 밤새워 무진의 침대 옆을 지켰다.무진이 완전히 안정을 찾은 후에야 여유가 생긴 성연이 무진의 맥을 짚었다.맥을 짚던 성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무진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짚어보지 않았다면 무진의 몸이 이렇게 나쁘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평소에는 멀쩡해 보였으니까.성연이 바로 고개를 들어 손건호에게 물었다.“요즘 무진 씨 제대로 식사 안 했어요?”딱 봐도 자신의 건강에 신경 쓰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제대로 관리한다면 그렇게 나빠지지는 않을 테지만.손건호가 바로 대답했다.“저녁에 사모님과 함께 계실 때는 식사를 잘 하시지만 낮에 회사에 계실 때는 확실히 제대로 드시지 않았습니다.”WS씨그룹을 인수한 지 얼마 안된 상황이라 회사에 아직 남아있는 둘째 작은할아버지 강상철과 셋째 작은할아버지 강상규의 사람들을 정리하느라 무척 골치가 아팠다.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늙은 여우들도 적지 않았고.또 지금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무진은 매일 같이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 보니 몸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식사할 시간도 없이 회의가 연이어 있는 일도 다반사였다.가끔 식사를 하게 되더라도 이미 입맛이 잃은 무진이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그렇다고 누가 감히 무진에게 식사를 강요하겠는가? 손건호 또한 기껏해야 두 마디 거들 수 있을 뿐.한 번 일에 집중하면 미친 듯이 빠지는 보스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날 일을 다 처리하지 전엔 절대 손을 놓지 않는 강무진이었다.그런 생활이 오래도록 이어지며 무진이 제대로 식사하지 않는 건 이미 일상화가 되어버렸다.宋星凉立刻就不爽了。손건호의 말을 듣자마자 성연은 바로 화가 났다.자신은 이곳에서 고생고생 해가며 강무진을 치료했는데, 정작 강무진 이 인간은 자기 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이 인간은 환자로서의 자각이 조금이라도 있기나 한 거야?’성연이 화가 나서 말했다.“진작에 제때에
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진의 상태는 정말이지 낙관할 수 없었다.무진의 조광증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성연은 자연히 이런 상태도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성연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전에도 많은 난치병들을 치료했었다.증상이 드러나야만 그 증상에 맞는 약을 쓸 수 있다.늦은 시간이었지만 안금여, 강운경 그리고 조승우까지 모두 달려왔다.모두 잔뜩 걱정스런 얼굴들이다.고모 운경이 먼저 물었다.“성연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멀쩡하던 무진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니?”이때 침대에 누워있던 무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불긋불긋한 얼굴이 보기조차 안스러웠다. “그러게. 성연아, 무진이 평소 꽤 건강했잖니?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이리 몸이 펄펄 끓는 거야?”옆에 있던 안금여도 질문을 했다.성연은 무진의 발작이 시작된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조금 전 자신이 진단했던 무진의 상태를 강운경과 안금여에게는 아직 말할 수가 없었다.강씨 집안 사람들의 눈에 자신은 그저 의술을 조금 알고 있는 정도이지 전문 의료인이 아니었으니까. “에효, 간신히 좀 좋아지나 했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구나.” 안금여가 휴 한숨을 내쉬었다.모두들 성연이 온 후로는 무진이 더 이상 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니 이번 발작이 그전보다 더 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예전에는 발작이 지나가면 무진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이번 같은 고열은 없었다.하느님이 무진을 불쌍하게 여기길 빌 밖에. 부디 양친 부모를 잃은 무진이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해주길 빌었다.“장모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 볼게요.”고모부 조승우가 장모 안금여를 위로하며 말했다. 의료 상자에서 청진기를 꺼내 무진을 진찰했다.진찰을 마친 조승우의 안색이 어두웠다. “어때요?” 강운경은 초조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지만 무진을 자극할까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별로 안 좋아. 무진이 열이 심한데다 몸이
철이 든 성연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건 잘 알았다.하지만 안금여는 성연의 마음을 거절했다. 성연의 손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무진을 돌보는 일은 집사와 고용인들에게 맡기면 된다. 너는 내일 학교에 가야지. 학습을 우선을 해야 하는 게 옳아.”비록 성연이 이미 자신들 강씨 집안의 사람이 되었지만, 제대로 공부를 해 둬야 앞으로 사회에 나갔을 때 좀 더 쉽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런 일로 성연이 공부를 방해해서는 안되지.’ “학교 수업은 제가 충분히 따라갈 수 있어요, 할머니. 제가 여기서 무진 씨를 돌보게 해주세요. 안그러면 제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성연은 기어코 학교에 가려 하지 않았다.안금여와 다른 사람들은 성연의 학업 성적을 잘 모르기에 자연히 일반학생처럼 생각했다.북성남고를 다니는 건 단지 학창 생활을 체험하기 위한 것일 뿐, 고등학교 졸업장에 준하는 증서를 이미 손에 넣은 성연이다.더 중요한 것은 무진의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만약 이대로라면 만일의 하나 안 좋을 수도 있었다.어쨌든 자신이 무진에게 침을 놓은 것이니까.늘 이렇듯 철이 든 성연은 윗 어른들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강운경과 안금여를 너무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말려도 또 말렸지만 결국 성연은 무진 곁에 남았다. 기왕 성연이 남은 이상 안금여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무진의 약혼녀인 성연이 남아서 돌보는 것도 당연했다.지금이 저들 젊은 부부의 감정이 발전하기 좋을 때이기도 하고.그리하여 그날 저녁, 집사는 안금여가 묵을 방을 준비해 주었고 몇 사람도 엠파이어 하우스에 남아서 쉬었다.운경은 잠도 자지 않고 무진의 방에 남아 성연을 도왔다.그동안 성연은 거의 30분 간격으로 무진의 체온을 쟀다.밤새 왔다갔다하며 수건을 물에 적셔 무진의 이마에 올리고 또 손과 몸을 닦아주며 체온을 낮추려 애썼다. 마치 뱅글뱅글 끊임없이 도는 팽이처럼 멈추지 않았다.성연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옆에 있던 운경은 더
성연이 하는 모든 동작들을 운경이 눈에 담았다.이렇듯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자 운경은 속으로 성연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 성연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점차 내려놓았다.무진은 성연의 정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성연의 보살핌으로 무진의 열이 서서히 내렸다.무진의 체온을 마지막으로 재니 날이 밝아왔다.체온계에서 이미 내려온 온도를 확인한 성연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날 뻔했다.드디어 열이 내렸다.밤새 정신없이 간병했던 성연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어지간히 피곤한 게 아니었다. 무진의 열이 내리며 성연의 큰 돌덩어리가 내려앉은 듯했던 마음도 자연히 좀 가벼워졌다.침대 옆에 엎드려 정신없이 잠들었다.성연이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진이 깨어났다.눈을 뜨니 침대 옆에 엎드려 잠든 성연이 보였다.마침내 깨어난 무진을 본 운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진 곁에 다가가 춥거나 덥지는 않은지 살폈다.“무진아, 지금 좀 어때? 어디 힘든 데는 없니?”무진은 여전히 기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발작을 하고 또 고열을 앓았으니 몸 안의 거의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낸 상태.무진의 안색이 창백했다.그러나 말없이 고개만 돌린 무진의 시선이 성연이에게로 향했다.성연을 보는 운경의 표정도 많이 부드러워졌다.“성연이 얘, 어제 밤새도록 너를 간병했어. 네 체온을 재고, 물을 먹이고, 얼마나 세심하게 돌보던지.”애초 처음 만났을 때의 성연에 대해서는 그저 어린 여자아이라는 인상만 받았다.나이도 어려서 무진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진이 돌봐야 할 것 같았다.그러나 어젯밤 정성껏 무진을 돌보던 성연을 보며 자신은 성연만큼 잘 돌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성연의 몸에는 젊은 애들 같은 경박스러움이 전혀 없었다.생각해 보니 성연이 강씨 집안에 온 지도 꽤 되었지만 성연에 대해 일반적인 대우 밖에 해준 게 없었다. 하지만 무진은 오늘 같은 간병으로 성연을 귀찮게 하고 있으니, 운경은 속으로 무척 미안하고
운경이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성연이가 진짜 고생했어. 네가 회복되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지. 가서 네 고모부 보내서 네 상태를 좀 살펴보라고 해야겠다.”말하면서 운경이 밖으로 나갔다.무진이 고모를 만류했다.“고모님, 그만 두세요. 온몸에 기운이 좀 없는 것 외에는 큰 문제 없어요. 그냥 배가 좀 고프네요.”운경은 즉시 주방에 연락해서 먹을 것을 가져오게 했다.무진의 상태 때문에 엠파이어 하우스의 모든 고용인들이 항시 대기 중이었다.무진에 깨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이미 죽을 쑤어 놓은 상태였다.죽을 가져왔을 때는 이미 먹기 좋은 온도로 맞춰져 있었다.운경은 무진에게 떠먹여 주려 하자 무진은 실소를 터트렸다.“고모,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안 그러셔도 돼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조금 전 성연을 안아 눕힐 정도의 기력이 있었던 걸 생각하니, 자신의 동작은 확실히 좀 과한 듯도 했다.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한쪽에 앉아서 무진 죽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 고모부가 보지 않아도 되겠니?”여전히 걱정이 걱정스러운지 운경의 미간이 접혀 있다. “괜찮아요, 고모. 저 정말 괜찮아요.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무리하지 않을 게요.”무진이 운경을 달랬다.운경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무진이 죽 한 그릇을 비우자 운경이 빈 그릇을 받으며 물었다.“더 먹을래?” “배불러요, 고모. 그만 먹을래요.”무진이 좀 기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고모 운경은 그를 마치 어린아이 돌보듯 살폈다.하긴 무진이 부모를 잃을 때부터 줄곧 운경이 자기 아들처럼 보살폈으니.자식에 대한 여타 부모들의 애정 못지 않게 무진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았다. “그까짓 죽 조금 먹어서야 되겠니? 너 몸이 많이 약해져서 좀 더 보충해야 돼. 안 그러면 어디 기운을 차리겠니? 널 좀 봐, 항상 성연이더러 너를 돌보게 해서야 웃음거리가 아니고 뭐겠니?”운경이 무진을 나무라듯이 흘겼다.결국 운경의 설득을 못 이긴 무진이 죽 한 그릇을 더 비
성연이 일어났을 때 무진도 잠에서 깼다.무진이 성연의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뭐 하러 갈려고?”성연은 무진이 이렇게 빨리 깰 줄 몰랐다.“씻고 올게요.”무진이 성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다시 힘껏 잡아당기자 성연이 그의 품 안에 떨어졌다.성연을 끌어안은 무진의 눈에 만족의 빛이 차올랐다.“좀 더 자, 어젯밤에 별로 못 잤잖아.”성연은 발버둥을 쳐서 간신히 무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안돼요. 수업하러 학교 가야 돼요.”잠은 학교에 가서 보충할 수 있었다.무진이 좋아졌으니 그녀가 옆에 있을 필요도 없고.그러나 성연을 껴안고 놓지 않던 무진이 그 틈에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두 손이 잡힌 성연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그리고 점점 무진의 키스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심리적으로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성연은 자신이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이 사람, 어젯밤 발작하던 그 남자 맞아?’이 남자, 일부러 자신의 병을 이용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뭐가 이렇게 뻔뻔해?’성연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세게 자신의 입술을 빡빡 문질렀다.얼굴이 맞닿아 있는 남자를 향해 화를 내며 말했다.“강무진, 일부러 그런 거죠?”‘진짜 내가 자기 속셈을 못 알아차릴 아나?’‘남자들은 역시 다 똑같아!’“뭐? 일부러 그랬다고?” 무진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성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에 무진 씨가 어땠는지 잊었어요? 지금 기운 차리자마자 이런 짓이나 하고, 보니까 병도 심각하지 않네, 뭐.”무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네가 내 옆에 있어야 잘 회복할 수 있지. 네가 가면 내가 잠을 잘 수 없어.”애초부터 확실히 무진은 성연을 자신의 치료제로 여겼다.성연이 있어야 제대로 잘 수 있다는 사실은 가까운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성연에게 자신과 같은 방에서 자자고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