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눈으로 성연의 동작을 보았지만 무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은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연경훈은 그야말로 천둥이 내려치자마자 알아서 할 생각은 없이 내쳐 강무진에게 달려와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고 있었다.‘내가 숨어도 고생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이런 생각을 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이 어리바리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말았어야 했는데.’그에게 어떤 착각을 주었나 보다.돌로 자신의 발을 찧은 기분은 처음이었다. 성연은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그런데 무진이 입을 열었다.“여자들은 모두 부끄러움이 많으니 서두르지 마.”성연은 조금 전 무진의 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게 들렸다.‘강무진은 어째서 뭐든 다 안다는 투야?’원래 경훈이 나 죽었소, 하고 고백하던 상황에 강무진이 거기에 끼어든 셈이었다.‘이 사람 너무 한가한 거 아니야? 할 일도 없이.’‘회사 업무가 그다지 안 많은 거야, 뭐야? 다른 고백까지 자기가 참견하고?’성연도 진심 승복했다! 강무진은 평소에도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던가.화가 난 성연은 현재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게임 조종기를 내던진 성연이 위층으로 올라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졸려요. 씻고 잘 거예요.”성연은 남은 두 사람이 뭐라고 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쿵쿵 소리를 내며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무진의 눈에 새카만 빛이 돌았다.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일부러 빈틈을 드러내는 걸까?’무진의 안색을 보던 경훈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몇 분이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물었다.“형님, 형수님 왜 그러시는 거예요?”성연이 방금 떠나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에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설마 내가 화나게 한 건 아니겠지? 아무것도 안 했잖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성질을 부리는 것뿐이야.” 생각이 돌아온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경훈은 무진의 침착함에 탄복했다. 궁금증이 인 경훈이 물었다.“형님, 저 나이의 여자애들은 기분 맞추기 너무 힘들지 않아요? 정말
무진이 문 앞에 서서 한참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성연은 나와서 문을 열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무진은 할 수 없이 서재에 가서 하룻밤 지낼 수밖에 없었다.성연의 성질은 정말 종잡을 수 없게 했다.그날 밤, WS그룹은 또 다시 공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맹렬했다.WS그룹 전산팀의 방화벽이 차례대로 함락되자, 세계 유수의 대학들을 졸업한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할 지경이 되었다. 사태를 지켜보며 곧 짐보따리를 싸서 나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회사에서 지키고 있던 손건호가 즉시 무진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했다.“대표님, 회사가 또 공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쪽이 거의 무너질 것 같습니다.”무진의 휴대폰은 회사 전산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었다.공격을 당했을 때, 무진의 휴대폰으로도 메시지가 떴다.다만 처음에는 공격이 미약해서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WS그룹 전산시스템에는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서류들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매일 수많은 이들이 그룹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돈 되는 것들을 빼내 가려 아우성이었다.그 중에는 경쟁 기업도 있었다.물론 WS그룹의 전산팀도 영 맹탕은 아니어서 웬만한 해커들을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오늘 밤 공격한 해커는 예전의 바로 그 고수인 것 같았다.공격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지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무진이 입술을 꽉 다문 채 지시를 내렸다.“동영상을 켜.”동영상 화면을 켜자 바로 손건호 쪽과 영상으로 연결되었다.그리고 해커와의 싸움에 뛰어들었다.그러나 상대방의 해킹 기술이 어찌나 뛰어난 지 마치 한 줄기 바람 같아 잡을 수가 없었다.손건호와 전산팀 전체 직원들이 숨막히는 장면을 똑똑히 지켜보았다.“이 정도면 그쪽 세계에서도 거물급 인물이야. 요즘 해커계에서 이런 인물이 나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설마 내가 뒤처진 거야?”“아휴, 이런 고수들은 깊이 숨어서 자신을 절대 드러내지 않
피곤해진 성연은 바로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이튿날 깨어나니 무진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침실에서 자지 않았는데도 무진은 원기 왕성해 보였다.그에 반해 성연은 밤을 꼬박 새운 듯 온몸이 노곤했다.어젯밤에 해킹하다 지쳐서인지 숨도 쉬기 힘들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도 눈을 감은 채 겨우 아침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교실에 도착하면 원래 정신이 좀 돌아올 줄 알았다.그러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는지 오전 수업을 듣는 내도록 잠이 덜 깬 상태였다.머리도 지끈지끈 아팠다.성연은 이미 수업 듣는 것 같은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다.그냥 책상에 엎드려서 잤다.성연은 오전 내내 잠만 잤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 수업을 마칠 시간이었다.완전 개운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켰다.오전 내내 잠을 보충한 성연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느릿느릿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오후에는 체육 수업이 있었다. 오전 내내 책상 앞에서 풀려난 학생들은 점심 시간이 되자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어다녔다.체육 선생님은 키가 크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데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 꽤나 엄해 보였다.체육선생님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모두 수업이 끝난 것 못 봤어? 체육위원은? 집합할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너희들 자신을 돌아봐라. 모두 어떤 꼴인지? 체육 수업이지만 단체 규율을 지켜야지!”매우 우렁찬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야 반장이 서둘러 열을 정리했다.모두들 체육 선생님 앞에 가지런히 서 있었다.체육 선생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모두 우선 운동장을 세 바퀴 돈다. 그리고 체육위원은 몇 사람에게 농구공과 배구공을 가져오라고 해.”학생들은 불평하지 않았고, 체육위원은 모두를 데리고 달리기를 했다.이번 시간에 체육 선생님은 남학생은 농구, 여학생은 배구를 하게 했다.처음에는 선생님이 경기 규칙을 알려주고 시범도 보여 주었지만, 뒤에는 기본적으로 자유 활동이었다.체육시간을 성연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아침 내내 잤더니 몸이 잔뜩
성연은 대충 얼버무리려는 태도를 한눈에 알아챘다.눈을 가늘게 뜬 성연의 눈빛이 날카로웠다.“너희 집에서는 이렇게 사과하라고 가르치니?”성연의 명성을 줄곧 들어왔던 여시화는 성연을 한 번 만나고 싶었다.자신의 눈에는 시골뜨기에 불과할 뿐이다.성연을 당해내지 못하는 저들이 바로 바보 멍충이인 것이다.당연하다는 듯한 여시화의 태도는 자못 도도했다.“나는 늘 이렇게 사과해 왔어요.”성연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여시화의 눈이 의기양양해하는 빛으로 반짝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시골뜨기에 불과하니까 이렇게 빨리 수긍하는 거겠지.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잠시, 성연이 손에 들고 있던 배구공을 바로 여시화의 얼굴 쪽으로 던졌다.동공이 수축되고 온몸이 굳은 여시화는 멍하니 제 자리에 선 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배구망만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성연은 아주 적절하게 힘 조절을 했다. 배구공은 여시화의 얼굴 옆을 스쳐 갔다. 다른 쪽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이 동작은 여고생 하나 겁주기에 충분했다.놀란 여시화는 바보처럼 멍하니 있었다.그런 여시화의 모습에 자신의 경고가 먹힌 것을 보며 성연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미안해요, 나도 고의가 아니었어요.”말을 마친 성연이 공을 주워 몸을 돌려서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려 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시화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너, 거기 서.”이런 촌뜨기에게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말 창피해.’그러나 그 순간, 만약 성연이 진짜로 때렸다면 자신의 얼굴은 아마 완전히 망가졌을 것이다.성연이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그러나 아무 말없이 눈썹만 치켜세웠다. 그 뜻은 매우 분명했다.‘또 용건이 남았니?’성연은 여시화의 목적이 무척 뚜렸하다고 생각했다.공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로 자신을 향해 그대로 날아왔다.분명히 고의로 자신을 괴롭힌 게 분명했다.여시화가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성연 또한 예상했다.그
주위의 학우들이 입방아를 찧어대며 성연에게 손가락질을 했다.듣고 있던 성연은 그저 냉소만 나왔다.여시화는 연기도 훌륭했다. 머리도 좀 있는 편인지 여론을 이용해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줄 알았다.성연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여시화의 공연을 지켜보았다.진우진도 소리를 듣고 왔다. 상황을 보던 그가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무슨 일이야?”진우진을 본 여시화가 더욱 서럽게 울었다. 돈 들일 필요도 없겠다 눈물을 마구 흘렸다.눈시울이 붉어져 무척이나 가련해 보이는 모습으로 여시화가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저기서 배구를 하고 있었는데, 공이 날아갔어. 송성연 학우를 건드리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과했어. 그런데 사과를 받아 주기는커녕 일부러 배구공으로 날 쳤어. 난 그저 실수였는데, 이러는 건 너무 지나치잖아.”여시화는 고의로 주객을 전도시켰다. 분명히 그녀의 태도가 잘못되어서 한 마디 한 건데, 지금 마치 성연이 지나치게 행동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입을 꽉 다물고 눈썹을 치켜세운 성연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여시화가 또 어떻게 나오는지 볼 생각이었다.여시화를 보고 있다가 성연이 보이자 진우진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결국 진우진은 성연을 위한 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송성연 학우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야. 무슨 오해가 있는 게 아냐?”성연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는 성연이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여시화는 설마 진우진이 송성연을 편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말도 못하고 주먹만 꽉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던 여시화가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진우진을 바라보았다.이때 여시화의 곁에 선 다른 아이들이 서로 나서서 말했다.“진우진, 너 송성연에게 속지 마라. 우리 모두 여기서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시화가 말한 대로 송성연 일부러 그런 거야.”“그래, 모두 옆에서 봤어. 송성연의 행동을 모두 다 눈으로 봤단 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말을 한 후, 성연은 바로 배구공으로 여시화의 배를 때렸다.공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곧장 여시화의 복부에 꽂혔다.성연은 손목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공을 내려치긴 했지만 사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겁지 않았다.이렇게 한 까닭은 겁을 먹은 여시화가 좀 수그러들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자신도 당할 수만은 없었으니까.손바닥의 먼지를 턴 성연이 말했다.“봤지? 이게 고의야.”여시화 얼굴은 경악 그 자체였다.모두가 자신을 두둔하는 상황에서 송성연은 어떻게 감히 저럴 수 있지?여시화는 배에 약간의 진동만 느꼈을 뿐 별로 아프지 않았다.하지만 송성연이 이렇게 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할 수는 없었다.성연이 얼마나 못된 행동을 했는지 모두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송성연의 이런 행실을 본 후에도 진우진이 그녀를 편들 수 있을까?여시화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몸이 더 빨리 반응했다. 바로 허리를 구부리며 배를 가린 채 괴로워하는 모습을 연출했다.“아, 아파, 배가 아파.”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 하나가 즉시 앞으로 나서며 성연을 비난했다.“송성연, 어쨌든 모두 한 곳에서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인데 어쩜 이럴 수 있니?” “학우를 괴롭히기나 하고, 네 눈에는 도대체 학칙이 들어오기나 하니? 시화의 공은 너를 전혀 건드리지도 않았고, 또 너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태도니?” “맞아, 너 너무하다. 어떻게 사람을 때리니? 만약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려고?”모든 아이들이 분노의 눈길로 성연을 보고 있었다. 이전에 성연의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 않았는데, 오늘 직접 보니 성연이 소문보다 더 제멋대로 굴며 날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에 돈 있고 배경 있어도 저러면 안되지.] [교양이 전혀 없어. 정말 역겹다.]저들의 눈빛과 하는 말을 성연은 청구서 받듯이 그대로 다 받았다.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꼿꼿이 서서 아이들의 말에 대해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이때 아이들 속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서한기가 담담하게 말하고는 여시화의 몸을 꼼꼼하게 검사하기 시작했다.검사가 끝난 후 서한기가 말했다.“별일 없는 것 같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이 상처 다 나아 있었을 텐데 말이야.”조금 전 쫓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본 서한기는 자기 보스가 문제를 일으킨 줄 알았다.하지만 보스는 항상 본분을 지킬 줄 알았다. 그러니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검사를 하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정말 속셈도 많아.’순간 깜짝 놀란 여시화가 서한기에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여시화는 서한기가 이처럼 빨리 알아차리지는 못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서한기는 여시화가 여전히 연기하는 걸 지켜보았다.서한기가 코웃음 치며 자못 꽤나 딱딱하게 말했다.“방금 내가 눌렀던 부위 몇 군데가 공에 맞았던 데 맞아? 분명히 아니잖아? 공의 작용점은 이 범위 내야. 또 네 배는 벌겋게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아파?”자신의 연기가 들통나자 여시화가 얼굴을 붉혔다.서한기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이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여시화에게 향했다.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여시화는 얼굴이 더 화끈거리는 듯했다.평생토록 이렇게 창피한 적은 없었다. ‘모두 송성연 때문에 망했어. 모두 쟤 때문이야!’아까 여시화를 거들어 주던 아이가 그녀의 표정을 본 뒤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시화의 뒤에서 따지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진짜 시화가 일부러 그런 척한 거야? 아니, 왜 그런 건데? 설마?] [맞아, 아무 이유도 없이 시화는 송성연을 왜 모함한 거야? 둘 사이에 무슨 원한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평소에 그렇게 착해 보이던 시화가 이런 애라고? 송성연 뒤에 대단한 후원자가 있다더라. 교장도 그녀에게 관여하지 않는데 보건교사 한 명 매수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뭐.] [하긴, 전에 보건교사와 송성연이 연애한다는 소문도 있었잖아? 이런 상황에
여시화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새파랗게 질렸다. 서한기가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그럼 뻔한 거 아냐? 여시화가 거짓말하고 있다잖아?] [자기 직업으로 농담을 할 사람은 없을 거야.]서한기가 다시 물었다.“너, 나와 같이 병원에 가서 검사 받을 용기는 있기나 하니?”여시화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만약 정말 간다면, 그녀가 거짓말을 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겠는가?그녀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만약 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정말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다.송성연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했을 뿐인데, 사태가 이 지경까지 발전하게 될 줄이야. 여시화는 일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결국 일개 여고생에 불과한 여시화는 그리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두말 세말 하더니 곧 본 모습을 드러냈다.모두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여시화의 이런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제 발 저린 모습이 아니가. 설마 진짜 송성연을 모함한 거란 말인가?다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여시화를 바라보며 그녀의 해명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이때 한 여자아이가 사람들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아이는 평소 겁이 많고 말을 좀 더듬었다.그래서 학교에서 자주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드물게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온 여학생이 성연을 위해 증언했다.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으니 긴장하고 불편한 마음에 말을 더듬으면서도 또박또박 증언했다.“방금, 여시화가 못되게 굴었어. 먼저, 먼저 송성연을 공으로 쳤어. 그리고…… 사과하는 태도 때문……. 성연이가 그래서 여시화에게 그런 거야.”갑자기 밝혀진 진실에 여시화는 한 대 호되게 얻어맞은 듯했다.이제 와 다시 여시화를 보니 한 떨기 수련화를 연출한 것에 불과했는데, 그동안 모두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군중 속에서 여시화에 대한 비난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평소 내가 보기에 여시화 괜찮은 아이였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