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무진이 집에 돌아오니, 성연은 이미 소파에 틀어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연씨 어르신의 병세는 이미 많이 호전되어 성연의 침 치료 시간도 점차 단축되었다. 그래서 무진이 왔을 때 성연의 치료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그리고 딱 그 장면에서 무진과 맞닥뜨렸던 것이다.그 당시 장면을 생각하니 어떤 태도로 무진을 대해야 할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그러나 무진이 들어오는 걸 보고도 성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게임만 했다.성연의 옆에 말도 없이 앉아 있는 무진은 성연의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심리적 압박감이 배가 된 성연은 마음 놓고 계속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얼른 하던 스테이지를 마무리한 성연이 고개를 돌려 무진을 보았다.“나에게 할 말이 있어요?”게임 화면을 힐끗 본 무진은 ‘게임 종료’라는 글자가 위에 떠 있는 게 보이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동아리 활동이 왜 그렇게 많아? 너희 동아리에 무슨 공연이 필요하다고?”타이밍이 정말 절묘했다.특히 연씨 집안에서 치료하는 고 선생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이 송성연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비록 얼굴을 바꾸긴 했지만, 성연이라는 생각이 집요하게 드는 것이다.성연도 알아차렸다. 무진이 의심하기 시작한 이상, 개교기념일이 더 이상 최선의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하지만 성연은 이 또한 이미 대책을 세워 놓았다.성연이 느릿느릿하게 대답했다.“그건 아니지만, 떠들썩한 분위기에 함께 하는 거예요. 무진 씨도 알다시피, 시골의 예전 학교에는 개교기념일 같은 게 없었어요. 처음 경험하는 거라 그런지 좀 신기해요.”“이제 많이 참석해서 이미 질릴 때도 되지 않았어? 넌 공연에 참가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 리허설을 보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성연의 핑계는 꽤 합리적으로 들리긴 한다.그러나 성연에게 놓고 보자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느껴졌다.‘성연은 이런 데 관심 있는 것 같지 않아.’‘게다가 그저 옆에서 어울리
이튿날, 앞으로 무진이 자신을 데리러 올까 걱정한 성연은 점심 시간에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냈다.전날은 모범학생이 되어 보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다음 날 스스로 체면을 구긴 셈이 되었다. 계획에 변수가 생겼던 탓이다.성연은 집사를 따라 연씨 저택의 거실로 들어갔다.거실에서 연강휼, 하지연과 함께 대화 중인 무진을 본 성연은 일순 정신이 멍해지며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성연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강무진, 오늘 고의로 온 거지?’시간을 조정하고 또 조정해서 맞닥뜨리지 않을 시간을 간신히 찾았건만, 어떻게 지금 이 시간에 이 사람과 부딪힐 수 있단 말인가?성연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소파에 앉아 있던 하지연이 먼저 성연을 보고 고개를 들어 인사를 건넸다.“고 선생님, 왔어요?”성연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했다.무진을 보는 순간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곧바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그리고 바로 별다른 말없이 위층으로 올라가 어르신에게 침을 놓았다.오늘 성연의 동작은 눈에 띄게 빨랐다.무진이 이곳에 등장하리라는 의외의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에 성연은 진짜 당황하고 말았다.침 치료를 끝낸 성연이 땀을 닦으며 하지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죄송하지만 사모님,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막 주방에서 성연에게 줄 간식을 준비할 생각이었던 하지연은 이미 시간 계산을 했었다. 치료가 끝나면 성연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간식 준비가 얼추 끝날 터였다.그런데 오늘 성연이 이렇게 급하게 돌아갈 줄은 몰랐다.“힘들게 왔는데 잠시 앉아요. 주방에서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연이 성연을 만류했다.“아니에요, 사모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돌아가야 해요.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해요.” 무진이 봤는지는 모르겠다.다만 여기 계속 머무른다면 머지않아 무진에게 들키고 말 거라는 걸 짐작할 뿐이다.“남도 아니고 무슨 그런 말을 해? 좀 더 있어요.” 하지연이 다정하게 권했다.아마도 평소라
이미 무진의 의심을 사게 되자 성연은 상당히 초조했다.무진의 의심을 철저히 불식시키기 위해 성연은 먼저 연극 동아리 회장을 찾아갔다.그 전에 성연이 가입한 동아리는 원래 ‘산타’라는 무술 동아리였는데, 혹시나 해서 이 연극 동아리에도 잠시 가입했던 터였다.신분을 감추기 위해 성연은 그만큼 노력했다.성연은 다른 회원의 안내에 따라 회장 앞에 서게 되었다.연극 동아리의 회장은 동그란 안경을 쓴 소녀였다.보기엔 아주 얌전한 듯한데.다만 성연을 바라보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이 성연을 다소 불편하게 했다.그러나 다음 계획을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회장, 이번 달 학교 개교기념일에 내가 무대에 올라 가 공연할 수 있을까요?”예쁜데다 학생들에 대한 이미지도 좋은 성연은 이미 남학생 사이에서 ‘여신’으로 불리고 있었다.비록 북성남고에는 ‘교내 퀸’ 같은 랭킹표는 없었지만, 성연의 외모라면 ‘교내 퀸’은 맡아 놓은 당상이었다.게다가 성연의 ‘공신’이미지와 한동안 떠들썩했던 스캔들까지.성연 한 사람만 해도 자신들의 연극은 최고의 이슈몰이를 할 터였다. 분명 엄청나게 주목을 받는 연극이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이 순간 회장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호재를 어떻게 거절하겠는가?동아리 회장은 성연의 제안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곧장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성연을 한쪽으로 잡아 끌며 말했다.“송성연 학우 제안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마침 당신에게 딱 맞는 시나리오가 있어요.”말하는 동시에 즉시 대본 노트 하나를 집어서 성연의 손에 쥐어 주었다.성연이 대본을 읽어보는 동안, 회장이 시나리오 상의 인물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성연의 입꼬리가 떨렸다. 자신이 연기해야 할 인물이 공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후에.극의 줄거리는 그야말로 간단, 유치했다.위험에 빠진 공주를 구하기 위해 왕자가 달려온다는 내용은 동화의 통속적인 설정 그 자체였다.읽어 내려가는 내내 악다문 성연의 이가 시큰거려 왔다.하지만 지금은 후회하기에 너무 늦었다. 강무진의 의심
대본을 받은 순간부터 오후 내내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온 성연은 이미 후회막급이었다.탁자 위에 놓인 극본을 보면서 성연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한 마디로 스스로 벌을 찾아서 받고 있는 듯했다.대본의 막장 대사는 보기만 해도 이가 빠질 정도로 시큰거렸다. 이런 대사를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기까지 해야 하다니.이 동아리 회장은 진짜 괴짜였다. 자신은 난감한 스토리 때문에 하마터면 바닷가 저택에 틀어박히고 싶은 심정인데, 회장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그녀는 이 사람들의 능력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대본으로 얼굴을 덮은 성연은 아무 미련없이 소파에 드러누웠다.무진 돌아왔을 때도 그녀의 한숨 소리는 계속 중이었다.집사에게 코트를 건넨 무진이 다가와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대본을 내리고 얼굴을 드러낸 성연이 원망의 눈길로 무진을 바라보았다. 무진만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런 것 따위를 연기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즘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별일 아니에요.” 잠시 일어났다 다시 누운 성연은 옆으로 누운 자세로 대본을 읽었다.무진이 다가가서 성연을 일으켜 앉혔다.“누워서 보지 마. 눈에 안 좋으니까 일어나서 봐.”성연이 몸을 일으키자 손에 들고 있던 노트의 표지가 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극본’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는.무진은 속으로 호기심이 일었다.“너 극본에도 관심이 있었어?”“아뇨. 이건 우리 동아리 공연이에요. 내가 극 중의 한 역을 맡게 되어서 대사를 미리 익혀 놓아야 해요.” 성연이 좀 시무룩한 음성으로 말했다.“개교기념일에 공연하는 거야? 그냥 가서 참관만 한다고 하지 않았어?” 무진이 물었다.“동아리 회장이 내가 관심 있어 한다고 생각해서 역을 맡겼어요.” 성연은 극본 스토리에 질식할 것만 같아 무진에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더욱이 강무진이 이 사태를 초래한 주범이지 않은가 말이다.“정말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거야?” 그동안 바쁘게 지내던 성연이
무진의 말을 들은 성연의 몸이 경직되었다. 표정도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강무진이 직접 보러 온다고? 안된다고 해야겠지?’대본에는 키스하는 장면도 있었다. 실제로 키스하지는 않는다 해도 무진에게 보이기는 좀 난감했다.어쨌든 지금 자신의 신분은 무진의 약혼녀이니까.남자들은 좀 이상할 정도로 소유욕을 가지고 있었다.성연이 무진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다른 쪽에 앉아 완곡한 말투로 거절했다.“요즘 보니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 같던데 무척 바쁘지 않아요? 나 혼자 할 수 있으니 보러 올 것까진 없어요. 어차피 어린애들 소꿉장난 하는 정도인데요, 뭘. 무진 씨가 관심 가질만한 수준이 아니에요.”고양이가 발톱을 세우고 있는 듯한 성연의 거절을 알아차린 무진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왜, 내가 보러 가는 게 싫어?”성연이 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말했다.“그게 아니라, 무진 씨가 너무 바쁘니까 그러는 거죠.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말이죠.”이렇게 말해야 별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강무진이라면 더 이상 이 문제로 실랑이하지 않을 거라고.그런데 별안간 무진이 가까이 다가왔다.순간 성연은 소파에 갇힌 채 물러날 곳이 없었다.고개를 살짝 드니 위에서 내려오는 무진의 숨결이 느껴졌다.성연은 숨이 막혔다. 두 사람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성연이 고개를 드는 순간 바로 부딪힐 만큼.성연의 몸이 완전히 굳어지며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이 되었다.무진이 어떤 동작을 하려한다는 생각이 들자, 성연의 머릿속에는 온갖 야한 장면들이 떠올랐다.하지만 그 다음을 생각하기도 전에 무진이 성연의 손에 들린 대본을 빼냈다.당황한 성연이 대본을 다시 빼앗으려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어쩌겠나. 무진의 아래에 꼼짝없이 갇힌 상태인 성연은 무진이 대본을 가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는.대본을 손에 쥔 무진은 천천히 대본을 펼치고 한 장씩 읽어내려 갔다.그러다 ‘키스’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성연이 무엇을 숨기고 싶어하는지 결국 무진이 알게 되었다.이도 저
다음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성연은 오후가 되자 동아리에 끌려가서 연습을 했다.학교에서는 현재의 개교기념일을 매우 중시했다. 오후 마지막 수업 시간은 공연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연습 시간으로 해 줄 정도로 아주 협조적이었다.성연이 동아리 룸에 도착새서 막 연극 연습을 하려던 순간, 맞은편의 남자 주인공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사실을 발견했다.‘북성남고의 킹’이라 할 수 있는 진우진.흰 셔츠에 폭이 넓은 하의 차림의 진우진은 아주 뛰어난 외모를 지녔다. 밝고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아주 깔끔한 느낌이었다.딱 봐도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하지만 잘생긴 남자들을 워낙 많이 만나본 성연은 기껏해야 한 차례 흘깃거린 후 바로 고개 숙여 자신의 극본을 읽을 뿐이다.회장이 들어오자 그제야 질문했다.“남자 주인공은 왜 바꿨어요?” 성연이 이렇게 물을 줄 알았던 회장이 웃으며 대답했다.“전의 남자주인공은 성연 학우에게 어울리지 않았어요. 관객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 또 여자주인공의 외모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교체한 거예요.”성연의 입꼬리가 삐죽거렸다. ‘전의 남자주인공도 회장 지가 뽑은 거면서?’‘자신의 안목을 스스로 헐뜯는 게 그렇게도 좋아?’성연의 표정을 본 회장은 성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변명했다.“성연 학우가 우리 연극에서 역을 맡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모든 게 여주인공인 성연 학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예요. 내 고심을 이해해 줘요.”그러더니 정말 그렇다는 듯 성연의 어깨를 톡톡 쳤다.성연도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을 뿐이지, 남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어차피 똑 같이 상대해야 할 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누구든 똑같이 연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리허설이 시작된 후, 성연을 보는 진우진의 얼굴에 홍조가 올라왔다. 하지만 동아리 룸의 조명이 비교적 어두운 관계로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시작은 순조로웠다.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극 후반부 진우진의 왕자 연기가 아
무진은 퇴근하며 성연을 데리러 온 참이었다.그 참에 성연의 연습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고.북성남고의 대주주인 무진은 학교 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직접 마중을 나온 교장이 무진을 데리고 학교 안의 이곳 저곳을 안내하기로 했다.그들 뒤로 교감, 주임 등 여러 보직의 선생들이 뒤따랐다.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은 마치 최고위급 인사가 시찰이라도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무진은 단순히 자기 약혼녀가 보고 싶어 왔을 뿐인데.다른 생각은 없었다.이렇게 거창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지는 않았다.교장이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면 곧 학교 내 모든 사람들이 그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였다.그래서 손건호가 교장을 간신히 설득한 다음에야 무진은 혼자 성연의 동아리 방을 찾을 수 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무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분노로 얼굴 빛이 흐려졌다.키가 큰 그가 입구에 서 있자 마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만 같았다.리허설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반사적으로 입구를 돌아봤다.모두의 시선을 따라 성연도 입구 쪽을 바라보니, 입구에 서서 차가운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고 있는 강무진이 눈에 들어왔다.자신의 동작을 돌아본 성연은 가슴이 철렁하며 속으로 재수 나쁨을 욕했다.어떻게 상황을 뒤집을지 속으로 궁리하면서.무진 때문에 깜짝 놀란 성연의 손이 미끄러지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몸을 지탱하려다 성연과 진우진의 거리가 더 좁혀졌다.무진에게 변명할 겨를도 없이 온통 붉어진 진우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아이는 아직도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마치 제단에 바쳐진 한 마리 어린 양 같은 모습이다.또 청순한 그 모습은 성연의 동작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마치 불량소녀가 숫기 없는 미소년을 희롱하는 듯한 장면.성연은 즉시 진우진과의 거리를 벌렸다.주위의 분위기가 싸해지며 다소 어색해졌다.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성연은 알 수가 없었다.드물게도 손
구석에 서 있던 한 여자아이가 마치 천기라도 읽은 듯 옆에 있던 학우에게 음성을 낮추어 속삭였다.“정말 남매인 거 맞아? 어째 저 남자 태도가 마치 바람 피우던 아내를 딱 잡은 것처럼 느껴지지?”옆에 있던 동아리 멤버가 그 말을 듣고 웃었다.“무슨 생각 하는 거야. 오빠는 가장이야. 여동생과 다른 남자아이가 저러는 걸 보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 송성연은 아직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란 말이야.”여자아이는 아무리 봐도 좀 이상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강무진을 본 회장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성연 학우의 오빠셨군요. 집안 유전자가 정말 뛰어나네요.”성연에게 올케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감히 물을 수는 없었다.이런 남자는 카리스마 넘치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잘생겼다.“맞아, 전에는 왜 이렇게 멋진 오빠가 있다는 말을 못 들었지?”“오빠 분이 너무 잘 생기셨어요. 송승연 학우랑은 별로 닮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아름다운 용모를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요.”“…….”옆에서 재잘재잘거리는 소리들은 모두 강무진을 칭찬하는 말들이다.고등학생 주위에는 온통 풋풋한 애송이들이 천지였다. 그런데 언뜻 봐도 무진의 온몸에서 우아함과 귀티가 흐르는 것이 범상치 않자, 여자아이들의 마음에 봄바람이 살랑살랑했다.하지만 이런 칭찬들도 들리지 않는 듯 무진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그래도 모두 성연의 학우들이므로 많이 예를 차린 셈이었다.무진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미안해, 시간이 늦었어. 오늘 성연이의 연습은 여기까지입니다.”말이 마친 무진이 성연의 손목을 잡고서 데리고 나갔다.동아리방에서 나온 후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서 성연의 손을 놓은 무진이 비로소 물었다.“말해봐, 방금 전 무슨 상황이었어?”성연은 강무진이 이 문제에 이렇게나 집착할 줄은 몰랐다.방금 발생한 상황을 강무진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단지 리허설을 하고 있었을 뿐이예요. 걔가 연기할 줄을 몰라서, 내가 시연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