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왕대관의 회사로 간 곽연철이 프론트 데스크에 가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그러자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이 바로 허겁지겁 왕대관에게 전달했다.이런 거물 인사가 어떻게 자신들의 작은 회사에 나타났을까?제왕그룹이라는 말을 들은 왕대관이 바로 아래층 로비로 달려갔다.요금 진미선이 가끔 회사에 와서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왕대관의 사무실 옆에 그녀의 사무실까지 마련해 주었다.허둥지둥 나가는 왕대관의 모습을 본 진미선은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따라갔다.접객실로 온 왕대관은 슈트를 다시 정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곽연철의 얼굴을 살폈다.그러다 경제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얼굴임을 알아차렸다.프런트 데스크로부터 자세한 설명없이 그저 제왕그룹 쪽에서 사람이 왔다고만 전달받았었는데, 뜻밖에도 제왕그룹의 대표가 직접 내방한 것이다.보기 드물게 긴장한 왕대관이 손을 비비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곽 대표님, 안녕하십니까?”곽연철의 방문 목적을 모르는 왕대관은 너무 적극적인 모습은 자제한 체 적당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살짝 고개를 끄덕인 곽연철이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내가 오늘 방문한 까닭은 사업을 협의하기 위해서입니다.”“사, 사업이라고요?” 왕대관이 말을 더듬었다. 흥분한 마음에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세계 100대 기업에 드는 회사가 자신의 회사와 사업을 협의하려고 한다니.깜짝 놀라 경황이 없었던 왕대관이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다.“그럼 곽 대표님, 제 사무실로 가셔서 말씀 나누시지요.”작은 접객실을 둘러보던 곽연철 또한 대화를 나눌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고개를 끄덕이며 왕대관의 뒤를 따랐다.진미선은 접객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왕대관의 비서가 손님을 모시고 한걸음 앞서 걸었다. 곧이어 나온 왕대관을 따라가며 초조한 음성으로 물었다.“여보,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한 거예요?”왕대관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개발 프로젝트를 넘겨주시면 최선을 다해 하겠습니다.”진미선은 은근히 곽연철의 말에 맞장구 치며 대답했다.곽연철 역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아 뒤에 서있는 비서에게 눈빛을 보냈다.비서가 즉시 서류를 꺼내자 곽연철이 받아서 왕대관에게 건네주었다.“먼저 보십시오. 문제가 없다면 서명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공식적으로 합작관계가 성립됩니다.”서류를 왕대관 앞에 내밀었다.서류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던 왕대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곽 대표님, 이 개발 사업 건을 저희 회사에 주시기로 확정을 지으신 겁니까?”‘이거 거의 백 억에 가까운 이윤이 남는 사업인데 말이야.’‘그런데 이걸 그냥 준다고?’왕대관은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곽연철이 눈썹 끝을 올리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 하실 수 없겠습니까?”성연이 직접 고른 이 개발 사업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왕대관의 회사 규모나 상황에 적합했다.하지만 절대적으로 인맥이 있어야만 딸 수 있는 사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심사숙고를 한 성연이 곽연철을 중개자로 삼아 골라 준 사업이었다.제왕그룹에게는 작은 사업일 뿐이다.곽연철의 말을 들은 왕대관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까 겁이 난 그가 얼른 대답했다.“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 마다요. 곽 대표님, 걱정 마십시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말하는 동시에 왕대관이 서류에 서명을 했다.비서에게 서류를 챙기라고 지시한 곽연철이 원본 서류를 왕대관 쪽에 남겨두고 말했다.“협상이 마무린 된 이상, 여기서 더 폐를 끼칠 필요가 없겠지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제 비서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곽 대표님, 회사 근처에 아주 괜찮은 한정식 가게가 있는데 제가 식사를 대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곽연철 대표가 여기까지 방문했으니 이 기회에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놓아야 했다.“괜찮습니다. 회사에 일이 있어 돌아가 봐야겠군요.”곽연철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송성연의 뜻은 여기에 와서 사업을
진미선도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곽연철은 성연이 소개해서 온 사람이니.곽연철을 문 밖까지 배웅할 때, 진미선이 먼저 배웅하겠다고 제안하니 곽연철도 거절하지 않았다.왕대관은 곽연철이 진미선이 잡은 줄이라고 생각하며 두 사람이 같이 나가도록 두었다.사무실로 돌아온 왕대관은 계약서를 보며 흥분했다.주차장에 도착해서 진미선이 물었다.“곽 대표님, 성연이가 보내서 오셨지요? 성연와는…… 어떻게 아시는 건지요?”성연을 만나고 돌아올 때 성연이 그저 큰소리 친 거라고만 생각했었다.강씨 집안을 아는 것만 해도 성연의 팔자가 핀 것일 텐데, 어떻게 제왕그룹의 대표까지 알겠는가?그래서 집에 돌아가서도 이 얘기를 왕대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농담으로 들었을 뿐이다.그런데 곽연철이 진짜 찾아온 것이다.더 걱정되는 건 성연의 문란한 생활이다. 만약 성연이 정말 제왕그룹 대표를 끼고 있으면서 동시에 강씨 집안 미치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거라면? 이후 탄로 났을 때 어느 쪽의 눈 밖에 나도 안될 텐데 말이다.그때 가서 관계를 정리하기 쉽도록 미리 똑똑히 물어 두어야겠다.하지만 성연이 곽연철과 같은 거물 인사와 사귈 수 있다니.믿기지가 않는다.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성연이 가 본 가장 큰 곳이라 해봐야 읍이 아닌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다.곽연철은 진미선이 이렇게 의심할 거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그래서 방문하기 전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미리 해명의 말을 준비했다.곽철이 입을 열고 말했다.“예전에 제 어머니가 밖에서 넘어지셨을 때, 송성연 양이 도움을 주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성연 양에게 진 신세를 이번에 갚은 것입니다.”고개를 끄덕이던 진미선은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지금 이 말은 믿음이 갔다.신세를 진 게 아니라면, 송성연 같은 어린 계집애가 어떻게 곽연철 같은 거물을 움직여 남편 왕대관의 회사에 오게 한단 말인가?하지만 성연의 운은 정말 좋았다.사람을 구했는데 마침 이런 거물을 만나게
곽연철이 떠난 뒤 진미선이 사무실로 돌아왔다.왕대관이 즉시 다가서며 물었다.“제왕그룹의 곽 대표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진미선이 이런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진미선은, 성연이 소개해줬다고 설명했다.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조금 전 곽연철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왕대관은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당신 딸, 정말 능력 있는 아이야. 강씨 집안이 아니더라도 제왕그룹이라면 나쁘지 않아. 당신 어떻게 성연일 설득한 거야?”그날 집에 돌아온 진미선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어떻게 이야기되었냐고 물었을 때 진미선은 아예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잘 안된 거라고, 그래서 진미선이 대답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진미선에게 이런 카드가 있었다니.“내가 걔 엄마예요. 그런데도 내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어요”진미선이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말했다.“당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건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앞으로 자신도 상류 사회의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그리고 이제 회사는 제왕그룹의 도움으로 점점 더 커질 테고.그에 따라 자신도 영화를 누리게 될 테고.왕대관은 진미선을 끌어안으며 칭찬했다.“당신, 당신이 지금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울 일등공신이야. 이 개발 사업 건이 얼마짜리인지 알아. 떨어지는 이윤만 자그마치 60억이라고.”회사를 오랜 기간 경영해 왔지만, 지금까지 이처럼 큰 건을 맡은 적은 없었다.진미선의 두 눈이 커졌다.‘뭐, 60억? 그게 무슨 소리야?’하지만 꽤나 익숙한 듯이 보이기 위해 겉으로는 침착한 척 가장하며 말했다.“60억밖에 안되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요? 이제 제왕그룹이 있으니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질 텐데요.”“당신 말이 맞아. 제왕그룹과 제휴하게 되면 앞으로 우리 회사, 북성에서 점점 더 커지게 될 거야. 우리 신분도 따라서 높아질 거고.” 처음 진미선과 결혼했을 때는 자신이 좀 손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니 서쪽에서 해가 떴는지 시어머니가 이미 저녁 준비를 다 해 놓았다.진미선을 바라보는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예전이라면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와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밥을 해야 했다.그 기분, 얼마나 답답하고 서러운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진미선이 왕씨 집안으로 시집온 이래 처음으로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 것이다.과연 쓸모 있느냐, 쓸모 없느냐에 따른 대우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시어머니는 평소와 달랐다. 맛난 것들은 전부 왕대관 앞에 쌓아 놓느라 진미선 앞에는 김치 접시만 있었는데.이제 진미선 앞에도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시어머니의 변화는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했다.생각해보니 왕대관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자기 엄마에게 이미 알려준 모양이었다.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녀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이처럼 돌변한 것이다.밥을 먹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얘 아가.”그동안 뿌리 깊게 심어진 시어머니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진미선이 즉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네. 어머니.”대답을 하고 난 다음에야 속으로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역시 자신은 어쩔 수가 없다고.지금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달라졌는데도 왜 아직도 시어머니에게 굽실거려야 하지?하지만 이미 대답한 이상 어쩔 수 없지.“대관이에게서 다 들었다. 그런 좋은 관계가 있다니 앞으로 잘 관리해서 남편을 내조하면 우리 왕씨 집안도 잘되고, 너도 복을 누리지 않겠니?” 왕대관의 모친은 처음부터 진미선이 싫었다.그러나 지금 어찌 되었든 진미선이 나름 힘을 쓴 셈이니, 좀 더 좋은 낯빛을 보이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자신은 언젠가 아들보다 먼저 떠날 것이니, 진미선이 아들 왕대관을 도울 수 있다면 안심하고 갈 수 있지 않겠는가.“알았습니다, 어머니.” 시어머니의 말에 진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리상 시어머니의 말에 일단 수긍의 빛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자신
점심 시간, 성연은 늘 하듯이 보건실에 가서 잠을 잤다.그녀가 보건실에 갈 때마다 서한기는 항상 먹을 것을 준비해서 내놓았다.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보통은 주는 대로 먹었으나, 어쩐지 오늘은 한 번 휙 보기만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서한기의 눈에 의혹의 빛이 들어찼다.“보스, 배고프지 않아요? 음식은 먹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몸에 좋지 않아요. 아니면 이것들이 당기지 않는 겁니까?”“벌써 먹었어.” 서한기의 수다를 듣고 싶지 않은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드셨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서한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언제 드셨어요? 설마 아침을 말하는 건 아니죠?”“아니야. 방금 식당에서 먹고 왔어.” 서한기의 시끄러운 잔소리에 짜증이 난 성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조금 전 수업이 끝났자,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함께 밥 먹으러 가자고 성연에게 왔다.원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또 자신이 북성남고에 온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 식당에 가서 먹은 적이 없다는 생각에 승낙했던 것이다.귀족학교답게 학교 식당의 음식들이 다 괜찮았다.“식당요?” 서한기가 속으로 놀랐다. “보스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요?”성연이 눈을 치켜 뜨며 흘겼다.“왜? 나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 안돼?”“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요. 제 말은 보스가 워낙 귀한 신분이잖습니까? 그러니 식당 같은 곳과는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서한기가 얼른 변명을 했다.“네가 나에게 주문해 준 배달 음식이 식당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성연이 서한기를 비웃었다.서한기는 앞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도시락을 쳐다보았다.‘아니, 배달 음식이 어때서? 최소 식당보다 종류는 더 다양하잖아.’‘요즘 배달 음식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但是这个人如果是自己的老大,那就正常了。‘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보스라면 말이 달라지지.’자신이 좀 찌질했음을 서한기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그는 어물 슬쩍 웃으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뒤, 백화점에서 옷을 사서 직접 갈아입은 성연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원래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북성남고의 교복은 너무 눈에 띄었다.그렇다고 교복을 입고 소지한이랑 만날 순 없지 않은가?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갔다.소지한은 레스토랑 위층 전체를 예약해 두었다.여기서 내려다보면 북성 시 전체의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촘촘히 이어진 조명으로 반짝이는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레스토랑은 이미 깨끗이 정리되어 소지한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워낙 알려진 소지한의 신분으로 인해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식사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빽빽이 둘러싸여 제대로 식사할 수 없을 터였다.성연이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맑고 깨끗한 음성이 들려왔다.“송성연, 여기야.”성연의 뒤를 따르던 종업원이 소지한의 음성을 듣고 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하, 한숨을 내쉰 성연이 멋쩍은 듯 코만 만지작거렸다.이렇게 큰 식당에 소지한 혼자 있었다. 고개만 들면 바로 보이는데 굳이 큰 소리로 부를 건 또 뭐란 말인가?‘소지한, 저는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 거야?’성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청수한 얼굴의 소지한은 마치 예술조각 같이 어디 한 군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화장을 지운 상태인데도 피부는 또 어찌나 깨끗한지.오늘 성연을 만나러 온다고 일부러 캐주얼한 차림을 해서인지 온몸 전체에서 부드러운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소지한과는 여러 번 만났으니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성연은 저도 모르게 소지한의 얼굴에 잠시 넋이 나갔다. 사실 저 얼굴은 정말 치명적이다.과연 아시아 여성들의 ‘국민 남편’감 1순위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얼굴 하나만으로도 사람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잠시 멈칫했던 성연은 곧바로 다시 침착함을 되찾아 응대할 수 있었다.이미 다년간 친구로 지내왔는데, 새삼 저 얼굴에 미혹된다는 게 웃기지 않겠는가?소지한이 성연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성연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송
“이 녀석.”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지한이 고개를 저었다.“생일 선물을 주러 왔어. 지난 번엔 촬영 때문에 직접 못 줬잖아. 그래서 지금 직접 건네주려고 바로 달려온 거야.”뒤자리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든 소지한이 성연에게 건넸다.애초에 뉴스 기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소지한이 자신에게 사파이어 목걸이를 선물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성연이 케이스를 열어 보니 반짝이는 목걸이가 안에 조용히 누워 있는 게 보였다.조명 아래에서 무수한 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목걸이 뒤에는 성연의 이름과 생일이 새겨져 있었다.살짝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니 감촉이 좋았다.목걸이를 구경한 성연이 케이스와 함께 받아 든 채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마음에 들어.”메인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소지한은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잘게 썰은 다음 성연의 앞에다 옮겨 주었다.“천만에. ‘오빠’ 라고 불러주면 더 기쁠 텐데 말이야.”성연은 편안한 마음으로 소지한의 서비스를 즐겼다. 두 볼이 빵빵할 정도로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마치 도토리를 입에 물고 있는 다람쥐 마냥.“음…… 다음 생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성연과 실랑이하지 않은 채 계속 스테이크를 썰어준다, 물을 따라준다 하며 바쁘게 식사 시중을 들던 소지한도 드디어 식사를 시작했다.성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도시로 돌아오니 어때? 적응은 됐어?”“뭐 그럭저럭. 그치만 시골에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애.” 성연이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시끄러운 도시보다 평온한 시골을 더 좋아하는 성연이다. 시골의 나이 많은 어른들은 친절하면서도 편안함을 주었다.북성 시에 와서 못 볼 꼴을 너무 너무 많이 보았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강씨 집안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밉상들이었다.소지한은 성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성연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성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던 소지한이 부드러운 음
말을 마친 사무는 옆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뚱뚱한 남자를 재빠르게 발견했다.“아저씨, 바로 저 사람이 사진이를 이렇게 다치게 했어요!”사무는 우렁찬 목소리로 방금 엘리베이터를 나온 남자를 가리켰다.팍!쿵!서한기가 재빨리 깔끔하게 손을 쓰자, 남자의 커다란 몸은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심지어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남자는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 아이들은 네가 감히 건드릴 수도 감당할 수도 없어! 꺼져!”피에 굶주린 듯 핏발선 눈으로 쏘아보면서, 서한기가 나지막하게 외쳤다.쓰러져 있던 남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의 통증을 느끼면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막 일어나려던 남자는 등줄기의 시큰한 통증에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아!”다시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결국 주저앉은 채 고통스럽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다른 쪽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무진은 자연스럽게 이쪽의 소동에 시선이 향했다.사람들 속에서 처참한 모습의 마케팅팀 팀장과, 그 앞에 서서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미간을 찌푸린 무진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뒤를 바라보았다.“아이들이 아직 안 갔어?”그리고 무진이 엘리베이터 문을 나설 때, 손건호는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서한기를 알아차렸다.두 사람은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그들 두 사람은 예전 진성 조직의 공동 대장이었다. 여러 해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인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지난 일 때문에 서로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느낌도 그들 두 사람만 알 수 있을 뿐...왜인지는 모르지만 서한기의 망설임이 느껴지자,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아직도 안 가보고 뭐 해?”‘저 두 아이는 뭔가 나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머릿속에서 어떤
아직도 물린 곳에 통증을 느끼고 있던 마케팅팀 팀장은, 갑자기 사무가 이런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무의식적으로 심적으로 위축되었다.‘어린 애가 어떻게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방금 전에 행동은 치밀하게 생각하고 한 건가?’자신도 모르게 당황했던 마케팅팀 팀장은 곧 한숨을 돌렸다.‘내가 뭘 무서워하는 거야? 기껏해야 아이일 뿐인데 뭐 별다른 일이야 있겠어?’이렇게 생각하자 곧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변했다.“이 조그만 녀석이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이렇게 버릇없게 말이지!”사무는 코웃음을 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너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어!”“이 버릇없는 새끼가 감히 욕을 해! 보아하니 너는 혼나는 걸로도 부족하겠어!”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때, 줄곧 말을 하지 않던 무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됐어, 너희 두 아이는 빨리 나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때문에 너희 엄마가 회사의 징계를 받게 돼.”사무는 무진의 얘기하는 모습을 힐끗 보았다. 전혀 감정이 없는 눈빛으로 볼 뿐.‘자기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맞는’ 걸 보면서도 이렇게 냉정할 수 있는 이런 아버지라니! 얼마나 마음이 독한 사람인지 충분히 알겠어.’‘오늘 아버지를 찾아온 건 결코 잘한 선택이 아닌 것 같아.’사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마케팅팀 팀장을 흘겨보기만 했다. ‘얼마나 더 웃을 수 있는지 보겠어. 조금 있다가 한기 아저씨가 시원하게 혼내 줄 테니까!’조심스럽게 여동생을 일으켜 세운 사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여동생을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사진아, 가자!”사진도 지금은 여기에 더 있고 싶지 않았기에, 이를 악문 채 오빠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입구로 걸어가던 사진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상 앞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무진도 마침 사진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무진은 왠지 가슴이 아팠다.그러나 무진이 움직이기 전에, 고개를 돌린 사진은 오빠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마침내 소동이 마무리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두 아이는 쌍동이겠지. 한 네다섯 살 정도 된 것 같아.’‘아이들 나이와 지금 상황을 보면...’‘혹시 이 두 아이가 정말 보스와 사모님 사이의 아이인 거야?’‘사모님이 낙태한 뒤 출국한 게 아니라, 모두를 속이고 아이들을 낳은 건가?’너무나 엄청난 상상이라서, 손건호는 곧 뭔가 큰일이 닥칠 거라는 느낌마저 들었다.지금은 원래 마케팅팀 팀장이 보고하면서 무진의 눈에 들 기회를 찾던 중이었다.그러나 오늘 보고는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무려 30분 동안이나 저기압인 대표의 기세에 눌려 있던 상태였다.‘지금 대표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면 칭찬을 받겠지.’눈빛을 빛내던 남자는 손을 비비면서 재빨리 앞으로 나왔다.“너희들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 빨리 나가지 않고 뭐 해!”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면서, 마케팅팀 팀장이 사진의 여린 팔을 꽉 쥐었다.“어린 애들이 함부로 아빠라고 거짓말이나 하다니, 도대체 부모가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이게 얼마나 심한 장난인지 알기나 해?”마케팅팀 팀장은 거칠게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무방비 상태였던 사진은 그저 팔이 꽉 잡힌 채 끌려갈 뿐이다.사진은 본능정으로 몸부림쳤다.하지만 어린아이가 어떻게 어른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까?사진의 발버둥은 결국 전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했다.“오빠, 오빠, 사진이 너무 아파!”“아아, 아파...”팔의 통증에 몸부림치던 사진은 기어이 기회를 틈타서 남자의 팔을 물었다.갑작스럽게 팔에 통증을 느끼자, 남자는 아이들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면서 나뒹굴었다“아! 이 계집애가 감히 나를 물었어!”잔뜩 살이 찐 남자가 불쾌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으름장을 놓았다.갑자기 바닥에 떨어졌지만, 사무는 별다른 이상 없이 일어섰다.하지만 팔을 물린 남자는 사진을 떨쳐내려고 거칠게 밀쳤다.결국 힘에 밀린 사진은 의자에 이마와 팔을 부딪혔다. 부딪친 곳은 바로 빨갛
사진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제 오빠 컴퓨터에서 아빠의 사진을 봤을 때도 천하제일 미남인 아빠 모습에 감탄했지만!오똑한 콧날에 굳게 닫힌 두 입술, 단정한 헤어 스타일에 온몸에 남성미가 가득한 건장한 모습!지금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경외심이 들면서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 모든 아우라는 바로 책상 앞에 앉은 무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그야말로 완벽한 남자야!’‘우리한테 이런 멋진 아빠가 있다니!’ 지금 사진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아빠!”두 아이는 곧바로 책상 앞으로 달려갔고, 사진이 크게 외쳤다.가뜩이나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에 ‘아빠’라는 소리가 들리자, 무진은 미간을 점점 찌푸리면서 그윽한 눈빛으로 두 아이를 훑어보았다.“어디서 온 애들이야? 언제부터 우리 회사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게 됐지?”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뒤로 젖혔다.“게다가 아무 데서나 아빠라니?”기쁨에 겨워 아빠에게 다가가려던 사진은 무진의 바로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의 눈에서는 순식간에 눈물이 솟아났다.애절하게 흐느끼면서 사진이 말했다.“아빠, 바로 우리 아빠잖아! 우리는 오늘 특별히 아빠를 찾으러 온 거야.”아이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자, 무진은 마치 가슴속이 꽉 막힌 듯했다. 당황한 무진은 얼른 내선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두 아이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하는 무진의 목소리에는 왠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너희들 아빠가 아니야. 거짓말하면 안 돼. 얼른 너희 엄마한테 가야지.”잠시 후, 수화기에서 시원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네, 보스.]무진은 다시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들어와서 두 아이를 데려가.”[아이들요?] 손건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응.”무진은 단지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아빠는 우리가 그렇게 싫어요?”갑자기 사진의 옆에 서 있던 남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이지만
사무가 눈을 치켜뜨면서 말했다. “그래야 해?”다시 한 번 우유 막대사탕을 입에 넣은 채, 사진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그럼, 오빠 그건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데?”“하지만 내 말은 사실이야, 설마 네 오빠가 뛰어나지 않다는 거야?”사무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진지한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사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 다시 빌딩을 바라보았다.“우리 그래도 일을 해야지. 사람들이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올라가게 할까?”웃음을 거둔 사무는 입술을 꼭 닫은 채 앞을 보면서 진지 모드로 돌입했다.“당연히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할 거야.”“그럼 어떡해?”사진은 바로 풀이 죽었다.‘이미 집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빠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정말 피곤해.’다음 순간.사진은 익숙한 오빠 손에 이끌려서 따라갔다.사무가 앞에 서고 사진은 따라서 함께 빌딩의 옆쪽의 작은 문으로 걸어갔다.입구에 선 두 아이는 작은 키 때문에 아주 순조롭게 입구의 경비원 순찰을 피할 수 있었다. 한바탕 민첩하게 왔다 갔다 한 끝에 이미 계단 앞에 도착했다.고개를 든 두 아이는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입을 삐죽 내민 사진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텔레비전에 나오는 회장 사무실은 모두 맨 꼭대기층에 있어. 오빠, 아빠도 꼭대기층에 있는 건 아니겠지.”사무도 이 많은 계단을 보자 약간 풀이 죽었다.그래도 앳되지만 무게 있는 목소리로 사무가 나지막히 말했다.“그 점은 드라마도 틀리지 않았어.”“아!” 오빠가 말을 하자 사진의 작은 다리는 벌써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만약에 이렇게 높은 층을 걸어서 올라간다면, 오늘 내 다리는 아마 망가지겠지?사진이 자신의 짧은 다리를 위해 ‘묵념’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사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가자, 위층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2층.지금은 출근 시간이라서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느라, 오히려 두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진 오빠의 이전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면, 내가 했던 짓도 모두 드러나지 않을까?’예민주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처럼 느꼈다.‘약효가 줄어들면 그 뒤에는 반드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거야.’ ‘안 돼. 방법을 생각해야 해. 그런 상황이 절대 일어나게 해서는 안 돼.’찢어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무진을 보자, 예민주의 머릿속에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그 약을 다시 한번 더 먹여도 될까?’‘하지만... 하지만 또 복용하면, 나도 잊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겨.’‘이거 어떻게 해야 해?’일시에 모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머릿속에 맴돌면서, 가뜩이나 초조한 예민주는 머리가 터질 듯했다.얼마나 지났을까? 몸을 돌린 무진의 눈은 전혀 초점도 맞지 않은 채 암울해 보였다.걸음을 떼고도 마음의 피로로 인해서 이미 얼마나 붕 떠있는지도 몰랐다.무진이 예민주의 곁으로 다가가자, 예민주가 무의식중에 무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촉을 원하지 않는 듯이 아주 교묘하게 예민주의 손길을 피했다.차로 향하면서 예민주에게 단 한 마디만 남겼을 뿐이다.“좀 있다가 너 혼자 돌아가. 오늘 일은 잠시 미루자.”그리고 곧바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남겨진 예민주만 어수선한 심정이었다.이어진 며칠 동안 무진은 여전히 평소와 마찬가지로 바빴다. 낮에는 업무를 볼 뿐만 아니라 접대도 해야 했다.그날, 산기슭의 별장 2층.위층에서 성연의 차가 점차 사라지는 걸 본 두 아이는 신속하게 작은 숄더백을 꺼냈다.사진은 동그란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맞은편에 있는 사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오빠, 정말로 이렇게 할 거야?”고개를 끄덕이는 사무의 눈에는 확고한 결의가 가득했다.“응, 엄마가 그날 돌아온 뒤 요 며칠 상태가 어떤지 못 봤어? 엄마는 분명히 아버지를 만났을 거야.” “내가 이미 아버지 위치를 알아냈어. 우리는 곧 아버지를 찾아갈 거야!”지금 집에 두 아이들밖에 없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성연은 낯선
“그렇게 트집을 잡겠다고?”“나는 단지 이 옷을 매우 좋아할 뿐이에요. 나와 무진 오빠의 결혼식에서 입고 싶은데 당신들도 마음에 들었는지는 몰랐는데요?”억울한 듯한 예민주의 얼굴.임서희는 마음이 우울했다. ‘무슨 이런 여우 같은 년이 다 있어? 그야말로 겉만 번드르르한 년이네!’“2억2천만 원! 빨리 카드 결제해요!”말을 마친 성연이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예민주는 마치 성연이 가는 방향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성연의 앞을 막았다.짝!성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얼굴의 통증을 느끼자 예민주는 무의식적으로 직접 만든 독약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성연은 이미 진작부터 예민주가 그럴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성연의 오른손에 갑자기 가는 은침 하나가 나타나더니, 예민주의 팔에 바로 박히면서 순식간에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좋은 개는 길을 막지 않는 법이야!”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지금 성연의 눈에서는 불꽃이 타오르면서 온몸의 피가 들끓는 듯했다.“서희야, 가자!”말이 끝나자 성연은 임서희를 데리고 웨딩 숍을 나섰다.오른쪽 얼굴의 화끈한 통증과 주위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느끼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화가 난 예민주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무진 오빠!”그러나 다음 순간, 곧바로 문밖으로 나간 무진은 차의 시동을 걸고 바로 성연을 따라갔다. 울부짖는 예민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방금 회사를 나섰던 성연은, 임서희를 먼저 회사로 돌려보낸 뒤에 자신은 혼자 차를 몰고 떠났다.차 안.백미러를 통해 자신의 뒤를 바짝 뒤쫓는 무진을 발견하자, 성연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뭘 하려는 거야?’마음이 초조하자, 액셀러레이터를 바로 끝까지 밟았다. 성연의 차는 넓은 도로 위를 나는 듯이 달려갔다.고가도로 위.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진의 차가 성연의 차에 부딪치면서 곧바로 멈추게 만들었다. 빠른 속도로 달렸기 때문에 관성에 의해서 부딪친 것이다.성연은 입가가 찢어지면서 끈
이곳의 웨딩드레스는 모두 디자이너의 작품들로, 이 웨딩드레스도 당연히 하나밖에 없다. 이걸 예민주가 가져가면, 자신은 당연히 다른 웨딩드레스를 찾을 수밖에 없다.‘게다가 이건 분명히 우리가 먼저 보고 결정했어.’임서희가 무의식적으로 막았다.“아가씨, 이 옷은 우리가 방금 이미 고른 거예요. 면사포도 모두 골랐는데, 아가씨의 이런 행동은 우아하지 않은데요?”임서희는 아주 완곡하게 표현했다.하지만... 예민주는 임서희의 태도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호호, 당신이 어떻게 먼저 골랐다고 말할 수 있나요? 이 웨딩드레스는 이미 오랫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거예요.”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이건 원래 일찍부터 내 소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예민주는 임서희의 반응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피식 비웃으면서 다시 직원에게 그 웨딩드레스를 가져오라고 했다.직원이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고 고민하자, 예민주는 짜증이 난 목소리로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너 거기서 뭐하고 있어? 빨리 안 움직여?”직원은 양쪽의 손님들 사이에 낀 채 난처한 표정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야?’‘이 두 손님들은 척 봐도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지금 웨딩드레스 하나를 놓고 서로 싸우려는 기세인데, 우리는 이쪽을 도와도 안 되고, 저쪽을 위해도 안 돼.’“저는...”직원은 순간 말을 더듬으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래 좋은 기분이던 성연은 예민주에게 방해를 받자, 아예 신용카드를 꺼내서 직원에게 건네주었다.“이 웨딩드레스는 우리가 사겠어요. 카드로 결제할게요.”성연의 목소리에는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 힘이 실려 있었다.성연의 이 말은 또 마침 직원도 정확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게 도왔다. ‘옷을 입어보는 목적은 옷이 어울리는지 보기 위한 것이고, 어울리면 사는 거야.’‘하지만 이들은 지금 입어보는 단계를 건너뛰고 구매하겠다고 하니 가장 명확한 답이겠지.’“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포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말하면서 직원이 은행카드를 받으려고 했다.“잠깐만
지금 직원의 설명을 듣자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어때? 직원에게 한번 입어보게 가져오라고 해볼까?”임서희가 정말 마음에 들어한다는 걸 눈치챈 성연이 다가와서 건의했다.가게 앞.바로 같은 시간에 한 쌍의 남녀가 밖에서 들어왔다. 여자는 앙증맞은 표정으로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매달려 있었다.“무진 오빠, 이 브랜드의 웨딩 숍은 운성에 이곳 한 곳밖에 없어요.” “이 가게 웨딩드레스가 정말 예쁘다고 해요. 심플한 스타일이 좋을까요, 아니면 좀 화려한 스타일이 좋을까요?”예민주의 목소리는 아주 달콤했다. 마치 꼬리를 활짝 편 공작새처럼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웨딩 숍 안으로 들어섰다.예민주가 팔을 꽉 잡고 있어서 무진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천천히 팔을 풀었지만 눈빛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좀 심플한 스타일로 해. 그렇게 화려한 걸 입을 필요는 없어.”예민주는 사실 결코 온화한 사람이 아니지만, 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오히려 많이 순해졌다.하지만 평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결혼이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무진의 말이 떨어지자, 예민주는 무의식 중에 그 말에 반박하려고 했다.“하지만...”‘지금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저건... 송성연이잖아?’머릿속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다시 자세히 보니 정말 성연이 맞았다.말을 하다가 만 예민주가 마치 뭔가에 시선이 고정된 듯이 바라보자, 무진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예민주의 시선을 따라갔다.‘왜 또 저 여자야?’성연을 보는 순간, 무진은 다시 한번 참기 힘든 두통을 느꼈다.‘왜, 왜 매번 저 여자를 볼 때마다 냉정을 유지할 수 없는지 모르겠어. 또 익숙한 느낌도 있지만, 분명히 저 여자를 만난 적도 없잖아.’또각또각!무진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예민주는 성연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갔다. 이미 조금 전처럼 놀라지 않았고, 온통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공교롭게도 이런 데서 만나게 되다니.”임서희와 함께 면사포를 고르고 있던 성연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눈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