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신 대로 개발 프로젝트를 넘겨주시면 최선을 다해 하겠습니다.”진미선은 은근히 곽연철의 말에 맞장구 치며 대답했다.곽연철 역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아 뒤에 서있는 비서에게 눈빛을 보냈다.비서가 즉시 서류를 꺼내자 곽연철이 받아서 왕대관에게 건네주었다.“먼저 보십시오. 문제가 없다면 서명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공식적으로 합작관계가 성립됩니다.”서류를 왕대관 앞에 내밀었다.서류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던 왕대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곽 대표님, 이 개발 사업 건을 저희 회사에 주시기로 확정을 지으신 겁니까?”‘이거 거의 백 억에 가까운 이윤이 남는 사업인데 말이야.’‘그런데 이걸 그냥 준다고?’왕대관은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곽연철이 눈썹 끝을 올리며 물었다.“왜 그러십니까? 하실 수 없겠습니까?”성연이 직접 고른 이 개발 사업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왕대관의 회사 규모나 상황에 적합했다.하지만 절대적으로 인맥이 있어야만 딸 수 있는 사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심사숙고를 한 성연이 곽연철을 중개자로 삼아 골라 준 사업이었다.제왕그룹에게는 작은 사업일 뿐이다.곽연철의 말을 들은 왕대관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까 겁이 난 그가 얼른 대답했다.“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 마다요. 곽 대표님, 걱정 마십시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말하는 동시에 왕대관이 서류에 서명을 했다.비서에게 서류를 챙기라고 지시한 곽연철이 원본 서류를 왕대관 쪽에 남겨두고 말했다.“협상이 마무린 된 이상, 여기서 더 폐를 끼칠 필요가 없겠지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제 비서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곽 대표님, 회사 근처에 아주 괜찮은 한정식 가게가 있는데 제가 식사를 대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곽연철 대표가 여기까지 방문했으니 이 기회에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놓아야 했다.“괜찮습니다. 회사에 일이 있어 돌아가 봐야겠군요.”곽연철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송성연의 뜻은 여기에 와서 사업을
진미선도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곽연철은 성연이 소개해서 온 사람이니.곽연철을 문 밖까지 배웅할 때, 진미선이 먼저 배웅하겠다고 제안하니 곽연철도 거절하지 않았다.왕대관은 곽연철이 진미선이 잡은 줄이라고 생각하며 두 사람이 같이 나가도록 두었다.사무실로 돌아온 왕대관은 계약서를 보며 흥분했다.주차장에 도착해서 진미선이 물었다.“곽 대표님, 성연이가 보내서 오셨지요? 성연와는…… 어떻게 아시는 건지요?”성연을 만나고 돌아올 때 성연이 그저 큰소리 친 거라고만 생각했었다.강씨 집안을 아는 것만 해도 성연의 팔자가 핀 것일 텐데, 어떻게 제왕그룹의 대표까지 알겠는가?그래서 집에 돌아가서도 이 얘기를 왕대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농담으로 들었을 뿐이다.그런데 곽연철이 진짜 찾아온 것이다.더 걱정되는 건 성연의 문란한 생활이다. 만약 성연이 정말 제왕그룹 대표를 끼고 있으면서 동시에 강씨 집안 미치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거라면? 이후 탄로 났을 때 어느 쪽의 눈 밖에 나도 안될 텐데 말이다.그때 가서 관계를 정리하기 쉽도록 미리 똑똑히 물어 두어야겠다.하지만 성연이 곽연철과 같은 거물 인사와 사귈 수 있다니.믿기지가 않는다.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성연이 가 본 가장 큰 곳이라 해봐야 읍이 아닌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다.곽연철은 진미선이 이렇게 의심할 거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그래서 방문하기 전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미리 해명의 말을 준비했다.곽철이 입을 열고 말했다.“예전에 제 어머니가 밖에서 넘어지셨을 때, 송성연 양이 도움을 주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성연 양에게 진 신세를 이번에 갚은 것입니다.”고개를 끄덕이던 진미선은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지금 이 말은 믿음이 갔다.신세를 진 게 아니라면, 송성연 같은 어린 계집애가 어떻게 곽연철 같은 거물을 움직여 남편 왕대관의 회사에 오게 한단 말인가?하지만 성연의 운은 정말 좋았다.사람을 구했는데 마침 이런 거물을 만나게
곽연철이 떠난 뒤 진미선이 사무실로 돌아왔다.왕대관이 즉시 다가서며 물었다.“제왕그룹의 곽 대표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진미선이 이런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진미선은, 성연이 소개해줬다고 설명했다.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조금 전 곽연철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왕대관은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당신 딸, 정말 능력 있는 아이야. 강씨 집안이 아니더라도 제왕그룹이라면 나쁘지 않아. 당신 어떻게 성연일 설득한 거야?”그날 집에 돌아온 진미선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어떻게 이야기되었냐고 물었을 때 진미선은 아예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잘 안된 거라고, 그래서 진미선이 대답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진미선에게 이런 카드가 있었다니.“내가 걔 엄마예요. 그런데도 내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어요”진미선이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말했다.“당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건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앞으로 자신도 상류 사회의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그리고 이제 회사는 제왕그룹의 도움으로 점점 더 커질 테고.그에 따라 자신도 영화를 누리게 될 테고.왕대관은 진미선을 끌어안으며 칭찬했다.“당신, 당신이 지금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울 일등공신이야. 이 개발 사업 건이 얼마짜리인지 알아. 떨어지는 이윤만 자그마치 60억이라고.”회사를 오랜 기간 경영해 왔지만, 지금까지 이처럼 큰 건을 맡은 적은 없었다.진미선의 두 눈이 커졌다.‘뭐, 60억? 그게 무슨 소리야?’하지만 꽤나 익숙한 듯이 보이기 위해 겉으로는 침착한 척 가장하며 말했다.“60억밖에 안되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요? 이제 제왕그룹이 있으니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질 텐데요.”“당신 말이 맞아. 제왕그룹과 제휴하게 되면 앞으로 우리 회사, 북성에서 점점 더 커지게 될 거야. 우리 신분도 따라서 높아질 거고.” 처음 진미선과 결혼했을 때는 자신이 좀 손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니 서쪽에서 해가 떴는지 시어머니가 이미 저녁 준비를 다 해 놓았다.진미선을 바라보는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예전이라면 회사에서 일을 끝내고 와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밥을 해야 했다.그 기분, 얼마나 답답하고 서러운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진미선이 왕씨 집안으로 시집온 이래 처음으로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 것이다.과연 쓸모 있느냐, 쓸모 없느냐에 따른 대우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시어머니는 평소와 달랐다. 맛난 것들은 전부 왕대관 앞에 쌓아 놓느라 진미선 앞에는 김치 접시만 있었는데.이제 진미선 앞에도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시어머니의 변화는 마치 천지개벽이라도 한 듯했다.생각해보니 왕대관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자기 엄마에게 이미 알려준 모양이었다.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녀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이처럼 돌변한 것이다.밥을 먹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얘 아가.”그동안 뿌리 깊게 심어진 시어머니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진미선이 즉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네. 어머니.”대답을 하고 난 다음에야 속으로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역시 자신은 어쩔 수가 없다고.지금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달라졌는데도 왜 아직도 시어머니에게 굽실거려야 하지?하지만 이미 대답한 이상 어쩔 수 없지.“대관이에게서 다 들었다. 그런 좋은 관계가 있다니 앞으로 잘 관리해서 남편을 내조하면 우리 왕씨 집안도 잘되고, 너도 복을 누리지 않겠니?” 왕대관의 모친은 처음부터 진미선이 싫었다.그러나 지금 어찌 되었든 진미선이 나름 힘을 쓴 셈이니, 좀 더 좋은 낯빛을 보이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자신은 언젠가 아들보다 먼저 떠날 것이니, 진미선이 아들 왕대관을 도울 수 있다면 안심하고 갈 수 있지 않겠는가.“알았습니다, 어머니.” 시어머니의 말에 진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리상 시어머니의 말에 일단 수긍의 빛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자신
점심 시간, 성연은 늘 하듯이 보건실에 가서 잠을 잤다.그녀가 보건실에 갈 때마다 서한기는 항상 먹을 것을 준비해서 내놓았다.모두 성연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보통은 주는 대로 먹었으나, 어쩐지 오늘은 한 번 휙 보기만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서한기의 눈에 의혹의 빛이 들어찼다.“보스, 배고프지 않아요? 음식은 먹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몸에 좋지 않아요. 아니면 이것들이 당기지 않는 겁니까?”“벌써 먹었어.” 서한기의 수다를 듣고 싶지 않은 성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드셨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서한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언제 드셨어요? 설마 아침을 말하는 건 아니죠?”“아니야. 방금 식당에서 먹고 왔어.” 서한기의 시끄러운 잔소리에 짜증이 난 성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조금 전 수업이 끝났자,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함께 밥 먹으러 가자고 성연에게 왔다.원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또 자신이 북성남고에 온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 식당에 가서 먹은 적이 없다는 생각에 승낙했던 것이다.귀족학교답게 학교 식당의 음식들이 다 괜찮았다.“식당요?” 서한기가 속으로 놀랐다. “보스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요?”성연이 눈을 치켜 뜨며 흘겼다.“왜? 나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 안돼?”“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요. 제 말은 보스가 워낙 귀한 신분이잖습니까? 그러니 식당 같은 곳과는 어째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서한기가 얼른 변명을 했다.“네가 나에게 주문해 준 배달 음식이 식당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 성연이 서한기를 비웃었다.서한기는 앞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도시락을 쳐다보았다.‘아니, 배달 음식이 어때서? 최소 식당보다 종류는 더 다양하잖아.’‘요즘 배달 음식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但是这个人如果是自己的老大,那就正常了。‘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보스라면 말이 달라지지.’자신이 좀 찌질했음을 서한기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그는 어물 슬쩍 웃으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뒤, 백화점에서 옷을 사서 직접 갈아입은 성연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원래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북성남고의 교복은 너무 눈에 띄었다.그렇다고 교복을 입고 소지한이랑 만날 순 없지 않은가?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갔다.소지한은 레스토랑 위층 전체를 예약해 두었다.여기서 내려다보면 북성 시 전체의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다.촘촘히 이어진 조명으로 반짝이는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레스토랑은 이미 깨끗이 정리되어 소지한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워낙 알려진 소지한의 신분으로 인해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식사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빽빽이 둘러싸여 제대로 식사할 수 없을 터였다.성연이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맑고 깨끗한 음성이 들려왔다.“송성연, 여기야.”성연의 뒤를 따르던 종업원이 소지한의 음성을 듣고 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하, 한숨을 내쉰 성연이 멋쩍은 듯 코만 만지작거렸다.이렇게 큰 식당에 소지한 혼자 있었다. 고개만 들면 바로 보이는데 굳이 큰 소리로 부를 건 또 뭐란 말인가?‘소지한, 저는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 거야?’성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청수한 얼굴의 소지한은 마치 예술조각 같이 어디 한 군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화장을 지운 상태인데도 피부는 또 어찌나 깨끗한지.오늘 성연을 만나러 온다고 일부러 캐주얼한 차림을 해서인지 온몸 전체에서 부드러운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소지한과는 여러 번 만났으니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성연은 저도 모르게 소지한의 얼굴에 잠시 넋이 나갔다. 사실 저 얼굴은 정말 치명적이다.과연 아시아 여성들의 ‘국민 남편’감 1순위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얼굴 하나만으로도 사람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잠시 멈칫했던 성연은 곧바로 다시 침착함을 되찾아 응대할 수 있었다.이미 다년간 친구로 지내왔는데, 새삼 저 얼굴에 미혹된다는 게 웃기지 않겠는가?소지한이 성연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성연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송
“이 녀석.”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지한이 고개를 저었다.“생일 선물을 주러 왔어. 지난 번엔 촬영 때문에 직접 못 줬잖아. 그래서 지금 직접 건네주려고 바로 달려온 거야.”뒤자리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를 집어 든 소지한이 성연에게 건넸다.애초에 뉴스 기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소지한이 자신에게 사파이어 목걸이를 선물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성연이 케이스를 열어 보니 반짝이는 목걸이가 안에 조용히 누워 있는 게 보였다.조명 아래에서 무수한 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목걸이 뒤에는 성연의 이름과 생일이 새겨져 있었다.살짝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니 감촉이 좋았다.목걸이를 구경한 성연이 케이스와 함께 받아 든 채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마음에 들어.”메인 메뉴는 스테이크였다. 소지한은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잘게 썰은 다음 성연의 앞에다 옮겨 주었다.“천만에. ‘오빠’ 라고 불러주면 더 기쁠 텐데 말이야.”성연은 편안한 마음으로 소지한의 서비스를 즐겼다. 두 볼이 빵빵할 정도로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마치 도토리를 입에 물고 있는 다람쥐 마냥.“음…… 다음 생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성연과 실랑이하지 않은 채 계속 스테이크를 썰어준다, 물을 따라준다 하며 바쁘게 식사 시중을 들던 소지한도 드디어 식사를 시작했다.성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도시로 돌아오니 어때? 적응은 됐어?”“뭐 그럭저럭. 그치만 시골에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애.” 성연이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시끄러운 도시보다 평온한 시골을 더 좋아하는 성연이다. 시골의 나이 많은 어른들은 친절하면서도 편안함을 주었다.북성 시에 와서 못 볼 꼴을 너무 너무 많이 보았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강씨 집안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밉상들이었다.소지한은 성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성연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성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던 소지한이 부드러운 음
성연과 함께 저녁을 먹을 생각에 무진은 일찍 퇴근하고 이제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하지만 돌아온 집 어디에서도 성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무진이 집사를 불러 물었다. “성연이는요?”집사가 고개를 저었다.“도련님, 저도 영문을 모르겠네요. 작은 사모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무진이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은 한창 소지한과 웃고 떠들고 있던 중이었다.테이블 옆에 두었던 휴대폰이 울리자 성연이 고개를 돌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뜻밖에도 강무진이었다.성연의 표정이 한순간에 변하자 소지한이 물었다.“왜? 누구야?”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너 먹고 있어.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소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화장실에 들어간 성연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전화가 연결되는 것을 본 무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던 탓이다.“어디야?” 무진이 물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초조함이 짧은 한 마디에 묻어났다.무진의 음성을 들은 성연은 그제야 저녁 먹고 늦게 들어간다는 걸 무진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음을 상기했다.만약 무진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성연이 대답했다.“친구와 밥 먹고 있었어요.”무진의 음성이 곧장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내가 데리러 갈까?”차마 강무진 더러 데리러 오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와서 소지한을 보게 된다면 뭐라고 설명할 지 난감하기도 하고.그녀 같은 일반인이 대스타와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니까.그러니 강무진이 모르게 하는 편이 좋았다.그러자 성연이 대답했다.“괜찮아요. 거의 다 먹었어요.”“그래, 그럼 조심해서 들어와.” 무진 또한 더 이상 긴말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성연이 손을 씻은 후 밖으로 나갔다.소지한은 서빙 직원에게 주스 두 잔을 다시 건네어 받았다.성연이 탄식하며 말했다.“나를 돼지처럼 살찌울 생각이야? 너는 스타잖아? 스
무진의 표정은 굳어졌고, 마음은 마치 무거운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성연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곧 순식간에 슬픔에 휩싸이면서 눈가에 눈물이 반짝였고, 곧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졌다.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목현수의 눈도 순식간에 뿌옇게 변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자,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설사 모두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런 결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끝내 작은 기대라도 품은 채 기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듯했다.그러나 눈앞에서 스승님의 딸인 예민주가 직접 발표했으니, 모든 기회가 다 무너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불세출의 천재였던 예중천 스승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예민주는 비통하게 울었고, 성연은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른 채 억지로 참았지만 끝내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성연의 곁으로 다가간 무진이 성연을 품에 안고 다독였다.“성연아, 너무 슬퍼하지 마! 스승님은 분명히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무진이 조용히 말했다.실제로 예중천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진도 마찬가지로 슬펐다. 한때 자신이 정말 닮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고봉의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기에.비록 지금은 무진의 사업에서의 성과가 이미 예중천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숭배했던 사람이다.목현수가 예민주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막내 사매, 너무 슬퍼하지 마...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나하고 성연이가 너를 잘 돌볼게. 스승님은 반드시 네가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야!”비록 예민주가 목현수에게 처음에 준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순간의 슬픔은 진실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목현수는 마음속으로 예민주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잠시 후 사람들의 감정이 비로소 좀 진정되었다.두 눈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눈물을 닦은 예민주는,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난 뒤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이야기했다.“
“성연아, 성연아, 일어나, 네 사형이 왔어!”무진이 가볍게 부르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성연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무진의 목을 덥석 안았다.처음 깨어났을 때의 그 얼떨떨한 성연의 표정을 보고 있던 무진이 갑자기 성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뽀뽀하지 마요. 아직 양치질도 안 했는데!”성연이 큰 소리로 투덜거리면서 오랜만에 무진에게 애교를 부리자, 무진은 또 다시 살인미소를 지었다.일어나서 세수를 마친 성연은 아래층의 거실로 내려갔다.목현수는 이미 도착했고 손건호도 돌아와 있었다.목현수의 곁에 수줍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예민주는 성연을 보자 곧바로 인사를 했다.“언니, 일어났네요! 그래도 정말 여유롭네요.”“성연아, 너 다음에는 이렇게 무모하게 굴면 안 돼? 무진 씨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도 사람들을 데리고 유럽에서 너를 찾을 준비까지 다 마쳤어. 너는 그때 무진 씨의 말투를 모를 거야!”목현수가 곧바로 무진의 내막을 폭로하자, 무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완화시키려고 했다.그러나 그 말을 듣자, 성연은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정말 기뻤다.“사형, 알겠어요!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그런데 샤넬은요? 왜 함께 오지 않았어요?”성연이 물었다.“어떻게 와?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져서 배가 수박만 해! 나는 이제 아빠가 된다고!” 목현수가 눈썹을 실룩거리면서 무진에게 한껏 자랑했다.무진이 썩소를 날리면서 성연을 힐끗 쳐다보자 성연도 따라서 썩소를 날렸다.부창부수인 이 젊은 부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목현수가 물었다.“설마... 너희들도 생긴 거야?”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자, 무진은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그래! 어차피 내 아이가 너희 아이보다 일찍 태어날 거야. 너희 애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맏이가 되겠지!”목현수는 자신을 위로했다.지금 예민주는 확실히 모두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예민주의 마음은 몹시 불편했다.게다가 목현수 사형이 자신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런 느낌은
깊은 밤, 저택의 서재.7명의 임원들과 전화 통화를 한 무진은 예민주의 말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7 명의 임원들은 확실히 곧 돌아올 것이다.마음이 안정되자 무진은 잠시 생각한 뒤 즉시 홍보부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 12시에 모든 인터넷 매체에 통보하도록 해. WS그룹 7명의 고위 임원들은 출국해서 비밀리에 현지 조사를 마친 뒤 돌아왔다.” “모든 소문은 일부 인사들의 악의적인 조작일 뿐이라고 말이야!”구체적인 통보 기준은 홍보 부장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반드시 잘 처리할 테니 마음 놓으세요. 그럼 악의적인 비방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습니까?]“정도에 따라서 해. 너희 홍보팀에서 시행하도록 해. 만약 일부 네티즌들이 말을 와전했을 정도라면 그냥 놔 둬. 만약 누군가 엉큼한 심보를 품고 그랬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알겠습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은 일찍 쉬시지요!]전화를 끊은 후, 무진이 깊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마침내 푹 잘 수 있겠어.’‘할머니와 고모는 이미 본가로 돌아가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내일 한 번 가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어.’마침 수프 그릇을 손에 든 성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무진 씨, 눈 밑에 이 다크서클 좀 봐요. 항상 밤을 새울 수는 없어요. 자, 이걸 마셔봐요. 정신을 안정시키고 두뇌를 보양하는 작용이 있어요!”성연의 수프는 그냥 끓이는 게 아니다. 매번 자신의 처방을 첨가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인이 끓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무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수프는 됐으니까 이리 와 봐. 우리 아기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맞다, 할머니와 고모에게는 말씀드렸어?”자신의 배를 가볍게 어루만지는 무진의 손을 보자, 성연의 두 눈에는 달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아직요! 할머니와 고모님을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임원들이 실종된 사건 때문에 걱정하셔서 나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경사니까 언제 아시더라도 기뻐하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
공항 입국 게이트.암담한 눈빛의 성연은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서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이 상황을 본 예민주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인 모양이네.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겠어.’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은침으로 성연의 허리에 있는 혈을 찔렀다.순간 아픈 표정을 드러냈지만, 곧 눈빛이 되살아난 성연이 고개를 돌려 예민주를 바라보았다.“막내 사매? 여기가 어디야?”성연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걸 듣자 예민주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보아하니, 내가 연구해서 만든 독이 그래도 썩 효과가 좋은 것 같네.’사람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한 뒤 인식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독은, 여민주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그 실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F국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언니, 이제 귀국했으니까 곧 무진 오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진 오빠가 보고싶죠?” 예민주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은 성연이 무진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민주의 계획은 전혀 시행할 수가 없다.‘그래, 한 걸음씩 차근차근 해야 해.’ 예민주의 인내심은 대단했다.“응, 무진 씨가 내 남편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무진씨가 잘해 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운성시에서 살면 돼.” “더 이상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스승님이 너를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어!”지금 성연은 더 이상 예전의 성연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변했다.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기억들과 지시가 박혀 있었다.그래서 예민주에 대한 말투는 더없이 온화했다.“응, 언니가 정말 잘해 주시는 걸요! 언니가 외국에 와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거기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언니가 제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예민주는 마음속으로는 그야말로 통쾌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선량한 척 가장하면서 묵묵히 성연의 기억을 강화하고 있었다.예민주가 설계한 기억 속에서 성연은 어제 오후 3시에
하룻밤 사이에 연운그룹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계진 회장은 탈세 문제로 구속되었고,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도 잇달아 사직했다. 인터넷의 여론이 폭발하면서, 주가는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또 다시 20%나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회장 대행인 조수경도 이미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 진교철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교철은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대리인을 시켜서 연운그룹에 한 투자마저 철회했다.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조수경도 재빨리 연운그룹과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수경은 오후에 바로 회장 대행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그룹 전체가 이미 완전히 끝장이 났다. 게다가 여러 여직원들의 고소에 직면해 있어서, 탈세 문제뿐만 아니라 성범죄 문제와도 엮여 있었다.이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했지만, 지금 무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만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그 7 명의 임원들 사건이 무진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그래함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그래함은, 성연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줄곧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어젯밤에 성연과 짜고 거짓말을 했다고 무진에게 빨리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비로소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성연의 핸드폰으로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줄곧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손건호와 서한기에게 반드시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뒤 지금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곧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손건호의 전화였다.얼른 전화를 받은 무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소식이 있어?”[보스, 사모님의 종적을 찾았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비행기로 F국 프로방스로 갔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추적하기 위해서 제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그래, 어서 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고하고. 하지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해. 실혼전에서 틀림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무진은 당황
완전히 놀란성연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실혼전의 캐서린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너 정말 예중천 스승님의 딸이 맞아? 왜, 왜 이렇게 하려는 거야?”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예민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수잔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선배,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언니에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줬어요. 언니도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강무진 씨를 양보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요!”“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돼!”이를 악문 성연의 눈빛에는 살기도 확고하게 배어 있었다.“언니는 안 죽어도 돼요! 그리고 언니가 죽는다면 소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언니가 순순히 양보하는 거예요! 나하고 강무진 씨가 행복해야 지내는 모습을 봐야지요.” “그리고 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언니가 키우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내게 줘도 돼요.”예민주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연은 예민주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놀라서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수잔은 마치 로봇처럼 성연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었다.“송성연 씨, 차 드세요!”“예민주, 네가 말한 계획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 7명의 임원들이 없어도 내 남편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어.”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겠다는 그런 말을 하니 더 터무니가 없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넌 스승님의 딸도 아니면서 왜 딸이라고 사칭한 거야?”성연의 거듭되는 질문에 갑자기 화가 난 예민주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나를 화나게 해서 더 많은 사실을 드러내게 만들겠다는 거지요! 좋아요, 그럼 내가 아예 말해 줄게요.” “예전에 강무진 씨 부모님 죽음은 우리 예씨 가문과 관계가 있어요. 강씨 가문이 우리 예씨 가문에게 빚진 거지요! 알겠어요?”“내가 강씨 가문의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