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노트북을 덮었다. ‘스카이아이 시스템’을 되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하지만 저쪽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 아직 여유가 좀 있는 셈.지금 당장 강무진 앞에 가서 ‘스카이아이 시스템’은 내 것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소리소문 없이 ‘스카이아이 시스템’찾은 뒤에 바로 챙겨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강무진 쪽의 사람들 역시 성연이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치가 않았다.어쨌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스카이아이 시스템’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심은 변함없었다. 원래 내 것이었으니까.하물며 강무진 쪽은 우리 조직의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스카이아이 시스템’을 가져간 것 아닌가. 게다가 돈도 지불하지 않은 채로.당연히 자신이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연. 성연이 책상에 엎드려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성연이 의자에서 일어섰다.“나 먼저 갈게. 내가 여기 있는 걸 보이면 곤란해.”이 학교 학생들은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지난번 스캔들 때문에 보건실에 오려면 이제 몰래 와야 할 상황이다.안 그랬다가는 또 누군가 보고 어떤 소문을 퍼트릴지 모른다.“뭐가 곤란해요? 누군 아플 때 없어요? 이 보건실의 존재 이유는 아픈 사람이 오는 거예요.” 서한기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어차피 그야 성연과 한 편이니 경고를 받더라도 신경 쓸 게 없다.“나는 다르지. 만약 네가 그만두기라도 하면 누가 여기서 나를 도와?” 보건실 교사라는 서한기의 신분은 성연이 학교에서 운신하기에 매우 편리했다.서한기가 학교 내에 있으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평소 서한기에게 타박도 주고 질책도 했지만 여전히 믿을만한 수하였다.“만약 이 신분이 안 되면, 다른 신분으로 바꿀 수도 있지요. 보스를 여기 혼자 두지 않을 겁니다.”서한기는 짐짓 다정한 투로 말했다.그의 말투와 눈빛을 보던 성연이
늦은 오후,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난 후.성연은 자리에서 가방을 정리했다.교문을 나서기 전, 학교 안의 매점에 가서 밀크티 한 잔을 샀다.이전 밀크티 가게에서 일하던 그 여자 알바생이다.성연을 알아본 알바생이 반가워했다.“한동안 안보이더니 오랫만이네요. 요즘 잘 지내고 있어요?”알바생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성연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을 듣고 어색한 듯이 대답했다.“네 잘 지냈어요.”“알고 있었어요? 전에 게시판에 올라왔던 학생 사건, 엄청난 반전이었잖아요. 그때 게시판에서 난리가 났어요. 모두 학생을 오해했었는데……. 나도 학생 위해서 해명글 올리고 그랬었어요.” 알바생이 신난 목소리로 떠들었다.“고마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 없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깨끗한 자는 깨끗하고 더러운 자는 더럽다는 말도 있잖아요.”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녀는 결코 이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어떤 댓글도 그녀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어쩐지 그래서 학생이 그렇게 침착했구나. 이 일은 정말 내가 한 일이 아니었네. 그래도 학생한테 사과하고 싶었어요.” 알바생은 집에 돌아간 뒤 생각하니 더 미안함을 느꼈다.무고한 사람을 오해했으니 한 두 마디 사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계속 성연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다시 사과하고 싶었지만 성연은 오지 않았다.그래서 며칠간 실의에 젖어 있기도 했다.“이미 다 지난 일이에요. 특별히 제게 사과할 필요 없어요. 사과는 전에 이미 받았잖아요.”이 알바생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저기 그런데 최대한 빨리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좀 급해서요.” 성연은 10분 미리 와서 밀크티 한 잔 사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예기치 못하게 이 알바생에게 붙들려 수다를 떨게 된 참.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무진의 운전기사가 지금쯤이면 벌써 도착했을 것이다.이 알바생이 신난게 말하는 통에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도 잊어버릴 뻔했다.알바생이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미안해요, 반가운
확실히 진미선이 성연에게 한 말이 맞았다.그때 진미선은 성연과 영원히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었다.그런데 성연이 그런 재벌가에 시집을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진미선의 얼굴이 좀 어색하게 굳었다. 딸에게 이런 핀잔을 들으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이때 진미선의 뒤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바로 진미선의 남편, 왕대관이다.성연과 진미선 사이의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이 두 모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왕대관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의 딸이 아니니 좀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었다.어린 아가씨지만 비위를 잘 맞춰 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강씨 집안,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꿈의 대상 아닌가.특히 자신들 같은 작은 회사로서는 엄청난 편의를 볼 수 있는 지름길과 같으니 줄을 잘 잡아야 하는 게 당연지사.성연을 손에 쥐기만 하면 앞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왕대관이 성연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그런대로 괜찮은 태도였다. 온유한 음성으로 말했다.“성연아, 네가 우리의 뜻을 오해한 것 같아. 아저씨는 단지 너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을 뿐이야. 어쨌든 네 어머니와 결혼했으니 모두 한 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겠니. 아직 너를 본 적이 없어서 오늘 일부러 온 거야. 가끔 이렇게 모여 밥 먹는 것도 좋을 것 같고.”“죄송합니다, 아저씨. 밥 먹으로 얼른 집에 가야 해서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안되겠네요.” 성연이 일부러 강씨 집안 사람을 내세웠다.그리고 입술 끝만 살짝 올린 채 왕대관을 바라보았다.“그럼 밥은 나중에 먹고 차는 어때? 잠깐이면 되는데.”강씨 집안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왕대관이 한 발 물러나며 커피를 같이 마시자고 성연에게 요청했다.그 말에 성연은 왕대관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 남자는 그래도 진미선이나 송종철보다는 훨씬 똑똑하네.’‘하지만 그래도 귀찮아.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면 금세 나한테 완전히 들러붙을 거야.’‘난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성연이 일부러 순진한 척하며 눈을 깜박
성연이 괴로운 척하며 말했다.“저를 통해 강씨 집안과 줄을 대고 싶다면 단념하세요. 강씨 집안 사람들이 저에게 잘해주는 것은 모두 표면적인 거예요. 사실, 제 약혼자는 조광증이 있어서 저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그러니 저를 통해 뭔가 얻어 가실 가능성은 없어요.”‘어차피 지금 강무진도 없잖아. 이름 좀 빌려서 번거로운 일 피한다고 해서 뭐라 하진 않을 거야.’‘여기서 하는 말은 강무진도 모르잖아. 진미선과 그 남편이 강무진 앞에 가서 이런 말을 하지도 않을 테고.’“강무진 대표가 너를 때린다고? 그럴 리가?” 진미선은 전혀 믿지 않았다.표면적인 관계인데 안금여가 성연에게 그렇게 잘할 리가 없었다.성연을 대하는 강씨 집안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전혀 거짓 같지 않았다.“에이, 말하자면 길어요. 강씨 집안이 저를 위해 생일파티를 해준 것은 강무진이 나에게 손찌검 한 행동을 감추려는 거예요. 강무진이 미친 사람이라는 소문도 못 들으셨어요?” 성연이 코를 훌쩍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좀 불쌍해 보이도록.좀더 심각해 보이도록 일부러 한숨도 쉬었다.그렇지 않으면 진미선과 왕대관이 어떻게 믿겠는가?“내가 보기에 그날 강무진 대표는 아주 정상이었는데.” 왕대관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다만, 헛소문인지 사실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그냥 농담으로 치부했을 뿐이었다.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만 믿었다.그러나 성연의 말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설마 강무진이 정말 사람을 때렸을까?“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또 생일파티 시작하기 전에 강무진이 약을 먹었으니 당연히 발작하지 않은 거죠. 사람들은 다 속고 있어요. 집에 있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성연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몸서리를 쳤다. 속으로 몰래 웃었다.자기가 말하고도 아주 진짜인 듯해서 하마터면 믿을 것 같았다진미선과 왕대관의 표정을 보며 성연이 계속 말했다.“그러니까 아저씨, 저한테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강씨 집안에서 이미 충분히 조심스럽게 살고 있습
풀이 죽은 성연이 무진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차에 탄 후 성연이 변명을 시도했다.“아저씨도 생각보다 똑똑하니까 저 사람들이 왜 나를 찾는지는 잘 알겠죠?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래야 저 사람들을 따돌릴 수 있다고요.”“그래?” 무진의 말투는 밋밋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성연은 지금의 강무진이 어느 때보다 무섭다고 느꼈다.무진과 같은 공간에서 지낸지 오래 됐지만 지금은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당연하죠. 아저씨도 내 말이 맞다는 걸 믿는게 중요하죠.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잖아요 아저씨가 날 안 때린다는 걸. 그러면 됐잖아요.” 성연이 ‘헤헤’ 웃으며 일을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 무진이 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무서웠다. 성연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물론 무진이 자신을 때릴 거라 겁내는 게 아니다. 다른 게 걱정되는 것이다.“그래서 너는 날 그렇게 이상한 놈으로 만든거야?” 차가운 얼굴로 내뱉는 무진의 음성에 배인 것은 분노가 확실했다.성연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강무진도 이런 것들을 신경 써?’‘강상철과 강상규가 그렇게 오랫동안 가짜 소식을 퍼뜨리며 그를 미치광이로 몰았는데도 따지지 않았잖아?’‘어차피 그닥 좋은 소리도 못 들으면서 내가 몇 마디 한 게 어때서?’‘강무진, 지금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게 분명해.’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성연이지만 절대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할 수 없이 말했다.“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에요. 아저씨도 저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귀찮게 하는 건 싫잖아요?”처음으로 사람을 험담하다가 들키니 성연도 어쩔 수 없었다.“그냥 거절하면 되잖아? 아니면 네 눈에는 내가 정말 너에게 손찌검을 할 거라고 보이는 거야?” 강무진도 이 아이와 따지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자신을 정말 그런 사람인 것처럼 생생하게 말하는 게 무척 거슬렸을 뿐.“아니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왜 모르겠어요?” 성연이 아첨하기 시작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었다.그리고
성연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진미선과 왕대관은 집에 돌아가 이 일에 대해 의논했다.“성영의 태도는 당신도 보았지만, 전혀 나를 상대하려 하지 않아요. 분명히 내가 자기를 원하지 않았던 일을 원망하고 있을 거예요.” 자신이 직접 성연을 키운 게 아니었다.자연 성연에 대한 애정도 그리 깊지 않았다.기껏해야 혈연관계가 있다는 것 뿐.자신에 대한 성연의 태도에 대해 진미선은 그저 교양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이미 속으로 성연을 수백 번이나 욕을 한 상태였다.‘양심도 없는 것. 외할머니가 저를 키워줬는데 정말 양심도 없이.’‘이제 인생이 풀렸다고 친 엄마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좀 봐.’진미선은 다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남편 왕대관 앞에서는 완벽한 아내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니까.예전 전남편 송종철 쪽에서 성연을 돌볼 거라고 다짐했기 때문에 왕대관은 안심할 수 있었다.어차피 왕대관 자신도 진미선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그러나 자신이 이렇게 말해야 지금의 남편 왕대관의 마음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테다.왕대관도 진미선이 성연에게 몰래 돈을 준 사실은 몰랐다.성연이 진미선에게 나중에 서로 모르는 척하자고 한 것에 대해 왕대관은 믿지 않았다. 단지 성연의 일시적인 볼멘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딸이 당신을 원망하는 게 정상이야. 당신이 딸에게 좀더 좋은 말을 해줘. 언젠가는 딸의 태도가 좋게 바뀔 거야.” 왕대관은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성연이 정말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 진미선은 성연의 변화가 정말 크다고 느꼈다.예전에도 말을 잘 듣지 않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아마 성연은 엄마인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당신은 친엄마잖아. 아이들은 모두 엄마의 사랑이 필요해. 지금 당분간은 화를 낼 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당신의 태도를 보면서 서서히 좋아질 거야.”왕대관도 애초에 진미선의 아름다운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결혼한 후에야 진미
이해득실을 따져보니 진미선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시골에 있을 때 성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했다.생각해 보면, 성연은 얼굴이 예쁜 편이다. 아마도 얄팍한 강씨 집안 도련님은 성연의 얼굴만 보고 좋아 하는 것은 아닐까?예전에 성연을 내팽개치고 나 몰라라 할 때는 언젠가 성연에게 기대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당신 그런 불편한 얼굴 하지 마. 저렇게 대단한 사위가 생겼는데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을 해야지?” 왕대관은 진미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말이야 쉽죠. 그렇게 하는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진미선의 말투가 좀 삐딱하다.“천천히 해. 어차피 당신의 딸이잖아. 조급해 하지 말고. 강씨 집안의 그 많은 돈을 우리도 좀 챙기자고.”진미선의 손을 어루만지는 왕대관의 마음에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다.진미선은 아주 젊었을 때 아이를 낳고 지금은 잘 회복되어 아이를 낳은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손을 더듬던 왕대관은 갑자기 몸이 동하며 흥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 진미선이 왕대관의 목을 껴안았다.두 사람이 막 키스하려고 할 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세게 열렸다.그리고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 밥도 안 차리고 뭐하는 게야. 나를 굶겨 죽이려는 거냐? 시커먼 마음으로 우리 집안에 들어온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는 구나?”들어온 사람은 바로 왕대관의 어머니였다.진미선과 왕대관 둘다 표정이 구겨졌다.막 아내와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니 들끓던 흥분이 싹 사라져버렸다.“어머니, 뭐 하십니까?” 자연 왕대관에게서 차가운 음성이 나왔다.자기 아들의 말투가 좋지 않자 왕대관 어머니는 또 다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아이고, 여자가 바로 화근이야. 봐봐, 아들마저 엄마를 몰라보게 만드는구나!”어릴 때부터 학교에 다닐 때까지 혼자 힘들게 키워
저녁에 성연은 고택에 가서 안금여와 함께 식사를 했다.무진이 오후에 성연을 데리러 온 것도 안금여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식탁에 앉아 식탁에서 준비된 것의 절반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인 것을 보면서 성연은 마음속으로 약간 감동했다.“할머니, 왜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으셨어요?”안금여가 웃으며 말했다.“내 걱정 하지 말거라. 오랜만에 편하게 맘껏 먹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이 말은 정말 성연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코가 찡하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러나 억지로 참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할머니, 감사합니다.”안금여는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담았다.“우리 성연이, 빨리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음식이 다 식을 거야.”성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먹으면서 안금여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할머니, 이거 안에 단백질이 많아요. 몸에 좋아요. 그리고 이것도요. 몸을 건강하게 해줘요. 평소에도 많이 드셔야 해요.”안금여는 눈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그래, 날 챙기지 말고 너나 어서 먹어. 내가 알아서 먹으마.”어린 손녀며느리가 이렇게 시중을 드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예전 운경과 무진이 어렸을 때는 이처럼 친밀하지는 않았었다. 늘 각자 다른 일을 했지. 효성스러운 아이들이었지만 크고 나서는 또 각자 할 일도 많아지며 성연처럼 계속 자신의 곁에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성연이 강씨 집안에 들어온 후, 이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어 강씨 집안이 더 이상 이렇게 의기소침하지 않게 했다.“할머니도 드세요.” 성연도 미소지으며 안금여에게 국 한 그릇을 떠 주었다.안금여는 성연이 너무 말랐다고 생각하며 성연에게 많이 먹으라고 재촉했다. 마지막까지 식탁의 음식은 모두 성연에 의해 절반이 없어졌다.성연은 정말 너무 배불렀다.안금여는 성연을 데리고 산책을 갔다.성연은 안금여와 팔짱을 끼고 화원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강씨 집안의 꽃밭에는 희귀한 꽃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이때 오솔길을 걸으면 꽃밭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꽃향기를 은은하게
성연은 무진에게 졸업식이 끝나면 바로 귀국할 거라고 말했다.하지만, 물건을 정리해야 해서 내일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무진은 성연의 졸업식이 어땠는지 전화해 보고 싶었다.‘성연이 약속한 사진도 보내지 않았어.’무진이 줄곧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무진은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성연이 내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여전히 학교에 있었어. 3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는 어디에도 갈수 없어.’무진은 성연을 걱정하느라 애가 탔다.망설이지 않고 바로 샤넬 가문에 전화를 걸어서, 성연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좀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그리고 무진도 즉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무진의 마음은 성연에 대한 미안함으로 몹시 혼란스러웠다.성연이 북성을 떠나 유럽으로 갔을 때 무진은 줄곧 불안했다.혹시나 성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그런데 지금 가장 걱정하던 일이 결국 발생했어.’‘성연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데.’무진이 샤넬의 오빠와 통화할 때 샤넬과 목현수가 바로 옆에 있었다.오빠가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것을 본 샤넬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미세스 송이 없어졌다는 거야.”샤넬의 오빠가 조용히 말했다.“어, 어떤 미세스 송인데요?” 샤넬은 한동안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목현수는 미세스 송이 바로 성연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그는 의자에서 재빨리 일어섰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샤넬도 오빠에게 물어보았다.“성연이에요?”샤넬의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미세스 송이 갑자기 강 대표와 연락이 끊겼다고 해. 아무리 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거야. 게다가 미세스 송이 예약한 항공편도 없어. 강 대표가 걱정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 쪽에 조사를 도와달라고 했어. 지금 강 대표는 이미 A국에서 유럽으로 오고 있어.”“그럼 빨리 움직여야지요. 위험해지면 안 되잖아요.” 샤넬은 바로 오빠에게 조사를 재
성연이 좀 피로해졌을 때 캐서린이 밖에서 들어왔다.손에는 긴 채찍을 들고 있었다.채찍에는 미늘들이 박혀 있었다.캐서린은 두말없이 바로 성연의 몸에 채찍질을 했다.“말 안 할 거야?”채찍에 박힌 미늘들이 성연의 몸에 바로 핏자국을 남겼다.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었다.고통에 신음 소리를 낸 성연이 캐서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몰라.”“아직도 주둥이만 살아가지고.”캐서린이 말하면서 또 성연의 몸에 채찍질을 했다.성연의 온몸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면서 아파서, 이미 어디가 더 아픈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고통을 꾹 참는 성연의 모습을 보고 캐서린이 웃었다.손에 든 채찍을 가늠하는 한편 웃으면서 말했다.“당당한 아수라문의 보스가 이제는 내 포로가 되었네?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캐서린이 성연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자, 성연은 고개를 쳐들고 캐서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그 순간, 캐서린은 뜻밖에도 성연의 눈빛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그러나 성연의 앞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어쨌든 성연의 머리카락은 놓아주었다.힘없이 고개를 숙인 성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절대 캐서린을 가만히 두지 않겠어.’“네 충성스러운 개들이 모두 우리 손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말해봐. 만약 네 부하들이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리석게도 희생을 겁내지 않고 널 구하러 올까?”캐서린은 느물거리면서 말했다.“그러면 안 돼!” 성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내 부하들은 내가 잘 알아.’‘내가 캐서린에게 납치된 걸 알게 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구하러 올 거야.’성연은 몇 년 전의 참극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실혼전 사람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야.’‘차라리 내가 희생되더라도 나를 믿는 사람들을 공연히 죽게 만들 수는 없어.’캐서린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부하들을 신경 쓰는 모양인데, 걱정하지 마. 지금 아수라문에서는 너 혼자만 내게 쓸모가 있어. 다른 자들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원래 송성연을 몰래 여기다 잡아
성연의 흥분한 기색을 본 캐서린이 웃었다.“미스 송, 넌 지금 나한테 잡혔어. 그렇게 사납게 굴지 마.”캐서린을 노려보는 성연의 눈빛은 짙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당연히 네가 쓸모가 있으니까 널 데려왔지. 아니면 내가 너를 왜 데리고 왔겠어?”캐서린은 우리에 갇힌 맹수 같은 성연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이제 송성연은 내 손에 떨어졌으니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어.’“그냥 바로 말해, 구태여 빙빙 돌릴 필요가 있어?” 성연은 캐서린의 손에 떨어졌어도 여전히 굴복하지 않았다.“좋아, 좋아. 나는 이런 네 모습을 감상하려는 거야.” 박수를 치면서 다가간 캐서린이 성연의 턱을 누르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고학중은 도대체 어디에 있어? 그때 청혈진주는 도대체 어디에 숨겼지?”성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네가 찾아와서 나한테 스승님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했잖아? 이제는 나한테 반문하는 거야?”캐서린이 질문에 대해서 성연은 알지 못했다.심지어 청혈진주가 뭔지도 잘 몰랐다.성연은 스승님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스승님의 행방은 더욱 몰랐다.성연은 스승이 위험에 처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좋아하는 제자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그러나 성연의 이런 행동을 본 캐서린은 성연이 꼴에 자존심만 세다고 생각했다.‘송성연은 고학중의 제자인데, 어떻게 스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수 있어?’캐서린이 손끝으로 성연의 뺨을 가볍게 그었다.“미스 송, 나는 미녀를 아끼는 사람이야. 눈치껏 행동하라고 충고할게. 그렇지 않으면 이따가 고생할 거야.”마치 독사가 성연의 뺨을 핥는 듯한 캐서린의 행동에 성연은 정말 반감이 들었다.그러나 지금은 전혀 피할 수가 없었다.사람들이 하는 대로 당해야 하는 이런 기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하필 성연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내가 예전에 이런 굴욕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나한테 기회만 생기면 반드시 너를
가는 도중에 성연은 침묵한 채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여자를 따라서 한 장원에 도착했다.성연이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여자가 성연에게 뭔가 뿌리자 바로 온몸에 힘이 없어졌다.성연은 자신을 묶는 여자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당,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성연의 목소리는 힘이 없어서 아주 미약했다.여자가 자신에게 뿌린 약은 연골산과 비슷한 약이었다.성연은 발버둥치려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지금 이 순간, 성연은 비로소 속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목표는 아마도 성연 자신이었을 것이다.방금까지 위선적이었던 가면을 벗은 여자의 얼굴은 차갑고 표독스러웠다.“나를 잊었어? 미스 송은 정말 건망증이 심하네.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어.” 캐서린은 손을 뻗어 성연의 턱을 누르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성연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면서 웃는 캐서린의 눈가에 어두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반항할 힘이 전혀 없는 성연은 여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나를 잡았으니 이유라도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성연이 물었다.캐서린이 냉소하며 말했다.“애초부터 너를 노렸지만 뜻밖에도 네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어. 이제야 겨우 내가 기회를 잡게 된 거야.”성연은 여자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이 여자는 정말 전혀 기억이 없어.’‘게다가 나는 아예 이 여자를 모르는데.’성연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자 캐서린은 더욱 화가 났다.‘내가 기억하는 걸 왜 송성연은 모두 잊어버린 거야?’캐서린의 마음은 정말 달갑지 않았다. “나는 캐서린이야! 아직 기억하고 있어?”캐서린은 성연을 사나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성연은 고개를 저었다.“기억이 나지 않아.”화가 난 캐서린은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좋아, 아주 좋아. 기억이 안 나도 괜찮아.” 캐서린은 성연을 억지로 장원의 지하실로 끌고 갔다.어두컴컴한 이곳은 주위에서 습하고 썩는 냄새가 났다.캐서린은 성연을 지하실의 유일한 의자에
졸업식이 끝난 후 성연의 유럽에서의 학업은 마침내 일단락되었다.귀국 준비를 하려고 기숙사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성연은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아주 아름답고 젊은 서양 여자였다.“당신이 송성연 씨인가요?” 젊은 여자가 물었다.성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앞에 있는 여자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없었다.어디서 봤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그러나 이 사람은 성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성연은 예의상 웃으며 말했다.“전데요, 무슨 일이신가요?”“중요한 일이 있어서 미스 송을 어디로 좀 초대해서 상의하고 싶은데요?” 여자가 성연을 초대했다.성연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누구도 쉽게 믿지 않았다.‘게다가 이 여자와는 처음 만났을 뿐이야.’‘어떻게 처음 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어?’‘이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을 상의할 수 있단 말이야?’“아니요, 저는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해요.”성연의 말투가 싸늘해졌다.성연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여자는 입술을 가리면서 가볍게 웃었다.“송성연 씨, 미리부터 성급하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당신의 이름부터 말해야 하지 않나요?” 성연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송성연 씨 당신이 줄곧 고학중 씨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이 당신의 스승님이지요? 내가 너에게 말한다면, 나와 함께 가겠다고 대답할 건가요?” 여자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성연에게 가장 중요한 걸 자신이 가지고 있기에, 성연이 거절할 거라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스승님의 이름을 듣자 성연은 순간 멍해졌다.흥분해서 여자의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당신이 정말 제 스승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고 있나요?”성연은 힘이 세서 여자가 좀 아플 정도로 세게 잡았다.그래도 여자는 여전히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미스 송이 알고 싶다면 저와 함께 가야 합니다.”손을 놓은 성연은 반신반의하면서 여자
성연이 학교로 가는 날, 무진은 직접 성연을 공항으로 데려다 주었다.두 사람은 이별을 아쉬워했다.그러나 성연은 결국 가야만 했다.한참동안 포옹을 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자 성연은 비행기에 올랐다.유럽에 간 뒤 반년 동안 성연은 남은 과정을 이수했다.곧 졸업식이 다가왔다.저녁에 기숙사에서 무진과 통화했다.[느낌이 어때?]” 무진이 물었다.[내일이 졸업식인데 긴장돼?]“괜찮아요, 정상적으로 졸업하는 거라서 긴장되지는 않아요.” 성연은 어깨를 으쓱했다.[미안해,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무진의 눈빛에는 미안한 기색이 짙게 배어 있었다.원래 성연의 졸업식에서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기다렸다.성연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이다.그러나 급한 일이 생겨서 무진은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어쩔 수 없이 성연이를 서운하게 만들었어.’“괜찮아요. 무진 씨 일이 바쁜 거 알아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성연은 졸업식이 그저 사진만 찍는 것이지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무진이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방법이 없다면 성연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럼 졸업식 끝나면 사진 보내줘.] 무진도 성연이 졸업 가운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다.“알았어요. 무진 씨 혼자 집에서 일하는데 건강에도 주의해야 해요.”성연은 무진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매번 어떤 일도 강요하지 않았다.성연도 그렇게 큰 회사를 관리해봤기 때문이다.무진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무진이 쉽지 않다는 걸 더욱 잘 알 수 있었다.[알았어, 잘 자.] 무진은 성연에게 뽀뽀를 날린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졸업식이 곧 다가왔다.일단 강의실에 있으면서 학생들은 졸업 소감을 공유했다.그들의 지도교수도 바뀌었는데 지금의 지도교수는 아주 부드러운 유럽 여성이었다.단상에서 축사를 하던 지도교수가 갑자기 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송성연 학생이 이번에 학과에서 학점이 가장 높아요. 성연 양은 이에 대해서 미래의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선물을 산 무진과 성연은 안금여를 방문하러 본가로 갔다.두 사람이 선물을 들고 들어오는 걸 본 안금여가 탓하듯이 말했다.“나는 또 너희가 신혼여행에만 급급해서 이 할미는 잊어버린 줄 알았구나.”“할머니, 어떻게 할머니를 잊어버리겠어요.” 안금여의 비위를 맞추면서 다가간 성연은 안금여의 등을 안마해 주었다.안금여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지만, 아주 기분 좋게 성연의 안마를 받아들였다.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본 안금여는 바로 주방에서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했다.‘이제야말로 내 집에 돌아왔어. 온갖 음식들이 전부 나를 위한 거야.’밥을 먹을 때 안금여는 줄곧 성연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성연아, 많이 먹어야 해. 너는 너무 말랐어.”“할머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못 먹어요.” 성연은 얼른 자신의 그릇을 감싸면서 말했다.안금여는 끊임없이 반찬을 집어주었고, 성연의 그릇에는 곧 한 무더기가 쌓이게 되었다.“괜찮아, 이렇게 말랐는데 많이 먹어야지.” 안금여는 그러고도 성연에게 반찬을 더 집어준 뒤에야 비로소 수저를 내려놓았다.성연은 이미 적잖은 간식을 먹고 온 터라, 지금은 정말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바로 무진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무진은 성연을 흘겨보더니 성연의 그릇에 쌓여 있는 반찬들을 자신에게 옮겼다.안금여의 눈앞에서 버젓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그러나 무진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안금여는 무진이 이렇게 당당하게 성연을 비호하는 걸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래 이래야 해. 성연이는 무진이 아내니까 무진이가 성연이를 감싸는 것도 당연해.’“성연아, 무진아. 결혼식도 끝났는데 너희들은 계획이 있니? 신혼여행을 갈 생각은 없어?” 연로한 안금여는 잘 모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방식이 유행한다고 했다.“할머니, 저희는 안 갈 거예요.” 무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성연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무진은 성연에게 아무런 아쉬움도 남기지 않는 결혼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하지만 성연이 신혼
결혼식이 끝난 후, 그래함과 유채연은 세계 일주 여행을 계속했다.유럽으로 돌아간 목현수와 샤넬은 유럽에서의 결혼식을 준비했다.결국 그들의 친척 대부분은 유럽에 있기 때문이다.목현수는 샤넬의 친척들 생각도 좀 신경을 써야 했다.샤넬의 오빠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기에.성연은 두 사람이 비행하는 도중에 먹을 수 있게 직접 특산물을 준비했다.비행기가 이륙하자 무진의 품에 기댄 성연의 눈빛에는 어렴풋이 서글픈 기색이 비쳤다.“정말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제는 또 각자의 길을 가야 하네요.”“괜찮아. 보고 싶으면 나중에라도 자주 볼 수 있어. 그들도 자기만의 삶이 있잖아.” 두 사람이 같은 반지를 끼고 있어서 척 봐도 부부임을 알 수 있었다.“맞아요. 아마도 추구하는 게 다르겠지요.” 성연은 이번에 헤어져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모두 다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성연은 무진과 함께 차에 올랐다.돌아오는 길에 무진이 다정하게 물었다.“뭐 좀 먹을래?”요 며칠 성연은 줄곧 결혼식 일로 정말 말도 못하게 바빴다.집에 돌아오면 아무렇게나 식사를 해치운 뒤에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졌다.간식도 정말 맛이 없었다.“그럼 옆의 마트에 한번 구경하러 가요.” 성연은 정말 군침이 돌면서 입술을 핥았다.“그래.” 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워둔 뒤 무진과 성연은 함께 마트로 들어갔다.마트에는 온갖 맛있는 간식들이 가득했다.성연은 좋아하는 간식이 보이는 족족 카트에 집어 넣었다.곧 간식이 한 무더기가 쌓였다.묵묵히 성연의 뒤를 따르던 무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성연이 고른 간식들을 몰래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았다.성연은 자기가 카트에 넣었던 간식들이 어쩐지 갈수록 줄어든다고 느꼈다.고개를 돌린 뒤에야 무진이 하는 짓을 볼 수 있었다.눈썹을 찌푸린 성연은 수상쩍다는 듯이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 뭐 하는 거예요?”무진이 진지하게 말했다.“간식을 이렇게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아.”‘이 간식 더미가
저택에서 잠시 쉬었다가, 무진과 성연은 다시 결혼식장으로 달려갔다.결혼식에 온 손님들을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서였다.지금은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갈아 입지 않았다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무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연계진과 조수경의 모습을 발견했다.조수경은 알지만, 연계진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그러나 연계진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졌다.‘조수경이 저런 사람과 어울리면서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눈썹을 찌푸린 무진의 모습은 분명히 그들의 존재에 신경이 쓰이는 게 확실했다.무진의 표정이 좀 이상한 걸 보고 성연이 물었다.“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무진은 성연의 기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데, 어쨌든 술을 손님들께 술을 권해야겠네요. 자, 갑시다.” 그래함이 다가와서 무진과 목현수에게 말했다.‘그러고 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야.’‘술을 권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무진이 술잔을 들고 술을 권하러 두 사람을 따라 갔다.성연이 무진의 소매를 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마셔요.”‘무진 씨 위장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알았어.” 무진은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목현수와 그래함이 말했다.“성연아 걱정 마. 네 남편이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막고 있으니까 괜찮아.”두 사람의 놀리는 말에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예요? 빨리 가기나 해요!”성연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성연을 더 이상 농리지 않고 세 사람은 바로 손님들에게 갔다.곧 무진, 목현수와 그래함이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성연은 샤넬, 유채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유채연은 궁금한 듯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연이 미처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