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진행하던 무진의 1차 치료 과정이 아직 덜 끝난 상태인데 지금의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당한 운동이 필요했다.결국 일어난 성연이 무진을 뒤로 살짝 밀었다. “뒤로 좀만 가요.”방안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는 무진이 성연의 말을 따라서 살짝 뒤로 물러섰다.자세를 취한 성연이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동작으로.몇 분 후, 동작을 마친 뒤 무진을 바라보며 확인했다. “기억하셨죠?”기억하긴 했다. 모두 간단한 동작들이니까.하지만 아리송한 표정의 무진이 말을 끌었다.“근데 이거…….”무진의 뚱한 표정을 본 성연이 냉소를 지었다.“아저씨, 이 동작들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리 회복에 정말 효과가 좋아요. 다른 사람은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고요…….”겉보기에는 느릿느릿한 것이 노인들의 스트레칭 자세와 비슷했다.정말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동작에, 무진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꼭 해야 돼?” 그래도 강씨 집안의 장손으로서 체면이 있지.“물론이죠, 제가 가르쳐 드린 것들 중에 틀린 것 있었어요? 봐 봐요, 이 동작은 하체의 근육과 뼈를 모두 스트레칭 할 수 있어요. 아저씨의 굳은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어요.”성연이 이치에 맞는 소리들만 읊었다.“다른 방법은 없어?” 여전히 체면을 내려놓지 못한 무진이 주저했다.“없어요.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 다리도 아닌데요 뭐…….” 살짝 기분이 상한 성연이 눈을 흘기며 자리를 뜨려 했다.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가 바로 이런 비협조적이면서 의사를 못 믿는 이들이다.무진이 바로 성연의 손을 잡았다. “미안, 바로 할게.”성연은 한숨을 돌렸다. 이 또한 그를 위해서다.그의 이런 투정은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가던 걸음을 멈춘 성연이 고개를 돌려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처음해보는 동작
한 세트의 스트레칭 동작을 다 끝낸 무진은 다리가 천근만근 같이 느껴져 들어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다리를 살짝 움직여 보니 왠지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듯했다.성연이 흘깃 보더니 설명했다.“정상이에요. 굳었던 근육이 이완되어서 그런 거에요. 지금 바로 침 맞고, 다시 약욕을 하면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어요.”성연은 바로 창고에 가서 무진에게 쓸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시간이 늦어 집사와 고용인들 모두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없었다.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약을 한쪽에 놓고 무진을 눕힌 성연이 침을 놓기 시작했다.천천히 침을 놓는 성연에게 무진이 갑자기 물었다.“피곤해?”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했지만, 곧장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럼 안 피곤하겠어요?”하루 종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게임 좀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었는데, 이렇게 산통을 깨다니…….마음속에서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하지만 그저 속에서 담아둘 뿐, 1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받고 입을 싹 닦을 수는 없을 터.100억, 물론 그녀한테는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고생이네.” 무진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그의 음성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낮고 묵직하니 듣기 좋은 음성이 불쑥 귓가에 닿으니 성연의 귀가 간질거렸다.무진의 얼굴, 목소리, 몸매까지 모두 성연에겐 최고로 느껴졌다.무진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들킬 뻔했다.얼굴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성연은 일부러 앙칼진 말투로 부끄러움을 감추었다.“의사가 진찰할 때 말을 아껴야 하는 거 모르세요? 만약 침을 잘못 놓기라도 하면 어쩔거에요? 저는 책임 못 져요.”하얀 피부에 피어오른 홍조가 귓바퀴까지 번지며 아주 선명했다.성연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아차린 무진이 가볍게 웃었다.눈을 크게 뜬 성연이 무진을 노려보았다. 무진은 별일 없는 듯 침착하게 눈을 감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은침을 다리에 놓고 성연은 욕조에 약재를 넣고 물을 받기 시작했다.약효
손건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의문을 보스에게 물었다.무진은 말을 아꼈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여러 해 전,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비행기 사고는 상당히 수상쩍었다. 그날은 화창한 날씨였었다. 의심스러운 기상 조짐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비행기가 추락했다.비행기에서 생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비행기 추락사고를 조사하고자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했다.그 후에도 어린 무진이 여러차례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목숨을 위협받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러자 다시는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던 안금여가 무진을 뒤로 숨겼다. 누군가의 위협으로부터 무진을 지키기 위해서.그는 강씨 집안의 장손이었다. 강씨 집안은 100년 전부터 줄곧 장자, 장손이 그룹을 계승하는 불문율을 지켜왔다.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부모님이라는 방패를 잃어버린 어린 무진은 계속해서 일부 사람들의 ‘화살 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겉으론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강씨 집안이었지만, 사실 언제나 보이지 않게 본가를 압박하는 존재가 있었던 까닭에.하지만 이제 무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둘째, 셋째 할아버지 강상철과 강상규의 암중세력이 생각보다 커서 한꺼번에 제거하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뿐.게다가 그들을 쳐 내야 할 이유는 많지만, 아직까지는 저 둘을 건드려서는 안된다.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후, 강상철과 강상규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잔당세력까지 뿌리를 뽑을 때까지는.물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진의 신체적 문제.안금여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도 하다!아마 자신이 죽기 전 무진에게 향후 발생할 모든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고 싶을 터이다.큰 키에 다부진 몸의 무진은 꼿꼿한 자세로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피바람이 부는 전장에서 잘 벼린 칼날처럼 반짝였다.다만 아직 이러저러한 이유로 칼날을 숨기고 힘을 비축하고 있는 중이다. 조용히 기다리다 때가 되면 칼을 뽑을 것이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
무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있긴 하지…… 명의 고학중을 찾을 수만 있다면…….”무진의 말을 들은 손건호는 일순 입을 다물었다. 고학중은 신출귀몰해서 그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직도 없었다. 오랜 기간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데 그를 찾기 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게다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치료를 맡는 것도 아니었다.성질이 괴팍한 고학중은 오로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치료 여부를 결정했다.그에게는 신분과 권력도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만금을 줘도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다고 하니. 반면 마음이 내킬 땐 한 푼도 받지 않고 치료해 주기도 한다고.적잖은 권세가들이 그의 치료를 원했지만 억지로 요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부하기에 급급했지.몇 해전, 강씨 집안에서도 무진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그를 수소문했었다.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종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즉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그러니 무진이 한 말은 하나 마나 한 얘기였다.침묵을 지키던 손건호는 보스를 위로하고자 입을 달싹거렸지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할 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무진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한 무진이 곧바로 방에서 나와 성연의 방 앞으로 가 노크했다.“송성연, 너 학교에 가야지…….”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성연은 부시시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졸린 눈을 반쯤 감은 채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잠에서 덜 깬 모습 그대로.아침 식사가 끝난 후 학교로 출발했다.무진의 차로 학교까지 이동하는 동안.성연은 차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왼쪽 창문에 기대어 있다가차체가 흔들리면서 몸도 덩달아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그리고 무진의 어깨에 안착.자신이 아닌 다른 신체의 따뜻한 기온에 깜짝 놀란 성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곧 자세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잠결에 또 무진에게 몸을 기대는 성연.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지만 천근만
당당한 성연의 말에 할말을 잃은 손건호.하마터면 잊을 뻔했다.작은 사모님은 아직 미성년자라는 걸.아직 몸이 자라고 있다는 게 맞았다.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무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정수리를 살짝 두드렸다.“계속 자. 학교에 도착하면 깨워 줄게.”고개를 끄덕인 성연은 무진의 품에 안겨 계속 잠을 청했다.무진의 품은 편안했다.학교에 도착하자 무진이 낮은 소리로 깨웠다.선잠을 자고 있던 성연은 바로 깨어났다. 차에서 내린 성연이 무진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 뒤, 교실로 향했다. 연신 하품을 하면서.한 편.모 삼류 고등학교.송아연이 새로 편입한 학교다.북성에서 그다지 좋은 학교가 아니었다.학생들 태반이 서민 계층의 자녀들로, 단체복은 고사하고 교복도 없었다. 각자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에 학습 분위기도 꽝이었다.여기저기 낙서 천지인 교실 벽은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환경도 별로 좋지 않았다.여학생들은 진한 화장에 피어싱에, 알록달록 염색 두발까지. 촌스러운 옷차림은 마치 90년대 하드 록 스타일을 연상케 할 정도다.이전에 다니던 귀족 고등학교, 북성남고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강씨 집안은 아연에 대한 징계를 풀었다.강씨 집안이 입김을 넣지 않았다면 이런 삼류 고등학교조차도 편입이 불가능했을 터.흰색 원피스를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송아연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걸핏하면 상스러운 욕도 서슴지 않고 뱉는 아이들.이 모든 것들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아연이다.꼿꼿한 자세로 앉아 같은 반 아이들의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저 책상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살구색의 책상은 이전에 다니던 북성남고와 비슷했다.하지만 이전 학교에 비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로 인해책상 위는 온통 낙서 자국들과 칼로 새겨진 글자들이다.그것도 중2 아이들이나 쓸만한 유치한 말들.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성연은 깨달았다.‘북성남고와는 하늘과 땅 차이구나.’‘
이제 오전 수업 하나가 끝났음에도 아연은 참을 수가 없어 그냥 도망쳤다.이 학교의 학생 관리는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교문을 나서려 하자 경비원이 형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앞에서 막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아연이 거짓말로 몸이 아파 선생님에게 귀가 허락을 받았다고 하자,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학교를 나선 아연은 지체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괴상한 학교를 벗어났다.집에 도착한 아연은 아빠 송종철을 보자마자 분함을 못 참고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쓰레기 같은 학교인지, 또 학생들은 얼마나 무서운지, 송종철에게 울며불며 하소연했다.송종철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아연의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었다.“아빠, 나 정말 그 학교 못 다니겠어. 다른 더 좋은 데로 갈래.”아연의 말을 듣는 송종철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임수정은 더 마음이 아렸다. 어릴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원하는 대로 다 가지며 귀하게만 자란 아연이가 어떻게 이런 분통 터지는 일을 겪어야 하는지?남편 송암종을 바라보며 졸랐다.“여보, 얼른 방법을 찾아봐요. 저런 학교에서 학위를 받으면 뭐해요?”사실 그녀는 강씨 집안이 어린 여자아이 하나 무에 그리 신경 쓰랴 생각하고 희망을 가졌었다.그런데, 강씨 집안이 이런 삼류고등학교를 아연에게 배정해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강씨 집안이 이렇게 했을 때는 체면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지. 어린 여자아이를 겨냥해서 치졸했다는 안 좋은 소문이 외부로 나가도 괜찮다는 거야?어찌할 방도가 없기는 매한가지인 송종철이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성연에게 가서 부탁하는 것 말고 무슨 다른 방법 있어?”강씨 집안이 아연을 처벌한 이유가 성연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닌가?역시 문제는 송성연인 것이다.성연이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강씨 집안에 어떤 말이든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성연밖에 없었다.성연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해준다면 강씨 집안이 계속 자신들을 힘들게 하겠는가?방법은 이것뿐이다.하지만 이 말을 들은 아연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거부
성연은 오늘 또 학교에서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는 것 외에 하는 일 없는 멍청한 하루를 보내었다. 이제 선생님들은 그런 성연을 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수업이 끝난 후,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내일은 주말이어서, 병원에서 할머니 안금여 곁에 있을 작정이었다.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안금여는 성연이 처음으로 호감을 가지게 된 사람이다.안금여 또한 성연을 옆에 앉혀 두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성연을 보자마자 안금여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성량이 왔구나. 매일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단다. 병원에는 이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구나.” 안금여가 성연을 반기며 자신의 병상 옆에다 앉혔다.성연도 웃으며 인사했다.“할머니, 수업 끝나자마자 왔어요. 내일은 주말이라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어요.”“아이고,고마워라.” 곁에 성연이 있으면 다른 사람은 필요 없는 안금여가 바로 귀찮다는 듯이 딸 운경에게 말했다.“내일 성연이 여기 있을 테니, 너희들은 올 필요 없다.”괜히 사람이 많으면 성연이 불편하게 여길까 오히려 걱정이다.운경도 별 다른 의견이 없었다.아무튼 안금여는 성연을 좋아했다. 성연이 안금여를 즐겁게 하니, 몸도 빨리 회복될 수 있었고.하지만, 분명 사람을 쫓아내는 기색이라 운경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엄마, 자기 딸을 그렇게 미워하기예요?”“너는 내가 말도 못하게 하지 않니? 너도 한 번 생각해 봐라. 성연이 말고 너희들 중 누가 나 같은 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니?” 안금여가 짐짓 책망하는 투로 코웃음을 쳤다.“네, 네. 엄마 말씀이 다 맞아요. 지금 바로 가 드릴게요. 더 이상 여기서 방해되지 않도록요.”운경은 어투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했다.안금여의 이런 모습은 확실히 늙은 아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내 곁을 지킬 시간도 없으면서 쫓아낸다고 나를 탓할 생각이니?”안금여 역시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그래요. 이제 그만 갈게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운경이 대답했다.저리 기
그날 밤.팰리스 클럽.꼭대기 층의 룸에 자리잡고 앉은 강일헌이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낭창낭창한 허리의 여성을 품에 안고 있는 폼이 꽤나 호방해 보인다.그때, 룸 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강일헌이 품에 안고 있던 여성을 밀어내며 말했다.“베이비, 먼저 가 있어. 잠시 뒤에 갈게.”“사장님.”그의 팔을 끌어안은 여성이 끈적하게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결국 강일헌이 가슴에다 카드를 한 장 찔러주자 그제야 마지못해 떨어졌다.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검은 옷 차림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강일헌을 보고 마스크를 벗은 남자가 품 속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건넸다.“이게 네가 원하던 물건이야.”상자에서 약병을 꺼내 흔들어 보던 강일헌이 뚜껑을 열었다. 안을 들여보니 검정색 알약 몇 알이 들어 있었다.일반 약과 별 다른 게 없어 보였다.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눈앞의 남자를 힐끔 쳐다본 뒤에 물었다.“이게 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신묘하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안이 중대해. 만약 일이 틀어지면, 사정 봐 주지 않을 거야.”남자가 강일헌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우리가 어떤 사인데? 내가 너를 속일 거라 생각해? 안심해. 구입 후에 문제가 생기면 찾아와.”남자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원하던 효능임을 재차 확인한 강일헌은 약을 건네어 받은 즉시 최대한 빨리 강상철에게 갖다 주었다.앞에 놓인 알약을 보던 강상철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늦은 저녁, 병원 안.성연이 편히 잠자지 못할까 걱정이 된 안금여가 사위 조승호에게 자신의 침상 곁에 침상 하나를 더 놓아 달라고 요구했다.어차피 병실도 충분히 넓어서 침상 하나를 더 들여도 상관없긴 했다.안금여 옆의 침상에 누운 성연은 할머니를 지키며 달게 잤다.간밤 아무 일도 없었다.다음날 아침.의료용 카트를 밀며 안금여 병실로 향하던 간호사가 복도에서 실수로 한 중년 남성과 부딪혔다.간호사와 부딪힌 남성이 바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선물을 산 무진과 성연은 안금여를 방문하러 본가로 갔다.두 사람이 선물을 들고 들어오는 걸 본 안금여가 탓하듯이 말했다.“나는 또 너희가 신혼여행에만 급급해서 이 할미는 잊어버린 줄 알았구나.”“할머니, 어떻게 할머니를 잊어버리겠어요.” 안금여의 비위를 맞추면서 다가간 성연은 안금여의 등을 안마해 주었다.안금여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지만, 아주 기분 좋게 성연의 안마를 받아들였다.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본 안금여는 바로 주방에서 성연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했다.‘이제야말로 내 집에 돌아왔어. 온갖 음식들이 전부 나를 위한 거야.’밥을 먹을 때 안금여는 줄곧 성연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성연아, 많이 먹어야 해. 너는 너무 말랐어.”“할머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못 먹어요.” 성연은 얼른 자신의 그릇을 감싸면서 말했다.안금여는 끊임없이 반찬을 집어주었고, 성연의 그릇에는 곧 한 무더기가 쌓이게 되었다.“괜찮아, 이렇게 말랐는데 많이 먹어야지.” 안금여는 그러고도 성연에게 반찬을 더 집어준 뒤에야 비로소 수저를 내려놓았다.성연은 이미 적잖은 간식을 먹고 온 터라, 지금은 정말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바로 무진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무진은 성연을 흘겨보더니 성연의 그릇에 쌓여 있는 반찬들을 자신에게 옮겼다.안금여의 눈앞에서 버젓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그러나 무진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안금여는 무진이 이렇게 당당하게 성연을 비호하는 걸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래 이래야 해. 성연이는 무진이 아내니까 무진이가 성연이를 감싸는 것도 당연해.’“성연아, 무진아. 결혼식도 끝났는데 너희들은 계획이 있니? 신혼여행을 갈 생각은 없어?” 연로한 안금여는 잘 모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방식이 유행한다고 했다.“할머니, 저희는 안 갈 거예요.” 무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성연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무진은 성연에게 아무런 아쉬움도 남기지 않는 결혼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하지만 성연이 신혼
결혼식이 끝난 후, 그래함과 유채연은 세계 일주 여행을 계속했다.유럽으로 돌아간 목현수와 샤넬은 유럽에서의 결혼식을 준비했다.결국 그들의 친척 대부분은 유럽에 있기 때문이다.목현수는 샤넬의 친척들 생각도 좀 신경을 써야 했다.샤넬의 오빠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기에.성연은 두 사람이 비행하는 도중에 먹을 수 있게 직접 특산물을 준비했다.비행기가 이륙하자 무진의 품에 기댄 성연의 눈빛에는 어렴풋이 서글픈 기색이 비쳤다.“정말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제는 또 각자의 길을 가야 하네요.”“괜찮아. 보고 싶으면 나중에라도 자주 볼 수 있어. 그들도 자기만의 삶이 있잖아.” 두 사람이 같은 반지를 끼고 있어서 척 봐도 부부임을 알 수 있었다.“맞아요. 아마도 추구하는 게 다르겠지요.” 성연은 이번에 헤어져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모두 다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성연은 무진과 함께 차에 올랐다.돌아오는 길에 무진이 다정하게 물었다.“뭐 좀 먹을래?”요 며칠 성연은 줄곧 결혼식 일로 정말 말도 못하게 바빴다.집에 돌아오면 아무렇게나 식사를 해치운 뒤에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졌다.간식도 정말 맛이 없었다.“그럼 옆의 마트에 한번 구경하러 가요.” 성연은 정말 군침이 돌면서 입술을 핥았다.“그래.” 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워둔 뒤 무진과 성연은 함께 마트로 들어갔다.마트에는 온갖 맛있는 간식들이 가득했다.성연은 좋아하는 간식이 보이는 족족 카트에 집어 넣었다.곧 간식이 한 무더기가 쌓였다.묵묵히 성연의 뒤를 따르던 무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성연이 고른 간식들을 몰래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았다.성연은 자기가 카트에 넣었던 간식들이 어쩐지 갈수록 줄어든다고 느꼈다.고개를 돌린 뒤에야 무진이 하는 짓을 볼 수 있었다.눈썹을 찌푸린 성연은 수상쩍다는 듯이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 뭐 하는 거예요?”무진이 진지하게 말했다.“간식을 이렇게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아.”‘이 간식 더미가
저택에서 잠시 쉬었다가, 무진과 성연은 다시 결혼식장으로 달려갔다.결혼식에 온 손님들을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서였다.지금은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갈아 입지 않았다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무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연계진과 조수경의 모습을 발견했다.조수경은 알지만, 연계진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그러나 연계진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졌다.‘조수경이 저런 사람과 어울리면서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눈썹을 찌푸린 무진의 모습은 분명히 그들의 존재에 신경이 쓰이는 게 확실했다.무진의 표정이 좀 이상한 걸 보고 성연이 물었다.“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무진은 성연의 기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데, 어쨌든 술을 손님들께 술을 권해야겠네요. 자, 갑시다.” 그래함이 다가와서 무진과 목현수에게 말했다.‘그러고 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야.’‘술을 권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무진이 술잔을 들고 술을 권하러 두 사람을 따라 갔다.성연이 무진의 소매를 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마셔요.”‘무진 씨 위장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알았어.” 무진은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목현수와 그래함이 말했다.“성연아 걱정 마. 네 남편이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막고 있으니까 괜찮아.”두 사람의 놀리는 말에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예요? 빨리 가기나 해요!”성연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성연을 더 이상 농리지 않고 세 사람은 바로 손님들에게 갔다.곧 무진, 목현수와 그래함이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성연은 샤넬, 유채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유채연은 궁금한 듯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연이 미처 대답
전통 혼례가 끝나자 이 결혼식도 비로소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무진과 성연은 방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갑자기 무거운 짐을 벗은 듯 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드러누웠다.‘정말 비즈니스나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갑자기 상체를 세운 무진이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도 눈을 뜨고 무진을 바라보았다.“너 드디어, 내 거야.” 무진이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성연도 무진의 등을 감싸 안고 말했다.“그래요, 나는 무진 씨 거고, 무진 씨도 내 거예요.”‘처음에 무진을 만나서 다행이었어.’‘무진 씨는 줄곧 나를 총애하고 감싸줬지.’‘아무도 내게 그렇게 잘해 준 적이 없었어.’무진의 눈빛에는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송성연 한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성연은 천천히 눈을 감자 무진이 성연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다.이제 습관이 되었기에 성연에게 예전 같은 수줍음은 이미 사라졌고, 때로는 주동적으로 무진의 열정에 응하기도 했다.적절하게 동작을 멈춘 무진이 성연의 몸에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성연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무진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무진이 물었다.“성연아, 할머니께 한 말은 진심이야?”성연은 약간 멍해졌다.“무슨 말요?”“아이를 갖는 일 말이야.” 무진은 곧 서른이 된다.아이를 키울 나이가 된 것이다.무진도 아이를 갈망했다.그러나 성연의 생각을 더 많이 고려했다.“당연히 사실이지요.” 성연은 자신이 승낙한 일을 식언하지 않았다.‘이미 무진 씨하고 결혼했으니까 조만간 아이도 가져야 해.’성연은 여러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도 썩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당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할머니께 잘 말씀드릴게.” 무진은 성연이 이 결혼에서 행복하기를 원했다.성연이 원하지 않는 어떤 일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누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내 말을 멋대로 해석하지 말아 줄래요?” 성연은 불만스럽게 무진을 노려보았다.무진은 좀 놀
“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야.” 이렇게 말하는 안금여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는 항상 한식구였는데요.”성연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래, 성연이 네 말이 맞구나.” 안금여는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무진이도 이리 와.” 안금여가 무진에게도 손짓을 했다.무진이 천천히 안금여 앞으로 다가갔다.“예전에 나는 네가 앞으로 외톨이가 되는 게 두려워서 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단다. 또 앞으로 네가 외톨이가 된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네 부모를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 그러나 지금 이렇게 성연이와 함께 하게 되어서 정말 안심이 돼. 마침내 내 걱정을 덜었어.” 성연과 무진을 보는 안금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렸다.기쁨의 눈물이다.‘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어.’“할머니.” 성연도 코가 시큰거리면서 울고 싶어졌다.‘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할머니는 묵묵히 나를 지지하시면서 뒤에서 보호해 주셨지.’‘만약 할머니와 어른들의 지지와 사랑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할머니는 내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온정을 주셨어.’옆에 있던 강운경이 위로했다.“엄마, 즐거운 날이잖아요? 앞으로 무진이하고 성연이가 함께 엄마 노후를 모실 거고, 나중에 또 아이도 생기면 집안이 더 시끌벅적할 거예요.”“그래, 너희들 서둘러야 해. 얼른 내게 증손자를 안겨줘야지.” 안금여는 바로 핵심을 짚었다.만약 무진과 성연의 아이를 볼 수 있다면, 안금여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할머니, 가능한 한 빨리 아이를 가질게요.”이전에 성연은 줄곧 아직 어린데 아이를 갖는 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안금여의 눈에 비친 갈망을 보자 곧바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할머니의 한평생 소원은 바로 자손이 번창하는 거였어.’‘지금은 할머니를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실 수도 있어.’‘할머니의 이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게 당연히 가장 좋겠지.’“정말이니?” 안
서양식 결혼식이 끝났다.무진과 성연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전통 혼례를 올려야 했다.결혼식장에서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전통 혼례의 절차는 더 복잡했다.자리에 앉은 채 안금여는 목을 빼고 기다렸다.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안금여와 식구들은 미리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성연과 무진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엄마, 그 말은 몇 번이나 물어봤어요.” 강운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강운경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안금여의 초조한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조급해서는 안 돼.’“얼마나 지났는지 좀 볼래?” 안금여는 시계를 들고 강운경에게 보여 주었다.강운경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조승호가 옆에서 위로했다.“어머님, 저쪽에는 무진이하고 성연이 친구들도 많아요. 일이 있어서 지체되는 모양이에요. 시간도 아직 안 됐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무슨 일로 지체되는 거야?” 안금여는 다소 불만스러웠다.‘이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밤낮으로 학수고대했는데 말이야.“엄마, 애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요. 걔들이 애도 아니니까 좀더 기다려봐요.” 강운경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어른이 너무 조급하게 재촉하는 건 좋지 않아.’딸과 사위가 모두 이렇게 말하자 안금여도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다만 입구 쪽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곧 밖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성연과 무진이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운경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할머니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알아!”성연도 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걸 알고 황급하게 달려왔다.바로 고모에게 사과했다.“고모, 죄송해요. 친구들이 많아서 접대하느라 좀 늦었어요.”“괜찮아, 왔으니 됐어, 빨리 가자.” 강운경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무진과 성연은 세 어른에게 차를 올렸다.세 어른들은 각자 두 사람에게 두둑한 돈봉투를 주셨다
지금 연계진과 조수경도 결혼식장의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눈길을 보내는 사람조차 없었다.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거물들에 비하면 두 사람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조수경은 그야말로 성연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증오했다.‘저 자리는 분명히 내 거였어.’‘그러나 송성연이 거듭 초를 쳤지.’‘송성연만 없었다면 지금 강무진과 결혼하는 사람은 나였을 거야.’그리고 무진을 주시하는 연계진의 눈빛은 더욱 원망이 가득했다.‘연씨 가문이라는 강력한 적수가 없었기에 강씨 가문이 지금 잘 나갈 수 있었어.’‘강씨 가문이 지금 가진 모든 건 연씨 집안의 것이었어.’‘강씨 가문과 강무진이 우리 걸 도둑질했어!’‘연씨 가문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저들 차지가 될 수 있단 말이야?’어두운 표정의 두 사람은 낯빛도 좋지 않았다.만약 다른 사람이 자세히 보았다면, 아마도 결혼식에 참석한 게 아니라 신부를 훔치러 왔다고 여겼을 것이다.정말 참을 수 없게 된 조수경은 이를 악물고 연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진 씨, 우리의 계획은 도대체 언제쯤 실행할 수 있을까요?”얼른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이쪽에 주의하지 않자, 연계진은 비로소 눈썹을 찌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그런 말을 왜 해? 우리가 뭘 하겠다고 사람들한테 광고라도 하는 거야? 만약 강무진이 알게 되면, 우리 둘을 끝까지 쫓을 거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불만이었다.‘결국 연계진은 강무진이 두려운 게 아닐까?’그러나 감히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조수경도 연계진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연계진은 다른 사람이 자기 뜻을 거스르는 걸 가장 싫어하지.’조수경은 얼른 사과했다.“내가 너무 조급했어요.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저것들은 왜 저렇게 잘 사는 걸까요.”이 말이 오히려 연계진을 자극했다.연계진도 조수경과 같은 생각이었다.눈을 가늘게 뜬 연계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에 결혼식도 진행되기 시작했다.연미복을 입은 무진은 기사처럼 묵묵히 성연의 곁을 지키면서, 성연에게 가장 진지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성연은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웨딩드레스의 아래쪽 레이스에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어서, 한 벌에 수억 원이나 할 정도로 화려했다.물론 목현수와 샤넬, 그래함과 유채연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그들의 출중한 외모와 아름다움은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사람마다 모두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레드카펫에 나란히 선 세 쌍의 신랑 신부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다.무진과 성연은 가운데에 있었다.결국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인 선서를 하고 반지를 끼워 주었다.결혼식이 끝났다.세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아내를 쳐다보았다.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모든 사람들이 이 결혼식을 축복했다.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토론을 펼치기 시작했다.“이건 분명히 내가 여태까지 본 결혼식 중에서 가장 호화롭고 가장 성대한 결혼식이야.”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북성에서의 신분과 지위도 낮지 않았다.그러나 이런 큰 인물들이 돋보이는 속에서는, 그들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게다가 이 결혼식에는 더욱 큰 돈을 썼을 텐데, 누가 이렇게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낼 수 있겠어?’‘강씨 가문 이외에는 누구도 이렇게 하지 못할 거야.’“그래, 내가 예전에 참석했던 결혼식들은 모두 결혼식도 아닌 것 같아. 이거야말로 진정한 결혼식이야.”“강 대표가 자신의 소중한 여자에게 다시없는 총애를 준 거야.”“이렇게 좋은 남자는 왜 내 남자가 아닌 거야?”이렇게 말하는 젊은 아가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또 가끔씩 머리를 흔들면서 탄식하기도 했다.옆에 있던 동료가 바로 그 아가씨의 입을 막았다.“오늘은 강 대표와 부인의 결혼식인데, 너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혹시라도 화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그 아가씨가 주위를 둘러보고 곰곰이 생각해
그 외에도 점점 더 많은 거물들이 등장했다.모두 이 세 쌍의 신랑 신부들을 축복하러 온 것이다.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 모두는 이 라인업에 놀라면서도 어느새 좀 무감각해졌다.어떤 불가사의한 인물이 오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눈앞의 장면을 보면서 성연도 마음속으로 감탄했다.‘보아하니 다들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평소에는 몰랐는데, 이제야 이렇게 많은 인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무진 씨였어.’무진은 속으로는 더욱 놀라서 성연에게 물었다.“성연아, 저 사람들이 모두 네 친구들이야?”‘이 사람들 중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있겠어?’“맞아요.”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진이 왜 이렇게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는 어쩜 이렇게 대단한 거야?” 무진의 입에서 감탄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성연이가 정말 깊숙하게도 숨기고 있었네.’‘내가 아직도 모르는 게 있울지 모르겠어.’“아무리 대단해도 무진 씨 건데요?” 성연은 무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날 무진에게 솔직하게 말했을 때부터 성연은 무진에게 속일 일이 없었다.무진이 자신을 믿고 있기에, 성연도 당연히 상응하는 믿음을 줘야 했다.“그 말이 맞아.” 무진은 이마로 성연의 이마에 마주한 채 달콤하게 서 있었다.다른 두 쌍의 달콤함에 비해서, 미스 샤넬과 목현수는 거리가 좀 멀었다.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했던 목현수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미스 샤넬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그렇지만 한동안은 미스 샤넬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랐다.그 동안은 줄곧 미스 샤넬이 주동적이었다. 지금 목현수에게 기회가 생겼지만, 오히려 자신을 수동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미스 샤넬은 몇 번이나 목현수에게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잠시 후, 미스 샤넬이 머뭇거리면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불쾌하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목현수는 멍해졌다.“왜 그렇게 물어?”“내가 당신에게 결혼을 강요해서 당신이 억지로 나와 결혼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