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송종철은 속으로 또 한 차례 경악했다.이건 또 어떻게 된 거야? 성연이 총애 받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벌을 받는거지? 이거 보아하니, 마냥 총애받는 것 같지도 않구만.성연에 대한 강씨 집안의 태도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안금여 곁에 있던 강운경도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역시 시골에서 와서 그런지 교양이 없구나. 이제 보니, 예의 선생님을 불러 계속 가르쳐야겠다. 나중에 우리 집안 어른께도 이렇게 대들면 어떡할 거야?”성연은 강운경과 안금여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무서워 벌벌 떠는 모습을 연기하며 두 사람의 연극에 동참했다.“할머니, 제가 잘못 알았어요. 제가 예의를 몰라서 그랬어요.”말하면서 있지도 않는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그만 해라. 옹졸한 모습은 사람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야.”안금여가 휘휘 손을 내저었다.임수정, 송아연 두 모녀는 안금여의 태도 변화에 어리둥절해졌다.자신들이 생각했던 전개와 달랐다.마침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 안금여가 고개를 돌려 송종철에게 말했다.“사과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세요. 나중에 학교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죠.”송종철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회장님, 감사합니다.”기실 그 말은 공수표나 다름없었다.안금여가 어느 학교에다 얘기해 놓든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그들은 아연이 북성남고에 계속 남아 있게 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안금여의 생각은 확연히 달랐다.그러나 어찌되었든 학위를 건사할 수 있게 됐으니 아연을 외국으로 보낼 필요가 없게 됐다.이렇게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송종철이다.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임수정과 아연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병실을 나오자마자 안에서 당한 억울함과 불만의 말들이 임수정과 송아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송종철, 당신 설명 좀 해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송성연 그것이 총애를 받는다는 게 이거야? 오늘 얼굴을 못 들 정도로 망신
병실 안.사람들이 다 나가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안금여는 편안한 자세로 베개에 기대었다.송종철 일가를 상대할 때에 비해서 훨씬 부드러운 음성이다.“나이도 어린 것이 머리를 꽤 많이 쓰는구나.”송아연은 자신이 꾸며내는 말과 행동을 사람들이 못 알아챌 거라고 착각했다.사업을 하는 동안 다년간 장사치들 틈에서 굴러온 안금여와 강운경이었다. 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들의 눈에 훤히 보였다.마냥 어린 계집아이가 마음속에 몇 근 몇 냥이 들어있는지 다 읽혔다.강운경도 혐오감이 일었다. 진심이라곤 없이 이런 잔꾀 부리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연기도 제대로 못하더군요.”‘송씨 저 세 가족은 하나같이 정말 진상이었다.’‘가치관이 저리도 삐뚤어지다니, 참.’‘그래도 성연이가 저들과 같이 지내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그렇지 않았으면 성연을 어떻게 가르쳐 놨을지…….’성연은 여전히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방금 전의 분위기에서 아직 못 빠져나온 듯했다.이런 성연의 모습을 본 안금여는 웃음을 참기 힘든 듯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사람들 다 갔는데 계속 연기할 테냐?”성연이 고개를 들며 일부러 불쌍한 척했다.“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셨잖아요? 설마 가짜였어요?”능청스러운 성연의 말에 기가 찬 웃던 안금여가 짐짓 나무라듯 말했다.“이런 영리한 것 같으니라고. 네가 무릎을 꿇고 싶다면 내가 그렇게 해 주마.”아이고, 요 녀석, 혹시라도 야단 맞을까 봐 이렇게 또 확인까지 하는 것 봐.일부러 그러는 거지.그러나 이제는 송성연이라는 이 아이를 보물같이 여기며 친손녀처럼 대했다.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는 안금여다.그런데 성연을 위해 대신 신경 써서 화풀이까지 해주었다.조금전의 연약한 모습은 싹 씻어 낸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윽, 무릎 꿇기 싫어요. 할머니께서 화 내시는 시늉을 하시면서 저 대신 화풀이 해주셔서 정말 감동 받았어요. 자, 이제 제가 할머니께 안마
업무를 끝낸 무진이 마침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병실 입구에서부터 안금여의 웃음소리 사이로 대화하는 음성이 간간이 들렸다.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할머님, 뭐를 빼지 않는다고요?”“내가, 성연이 안마 솜씨가 좋아서 틈틈이 너도 해주라고 했거든. 어쩜 너한테 이런 복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안금여는 웃으며 무진을 놀렸다.다시 담담한 얼굴을 한 성연이 계속해서 다리를 부드럽게 주물렀다.성연을 한 차례 눈으로 흘깃한 무진이 입을 열었다.“할머니, 성연이가 매일 밤 안마해 줍니다. 다리가 많이 좋아졌어요.”성연이 만져 주기는 했지만 안금여가 생각한 만큼 횟수가 많지는 않았다.그런데도 무진은 수긍하고 받아들였고 다른 불만도 없었다.언제나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던 무진이 이런 말을 하자, 이 두 어린 부부의 감정이 꽤 괜찮은 듯 보였다.안금여는 더없이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이 어린 손주 며느리를 보며 감탄하는 한편, 과연 자신이 애쓴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재차 확인했다.저녁, 병원에서 저녁을 먹은 후.안금여가 입을 열었다.“성연아, 너는 무진이를 따라 집에 가거라. 병원엔 너희들이 같이 있을 필요가 없어. 어쨌든 성연이 내일 또 학교 가야 하지 않니? 이런 늙은 사람 때문에 학업을 그르치면 안되지.”매일 병실로 오는 성연이다. 이런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다소 망설이는 듯한 무진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요즘 병원에서 밤에 계속 고모님이 계셨어요. 낮에는 회사 업무를 보시는데, 많이 힘드실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무진이 자신에게 적극 관심을 보이자 곁에 있던 운경의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얼굴 표정도 부드럽게 풀어졌다.“무슨 고생이랄 게 있나? 네 고모부도 병원에 있으면서 잘 챙겨주지 않니? 걱정하지 마.”“그럼 고모도 건강 잘 살피세요.” 어쩔 수 없는 듯 무진이 성연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도착한 후, 책가방을 집어 던진 성연이 물과 간식을 챙겨서 컴퓨터를 켰다. 목욕을 하고 나
성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진행하던 무진의 1차 치료 과정이 아직 덜 끝난 상태인데 지금의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당한 운동이 필요했다.결국 일어난 성연이 무진을 뒤로 살짝 밀었다. “뒤로 좀만 가요.”방안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는 무진이 성연의 말을 따라서 살짝 뒤로 물러섰다.자세를 취한 성연이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동작으로.몇 분 후, 동작을 마친 뒤 무진을 바라보며 확인했다. “기억하셨죠?”기억하긴 했다. 모두 간단한 동작들이니까.하지만 아리송한 표정의 무진이 말을 끌었다.“근데 이거…….”무진의 뚱한 표정을 본 성연이 냉소를 지었다.“아저씨, 이 동작들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리 회복에 정말 효과가 좋아요. 다른 사람은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고요…….”겉보기에는 느릿느릿한 것이 노인들의 스트레칭 자세와 비슷했다.정말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동작에, 무진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꼭 해야 돼?” 그래도 강씨 집안의 장손으로서 체면이 있지.“물론이죠, 제가 가르쳐 드린 것들 중에 틀린 것 있었어요? 봐 봐요, 이 동작은 하체의 근육과 뼈를 모두 스트레칭 할 수 있어요. 아저씨의 굳은 다리 근육을 풀어주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어요.”성연이 이치에 맞는 소리들만 읊었다.“다른 방법은 없어?” 여전히 체면을 내려놓지 못한 무진이 주저했다.“없어요.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 다리도 아닌데요 뭐…….” 살짝 기분이 상한 성연이 눈을 흘기며 자리를 뜨려 했다.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가 바로 이런 비협조적이면서 의사를 못 믿는 이들이다.무진이 바로 성연의 손을 잡았다. “미안, 바로 할게.”성연은 한숨을 돌렸다. 이 또한 그를 위해서다.그의 이런 투정은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가던 걸음을 멈춘 성연이 고개를 돌려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처음해보는 동작
한 세트의 스트레칭 동작을 다 끝낸 무진은 다리가 천근만근 같이 느껴져 들어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다리를 살짝 움직여 보니 왠지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듯했다.성연이 흘깃 보더니 설명했다.“정상이에요. 굳었던 근육이 이완되어서 그런 거에요. 지금 바로 침 맞고, 다시 약욕을 하면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어요.”성연은 바로 창고에 가서 무진에게 쓸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시간이 늦어 집사와 고용인들 모두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없었다.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약을 한쪽에 놓고 무진을 눕힌 성연이 침을 놓기 시작했다.천천히 침을 놓는 성연에게 무진이 갑자기 물었다.“피곤해?”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했지만, 곧장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럼 안 피곤하겠어요?”하루 종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게임 좀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었는데, 이렇게 산통을 깨다니…….마음속에서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하지만 그저 속에서 담아둘 뿐, 1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받고 입을 싹 닦을 수는 없을 터.100억, 물론 그녀한테는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고생이네.” 무진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그의 음성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낮고 묵직하니 듣기 좋은 음성이 불쑥 귓가에 닿으니 성연의 귀가 간질거렸다.무진의 얼굴, 목소리, 몸매까지 모두 성연에겐 최고로 느껴졌다.무진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들킬 뻔했다.얼굴이 점차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성연은 일부러 앙칼진 말투로 부끄러움을 감추었다.“의사가 진찰할 때 말을 아껴야 하는 거 모르세요? 만약 침을 잘못 놓기라도 하면 어쩔거에요? 저는 책임 못 져요.”하얀 피부에 피어오른 홍조가 귓바퀴까지 번지며 아주 선명했다.성연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아차린 무진이 가볍게 웃었다.눈을 크게 뜬 성연이 무진을 노려보았다. 무진은 별일 없는 듯 침착하게 눈을 감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은침을 다리에 놓고 성연은 욕조에 약재를 넣고 물을 받기 시작했다.약효
손건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의문을 보스에게 물었다.무진은 말을 아꼈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여러 해 전,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비행기 사고는 상당히 수상쩍었다. 그날은 화창한 날씨였었다. 의심스러운 기상 조짐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비행기가 추락했다.비행기에서 생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비행기 추락사고를 조사하고자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했다.그 후에도 어린 무진이 여러차례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목숨을 위협받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러자 다시는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던 안금여가 무진을 뒤로 숨겼다. 누군가의 위협으로부터 무진을 지키기 위해서.그는 강씨 집안의 장손이었다. 강씨 집안은 100년 전부터 줄곧 장자, 장손이 그룹을 계승하는 불문율을 지켜왔다.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부모님이라는 방패를 잃어버린 어린 무진은 계속해서 일부 사람들의 ‘화살 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겉으론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강씨 집안이었지만, 사실 언제나 보이지 않게 본가를 압박하는 존재가 있었던 까닭에.하지만 이제 무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둘째, 셋째 할아버지 강상철과 강상규의 암중세력이 생각보다 커서 한꺼번에 제거하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뿐.게다가 그들을 쳐 내야 할 이유는 많지만, 아직까지는 저 둘을 건드려서는 안된다.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후, 강상철과 강상규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잔당세력까지 뿌리를 뽑을 때까지는.물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진의 신체적 문제.안금여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도 하다!아마 자신이 죽기 전 무진에게 향후 발생할 모든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고 싶을 터이다.큰 키에 다부진 몸의 무진은 꼿꼿한 자세로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피바람이 부는 전장에서 잘 벼린 칼날처럼 반짝였다.다만 아직 이러저러한 이유로 칼날을 숨기고 힘을 비축하고 있는 중이다. 조용히 기다리다 때가 되면 칼을 뽑을 것이다.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
무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있긴 하지…… 명의 고학중을 찾을 수만 있다면…….”무진의 말을 들은 손건호는 일순 입을 다물었다. 고학중은 신출귀몰해서 그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직도 없었다. 오랜 기간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데 그를 찾기 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게다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치료를 맡는 것도 아니었다.성질이 괴팍한 고학중은 오로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치료 여부를 결정했다.그에게는 신분과 권력도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억만금을 줘도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다고 하니. 반면 마음이 내킬 땐 한 푼도 받지 않고 치료해 주기도 한다고.적잖은 권세가들이 그의 치료를 원했지만 억지로 요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부하기에 급급했지.몇 해전, 강씨 집안에서도 무진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그를 수소문했었다.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종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즉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그러니 무진이 한 말은 하나 마나 한 얘기였다.침묵을 지키던 손건호는 보스를 위로하고자 입을 달싹거렸지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할 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무진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한 무진이 곧바로 방에서 나와 성연의 방 앞으로 가 노크했다.“송성연, 너 학교에 가야지…….”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성연은 부시시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졸린 눈을 반쯤 감은 채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잠에서 덜 깬 모습 그대로.아침 식사가 끝난 후 학교로 출발했다.무진의 차로 학교까지 이동하는 동안.성연은 차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왼쪽 창문에 기대어 있다가차체가 흔들리면서 몸도 덩달아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그리고 무진의 어깨에 안착.자신이 아닌 다른 신체의 따뜻한 기온에 깜짝 놀란 성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곧 자세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잠결에 또 무진에게 몸을 기대는 성연.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지만 천근만
당당한 성연의 말에 할말을 잃은 손건호.하마터면 잊을 뻔했다.작은 사모님은 아직 미성년자라는 걸.아직 몸이 자라고 있다는 게 맞았다.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무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정수리를 살짝 두드렸다.“계속 자. 학교에 도착하면 깨워 줄게.”고개를 끄덕인 성연은 무진의 품에 안겨 계속 잠을 청했다.무진의 품은 편안했다.학교에 도착하자 무진이 낮은 소리로 깨웠다.선잠을 자고 있던 성연은 바로 깨어났다. 차에서 내린 성연이 무진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 뒤, 교실로 향했다. 연신 하품을 하면서.한 편.모 삼류 고등학교.송아연이 새로 편입한 학교다.북성에서 그다지 좋은 학교가 아니었다.학생들 태반이 서민 계층의 자녀들로, 단체복은 고사하고 교복도 없었다. 각자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에 학습 분위기도 꽝이었다.여기저기 낙서 천지인 교실 벽은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환경도 별로 좋지 않았다.여학생들은 진한 화장에 피어싱에, 알록달록 염색 두발까지. 촌스러운 옷차림은 마치 90년대 하드 록 스타일을 연상케 할 정도다.이전에 다니던 귀족 고등학교, 북성남고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강씨 집안은 아연에 대한 징계를 풀었다.강씨 집안이 입김을 넣지 않았다면 이런 삼류 고등학교조차도 편입이 불가능했을 터.흰색 원피스를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송아연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걸핏하면 상스러운 욕도 서슴지 않고 뱉는 아이들.이 모든 것들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아연이다.꼿꼿한 자세로 앉아 같은 반 아이들의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저 책상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살구색의 책상은 이전에 다니던 북성남고와 비슷했다.하지만 이전 학교에 비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로 인해책상 위는 온통 낙서 자국들과 칼로 새겨진 글자들이다.그것도 중2 아이들이나 쓸만한 유치한 말들.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성연은 깨달았다.‘북성남고와는 하늘과 땅 차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