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강무진의 지시였다.그는 자신이 소지연을 데려간 후 제이슨과 오웬이 틀림없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자신에게 손을 쓰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오웬과 제이슨이 아무도 없는 길에 이르렀다.곁눈질로 뒤에서 검은색 차 몇 대가 뒤따르는 것을 본 오웬이 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따르는 제이슨에게 전화를 걸었다.“저거 네 사람이야?”제이슨도 그 말을 듣고 뒤를 따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 내 사람들 아니야.”이때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음성에서 당황하는 기색을 알아챘다.그들의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적일 터.지금은 일을 상의하러 온 것이기에 많은 수의 인원을 데려오지 않았다.모두 합쳐서 두 대의 차량밖에 없다.그들의 생각을 입증하듯 뒤따라오던 차들이 맹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제이슨이 오웬의 뒤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봉변을 당한 것도 바로 제이슨의 차였다.쾅!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자 차 안에 앉아 있던 제이슨도 덩달아 휘청거렸다.오웬은 고개를 돌려 이런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온몸이 조급해졌다.“제이슨, 지금 어떻게 해야 해?”차가 뒤에서 계속 부딪혀 오자, 제이슨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다.그래도 간신히 버티면서 오웬의 말에 대답했다.“우선 조급해하지 말고 MS가문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위험에 처했다고 말해. 사람을 보내서 찾으라고 통지해야 한다.”“내가 바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 테니까, 너는 나하고 계속 연락해.” 오웬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흘렀다.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양쪽에서 차들이 달려와서 그의 차를 향해 부딪치기 시작했다.오웬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면서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핸들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두 대의 차가 중간에 갇힌 상태에서 4, 5대의 차량에 연달아 부딪치자 더없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오웬, 그쪽은 어때?” 전화로 제이슨의 약간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오웬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또 다른 차가 들이받았다.오웬은 창문에 바로 이마를 부딪쳤
MS 가문에서 소식을 듣고 구조하러 나섰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현장에 도착한 뒤에는 차량 두 대의 잔해만 겨우 찾을 수 있었다.제이슨은 사망을 확인했다. 오웬도 실종 상태가 되어 생사를 알 수 없었다.MS 가문의 최고위 임원 두 명이 사라진 셈.그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칠장로였다.한 명은 자신이 아끼던 아들, 또 한 명은 유능한 사위.이 하룻밤 사이에 두 사람 모두 뜻밖의 사고를 당한 것.그 소식을 접한 칠장로는 온몸으로 격노했다.즉시 장로 회의를 열었다.칠장로는 MS 가문에서 아주 권위가 있다.그의 호출에 장로들이 모두 모였다.칠장로는 슬프고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일을 저지른 자는 틀림없이 강무진입니다. 이는 우리 MS 가문을 정면으로 공격한 겁니다! 여러분 수하에 있는 최정예 인원을 모두 이쪽으로 동원시켜 주시오. 북성으로 가서 WS그룹을 상대해서 내 아들과 사위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칠장로는 정말 이 화를 그냥 삼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강무진이 이렇게 악독하다니.’‘절대 강무진을 가만두지 않을 테다!’장로들은 서로 쳐다보며 끝으로 위로의 말을 전했다.“칠장로, 우선 조급해하지 마시게. 우리 우선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이번 일을 보면, WS그룹이 간단한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어요 저들과 맞서려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어떤 방법을 더 생각합니까? 강무진이 우리 머리를 밟아 누를 때까지? 나뿐만 아니라 MS 가문의 여러분도 모두 새파란 애송이에게 도전 당한 겁니다.” 칠장로는 지금 당장 강무진의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보기를 원했다.그는 정말이지 너무 참기 괴로웠다.“칠장로, 조급해하지 마세요. 우리는 보복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단지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사람만 보내는 것으로 그칠 뿐, 여전히 실패해서 돌아오지 않겠어요?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어떤 장로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모두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러 장로들은 꽤나 긴 시간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구석에 앉아 있던 준수한 외모의 젊은 남성을 추천했다.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외모를 가진 젊은 남성은 한눈에 봐도 A국인이다.젊은 남성을 돌아본 후 서서히 몸을 곧추 세우며 얼굴에 슬쩍 미소를 띠는 칠장로. 분명 장로들의 이번 인선에 대해 아주 만족한 눈치다.웃음을 감추지 못한 칠장로가 입을 열었다.“일장로, 평소 품 안의 보물 내놓기를 그리 싫어하시더니 이번에는 어찌 이리 선뜻 내놓습니까?”칠장로의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일장로 또한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칠장로 자네가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는가? 비록 이리 내놓는 게 아깝긴 하지만 이 일을 이 아이에게 맡겨야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니 말일세.”이들이 말하고 있는 젊은 남성은 MS 가문에서 키운 수양아들, 안진검이다.사실 조금만 조사해 보면 안진검이라는 이름이 투자업계에서 이미 아주 유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안진검은 이미 A국 내의 많은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상태.그러나 지금까지는 A국의 서북 지역에 투자하며 강무진과 직접 맞붙은 적은 없었다. 그동안 MS 가문의 수익 중 상당 부분이 안진검의 투자로 거둬 들인 것이다.강무진이라는 이름은 그 역시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다.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안진검은 자신이 S 가문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내버려 뒀다.그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거의 드물다. 오늘처럼 중요한 사안이 있지 않았다면 여기에 나타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일장로는 무척이나 신임하는 안진검의 능력은 MS 가문 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다.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너무 특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위험을 무릎 쓰야 하는 일에 안진검을 내보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칠장로 역시 안진검에 대해 아주 만족했다.이 일은 과연 안진검이 가장 적임자라는 생각이다.안진검이야 말로 이 일을 가장 잘 해결할 놈이기 때문.만약 안진검이 제대로 해결하지
안진검은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장로들에게“저는 강무진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이상 MS가문의 이름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제가 암암리에 나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서북 지역에 있을 때부터 줄곧 강무진을 만나보고 싶었다.강무진과는 내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서로 부딪힌 적이 없는 상태.하지만 만일의 경우 강무진과 부딪혔을 때를 가정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 사적으로 강무진에 관한 자료를 많이 수집해 놓은 상태다.그래서 강무진에 대해서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장로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하나 둘 연이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어쨌든 대다수의 장로들은 이 일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터라 그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그쪽 일에 정통한 사람에게 맡긴다면 그들 역시 퍽이나 안심할 수 있을 터였다.조금 전 일장로가 안진검의 옆으로 걸어간 행위는 안진검이 자신을 대표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만약 안진검이 이번 일을 말끔하게 해결한다면, 가문 내에서 그의 지위 또한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이며, 자신의 체면 역시 세워질 것이 분명했다.자신이 무척이나 아끼는 수양아들 안진검이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철썩 같이 믿었다.회의가 끝난 후 일장로는 안진검을 자신의 거처로 불러 묵직한 어조로 당부했다.“이번에 네가 가는 것은 너 개인뿐만 아니라 나를 대표하는 것이야.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내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일견 안진검에 대한 일장로의 신임이 대단하다. 하지만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불확실한 요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부득이 안진검을 불러 사전 교육을 할 필요가 있었다.하지만 자신의 수양아들 안진검도 확실히 아주 뛰어난 녀석이다. 그러니 조금만 힘을 써도 강무진을 무너뜨리는 일은 조만 간일 터.강무진이든, 이무진이든, 김무진이든 안진검 앞에서는 전혀 적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다만 안진검이 반감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까 하는
무진은 천둥번개가 치듯이 맹렬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했다.소지연을 데리고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소씨 집안과의 우호협력 관계가 무너졌음을 선포했다.소씨 집안은 순식간에 파산 직전의 상태에 놓였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의 채무 독촉, 공급업체들의 납품 거절, 판매 통로의 단절 등 여러 난관에 직면했다.북성에 자리 잡은 소씨 집안 역시 지역의 주요 명문가 중 하나였다.소씨 집안의 가장 큰 우호 세력이 바로 WS그룹이었다.그런데 지금 WS그룹에서 모든 투자를 철회하고 나오는 바람에 소씨 집안이 휘청거리는 상황에 직면한 것.소씨 집안 저택은 짙은 근심으로 차 있었다. 소파 위에 앉은 소지연의 부친과 모친의 얼굴 표정이 무척이나 어둡다.자신들의 딸 소지연이 돌아오자마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무진이 말한 대로 소지연의 목숨은 건드리지 않았다. 되려 그녀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그러나 소씨 집안을 파산시켰다.집안 분위기가 몹시도 암울했다.머리가 희끗희끗한 부모님들을 보면서 소지연은 두 분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그래서 핑계를 대고 다급히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그러나 극심한 충격에 빠진 나머지 딸 소지연을 상대할 여우가 없었던 부모님들은 그녀의 이상한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소지연의 모친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우리 무진이에게 뭐 잘못한 거 없지 않아요? 무진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건 정말 우리를 사지로 모는 거나 마찬가지예요.”소지연의 부친도 왜 무진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역시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무진이가 이러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무진의 심기를 거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우리 두 사람 내내 집안에만 있으며 무진이에게는 윗사람으로서 우리 위치에 맞게 잘 대했잖아요? 어떻게 무진이에게 잘못할 수가 있겠어요?” 짙은 울음이 섞인 소지연 모친의 음성은 몹시도 불쌍하게 들려왔다.“설마... 우리
결국 소지연의 부모는 상의한 결과 무진을 찾아가기로 했다.적어도 무슨 까닭으로 자신들을 이렇게 죽일 듯이 잡는지는 알아야 했다.만약 무진이 마음이 약해져서 자신의 회사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차에 올라탄 소지연의 부친과 모친의 표정은 몹시 불안해 보였다.“당신, 무진이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 같아요?”소지연 부친의 안색이 어두웠다. 무진이 이렇게 그간의 정을 끊으면서까지 한 걸 보면 절대 작은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그 역시 자신이 없었지만 아내가 이미 저렇게 초조해하고 있으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할 수는 없는 노릇.그냥 적당한 말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무진이 부모에게 사고가 생겼을 때 우리도 나름 도와줬으니, 무진이도 그때를 생각해서 한 번 봐주지 않겠어?”남편의 말에 소지연의 모친은 좀 안심이 되었다.“맞아요, 맞아. 우리가 무진일 도와준 적이 있죠. 무진이 착한 아이이니 분명히 우리에게 기회를 줄 거예요.”부친의 얼굴은 여전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찾아간다 해도 좋은 소식은커녕 나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소지연의 부모는 직접 엠파이어 하우스로 무진을 찾아갔다.무진은 그들의 방문을 거절하지 않고 만남에 동의했다.이번 일을 겪으면서 소지연의 부모는 안색이 눈에 띄게 초췌했다.무진은 두 어르신을 보면서 차마 박정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소지연이 한 짓에 너무 화가 났다.소지연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지연은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아래층으로 내려온 무진은 집사를 시켜 소지연의 부모님께 차를 올리게 했다.마주 앉은 소지연의 부모가 무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무진의 안색이 평온해 보였다. 마치 자신들에게 어떤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오히려 소지연의 부모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결국 회사의 상황을 생각한 소지연의 부친이 먼저 입을 열었다.“무진아, 만약 우리 소씨 집안에 불만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우리
소지연 부모의 방문과 소씨 집안의 파산 소식에 안금여와 강운경이 모두 깜짝 놀랐다.두 집안은 예로부터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그리고 무진 또한 그동안 소씨 집안의 두 어른과 잘 지내왔는데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관계가 변한 건지.안금여는 전화를 걸어 무진을 고택으로 불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구체적인 상황을 물어볼 참이었다.무진이 강씨 집안 고택으로 갔을 때, 강운경과 안금여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소파에 앉아 있다가 거실에 들어서는 무진을 본 안금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무진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멀쩡하던 사이가 이렇게 된 거니?”무진은 할머니 안금여가 이 일 때문에 자신을 불렀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이미 대답할 말을 속으로 생각해 두었다. 무진은 두 사람에게 소지연이 성연에게 한 짓을 모두 말했다.무진이 살짝 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할머니, 그래도 제가 지나쳤다고 생각하십니까?”무진의 말을 들은 안금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다른 일은 일단 참고 넘어간다 하지만, 소지연이 성연을 죽이려 하다니. 이 일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다.원래는 소씨 집안과의 정을 생각해서 무진을 만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간의 사정을 똑똑히 듣고 난 안금여는 마음속의 생각을 지웠다.소씨 집안 사람들이 먼저 잘못했으니 그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마땅한 일.“부드럽고 유해 보이던 소지연이 그런 짓을 벌일 줄은 몰랐구나. 소씨 집안에서 자신들의 딸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야. 우리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대로 당하고 있으면 안되지.” 지금의 안금여는 무진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강운경은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씨 집안과의 계약해지는 사실 WS그룹에도 영향을 주었다.그러나 소지연이 그런 짓을 저질렀음에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 역시 앞으로 회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터였다.그럴 바엔 차라리 협력관계를 깨는 게 나을 것이다.성연이 무진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신
조수경은 지금 무진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궤도에 올라선 듯 보였다.무진과의 관계를 이용한 어떤 일도 하지 않은 채 매일 성실하게 출근하는 모습이 마치 진짜 뭐든지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조수경은 이렇게 해야만 강무진과 강운경의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또한 그래야만 두 사람이 자신을 진짜 믿게 될 거라는 것도.자신이 진짜 강무진과 강운경을 이용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조수경은 차를 운전하지 않고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다.그런데 회사에 막 도착하기 직전 조수경은 갑자기 나타난 인물에 의해 앞이 가로막혔다. 바로 조수경을 찾으러 북성에 온 손민철이었다.손민철을 본 조수경은 깜짝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당신, 왜 여기에 있어요?”손민철이 점점 앞으로 다가서자 조수경은 두려운 듯 뒤걸음을 쳤다.조수경이 하는 양을 보던 손민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수경, 너 정말 날 비참할 정도로 모략했어. 게다가 하마터면 강무진이 나를 들이받게 할 뻔하고. 조수경, 너 도대체 목적이 뭐야?”손민철의 어조에는 힐난의 빛이 가득했다.조수경은 손민철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강무진 같은 사람과 비교할 수 있겠어?’조수경이 눈살을 찌푸렸다.“손민철 씨,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요!”자신이 여기에 온 까닭을 결코 손민철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조수경의 말에 손민철이 순간 화를 냈다.사실은 조수경이 말한 것과 달랐다. 손민철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손민철이 조수경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그런데 조수경이 자신에 대한 손민철의 사랑을 이용한 것이다.손민철이 천리길을 마다하고 북성에 온 까닭은 오로지 조수경이 여기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조수경은 자신의 계획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다가선 손민철이 조수경을 구석에 가두었다. 눈에 짙은 분노를 띄며 말했다.“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데?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
“정말 변변치 못하게!” 외삼촌은 유채연을 노려보았다.그래함은 외삼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했다.‘외삼촌은 이게 채연이가 만약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야.’그래서 그래함도 지나친 요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것들을 채연이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여기에 그치지 않고 채연이에게 훨씬 더 잘 해 줄 거야.게다가 외삼촌과 유채연은 그래함의 지위에 대해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이 정도의 돈은 그래함에게 있어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유채연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외삼촌 가게 뒤의 정원에서 모두 함께 밥을 먹었다.외삼촌의 표정은 시종 좋지 않있다.밥을 다 먹고 유채연이 치우려고 하자 외삼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놔 둬! 나 혼자 해도 돼! 너는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가서 너 자신이나 좀 꾸며.”외삼촌은 말하면서 유채연을 물러서게 했다. 유채연이 비틀거리자 그래함이 뒤에서 유채연을 부축해 주었다.그리고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집 앞에 와서야 유채연은 그래함과 성연에게 미안한 듯이 웃었다.“정말 미안해. 외삼촌이 바로 저런 성격이셔. 미안해.”“언니, 외삼촌이 이런 성격인 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요. 외삼촌이 치우지 말라고 했으니까 우리 좀 걸어요. 이쪽의 풍경이 좋네요.” 성연은 유채연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래함과 성연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유채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그들은 주변을 한가롭게 걸었다.길가에서 자동차 판매점을 본 그래함이 걸음을 멈추었다.유채연과 성연은 고개를 돌려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성연이 그래함에게 물었다.“사형, 왜 그래요?”“우리 들어가서 한번 보자.” 그래함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갔다.그래함이 뭘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유채연과 성연도 그래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그래함은 한참동안 살펴보았다.여기는 읍내라서 그다지 비싼 차가 없었다. 겉모습이 좋아 보이는 차는 성능이 좋지 않았고 성능이 좋은 차는 스타일이 좋지 않았다.겨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
성연은 식당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그래함과 유채연을 기다렸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성연은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그래함이 유채연을 데리고 가더라도 바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유채연의 외삼촌이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해도.그러나 유채연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유채연을 데려간다면 그래함은 반드시 외삼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그래함은 유채연과 함께 돌아가서 외삼촌을 만났다.외삼촌이 그래함을 난처하게 만들 것을 염려해서, 유채연은 원래 그다지 외삼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외삼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유채연도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생각해보니 외삼촌은 아마 동의할 것 같아.’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유채연의 외삼촌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외삼촌.” 유채연은 그래함의 뒤에 숨은 채 외삼촌을 바라보았다.‘외삼촌은 지금까지 내가 여기서 살게 해주셨어.’‘어쩌다 내게 온정을 보이기도 했지만.’유채연도 외삼촌 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외삼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토닥이면서 긴장을 풀고 모든 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눈짓을 했다.“외숙부님.” 그래함이 유채연과 함께 외삼촌 맞은편에 앉았다.외숙부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외삼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험악판 표정을 지으며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당신 같은 조카는 없어.”그래함은 오히려 외삼촌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이제 모두 한 가족이 될 테니까 제가 외숙부님이라고 해야지요.”그래함의 말에 반박하려던 외삼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대감에 가득 찬 유채연의 눈빛을 마주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무슨 일이야!” 외삼촌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래함을 쳐다보았다.“저는 채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가서 더 잘 살 수 있게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
“나도 모르겠어.” 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이 옥노리개를 보고 유채연은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그러나 여전히 모든 걸 맡길 용기를 내지 못했다.“언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언니가 사형을 믿지 않는다면, 먼저 사형을 좀 지켜보다가 적당할 때 다시 승낙하면 돼요.” 성연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유채연을 너무 팽팽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의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어.’“하지만...”유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별거 아니에요, 이건 언니하고 사형 두 사람의 일이잖아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그래도 사형을 한번 만나보세요.” 성연은 입이 닳도록 말하면서 언제 유채연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꼈다.합쳐진 옥노리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채연이 마침내 용기를 냈다.“알았어. 그래함과 얘기해 볼게.”유채연도 그래함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말만 하는 거니까 별거 아니야.’마침내 이 말을 듣자 성연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드디어 유채연을 설득한 것이다.“그래요. 언니에게 기회를 주고 그래함 사형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만 그래도 고려해 봐야겠지요.” 성연은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오늘 헛걸음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고마워.” 유채연은 손에 든 옥노리개를 꼭 쥐었다.‘만약 성연이가 내게 그렇게 많이 권하지 않았다면.’‘아마 그래함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비참해진 나한테 더이상 비참한 일은 없을 거야.’‘그러니 나도 한번 노력해보겠어.’“언니,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고 선택하면 좋겠어요.” ‘채연 언니가 사형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 아니야.’“그럴게.” 유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채연이 성연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성연은 그래함 때문에 사양했다.유채연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문을 열자, 그래함이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사형이 계속 이쪽의
성연이 보니 이제 때가 된 듯했다.그래서 유채연에게 그래함 얘기를 꺼냈다.“채연 언니, 사형이 이번에 돌아온 건 바로 언니 때문이에요. 사형은 바로 언니를 찾으려고 온 거죠. 사형이 언니한테 어떻게 너에게 대하는지 언니도 봤을 거예요. 사형은 정말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언니도 앞으로 결혼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아요?”성연이 한 말도 일리가 있지만 유채연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이 소멸되다시피 했다.유채연에게는 전혀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유채연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래함에게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유채연이 또 눈물을 흘렸다.그래함의 찾아와서 유채연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과 그래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자신은 이미 감히 그래함을 원할 수 없었다.성연은 유채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감정의 일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어.’‘좋아하는데 그냥 함께 하면 돼잖아.’‘게다가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어.’‘하지만 지금 채연 언니에게는 사형의 신분이 큰 문제야.’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미래가 정말 너무 막막할 거야.’성연이 갑자기 반쪽짜리 옥노리개를 꺼냈다.옥노리개를 본 유채연은 깜짝 놀라면서 뭔가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이 옥노리개를 뜻밖에도 그래함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어.’성연이 옆에서 말했다.“그래함 사형은 줄곧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여자친구도 없이 줄곧 언니를 기다린 거예요.”유채연이 목에 차고 있던 다른 반쪽의 옥노리개를 이어 붙이자, 완전한 옥노리개가 되었다.흥분한 유채연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나는 원래 그리움에 이 옥노리개를 남겨 두었을 뿐이야.’‘그동안 그래함도 나와 같은 생각일 줄은 전혀 몰랐어.’“그동안 그래함에게 정말 여자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유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