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석 같은 무진에게는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그럼 강운경 쪽은 더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슬슬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그런데 뜻밖에도 강운경 쪽에서 자신이 먼저 자리를 비우겠다고 한다.회사는 현재 난장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회사의 주축이었던 안금여가 쓰러졌으니 회사 주주들뿐 아니라 직원들도 불안하고 초조해 할 것이다.누군가는 현장을 수습하고 주주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했다.안금여가 쓰러졌으니 지금 회사를 지킬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무진은 아직 최대한 노출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강씨 집안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반드시 버텨내야 했다.두 숙부가 어머니의 병세를 폭로하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을 낸 지금, 회사 주주들도 확실한 답변을 듣고 싶어할 게 분명했다.비록 지금 자기들 편에 선 주주들이 많지는 않겠지만.그러나 표면적인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운경이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촉촉해진 눈가를 훔쳤다.“무진아, 여기서 할머니를 잘 보살펴 드려. 난 먼저 가 볼게. 회사 내에 우리 가족이 없어선 안 돼. 고생해라.”비록 출가외인이라고 하지만 그녀 역시 선대회장의 딸이었다.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생사 고난을 같이한 원로들이기에 분명 어느 정도는 봐줄 것이다.“고모, 제일 힘든 건 고모이지요. 전 아무 도움도 안 돼는 걸요…….” 무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불빛 아래 선 그에게서 외로움과 연약함이 묻어났다.밖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의 실력이 형편없는 게 아니었지만,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예를 들면, 그의 다리 그리고 할머니 안금여의 병세…….무진의 모습을 본 운경은 마음이 아팠다. 요 몇 년 동안 억울한 일을 많이도 당한 무진이었다. 게다가 무거운 짐까지 지고 있으니.운경이 무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다독였다.“네가 무사한 게 할머니께 가장 큰 효도야. 무진아,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무진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은
성연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무진이 계속 자리를 안 뜨면 어떻게 할머니에게 침을 놓지?’무진 앞에서 침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자신의 신분이 들통날 수 있으니…….‘내 신분이 노출되어서는 절대 안 돼.’마침 조승호가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밤새 환자를 돌보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고모부.” 무진이 고모부를 불렀다.“할머니를 뵙고 싶어?”조승호가 물었다.무진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들어가봐도 돼. 다만 지금 할머니께선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해. 외부의 어떤 자극도 더이상 견뎌낼 수 없으셔. 규정상 중환자실은 30분간 한 명만 가능하니, 들어가봐.”조승호는 안금여의 주치의로서 안금여를 치료하는 것 외에는 강씨 집안에 관한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집안 일 어디서부터 관심을 가져야하는지도 모르기에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다.그는 조카 무진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무진을 담당하는 주치의 또한 따로 있어서 그가 개입할 입장도 아니었다.“고모부,감사합니다.” 무진은 감사의 말을 전한 뒤, 휠체어를 조종해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이때 성연이 앞으로 가 무진의 휠체어를 잡았다.휠체어가 움직이지 않자 무진이 고개를 들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왜?”“제가 다녀올게요. 할머니도 분명 저를 보고 싶어하실 거예요.”성연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지금이 절호의 기회야.’중환자실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면 안금여를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속으로 ‘아싸!’하고 외쳤다.“그래도 내가 가야지. 할머니를 뵙고 싶어.” 무진이 승낙하지 않았다.지금 이 상황에서 안금여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자신일 테니까.할머니에게는 속으로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비록 집안 권력다툼에 의해 무너졌지만…….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할머니는 그의 혈육이었다. 천성이 좀 차갑긴 하지만 전혀 감정이 없을 만큼 무정하지는 않았다.무진이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성연이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옆에
무진을 설득하느라 성연은 입이 닳는 줄 알았다.무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성연은 바로 중환자실로 향했다.성연이 들어가자 조승호는 중환자실 출입문을 닫았다.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안금여의 몸에는 다양한 의료용 기기와 호스가 꽂혀 있었고,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빈약하고 초췌한 모습에서 지난 날의 활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성연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로 돌아간 듯 심장이 아려왔다.눈을 감은 채 조금씩 떨리는 손을 내밀며 옛날의 가슴 아팠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서서히 냉정을 되찾은 뒤, 안금여 손목에 손을 얹었다.진맥이 끝내고 대략적인 치료 계획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먼저 혈자리를 정확히 찾은 다음, 가방에서 은침을 꺼내 안금여의 혈 자리에 가볍게 찔러 넣았다.안금여는 연세가 많은데다 몸도 허약해서 무진같은 건장한 성인 남성에게 시침할 때처럼 해서는 안 되었다. 침을 놓는 성연의 동작이 하나하나가 가벼운 듯 조심스러웠다.몇 군데에 침을 놓은 후, 옆에서 조용히 그리고 세밀히 관찰해다.몇 분 후 할머니의 손가락이 아주 미미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했다.할머니가 반응을 보이자 성연이 겨우 후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은침을 챙겨 넣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할머니, 빨리 나으세요. 부디 그런 나쁜 사람들이 활개치지 못하게 해주세요.’할머니는 곧 정신이 들 것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다 면회 시간이 다 되어가자, 일어서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중환자실을 나섰다.그날 밤, 무진과 성연은 안금여가 걱정되어 병원에 계속 머무르기로 했다.고모부 조승호가 두 사람에게 할머니를 지켜보며 지낼 수 있도록 병실 하나를 내어 주었다.공간은 널찍하였다.침대에 기대어 앉은 성연은 무심하게 휴대폰을 넘겨보고 있었고, 무진은 소파 옆의 휠체어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할머니의 병세를 알고 난 뒤부터 무진은 줄곧 무표정이었다.할머니에 관한 얘기 외에는 그 누구와의 대화도 거부했다.마치 외부와 차단된 자신만의
한편, 강상철과 강상규 측은 벌써 축제 분위기였다.그들이 보기에 WS 그룹은 이미 자신들의 차지가 된 거나 다름없었다.안금여가 쓰러지면 본가도 끝난 셈이니.“자, 동생, 앞으로 우리 같이 꼭대기에 앉아 제대로 누려 보자구. 더 이상 그 할망구의 눈치 보지 말고…….” 득의만면한 얼굴의 강상철이 술을 한 잔, 한 잔 연거푸 들이켰다.“형님, 회장 자리는 엄연히 형님께서 앉으셔야죠. 형님의 능력은 이미 모두가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먼저 형님께 축하주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강상규는 잔에 든 술을 단번에 쭉 들이켰다.둘째 형님과 함께 한 지가 이미 여러 해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둘째 형님은 잊지 않고 그를 챙겼다.그리고 큰 형님처럼 억누르려 들지도 않았다.그래서 그는 큰형님보다 둘째 형님을 더 좋아하고 결국 선택했다.사실 두 사람은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 잘 알았다.“고마워.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데는 네 공이 가장 컸어. 걱정마라. 네 지위는 나와 동등할 거야. 우리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야. 네 것 내 것 따로 없다!”강상철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이 부침성 좋은 셋째 동생을 많이 아꼈다.자신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동생은 암암리에 뒤에서 움직이니, 이 같은 찰떡 궁합은 없을 것이다.“둘째 형님, 고맙습니다.” 강상규는 다시 잔을 들었다.이 때 강상철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그런데, 형님이 입원하시게 된 거, 다들 우리 쪽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본가 쪽에 형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큰 아주버님도 돌아가시고 형님 혼자된 지도 오래됐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셋째 강상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둘째 형수라 감히 뭐라고 말은 못하고 있었다.이때, 강상철이 잔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놓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사뭇 매서웠다.“어디
강상철과 강상규 저쪽에서는 모두 안금여가 하루 빨리 숨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음날 병원에서 안금여의 상태가 호전되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한나절 동안 관찰한 후 안금여의 병세가 안정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비보’와 함께.성연과 무진 모두 안금여를 지키고 있었다.꼼짝 않고 병원에서. 안금여가 호전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핏기가 돌기 시작한 안금여의 얼굴은 불그스름했다.컨디션도 좋아 보였다.안금여는 감개무량했다.“이 할미가 다시는 너희들을 못 볼 줄 알았다.”성연은 다가가서 안금여의 병상 앞에 앉았다.“할머니,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했어요. 보세요, 할머니 지금 다 나았잖아요? 앞으로 할머니 건강은 점점 더 좋아지실 거에요.”“아이고, 말도 참 예쁘게 하지…… 할미는 너와 무진이의 증손자도 안아봐야 하는데…… 당연히 벌써 요단강을 건널 수 없지…….”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안금여는 자신의 몸이 예전처럼 무기력하지 않음을 느꼈다.몸이 많이 가벼워졌다.진심으로 하늘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봐주지 않았나 생각했다.할머니의 안색이 좋아진 걸 본 무진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과정이 어떻든 간에 안금여가 호전되면 된 것이다.“할머니, 지금 좀 어떠세요?” 성연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있는 한 할머니는 몇 년 더 사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다만 증손자를 보는 일은 없던 일로 해두고…….그녀와 무진은 단지 표면적인 혼약일 뿐이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떠날 것이다.WS그룹의 100억 원을 받고 무진의 다리를 치료하고 안금여를 구했다.그녀도 최선을 다한 셈이다. 100억 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 “많이 좋아졌어. 가슴이 답답하지도, 아프지도 않아. 평소와 똑같아. 신기하네.”안금여가 놀라며 말했다.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그녀는 저승문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안금여는 자신의 몸 상태에
강운경도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주총에서의 일에다 안금여까지 쓰러지는 바람에 뒤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밤새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나름 수확이 있었다. 운경이 나서서 주주들을 설득하자 회장 재선임 일정이 뒤로 미루어졌다. 또 구체적 사안은 안금여가 호전되면 다시 상의하기로 했다.이 또한 몇 년 동안 안금여가 회장직에 있는 동안 세운 공헌이 막대하다는 걸 의미했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말은 사실무근이었다.물론 최근 몇 년 동안 안금여가 WS그룹을 이끌면서 다른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안금여의 기운이 예전만 못했기 때문에 말이다.밤 늦게까지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날이기라도 하면 차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이처럼 피로 누적이 장기화되다 보니 몸이 축나고 건강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그러나 WS그룹은 안금여의 안정적인 경영으로 매출과 이익이 늘어, 주주들은 상당한 배당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주주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이성을 마비시켰고, 탐욕에 눈먼 주주들은 강상철과 강상규를 그룹의 회장으로 추대하는 데에 찬성표를 던졌다.안금여는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아 그룹을 잘 이끌어 왔었다. 객관적으로 얘기하자면 회사에 대단한 기여를 한 것도 없지만 특별히 손해를 끼친 것도 없었다.안금여의 운영방식도 예전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예전 그룹의 전략적 미스로 인해 그룹전체가 위기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주식 가격이 하한가를 연속으로 맞는 등, 모두가 WS그룹의 위기를 예상했지만, 그 고비를 안금여가 버티며 넘겼기에 오늘날의 WS그룹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거였다.주주들도 지난날의 친분을 생각해서 회장 재선출 안을 연기하는 데에 찬성했다.그들도 쓰러져 누워 있는 안금여를 너무 심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강상철과 강상규의 생각은 달랐다.새 회장 선출일정이 미뤄진 것을 안 강상철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사무실 바닥에 던져진 서류가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었다.강상규는 강상철의
할머니 안금여의 의식 회복은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하지만 회복 과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어쩌면 정말 하늘의 보살핌일수도.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의학에서 요행을 찾기란 힘들다는 사실도.안금여의 병세는 사위 조승호가 줄곧 함께하며 관리해 왔었다.그러니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조승호였다. 당시 안금여의 몸은 이미 완전히 기력이 다한 상태였다. 겨우 숨만 쉬고 있을 뿐. 심작박동과 호흡이 아주 미약한 상태였다.의식이 돌아온 이후의 회복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회광반조 현상도 없었고.도대체 어떤 연유로 좋아졌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조승호는 장모 안금여가 잠 든 사이에 전신 검사를 다시 시도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검사를 진행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그리고 혈관에서 은침 자국을 발견했다. 모두 서너 군데였다.의식불명 상태의 안금여를 깨운 것은 바로 이 은침이리라.검사를 진행했던 조승호가 무진을 따로 불렀다.무슨 문제가 생겼나, 걱정하며 무진이 물었다.“고모부, 무슨 일입니까? 할머니 건강 문제입니까?”운경으로부터 무진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들어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그러나 강운경의 조카인 이상 자신의 가족이기도 했다.“무진아, 할머님의 몸이 갑자기 좋아졌어. 그런데 다시 한번 검사해보니 혈관에 은침 자국이 있더구나. 혹시 네가 사람을 보내 치료하게 했니?”이 조카는 딱 봐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무진이 데려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그런데 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아니오.”고모부의 의술을 믿는 무진이다. 병원장직을 맡을 정도로 그의 능력은 뛰어났고 또 자신과 한 가족이었다.그래서 할머니 안금여를 그에게 맡기고 다들 안심했었다.조승호가 안금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만약 고모부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정말
당시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하고 병실에 들어간 사람은 성연 혼자뿐이었다.성연의 의술이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을 무진은 잘 알고 있었다. 성연 자신은 한사코 숨기려 들지만.창고에서 자신을 구한 이도 그녀 아닌가. 다리 부상, 불면증으로 인한 조광증까지 성연의 치료 덕에 많이 호전되었다.모든 정황이 성연을 가리키고 있었다.설마 할머니를 구한 게 진짜 성연이란 말인가?이제까지 무진에게 있어 성연의 존재는 단지 호기심을 일으키는 작은 유희 정도였다.그러나 지금은 정체불명의 감정에 또 다른 뭔가가 더해졌다.무진의 마음이 다소 복잡해졌다.성연은 아침 일찍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갔다. 이미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던 할머니가 학업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다며 돌아가게 한 것이다.이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 성연 또한 순순히 돌아갔다.그래서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당장은 물어볼 수가 없었다.마음속의 묘한 감정을 누른 무진이 병원에 가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좀 늦은 시각. 집에 돌아온 무진은 포장해 온 딤섬을 성연에게 건네어 주었다.자신이 왜 이렇게 하는지도 모른 채.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저 성연이 보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손건호를 시켜 사오게 했다.정신이 돌아오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뭐, 이미 사왔으니 버릴 수는 없으니까.만약 정말 성연이 할머니를 구했다면, 고마움을 표하기에 이 딤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오니, 성연은 소파 위에 책상다리를 한 채 게임 삼매경이었다.마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매 관문을 통과하지만 마지막 관문 앞에서 항상 멈추었다.인기척을 들은 성연이 고개를 들어 건성으로 인사했다.“어, 왔어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포장해 온 딤섬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저녁도 배불리 먹은 참이었다.하지만 공기 중으로 고소한 냄새가 퍼지 순간.꼬르륵 소리로 배가 진동을 했지만 손대지 않은 채 긴가민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나 먹으라고 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