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강상철과 강상규 측은 벌써 축제 분위기였다.그들이 보기에 WS 그룹은 이미 자신들의 차지가 된 거나 다름없었다.안금여가 쓰러지면 본가도 끝난 셈이니.“자, 동생, 앞으로 우리 같이 꼭대기에 앉아 제대로 누려 보자구. 더 이상 그 할망구의 눈치 보지 말고…….” 득의만면한 얼굴의 강상철이 술을 한 잔, 한 잔 연거푸 들이켰다.“형님, 회장 자리는 엄연히 형님께서 앉으셔야죠. 형님의 능력은 이미 모두가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먼저 형님께 축하주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강상규는 잔에 든 술을 단번에 쭉 들이켰다.둘째 형님과 함께 한 지가 이미 여러 해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둘째 형님은 잊지 않고 그를 챙겼다.그리고 큰 형님처럼 억누르려 들지도 않았다.그래서 그는 큰형님보다 둘째 형님을 더 좋아하고 결국 선택했다.사실 두 사람은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 잘 알았다.“고마워.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데는 네 공이 가장 컸어. 걱정마라. 네 지위는 나와 동등할 거야. 우리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야. 네 것 내 것 따로 없다!”강상철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이 부침성 좋은 셋째 동생을 많이 아꼈다.자신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동생은 암암리에 뒤에서 움직이니, 이 같은 찰떡 궁합은 없을 것이다.“둘째 형님, 고맙습니다.” 강상규는 다시 잔을 들었다.이 때 강상철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그런데, 형님이 입원하시게 된 거, 다들 우리 쪽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본가 쪽에 형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큰 아주버님도 돌아가시고 형님 혼자된 지도 오래됐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셋째 강상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둘째 형수라 감히 뭐라고 말은 못하고 있었다.이때, 강상철이 잔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놓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사뭇 매서웠다.“어디
강상철과 강상규 저쪽에서는 모두 안금여가 하루 빨리 숨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음날 병원에서 안금여의 상태가 호전되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한나절 동안 관찰한 후 안금여의 병세가 안정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비보’와 함께.성연과 무진 모두 안금여를 지키고 있었다.꼼짝 않고 병원에서. 안금여가 호전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핏기가 돌기 시작한 안금여의 얼굴은 불그스름했다.컨디션도 좋아 보였다.안금여는 감개무량했다.“이 할미가 다시는 너희들을 못 볼 줄 알았다.”성연은 다가가서 안금여의 병상 앞에 앉았다.“할머니,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했어요. 보세요, 할머니 지금 다 나았잖아요? 앞으로 할머니 건강은 점점 더 좋아지실 거에요.”“아이고, 말도 참 예쁘게 하지…… 할미는 너와 무진이의 증손자도 안아봐야 하는데…… 당연히 벌써 요단강을 건널 수 없지…….”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안금여는 자신의 몸이 예전처럼 무기력하지 않음을 느꼈다.몸이 많이 가벼워졌다.진심으로 하늘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봐주지 않았나 생각했다.할머니의 안색이 좋아진 걸 본 무진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과정이 어떻든 간에 안금여가 호전되면 된 것이다.“할머니, 지금 좀 어떠세요?” 성연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있는 한 할머니는 몇 년 더 사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다만 증손자를 보는 일은 없던 일로 해두고…….그녀와 무진은 단지 표면적인 혼약일 뿐이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떠날 것이다.WS그룹의 100억 원을 받고 무진의 다리를 치료하고 안금여를 구했다.그녀도 최선을 다한 셈이다. 100억 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 “많이 좋아졌어. 가슴이 답답하지도, 아프지도 않아. 평소와 똑같아. 신기하네.”안금여가 놀라며 말했다.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그녀는 저승문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안금여는 자신의 몸 상태에
강운경도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주총에서의 일에다 안금여까지 쓰러지는 바람에 뒤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밤새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나름 수확이 있었다. 운경이 나서서 주주들을 설득하자 회장 재선임 일정이 뒤로 미루어졌다. 또 구체적 사안은 안금여가 호전되면 다시 상의하기로 했다.이 또한 몇 년 동안 안금여가 회장직에 있는 동안 세운 공헌이 막대하다는 걸 의미했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말은 사실무근이었다.물론 최근 몇 년 동안 안금여가 WS그룹을 이끌면서 다른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안금여의 기운이 예전만 못했기 때문에 말이다.밤 늦게까지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날이기라도 하면 차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이처럼 피로 누적이 장기화되다 보니 몸이 축나고 건강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그러나 WS그룹은 안금여의 안정적인 경영으로 매출과 이익이 늘어, 주주들은 상당한 배당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주주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이성을 마비시켰고, 탐욕에 눈먼 주주들은 강상철과 강상규를 그룹의 회장으로 추대하는 데에 찬성표를 던졌다.안금여는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아 그룹을 잘 이끌어 왔었다. 객관적으로 얘기하자면 회사에 대단한 기여를 한 것도 없지만 특별히 손해를 끼친 것도 없었다.안금여의 운영방식도 예전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예전 그룹의 전략적 미스로 인해 그룹전체가 위기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주식 가격이 하한가를 연속으로 맞는 등, 모두가 WS그룹의 위기를 예상했지만, 그 고비를 안금여가 버티며 넘겼기에 오늘날의 WS그룹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거였다.주주들도 지난날의 친분을 생각해서 회장 재선출 안을 연기하는 데에 찬성했다.그들도 쓰러져 누워 있는 안금여를 너무 심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강상철과 강상규의 생각은 달랐다.새 회장 선출일정이 미뤄진 것을 안 강상철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사무실 바닥에 던져진 서류가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었다.강상규는 강상철의
할머니 안금여의 의식 회복은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하지만 회복 과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어쩌면 정말 하늘의 보살핌일수도.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의학에서 요행을 찾기란 힘들다는 사실도.안금여의 병세는 사위 조승호가 줄곧 함께하며 관리해 왔었다.그러니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조승호였다. 당시 안금여의 몸은 이미 완전히 기력이 다한 상태였다. 겨우 숨만 쉬고 있을 뿐. 심작박동과 호흡이 아주 미약한 상태였다.의식이 돌아온 이후의 회복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회광반조 현상도 없었고.도대체 어떤 연유로 좋아졌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조승호는 장모 안금여가 잠 든 사이에 전신 검사를 다시 시도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검사를 진행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그리고 혈관에서 은침 자국을 발견했다. 모두 서너 군데였다.의식불명 상태의 안금여를 깨운 것은 바로 이 은침이리라.검사를 진행했던 조승호가 무진을 따로 불렀다.무슨 문제가 생겼나, 걱정하며 무진이 물었다.“고모부, 무슨 일입니까? 할머니 건강 문제입니까?”운경으로부터 무진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들어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그러나 강운경의 조카인 이상 자신의 가족이기도 했다.“무진아, 할머님의 몸이 갑자기 좋아졌어. 그런데 다시 한번 검사해보니 혈관에 은침 자국이 있더구나. 혹시 네가 사람을 보내 치료하게 했니?”이 조카는 딱 봐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무진이 데려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그런데 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아니오.”고모부의 의술을 믿는 무진이다. 병원장직을 맡을 정도로 그의 능력은 뛰어났고 또 자신과 한 가족이었다.그래서 할머니 안금여를 그에게 맡기고 다들 안심했었다.조승호가 안금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만약 고모부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정말
당시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하고 병실에 들어간 사람은 성연 혼자뿐이었다.성연의 의술이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을 무진은 잘 알고 있었다. 성연 자신은 한사코 숨기려 들지만.창고에서 자신을 구한 이도 그녀 아닌가. 다리 부상, 불면증으로 인한 조광증까지 성연의 치료 덕에 많이 호전되었다.모든 정황이 성연을 가리키고 있었다.설마 할머니를 구한 게 진짜 성연이란 말인가?이제까지 무진에게 있어 성연의 존재는 단지 호기심을 일으키는 작은 유희 정도였다.그러나 지금은 정체불명의 감정에 또 다른 뭔가가 더해졌다.무진의 마음이 다소 복잡해졌다.성연은 아침 일찍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갔다. 이미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던 할머니가 학업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다며 돌아가게 한 것이다.이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 성연 또한 순순히 돌아갔다.그래서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당장은 물어볼 수가 없었다.마음속의 묘한 감정을 누른 무진이 병원에 가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좀 늦은 시각. 집에 돌아온 무진은 포장해 온 딤섬을 성연에게 건네어 주었다.자신이 왜 이렇게 하는지도 모른 채.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저 성연이 보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손건호를 시켜 사오게 했다.정신이 돌아오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뭐, 이미 사왔으니 버릴 수는 없으니까.만약 정말 성연이 할머니를 구했다면, 고마움을 표하기에 이 딤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오니, 성연은 소파 위에 책상다리를 한 채 게임 삼매경이었다.마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매 관문을 통과하지만 마지막 관문 앞에서 항상 멈추었다.인기척을 들은 성연이 고개를 들어 건성으로 인사했다.“어, 왔어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포장해 온 딤섬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저녁도 배불리 먹은 참이었다.하지만 공기 중으로 고소한 냄새가 퍼지 순간.꼬르륵 소리로 배가 진동을 했지만 손대지 않은 채 긴가민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나 먹으라고 주는 거예요
고급 클럽 안.강씨 집안 둘째 강상철이 암암리에 차린 이 클럽은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말이 새어 나갈 염려가 없었다.회장 안금여가 회복되었으며 이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강상철과 동생 강상규는 긴급 회동을 가졌다.강상철은 화가 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형수님 명이 진짜 길군. 분명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오다니 말이야. 우리를 얼마나 더 힘들게 하려는 건지.”강상규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형님, 만약 큰형수가 다시 일어나면 우리에게 좋을 게 없어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큰형수님이 기력을 되찾아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 그래야 또 그 측근들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 다시는 형수 뜻대로 되지 못하게 말입니다.”“말은 쉽지. 대체 무슨 수로?”강상철이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그걸 누가 모르냐는 말이다. 실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병원이든, 회사든 항시 곁에 수행하는 사람이 있는 안금여다. 손을 대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말이다.강상규의 안색도 형 강상철을 따라 침통해졌다.당장은 확실히 별 뾰쪽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자 얼굴 가득 짜증을 묻힌 강상철은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똑똑똑- 이때 누가 문을 노크했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대화가 뚝 끊겼다.“들어와.” 강상철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트레이를 밀고 들어온 종업원이 강상철에게 차를 따르며 공손하게 말했다.“차 드시지요.”한 모금 입에 대던 강상철은 뜨거운 찻물에 혀가 데인 듯 혀끝에 통증을 느끼고는 곧바로 입안의 차를 뱉어냈다.가뜩이나 화가 나 있는 상황에 뜨거운 찻물에 입까지 데였다. 하나부터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낀 강상철이 노성을 질렀다.“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찻물을 적당히 식히지도 않고 줘? 고의야, 뭐야?”벌게진 눈으로 노기를 터트리는 얼굴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놀란 종업원이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
룸에는 강상철과 강상규의 손자 강일헌과 강진성도 불려 나와 있었다.두 사람은 해프닝이 끝난 후에 도착했다.바닥에 떨어져 있는 파편들을 보며 종업원이 두 어르신들을 화나게 한 모양이라고 추측했다.강일헌이 즉시 문쪽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그렇게도 눈치가 없어? 바닥이 더러운데 치울 줄도 몰라?”방금 종업원을 해고한 지배인이 강일헌의 목소리를 들고는 감히 다른 종업원을 보낼 생각도 못한 채 얼른 자신이 직접 달려왔다.“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즉시 깨끗이 정리하겠습니다.”잽싸게 깨끗이 정리한 지배인이 문을 닫아 주었다. 어찌나 동작이 재빠른지 마치 뒤에 뭐가 쫓아오는 듯했다.“할아버님, 작은할아버님, 무슨 일이십니까?” 강일헌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고 물었다.“은혜도 모르는 물건이 네 할아버지 심기를 건드렸지 뭐냐? 별일 아니니, 더 이상 꺼내지 마라.”강상규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할아버님, 노기를 푸십시오.”강일헌이 적당히 나긋한 음성으로 할아버지를 위로했다.“저것들한테 화낼 가치는 있고?”강상철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강일헌과 강진성이 강상철과 강상규의 맞은편에 앉았다.강씨 집안의 젊은 세대인 두 사람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강상철과 강상규는 다음 후계자로 양성할 의도로 매번 의논하는 자리마다 저 둘을 불렀다.“할아버지, 오늘 저희를 부르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사생활면에서 동류에 속하는 강일헌과 강진성은 사이가 좋았다. 지저분한 짓이란 짓은 모두 저지르며 밑바닥까지 악취가 진동하는 게 서로 잘 죽이 맞았다.“죽지도 않는 늙은이 말고 무슨 일이 있겠어?” 안금여를 언급하자 더 화가 치솟는 강상철이다.옆에 있던 강상규가 두 손자에게 자신들의 계획을 설명했다.다만 아직 실행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너희들도 의견이 있다면 과감하게 말해 보거라. 일이 중차대하니 빨리 손을 써야 해.”강상규는 강상철보다 더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았다.성질이 불 같고 수단도 악랄한 강상철에 반해 강상규는 언뜻 온화해 보이지만
상태가 많이 호전된 안금여는 정신도 또렸했다.소식을 들은 강운경은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요 며칠 동안 바쁘게 뛰어다니며 수고한 게 조금도 헛되지 않은 모양이다.천만다행으로 어머니 안금여가 깨어났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버텼을 지.“엄마, 앞으로는 제발 그렇게 사람 놀래키지 마세요.”안금여의 마르고 주름진 손을 잡은 채 운경이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했다.손을 빼낸 안금여가 거꾸로 딸의 손을 마주 잡았다.“언제든 마음의 준비를 해 둬야 해. 이번에는 하늘이 나를 데려가지 않았지만 다음에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운경이 끊었다.“엄마, 그런 불길한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제 옆에 쭉 계시면서 백 세까지 장수하셔야 해요.”“그래, 알았다, 네 말 대로 하마.” 안금여가 애정을 숨길 수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할머님, 고모님 말씀이 맞아요. 이제 보양만 잘하시면 백 세까지 문제없어요.”운경을 따라 옆에 앉아 있던 성연도 덕담이라고 한 마디 보탰다.“성연인는 정말 말을 잘해. 무진아, 네가 성연이 반만큼만 말을 할 줄 알았어도 좋을 텐데.” 안금여가 나무라듯이 무진을 바라보았다.“전 당연히 성연이 보다 못하지요. 성연이에게 이런 특별한 점이 없었다면 할머님이 지금처럼 좋아하셨겠어요?”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저런 헛소리만 잘 하지. 그러나 이번에 이 할미가 정말 염라대왕 앞을 다녀온 셈이 아니냐? 이제 몸이 오래 버티질 못해. 이 할미는 네가 좀 더 분발하기를 바란다. WS그룹에 네 밖에 없지 않니!” WS그룹은 선대 회장 강상중이 심혈을 기울여 세운 기업이다.어느 누구에게 맡긴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오직 무진밖에는.강상철과 강상규가 회사를 가진다면 어떤 사단이 날지 암담할 뿐이다.사람은 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정상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너무 탐욕스러운 것은 좋지 않았다.자신이 아직 살아있는데도 무진을 무시하는 둘째, 셋째 일가들인데, 하물며 이후에는 어떠하겠는가?둘째 네와 셋째 네는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
공항 입국 게이트.암담한 눈빛의 성연은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서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이 상황을 본 예민주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인 모양이네.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겠어.’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은침으로 성연의 허리에 있는 혈을 찔렀다.순간 아픈 표정을 드러냈지만, 곧 눈빛이 되살아난 성연이 고개를 돌려 예민주를 바라보았다.“막내 사매? 여기가 어디야?”성연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걸 듣자 예민주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보아하니, 내가 연구해서 만든 독이 그래도 썩 효과가 좋은 것 같네.’사람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한 뒤 인식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독은, 여민주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그 실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F국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언니, 이제 귀국했으니까 곧 무진 오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진 오빠가 보고싶죠?” 예민주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은 성연이 무진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민주의 계획은 전혀 시행할 수가 없다.‘그래, 한 걸음씩 차근차근 해야 해.’ 예민주의 인내심은 대단했다.“응, 무진 씨가 내 남편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무진씨가 잘해 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운성시에서 살면 돼.” “더 이상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스승님이 너를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어!”지금 성연은 더 이상 예전의 성연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변했다.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기억들과 지시가 박혀 있었다.그래서 예민주에 대한 말투는 더없이 온화했다.“응, 언니가 정말 잘해 주시는 걸요! 언니가 외국에 와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거기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언니가 제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예민주는 마음속으로는 그야말로 통쾌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선량한 척 가장하면서 묵묵히 성연의 기억을 강화하고 있었다.예민주가 설계한 기억 속에서 성연은 어제 오후 3시에
하룻밤 사이에 연운그룹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계진 회장은 탈세 문제로 구속되었고,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도 잇달아 사직했다. 인터넷의 여론이 폭발하면서, 주가는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또 다시 20%나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회장 대행인 조수경도 이미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 진교철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교철은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대리인을 시켜서 연운그룹에 한 투자마저 철회했다.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조수경도 재빨리 연운그룹과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수경은 오후에 바로 회장 대행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그룹 전체가 이미 완전히 끝장이 났다. 게다가 여러 여직원들의 고소에 직면해 있어서, 탈세 문제뿐만 아니라 성범죄 문제와도 엮여 있었다.이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했지만, 지금 무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만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그 7 명의 임원들 사건이 무진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그래함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그래함은, 성연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줄곧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어젯밤에 성연과 짜고 거짓말을 했다고 무진에게 빨리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비로소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성연의 핸드폰으로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줄곧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손건호와 서한기에게 반드시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뒤 지금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곧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손건호의 전화였다.얼른 전화를 받은 무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소식이 있어?”[보스, 사모님의 종적을 찾았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비행기로 F국 프로방스로 갔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추적하기 위해서 제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그래, 어서 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고하고. 하지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해. 실혼전에서 틀림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무진은 당황
완전히 놀란성연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실혼전의 캐서린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너 정말 예중천 스승님의 딸이 맞아? 왜, 왜 이렇게 하려는 거야?”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예민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수잔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선배,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언니에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줬어요. 언니도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강무진 씨를 양보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요!”“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돼!”이를 악문 성연의 눈빛에는 살기도 확고하게 배어 있었다.“언니는 안 죽어도 돼요! 그리고 언니가 죽는다면 소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언니가 순순히 양보하는 거예요! 나하고 강무진 씨가 행복해야 지내는 모습을 봐야지요.” “그리고 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언니가 키우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내게 줘도 돼요.”예민주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연은 예민주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놀라서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수잔은 마치 로봇처럼 성연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었다.“송성연 씨, 차 드세요!”“예민주, 네가 말한 계획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 7명의 임원들이 없어도 내 남편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어.”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겠다는 그런 말을 하니 더 터무니가 없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넌 스승님의 딸도 아니면서 왜 딸이라고 사칭한 거야?”성연의 거듭되는 질문에 갑자기 화가 난 예민주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나를 화나게 해서 더 많은 사실을 드러내게 만들겠다는 거지요! 좋아요, 그럼 내가 아예 말해 줄게요.” “예전에 강무진 씨 부모님 죽음은 우리 예씨 가문과 관계가 있어요. 강씨 가문이 우리 예씨 가문에게 빚진 거지요! 알겠어요?”“내가 강씨 가문의 모든
“도대체 날 찾아서 뭘 하겠다는 거야? 조건이 있으면 그냥 말해.” 두려움을 떨치고 정신을 차린 성연은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았다.분노한 성연이 소리치자 예민주가 냉소를 터뜨렸다.“마주 보고 있어야 얘기하기도 편해요. 앉아요!”예민주는 여전히 얼버무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모든 건 자신의 수중에 있다는 듯이.성연은 거실로 돌아와서 예민주의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잔이 성연에게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송성연 씨, 홍차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커피를 원하십니까?”성연은 정말 깜짝 놀랐다. 겉으로는 전혀 무해해 보이는 이 여자가, 불과 몇 초 전에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기에!‘어떻게 감정을 이렇게 신기하게 바꿀 수 있지?’‘이 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아.’예민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성연 씨에게는 홍차를 한 잔 주세요. 임산부라서 커피를 마시는 건 적합하지 않아요!”‘헐!’성연은 정말 멍해졌다.“날 조사한 거야?”“언니가 내 선배인데 당연히 언니의 일에 더 신경을 써야지요.” 예민주의 눈빛은 정말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했다.‘내가 임신한 사실은 지금까지 무진 씨하고 서한기만 알고 있어. 할머니와 고모에게도 아직까지 알리지 않았는데, 아득히 멀리 있는 예민주가 알고 있다니!’자신의 비밀을 예민주가 훤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되자, 성연은 완전히 충격에 휩싸였다.“됐어요! 언니 표정이 이렇게 다채로운 걸 보니 내 목적도 달성한 모양이군요. 이제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겠어요!”갑자기 미소를 거둔 예민주의 단호한 눈빛에는 냉혹함까지 엿보였다.“그래! 나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불원천리 날 찾아왔는데, 나나 무진 씨를 내버려둘 리는 없겠지?”원래 막내 사매라는 호칭에 성연은 어느 정도 친근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방을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또는 적으로 생각해야 했다.“그 7 명의 임원을 무사
성연은 문득 예민주의 나이에 의문이 들었다.‘외모는 확실히 나보다 두세 살 어리게 보여. 갓 대학교에 입학한 청순한 아가씨처럼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어린 모습이야.’그러나 겨우 10여 분 동안 접촉하면서 성연은 이따금씩 가슴이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막내 사매는 앳된 외모 속에 무서운 영혼을 감추고 있어.’다시 자리에 앉아서 예민주를 쳐다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WS그룹의 미래 업무를 담당해야 할 7명의 고위 임원들이 예민주의 부하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것 만이 7명의 임원들이 예민주의 지시에 따라서 잇달아 여기 프로방스로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너무 놀랄 필요 없어요. 언니가 세상 일을 전부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먼저 아침부터 먹어요! 그리고 나서 언니한테 어떻게 해야 WS그룹을 구하고 남편을 도울 수 있는지 알려 줄게요!”수잔이 아침 식사를 하나씩 내왔다. 빵과 우유, 그리고 약간의 치즈로 아주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다.그러나 지금 성연은 전혀 입맛도 없어서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도 요구를 빨리 말하는 것이 좋겠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그 7명의 임원들을 WS그룹으로 돌려보낼 거야?”예민주는 들은 체 만 체하며 혼자 식사를 시작했다.‘이 X이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거야?’성연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이제 7 명의 임원이 사라진 이유를 알았어. 그 사람들이 정말 예민주의 부하라면, 그럼 더 이상 WS그룹으로 돌아가게 할 필요도 없어.’‘그렇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야.’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성연은 여전히 자신이 있었다. ‘은침을 날려서 예민주를 제압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그러나 예민주가 나를 그렇게 쉽사리 풀어줄 리가 없지. 분명 다른 숨겨진 위험이 있을 거야.’잠시 생각하면서 성연은 사방을 쓸어보았다.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하인들과 수잔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경호원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것도 계산하기 어렵겠죠. 어떻게 똑똑히 계산할 수 있겠어요.”예민주가 가볍게 웃으며 입을 닫았지만 성연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그래서 내친 김에 아예 예민주에게 반문했다.“그럼 사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세어 보기라도 했어?”예민주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시원스럽게 대답했다.“세어 봤지요.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죠. 그동안 제가 배운 게 변변치 않아서 사실 환자를 도와준 적이 없어요! 한 사람도 없어요!”말을 마친 예민주의 얼굴에는 잠시 슬픈 기색이 떠올랐다.성연은 멍해진 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예민주가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떨어진다 해도 의술을 배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조금 전 손가락 사이에 은침을 끼우는 수법만 해도 정말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거야.’‘그래서 예민주의 말 뜻은 도대체 뭐야?’갑자기 성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자기도 모르게 방금 전에 수잔이 벌벌 떨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뼛속에서 발산되는 공포에 떨던 모습은 예민주가 수잔을 어느 정도로 참혹하게 다뤘는지 말해 주기에 충분했다.‘게다가 수잔은 예민주를 주인이라고 불렀어. 애완동물한테나 주인이 있는 거지.’‘그럼 예민주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건, 줄곧 다른 사람을 징벌하는데 의술을 사용했기 때문인 거야?’‘심지어, 사람들을 해치거나?’성연은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멍하니 예민주를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언니가 이제야 눈치채신 모양이네요? 호호,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세요. 제가 배운 건 원래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의술이 아니었어요.” 예민주는 성연의 추측을 시원스럽게 확인해 주었다.게다가 더할 나위 없이 지극히 평범한 표정이었다.그 말을 들은 성연은 경악하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예전에 스승님은 국내외에서 최고의 신의로 여겨지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으셨어.’‘스승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