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송아연이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이윤하는 교장의 지시로 송아연의 집으로 가정방문을 간 적이 있었다.저기는 송아연 집이 확실했다.사진은 조작이 가능하다 쳐도, CCTV 영상은 편집하기 힘들다. 학교에서 찍힌 뒷모습과 송아연의 집에서 나오는 아연의 옷차림이 똑같았다.교장 또한 착한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 왔다.지금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아연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교장이 교무주임에게 눈짓을 보냈다.즉시 교장의 의중을 알아차린 교무주임이 아연을 교장실 옆의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교장실과 이웃한 벽 한 면은 유리로 되어 교장실 내부가 다 보였다.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아연은 교무주임을 따라 옆의 방으로 들어갔다.교장은 직접 송아연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송씨 집안에서 이 시간 한가한 사람은 딱 한 명, 지금 전화를 받는 임수정이다.교장이 온화한 어조로 인사하며 물었다.“송아연 어머님, 뭐 좀 궁금한 게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송아연 학생이 월례고사 전날 밤에 어디에 있었는지요? 별 다른 뜻은 없습니다. 형식적인 것으로 학부모님들께 연락 드려 학생들 동정을 학인하는 취지입니다.”교장의 공손한 태도에, 임수정은 경각심을 늦추며 기억을 떠올렸다.시험 전날 밤이라면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아연은 교장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손가락을 손바닥 안으로 말아 쥐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제발 자신이 집에 있었다고 엄마가 말해 주길 빌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딸의 울부짖음을 끝내 듣지 못한 엄마 임수정이 곧장 대답했다.“그날 아연이가 동급생 생일 파티가 있다고 했어요. 9시가 되어서 나갔다가 11시가 넘어서 돌아왔을 걸요. 그래서 제가, 곧 시험인데 집에서 복습이나 할 것이지 어디 또 나가냐고 했더니, 친구 생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연이는 어른들 걱정 안 시키는 아이라 그냥 보내줬어요. 교장선생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아, 아닙니다. 감사합니
이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 후,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게시판의 상황이 전해졌을 때, 모두들 반신반의했다.하지만 학교에서 인정하니 거짓일 리도 없었다.심지어 이 일이 송아연과 관련 있다니,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다.지난번 임정용 사건까지 돌아보며, 그 역시 송아연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지금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평소에 학교에서 청순 가련형의 외모로 인기 있던 아이였다. 그렇게 순수하고 연약해 보였던 애가 이처럼 모질고 악랄할 줄이야!평소 학교에서 송성연, 송아연 두 사람은 별 왕래도 없는 사이였다.그런데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상상이 안되었다.송아연의 악행이 적발됨과 동시에, 성연의 성적이 진짜라는 사실도 증명되었다.눈곱만큼의 거짓도 없이!많은 아이들이 성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이제 약간의 동경과 팬심이 들어갔다.점수를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니, 이건 그냥 ‘열공생’의 수준이 아니라 ‘공부의 신’수준이다.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시선에도 성연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냥 평소처럼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다만 아이들이 소신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말에 쉽게 휘둘리지 말고.송아연 문제는 해결되었다.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다.그날 밤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온 성연은 밤새도록 기분이 좋았다.학교에서 성연에게 일어난 일을 매일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비서 손건호도 무진에게 대신 해결해줄 것인지 물었었다. 그런데 글쎄 사모님 혼자 알아서 잘 처리한 것이다.무진도 굳이 그녀의 흥을 깰 생각은 없었다. ‘이 집에서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무척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뭐.’저녁식사를 마친 성연은, 게임기를 꺼내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게임을 했다.게임 종류가 참 다양하기도 하다. 하다가 싫증나면 다른 걸로 바꾸고, 물리면 또 다른 걸 한다. 제 하고 싶은 대로.게임들은 모두 성연이 직접 개발, 제작한 것들이다. 따라서 시중에는 없는 게임들은 자신의 성격에 딱 맞게 아주 스
어느덧 일년에 한 번 열리는 WS 그룹의 주주총회가 다가왔다.주주총회를 위해 안금여는 오늘 특별히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우아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이다.안금여와 강무진, 강운경, 그리고 강씨 집안 일가들 및 WS그룹 계열사 임원진들에 주주들까지 속속 대강당에 도착했다.회장인 안금여가 제일 먼저 자리에 앉았다.주주들과 강씨 집안 일가들의 호심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야욕에 찬 승냥이 떼 같은 눈빛들이 야심에 찬 눈빛들이 회의장을 둘러보던 안금여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 오늘 이 자리에서 격전이 벌어지리라는 것이 자연히 예상되었다.하지만, 여전히 평온한 안금여 얼굴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강무진과 강운경이 각각 안금여 양편에 앉았다.“모두 다 오셨습니까? 요즘 회사 실적이 양호합니다. 그럼 회의 시작하죠.” 안금여는 낮지만 힘있는 음성으로 총회를 열었다.“회장님, 연세도 많으신 데 집에서 편히 쉬시며 노후를 보내실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괜히 회사 일 때문에 노심초사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회사에 젊은 인재들도 넘쳐 나는데,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셔야지요.” 주주 한 명이 느닷없이 일어서서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진작부터 나이 많은 전 회장의 부인이 눈에 거슬렸다.회사에 기여도 적은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늘 불만이었다.지금까지 군소리 없이 강씨 집안의 WS그룹에서 힘들게 일해 왔건만, 이 모든 게 누굴 위한 거란 말인가?“지금 그 말, 무슨 뜻입니까?” 안금여가 차가운 표정으로 조금 전의 발언자를 바라보았다.“무슨 뜻이긴요. 회장님. 강씨 고택은 노후를 보내시기에 더없이 좋은 곳 아닙니까? 회장님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셨지만…… 지금WS그룹은 답보상태입니다. 새로운 대형 사업이라 할 게 없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나실 때가 되었습니다.”그의 의사는 매우 명확했다.‘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면 꺼져라.’ 라는 말이다.WS 그룹은 비록 강씨 집안의
“강씨 집안은 남아 도는 게 돈이니, 강무진이 아무리 막 나가도 망하지 않을겁니다. 다들 더 이상 걱정 마세요.”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카를 괴롭히는 게 눈에 거슬렸던 강운경이 나서서 무진을 비호했다.“운경아, 네 말 참 듣기 거북하구나. 이 자리에 있는 작은 아버지와 삼촌들 모두 네 아버지, 내 형님을 따라 생사를 함께 했던 형제들이 아니냐? 우리 또한 이 강씨 집안의 일원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네 말에 삼촌들이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겠니?” 강씨 집안 셋째 어른인 강상규가 일어섰다. 그리고 강운경의 시선과 마주했다.입술을 깨문 강운경이 울분에 찬 눈빛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애초에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충성을 다하는 척했던 두 사람이었다.이제 아버지가 안 계시니 본색을 드러낸다.“둘째 서방님, 말씀을 참 잘 하셨습니다. WS그룹은 모두의 것입니다. WS그룹에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모두의 공로이지요. 그러나 우리 선대 회장님이 살아 계실 때, 여러분께 결코 박하지 않게 해드린 걸로 알고 있는데……오늘 이자리에서 강씨 본가를 곤란하게 하는 건 좀 지나치신 것 같군요” 차가운 음성으로 일갈한 안금여가 매서운 시선으로 둘째 시동생을 쳐다보았다.“형수님, 지나치긴요? 능력 있는 이가 자리에 오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또한 형님이 가르쳐 주셨던 교훈이지요.” 둘째 강상철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냉기를 내뿜었다.회의장에 있는 대부분의 주주들은 모두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강요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세력이 회사에서 점차 강대해지며, 주주들은 자연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주주들은 알아서 두 사람에게 줄을 섰다.그들 말이 틀리진 않다.지금 강씨 본가에는 강무진뿐이다. 그리고 별 도움 안되는 안금여도.줄을 잘못 섰다가, 앞날에 무슨 화가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눈치 빠른 이들은 둘째 강상철과, 셋째 강상규 쪽이 더 가능성 있다고 과감하게 그쪽 라인으로 갈아탔다.그러니 회의장 내
강상철과 강상규는 안금여의 당황한 기색을 보며 내심 통쾌했다.그들은 본가만이 집안의 기업을 장악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다.‘모두들 회사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왜 본가만 권력을 잡고 휘두르려고 하는 건데?’‘일개 아녀자에게 참 오랜 세월 동안 억눌려 지냈었다…….’이건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그들도 모두 강씨 집안 사람들이다.게다가 지금의 본가에는 WS 그룹을 이끌만한 인물이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안금여 다음의 후계자 자리를 물려줄 마땅한 후계자 역시.본가의 유일한 남자인 무진은 모두에게 병신 취급을 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느 누구도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출가외인 강운경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 없는 법.다시 말해 회사를 강상철과 강상규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그리고 그들만이 WS그룹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회장이 된 뒤로 내내 규정을 들먹이는 안금여는 봉건적 사고방식에 고루하기 그지없었다,지금 앞으로 쭉쭉 뻗어가려는 WS그룹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그런 그들의 눈에 안금여는 자신들의 회장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고 있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뿐이다.안금여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얼굴에 혈색을 잃은 상태였지만 등을 곧게 펴고 음성에 힘을 실었다.“네, 몸이 안 좋은 거 인정합니다. 허나 아직 몇 년 더 버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내가 살이있는 한, 회장직에서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하신 것은 잘 알겠는데, 아무리 급하더라도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겁니다. 내가 죽고 우리 집 영감 옆에 누으면, 그 때 다시 회장에서 내려오니 마니 논의하시죠?”그녀의 말에는 한껏 조롱기가 다분했다.‘이것들이! 사람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자리에서 내려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니……. 꿈도 야무져! 누가 자리를 내놓는데?’“형수님,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세요? 제가 좋은 병원을 알아봐 드릴 테니 안심하고 치료 먼저 받으세
위에는 강상철과 강상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안금여가 보니 그들이 보유한 주식은 이미 본가에 육박할만한 수치였다.모두 강상철과 강상규가 몰래 인수한 것들이었다.주주들로부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주식을 이만큼 사 모으는 데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을 거다.이번 주총을 위해 회장직을 차지할 계획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철저히 준비해 왔을 터.조금씩 핏기를 잃어가던 안금여의 얼굴이 완전히 새하얗게 질렸다.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집안 사람들 아닌가? 이 정도까지 도가 지나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만약 우리 영감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이 두 놈이 여기서 이처럼 날뛸 수 있었을까?’주식 위임동의서는 안금여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그녀의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강운경이 얼른 안금여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엄마, 괜찮으세요?”무진도 미간을 한군데로 잔뜩 모았다.“할머니…….”“나, 괜찮다.” 강운경의 품에 안긴 안금여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감싸쥐었다.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최근 몇 년간 본가에서 눈 감고 참아준 게 한 두 번입니까? 뭘 더 원하세요?” 안금여는 숨을 고르며 강상철과 강상규를 향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형수님, 우리가 뭘 원하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회장직을 내놓으시죠?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강상철의 표정도 싸늘해졌다.주식 위임동의서를 내놓았다는 것은 본가와 등을 돌리겠다는 것과 진배없었다.‘WS그룹이 옛날의 그 WS그룹인 줄 아시나?’큰형님이 돌아가신 후, 본가도 이미 그 힘을 잃었다.큰형이 살이 있을 때는 비위를 맞춰야 했지만, 지금은…… 본가가 자기들에게 빌붙어 살게 할 것이다. 오랫동안 참았던 이 수모도 풀어내면서…….“둘째 숙부님, 우리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숙부님들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기어이 우리 본가의 숨통을 끊으놓으시려는 겁니까?” 강운경의 눈시울이 옅은 빛으로 붉어졌다.‘참아야 한다.
병원에 호송된 안금여는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졌다. 강무진과 강운경도 함께 응급실 입구까지 따라 갔다.성연은 나중에야 안금여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강무진이 전화로 알려준 것이다.선생님께 말씀드린 후, 수업을 빠지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강운경과 강무진이 응급실 입구에서 지키고 있었다.운경은 매우 초조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 붉어진 눈시울, 한숨도 못 잔 듯한 초췌한 얼굴.안금여가 들어간 응급실을 바라보며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무진은 그녀보다 좀 침착해 보였다. 하지만 흔들리는 두 눈동자에서 무진의 마음도 겉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왠지 모르게 성연의 마음도 울컥했다.무진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자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었다. “아저씨, 할머니는 괜찮으실 거예요.”예전에 외할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그녀도 정말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그 당시 누구 한 사람이라도 곁에서 자신을 다독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랬었다.그러나 그녀는 늘 혼자였다.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런 두려움과 고통을 잘 알았다.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본 무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응급실에 빨간 불이 켜져 있다.그때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남자의 몸에는 오랜 세월의 경험과 진중함이 베어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는 약간의 피곤함도 함께 묻어나왔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운경이 슬픔을 참으며 손수건으로 의사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약간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엄마는 좀 어떠세요?”그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이 남자가 운경의 남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흰 가운의 가슴 부근에 새겨진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원장, 조승호.’조승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썩 좋지 않아.”최근 몇 년간 안금여의 주치의가 되어 최고의 약과 최신 의료장비 등 모든 것들을 사용해가며 치료를 전담해왔었다.하지만 지금 안금여의 몸은 지금 당장 넘어가도 이상하지
비관적인 진단 결과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운경이 몸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휘청거렸다.동작 빠른 성연이 얼른 다가가 자신의 몸으로 운경의 몸을 지탱했다.“고모님, 조심하세요.”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운경이 성연의 목소리를 듣고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성연의 손을 빌려 몸을 바로 세웠다.“고마워, 성연아.”“아니에요.” 무진의 안색도 안 좋았다.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할머니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지금의 안금여는 꺼져가는 불빛 마냥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셈이다.무진의 뒤로 다가간 성연은 생각이 깊어졌다.그녀는 안금여가 좋았다. 아주 많이.마치 자신의 외할머니처럼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다.성연의 삶에서 따스한 온기를 선사한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안금여였다.외할머니 같으신 분이 자신의 눈앞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차마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강상철과 강상규, 모두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저들이 계속 날뛰는 것 또한 보고 싶지 않았다.‘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무진과 운경이 잠시 자리를 비우게끔 해야 한다.’‘그리고 당장 할머니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봐야겠다.’어느정도는 자신의 의술에 자신이 있었다잠시 생각을 정리한 성연이 무진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아저씨, 회사에 그 사람들 그냥 그렇게 끝내지 않을 것 같은데, 누가 가서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할머니가 안 계시니, 그들이 함부로 경거망동하지는 못할 거야.” 성연이 강상철과 강상규가 강압적 수단을 써서 본가를 공격해 올까 봐 걱정하는 줄 알고 무진이 대답했다.그 문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강상철과 강상규가 인성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른 주주들까지 그렇지는 않았다.안금여가 입원까지 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본가를 몰아붙인다면, 여론이 악화되어 뒤집어지는 것까진 바라지 않을 터였다.따라서 속으로는 간절히 원한다 해도 계속 억지로 강행하지는 못할 것이다.무진은 교활한 두 늙은이가 처리하는 방식을 잘
저택에서 잠시 쉬었다가, 무진과 성연은 다시 결혼식장으로 달려갔다.결혼식에 온 손님들을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서였다.지금은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갈아 입지 않았다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무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연계진과 조수경의 모습을 발견했다.조수경은 알지만, 연계진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그러나 연계진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졌다.‘조수경이 저런 사람과 어울리면서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눈썹을 찌푸린 무진의 모습은 분명히 그들의 존재에 신경이 쓰이는 게 확실했다.무진의 표정이 좀 이상한 걸 보고 성연이 물었다.“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무진은 성연의 기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는데, 어쨌든 술을 손님들께 술을 권해야겠네요. 자, 갑시다.” 그래함이 다가와서 무진과 목현수에게 말했다.‘그러고 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야.’‘술을 권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무진이 술잔을 들고 술을 권하러 두 사람을 따라 갔다.성연이 무진의 소매를 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마셔요.”‘무진 씨 위장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알았어.” 무진은 미소를 지으며 성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목현수와 그래함이 말했다.“성연아 걱정 마. 네 남편이 더 이상 나빠지진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막고 있으니까 괜찮아.”두 사람의 놀리는 말에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예요? 빨리 가기나 해요!”성연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성연을 더 이상 농리지 않고 세 사람은 바로 손님들에게 갔다.곧 무진, 목현수와 그래함이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술을 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성연은 샤넬, 유채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유채연은 궁금한 듯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말했다.성연이 미처 대답
전통 혼례가 끝나자 이 결혼식도 비로소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무진과 성연은 방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갑자기 무거운 짐을 벗은 듯 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드러누웠다.‘정말 비즈니스나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갑자기 상체를 세운 무진이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도 눈을 뜨고 무진을 바라보았다.“너 드디어, 내 거야.” 무진이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성연도 무진의 등을 감싸 안고 말했다.“그래요, 나는 무진 씨 거고, 무진 씨도 내 거예요.”‘처음에 무진을 만나서 다행이었어.’‘무진 씨는 줄곧 나를 총애하고 감싸줬지.’‘아무도 내게 그렇게 잘해 준 적이 없었어.’무진의 눈빛에는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송성연 한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성연은 천천히 눈을 감자 무진이 성연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다.이제 습관이 되었기에 성연에게 예전 같은 수줍음은 이미 사라졌고, 때로는 주동적으로 무진의 열정에 응하기도 했다.적절하게 동작을 멈춘 무진이 성연의 몸에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성연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무진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무진이 물었다.“성연아, 할머니께 한 말은 진심이야?”성연은 약간 멍해졌다.“무슨 말요?”“아이를 갖는 일 말이야.” 무진은 곧 서른이 된다.아이를 키울 나이가 된 것이다.무진도 아이를 갈망했다.그러나 성연의 생각을 더 많이 고려했다.“당연히 사실이지요.” 성연은 자신이 승낙한 일을 식언하지 않았다.‘이미 무진 씨하고 결혼했으니까 조만간 아이도 가져야 해.’성연은 여러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도 썩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당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할머니께 잘 말씀드릴게.” 무진은 성연이 이 결혼에서 행복하기를 원했다.성연이 원하지 않는 어떤 일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누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내 말을 멋대로 해석하지 말아 줄래요?” 성연은 불만스럽게 무진을 노려보았다.무진은 좀 놀
“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이야.” 이렇게 말하는 안금여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는 항상 한식구였는데요.”성연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래, 성연이 네 말이 맞구나.” 안금여는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무진이도 이리 와.” 안금여가 무진에게도 손짓을 했다.무진이 천천히 안금여 앞으로 다가갔다.“예전에 나는 네가 앞으로 외톨이가 되는 게 두려워서 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단다. 또 앞으로 네가 외톨이가 된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네 부모를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 그러나 지금 이렇게 성연이와 함께 하게 되어서 정말 안심이 돼. 마침내 내 걱정을 덜었어.” 성연과 무진을 보는 안금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렸다.기쁨의 눈물이다.‘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어.’“할머니.” 성연도 코가 시큰거리면서 울고 싶어졌다.‘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할머니는 묵묵히 나를 지지하시면서 뒤에서 보호해 주셨지.’‘만약 할머니와 어른들의 지지와 사랑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할머니는 내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온정을 주셨어.’옆에 있던 강운경이 위로했다.“엄마, 즐거운 날이잖아요? 앞으로 무진이하고 성연이가 함께 엄마 노후를 모실 거고, 나중에 또 아이도 생기면 집안이 더 시끌벅적할 거예요.”“그래, 너희들 서둘러야 해. 얼른 내게 증손자를 안겨줘야지.” 안금여는 바로 핵심을 짚었다.만약 무진과 성연의 아이를 볼 수 있다면, 안금여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할머니, 가능한 한 빨리 아이를 가질게요.”이전에 성연은 줄곧 아직 어린데 아이를 갖는 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안금여의 눈에 비친 갈망을 보자 곧바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할머니의 한평생 소원은 바로 자손이 번창하는 거였어.’‘지금은 할머니를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실 수도 있어.’‘할머니의 이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게 당연히 가장 좋겠지.’“정말이니?” 안
서양식 결혼식이 끝났다.무진과 성연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전통 혼례를 올려야 했다.결혼식장에서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전통 혼례의 절차는 더 복잡했다.자리에 앉은 채 안금여는 목을 빼고 기다렸다.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안금여와 식구들은 미리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성연과 무진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엄마, 그 말은 몇 번이나 물어봤어요.” 강운경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강운경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안금여의 초조한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조급해서는 안 돼.’“얼마나 지났는지 좀 볼래?” 안금여는 시계를 들고 강운경에게 보여 주었다.강운경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조승호가 옆에서 위로했다.“어머님, 저쪽에는 무진이하고 성연이 친구들도 많아요. 일이 있어서 지체되는 모양이에요. 시간도 아직 안 됐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무슨 일로 지체되는 거야?” 안금여는 다소 불만스러웠다.‘이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밤낮으로 학수고대했는데 말이야.“엄마, 애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요. 걔들이 애도 아니니까 좀더 기다려봐요.” 강운경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어른이 너무 조급하게 재촉하는 건 좋지 않아.’딸과 사위가 모두 이렇게 말하자 안금여도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다만 입구 쪽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곧 밖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성연과 무진이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운경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할머니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알아!”성연도 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걸 알고 황급하게 달려왔다.바로 고모에게 사과했다.“고모, 죄송해요. 친구들이 많아서 접대하느라 좀 늦었어요.”“괜찮아, 왔으니 됐어, 빨리 가자.” 강운경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무진과 성연은 세 어른에게 차를 올렸다.세 어른들은 각자 두 사람에게 두둑한 돈봉투를 주셨다
지금 연계진과 조수경도 결혼식장의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눈길을 보내는 사람조차 없었다.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거물들에 비하면 두 사람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조수경은 그야말로 성연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증오했다.‘저 자리는 분명히 내 거였어.’‘그러나 송성연이 거듭 초를 쳤지.’‘송성연만 없었다면 지금 강무진과 결혼하는 사람은 나였을 거야.’그리고 무진을 주시하는 연계진의 눈빛은 더욱 원망이 가득했다.‘연씨 가문이라는 강력한 적수가 없었기에 강씨 가문이 지금 잘 나갈 수 있었어.’‘강씨 가문이 지금 가진 모든 건 연씨 집안의 것이었어.’‘강씨 가문과 강무진이 우리 걸 도둑질했어!’‘연씨 가문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저들 차지가 될 수 있단 말이야?’어두운 표정의 두 사람은 낯빛도 좋지 않았다.만약 다른 사람이 자세히 보았다면, 아마도 결혼식에 참석한 게 아니라 신부를 훔치러 왔다고 여겼을 것이다.정말 참을 수 없게 된 조수경은 이를 악물고 연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진 씨, 우리의 계획은 도대체 언제쯤 실행할 수 있을까요?”얼른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이쪽에 주의하지 않자, 연계진은 비로소 눈썹을 찌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그런 말을 왜 해? 우리가 뭘 하겠다고 사람들한테 광고라도 하는 거야? 만약 강무진이 알게 되면, 우리 둘을 끝까지 쫓을 거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불만이었다.‘결국 연계진은 강무진이 두려운 게 아닐까?’그러나 감히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조수경도 연계진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연계진은 다른 사람이 자기 뜻을 거스르는 걸 가장 싫어하지.’조수경은 얼른 사과했다.“내가 너무 조급했어요.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저것들은 왜 저렇게 잘 사는 걸까요.”이 말이 오히려 연계진을 자극했다.연계진도 조수경과 같은 생각이었다.눈을 가늘게 뜬 연계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에 결혼식도 진행되기 시작했다.연미복을 입은 무진은 기사처럼 묵묵히 성연의 곁을 지키면서, 성연에게 가장 진지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성연은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웨딩드레스의 아래쪽 레이스에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어서, 한 벌에 수억 원이나 할 정도로 화려했다.물론 목현수와 샤넬, 그래함과 유채연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그들의 출중한 외모와 아름다움은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사람마다 모두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레드카펫에 나란히 선 세 쌍의 신랑 신부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다.무진과 성연은 가운데에 있었다.결국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인 선서를 하고 반지를 끼워 주었다.결혼식이 끝났다.세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아내를 쳐다보았다.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모든 사람들이 이 결혼식을 축복했다.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토론을 펼치기 시작했다.“이건 분명히 내가 여태까지 본 결혼식 중에서 가장 호화롭고 가장 성대한 결혼식이야.”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북성에서의 신분과 지위도 낮지 않았다.그러나 이런 큰 인물들이 돋보이는 속에서는, 그들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게다가 이 결혼식에는 더욱 큰 돈을 썼을 텐데, 누가 이렇게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낼 수 있겠어?’‘강씨 가문 이외에는 누구도 이렇게 하지 못할 거야.’“그래, 내가 예전에 참석했던 결혼식들은 모두 결혼식도 아닌 것 같아. 이거야말로 진정한 결혼식이야.”“강 대표가 자신의 소중한 여자에게 다시없는 총애를 준 거야.”“이렇게 좋은 남자는 왜 내 남자가 아닌 거야?”이렇게 말하는 젊은 아가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또 가끔씩 머리를 흔들면서 탄식하기도 했다.옆에 있던 동료가 바로 그 아가씨의 입을 막았다.“오늘은 강 대표와 부인의 결혼식인데, 너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혹시라도 화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그 아가씨가 주위를 둘러보고 곰곰이 생각해
그 외에도 점점 더 많은 거물들이 등장했다.모두 이 세 쌍의 신랑 신부들을 축복하러 온 것이다.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 모두는 이 라인업에 놀라면서도 어느새 좀 무감각해졌다.어떤 불가사의한 인물이 오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눈앞의 장면을 보면서 성연도 마음속으로 감탄했다.‘보아하니 다들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평소에는 몰랐는데, 이제야 이렇게 많은 인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무진 씨였어.’무진은 속으로는 더욱 놀라서 성연에게 물었다.“성연아, 저 사람들이 모두 네 친구들이야?”‘이 사람들 중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있겠어?’“맞아요.”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진이 왜 이렇게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는 어쩜 이렇게 대단한 거야?” 무진의 입에서 감탄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성연이가 정말 깊숙하게도 숨기고 있었네.’‘내가 아직도 모르는 게 있울지 모르겠어.’“아무리 대단해도 무진 씨 건데요?” 성연은 무진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날 무진에게 솔직하게 말했을 때부터 성연은 무진에게 속일 일이 없었다.무진이 자신을 믿고 있기에, 성연도 당연히 상응하는 믿음을 줘야 했다.“그 말이 맞아.” 무진은 이마로 성연의 이마에 마주한 채 달콤하게 서 있었다.다른 두 쌍의 달콤함에 비해서, 미스 샤넬과 목현수는 거리가 좀 멀었다.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했던 목현수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미스 샤넬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그렇지만 한동안은 미스 샤넬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몰랐다.그 동안은 줄곧 미스 샤넬이 주동적이었다. 지금 목현수에게 기회가 생겼지만, 오히려 자신을 수동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미스 샤넬은 몇 번이나 목현수에게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잠시 후, 미스 샤넬이 머뭇거리면서 물었다.“현수 씨, 당신은 불쾌하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목현수는 멍해졌다.“왜 그렇게 물어?”“내가 당신에게 결혼을 강요해서 당신이 억지로 나와 결혼했
갑자기 현장에서 은은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즐겁고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에도 축복이 담겨 있었다.이 은은한 소리는 좀 익숙했다.그 소리를 들은 성연은 깜짝 놀랐다.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과연 루카의 모습이 보였다.루카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급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루카의 연주회 티켓을 아가씨들이 사려고 해도 매번 판매 시작과 함께 매진된다.루카는 용모도 아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서 거의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결혼식에 특별히 와서 연주를 한 것이다.여기에는 루카의 팬들도 많았다.무대 위의 루카를 보면서 팬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눈시울도 붉어졌다.한 명문가의 아가씨가 옆에 있던 동료의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나는 몇 년 동안이나 항상 루카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들어보지 못하고 동영상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뜻밖에도 여기서 루카의 연주를 봤으니 내 평생의 소원을 이뤘다고 생각해.”그 아가씨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 있던 동료는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지금 강 대표의 결혼식을 빌어서 소원을 이뤘으니, 앞으로 강 대표와 강 대표 부인에게 감사해야 해.”“물론이지, 루카, 내 루카는 어쩌면 저렇게 대단할까?” 그 아가씨는 여전히 루카가 있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집착하는 눈빛이었다.문득 뭔가 생각이 난 그 아가씨가 옆에 있던 동료의 손을 치면서 말했다.“빨리, 빨리, 핸드폰으로 나하고 루카의 사진을 한 장 찍어 줘, 빨리.”동료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몇 장만 더 찍어. 오랜만에 루카의 모습을 봤으니까 반드시 많이 찍어야겠어.” 그 아가씨는 자신을 과시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동료를 재촉했다.성연은 웨딩드레스 자락을 들고 루카의 앞으로 걸어갔다.“네 결혼식인데 내가 당연히 참석해야지. 우리는 예전에 모두 약속했어.” 루카는 온몸에서 온화한 기운을 발산했다.성연이 놀리듯이 말했다. “첼리스트의 출연료는 저는 정말 드릴 수
이렇게 국제적인 스타 가수인 소지한.그런 소모한이 성연과 무진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러 온 것이다.소모한은 오늘 성연과 무진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봤다.한쪽에 서서 세 쌍의 신랑 신부를 보고 있자니, 위안도 얻으면서 즐거웠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한 대의 전용기가 무진과 성연의 결혼식장에 도착했다.알고 보니 심우재가 온 것이다.성연은 심우재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심우재의 일은 정말 바빴기 때문이다.결혼식에 올 수 있는 것도 인연에 따른 것이기에, 성연은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정말 바쁜 중에, 시간을 내서 온 것이다.무진과 성연은 함께 심우재를 맞이하러 갔다.“우재 오빠.” 성연은 나지막하게 불렀다.“왜? 곧 아줌마가 되는데도 아직도 아가씨처럼 그렇게 쉽게 부끄러워하는 거야.”심우재가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우재 오빠, 너무 바쁘신데 안 오셔도 됐어요.” 심우재 눈 밑의 다크 서클을 보면서, 성연은 심우재가 얼마나 급하게 일을 해서 시간을 냈을지 생각했다.“내 여동생의 결혼식인데 당연히 내가 와야지. 이 정도의 시간도 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심우재는 성연이 결혼을 하든 어떤 모습이 되든 줄곧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여겼다.“강 대표.” 심우재는 다시 고개를 돌려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이 손을 내밀어 심우재와 악수를 했다.“심 회장님.”“우리 집 성연이를 이제 자네한테 맡길 테니까 잘 해줘야 해. 만약 성연이에게 무슨 억울한 일이 생기게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자네 자리를 물려받게 될 거야.” 심우재의 이 말은 오빠로서 매제에게 하는 경고였다.성연의 친정 사람으로서 무진에게 좀 엄포를 놓으려고 한 게 분명했다.“심 회장님 안심하세요. 저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겁니다.” 무진은 예리한 표정으로 심우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강 대표, 그럴 필요는 없어요. 강 대표의 그런 마음만 있으면 돼. 만약 성연이에게 잘하지 못했다면, 여기서 나하고 얘기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