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이 곽연철을 대신해서 나설 것이 분명했다.출자해서 제왕그룹의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첫걸음일 뿐.충분한 성의를 보이며 자신과 합작을 진행한 곽연철을 자신이 어떻게 서운하게 할 수 있겠는가?저녁에 무진은 김남수를 데리고 북성의 한 고급 바에 있는 강일헌을 찾아 갔다.김남수는 항상 무진의 주위에 몸을 숨긴 채로 무진의 안전을 지켜온 고수였다.평상시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김남수이지만, 이번에 특수한 성격의 임무를 맡기고자 무진이 불러냈다.손건호는 최근에 긴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일로 빈번히 출장을 다니는 바람에 불러내기가 쉽지 않아 김남수를 대신 불러낸 참이다.강일헌은 이 순간에도 화끈한 몸매의 미녀 둘을 양쪽에 껴안은 채 비몽사몽 술에 취해 있었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한 지금의 생활이 우쭐거릴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주위는 온통 그를 향해 아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더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강일헌이 한창 사치스러운 환락을 즐기고 있을 때, 난데없이 소파에서 강제로 끌려내려 왔다.바로 인상을 쓰며 노발대발하던 강일헌이 고개를 들자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강무진이 보였다.싸늘한 얼굴의 무진은 암암리에 숨기고 있던 냉기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강일헌은 그저 입술을 떨기만 할 뿐 한마디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무진을 본 사람들은 슬슬 눈치를 보더니 하나 둘 자리를 떴다.어디까지나 저 위 세계 신들의 싸움, 두 사람 누구에게도 밉보이는 건 좋지 않으니, 아무래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 터.순식간에 룸 안이 텅텅 비어 버렸다.무진이 강일헌을 향해 바로 경고를 날렸다.“오늘부터 제왕그룹은 WS그룹 소속이야. 만약 한 번 더 감히 제왕그룹에 손을 댄다면 더 이상 날 원망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강일헌은 여전히 억지를 부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헤이, 무진 형, 지금 우리 둘째, 셋째 일가가 강씨 집안에서 떨어져 나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뭘 어쩌시려고? 굳이 우리 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을
팅팅 부은 얼굴로 강일헌이 집으로 돌아왔다. 옷에 묻은 먼지와 얼룩도 지우지 못한 채.거실에 앉아 있다가 형편없는 모습을 한 강일헌을 본 강명재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온종일 밖에서 고군분투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짜내고 하는 게 모두 누구를 위한 건데?’‘그런데 내 아들이 이렇게나 변변치 못하다니.’테이블을 두드리며 아들 강일헌을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이런 꼴로 또 어디에 가서 빈둥거린 게냐?”평소라면 아들 강일헌이 어떻게 논다 해도 상관없었다.그러나 지금은 은성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을 강무진이 지켜보고 있는 아주 중차대한 시기가 아닌가.어디에서든 아주 사소한 실수만 저질러도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할 수 있었다.그런데 아들 강일헌이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하, 어쩌다 이런 쓸모없는 아들을 낳았는지?’안 그래도 강무진에게서 수모를 당하고 들어온 차에, 아버지 강명재가 자신에게 분노를 터트리자 강일언은 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스물이 훌쩍 넘은 사내대장부가 눈가가 붉어진 채 아버지에게 미주알고주알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변명했다.강명재는 강일헌의 얼굴이 강무진의 작품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리고 사실 강일헌과 강진성 두 사람이 제왕그룹에 가서 소란을 피운 것도 따지고 보면, 강명재, 강명기 두 어른의 지시에 따른 것.강무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강무진은 전혀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지 않았다!강명재는 어두운 얼굴로 강일헌을 힐끗 쳐다본 후에 입을 열었다.“어서 가서 상처를 처치하지 않고 뭐해! 강무진과 붙어서 이런 꼴이나 되다니, 그 놈과 맞설 생각은 다시는 하지도 마. 그야말로 망신스럽다!”아버지 강명재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강일헌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상처를 치료했다.거실에 혼자 있던 강명재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이번에 강무진이 한 일을 보면 정말이지 이쪽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은 셈이다.즉 다시 말해, 앞으로 은성그룹과 WS그룹은 서로를
외출하려던 송아연은 갑작스럽게 초대장 한 장을 받았다.고급스럽게 포장된 초대장에서 송아연을 초대한 곳도 아주 고급 장소였다.하지만 서명은 없었다. 송아연은 누군가 강진성의 기분을 맞춰가며 붙어있는 자신을 보았나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무시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자신에게 잘 보이려 들었다.‘나에게 들킬까 봐 이런 방법을 쓴 거겠지?’나르시시즘적 생각에 빠진 송아연.‘어차피 집에서도 심심하기만 한데, 초대 장소로 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안 그래도 지금 자신의 곁에 팔다리 노릇을 해줄 이가 없어 걱정이던 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눈앞에 온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그런 생각을 하며 송아연은 초대 장소로 갔다.룸 넘버를 확인하고 들어가자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여자에 대한 기억이 자신에게는 없었다.송아연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지닌 채 물었다.“실례지만, 누구시죠?”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예의를 갖추어 입을 열었다.앞에 있는 여자가 입은 옷들은 모두 명품이었다. 게다가 동작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게 보통 만만한 여자가 아니게 보였다.“왔어요? 앉아요.” 송아연을 초대한 사람은 바로 소지연.송성연을 처리할 좋은 방법이 생각난 소지연은 송아연에게 먼저 손을 쓸 생각이었다.먼저 송아연을 조사해서 돈에 눈이 먼 된장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이런 사람은 부추기기 가장 좋은 부류다. 돈이라면 뭐든 아무렇지 않게 다 할 수 있으니.또한 소지연은 여태껏 돈이 부족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송아연은 소지연의 맞은편에 앉았다.송아연은 소지연이 자신을 초대한 목적이 무언지 알 수 없었다.음료 두 잔을 주문한 소지연이 한 잔을 송아연에게 건넸다. 그다지 마실 생각이 없던 송아연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또 무슨 목적으로 날 부른 거죠?”소지연도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송아연 같은 무뇌
소지연은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송아연을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송아연은 자존심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성연이 오기 전까지 온갖 애정과 관심 속에서 작은 공주처럼 지내던 송아연이었다.학교에서도 말없이 따르는 꽤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그러나 송성연이 온 후, 송아연의 모든 위선과 가면이 벗겨지며 남은 게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심지어 송성연 때문에 강제 낙태 수술을 받기도 했다.그러니 송아연이 송성연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송아연은 송성연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소지연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송성연에 대한 송아연의 증오가 깊을수록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말 몇 마디에 송아연이 성공적으로 넘어왔다.소지연이 계속해서 말했다.“송성연은 곧 대학 진학을 위해 유럽으로 갈 거예요. 그때 송아연 씨도 가세요. 손을 쓰기 편하게.”송아연은 반신반의의 눈빛으로 소지연을 응시했다.“유럽에서 대학에 다니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요. 나는 그 돈을 낼 형편이 안되고요.”송씨 집안은 말할 것도 없다. 아버지 송종철은 위태로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매일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그 사이 폭삭 늙은 임수정은 별다른 능력도 없어 온종일 집에서 살림만 하는 처지였다.그러니 집에 돈이 나올 구멍이 어디 있겠는가.게다가 강씨 집안에서의 생활도 그리 넉넉치 않아서 언제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강진성은 자기 기분 내킬 때만 송아연에게 돈을 주었다.강진성이 밑도 끝도 없이 그녀에게 돈을 대줄 리가 없었다.그러니 유럽에 가는 일은 돈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그 점은 걱정 말아요. 학비, 기숙사비 및 생활비까지 모두 내가 다 책임지겠어요. 돈은 별 문제 아니에요.”소지연이 호탕하게 말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송아연을 깔보았다.‘역시 서민 가정 출신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 ‘속으로 돈 생각밖에 안 하네. 일이 성공하고 송성연을
지난번 소지연이 무진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던 일로 성연은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소지연에 대해 계속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성연은 수하를 시켜 소지연의 행적을 조사하게 했다.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성연은 결국 가장 믿을 수 있는 수하 서한기에게 시켰다.며칠 소지연의 행적을 쫓던 서한기가 성연에게 보고했다.“소지연의 행적에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어요.”눈살을 찌푸린 성연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날 휴양지 리조트에서 보여준 모습을 봤을 때, 소지연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또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한 마당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성연이 성질을 참으며 서한기에게 계속 물었다.“그럼 요 며칠 소지연은 뭘 하고 있어?”서한기가 대답했다.“주로 WS그룹 밑에서 지켜봤는데, 소지연은 며칠째 강무진 대표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회사 로비에서 그녀의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어요. 소지연은 부모님과 쇼핑을 하거나 아니면 친척과 친구를 만나며 지냈어요.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소지연 스스로 이제 막 귀국한 참이라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했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그러나 무진에 대한 소지연의 집착을 생각했을 때, 며칠이 지나도록 무진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는 건 말이 좀 안 되지 않나?성연은 소지연, 이 여자가 반드시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절대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순진하고 착하지 않았다.폰 건너편에서 성연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서한기가 놀렸다.“보스, 무슨 일인데요? 소지연, 이 여자가 보스의 연적이에요?”“그런 셈이지, 어차피 무진 씨를 놓고 딴 생각을 품고 있으니까.” 성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날의 일에 대해 서한기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서한기의 호들갑스러운 성격에 소문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더 수습하기 어렵게 될 터.조직의 사람들은
소지연에 대한 성연의 예상이 맞았다.소지연은 절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확실히 곧바로 움직임이 있었다.소지연 갑자기 성연을 찾아와 식사에 초대하며 기어코 성연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소지연이 웃으며 말했다.“성연 씨, 지난번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성연 씨가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요. 오늘 보니, 성연 씨 게임을 하고 있으니 시간 있죠?”그 말은 이제 거절할 이유가 성연에게 없다는 것.소지연은 이미 집으로 방문한 상태.뭐라고 거절하든 성연이 가지 않으면 말이 좀 안 되는 상황이다.게다가 성연은 무진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적으로 강무진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연이 소지연에게 대답했다.“한끼 식사일 뿐이니까, 모처럼 소지연 씨가 여기로 왔으니 내가 가는 게 맞겠죠.”소지연이 저 멀리서 여기까지 달려온 까닭이 바로 자신에게 밥 한 끼 사려는 것이라니.그 말은 성연도 믿지 않았다.그러나 소지연이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연의 승낙을 들은 소지연의 얼굴에 웃음이 더 진해졌다.“그럼 이렇게 해요. 오늘 내가 차를 몰고 왔으니까 내 차를 타고 같이 가요.”성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 가는데 누구의 차를 타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소지연의 차에 탄 성연은 바로 뒷좌석에 앉아 소지연과의 거리를 벌렸다.가는 동안 두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레스토랑에 도착한 후, 소지연이 장소 선택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주변 환경이 아주 깔끔하면서도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이었다.만약 오늘 함께 온 사람이 소지연이 아니었다면, 이곳을 아주 좋아했을 것이라고 성연은 생각했다.자리에 앉자 소지연이 메뉴를 성연에게 내밀었다.“성연 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성연 씨가 직접 주문해요. 사양할 필요 전혀 없어요.”성연은 앞에 있는 메뉴판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나는 뭐든지 다 괜찮으니까 소지연 씨가 주문하세요.”“아이참, 성연 씨는 무진 오빠의 약혼녀예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소지연은 술을 한 잔씩 마셨다. 결국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져 이미 취한 듯이 보였다.성연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본 소지연은 속으로 기뻤다.‘역시, 송성연, 신경이 쓰이겠지?’자신과 강무진의 관계는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영원히. 소지연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정신이 없는 척하며 말했다.“성연 씨, 나 취해서 솔직하게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성연 또한 이를 갈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소지연은 성연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무진 오빠와 성연 씨 정말 잘 어울려요. 무진 오빠의 성격이 성연 씨와 잘 맞나봐요. 무진 오빠, 예전에는 그 많은 여자들 모두 마음에 두지 않더니, 성연 씨한테는 신경을 쓰네요.”소지연은 마치 무진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마치 무진의 과거에 함께 한 자신이 무진을 대표할 수 있는 것처럼.이런 표현방식이 성연은 무척 싫었다.설령 소지연의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도, 성연은 여전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무진 오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무진 오빠 혼자 WS그룹을 책임져야 했어요. 아무도 몰라요.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지, 성연 씨는 당연히 몰라요. 이렇게 오랫동안 표면적으로 WS그룹을 경영하는 사람은 할머니였지만, 사실 무진 오빠가 뒤에서 관리하고 있었어요. 회사는 오빠 손에서 일사불란하게 성장해서, 과거 그 누구도 닿지 못했던 높이까지 올라갔어요. 무진 오빠에게 더 필요한 사람은 옆에서 잘 보좌할 수 있는 여자예요.”이 말을 하며 소지연은 성연을 뚫어져라 응시했다.마치 성연은 무진에게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듯이.사실, 소지연의 생각은 바로 그랬다.무진의 가슴속에는 큰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무진의 지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강무진은 WS그룹을 이끌고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그러나 송성연이 무진의 곁에 남아 있으면, 그저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다. 전혀 도움
성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좋은 마음을 가진 게 아닌 소지연에게 고맙다고 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자신은 정말 그렇게 도량이 넓지 않았다.근데 소지연은 술을 핑계로 미친 척 연기했다.이런 말 저런 말들을 하면서 벌써 술을 반 병이나 마셨다.도수가 꽤 높은 술인데 말이다.성연에게 바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소지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혼자 늘어놓기 시작했다.“성연 씨는 모르죠? 내가 무진 오빠와 스킨십을 할 뻔했던 거.” 그 시절을 회상하는 소지연의 눈에 그리움의 빛이 어렸다.‘맞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나와 무진 오빠만 있고 아무도 없던 그때로.’강무진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고, 모든 염원이었다.강무진을 쫓아 가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무진이 마음을 다른 여자에게 줘버리지 않았냐는 말이다.그러니 소지연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분명 무진의 옆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다.성연보다 무진을 안 지 더 오래되었다. 또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기회만 기다렸다.그런데 자신이 없는 동안에 송성연이라는 계집애가 나타나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소지연의 성격은 평상시 절대 송성연 같지 않았다.그러나 강무진에게 송성연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 나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송성연을 강무진의 곁에서 조금씩 뽑아내야 했다.성연은 소지연이 또 무엇을 하려는 지 알 수가 없었다.그저 턱을 괴고서 무료한 표정으로 소지연을 응시하기만 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소지연도 그 전처럼 즐겁게 떠들었다.어차피 이 말들 역시 소지연이 일부러 성연에게 들려주려던 것이다.“18살 때, 학교에서 몇몇 애들이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술도 강제로 먹였어요. 당시 무진 오빠가 나를 위해 모두 쫓아내 줬죠. 그런데 그때 비가 와서 무진 오빠와 나는 나란히 건물 처마 밑에서 앉아 비를 피했어요. 무진 오빠가 코트를 벗어서 나에게 주었고요. 무진 오빠를 냉담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아요. 사실 속마음은 무척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