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려던 송아연은 갑작스럽게 초대장 한 장을 받았다.고급스럽게 포장된 초대장에서 송아연을 초대한 곳도 아주 고급 장소였다.하지만 서명은 없었다. 송아연은 누군가 강진성의 기분을 맞춰가며 붙어있는 자신을 보았나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무시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자신에게 잘 보이려 들었다.‘나에게 들킬까 봐 이런 방법을 쓴 거겠지?’나르시시즘적 생각에 빠진 송아연.‘어차피 집에서도 심심하기만 한데, 초대 장소로 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안 그래도 지금 자신의 곁에 팔다리 노릇을 해줄 이가 없어 걱정이던 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눈앞에 온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그런 생각을 하며 송아연은 초대 장소로 갔다.룸 넘버를 확인하고 들어가자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여자에 대한 기억이 자신에게는 없었다.송아연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지닌 채 물었다.“실례지만, 누구시죠?”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예의를 갖추어 입을 열었다.앞에 있는 여자가 입은 옷들은 모두 명품이었다. 게다가 동작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게 보통 만만한 여자가 아니게 보였다.“왔어요? 앉아요.” 송아연을 초대한 사람은 바로 소지연.송성연을 처리할 좋은 방법이 생각난 소지연은 송아연에게 먼저 손을 쓸 생각이었다.먼저 송아연을 조사해서 돈에 눈이 먼 된장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이런 사람은 부추기기 가장 좋은 부류다. 돈이라면 뭐든 아무렇지 않게 다 할 수 있으니.또한 소지연은 여태껏 돈이 부족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송아연은 소지연의 맞은편에 앉았다.송아연은 소지연이 자신을 초대한 목적이 무언지 알 수 없었다.음료 두 잔을 주문한 소지연이 한 잔을 송아연에게 건넸다. 그다지 마실 생각이 없던 송아연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또 무슨 목적으로 날 부른 거죠?”소지연도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송아연 같은 무뇌
소지연은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송아연을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송아연은 자존심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성연이 오기 전까지 온갖 애정과 관심 속에서 작은 공주처럼 지내던 송아연이었다.학교에서도 말없이 따르는 꽤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그러나 송성연이 온 후, 송아연의 모든 위선과 가면이 벗겨지며 남은 게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심지어 송성연 때문에 강제 낙태 수술을 받기도 했다.그러니 송아연이 송성연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송아연은 송성연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소지연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송성연에 대한 송아연의 증오가 깊을수록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말 몇 마디에 송아연이 성공적으로 넘어왔다.소지연이 계속해서 말했다.“송성연은 곧 대학 진학을 위해 유럽으로 갈 거예요. 그때 송아연 씨도 가세요. 손을 쓰기 편하게.”송아연은 반신반의의 눈빛으로 소지연을 응시했다.“유럽에서 대학에 다니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요. 나는 그 돈을 낼 형편이 안되고요.”송씨 집안은 말할 것도 없다. 아버지 송종철은 위태로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매일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그 사이 폭삭 늙은 임수정은 별다른 능력도 없어 온종일 집에서 살림만 하는 처지였다.그러니 집에 돈이 나올 구멍이 어디 있겠는가.게다가 강씨 집안에서의 생활도 그리 넉넉치 않아서 언제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강진성은 자기 기분 내킬 때만 송아연에게 돈을 주었다.강진성이 밑도 끝도 없이 그녀에게 돈을 대줄 리가 없었다.그러니 유럽에 가는 일은 돈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그 점은 걱정 말아요. 학비, 기숙사비 및 생활비까지 모두 내가 다 책임지겠어요. 돈은 별 문제 아니에요.”소지연이 호탕하게 말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송아연을 깔보았다.‘역시 서민 가정 출신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 ‘속으로 돈 생각밖에 안 하네. 일이 성공하고 송성연을
지난번 소지연이 무진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던 일로 성연은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소지연에 대해 계속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성연은 수하를 시켜 소지연의 행적을 조사하게 했다.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성연은 결국 가장 믿을 수 있는 수하 서한기에게 시켰다.며칠 소지연의 행적을 쫓던 서한기가 성연에게 보고했다.“소지연의 행적에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어요.”눈살을 찌푸린 성연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날 휴양지 리조트에서 보여준 모습을 봤을 때, 소지연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또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한 마당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성연이 성질을 참으며 서한기에게 계속 물었다.“그럼 요 며칠 소지연은 뭘 하고 있어?”서한기가 대답했다.“주로 WS그룹 밑에서 지켜봤는데, 소지연은 며칠째 강무진 대표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회사 로비에서 그녀의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어요. 소지연은 부모님과 쇼핑을 하거나 아니면 친척과 친구를 만나며 지냈어요.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소지연 스스로 이제 막 귀국한 참이라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했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그러나 무진에 대한 소지연의 집착을 생각했을 때, 며칠이 지나도록 무진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는 건 말이 좀 안 되지 않나?성연은 소지연, 이 여자가 반드시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절대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순진하고 착하지 않았다.폰 건너편에서 성연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서한기가 놀렸다.“보스, 무슨 일인데요? 소지연, 이 여자가 보스의 연적이에요?”“그런 셈이지, 어차피 무진 씨를 놓고 딴 생각을 품고 있으니까.” 성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날의 일에 대해 서한기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서한기의 호들갑스러운 성격에 소문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더 수습하기 어렵게 될 터.조직의 사람들은
소지연에 대한 성연의 예상이 맞았다.소지연은 절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확실히 곧바로 움직임이 있었다.소지연 갑자기 성연을 찾아와 식사에 초대하며 기어코 성연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소지연이 웃으며 말했다.“성연 씨, 지난번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성연 씨가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요. 오늘 보니, 성연 씨 게임을 하고 있으니 시간 있죠?”그 말은 이제 거절할 이유가 성연에게 없다는 것.소지연은 이미 집으로 방문한 상태.뭐라고 거절하든 성연이 가지 않으면 말이 좀 안 되는 상황이다.게다가 성연은 무진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적으로 강무진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연이 소지연에게 대답했다.“한끼 식사일 뿐이니까, 모처럼 소지연 씨가 여기로 왔으니 내가 가는 게 맞겠죠.”소지연이 저 멀리서 여기까지 달려온 까닭이 바로 자신에게 밥 한 끼 사려는 것이라니.그 말은 성연도 믿지 않았다.그러나 소지연이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연의 승낙을 들은 소지연의 얼굴에 웃음이 더 진해졌다.“그럼 이렇게 해요. 오늘 내가 차를 몰고 왔으니까 내 차를 타고 같이 가요.”성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 가는데 누구의 차를 타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소지연의 차에 탄 성연은 바로 뒷좌석에 앉아 소지연과의 거리를 벌렸다.가는 동안 두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레스토랑에 도착한 후, 소지연이 장소 선택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주변 환경이 아주 깔끔하면서도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이었다.만약 오늘 함께 온 사람이 소지연이 아니었다면, 이곳을 아주 좋아했을 것이라고 성연은 생각했다.자리에 앉자 소지연이 메뉴를 성연에게 내밀었다.“성연 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성연 씨가 직접 주문해요. 사양할 필요 전혀 없어요.”성연은 앞에 있는 메뉴판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나는 뭐든지 다 괜찮으니까 소지연 씨가 주문하세요.”“아이참, 성연 씨는 무진 오빠의 약혼녀예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소지연은 술을 한 잔씩 마셨다. 결국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져 이미 취한 듯이 보였다.성연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본 소지연은 속으로 기뻤다.‘역시, 송성연, 신경이 쓰이겠지?’자신과 강무진의 관계는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영원히. 소지연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정신이 없는 척하며 말했다.“성연 씨, 나 취해서 솔직하게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성연 또한 이를 갈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소지연은 성연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무진 오빠와 성연 씨 정말 잘 어울려요. 무진 오빠의 성격이 성연 씨와 잘 맞나봐요. 무진 오빠, 예전에는 그 많은 여자들 모두 마음에 두지 않더니, 성연 씨한테는 신경을 쓰네요.”소지연은 마치 무진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마치 무진의 과거에 함께 한 자신이 무진을 대표할 수 있는 것처럼.이런 표현방식이 성연은 무척 싫었다.설령 소지연의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도, 성연은 여전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무진 오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무진 오빠 혼자 WS그룹을 책임져야 했어요. 아무도 몰라요.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지, 성연 씨는 당연히 몰라요. 이렇게 오랫동안 표면적으로 WS그룹을 경영하는 사람은 할머니였지만, 사실 무진 오빠가 뒤에서 관리하고 있었어요. 회사는 오빠 손에서 일사불란하게 성장해서, 과거 그 누구도 닿지 못했던 높이까지 올라갔어요. 무진 오빠에게 더 필요한 사람은 옆에서 잘 보좌할 수 있는 여자예요.”이 말을 하며 소지연은 성연을 뚫어져라 응시했다.마치 성연은 무진에게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듯이.사실, 소지연의 생각은 바로 그랬다.무진의 가슴속에는 큰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무진의 지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강무진은 WS그룹을 이끌고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그러나 송성연이 무진의 곁에 남아 있으면, 그저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다. 전혀 도움
성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좋은 마음을 가진 게 아닌 소지연에게 고맙다고 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자신은 정말 그렇게 도량이 넓지 않았다.근데 소지연은 술을 핑계로 미친 척 연기했다.이런 말 저런 말들을 하면서 벌써 술을 반 병이나 마셨다.도수가 꽤 높은 술인데 말이다.성연에게 바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소지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혼자 늘어놓기 시작했다.“성연 씨는 모르죠? 내가 무진 오빠와 스킨십을 할 뻔했던 거.” 그 시절을 회상하는 소지연의 눈에 그리움의 빛이 어렸다.‘맞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나와 무진 오빠만 있고 아무도 없던 그때로.’강무진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고, 모든 염원이었다.강무진을 쫓아 가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무진이 마음을 다른 여자에게 줘버리지 않았냐는 말이다.그러니 소지연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분명 무진의 옆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다.성연보다 무진을 안 지 더 오래되었다. 또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기회만 기다렸다.그런데 자신이 없는 동안에 송성연이라는 계집애가 나타나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소지연의 성격은 평상시 절대 송성연 같지 않았다.그러나 강무진에게 송성연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 나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송성연을 강무진의 곁에서 조금씩 뽑아내야 했다.성연은 소지연이 또 무엇을 하려는 지 알 수가 없었다.그저 턱을 괴고서 무료한 표정으로 소지연을 응시하기만 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소지연도 그 전처럼 즐겁게 떠들었다.어차피 이 말들 역시 소지연이 일부러 성연에게 들려주려던 것이다.“18살 때, 학교에서 몇몇 애들이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술도 강제로 먹였어요. 당시 무진 오빠가 나를 위해 모두 쫓아내 줬죠. 그런데 그때 비가 와서 무진 오빠와 나는 나란히 건물 처마 밑에서 앉아 비를 피했어요. 무진 오빠가 코트를 벗어서 나에게 주었고요. 무진 오빠를 냉담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아요. 사실 속마음은 무척 따
성연이 보인 반응과 행동을 통해 소지연은 결국 성연이 쉽게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하찮은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됐다.아니 오히려 다루기 힘든 상대였다.원래 시골 촌뜨기에 불과한 계집애라 나약하기 그지없어서 두세 마디 말이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어떤 여자라도 자신의 약혼자가 다른 여자와 그처럼 친밀한 스킨십을 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을 터였다.어쩌면 집에 돌아가서 강무진과 크게 다툴 수도 있었다.강무진은 억지 부리는 여자를 가장 싫어한다. 그때 두 사람이 진짜 싸우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그 빈틈을 뚫고 들어가 무진을 위로할 계획이었다. 덩달아 자신의 장점을 무진이 알게 하면서.그러나 소지연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고, 송성연을 과소평가했다.분명히 모든 것을 자신이 계획했었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연결되도록 계획했지만, 송성연에 의해 실패했다. 정말 말도 안되게.어쩐지 방미정이 성연 앞에서 찌그러져 실의에 빠진 채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게 이해가 갔다. 또 강무진이 직접 처리한 것도.정말 창피하기 짝이 없다.만약 자신이었다면, 그처럼 어리숙하게 일을 벌여 송성연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방미정은 겉으로는 송성연을 겨냥한 것이지만, 뒤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강무진에게 맞서 그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 아닌가?‘그러니 그런 꼴이 된 거지.’소지연은 그들보다 훨씬 똑똑했다.방미정이 귀국하여 벌인 소동은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자신은 강무진과 죽마고우일 뿐만 아니라 방미정도 잘 알았다.어렸을 때, 두 사람은 같은 남자에게 미쳐 있었기 때문에 소지연은 방미정을 계속 지켜보았다.본래 방미정이 강무진과 파혼하고 출국함으로써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방미정이 뜻밖에 강무진을 되찾기 위해 귀국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그러나 그래도 괜찮았다. 송성연이 자신을 대신해서 방미정을 치워 주었으니, 오히려 자신의 일을 덜게 된 셈이었다.자신은 귀국한 후에 송성연 한
소지연의 행방을 놓친 수하들은 즉시 비밀 아지트에 가서 성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자책감을 느끼는 수하의 음성이 휴대폰 저편에서 들렸다.“문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서 그 여자를 놓쳤습니다.”“놓쳤으면 됐다. 다음에는 더 주의해.” 성연은 수하를 책망하지 않았다.“문주님, 감사합니다.” 성연에게서 책망의 말이 나오지 않자 수하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화를 끊은 성연은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소지연, 계략이 뛰어나고 또 아주 신중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감탄했다.상식적으로 평범한 회사 임원인 소지연이 유럽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강한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게다가 자신의 수하들에 대해서는 성연만큼 잘 알 수도 없었다.수하들이 나서면 당연히 쉽사리 들키지 않을 터였다.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봤을 때, 소지연이라는 사람은 절대 간단한 인물이 아니었다.만약 소지연이 자신의 수하들을 따돌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 그럼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니까.‘그처럼 급하게 사람을 따돌린다? 그러니 더 의심스러워.’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소지연에게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생각했다.지난번 리조트에서 있었던 일부터 이번 일까지.무진은 아마도 소지연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어떠한 태도도 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소지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성연은 머리가 좀 아팠다. 연이은 일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한 것 같았다.집에 돌아온 무진은 소파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성연을 보았다.무진이 걸어가서 성연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무진의 음성을 들은 성연이 고개를 들었다. 벗어나려 버둥거리지 않고 무진의 품에 얌전하게 있었다.잠시 말이 없던 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 생각에, 소지연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잠시 무진은 멍했다.“소지연은 내 친구지.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