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좋은 마음을 가진 게 아닌 소지연에게 고맙다고 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자신은 정말 그렇게 도량이 넓지 않았다.근데 소지연은 술을 핑계로 미친 척 연기했다.이런 말 저런 말들을 하면서 벌써 술을 반 병이나 마셨다.도수가 꽤 높은 술인데 말이다.성연에게 바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소지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혼자 늘어놓기 시작했다.“성연 씨는 모르죠? 내가 무진 오빠와 스킨십을 할 뻔했던 거.” 그 시절을 회상하는 소지연의 눈에 그리움의 빛이 어렸다.‘맞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나와 무진 오빠만 있고 아무도 없던 그때로.’강무진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고, 모든 염원이었다.강무진을 쫓아 가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무진이 마음을 다른 여자에게 줘버리지 않았냐는 말이다.그러니 소지연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분명 무진의 옆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다.성연보다 무진을 안 지 더 오래되었다. 또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기회만 기다렸다.그런데 자신이 없는 동안에 송성연이라는 계집애가 나타나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소지연의 성격은 평상시 절대 송성연 같지 않았다.그러나 강무진에게 송성연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 나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송성연을 강무진의 곁에서 조금씩 뽑아내야 했다.성연은 소지연이 또 무엇을 하려는 지 알 수가 없었다.그저 턱을 괴고서 무료한 표정으로 소지연을 응시하기만 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소지연도 그 전처럼 즐겁게 떠들었다.어차피 이 말들 역시 소지연이 일부러 성연에게 들려주려던 것이다.“18살 때, 학교에서 몇몇 애들이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술도 강제로 먹였어요. 당시 무진 오빠가 나를 위해 모두 쫓아내 줬죠. 그런데 그때 비가 와서 무진 오빠와 나는 나란히 건물 처마 밑에서 앉아 비를 피했어요. 무진 오빠가 코트를 벗어서 나에게 주었고요. 무진 오빠를 냉담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아요. 사실 속마음은 무척 따
성연이 보인 반응과 행동을 통해 소지연은 결국 성연이 쉽게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하찮은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됐다.아니 오히려 다루기 힘든 상대였다.원래 시골 촌뜨기에 불과한 계집애라 나약하기 그지없어서 두세 마디 말이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어떤 여자라도 자신의 약혼자가 다른 여자와 그처럼 친밀한 스킨십을 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심리적으로 견딜 수 없을 터였다.어쩌면 집에 돌아가서 강무진과 크게 다툴 수도 있었다.강무진은 억지 부리는 여자를 가장 싫어한다. 그때 두 사람이 진짜 싸우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그 빈틈을 뚫고 들어가 무진을 위로할 계획이었다. 덩달아 자신의 장점을 무진이 알게 하면서.그러나 소지연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고, 송성연을 과소평가했다.분명히 모든 것을 자신이 계획했었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연결되도록 계획했지만, 송성연에 의해 실패했다. 정말 말도 안되게.어쩐지 방미정이 성연 앞에서 찌그러져 실의에 빠진 채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게 이해가 갔다. 또 강무진이 직접 처리한 것도.정말 창피하기 짝이 없다.만약 자신이었다면, 그처럼 어리숙하게 일을 벌여 송성연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방미정은 겉으로는 송성연을 겨냥한 것이지만, 뒤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강무진에게 맞서 그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 아닌가?‘그러니 그런 꼴이 된 거지.’소지연은 그들보다 훨씬 똑똑했다.방미정이 귀국하여 벌인 소동은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자신은 강무진과 죽마고우일 뿐만 아니라 방미정도 잘 알았다.어렸을 때, 두 사람은 같은 남자에게 미쳐 있었기 때문에 소지연은 방미정을 계속 지켜보았다.본래 방미정이 강무진과 파혼하고 출국함으로써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방미정이 뜻밖에 강무진을 되찾기 위해 귀국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그러나 그래도 괜찮았다. 송성연이 자신을 대신해서 방미정을 치워 주었으니, 오히려 자신의 일을 덜게 된 셈이었다.자신은 귀국한 후에 송성연 한
소지연의 행방을 놓친 수하들은 즉시 비밀 아지트에 가서 성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자책감을 느끼는 수하의 음성이 휴대폰 저편에서 들렸다.“문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서 그 여자를 놓쳤습니다.”“놓쳤으면 됐다. 다음에는 더 주의해.” 성연은 수하를 책망하지 않았다.“문주님, 감사합니다.” 성연에게서 책망의 말이 나오지 않자 수하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화를 끊은 성연은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소지연, 계략이 뛰어나고 또 아주 신중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감탄했다.상식적으로 평범한 회사 임원인 소지연이 유럽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강한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게다가 자신의 수하들에 대해서는 성연만큼 잘 알 수도 없었다.수하들이 나서면 당연히 쉽사리 들키지 않을 터였다.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봤을 때, 소지연이라는 사람은 절대 간단한 인물이 아니었다.만약 소지연이 자신의 수하들을 따돌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 그럼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니까.‘그처럼 급하게 사람을 따돌린다? 그러니 더 의심스러워.’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소지연에게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생각했다.지난번 리조트에서 있었던 일부터 이번 일까지.무진은 아마도 소지연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어떠한 태도도 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소지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성연은 머리가 좀 아팠다. 연이은 일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한 것 같았다.집에 돌아온 무진은 소파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성연을 보았다.무진이 걸어가서 성연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무진의 음성을 들은 성연이 고개를 들었다. 벗어나려 버둥거리지 않고 무진의 품에 얌전하게 있었다.잠시 말이 없던 성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 씨 생각에, 소지연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잠시 무진은 멍했다.“소지연은 내 친구지.
소지연은 며칠 내내 기다렸다. 마침내 적당한 시기가 되자 아주 은밀하게 미스터 제이슨을 만났다.두 사람이 만난 장소는 고급 회관이었다.강명기가 개인적 사업으로 키운 이곳은 큰 집과 강무진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다.여기서 만나면 절대 안전하고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미스터 제이슨이 소지연과 만난다고 하자, 강명기가 미스터 제이슨에게 은밀히 이 장소를 제공했다.미스터 제이슨은 강명기처럼 눈치 빠른 사람을 좋아한다.통제하기 좋고,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야망도 있는 사람이라야 그를 움직일 수 있었다.만약 시일이 좀 지난다면 은성그룹은 정말 WS그룹을 앞지를 것이다. 그럼 이익을 얻는 이는 미스터 제이슨뿐이다.미스터 제이슨이 강무진과 손을 잡지 않은 까닭은 강무진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을 누를 정도로.그리고 그가 제기한 요구와 뒤로 돈을 버는 은밀한 거래를 강무진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게다가, 미스터 제이슨 생각에 강무진 혼자서는 마음대로 수 없어 보였다.강무진의 뒤에는 아주 융통성 없는 안금여 회장이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제안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미스터 제이슨 또한 자신의 가족들과 상의해서 내린 결론이었다.모두들 강명기와 손을 잡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중론을 모았다.소지연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미스터 제이슨은 이미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미스터 제이슨은 소지연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최근 이 나라의 다도를 즐기게 되며 차를 우리는 법까지 조금 배운 그는 소지연에게 자신이 직접 우린 차를 따라 주었다.소지연은 차 한 모금을 입에 살짝 머금었다. 은은한 차 향이 입속으로 스며들며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미스터 제이슨, 과연 천재다우시군요. 뭐든지 빨리 배우시네요.”“과찬이십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을 뿐이에요.” 미스터 제이슨이 겸손하게 웃었다.소지연은 차를 마시며 주변 인테리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시선을 들어 한 바퀴 둘러본 후에 소지연이 말했다.“못
미스터 제이슨은 소지연의 요구가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냥 여자아이일 뿐 아냐? 떼어내는 건 식은 죽 먹기지.’이건 아무런 조건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미스터 제이슨은 소지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렇게 간단하다고요? 다른 부분 보수는 예전에 약속한 대로?”소지연이 냉소하며 말했다.“네, 천 억 주세요.”소지연 생각에 송성연은 절대 대처하기 쉬운 연적이 아니었다.자신은 공개적으로 송성연에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무진이 자신을 미워하면 안되니까.‘하지만 미스터 제이슨이 손을 쓴다면 달라지지.’외부 사람들의 수단은 방미정이 전에 썼던 것 같은 소꿉놀이와는 다르다.MS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모두 진짜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었다.이번에는 송성연도 절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이런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강무진은 쉽게 자신을 의심하지 못할 터.결국 무진이 보기에, 자신은 ‘충심’이 가득한 직원이 틀림없었다!무진은 아마 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 줄곧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미스터 제이슨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그러죠, 그럼 미스 소, 우리의 협력이 유쾌하기를 바랍니다.”그가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소지연도 일어서서 살짝 손끝만 내밀어 미스터 제이슨과 악수를 했다.“서로 윈윈하는 협력이 되기를 바랍니다.”만약 송성연이 무진의 곁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소지연은 절대 미스터 제이슨과 합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손이 더럽혀지는 걸 원하지는 않으니까.그녀 혼자 힘으로는 이 일을 성공시킬 수 없었다.이런 때에 미스터 제이슨이 소지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지연 또한 집에서 많은 고민을 한 뒤에 승낙했다.다시 자리에 앉은 미스터 제이슨이 소지연에게 농담을 던졌다.“미스 소, 내가 보기에 강씨 집안의 다른 두 사람도 걸출한 인재들이에요. 그들도 미스 소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던데, 왜 고려하지 않습니까?”눈썹을 찌푸린 소지연은 미스
성연은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갈 생각이라고 무진에게 말했다.그러자 무진이 성연을 불러 말했다. “잠깐만, 너랑 같이 갈 경호원 몇 명을 붙여 줄게.”그러더니 무진은 성연의 옷차림을 살피더니 앞섶의 주름이 진 부분을 펴주었다.성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됐어요, 그냥 편하게 몇 개 사러 가는 것뿐이에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성연은 쇼핑하러 갈 때 경호원이 따라다니는 게 너무 싫었다.마치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아서.그런 행위가 성연은 몹시 싫었다.“지금 미스터 제이슨이 아직 북성에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마음이 안 놓여. 경호원들이 너를 따라가게 해. 모두 네 말 잘 들을 거야. 절대 방해하지도 않을 거고. 내가 안심할 수 있게 해 줘.” 무진은 다소 애원하는 듯한 의논조로 성연에게 말했다.무진은 정말 성연이 염려스러웠다.지금 저들은 자신에게 손을 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대는 것까지 피하기는 어려웠다.할머니 안금여 회장이든 고모 강운경의 곁이든 무진은 모두 경호원을 보내 보호하게 했다.지금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대상이 성연이다.무진이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이런 말투를 쓴 적이 있었나?성연은 무진이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그런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았어요.”어차피 경호원 몇 명이면, 자신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무진의 권유로 성연은 경호원과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는 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마침 교외로 나갔다가 시내로 향하던 참이었다.차체가 갑자기 흔들리자, 성연의 경계심이 즉각 발동했다.“왜 그래요?” 성연이 앞에서 운전하는 경호원에게 물었다.마음속으로 몰래 생각했다.‘설마 재수없는 것은 아니겠지? 외출하자마자 누군에게 찔려 죽는다든지?’경호원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작은 사모님, 누가 우리 차를 들이받은 것 같습니다. 내려가 보겠습니다.”성연은 이건 너무 작위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무진의 당부를 떠올리니
특수 훈련을 받은 경호원이 빠르게 반응하며 잽싸게 성연을 밀어냈다.상대편 차량 기사의 단검이 경호원의 팔을 찔렀다.선혈이 곧바로 경호원의 팔을 붉게 물들였다.성연이 경솔하게 믿었던 사람이 남을 해칠 나쁜 마음을 가졌을 줄이야.재빨리 정신을 차린 성연이 기사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틈을 타서 침을 꺼내 기사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얼른 기사의 다리에 침을 찔러 넣었다.성연이 방금 찌른 혈은 마비 효과가 있었다.찌르자마자 기사의 오른쪽 다리는 순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이어 아예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기사는 자신의 지금 이 상태로는 이 두 사람을 이길 수 없을 게 틀림없음을 아는 듯했다.성연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사.기사는 이를 악문 채 마비된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방법을 찾아 신속하게 현장을 빠져나갔다.절뚝거리는 기사의 뒷모습과 조금 전 칼을 휘두르던 기사의 솜씨를 보면 전문킬러임이 분명했다.도대체 누가 전문킬러를 보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걸까?그것도 이렇게 위장을 한 채로.조직의 원한 관계는 더더욱 불가능했다.임무를 수행할 때, 아무도 자신의 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또한 자신의 정체는 더더욱 몰랐다.그래서 조직의 원한 관계일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배제했다.달아나는 기사를 본 경호원이 쫓아와 초조하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무진은 자신을 지킬 경호원을 파견했다. 만약 성연에게 어떠한 불상사라도 생긴다면 자신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난 괜찮아요. 손에 상처가 났어요.” 성연이 경호원의 팔을 바라보았다.그의 팔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경호원의 팔을 찌른 힘을 보니 기사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 게 분명했다.‘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이처럼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걸까?’‘이런 잔인한 수단을 쓰다니.’그 순간 정말 한동안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경호원이 자신을 대신해서 막지 않았더라면 그 칼은 자신의 심장에 꽂혔을 것이다.죽지 않는다 해도
성연은 집으로 돌아가서 오늘 있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처음에는 강명재 일당의 짓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둘째, 셋째 일가 외에도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소지연.결론적으로, 그들 중 누구이든 이번 일은 분명 둘 중 하나의 소행이다.‘소지연은 무진을 좋아해. 무진 씨가 매사 날 위하는 것을 본 후, 하루빨리 날 없애고 싶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냐.’이 일을 계획한 게 소지연임을 생각했을 때, 그녀의 계획 대로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유난히 조심성이 많은 성연은 누가 자신을 미행하더라도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생각할수록 이 일은 소지연이 사람을 고용해서 벌인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찌 되었든 둘째, 셋째 일가 쪽은 지금 은성그룹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자신을 해칠 생각까지는 없을 것이다.‘누구이든 간에 이 일의 배후를 반드시 잡아야 해!’자신을 상대로 어느 누구도 이런 짓을 벌이고 달아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오랜 시간 받았던 훈련이 헛수고인 거지.’휴대폰을 손에 든 성연이 서한기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나한테 지금 보다 더 많은 인원을 보내.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할 거야.”성연은 자신을 미끼로 해서 저쪽에서 다시 움직이도록 끌어들일 생각이었다.성연의 말을 들은 서한기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얼굴이 굳었다. [도대체 누구입니까? 감히 이처럼 대담하게 보스를 건드리는 짓을 벌인 놈들이!]성연이 어깨를 으쓱했다.“누가 알겠어?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봐야지.”성연은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둘째, 셋째 일가 그리고 소지연이 얼마나 많은 계략을 세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덤벼봐, 모두 상대해 줄 테니.’‘세상에서 내 명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어.’자신에게 또 다른 신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자신의 다른 신분이 드러난다면, 둘째, 셋째 일가 심지어 소지연까지 자신에게 잘 보여야 할 판이다.“보스, 무
서한기는 정중하게 예민주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예민주 씨,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적절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예민주는 서한기도 준수하게 생긴 데다가 아주 강렬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속으로 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일부러 침대로 달려간 뒤 옆으로 누워서 요염한 자세를 취한 채 서한기를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서한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고는 감히 예민주와 시선도 부딪치지 못했다.“저는 예민주라고 해요. 당신은요?” 예민주는 마치 어린 아가씨가 자신을 드러내듯이 조심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저는 서한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자 서한기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나를 이렇게 당황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어.’ ‘좀 이해가 안 되는데.’“안녕하세요, 한기 오빠!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상대방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자, 예민주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그러나 이런 매력도 강무진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어.’‘송성연은 도대체 어떻게 강무진을 꼬신 거야?’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서한기가 급히 방에서 나오려고 했다.“한기 오빠, 잠깐만요. 성연 언니를 보면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오라고 전해주세요.”“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먼저 푹 쉬도록 해요.”말이 끝나자 서한기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크게 호흡을 하고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러지? 저 예민주에게 무슨 마력라도 있는 걸까?’30분 후, 성연이 방문을 두드리자 예민주가 대답했다.“들어오세요!”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물었다.“사매, 어때, 이 방은 맘에 들어?”“괜찮아요. 아주 맘에 들어요! 언니, 정말 부러워요. 무진 오빠하고 결혼도 한 데다가 아
“무진 씨, 그 7명의 임원들은 곧 귀국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임원들은 유럽의 한 클럽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곧바로 전용기로 데려간 거예요.”“그런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모든 핸드폰을 수거하는 바람에 감쪽같이 실종된 걸로 변한 거예요.”차안에서 성연은 임원들의 일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예민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성연이 완전히 자신이 주입한 지시에 따라서 말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클럽 얘기는 더욱 사실무근이었다.다 듣고 나서도 무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민주에게 물었다.“민주 씨는 발견한 다음에 왜 바로 내게 알리지 않고 성연이에게 알린 거야?”예민주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일찌감치 마련해 둔 대답을 말했다.“무진 오빠, 오빠는 분명히 주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빠가 국내에 있을 때 주변에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서 감시하는 첩자들이 있었어요.” “오빠가 하는 모든 행동은 상대방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아무도 모르게 유럽에 오라고 해서 저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했어요.”“그런데 그 클럽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거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성연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그 클럽은 원래 MS 가문과 관계가 있었던 걸로 추측이 돼요. 보복으로 그 7명의 임원들을 통해서 WS그룹을 파괴하려던 거지요.”“아니면 진교철일 수도 있어요. 내가 사매와 함께 7명의 임원들을 찾았을 때, 모두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 중간에 생겼던 일들의 이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지금은 추측할 수밖에 없어요!”미간을 짚은 채 생각하던 무진은 아내가 말한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인정했다.‘연계진은 결국 진교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했어. 하지만 진교철이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그러나 7 명의 임원들이 곧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되자, 무진의 마음도 다소 홀가분해졌다.“무진 오빠,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7 명의 임원들
마음속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무진의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았다.누가 뭐라고 해도 예전의 예중천은 명성이 자자했던 대단한 천재였다.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사업의 재질과 의학에서의 조예, 무학 수준도 아주 높았다. 심지어 국제 비즈니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우러러보던 존재이기도 했다.예중천이 감쪽같이 실종되자 놀란 주요 기관들이 전국과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찾았다.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 예중천의 딸이 바로 무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예민주는 아주 잘 위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가 본다면, 마치 이웃집 아가씨처럼 상큼 발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예민주의 시선을 마주한 무진은 섬뜩했다. 그 짙은 남색의 눈동자는 마치 드넓은 심해처럼 사람을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신비로우면서도 뭔가 꺼림직해!’“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언니의 남편이신 강무진 씨인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입가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면서, 예민주가 환한 표정으로 무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예중천 선생님의 따님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무진도 예의 바르게 손을 뻗어 가볍게 악수했다.그러나 이렇게 악수만 했는데도 예민주는 마치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이 남자는 내가 꿈꾸던 훌륭한 남자가 분명해. 내게 어울리는 남자야!’무진과 성연의 대단했던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에, 예민주도 본 적이 있었다.그때 예민주는 컴퓨터 화면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할 뿐이었다. ‘강무진 같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송성연에게 어울릴 수 있단 말이야?’‘오직 나만이 강무진의 곁에 있으면서 강무진의 모든 업적을 지켜볼 자격이 있어!’예민주는 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빛날 것이라고 믿었다.“무진 오빠, 제 이름은 예민주고, 제 아버지
공항 입국 게이트.암담한 눈빛의 성연은 걸음도 부자연스러워서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이 상황을 본 예민주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인 모양이네. 정신을 좀 차리게 해야겠어.’이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은침으로 성연의 허리에 있는 혈을 찔렀다.순간 아픈 표정을 드러냈지만, 곧 눈빛이 되살아난 성연이 고개를 돌려 예민주를 바라보았다.“막내 사매? 여기가 어디야?”성연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걸 듣자 예민주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냈다.‘보아하니, 내가 연구해서 만든 독이 그래도 썩 효과가 좋은 것 같네.’사람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한 뒤 인식의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독은, 여민주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그 실험 대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F국의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언니, 이제 귀국했으니까 곧 무진 오빠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진 오빠가 보고싶죠?” 예민주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약은 성연이 무진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민주의 계획은 전혀 시행할 수가 없다.‘그래, 한 걸음씩 차근차근 해야 해.’ 예민주의 인내심은 대단했다.“응, 무진 씨가 내 남편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 무진씨가 잘해 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운성시에서 살면 돼.” “더 이상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스승님이 너를 잘 보호하라고 당부하셨어!”지금 성연은 더 이상 예전의 성연이 아니라 이미 완전히 변했다. 성연의 머릿속에는 이상한 기억들과 지시가 박혀 있었다.그래서 예민주에 대한 말투는 더없이 온화했다.“응, 언니가 정말 잘해 주시는 걸요! 언니가 외국에 와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거기에 갇혀 있었을 거예요. 언니가 제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예민주는 마음속으로는 그야말로 통쾌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선량한 척 가장하면서 묵묵히 성연의 기억을 강화하고 있었다.예민주가 설계한 기억 속에서 성연은 어제 오후 3시에
하룻밤 사이에 연운그룹은 완전히 무너졌다. 연계진 회장은 탈세 문제로 구속되었고, 많은 부문의 책임자들도 잇달아 사직했다. 인터넷의 여론이 폭발하면서, 주가는 이튿날에도 어김없이 또 다시 20%나 폭락하며 하한가를 기록했다.회장 대행인 조수경도 이미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도저히 국면을 만회할 수가 없었다. 진교철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교철은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대리인을 시켜서 연운그룹에 한 투자마저 철회했다.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조수경도 재빨리 연운그룹과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수경은 오후에 바로 회장 대행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그룹 전체가 이미 완전히 끝장이 났다. 게다가 여러 여직원들의 고소에 직면해 있어서, 탈세 문제뿐만 아니라 성범죄 문제와도 엮여 있었다.이 보도를 접하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했지만, 지금 무진은 초조한 마음으로 커피만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그 7 명의 임원들 사건이 무진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그래함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그래함은, 성연의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줄곧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래서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 어젯밤에 성연과 짜고 거짓말을 했다고 무진에게 빨리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비로소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성연의 핸드폰으로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줄곧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손건호와 서한기에게 반드시 단서를 찾으라고 지시한 뒤 지금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곧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손건호의 전화였다.얼른 전화를 받은 무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소식이 있어?”[보스, 사모님의 종적을 찾았습니다. 어제 오후 3시 비행기로 F국 프로방스로 갔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추적하기 위해서 제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그래, 어서 가.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보고하고. 하지만 반드시 은밀히 해야 해. 실혼전에서 틀림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무진은 당황
완전히 놀란성연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실혼전의 캐서린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너 정말 예중천 스승님의 딸이 맞아? 왜, 왜 이렇게 하려는 거야?” 질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예민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수잔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선배,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가 언니에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줬어요. 언니도 은혜에 보답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 언니가 강무진 씨를 양보한다면, 아주 간단하게 은혜에 보답하는 게 되겠지요!”“웃기지 마!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돼!”이를 악문 성연의 눈빛에는 살기도 확고하게 배어 있었다.“언니는 안 죽어도 돼요! 그리고 언니가 죽는다면 소용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언니가 순순히 양보하는 거예요! 나하고 강무진 씨가 행복해야 지내는 모습을 봐야지요.” “그리고 언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언니가 키우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내게 줘도 돼요.”예민주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성연은 예민주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놀라서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수잔은 마치 로봇처럼 성연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었다.“송성연 씨, 차 드세요!”“예민주, 네가 말한 계획들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그 7명의 임원들이 없어도 내 남편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어.”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해치겠다는 그런 말을 하니 더 터무니가 없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넌 스승님의 딸도 아니면서 왜 딸이라고 사칭한 거야?”성연의 거듭되는 질문에 갑자기 화가 난 예민주는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나를 화나게 해서 더 많은 사실을 드러내게 만들겠다는 거지요! 좋아요, 그럼 내가 아예 말해 줄게요.” “예전에 강무진 씨 부모님 죽음은 우리 예씨 가문과 관계가 있어요. 강씨 가문이 우리 예씨 가문에게 빚진 거지요! 알겠어요?”“내가 강씨 가문의 모든
“도대체 날 찾아서 뭘 하겠다는 거야? 조건이 있으면 그냥 말해.” 두려움을 떨치고 정신을 차린 성연은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았다.분노한 성연이 소리치자 예민주가 냉소를 터뜨렸다.“마주 보고 있어야 얘기하기도 편해요. 앉아요!”예민주는 여전히 얼버무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모든 건 자신의 수중에 있다는 듯이.성연은 거실로 돌아와서 예민주의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잔이 성연에게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송성연 씨, 홍차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커피를 원하십니까?”성연은 정말 깜짝 놀랐다. 겉으로는 전혀 무해해 보이는 이 여자가, 불과 몇 초 전에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기에!‘어떻게 감정을 이렇게 신기하게 바꿀 수 있지?’‘이 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아.’예민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성연 씨에게는 홍차를 한 잔 주세요. 임산부라서 커피를 마시는 건 적합하지 않아요!”‘헐!’성연은 정말 멍해졌다.“날 조사한 거야?”“언니가 내 선배인데 당연히 언니의 일에 더 신경을 써야지요.” 예민주의 눈빛은 정말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했다.‘내가 임신한 사실은 지금까지 무진 씨하고 서한기만 알고 있어. 할머니와 고모에게도 아직까지 알리지 않았는데, 아득히 멀리 있는 예민주가 알고 있다니!’자신의 비밀을 예민주가 훤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되자, 성연은 완전히 충격에 휩싸였다.“됐어요! 언니 표정이 이렇게 다채로운 걸 보니 내 목적도 달성한 모양이군요. 이제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겠어요!”갑자기 미소를 거둔 예민주의 단호한 눈빛에는 냉혹함까지 엿보였다.“그래! 나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불원천리 날 찾아왔는데, 나나 무진 씨를 내버려둘 리는 없겠지?”원래 막내 사매라는 호칭에 성연은 어느 정도 친근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방을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또는 적으로 생각해야 했다.“그 7 명의 임원을 무사
성연은 문득 예민주의 나이에 의문이 들었다.‘외모는 확실히 나보다 두세 살 어리게 보여. 갓 대학교에 입학한 청순한 아가씨처럼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어린 모습이야.’그러나 겨우 10여 분 동안 접촉하면서 성연은 이따금씩 가슴이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막내 사매는 앳된 외모 속에 무서운 영혼을 감추고 있어.’다시 자리에 앉아서 예민주를 쳐다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WS그룹의 미래 업무를 담당해야 할 7명의 고위 임원들이 예민주의 부하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것 만이 7명의 임원들이 예민주의 지시에 따라서 잇달아 여기 프로방스로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너무 놀랄 필요 없어요. 언니가 세상 일을 전부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먼저 아침부터 먹어요! 그리고 나서 언니한테 어떻게 해야 WS그룹을 구하고 남편을 도울 수 있는지 알려 줄게요!”수잔이 아침 식사를 하나씩 내왔다. 빵과 우유, 그리고 약간의 치즈로 아주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다.그러나 지금 성연은 전혀 입맛도 없어서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도 요구를 빨리 말하는 것이 좋겠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그 7명의 임원들을 WS그룹으로 돌려보낼 거야?”예민주는 들은 체 만 체하며 혼자 식사를 시작했다.‘이 X이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거야?’성연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이제 7 명의 임원이 사라진 이유를 알았어. 그 사람들이 정말 예민주의 부하라면, 그럼 더 이상 WS그룹으로 돌아가게 할 필요도 없어.’‘그렇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야.’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성연은 여전히 자신이 있었다. ‘은침을 날려서 예민주를 제압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그러나 예민주가 나를 그렇게 쉽사리 풀어줄 리가 없지. 분명 다른 숨겨진 위험이 있을 거야.’잠시 생각하면서 성연은 사방을 쓸어보았다.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하인들과 수잔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경호원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것도 계산하기 어렵겠죠. 어떻게 똑똑히 계산할 수 있겠어요.”예민주가 가볍게 웃으며 입을 닫았지만 성연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그래서 내친 김에 아예 예민주에게 반문했다.“그럼 사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세어 보기라도 했어?”예민주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시원스럽게 대답했다.“세어 봤지요.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죠. 그동안 제가 배운 게 변변치 않아서 사실 환자를 도와준 적이 없어요! 한 사람도 없어요!”말을 마친 예민주의 얼굴에는 잠시 슬픈 기색이 떠올랐다.성연은 멍해진 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예민주가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떨어진다 해도 의술을 배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조금 전 손가락 사이에 은침을 끼우는 수법만 해도 정말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거야.’‘그래서 예민주의 말 뜻은 도대체 뭐야?’갑자기 성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자기도 모르게 방금 전에 수잔이 벌벌 떨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뼛속에서 발산되는 공포에 떨던 모습은 예민주가 수잔을 어느 정도로 참혹하게 다뤘는지 말해 주기에 충분했다.‘게다가 수잔은 예민주를 주인이라고 불렀어. 애완동물한테나 주인이 있는 거지.’‘그럼 예민주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건, 줄곧 다른 사람을 징벌하는데 의술을 사용했기 때문인 거야?’‘심지어, 사람들을 해치거나?’성연은 눈동자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멍하니 예민주를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언니가 이제야 눈치채신 모양이네요? 호호,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세요. 제가 배운 건 원래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의술이 아니었어요.” 예민주는 성연의 추측을 시원스럽게 확인해 주었다.게다가 더할 나위 없이 지극히 평범한 표정이었다.그 말을 들은 성연은 경악하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예전에 스승님은 국내외에서 최고의 신의로 여겨지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으셨어.’‘스승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