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의 마음은 기특했지만 허 아주머니가 내일 장례식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태준은 그를 돌려보내지 않았다.“내일 할머니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데려다줄게. 괜찮지?”허태준은 친절하게 별이와 의논했다.별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오랫동안 심유진과 떨어져 있었던 별이는 껌딱지 처럼 그녀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별이가 잠에 든 후에야 심유진은 비로소 껌딱지를 떼어낼 수 있었다.허태준은 침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상의는 훌렁 벗어 던진 채 이불을 허리춤까지 걷어 올렸다.“유진 씨.”허태준의 부드러운 미소와 허스키한 목소리가 유난히 섹시했다.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그녀는 아무것도 못 본 척 침실과 연결된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허태준도 그녀의 뒤 따라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그는 헐렁한 잠옷 바지를 입어서 마치 아래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았다.심유진이 서랍에서 속옷을 꺼내자 허태준은 백허그를 했다. 이어서 그의 차가운 입술을 그녀의 목에 대고 가벼운 키스를 나눴다.“간지러워요.”심유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그를 밀어냈다,그럼에도 허태준은 계속 달라붙었다.“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제가 보고 싶지는 않았어요?”허태준은 불만 가득해서 물었다.심유진도 허태준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하여 김욱과 상의 한마디 없이 바로 항공권을 예매한 것이다.하지만 정작 허태준 앞에서 낯간지러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내일 아침 일찍 묘원에 가야 하잖아요. 일찍 자요!”말하면서 심유진은 또 그를 밀어냈다.“괜찮아요,”허태준의 손은 이미 심유진 옷 속에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유난히 빛났다.“태준 씨의 체력을... 제가 잘 알죠.”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허태준은 그녀를 돌아 세우고 키스를 퍼부었다.내일 중요한 일을 앞두고 거절하려고 했던 심유진은 이내 그의 능란한 기술에 홀딱 넘어가 버렸다. 허태준의 어깨에 받친 팔은 자연스럽게 그의 목을 휘감았다.“유진
어느 땐가부터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모두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던 터라 하나둘 서둘러 산에서 내려갔다.허 아주버님도 서둘러 허 아주머님을 데리고 떠났다.오직 허태준만 여전히 묘 앞에 곧게 서있었다.“태준아?”허 아주버님은 혼자 멀뚱히 서있는 허태준을 발견했다.“너는 안 내려갈래?”묘비에 새겨진 허아리의 이름을 보며 허태준은 대답했다.“조금만 더 있을게요.”허 아주버님은 허태준의 마음을 알아채고 더 말하지 않았다.“너무 오래 있지는 마.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좀 있으면 비가 세게 내릴 거야.”모든 사람이 다 떠난 후에야 허태준은 묘비를 만지작거리며 미안해했다.“미안해. 아리야.”“날 용서하길 바라지도 않으니까,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지내야 해.”“만약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꼭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부모님 사람 듬뿍 받아.”“안녕.”허태준은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허태준이 차에 탔을 때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허 아주버님은 그런 아들이 몹시 걱정되었다.“근처 호텔에서 샤워라도 할래?”“괜찮아요.”허태준은 허 아주버님의 호의를 거절했다.“바로 집으로 가요. 유진 씨랑 별이가 보고 싶어요.”“그래...”허 아주버님은 허태준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이미 번마다 허태준이 결정하는 데 익숙해졌다.“집에 데려다줄게.”묘원을 떠나자 허 아주머님의 마음도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그녀는 코를 훌쩍이면서 허태준한테 물었다.“유진이는 아예 돌아온 거니?”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젠 안 가요.”“그럼 너희 둘 결혼은...”허 아주머니는 조급해 났다.“네가 그동안 계속 신경을 썼던 허태서, 허태서도 이미...”허 아주머니는 버벅거리다가 말을 바꿨다.“언제 유진이랑 별이를 너와 한 호적에 넣을 거야?”“거의 다 됐어요.”허태준은 말했다.사실 심유진과 결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에게 축복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쉬운 일이다.허태
심유진은 귀국한 후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물론 김욱이 계속 감시하는 덕분도 있었다.심유진은 매일 고객과 연락하고 시간 내서 블루 항공 계열사의 재건 진행 상황도 수시로 체크했다.그녀가 근무하는 사무실도 허태준이 마련해 줬다. 사무실은 마침 CY 건설 옆이자 CY 그룹 산하의 산업이기도 했다. 허태준은 CY 그룹의 확장을 위해 이 사옥을 샀다. 하지만 모든 층을 사용할 수는 없어서 두 층으로 나눠서 블루 항공에 넘겼다.심유진도 신세 지기 싫어서 시세에 따라 임대료를 주겠다고 했다.“그래요.”허태준도 거절하지 않았다.“아무튼 제 돈도 유진 씨 돈이니까요.”허태준은 심유진의 마음만 편하면 그만이었다....급한 일은 모두 처리한 허태준은 유럽에 가는 소식을 심유진에게 알렸다.“나 내일 유럽에 가요.”심유진은 적잖게 놀랐다.”태준 씨가 왜 유럽에 가요?”옛날에 허태준이 유럽에 간 건 심유진과 별이를 위해서였다.하지만 심유진과 별이 모두 곁에 있는 지금 그가 유럽에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택양한테 말해주려고요.”허태준은 그가 유럽에 가려는 진짜 목적을 심유진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태서 형님이 죽은 걸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심유진은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았다.“그럼 언제 돌아올 거예요?”심유진한테 제일 중요한 건 그의 귀국 날짜였다.“빨리 돌아올 거예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끌어안고 입술을 맞닿았다.“택양만 만나고 올 거예요. 아마 3, 4일 후면 올 거예요.”“네.”심유진도 허태준과 입을 맞춘 후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허태준의 두 눈을 빤히 보며 말했다.“저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요.”허태준의 눈은 어느새 깊어졌다.그는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금방 다녀올게요.”...허태준이 육윤엽의 개르티산장에 온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지난번에는 함께 연회에 참석한 하객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육윤엽과 김욱, 그리고 허태준 세 명뿐이었다. 거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소파에
“말 한번 잘했네. 그래! 다 자네 탓이야!”이때 만약 육윤엽 주변에 뿌릴만한 물건이 있었다면 바로 허태준을 향해 던졌을 것이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자기 친딸을 가로챘으니 화가 이만저만 나는 게 아니었다.육윤엽은 늘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눈치를 챌 새도 없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허태준이 그를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김욱은 육윤엽이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옆에서 계속 그를 진정시키려 애썼다.“삼촌, 참아요. 참아.”육윤엽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요동치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켰다.“자네 집안에 일은 다 처리했나?”육윤엽은 침착하게 물었다.그가 심유진과 허태준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허씨 일가에는 워낙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소중한 딸이 그런 요란스러운 부잣집 싸움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육윤엽은 YT 그룹의 파산된 것과 허태서가 체포하는 도중에 사살되었다는 소식을 각종 매체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허 씨네 중 다른 사람이 또 난동을 피우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네. 다 처리됐습니다.”허태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처리가 안 됐다면 아버님을 뵈러 올 용기도 나지 않았을 거예요.”허태준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육윤엽은 코웃음을 쳤다.“자네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 유진이는 이제 추궁하지 않던가?”육윤엽은 슬슬 허태준의 흑역사를 끄집어낼 생각이었다.허태준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 같았다.변명할 여지도 없었던 허태준은 그가 이전에 저질렀던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그는 변명 대신 육윤엽한테 맹세했다.“다시는 똑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몇 배로 더 유진 씨한테 잘해서 제가 저지른 일 다 잊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고작 허태준의 말 한마디만 듣고 그는 쉽게 단언할 수 없었다.하지만 허태준이 여태까지 해온 노력을 육윤엽은 다 봐오고 있었다.허태준을 대하는 심유진의 태도가 변한 것도 육윤엽은 잘 캐치하고 있
“결혼식은 언제 할 생각인가?”육윤엽은 뜬금없이 물었다.허태준은 너무 긴장한 탓에 혼이 나가 있었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아직 정하지는 않았습니다.”허태준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하지만 아직 반성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했기에 열심히 입꼬리를 자제했다.“유진 씨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둘이 재결합도 했는데 결혼식을 빨리 올리는 게 좋지 않겠나? 우리 딸이 언제까지 아무 명목도 없이 자네 곁에 있을 수도 없고.”허태준은 여전히 육윤엽의 눈엣가시였다. 하지만 심유진이 좋아한다니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허태준도 일이 흐지부지 하게 될까 봐 하루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반면 심유진은 경주에 계열사를 설립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아버님, 제가 소소하게나마 선물을 준비했습니다.”허태준은 가방에서 문건 하나를 꺼내 육윤엽한테 건넸다.육윤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문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재산권 증여서?”육윤엽은 깜짝 놀랐다.허태준은 블루 항공 계열사가 있는 사무실 건물을 증여하려 했다.“지금 블루 항공에서 사무실 두 층만 사용하고 있지만 본사를 경주로 옮기면 건물 전체를 다 써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저희 CY 그룹의 몇몇 부서가 같은 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기는 한데,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매달 임대료를 계좌이체 하도록 하겠습니다.”경주의 시내에 위치한 고층 건물은 엄청난 시세를 자랑한다.소소한 선물치고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쌌다.너무 비싼 선물에 육윤엽은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받자니 염치가 없어 보이고 안 받자니 심유진의 가치를 짓밟는 것 같아 갈팡질팡했다.“나는 자네 것 뭐든 받고 싶지 않네.”육윤엽은 고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이 건물 나한테 말고 유진이 한테 주게. 유진이한테 주면 내가 받은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육윤엽은 심유진이 이 건물을 받는 게 자신이 받는것 보다 더 좋았다. 심유진이 바로
“해결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허태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절로 나오는 웃음은 숨길 수 없었다.“그럼 슬슬 결혼 준비하면 되는 거야?”여형민은 깜짝 놀랐다.“일단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심유진의 속마음은 아직도 오리무중이었기에 허태준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뭐 더 지켜봐야 할 게 남았어?”여형민은 아직도 꾸물거리는 허태준이 너무 답답했다.“너 이대로 더 끌었다간 너와 심유진 사이에 아이 하나 더 생기겠어!”허태준도 어쩔 수 없었다.“이게 내 마음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야.”“뭐야 허 대표!”여형민은 눈을 번뜩이며 그를 쳐다봤다.“벌써부터 와이프 눈치를 보는 거야? 이게 자기밖에 모르던 허 대표가 맞아?”“와이프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허태준은 황급히 말을 바꿨다.“와이프의 의견을 존중하는 거지. 너 같은 남성우월주의가 뭘 알겠어.”순간, 여형민은 할 말을 잃었다.“그래. 네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그도 허태준과 일일이 따지는 게 입이 아팠다....허태준이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새벽 2시였다.방은 한없이 깜깜했다.심유진과 별이는 이미 꿈나라에 있었다.허태준은 거실과 가까운 욕실에서 간단히 샤워했다. 잠옷을 미리 가져다 놓지 않아 그는 타워로 간신히 하반신을 가렸다. 그러고는 살금살금 침실로 들어섰다.침대 머리의 무드등이 어둡게 방을 비춰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두워서 길도 겨우 보이는 정도였다.그는 재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깊게 잠들었다. 허태준은 이를 발견한 후에야 조심스레 다가가 뒤에서 껴안았다.따뜻하고 유연한 몸을 안고 있으니 그에게도 안정감이 찾아왔다.허태준은 그녀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한 후에야 만족스러운 듯 잠에 들었다....한밤중, 심유진은 화장실에 가려 잠에서 깼다. 그녀는 갑자기 침대에 누워있는 다른 그림자를 발견했다.“악!”심유진은 바로 자신을 안고 있는 허태준을 밀쳐냈다.졸지에 허태준도 그녀의 비명소리에 깼다. 그는 다급히
“여보.”허태준은 다시 한번 말했다.그는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심유진을 쳐다봤다.처음으로 여보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심유진은 일부러 허태준의 눈을 피했다. 그녀는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투덜거렸다.“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뭐라는 거예요.”“계속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못했어요.”허태준은 여우처럼 반달 같은 눈에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꺼냈다.그의 수상한 모습에 심유진은 괜히 긴장되었다.“내 옆으로 와봐요.”허태준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녀를 불렀다.그의 부름에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거리가 좁혀지자 허태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재빨리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악!”심유진은 맥없이 튼튼한 그의 가슴 근육에 부딪혔다.허태준은 그녀를 꽉 껴안아 그의 따뜻하고 촉촉한 콧김이 그녀의 볼에 부딪혔다.그는 자주 이런 투박한 방식으로 심유진을 껴안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심유진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짜증 냈다.“좀 부드럽게 안아 줄래요?”언뜻 화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애교가 섞여 있다.“알겠어요.”허태준은 평소와 달리 온화한 태도로 수긍했다.“많이 아팠어요?”그는 고개를 숙여 심유진의 손목을 “호호” 불어줬다.그의 입바람은 산들바람처럼 간질간질했다.심유진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허태준의 긴 속눈썹을 너머로 마음 아파하는 눈빛이 보였다.정말 태양이 서쪽에서 뜨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여보.”허태준은 멈칫했다.몇초의 정적이 흐른 후, 허태준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허태준은 믿을 수 없어 입은 파르르 떨렸다. 그의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했다.“다, 다시 한번 불러봐 줘요!”허태준은 감정이 벅차올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하늘로 치솟듯 기뻤다.그의 반응에 심유진의 얼굴도 덩달아 붉어졌다.심유진은 얼렁뚱땅 상황을 피하려 했지만 허태준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다시 불러줘요
“저희가 이혼한 적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심유진은 병원에서 쓰러졌을 때 여형민이 건넨 이혼합의서에 사인을 한 기억이 있다.당시 심유진은 술에 취해 있었고 허태준과 정소월 때문에 신경이 예민했었다. 그녀는 서류를 제대로 확인 할 겨를도 없이 바로 마지막 페이지에 사인을 했다.“형민이가 준 건 이혼합의서가 아니고 재산 양도 계약서예요. 그리고 저는 이혼합의서에 사인한 적도 없고요.”허태준은 자신의 작전이 성공해서 매우 흐뭇했다. 그는 심유진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심유진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녀는 이혼이 성립되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출국했다. 하지만 심유진과 허태준은 6년 동안이나 별거했었고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건 사실이었다. 하여 여형민이 건넨 서류가 당연히 이혼서류일 거라고 생각했다.게다가 그녀와 이혼을 하지 않으면 정소월과 결혼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절차라고 생각하고 사인했다.“뭔 재산 양도 계약서요?”허태준의 인성과 재력을 봤을 때 전혀 조건웅처럼 재산을 뺏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전에 관한 얘기에 심유진도 어쩔 수 없이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유진 씨는 모르겠지만...”허태준은 차가운 입술을 심유진의 입술에 포개며 말했다.“유진 씨 지금 CY그룹의 51퍼센트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예요. 제가 유진 씨 기분 상하게 하면 언제든지 저를 회사에서 내쫓을 수 있어요.”이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심유진은 입을 닫지 못했다.“태준 씨, 그런 심각한 일로 장난치지 말아요.”심유진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태준한테 경고했다.“저 장난치는 것 아니에요.”허태준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하지만 심유진이 때리기라도 할까 봐 너무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못 믿겠다면 서류를 가져다줄까요?”“보여줘 봐요.”심유진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잠깐 기다려요.”심유진이 때리려고 하지 않자 허태준은 그제야 마음 놓고 서재로 향했다.그의 모든 중요한 서류는 모두 서재